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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10장. 그렇게 시중을 들고 싶으냔 말이다.
작성일 : 18-09-21 18:40     조회 : 245     추천 : 0     분량 : 7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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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루가 정신없이 음식을 먹어치우는 동안 무영은 미루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가 미루의 접시가 깨끗하게 비워지고 나면, 곧장 유기에게 눈짓을 했다.

 유기는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빈 접시를 치우고, 새 접시를 날랐다.

 그런데 미심쩍은 게 하나 있었다.

 무영 뿐 아니라, 무환도 미루가 열심히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즐거운 듯, 눈이 웃고 있기까지 했다.

 ‘설마.’

 유기가 불길한 기분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설마하니 그럴 리가. 무환 님은 정인도 있으신걸. 내 기우겠지.’

 미루의 앞에 유기가 가져온 일곱 번째 접시가 놓였다.

 그제야 배가 부르기 시작한 미루가 흠칫 고개를 들었다.

 너무 먹는 데만 열중한 것이다.

 민망함에 슬쩍 눈을 돌려 보니 자신을 구경거리 보듯 내려다보고 있는 무영이 있다.

 “죄, 죄송합니다.”

 미루는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저도 모르게 사죄했다.

 “하하하!”

 급작스러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온 연회장이 떠나가라 웃어젖히는 것은 무환이었다.

 배까지 부여잡고 실컷 웃은 무환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가씨, 뭐가 죄송해, 죄송하긴? 아가씨가 잘 먹는 게 예뻐서 무영이 그리 보았겠지.”

 “헛소리 마라.”

 무영이 단칼에 쳐냈지만 무환은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헛소리 아닌데? 왜냐하면, 내가 그렇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전히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미루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환은 이제 아예 대놓고 미루가 앉은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내가, 아가씨가 먹는 게 예뻐서 계속 보았다는 말이야. 그리고 무영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걸.”

 무영과 똑같이 생긴 얼굴이 비스듬히 기울어지며 새카만 머리칼이 어깨 너머로 흘러내렸다.

 “아가씨, 예뻐. 무영은 그간 한 번도 얘기 안 하던가?”

 “한 번만 더 지껄이면 네놈의 혀를 잘라주지.”

 미루 대신 무영이 낮고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신을 보는 무영의 얼굴에서 진심이라도 읽어냈는지, 무환이 고개를 돌리며 괜히 웃음을 흘렸다.

 참다못한 미루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저, 무영 님. 저는 이만 제 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일?”

 “예, 일을 하기로 해놓고 이리 앉아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옵고……. 예정에 없던 식사까지 하게 해 주셨으니 더 열심히 제 일을 해야지요.”

 미루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무영의 눈꺼풀이 느리게 한 번 깜빡였다.

 희고 긴 속눈썹이 회녹색의 눈동자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렇게 일을 하고 싶으냐?”

 “네?”

 “그렇게 시중을 들고 싶으냔 말이다.”

 미루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무영이 왼팔을 들어올렸다.

 푸른 빛깔의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자 희고 길쭉한 팔뚝이 드러났다.

 그렇게 팔뚝을 드러낸 무영이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술잔을 들더니, 그대로 제 팔뚝에 부었다.

 투명한 액체가 팔뚝을 타고 흘러내렸다.

 “앗!”

 미루가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무영의 손가락 끝까지 흘러 똑, 똑 떨어지는 술방울 밑에 급한 대로 제 두 손을 모아 갖다 댔다.

 미루의 오목한 손바닥 안에 맑은 술이 차츰 고였다.

 그 사이 유기가 미루에게 깨끗한 천을 가져다주었다.

 천을 받아든 미루가 제 손에 고인 술부터 닦아낸 후, 무영의 손가락을 붙잡아 하나, 하나 꼼꼼히 닦았다.

 “무영 님, 이게 웬일입니까. 일부러 술을 쏟으시다니.”

 “…….”

 “어린아이도 아니시면서. 술은 끈적인단 말입니다.”

 무환이 무영의 뒤에서 입을 떡 벌렸다.

 무영이 오로지 미루의 시중을 받기 위해 술을 부어버린 것도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 대고 어린아이라느니, 술은 끈적거린다느니 핀잔을 주는 미루가 더 경악스러웠다.

 ‘무영에게 저런 말을 아무렇게나 한다니. 저 아가씨도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었다.

 무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얌전히 미루에게 제 손을 맡긴 채 미루가 술을 닦아내는 걸 지켜보는 게 아닌가.

