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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11장. 절대 빼지 말거라.
작성일 : 18-09-25 18:03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7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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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없이 고요한 미루의 방 앞.

 무영이 어두운 복도 끝을 노려보고 있었다.

 천천히, 복도를 걷는 가벼운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숨 막히는 몇 초가 흐른 후, 등롱 밑으로 윤이 흐르는 검은 머리칼이 드러났다.

 “왜 그리 무섭게 굴어?”

 무환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빙그레 웃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그저 산책.”

 “거짓말을 하려면 좀 더 그럴듯한 말을 지어내 보지.”

 “거짓말이라니, 형제여.”

 “한참 전부터 네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왜 쥐새끼처럼 몰래 숨어 있는 거지?”

 무영의 무거운 목소리와는 정반대로 무환의 미소가 한층 밝아졌다.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내쉬는 한숨에 알싸한 술의 향내가 묻어났다.

 부어라 마셔라, 제대로 연회를 즐긴 무환과는 달리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은 무영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환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더니 굳게 닫힌 미루의 방문을 한 번 흘끗 보더니 은근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왜 잠이 오지 않느냐고 묻지 않아?”

 “알고 싶지 않다.”

 “알고 싶어질 텐데…….”

 무환이 얄밉게 빙글거리자 무영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지기 시작했다.

 “장난질은 그만 해.”

 “후후…….”

 “기분 나쁘게 웃지도 마라.”

 “차라리 숨도 쉬지 말라고 하지?”

 “그래주면 고맙고.”

 “으음…….”

 무환은 무영을 슬쩍 보았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곤란한데.’

 무영은 무환이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버티고 있을 작정인 듯 했다.

 결국 무환은 한 발 물러서는 것을 선택했다.

 “무영, 사실은 내가 아가씨에게 볼일이 있는데.”

 “뭐?”

 무영의 눈동자가 매섭게 번뜩였다.

 “네가 그 인간에게 볼일이 뭐가 있느냐?”

 “이것저것. 내 개인적인 사정이니 너무 궁금해 말게.”

 “말해라.”

 무영이 고고하게 옷자락을 떨치며 명령했다.

 가벼운 말투였지만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에휴. 애초에 이렇게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

 무환은 포기하고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했다.

 “그래, 그래. 다름이 아니라, 나도 아가씨에게 선물이나 하나 할까 해서.”

 무영이 말없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자 무환이 말을 이었다.

 “아까 네 시종들이 아가씨의 방으로 뭔가를 한아름 날라 가던데?”

 “그래서?”

 “선물이 아니고서야 네가 아가씨 방으로 뭔가를 보낼 리가 없지 않은가.”

 그제야 무영이 표정을 조금 풀고 간단히 대꾸했다.

 “선물, 아니다. 그리고 선물이라 하더라도 너도 보내야 할 이유는 없다.”

 “정말 아니야? 그럼 그 물건들은 왜 보낸 건데?”

 “네 맘대로 생각해라.”

 “무영, 쑥스러워 하는 건 아니지?”

 설마, 하는 눈빛을 보내는 무환을 길가의 돌멩이 보듯 한 무영이 몸을 돌렸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뜰 듯한 몸짓에 무환의 말투가 성급해졌다.

 “어, 어디 가? 나도 아가씨에게 잘 보이고 싶다고. 정말, 선물 아니야?”

 무영이 짜증스럽게 무환을 돌아보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라니까. 도대체 왜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왜, 아가씨가 뭔가 필요하다고 말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오늘이 아가씨 생일일 수도 있고…….”

 무환은 손가락을 접어 가며 설명하다 느껴지는 찬 공기에 고개를 들었다.

 “왜?”

 무환의 싸늘한 눈동자에 무환이 의아하게 묻다, 아차 싶어 스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무영의 핏빛 입술이 열렸다.

 “생일일 수도 있다고?”

 “젠장.”

 체념한 듯 무환은 두 팔을 툭 떨구고 중얼거렸다.

 무영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오자 냉기가 훅, 코앞으로 스쳤다.

 “지금 무환, 네가 저 인간의 생일을 모른다고 말하는 거냐?”

 

 ***

 

 본디 무환은, 그리고 무영은 태초의 그림자에서 태어난 신.

 그 중 무영은 사(死)의 신이었다.

 유일하게 모든 것들의 죽음을 알고, 그들에게 삶으로 주어진 시간을 끊는 것에 관여할 수 있는 자.

