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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14장. 나와 지내는 것이 싫으냐?
작성일 : 18-10-02 18:00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7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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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루는 나흘 만에 정신을 차렸을 때, 머리가 깨어질 듯한 아픔 속에서도 기쁨을 느꼈다.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무영의 음성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꿈을 꾸었다.

 정확히는 할머니가 다시는 미루의 곁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우는 꿈.

 그리하여 눈을 떴을 때는 짙고 짙은 슬픔과 외로움뿐이었다.

 그런데 무영이 미루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 미루가 눈을 떴을 때 옆에 있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무영과 함께 영령국을 떠나온 후 단 한 번도 외롭다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할머니가 이 세상을 떠났지만 혼자 남아 고립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게 전부 무영 님이 곁에 있어주신 덕분이구나.’

 그리 생각하자 금세 웃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영 님!”

 손목이 허전했다.

 “무영 님, 어쩌면 좋습니까. 팔찌가, 팔찌가 없어졌습니다. 엉엉엉!”

 절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절대 빼지 말라던 그 말이 무슨 의미일까, 정말 파련옥이 가지는 의미 때문에 주신 팔찌일까 고민했던 것도 소용이 없게 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지니면서, 어느새 미루에게도 소중한 것이 되었던 팔찌였다.

 이리도 쉽게 잃어버리다니.

 설상가상으로 숨을 쉴수록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독에 중독되었던 몸이라 쇠약해졌다는 건 미루가 알 턱이 없었다.

 울면서 숨을 가쁘게 쉬는 미루에게 무영의 손길이 다가왔다.

 “네 옷을 벗겨야겠다.”

 미루가 깜짝 놀라 말릴 새도 없이, 무영의 큼직한 손이 미루의 허리에 묶인 끈을 풀었다.

 “무영 님!”

 부드럽게 잡아당기자 끈은 너무나도 힘없이 풀리고 말았다.

 미루는 눈을 질끈 감았다.

 무영이 왜 갑자기 옷을 벗기려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무영이라지만 알몸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무영과 단둘이 있는 방에서 옷을 벗는다니.

 자칫하면 정말 큰일 날 일이 아닌가.

 미루가 번쩍 눈을 떴다.

 “무, 무영 님! 안 됩니다, 왜 제 옷을 벗기시려는 겁니까?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소리치지 마.”

 “그래도 안 됩니다. 안 된단 말입니다!”

 미루가 끊임없이 소리치자 무영이 그제야 옷에서 손을 탁 뗐다.

 미루는 여전히 숨을 식식대고 있었다.

 그런데 미루의 얼굴이 붉게 상기된 것과는 상반되도록, 무영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묘했다.

 유독 신비로운 색의 눈이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재밌는 걸 구경하는 것 같기도 했다.

 미루의 몸에서는 손을 뗐지만 눈길은 여전히 미루를 향한 채였다.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통에 미루가 말을 더듬었다.

 “왜, 왜 그리 보십니까?”

 “네 하는 짓이 웃겨서.”

 “뭐가 웃기다는 겁니까?”

 무영은 대답 없이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몸을 돌렸다.

 무영이 저만치 멀어지고 나서야 미루는 제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커다란 눈망울이 두어 번 깜빡이더니 울상으로 처졌다.

 ‘이게 뭐야!’

 미루가 입고 있었던 겉옷이 이불 위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다.

 무영이 솜씨도 좋게 어느새 겉옷만을 벗겨냈던 것이다.

 미루는 민망해서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당겨 덮었다.

 무영이 옷을 전부 벗기려는 줄 착각했던 것이 부끄러워서 차라리 사라지고 싶었다.

 그러는 통에 언제 울었냐는 듯 눈물이 뚝 그쳐 있었다.

 차츰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미루는 눈을 감아버렸다.

 깃털로 만든 새하얀 이불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캄캄한 암흑이 찾아왔다.

 ‘왜 이렇게 졸리지.’

 따뜻한 이불 안에 가만히 누워 있어서일까.

 아니면 사위가 너무나 조용하고 평온하기 때문일까.

 나흘이나 그렇게 자고 방금 깨어난 참인데도 또 잠이 왔다.

 ‘아, 맞아. 내 팔찌. 내 팔찌를 가져간 건…….’

 비몽사몽간에 퍼뜩 팔찌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그러나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미루는 까무룩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

 

 미루가 고르게 내쉬는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누각 안에 울렸다.

