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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12장. 사라진 파련옥
작성일 : 18-09-27 18:00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7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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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영이 식사를 하는 동안, 미루는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몸 밖으로 뚫고 나올 듯 요동치는 심장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얼굴이 후끈거리고 뒷목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더운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미루는 문득 제 손목에 걸린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보아도 여전히 한눈에 확 들어올 만큼 화려하고 예뻤다.

 반쯤은 무의식적으로 동그란 보석을 손가락 끝으로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왜 이 팔찌를 절대 빼지 말라고 하신 걸까. 무영 님이 보내신 것이니 소중히 하라는 의미였나?’

 허나 무영이 보낸 물건이라면 다른 것들도 차고 넘치는데, 꼭 찝어 팔찌만이라니 이상했다.

 게다가 유기도 팔찌에 대해 유독 관심을 보였었다.

 ‘아무래도 유기에게 물어보아야겠어.’

 그러는 사이 무영이 식사를 마쳤다.

 수저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자 미루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만 물리겠습니다.”

 여전히 가슴이 찌르르 떨렸으나 미루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체 웃었다.

 야무지게 쟁반에 빈 그릇을 옮겨 담는 미루를 무영이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손을 부지런히 놀릴 때마다 팔목에서 찰랑이는 팔찌가 보기 좋았다.

 무영이 뜻 모를 미소를 띠고 눈길을 미루의 얼굴로 돌렸다.

 살결이 약한 입술을 꼭 깨문 채 일에 열중하는 것이 귀여웠다.

 마치 다람쥐가 나무 위를 열심히 오르내리며 도토리를 모으는 것을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도토리 하니 생각난 게 있었다.

 “네 식사는?”

 “네?”

 미루가 고개를 들고 눈을 반짝 떴다.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듯 했으나, 금세 씩씩하게 대답을 했다.

 “저는 항상 무영 님의 식사를 챙긴 후에 유기와 먹습니다.”

 “…….”

 무영이 조용히 미루를 응시했다.

 돌아오는 답이 없자, 마저 그릇 정리를 해도 되는지 우물쭈물 눈치를 보는 미루.

 결국 무영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면서 정리를 마친 미루는, 쟁반을 들고 일어나며 물었다.

 “저, 점심 식사 전까지 무영 님 방 청소를 하려 하는데 괜찮을까요?”

 무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살짝 눈을 치켜떴다.

 “그, 그럼 안마?”

 “…….”

 “목욕물, 준비해 놓을까요?”

 “…….”

 계속해서 무영이 답이 없자 미루가 시무룩하게 풀이 죽었다.

 ‘내가 하는 일이 전부 시원찮으신가봐.’

 미루가 목례를 하고는 커다란 쟁반을 든 채 터덜터덜 방문으로 향했다.

 그때.

 “가서 유기와 식사를 하고, 내 방으로 다과를 들여라.”

 “다과 말씀이십니까?”

 무영을 홱 돌아보는 얼굴에 고새 또 웃음꽃이 밝게 피어있다.

 무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미루의 새카만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맛있게 준비하겠습니다!”

 기운이 넘치는 목소리로 선언하다시피 외친 미루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방 밖으로 나갔다.

 일거리가 생기자마자 활기를 되찾은 그 모습에 무영은 심술마저 났다.

 “저것은 혹여, 그저 노동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잘 먹지도 않는 다과를 들이라고 한 제 속도 모르고.

 “앞으로는 밥을 제 때 먹든지 말든지, 묻기라도 할까 보냐.”

 무영이 의자에 길게 늘어져 앉았다.

 투덜거리는 말과는 달리, 입매는 웃음기를 머금고 부드럽게 풀어져 있었다.

 

 ***

 

 미루는 부엌에서 유기와 함께 음식을 챙겨서 방으로 향했다.

 하인들이 식사를 하는 장소가 정해져 있기는 하나, 미루는 굳이 방으로 챙겨가서 먹고 치우는 것을 고집했다.

 아직까지는 이 궁 내의 사람들을 대면하는 것이 불편한 까닭이었다.

 유기도 매번 번거로울 법도 한데, 언제나 군말 없이 미루와 함께 식사를 해 주었다.

 미루와 함께 방에 도착하자 유기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미루 님, 저희 오늘은 밖에 앉아서 밥 먹을까요?”

 “밖에서요?”

 “네, 미루 님 방 뒤편으로 곧장 정원이 뚫려 있는 거 모르셨죠? 저 미닫이문만 열고 나가면 됩니다.”