 그러나 완전한 무(無)의 상태에서 무영의 능력은 쓰일 데가 없었다.

 그때 태어난 것이 무환이었다.

 생(生)의 신의 탄생이었다.

 그제야 무영과 무환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이 태어났다.

 한 줌의 바람도, 한 톨의 빛도, 그것들을 흡수하는 나뭇잎도, 그리고 인간도.

 무환은 세상 모든 것들의 태어남을 알았고, 반대로 무영은 죽음을 알았다.

 무환은, 단 한 번도 세상에 새로이 태어난 것들을 알지 못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백 년이 훌쩍 지난 시간.

 무환은 떠나 있던 궁으로 돌아오자마자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에 맞닥뜨렸다.

 그는 미루를 마주쳤을 때 첫째로, 인간이 이 궁 내에 있다는 것에 당황했다.

 둘째로는 그 인간의 발밑에 붙어있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헛웃음이 났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그 인간의 무지막지하게 부어오른 눈에 웃음을 터뜨렸다.

 ‘귀여운 아가씨군. 무슨 연고로 예까지 오셨을까.’

 그때,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모르겠다.’

 무환은 지나쳐 가려는 미루를 황급히 붙잡았다.

 ‘이 아가씨의 태어난 날을, 모르겠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환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된다. 혹여, 내가 착각하는 게 아닌가.’

 무환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무리 찬찬히 들여다보아도 그녀가 태어난 날을 알 수가 없었다.

 무환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의 태어남을 제가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때, 작은 인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무영 님!”

 무환은 눈을 끔뻑거렸다.

 자신을 무영이라 부르는 인간의 얼굴은 비 내린 후의 하늘처럼 활짝 개어 있었다.

 제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분명 생기 없는 표정으로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더니.

 자신을 무영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삽시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무영이 이 아가씨에게 무엇이기에. 이리도 기뻐 보이는가.’

 무영이라면 이 한 점의 티끌조차 없는 미소를 항상 마주하는 건가.

 그리 생각하자 갑자기,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명치가 아리는 것도 같고, 머리통에 쥐가 나는 것도 같았다.

 복잡 미묘하긴 하였으나, 불쾌하다는 것은 명료했다.

 그런데도 이 작은 인간 아가씨의 얼굴에 만연한 미소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왕이면 나 혼자만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반쯤은 충동적으로 그녀를 끌어안았을 때는 놀라울 정도로 만족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미루는 무환의 품에서 벗어나 버렸고, 이후 무영과 조우했을 때 무환은 의문에 잠겼다.

 미루를 끌어안았다는 제 말에 여과 없이 매서운 기감을 뿜어내는 무영.

 마치 제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긴 듯 구는 그 모습에 생소한 불쾌감은 한층 더 심화되었다.

 ‘기분이 좋지 않다.’

 무영의 방을 떠난 후, 무환은 조용한 누각에 올라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무영을 만난 이후 기분이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백여 년 전, 사랑을 알게 되리라는 예언과 함께 이 궁을 떠났다.

 그러나 무환에게는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헌데, 그저 기분전환이나 할까 싶어 돌아온 궁에서 처음 보는 인간에게 희한한 감정을 느끼게 되다니.

 얼마 후, 무환이 사뿐히 이슬이 맺힌 잔디 위로 뛰어내렸다.

 뒷짐을 지고 걸음을 옮기는 그의 입가에 시원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쩌면, 그 예언은 오늘을 겨냥했던 것인지도 모르지.”

 무환이 떠난 자리에 깃털 같은 속삭임이 맴돌고 있었다.

 

 ***

 

 “그래. 그 아가씨를 보았을 때, 이상한 건 그림자뿐이 아니었다. 그 아가씨가 태어난 때를 내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무엇보다 이상했어.”

 “…….”

 “네가 보아도 이상하지 않아? 내가 모르게 태어난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

 “만약 네 앞에 죽을 날을 알 수 없는 인간이 나타난다면, 기분이 어떻겠어? 절로 눈길이 가지 않겠어?”

 무환의 설명에 무영이 말없이 허공에 시선을 고정한 채 생각에 잠겼다.

 ‘그 빌어먹을 놈이 남겼던 말처럼, 그 아이가 보통 인간과 같지 않은 인간이라는 건 알았다. 그러나 무환에게도 범상치 않은 인간일 것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무영.”