 의자에 앉아있던 무영이 고개를 들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무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소리도 내지 않고 침대를 향해 누각을 가로질러갔다.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이불 밖으로 숯처럼 까만 머리칼 몇 가닥이 삐죽 튀어나와있었다.

 무영은 손을 뻗어 이불을 걷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틀고 깊게 잠든 미루의 얼굴이 드러났다.

 긴 속눈썹이 아래로 늘어져 홍조를 띤 뺨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살짝 벌어진 입술 새로는 진주 같은 치아가 보였다.

 두 손은 동그마니 말아 쥔 채 얼굴 옆에 놓여있었다.

 언제 깨어났었냐는 듯 기절이나 다름없이 잠든 그 얼굴을 보던 무영이 짧게 혀를 찼다.

 “그리 울고 소리칠 때 알아봤지.”

 정말 미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독에 중독되었다고 분명 말해 주었고, 나흘 만에 눈을 떴다는 것 역시 말해 주었다.

 그런데도 제 몸에 대해 아무 걱정이 없는 것 같다.

 움직이지 말래도 굳이 움직이고. 쓸데없는 일에 용을 쓰면서 힘을 죄 빼놓고.

 그래도 가슴이 답답해 보이기에 겉옷을 끌러 주려던 걸 혼자 착각해 당황하던 건 좀 재미있었다.

 하마터면 다 알면서도 계속 놀려먹으면서, 그 모습을 조금 더 보고 싶을 정도로.

 다시 무영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렸다.

 무영은 미루가 잠든 것을 한 번 더 살펴보고 몸을 돌려 누각을 빠져나왔다.

 반투명한 휘장을 걷고 아득히 높은 계단을 사뿐히 내려와 정원에 내려섰다.

 물기 어린 잔디를 몇 걸음 걷던 무영의 앞에 바깥과 별채를 차단시켜주는 장막이 나타났다.

 무영이 오른손을 들어 둥글게 내리긋자 장막이 갈라지며 지나갈 수 있는 틈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무영 님!”

 나흘 전과 다름없이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유기였다.

 유기는 미루가 독을 마시고 쓰러진 후로, 틈만 나면 근처에서 무영을 기다렸다.

 미루가 홀로 남겨두고, 위험에 빠지게 노출시킨 것이 모두 자신의 탓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무영이 미루를 직접 별채로 데려갔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다른 자도 아니고 무영이니만큼, 미루의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걱정이 되고 초조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기가 무영의 앞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무영 님, 새로운 소식은 없으십니까? 미루 님은 아직도 눈을 못 뜨셨나요? 안색은 좀 좋아지셨습니까?”

 성급하게 말을 늘어놓는 유기를 무영이 한 손을 들어 저지했다.

 유기는 입을 꾹 다물고 애절한 눈으로 무영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무영의 입술이 열리며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아이는 괜찮다. 방금 막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었다.”

 “세상에. 세상에…….”

 유기가 중얼거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안심한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듯 했다.

 잠시 그렇게 멍하게 앉아있던 유기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어디 아프신 데는 없이 말끔히 나으셨고요?”

 “그런대로.”

 “아아,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로.”

 유기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미루가 깨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넘치는지, 다시 씩씩한 목소리를 되찾았다.

 “무영 님, 그럼 제가 식사를 제대로 준비해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미루 님이 나흘 간 잠만 주무셨으니, 영양 보충을 해야 하실 거 아닙니까?”

 무영은 대답이 없었다.

 유기는 무영의 대답을 기다리다, 고개를 갸웃했다.

 왠지 모르게 무영의 표정이 싸늘한 탓이었다.

 “됐어.”

 “네? 그래도 뭐라도 좀 드셔야 할 텐데요.”

 “다른 종에게 시킬 테니, 넌 신경 쓰지 마라.”

 무영이 지금, 미루가 눈을 뜨자마자 유기의 안부를 물었다는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 것은 유기가 알 턱이 없었다.

 미루의 식사는 직접 챙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무영이 거절하니 더 이상 우길 수도 없었다.

 게다가 다른 종이 아닌 저라도 별채 안까지 들어가 미루를 보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할 터였다.

 “그럼, 그리 알고 있겠습니다. 미루 님께 안부 전해주셔요.”

 “…….”

 “참, 미루 님의 짐은 어쩔까요? 필요하신 것들이 전부 방에 있을 텐데.”

