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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9장. 연회
작성일 : 18-09-20 18:05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7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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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루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에 떡하니 자리한 무영의 맨 가슴팍을 마주하니 이제야 정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그저 의복을 갈아입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미루에게는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저, 옷은 어떤 걸로…….”

 미루가 눈도 제대로 못 들고 웅얼거렸다.

 무영이 딱딱하게 대답했다.

 “어디 네가 한 번 골라봐. 옷도 잘 짓는다고 하였으니, 그 정도 안목은 있겠지.”

 “네에…….”

 미루는 말을 길게 늘이며 옷이 잔뜩 걸린 벽 쪽으로 돌아섰다.

 각양각색, 모두 화려하고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진 옷들이었다.

 “휘유.”

 미루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영에게서 눈을 떼, 옷을 살펴보기 시작하자 머리가 맑아지는 듯 했다.

 옷을 살피는 미루의 눈이 진지함마저 품고 반짝거렸다.

 무영은 금세 표정이 바뀌어 옷을 찬찬히 고르는 미루를 지켜보았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눈을 불안하게 굴리면서 초조해하더니.

 제게 주어진 일을 마주하자마자 한순간에 그 일에 집중한다.

 미루는 아무리 단순한 일이라도, 매사에 이렇게나 열심이다.

 ‘보기에 나쁘지는 않군.’

 무영이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미루는 작은 손으로 부지런히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헤집더니, 단번에 옷걸이 하나를 잡았다.

 “무영 님. 오늘은 이걸 입으시는 게 좋겠어요.”

 미루의 손에 들린 것은 짙은 푸른 비단에 은실로 수가 놓인 옷이었다.

 길이가 긴 옷이라, 옷걸이를 든 미루의 손이 한껏 위로 치켜 올라가 있었다.

 옷을 땅에 끌리지 않게 하려다 보니 조금 버거운지 입은 한 일자로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무영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그래, 그것으로 하지.”

 무영은 옷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답했다.

 무영의 말이 떨어지자 미루가 옷을 팔에 걸쳐 들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잠시 무영의 앞에 멈칫하고 선다.

 막상 정말로 무영의 옷을 벗겨야 할 차례가 되니 저도 모르게 망설인 것이다.

 그러나 미루는 곧장 마음을 다잡고 손에 들었던 옷을 탁자 위에 잘 개켜서 내려놓았다.

 “무영 님, 그럼 지금 입고 계신 옷은 벗기도록 하겠습니다.”

 무영의 뒤로 돌아간 미루의 목소리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미루가 까치발을 들고 무영의 긴 머리칼을 한데 모아 왼쪽 어깨 너머로 넘겼다.

 그러자 희고 매끈한 뒷목이 드러났다.

 미루는 그 긴 목덜미에 손가락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옷깃을 잡아 끌어내렸다.

 스르륵, 매끄러운 상아빛 천이 허물 벗겨지듯 미루의 손 안으로 흘러내렸다.

 무영의 넓은 어깨와 단단한 등 근육이 눈앞에 드러나자 미루의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지금 일을 하는 중이다, 나는 지금 일을 하는 중이야.’

 미루는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며 옷을 팔 안에서 정리했다.

 다시 무영의 앞으로 돌아가 입고 있던 옷은 탁자에 내려놓고, 새 옷을 손에 펼쳐 들었다.

 미루는 무영의 벗은 상체를 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재빨리 움직이려 노력했다.

 미루가 새 옷을 들고 다시 무영의 뒤로 돌아 들어가자, 무영이 조용히 양팔을 좌우로 벌렸다.

 한쪽 팔씩 차례로 소매를 끼운 미루는 까치발을 들고 어깨에 옷을 얹었다.

 어깨 너머로 넘겼던 머리칼을 다시 가져와 등 위로 늘어뜨렸다.

 짙은 푸른색의 옷 위로 은빛 머리칼이 찰랑이며 떨어지자 마치 깊은 밤하늘의 은하수 같았다.

 잠시 그 모습에 감탄하던 미루는 서둘러 움직여 무영의 앞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허리띠를 맬 차례였다.

 미루가 손을 뻗어 허리띠를 양 손에 잡았다.

 앞섶을 여미고 허리에 띠를 두르려니 무영을 끌어안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무영의 맨가슴에 숨결이라도 닿을라, 미루가 숨을 꼭 참았다.

 미루의 숨소리가 멎자 무영이 눈을 내리깔고 미루의 새까만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미루에게서 당혹감과 조급함,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흥미가 돋았다.

 이제껏 무영의 시중을 들던 자 중에 이런 감정을 내비치는 자는 없었다.

 말 그대로 시중은 시중.