 무환은 이제 기가 차 헛웃음마저 나왔다.

 미루가 무영의 손에 흘러내린 술을 모조리 닦아내고, 팔뚝으로 손길을 옮겼다.

 그때까지도 무영은 입을 꾹 다물고 속눈썹을 내리깐 채 미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 되었습니다.”

 미루가 무영의 팔을 놓아주자 무영은 아무렇지 않게 걷었던 소매를 끌어내렸다.

 알싸하고 달큼한 술의 향내가 미루의 코 밑에서도 감돌았다.

 미루가 제 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술 한 잔 마시지 않았는데 왠지 머리가 아찔하고 무영의 팔을 잡았던 손끝이 홧홧하다.

 '왜 이런담.'

 미루는 눈을 몇 번 깜빡거리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고도 가시지 않던 열기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성들여 빚은 술이 무르익듯, 연회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진월은 연회가 파하자마자 가장 먼저 자리를 박차고 빠져나왔다.

 솔직히 끝까지 버티고 앉아있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만약 무영이나 무환이 없는 자리였다면, 당장에라도 그 자리를 엎어버렸을 게다.

 “감히, 감히……. 인간 계집이 무영 님의 손을 붙잡아?”

 진월이 분에 못 이겨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술을 닦아낸답시고 무영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미루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심지어 이게 처음도 아니었다.

 오늘 낮, 장터에서 무영과 미루의 뒤를 쫓았던 건 사실 진월이었다.

 미루가 유기와 장터에 나간다는 소식을 훔쳐들었을 때부터 벼르고 있었다.

 장터에서 우연을 가장해 만나면, 아주 제대로 골탕을 먹여줄 작정이었다.

 그런데 웬걸, 무영이 직접 나서 미루를 데리고 장으로 향한 게 아닌가.

 이 사태를 믿을 수 없어 그 뒤를 쫓았던 진월의 눈에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이 들어왔다.

 “이건, 이건.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구나.”

 진월이 복도의 벽을 붙들며 중얼거렸다.

 이 궁에 기거하는 여신 중 미모로 따지자면 제일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세상에 단 하나인 달의 신이니만큼, 별이니 강이니 자잘한 다른 여신들보다 지위도 높았다.

 때문에 무영의 옆자리가 마치 제 것인 양 행동해도 다른 여신들이 찍소리도 못했다.

 그런 진월인데도. 잠깐 스치기라고 할라 치면 무영 님의 매서운 눈길이 따라왔는데.

 단 한 번도 살결에 내 손이 가 닿는 것을 실수로라도 용납하신 적 없었는데.

 그런데 미루의 손은 두 번이나 잠자코 허락하셨다.

 “도저히, 나는, 나는……,”

 그때, 벽을 짚고 선 진월의 뒤로 기척이 느껴졌다.

 눈에 실핏줄이 설 정도로 부릅뜨고 이를 갈던 진월이 휙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코.”

 그 등쌀에 멀쩡히 제 할 일을 하던 시종 둘이 기겁을 했다.

 “진월 님 아니십니까.”

 시종들이 고개를 살짝 숙였지만 진월은 대답하지 않았다.

 숨을 식식거리던 진월의 시선이 두 시종이 짊어지고 있는 꾸러미에 가 닿았다.

 “이건 뭐지?”

 “예? 아, 무영 님이 옮겨가라 명하신 것들입니다.”

 “뭐? 무영 님이?”

 비명처럼 외친 진월이 와락 달려들었다.

 “앗, 진월 님, 그렇게 함부로 다루시면…….”

 “시끄러워! 너희는 물러나 있어라.”

 시종들이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우악스럽게 꾸러미를 열고 그 안을 뒤지던 진월이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진월의 손에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을 꿰어 만든 팔찌 하나가 딸려 올라왔다.

 장터에서 미루가 예쁘다고 감탄하며 유심히 보았던 그 팔찌였다.

 “무영 님이…….”

 진월의 예상대로였다.

 이 꾸러미는 미루, 그 인간 계집에게 무영이 보내는 것이다.

 “도대체 왜?”

 진월이 중얼거렸다.

 이럴 수는 없었다. 무영 님이 미루에게, 아니 내게 이럴 수는 없는 거다.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팔찌를 든 손에 힘을 꽉 준 진월은, 팔찌를 꾸러미 안에 도로 던져 넣었다.

 조용히 허리를 펴고 똑바로 서자 시종들이 눈치를 보며 꾸러미를 다시 정리했다.