 그 말을 듣고서야 아직 심술궂게 얼굴을 굳히고 있던 무영이 다시 유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안 그래도 미루를 별채에 데리고 있을 참이었다.

 무영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즉각 명령했다.

 “필요할만한 건 모두 챙겨와. 나중에 더 필요한 건 그때 알리마.”

 “네. 그럼 준비해서 앞에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유기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물러갔다.

 유기의 갈색 머리꽁지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무영도 다시 장막 안으로 사라졌다.

 

 ***

 

 미루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노을이 지듯 누각 안으로 붉은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으으으.”

 미루는 얼굴을 찡그리며 한껏 기지개를 켰다.

 한숨 더 자고 나니 확실히 몸에 힘이 좀 더 도는 것 같았다.

 잠을 자기 전에는 몸을 조금도 움직일 힘이 없었는데, 지금은 비교적 움직이기가 수월했다.

 눈을 비비던 미루가 문득 코를 벌름거렸다.

 “맛있는 냄새.”

 그때까지만 해도 배가 고픈 줄 몰랐는데, 음식 냄새를 맡고 나자 무섭도록 허기가 졌다.

 미루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켜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열심히 코를 사용했다.

 “와!”

 동그란 탁자 위에 김이 피어오르는 음식들이 한상 차려져 있었다.

 미루는 튀어나오듯 침대에서 내려와 탁자에 다가갔다.

 온갖 고기볶음, 야채 쌈, 갓 찐 찰떡, 향긋한 차까지 수도 없이 많은 종류였다.

 냄새를 맡고,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으로도 입 안 가득 침이 고였다.

 미루는 정신없이 의자를 끌어당겨 그 앞에 앉았다.

 젓가락을 들자마자 가장 먼저 큼직한 떡을 집어 들어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으으으음!”

 미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음했다.

 따끈하고 알맞게 말랑한 떡이 입 안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꿀떡 씹어 삼킨 미루는 다음으로 고기볶음을 한 젓가락 집었다.

 “으음!”

 다시 한 번 감탄사가 터졌다.

 고기류는 잘 먹지 않는 미루의 입에도 너무나 잘 맞는 요리였다.

 얼마나 부드러운지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이미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버렸다.

 미루는 정신없이 배를 채웠다.

 젓가락을 집은 손이 탁자 위 여기저기를 날 듯 누볐다.

 미루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마악 크게 싼 쌈 하나를 입 안에 우겨넣은 미루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우, 웅. 웅!”

 미루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입 안에는 쌈이 가득 들어 있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눈동자는 안절부절, 사방을 향해 눈치를 보면서 입은 열심히 오물거린다.

 얼른 무슨 말이라도 해야지, 싶은 심정으로 마음이 급하면서도 뱉어낼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끝까지 쌈을 모두 씹어 삼키고 나서야 미루가 큰 소리로 외쳤다.

 “무영 님! 언제부터 거기 계셨어요?”

 무표정한 얼굴로 턱을 괸 채 미루가 밥을 먹는 걸 구경하던 무영이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네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부터.”

 “거, 거짓말 하지 마세요!”

 “내가 왜 거짓말을?”

 “…….”

 “이제 다 먹었나?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급하게도 먹더군. 아, 실제로 며칠을 굶었지.”

 이럴 수가.

 미루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배가 고파서 음식 냄새에 혼이 팔렸기로서니.

 방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

 먹는 꼴이 얼마나 우습고 예의 없어 보였을까, 걱정과 부끄럼부터 앞섰다.

 막상 무영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미루를 지나치더니, 탁자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영이 눈짓을 하자 미루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탁자에 팔꿈치를 괴고 긴 손가락을 맞물린 무영이 흘긋 탁자 위에 조금 남은 음식을 훑어보았다.

 “다 먹었나?”

 사실 더 먹을 수 있었지만, 그런 걸 지금 따질 때가 아니었다.

 미루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무영이 턱 끝으로 바깥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유령처럼 흰 덩어리로 뭉쳤다.

 미루가 깜짝 놀라 지켜보는 사이 그 덩어리에서 팔 같은 것이 빠져나와 그릇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모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음식은 모조리 치워지고 찻주전자와 찻잔만이 탁자 위에 남았다.

 미루는 흰 덩어리가 그릇들을 끌어안고 휘장 밖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나가는 것을 끝까지 눈으로 쫓았다.

 “살아있는 것을 부리기 싫을 때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지.”