 “와아. 그런데 제 마음대로 나가도 될까요?”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미루는 벌써 신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영령국을 떠나기 전, 열아홉 평생을 방 안에 갇혀 살았던 탓인지 미루는 햇볕을 쬐는 걸 참 좋아했다.

 그걸 너무도 잘 아는 터라, 유기는 기회만 되면 미루를 방 밖으로 내놓으려 했다.

 ‘여기서는 아무도 미루 님의 그림자를 신경 쓰지 않을 텐데 말이야.’

 물론 인간임을 알아보는 자가 있다면 신기하게 보기는 하겠지만, 무영이 직접 데려왔다는 것이 공공연한 마당에 함부로 집적댈 자는 없을 터였다.

 “그럼요. 이 궁 안에 사는 자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드는걸요. 미루 님이라고 못 나가실 건 없죠.”

 그 말을 듣고서야 미루가 한껏 성급하게 미닫이문 앞으로 향했다.

 한참을 그 앞에서 낑낑대는 걸 보니, 마음이 급해 문이 잘 열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가 열게요.”

 쿡쿡 웃은 유기가 음식을 담은 바구니를 내려놓고 문을 옆으로 밀었다.

 “와!”

 문이 열리자마자 미루가 방 밖으로 톡 튀어나갔다.

 “미루 님, 신!”

 유기가 얼른 신을 챙겨 들고 내려왔지만 미루는 버선발로 잔디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느낌이 너무 좋아요. 신을 안 신으니, 보드랍고 바싹 마른 잔디가 그대로 맨발에 밟히는 것 같고.”

 미루의 방 뒤쪽에 위치한 정원은 커다란 건물과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자그마한 정원이었다.

 바로 옆으로는 긴 복도가 지나고 있었고 진짜 정원다운 정원은 저만치 멀리 있었으나 상관없었다.

 나무도 몇 그루 없고 구경거리도 없었으나 미루는 마냥 좋았다.

 뜨거운 햇살을 어깨에 그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그 모습에 유기가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손에 들렸던 신을 내려놓고 미루의 곁에 돗자리를 깔고, 바구니에 담아온 음식들을 하나 둘 펼쳐놓았다.

 그제야 미루도 잔디를 밟으며 놀던 것을 그만두고 다가와 도왔다.

 간단한 음식들이었으나 햇볕 아래 예쁘게 늘어놓으니 퍽 보기에도 좋았다.

 사이좋게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미루가 운을 뗐다.

 “이렇게 앉아서 아침을 먹으니까, 소풍 같고 너무 좋아요.”

 “그렇죠? 자주 이렇게 나와요.”

 “이 곳에 오기 전 마지막 날에, 할머니와 집 마당에서 이렇게 소풍을 했었는데. 그때만큼 기분이 좋아요.”

 말가니 웃는 모습에 유기는 마음이 아렸다.

 한편으로는 하나뿐이었던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추억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대견하기도 했다.

 ‘우리 착한 미루 님.’

 유기는 눈물이 나려는 것을 애써 감추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참, 미루 님. 무영 님이 별 말씀 없으셨어요?”

 “아, 식사 후에 일거리를 주셨는데.”

 “그거 말구요. 팔찌, 팔찌 보고는 별 말씀 안 하세요?”

 미루가 왼손을 들자 팔목에 걸린 팔찌가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났다.

 같은 보석이어도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반짝이는 것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팔찌…….”

 그러더니 미루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유기는 놓치지 않았다.

 “후후후……. 역시 무슨 일이 있었군요.”

 유기가 소매 끝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자 미루가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일이랄 게 아니라. 그저…….”

 “그저?”

 “절대 빼지 말라고…….”

 “후후후후후후.”

 미루가 말꼬리를 흐리자 유기가 한층 더 음흉하게 웃어댔다.

 안 그래도 미루 또한 무영의 그 말뜻을 꽤나 신경 쓰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부드럽게 팔찌와 제 손목을 더듬던 무영의 찬 손가락.

 그리고 숨이 멎을 듯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했던 그 말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터였다.

 단지 미루는 혹시나 제가 혼자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딴소리를 했다.

 “왜, 왜 웃으세요. 아마 비싼 물건이니 잃어버리지 말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비싼 물건이라서요? 아니, 물론 파련옥이 값이 상당한 보석이기는 합니다만.”

 “파련옥이요?”

 “네. 그 팔찌는 파련옥으로 만든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비싼들, 무영 님 속눈썹 한 올 만큼이라도 타격이 있었겠어요?”

 “그런가요.”

 하긴. 미루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루는 살면서 한시도 부자로 살아본 적은 없었으나, 이만큼 거대한 궁의 주인이니만큼 무영이 어마어마한 부자일 것은 같았다.