 시종들이 허리를 꾸벅 숙인 후 서둘러 떠나고도, 진월을 못 박힌 듯 제자리에 서 있었다.

 꽉 깨문 잇새로 위협적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계집을 어찌 처리한다…….”

 진월의 푹 떨군 얼굴 밑으로, 불이라도 뿜을 듯 두 눈이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

 

 미루는 유기와 함께 방 안에서 한숨 돌리고 있었다.

 연회가 끝나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절반 정도는 그저 무영의 옆에 앉아서 그가 요구하는 자잘한 것들만 챙겼다지만, 그건 그 나름대로 긴장을 요했는지 꽤나 피로했다.

 “미루 님! 여기 앉으세요.”

 유기가 쾌활한 목소리로 화장대 앞에 서서 외쳤다.

 유기도 함께 일했으니, 아니 미루보다 훨씬 바쁘게 뛰어다녔으니 피로할 법도 한데.

 손에 빗을 들고 있는 걸 보니 미루의 잠자리 준비까지 도울 모양이었다.

 “아니, 괜찮아요. 유기 님도 쉬세요.”

 “괜찮기는 무어가 괜찮습니까? 잊으셨어요? 저는 애초에 미루 님 시중을 들라 명을 받았었지 않습니까. 얼른 이리 오셔요. 그러지 않으시면 저, 밤새 이대로 서 있을 겁니다.”

 유기가 허리에 두 손을 얹고 눈썹 사이를 찡그렸다.

 한 치도 굽힐 마음이 없어 보이는 그 표정에 미루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거기다, 더 말씨름을 하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알겠어요. 대신, 간단히 하고 같이 쉬기에요.”

 미루가 의자에 앉자 유기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머리칼을 빗어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루의 눈이 가물가물 감기기 시작했다.

 유기가 어찌나 솜씨 좋게 머리를 만지는지, 잠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미루가 앉은 채로 정신없이 졸고 있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머리빗을 내려놓은 유기가 조르르 달려가 방문을 열었다.

 “유기야.”

 “너희들이 어쩐 일이야? 어머나!”

 유기는 시종 둘이 방문 안으로 내려놓는 커다란 꾸러미에 깜짝 놀라 눈을 깜빡거렸다.

 “이게 웬 거야?”

 “무영 님께서 보내셨다.”

 “무영 님께서? 뭔데?”

 유기가 꾸러미를 열고 슬쩍 들여다보았다.

 “세상에!”

 유기가 작게 감탄했다.

 옷감이며, 장신구며, 주전부리며 온갖 것들이 깔끔하게 포장되어 담겨 있었다.

 유기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건, 분명 오늘 낮에 장터에서 무영 님이 사신 게로군. 우리 착한 미루 님은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하셨을 게 뻔하고. 궁에 돌아온 이후에 사람을 보내서 죄다 사들이셨어, 확실해.’

 이 방대한 양을 보아하니, 미루가 뭘 관심 있게 보았는지 확실치 않아 그냥 모조리 사라고 명한 게 분명했다.

 유기가 쿡쿡 웃고 심부름을 온 시종들에게 넌지시 말했다.

 “저기, 무영 님께 돌아가면 유기가 미루 님의 방에 오셔야겠다고 말했다 전해 줄래? 미루 님의 일이라고 하시면 오실 거야.”

 “그래. 전해 드리마.”

 시종들이 떠나고, 방문을 닫은 유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미루 님은 분명 이 물건들을 받을 수 없다고 하실 테니, 무영 님이 직접 오셔야 해. 내가 암만 괜찮다 말해도 소용이 없을 터이니.’

 “미루 님!”

 유기가 미루를 돌아보았다.

 “네?”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미루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반쯤 감긴 눈과, 멍하니 벌린 입술이 귀여웠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띠며, 유기가 미루에게 손짓했다.

 “미루 님, 무영 님이 선물 보내셨어요!”

 “네에?”

 미루의 눈이 순식간에 동그랗게 뜨였다.

 서둘러 꾸러미 쪽으로 달려온 미루가 꾸러미 안을 들여다보더니,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또 빚이…….”

 “네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는 건 유기였다.

 “빚이라뇨?”

 “아무 대가 없이 받기만 하면 빚을 지게 되는 거죠. 무영 님께 이렇게 받기만 하다가는, 시중 일 말고 다른 일도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요.”

 미루가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아무래도 돌려드려야 하겠어요.”