 무영의 목소리에 미루가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그저 움직일 뿐인 실체도 없는 것이지만, 시키는 일은 실수 없이 잘 한다. 차?”

 “네? 아, 차요. 감사합니다.”

 무영이 손수 주전자를 들어 차를 따랐다.

 미루는 공손히 두 손으로 찻잔을 들고 기다렸다.

 코 밑에 찻잔을 갖다 대자 은은한 꽃향이 났다.

 미루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탁자에 잔을 내려놓는데,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무영 님. 왜 제 물건들이 여기 있는 겁니까?”

 마치 원래 이곳에 있던 것들처럼 자연스레 놓여 있어서 미처 몰랐다.

 미루가 쓰던 물건들을 언제 옮겨 왔는지, 침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것들이 고스란히 옮겨져 있었다.

 미루가 당황스러워하는데도 무영은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차를 홀짝였다.

 한 잔을 모두 마시고 나서야 무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앞으로 얼마나 여기서 지내야 할지 몰라, 일단 네 방에 있던 것들을 가져왔다.”

 “네? 여기서 지내다니요?”

 갑자기 무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나.”

 순식간에 미루의 곁으로 다가온 무영이 미루를 일으켰다.

 얼결에 무영을 따라 일어선 미루는, 무영이 자신을 데려가는 곳으로 향했다.

 누각의 가장 가장자리까지 다가간 무영이 사방에 드리워진 휘장을 휙 걷었다.

 “헉.”

 미루가 짧은 숨을 들이쉬며 뒷걸음질 쳤다.

 저도 모르게 무영의 소매를 두 손으로 꼭 붙든 채였다.

 무영은 그 손을 잠시 내려다보고는, 다시 앞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기가 내 별채다. 궁에서 지내기 싫을 때, 이곳에서 지낸다.”

 미루는 생각보다 높은 건물 안에 있었다는 사실에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는 않으나, 예상치 못하게 높은 풍경은 내려다보자니 순간 놀랐던 것이다.

 미루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게 뻗은 나무 계단 밑으로는 널찍한 정원이 펼쳐져 있었고, 무엇보다 마치 물방울을 덮어씌운 듯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반구 형태의 장막이 눈에 띄었다.

 “저건 무엇입니까?”

 미루가 반투명한 장막을 가리켰다.

 “아무나 드나들 수 없도록 막아둔 것이라고 하지. 나를 제외하고 여기 들어온 건 네가 처음이다. 그리고 내가 데리고 들어왔으니, 앞으로는 너도 저 장막을 뚫고 드나들 수 있겠지.”

 “와아. 무영 님. 신기합니다.”

 미루는 감탄하다 무영에게 이끌려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소매를 붙들고 있었던 탓이었다.

 다시 미루를 탁자에 앉힌 무영이 어딘가에서 호리병 하나를 가져왔다.

 손바닥만 한 작은 호리병은 단단하게 마개로 막혀 있었다.

 그것을 탁자에 소리 나게 내려놓은 무영이 입을 열었다.

 “이게, 네가 마셨던 독이다.”

 “독이요.”

 미루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자 무영이 호리병을 뒤로 끌어당겨 손이 닿지 않게 했다.

 미루가 눈을 들어 바라보자 무영이 미끈한 눈썹 사이를 좁혔다.

 “양이 적다고 하여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여러 종류의 독초를 섞어 만든 위험한 독이니라. 넌 이 독에 중독되었던 몸이니, 완전히 회복되려면 시간이 한참 필요하다. 그러니 그 동안 남들과 접촉하지 않고 여기서 지내야 한다. 알겠냐?”

 “…….”

 “독을 뿌린 자가 누군지 아직 찾지 못했다. 혹, 나와 지내는 것이 싫으냐?”

 "아닙니다! 감히 제가 싫을 리가요.”

 미루가 손사래까지 쳐 가며 부인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영이 호리병을 치우고 말을 이었다.

 “혹시, 네게 독을 뿌린 자가 누군지 알겠느냐?”

 “…….”

 미루는 말없이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기억이 안 납니다. 죄송해요.”

 “되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무영이 짧게 답하고 눈을 감았다.

 미루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

 

 밤이 깊었다.

 둥근 보름달 아래, 미루가 침대에서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무영이 한참 전에 밖으로 나갔다는 것은, 사실 잠들지 않았기에 알고 있었다.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미루가 침대 밑으로 발을 내디뎠다.

 살그머니, 미루가 누각의 휘장을 걷고 바깥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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