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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13장. 네 옷을 벗겨야겠다.
작성일 : 18-09-28 18:10     조회 : 269     추천 : 0     분량 : 7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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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은 온통 새카만 어둠뿐이었다.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조차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미루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여기는 어딜까? 나는 여기서 뭘 하는 걸까?

 해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찰나의, 혹은 억겁의 시간이 흘렀다.

 무념무상의 상태에 빠져 있던 미루는 느리게 눈꺼풀을 깜빡였다.

 깊은 어둠 속, 저 어딘가에서 한 점 빛이 밝아오고 있었다.

 미루가 여전히 늘어진 채 그 빛을 응시하자 빛이 점점 커지더니 주변을 환히 비췄다.

 ‘태양.’

 푸른 하늘에 지글지글 타오르는 그것, 미루를 다른 사람들과 다른 존재로 만들었던 그것.

 그 눈을 찌를 듯이 밝은 빛 아래, 자그마한 여인 하나가 엎드려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쯤은 눈을 감고 있던 미루가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할머니!’

 할머니였다. 미루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저 여기 있어요, 할머니 손녀 미루예요!’

 미루가 코앞까지 달려가 부르는데 할머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할머니 혼자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모두가 꼿꼿이 서 있는데 무릎을 꿇고 엎드린 것은 할머니뿐이었다.

 그제야 미루가 주춤, 물러섰다.

 이 사람들도 미루의 그림자를 본다면 다시 감옥에 집어넣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도 미루를 보지 않았다.

 아니, 미루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할머니의 앞에 선 사람 하나가 호통을 치자, 할머니가 머리를 한껏 더 조아렸다.

 무어라고 말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숨 막히는 정적 뿐.

 할머니가 무어라고 말을 하자, 저만치 거대한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화려한 의복을 갖추고, 온갖 장신구를 팔에, 손가락에, 목에, 귀에 걸었다.

 머리에는 황금으로 치장한 모자가 씌워져 있었다.

 남자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할머니를 감정 없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할머니. 왜 이러고 계신 거예요. 어서 일어나세요.’

 이제는 미루도 할머니가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처롭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처음 보는 남자의 앞에서, 그것도 찬 돌바닥에 엎드려 있는 건 싫었다.

 헌데, 미루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할머니는 온 몸으로 뭔가를 덮어 가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던 미루는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둘둘 감은 천 속에 갓난아이의 작은 손이 있었다.

 미루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주변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낯익은 곳이었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렀던 아름다운 정원.

 미루는 가만히 서서 그 날과 똑같이 할머니가 빛으로 흩어져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아.’

 문득 미루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으로 비틀거렸다.

 미루가 머리를 쥐고 쓰러지자 순식간에 다시 어둠이 잠식했다.

 할머니가 온 몸을 던져 품어 안고 있던 것은 미루였다.

 그 누구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화려하게 꾸민 남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자로부터 할머니는 미루를 지켰을 터다.

 세상의 모든 것이 미루를 배척할 때 유일하게 미루의 방패가 되었던 할머니.

 모두가 미루를 버리고 부정하고 증오했지만 할머니만은 미루의 곁을 지켜 주었다.

 헌데.

 ‘할머니는 이제 영원히 안 계신다.’

 미루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구나.’

 미루는 끔찍한 어둠 속에서 흐느껴 울었다.

 울고, 울고, 또 울어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올 때까지 끊임없이 울었다.

 그러다 두통은 도무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고통스럽게 머리를 부여잡고 몸부림을 치던 미루는, 순간 눈을 반짝 떴다.

 “헉, 헉, 헉…….”

 미루는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머리는 여전히 심각하게 지끈거렸다.

 불안하게 돌아가는 미루의 눈에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천장이 보였다.

 

 ***

 

 무영이 뜰에 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 늘어진 옷자락이 가볍게 나부꼈다.

 하늘에 장막이 드리운 듯, 어두운 밤하늘이 부옇게 보였다.

 마치 장막인 듯 보이는 그것은, 무영이 끌어내 누각과 정원 주위를 덮은 기체와도 같은 것이었다.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무영만의 공간.

 이 고요한 곳에는, 이 은밀하고 밀폐된 장소에는 무영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궁 내에서도 최소한의 인물들만을 마주하며 지내지만, 그럼에도 타인을 대하는 것은 쉽게 피로가 쌓였다.