 무환의 매끄러운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무영이 그에게로 눈을 돌리자 무환은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무엇을?”

 “그 아가씨.”

 무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환에게서 기묘한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설마, 무환이…….’

 “무영. 너는 내게 내려졌던 예언의 주인공이, 그 아가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이제 무영은 제게 느껴졌던 무환의 감정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은 아마, 수천 년 전 죽음을 목도한 나약한 신 하나가 그토록 부르짖던,

 ‘사랑이라.’

 무환은 여전히 가벼운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눈초리는 날카로웠다.

 설령 무환이 정말 미루를 사랑하게 된 것이라면 매우 곤란했다.

 무영은 아직 미루가 제 저주를 어떻게 풀어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만일 미루가 무환과 사랑에 빠져 함께 떠나기라도 한다면.

 다시는 미루와 같이 평범한 인간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영은 단호한 어투로 경고했다.

 “무환, 정신 차려라. 그 인간은 네 짝이 아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네겐 가연이 있지 않느냐.”

 가연, 이라는 이름이 무영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무환의 입매가 살짝 굳었다.

 그러나 금세 본래의 여유롭던 표정을 되찾은 무환은 빈정대듯 말했다.

 “무영, 네가 그 아가씨의 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

 무영은 답 대신 턱을 치켜들고 눈을 내리깔았다.

 거만한 듯, 그러나 기려한 얼굴에 냉기가 흘렀다.

 당장이라도 주위의 모든 것들을 압사시킬 듯,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 인간은 내가 데려온 것이다. 그 사정이 어찌 되었건. 내 권속이나 다름없다. 너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해하고 있을 거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무환도 물러서지 않았다.

 “혹시 그 아가씨를 사랑하나?”

 무환이 나직하게 묻자 무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단 말이지?”

 무환은 뜻 모를 미소와 함께, 선뜻 뒤돌아섰다.

 천천히 발걸음을 떼며, 무환이 무영을 흘긋 돌아보았다.

 “그럼 무영, 나는 네 말을 믿고 그런 줄 알고 있겠다.”

 “무환.”

 “…….”

 “전에도 말했듯이, 함부로 손대지 마라. 다음번에는 그저 말로 끝내지 않을 거다.”

 말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기감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소리도 없이 무환이 삽시간에 자리를 떴다.

 무영만이 긴 복도의 가운데 묵묵히 서, 무환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

 

 간밤에 고요하기 짝이 없는 폭풍이 제 방 앞을 한바탕 쓸고 지나갔는 줄도 모르고, 미루는 꿀 같은 잠에 빠져 있었다.

 “미루 님! 기침 하셨어요?”

 여느 때와 같은 유기의 목소리에 미루는 누운 채로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 네, 일어났어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유기는 냉큼 방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발랄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잠이라도 설치신 건 아니죠?”

 “아니에요. 너무 잘 잤는걸요.”

 “만약 조금이라도 불편하신 게 있다면 제게 언제든지 말씀하셔요. 미루 님, 아시겠죠?”

 매일 밤 미루가 잠들 때까지 곁을 지키면서도 무엇이 그리 걱정이 되는지, 유기는 아주 안달이었다.

 미루가 약속의 의미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고 나서야 유기는 제 할일을 시작했다.

 미루가 갈아입을 옷을 골라 팔에 걸치면서 미루에게 오늘의 일과를 일렀다.

 “미루 님. 오늘 무영 님 식사는, 아침은 방으로 들이시면 되시고 점심, 저녁 식사는 별채에서 하신다고 하니 동행만 하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오늘은, 의복 준비는 따로 돕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게 말하면서 유기가 눈을 찡긋하자 미루의 뺨이 달아올랐다.

 “고, 고마워요.”

 미루가 말을 더듬으며 살짝 웃는 모습에 유기는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을 어렵사리 억눌렀다.

 대신 미루의 눈앞에 옷을 펼쳐 보였다.

 갈아입혀 줄 테니 가까이 오라는 거였다.

 미루는 잽싸게 거절했다.

 “아, 제가 갈아입을게요. 정말 이제는 아침, 밤마다 묻지 않으셔도 돼요. 언제나 옷은 제 스스로 입을 수 있어요.”

 유기가 눈을 반짝이며 무언가 말하려 하는데 미루가 한발 먼저 선수를 쳤다.