 때문에 옷을 갈아입히든, 목욕을 돕든. 종들은 무영의 맨몸을 보고 미루와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인간은 왜 내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그러는 사이 미루가 허리에 끈을 단단히 둘러매고 매듭을 지었다.

 “다, 다 되었습니다.”

 말끔히 정리된 옷에서 손을 뗀 미루가 두 발짝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두 볼과 귀가 발갛게 상기되고, 가지런한 눈썹은 아래로 촉 처졌다.

 무영의 한쪽 입꼬리가 삐딱하게 말려 올라갔다.

 ‘이것도 재미있지.’

 미루의 얼굴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기분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남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저주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표정에 제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이만 가자.”

 “네, 네!”

 무영이 다시 얼굴을 굳히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미루가 얼른 대답하며 그 뒤를 졸졸 따랐다.

 기분 탓일는지, 방 안의 공기가 평소와 달리 부드러운 것 같았다.

 

 ***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유기가 얼른 문을 열었다.

 무영이 방을 빠져나오고, 그 뒤를 미루와 유기가 나란히 따랐다.

 유기가 앞서가는 무영의 눈치를 한 번 보더니 미루에게 눈을 찡긋했다.

 “어찌, 일은 잘 마무리하셨나 보네요.”

 “정말, 앞으로는 이 일은 저 말고 다른 사람이 했으면 좋겠어요.”

 미루가 기운이 쪽 빠진 목소리로 웅얼거리자 유기가 나지막하게 웃었다.

 “그건 안 될 말씀이죠, 미루 님. 미루 님께서 무영 님의 시중을 들기로 한 순간 그간 일하던 다른 종들은 모두 다른 일자리로 물렸는걸요.”

 “그렇군요…….”

 “게다가, 미루 님만 무영 님의 몸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마음에 들다니, 당치도 않아요…….”

 미루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유기는 크게 소리 내어 웃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곁눈질로 무영의 눈치를 보면서도, 얼굴은 상기되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라니.

 어미 몰래 사고를 치고 혼날까 불안해하는 새끼 강아지 같다.

 그때 무영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유기, 잡담은 그만 해라.”

 “예, 무영 님.”

 잽싸게 대답을 하면서 유기는 속으로 웃었다.

 누가 미루 님을 놀리는 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보지.

 그러는 사이 연회장 앞에 도착했다.

 무영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시종들이 커다란 문을 양 옆으로 활짝 열었다.

 유기와 함께 그 뒤를 따라 들어간 미루가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널찍한 방 안을 빙 두르고 디귿 자의 탁자가 놓여있고, 그 가운데 기녀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미루는 높은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천장에 아로새겨진 기묘한 문양들에 시선을 온통 빼앗겼다.

 목이 빠져라 고개를 치켜들고 천장을 구경하던 미루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가씨!”

 가장 상석에 놓인 두 의자 중 하나에 앉은 무환이었다.

 미루를 향해 손을 팔랑팔랑 흔드는 그에게 무영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무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루에게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무영과 똑같이 매서운 눈매가 곱게 휘어지자 퍽 매력적이었다.

 미루는 무영 님이 웃는다면 저리 생기셨을까, 생각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가씨, 이리 앉아.”

 무환이 자리에서 반쯤 일어서며 미루에게 손짓했다.

 아직 비어있는 제 옆자리를 말하는 거였다.

 “아…….”

 미루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눈앞에 무영의 넓은 등짝이 나타났다.

 덕분에 미루를 보던 무환의 시선이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미루가 찰랑이는 머리칼에서 은가루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 무영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무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시종으로 이 자리에 온 거다. 자리에 앉힐 이유가 없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의외로 무환이 순순히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붉은 입술이 길게 말리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었다.

 불안할 정도로 조용해진 무환의 옆에 무영이 앉고 나자, 문이 열리며 연회에 참석하는 자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기와 미루는 무영과 무환의 사이에 약간 뒤로 물러나 섰다.

 “미루 님, 웬만한 건 저와 다른 시종들이 할 테니 미루 님은 무영 님이 시키시는 것만 주로 하시면 됩니다. 걱정 마셔요!”

 유기가 살짝 웃으며 속삭였다.

 미루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간드러지는 여인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무영 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연한 분홍빛 머리칼의 화려한 미인.

 밤하늘에 떠오르는 달의 신. 진월이였다.

 진월은 미루의 존재는 아예 무시하기로 결심한 건지,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지나쳤다.

 그러더니 무영의 바로 곁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애교스럽게 웃었다.

 다른 신들 또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신경도 쓰지 않는 걸로 보아, 늘상 있는 일인 듯 했다.

 진한 향수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무영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너무 순식간이라 그것을 목격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무환 님, 오랜만입니다.”