 도무지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할 그럴 때쯤 찾는 곳이 이 적막한 곳, 별채였다.

 다른 이들의 감정이 느껴지는 저주를 받게 된 이후 언제나 그랬다.

 무영이 걸음을 옮기자 사박 사박 풀 밟히는 소리가 울렸다.

 무영은 천천히 정원을 빙 둘러 둥글게 돌면서, 미루가 독을 마신 날을 떠올렸다.

 

 ***

 

 “무영 님.”

 미루를 별채로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르지 않았는데도 이강이 먼저 나타났다.

 이강은 당시 미루의 방 근처를 세세하게 설명했다.

 “제가 곧바로 주위를 살폈으나, 근처에서 어슬렁대는 자는 없었습니다. 독을 뿌린 자의 흔적 또한 전혀 없었고요. 너무 말끔한 걸 보아 일부러 지운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

 무영의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걸렸다.

 애초에 그 주위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이강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심각한 멍청이가 아닌 이상 제 흔적과 체취까지 모두 지우고 재빨리 도주했을 터였다.

 그런데도, 확실히 하고 싶어 굳이 이강에게 주위를 수색하라 시켰다.

 마음이 급했던 탓이었다.

 조금이라도 생각을 다스릴 여유가 있었다면 불필요하게 이강을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색이 완전히 죽은 얼굴로 축 늘어진 미루를 보자마자, 이상하게 다른 이성적인 사고들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미루를 서둘러 옮기고 독기를 걷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영이 고개를 까딱했다.

 “수고했다. 그만 물러가도 좋다.”

 “예.”

 이강이 사라지고, 무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잘도 내 것에 손을 댔단 말이지.”

 제 방 뒷마당에 있던 미루에게 독을 뿌리고 파련옥을 훔쳐간 자.

 미루는 무영이 데려온 인간임을 아직도 모르는 자가 궁 내에 있을 리는 전무했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일을 벌인 자는 혹독한 대가를 기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무영은 별채 주위로 두른 막을 걷어내고 안으로 들어섰다.

 가위로 잘라낸 듯. 모든 소리가 뚝 끊겼다.

 평온한 고요 속에서 새소리처럼 가련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무영의 온 신경이 그쪽으로 곤두섰다.

 무영은 천천히 높게 지어진 누각의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한 칸 한 칸, 올라갈수록 가까워지는 미루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휘장을 두른 누각 안, 깃털 침대 안에 자그마한 몸 하나가 누워있었다.

 굳게 감은 눈두덩에는 실핏줄이 도드라지고, 입술은 핏기 없이 말라있었다.

 작게 들썩이는 가슴팍이 아니었다면 영락없이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미루는, 아직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무영은 여전히 뜰 위를 거닐고 있었다.

 짧게 자란 보드라운 어린 잔디에 맺힌 이슬이 무영의 옷자락을 적셨다.

 혼자 마음을 고르는 데에는 이 뜰에서 산책하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다.

 한참을 뜰 위를 걷던 무영이 순간, 매끈한 콧잔등에 주름을 잡았다.

 누군가의 슬픔과 고통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파장이 무영의 가슴으로 흘러들었다.

 “그 아이군.”

 무영이 한 발 떼자 어느새 뜰 위로 높게 지어진 누각의 계단 꼭대기에 섰다.

 휘장을 걷고 들어가자 흰 이불 위로 흐트러진 검고 긴 머리칼이 눈에 들어온다.

 깨어났을 거라 여겼던 무영의 예상과는 달리, 미루는 아직 정신을 잃은 채였다.

 그런데 그 창백한 얼굴이 고통으로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꿈이라도 꾸는지 작은 머리통을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 흔들며 힘겨워한다.

 촘촘한 속눈썹에 맺힌 눈물이 넘치다 못해 눈꼬리를 타고 길게 흘러내렸다.

 무영은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미루의 눈물을 지켜보았다.

 매끈한 흰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방울이 길게 흔적을 남겼다.

 무영이 오른손 검지를 들었다.

 그대로 미루의 눈꼬리에 갖다 대었다.

 아래로 흐르던 눈물이 멈칫, 무영의 손가락 위로 고였다.

 길고 미끈한 손가락 위에 찰랑이던 눈물을 바라보던 무영이 문득 손가락을 떼었다.

 그 많던 눈물이 어디로 흡수되었는지, 아니면 휘발되었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무영은 우아한 몸짓으로 뒤돌아 의자를 찾아 앉았다.