 “아, 물론 목욕도!”

 결국 유기는 아랫입술을 불퉁하니 내밀고 어제 밤 끝내지 못한 일거리로 몸을 돌렸다.

 “그럼, 저는 무영 님이 보내신 물건들의 정리를 마저 하겠습니다. 미루 님은 옷 갈아입으셔요.”

 보시락 보시락 미루가 옷을 갈아입는 소리를 뒤로 하고, 꾸러미를 뒤적이던 유기가 문득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손 안에서 굴릴 때마다 찬란한 색으로 빛나는 보석을 꿰어 만든 팔찌.

 ‘파련옥(波戀玉)이다.’

 파련옥은 원석을 구하는 것부터가 힘들어, 값이 아주 비싼 보석 중 하나였다.

 게다가 그 보석이 가지는 의미는…….

 유기는 팔찌를 손에 쥔 채로 뒤를 돌았다.

 “미루 님. 이 팔찌, 장터에서 보셨나요?”

 “네? 아, 그 팔찌! 맞아요. 색이 너무 곱고 신기해서 들여다보았었는데.”

 “그럼, 이 보석이 무엇인지도 아시나요?”

 인간들이 사는 곳에서는 구할 수 없으니 미루가 알지 못할 것이리라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역시나 미루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유기는 팔찌를 유심히 내려다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미루 님은 영령국에서 오셨으니 모르신다 하여도, 무영 님이 파련옥을 모르실 수는 없지. 아무리 미루 님이 관심 있게 보아서 사셨다 하여도, 후후후……. 무영 님…….’

 유기는 대뜸 미루의 왼손을 붙잡더니 팔찌를 여린 손목에 끼워주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미루에게 유기는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세상에, 너무너무 잘 어울리세요! 이 팔찌는 오늘 끼시고, 이제 얼른 무영 님의 식사 준비를 하러 가 보셔요. 저는 나머지 물건들을 정리해 놓겠습니다!”

 “네? 왜, 이 팔찌만…….”

 미루의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유기는 미루를 서둘러 방 밖으로 밀어냈다.

 “미루 님, 오늘도 힘내세요! 나중에 뵙겠습니다!”

 여전히 물음표가 가득한 미루의 얼굴 앞에서, 유기의 신난 목소리와 함께 방문이 탁 닫혔다.

 

 ***

 

 “무영 님. 미루입니다.”

 미루가 양손으로 들고 있던 커다란 쟁반을 오른쪽 무릎을 들어 받치고는, 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와.”

 무영의 목소리에 방 앞을 지키던 시종이 문을 열어주려 했으나, 미루는 고개를 저어 사양하고 어깨로 문을 밀어 열었다.

 푹신한 의자에 늘어지다시피 기대앉은 무영에게 인사를 꾸벅 했다.

 새삼스럽지만 눈앞에 실재하는 극치의 미가 경이로울 정도였다.

 오늘따라 유독 아름다운 것 같다고 생각하며 미루는 탁자에 상을 차렸다.

 느른한 얼굴로 속눈썹을 깜빡거리며 미루를 지켜보던 무영이, 갑자기 상체를 일으켰다.

 눈 깜짝할 틈도 없이, 무영의 큼직한 손아귀에 미루의 왼손이 잡혔다.

 미루는 송아지 같은 눈을 들어 무영을 올려다보았다.

 “무영 님.”

 놀란 미루의 부름에도 무영은 미루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가 천천히 미루의 손을 제 턱 밑까지 끌어올렸다.

 미루의 손목에 끼워진 보석만큼이나 빛이 나는 회녹색 눈동자가 세심하게 미루의 손목을 훑었다.

 묘하게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가 붉은 입술에 떠올랐다.

 온 몸이 얼어붙은 미루와 달리 무영은 가뿐하게 나머지 손을 들었다.

 희고 찬 손가락이 미루의 팔찌를 꿴 보석을 한 알 한 알 더듬고, 손목까지를 어루만졌다.

 “절대 빼지 말거라.”

 나지막한 속삼임과 함께 무영이 미루의 손을 부드럽게 놓아 주었다.

 미루는 한참동안이나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간 무영과 손을 한 번도 잡아보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맨 상체를 보고, 직접 옷을 갈아입히기도 했었다.

 그런데 미루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현상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다 당장이라도 죽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장이 격렬하게 뛰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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