 단순히 ‘부자’ 라고 불릴 정도가 아니라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파련옥이라는 생소한 보석의 이름이 더 궁금했다.

 “영령국에는, 이런 보석은 없었어요. 제가 직접 보석을 볼 일도 없었지만, 할머니도 파련옥이라는 이름은 한 번도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인간들이 사는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보석이니 당연하지요. 파련옥이 값이 비싼 이유는, 이곳에서도 유독 구하기 어려워서랍니다.”

 미루는 새삼 팔찌를 들여다보았다.

 유기도 팔찌를 넘겨다보며 말을 덧붙였다.

 “거기다가, 이만큼 알이 큰 파련옥은 저도 처음 봐요. 파련옥은 아주 깊고 추운 동굴에서만 자라는데, 거기까지 가기가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웬만큼 추운 산의 아주 깊숙한 동굴이 아니면 원석이 자라지를 않아요.”

 “그렇구나…….”

 이렇게 예쁜 보석이 그런 험한 곳에서만 난다니.

 미루가 가장 좋아하는 꽃, 할머니가 겨울이면 한 송이씩 꺾어오시던 동백이 떠올랐다.

 역경을 뚫고 피어나는 붉은 꽃과 파련옥이 겹쳐 보였다.

 그런데 유기는 점점 더 눈웃음을 지으며 미루를 의미심장하게 보고 있었다.

 “미루 님. 그럼 파련옥이 그렇게도 진귀하고 비싼데, 사람들이 아주 작은 크기여도 사 가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미루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자 유기가 이제껏 참느라 힘들었다는 듯 냉큼 말을 쏟아냈다.

 “파련옥은 너는 내 것이다, 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보석이거든요!”

 그러더니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미루를 빤히 바라보았다.

 미루는 어안이 벙벙해 눈을 빠르게 깜작거렸다.

 “너는 내 것이다……?”

 “네. 파련옥 원석이 심장을 닮아서, 보석 안에 선물하는 자의 심장을 담아 바친다고들 하거든요. 그렇기에 다들 소중한 정인에게 선물하는 보석이라고요.”

 “에, 에이.”

 미루는 손사래를 치며 미간 사이를 살짝 좁혔다.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세요. 무영 님이 제게 이 팔찌를 주신 건, 제가 장터에서 구경을 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런 보석인 줄도 모르고 그저 예쁘기에 보았던 것인데.”

 진지하게 손가락까지 들어가며 강하게 부정했다.

 어라. 그런데 자꾸만 입꼬리가 배시시 올라간다.

 “정인이니, 너는 내 것이라느니. 무영 님이 들으시면 노하실지도 몰라요.”

 맞다. 감히 미루 따위가 착각을 해도 아주 경을 칠 착각을 한다고 벌을 내리실지도 모른다.

 아이참, 근데 왜 자꾸 웃음이 난담!

 미루는 인상을 구기려고 용을 썼지만 잔뜩 찌푸린 눈썹과는 달리, 입은 자꾸만 위로 당겨 올라갔다.

 그래.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무영 님이 정말 그런 의미를 가지고 파련옥을 선물하신 거라면.

 상상만으로도 기쁜 것은 스스로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무영 님의 것…….’

 그리 생각하자 다시 심장이 천천히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무영의 방에 있었을 때처럼 아주 쾅쾅 울려댔다.

 ‘세상에. 나 정말 갑자기 심장마비라도 오는 병에 걸렸나봐.’

 몹쓸 상상을 하면 심장이 난리를 치다가 결국에는 영원히 굳어버리는, 그런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미루는 제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을 들킬 새라, 얼른 말을 돌렸다.

 “유, 유기 님. 저는 이제 배불러요. 이만 무영 님이 시키신 일을 하러 가야겠어요.”

 “무슨 일인데요? 저랑 같이 해요.”

 “방으로 다과를 들이라고 하셨는데, 그냥 제가 얼른 가서 챙길게요.”

 “다과요?”

 유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또다시 헤실헤실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과라니. 무영 님은 단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미루 님이 가지고 오면, 무슨 핑계라도 대면서 하나 먹이시려는 속셈이신가.’

 그러나 미루가 무영이 단 걸 먹는지 안 먹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정말, 무영 님도 미루 님도 알기 쉬운 분들이다.

 “미루 님! 좀 더 햇볕 쬐면서 쉬고 계세요. 제가 얼른 다녀 올 테니, 같이 무영 님 방까지 가면 됩니다. 아시겠죠?”