 무영이 편한 자세로 앉은 후 팔걸이에 왼팔을 걸치고, 손을 들어 그 위에 턱을 괴었다.

 그와 동시에 미루가 짧은 숨을 토해내며 눈을 떴다.

 “헉, 헉, 헉…….”

 드디어 깨어났다.

 무영이 독을 모조리 걷어내기는 하였으나, 중독되었던 후유증으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저 약하디 약한 인간이 제 힘으로 이겨내고 눈을 떴다.

 눈만 떴다 뿐이지 누운 자세 그대로 꼼짝도 하지 못하는 미루를 향해, 무영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꼬박 나흘 만이군.”

 

 ***

 

 “꼬박 나흘 만이군.”

 생소한 장소에 당혹스러워 하던 미루의 귀에 무영의 음성이 들렸다.

 “무, 무영 님. 여기 계셨습니까?”

 미루가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어라.”

 아무리 힘을 주어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을 왼쪽으로 돌리려 해도 팔이 꿈적도 하지 않고, 허리를 세우려 해도 발가락 하나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는 조금만 움직여도 극심한 두통이 밀려와 눈을 찡그리고 가만히 멈추게 되었다.

 “무영 님. 혹시 제가 여기 묶여 있나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

 미루가 한참을 끙끙대다 애타게 무영을 불렀다.

 목까지 이불을 덮은 채로, 그 밑에서 안간힘을 쓰는 것을 지켜보던 무영이 입을 열었다.

 “가만히 누워있는 게 네 안위에 좋을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게 큰일이라도 생, 생긴 겁니까?”

 그리 말하면서도 꼼지락대는 몸은 멈추지 않았다.

 무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미루에게로 다가갔다.

 침대 바로 옆에 서니 동그란 미루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흰 베개 위로 검은 머리칼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이마 위에도 머리칼이 달라붙어 있었다.

 가지런한 눈썹은 겁을 잔뜩 먹은 듯 끝이 처져 있고, 커다란 눈망울은 쉴 새 없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무영 님!”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다 무영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니 반가웠는지, 미루가 화색을 띠었다.

 몸은 꼼짝도 하지 못하면서 표정은 벌써 몇 번이고 방방 뛰었을 정도로 밝았다.

 무영은 왠지 심술이 나 미루의 동그란 이마에 꿀밤을 먹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나흘 동안이나 사경을 헤매 놓고 저 혼자 속이 편하다.

 물론, 무영은 미루의 죽을 날이 한참 멀었으며, 이번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루가 하루, 이틀이 지나도 눈을 뜨지 않자 마음이 조급해졌었다.

 이대로 평생 눈을 감고 잠만 자는 신세가 된다면.

 안될 말이었다. 그렇다면 무영의 저주는 어떻게 풀어준단 말인가.

 무영은 마음이 쓰이는 것이 제 저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미루가 이렇게 무사히 눈을 뜬 것을 보니 마음이 놀라울 정도로 놓이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 그 때문이 아니면 별다른 이유가 있겠어.’

 무영의 사색을 뚫고 미루가 끊임없이 종알댔다.

 “무영 님? 여기는 어딥니까?”

 “…….”

 “참, 맞다! 다과는요? 제가 지금 이렇게 누워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일으켜 주셔요.”

 뭐? 다과?

 무영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쳤다.

 이 아이는 정말 제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알지 못하고 있는 건가?

 “무영 님. 일으켜 주셔요.”

 미루는 이제 누워서 징징거리고 있었다.

 무영은 결국 짜증스럽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다과는 진작 먹고도 남았다. 지금 네가 얼마 만에 눈을 뜬 건지나 아느냐?”

 “네? 얼마 만이라뇨?”

 정말 아무 것도 기억 못 하는 듯, 무영을 올려다보는 얼굴에 의문이 가득했다.

 “너, 나흘 전에 네 방 뒤의 정원에서 독을 마시고 쓰러졌다.”

 “나흘이요? 세상에!”

 미루가 높은 목소리로 소리치며 눈살을 잔뜩 찌푸린다.

 “어쩜 좋아. 유기가 절 찾지는 않던가요? 엄청나게 걱정을 할 텐데.”

 무영이 팔짱을 끼더니 눈썹을 치켜 올리고 미루를 내려다보았다.

 “유기?”