 게다가, 미루느느 빚을 떠나서라도 제가 받기에는 너무 과분하다 생각했다.

 이런 물건들을 받을 이유도 없고, 받아도 될 이유도 없었다.

 “미루 님.”

 유기는 물건들을 제대로 한 번 펼쳐보지도 않는 미루의 눈치를 살폈다.

 분명 이 물건들은, 무영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었을 선물일 텐데.

 미루는 누군가 제게 선물을 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유기는 그런 미루가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유기가 짐짓 밝은 목소리로 미루에게 말했다.

 “미루 님, 돌려드리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이걸 다 갚으려면…….”

 “물론 갚지 않아도 되고요.”

 “이리 많은 것들을요? 할머니가 신세를 지면 꼭 갚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선물이지 않습니까, 선물! 신세가 아닙니다.”

 “선물이라 하더라도, 제가 선물을 받을 이유가 없는 걸요.”

 유기는 이제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미루 님! 꼭 이유가 있어야 선물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주고 싶으면 주는 게 선물이죠. 게다가, 무영 님이 이렇게 직접 선물하시는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냥 받으셔도 좋아요.”

 “유기,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유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영 님?”

 미루가 고개를 돌렸다.

 언제 들어왔는지, 방 안에 무영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무영 님, 오셨습니까.”

 유기가 능청스럽게 인사를 했다.

 “뻔뻔스럽기도 하구나. 나를 오라 가라 부르다니. 유기, 네가 드디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냐?”

 ‘어쨌든 오셨으면서.’

 무영의 냉랭한 구박을 유기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넘겼다.

 그때 미루가 얼른 끼어들었다.

 “무영 님! 이 물건들은 전부 무엇입니까? 유기는 제게 온 선물이라고 하던데…….”

 무영이 유기를 노려보았다.

 “선물이니 선물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한담.”

 유기가 저만치 먼 곳을 응시하며 혼잣말인 체 중얼거렸다.

 무영이 짜증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물. 이걸 선물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장터 구경을 하면서, 그렇게도 신나고 들떠 보이는 미루는 처음 보았다.

 대낮에 방 안에 숨어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낄 터인데, 난생 처음 보는 장이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그 환히 웃으며 재잘대는 얼굴에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분명 얼굴에 말갛게 함박웃음을 띠고 있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았다.

 이 감정은 미루에게서 느껴지는 것인가,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마음이 쓰이는지는 무영도 깨달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에서 돌아온 후 이강에게 시종들을 딸려 보내 물건들을 사 왔다.

 한 가지도 가지고 싶다 말하지 않는 미루에게 물건이라도 안겨 주면 마음이 편해질까 해서였다.

 무영은 제 앞에 서서 올망졸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미루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루는 무영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전전긍긍해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라고 이렇게 긴장한단 말인가.’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제야 미루가 조금은 표정을 풀고 몸을 편안히 했다.

 “무영 님.”

 “선물이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선물은 아니구나.”

 “그럼…….”

 미루는 선물이 아니라면 받을 수 없다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무영의 나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미루가 다시 무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내 마음이 편하고자 네게 보낸 것이니 선물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미루가 되물었지만 무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유기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유기, 물건들은 잘 정리해라.”

 “예, 알겠습니다.”

 유기가 고개를 숙이자 무영은 그대로 미루의 방을 나서려 했다.

 “무영 님!”

 미루가 한달음에 달려와 무영의 소매 끝을 붙잡았다.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살짝 붙들었건만, 무영은 재깍 발걸음을 멈추었다.

 “선물이 아니라니,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

 “제가 이것들을 받아 무영 님의 마음이 편하시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무영의 대답이 떨어지자 미루가 무영을 잡았던 손에 힘을 뺐다.

 유기가 방문을 열고, 무영이 밖으로 나섰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미루가 다급하게 외쳤다.

 “무영 님, 감사합니다!”

 미루의 감사인사가 들렸는지 들리지 못했는지, 무영의 은빛 머리칼을 뒤로하고 방문이 탁 닫혔다.

 

 ***

 

 미루의 방을 나선 무영은 잠시 제자리에 멈춰 섰다.

 한참 전부터 거슬렸다.

 미루의 방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자.

 무엇이 목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느껴지는 그 감정에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무영의 회녹색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으며 주위의 공기 또한 차게 식었다.

 숨어 있던 자도 그 기운을 감지한 듯 했다.

 무영의 붉은 입술이 열리며 소름이 끼치도록 매혹적인, 그러나 날카로운 예기마저 느껴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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