 미루가 붙잡기도 전에 유기는 잽싸게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저리 빨랐는지 어리둥절할 정도로 순식간에 미루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할 수 없이 미루는 돗자리에 그대로 앉아 유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먹고 남은 것들을 정리라도 해 놓자 싶어, 주섬주섬 바구니에 빈 그릇들을 옮겨 담고 있었다.

 자신의 뒤로 살그머니 다가오는 누군가의 그림자는 눈치 채지 못한 채였다.

 

 ***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

 “세상에.”

 유기가 높은 목소리로 신음했다.

 손에 들렸던 은쟁반과 알록달록한 과자들이 잔디밭 위로 떨어졌다.

 “미루 님!”

 과자를 모두 바닥에 떨어트린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유기가 미루에게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미루 님. 미루 님.”

 유기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미루를 살폈다.

 미루가 죽은 듯 돗자리 위에 쓰러져있었다.

 “어떡해. 어쩜 좋아.”

 달달 떨리는 손을 미루의 코 밑에 가져다 댔다.

 유기가 숨을 헉 들이쉬더니 눈에 눈물이 맺혀 불안하게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미루가 숨을 쉬지 않았다.

 사위는 끔찍이도 조용했다.

 개미새끼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고 있었다.

 “어, 어떡해. 어떡해…….”

 미루가 죽었다는 생각에 유기는 이성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무릎을 꿇고 앉아 미루의 어깨를 붙잡고 덜덜 떨던 유기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무, 무영 님. 무영 님.”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뭐야?”

 “무영 님!”

 어떻게 내 부름을 들었을까.

 유기는 눈앞에 나타난 무영을 보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무영의 눈동자가 잔디에 어지럽게 흩어진 과자와, 무릎을 꿇은 채 온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된 유기, 그리고 그 옆에 축 늘어진 미루를 차례로 훑었다.

 삽시간에 무영의 눈이 푸르게 번뜩였다.

 “비켜.”

 짧게 명령한 무영이 유기를 밀쳐냈다.

 유기는 흐느끼면서 옆으로 밀려났다.

 “무, 무영 님. 저랑 함께 아침 식사를 하, 하셨는데. 제가 잠시 주방에 다녀온 새에. 미루, 미루 님이.”

 “독이군.”

 가볍게 미루를 안아 올린 무영이 중얼거렸다.

 미루의 목과 팔이 맥없이 무영의 팔 너머로 툭 떨어졌다.

 굳게 감긴 눈꺼풀은 미동조차 없었고, 살짝 벌어진 입술은 보랏빛으로 죽어있었다.

 두 손을 꼭 맞잡은 채로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울고 있는 유기를 향해, 무영이 툭 내뱉었다.

 “죽지 않았다.”

 “죽, 죽지, 않으셨, 다고요?”

 “그래. 정신 차려라, 유기.”

 무영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표정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살벌했다.

 장신의 몸에서 사방으로 살기가 퍼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미루가 죽지 않았다는 말에 유기가 조금 진정하고 딸꾹질을 시작했다.

 분명 숨을 쉬지 않고 있었지만, 무영이 죽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터.

 무영이 입을 열었다.

 “이강.”

 “예.”

 이강이 나타나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주위를 수색해. 조금이라도 수상한 자가 있으면 뒤를 밟아라. 특히나 독초를 다루는 자가 있으면 내게 곧바로 보고해.”

 “알겠습니다.”

 이강이 사라지고, 무영이 제게 안긴 미루를 내려다보았다.

 시체나 다름없는 창백한 얼굴을 훑는 아름다운 회녹색 눈동자에 냉기가 가득했다.

 오히려 얼굴은 표정 하나 없이 차분하고 가라앉아있었다.

 그러나 가까이 서 있는 유기가 어깨를 감싸고 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주위의 공기가 급격하게 식어갔다.

 ‘팔찌가 사라졌군.’

 유기는 너무 놀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미루의 손목에 끼워져 있던 파련옥 팔찌가 사라져 있었다.

 ‘독을 뿌려 놓고, 파련옥만을 가져갔다고.’

 맥이 뛰지 않는 손목을 응시하던 무영이 갑자기 미루의 얼굴 위로 긴 숨을 훅 불었다.

 그러자 꽃가루가 날리듯, 미루의 입 밖으로 미세한 입자가 흘러나왔다.

 유기가 안절부절 못하며 미루를 들여다보자 무영이 조용히 읊조렸다.

 “급한 대로 목에 걸린 독기만 걷어냈다. 유기, 내가 부를 때까지 대기해라.”

 유기가 훌쩍이며 허리를 숙이자 무영이 미루를 품에 안고 사뿐히 날아올랐다.

 그가 떠난 자리에 찬 바람만이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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