 “네. 나흘이나 제가 보이지 않았다면, 유기가 얼마나 걱정을 하겠어요. 저보고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라 하고 갔었는데.”

 그때 무영이 몸을 휙 돌리더니 미루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무영 님? 무영 님! 어디 가세요? 저 얼른 일으켜 주셔요!”

 “…….”

 “무영 님!”

 “시끄러.”

 저만치 어딘가에서 날이 선 목소리가 날아왔다.

 차가운 목소리에 찔끔 놀랐는지, 금세 미루가 잠잠해졌다.

 무영은 다시 의자에 앉아서 있는 대로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뭐? 유기?

 눈을 뜨자마자 찾는다는 게 유기란 말이냐?

 “배은망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군. 나흘 동안이나 제 옆을 지킨 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중얼거려도 짜증이 가라앉질 않았다.

 쓰러진 미루를 안아 이곳으로 데려온 것도 무영, 독기를 걷어내 준 것도 무영, 나흘이라는 시간 동안 지켜본 것도 무영이었다.

 아무도, 심지어 이강도 들여보낸 적 없었던 이곳에 친히 데려와 살려놓았더니.

 ‘그런데 왜 유기를 찾느냔 말이다!’

 아니, 사실은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미루가 처음 영령국을 떠나 와서, 가장 처음 만나고 가장 가까이 지냈던 것이 유기 아닌가.

 게다가 미루의 온갖 일을 곁에 붙어서 돕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미루에게는 유기가 어느새 소중한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영은 여전히 기분이 나빴다.

 머리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유기 먼저 찾는 것이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쩌겠는가.

 무환이 미루에게 집적댔을 때 불쾌했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느낌으로 분했다.

 무영은 의자 깊숙이 눌러 앉아, 미루가 이불 밑에서 움찔거리는 것을 노려보았다.

 아까부터 끊임없이 몸에 힘을 주면서 움직여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흥, 보통 독도 아닌 것에 중독되었으니 당연히 몸에 힘이 빠져 있겠지.’

 그 순간, 미루가 양 팔을 번쩍 들었다.

 “와! 드디어 움직였다! 무영 님, 보셨어요?”

 무영이 일으켜 주지 않으니, 저 스스로 일어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나 보다.

 무영은 한숨을 쉬고 의자에 더 깊이 몸을 파묻었다.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해도 듣지를 않으니.”

 미루의 황소고집은 말릴 수가 없다.

 그런데, 허공으로 두 팔을 들어 올린 미루가 문득 손을 쫙 펴더니 유심히 바라본다.

 잠시 제 손을 보던 미루가 한 번 딸꾹질을 하더니,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영 님!”

 “뭐야?”

 엉엉 울며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무영이 깜짝 놀라 의자에서 튕겨 일어났다.

 어디라도 아픈 게 분명했다.

 무리하게 팔을 움직였으니, 어깻죽지나 옆구리 쪽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게 내가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하지 않았…….”

 “무영 님, 어쩌면 좋습니까. 팔찌가, 팔찌가 없어졌습니다. 엉엉엉!”

 “뭐라고?”

 “어쩌면 좋습니까. 네? 절대 빼지 말라고 하셨는데,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좋아요.”

 바보처럼 두 팔은 위로 번쩍 들고, 진심을 다해 우는 모습에 무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미루를 바라보았다.

 정말, 그 팔찌가 없어졌다는 이유로 이렇게 서럽게 울고 있는 걸까.

 방금까지 좋지 않았던 기분이 왠지 사르르 풀어지는 것만 같다.

 미루가 파련옥 팔찌를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이, 자신의 말을 명심하고 있었다는 것이 의외이면서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나흘 간 먹은 것도 없어 미루의 몸은 많이 쇠약해져 있을 터였다.

 거기다 독에 중독되고 나면 마땅히 심한 두통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그런 와중에 실컷 울어 젖혔으니. 미루가 금세 가슴이 답답한지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헉. 헉. 흑흑.”

 우는 건지, 힘들어하는 건지. 미루는 여전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밭은 숨을 내쉬었다.

 “안 되겠군.”

 무영이 갑자기 손을 뻗더니 미루가 덮고 있던 이불을 확 걷어냈다.

 “무영 님!”

 “네 옷을 벗겨야겠다.”

 “네? 잠, 잠시만요!”

 미루의 다급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무영의 길고 흰 손가락이 미루의 허리께에 묶인 끈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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