 진월은 무영이 아무 말이 없자 이번에는 무환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어어, 진월. 간만이네. 여전히 곱구나?”

 “호호, 감사합니다. 무환 님 덕에 연회에도 참석하고,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무영 님은 도통 연회를 열지 않으시거든요.”

 진월이 무영의 팔뚝을 향해 손을 뻗다가 재빨리 거두며 눈웃음을 쳤다.

 괜히 무영을 건드렸다가는 싸늘한 시선을 받아내다 못해 자리를 옮겨야 할 터였다.

 턱없이 긴 시간을 살아온 것에 비하면 몇 번 없는 연회였다만, 그때마다 무영의 옆자리를 꿰어 차고 버티며 알게 된 것 중 하나였다.

 무환이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 이 궁은 내가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구나. 진월, 너도 재미없는 무영만 있는 곳에서 퍽 지루했겠구나.”

 “그럴 리가요. 후후.”

 “이제 내가 왔으니 걱정은 말거라. 자아, 술이나 마셔 보자!”

 무환이 크게 외치자 시종 하나가 무환의 잔에 찰랑거리도록 술을 따랐다.

 그와 동시에 잔잔하게 흐르던 기녀들의 음악이 경쾌하게 바뀌었다.

 연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무영은 심기가 불편했다.

 온갖 감정들이 어지럽게 뒤섞여서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이래서, 무영은 연회를 싫어한다.

 수많은 감정들이 난무하는 데다, 대개는 순수하지 못하기까지 하다.

 ‘지긋지긋하군.’

 항상 옆자리에서 부인인 것 마냥 구는 진월의 감정만 해도 그렇다.

 아름다운 얼굴로 연신 웃으며, 술이며 안주며 부지런히 챙기지만 그 내면은 시커멓다.

 권력욕, 독점욕, 과시욕뿐이다.

 마치 무영을 아끼는 듯한 저 미소와는 영 딴판이다.

 사실, 진월 뿐 아니라 대부분이 그러했다.

 이 저주를 얻은 후 단 한 번도 겉과 속이 같은 자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도 다른 이유가 무영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무환이 쉴 새 없이 미루를 불러대고 있었다.

 “아가씨! 나 물 한 잔만 떠다 주겠어?”

 “아가씨, 새 수저 좀 부탁해. 떨어트렸지 뭐야.”

 “아가씨, 손수건 하나만 갖다 줘.”

 아가씨, 아가씨, 아가씨!

 발랄한 무환의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불쾌했던 적이 있었나.

 심지어 무영이 가만 보아하니, 무환은 일부러 물을 흘리고 손수건을 접어 제 주머니에 집어넣는 둥, 수작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미루가 제 자리로 물건을 가져오면 계속해서 말을 걸면서 못 떠나게 한다.

 ‘저게. 저러려고 시종으로 왔다는 말에 토 달지 않았구나.’

 무영이 한소리 한다면, 단지 시종에게 일을 시킨 것뿐이라고 잡아뗄 게 뻔했다.

 미루는 그것도 모르고 작은 몸뚱이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실수 하나라도 할까, 온 정신을 곤두세우고 표정도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

 그러면서도 무환이 시키는 시답잖은 일에는 웃으면서 답한다.

 일이 힘들 터이니, 억지웃음을 짓는 건가 싶다.

 그러나 미루에게서는 짜증도, 불만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영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미루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겉과 속이 같은 자가 여기 있었다.

 미루를 대할 때는, 단 한 번도 말이나 행동과는 다른 감정을 읽어낸 적이 없었다.

 ‘왤까.’

 이런 자를, 하필이면 인간을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신(神)들도 보이는 모습과 달리 그 속은 추악한 게 태반인데.

 무영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아 고민하다,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버렸다.

 그보다는, 지금 짜증이 날 정도로 미루에게 집적대는 무환을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무영이 다시 미루를 부르려는 무환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제야 무환이 주춤했다.

 “왜, 왜.”

 “네 전담 시종이 아니다. 그만 불러.”

 “왜? 아깐 그저 시종으로 왔다고 했잖아. 게다가 내 귀환을 축하하려고 연 연회인데, 이참에 아가씨를 내 전담 시종으로 해 주어도 좋고.”

 무환은 무영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 능글거린다.

 “너…….”

 무영은 한소리 하려다 관두고 고운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았다.

 무환과 더 얘기하면 입만 아프다.

 ‘아예 부르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게 빠르지.’

 그리 생각한 무영이 유기를 불렀다.

 “유기.”

 “예, 무영 님.”

 “내 옆에 의자를 새로 놓아라. 내 오른쪽……. 아니.”

 제 오른쪽은 무환이 앉아있다는 것을 발견한 무영이 말을 바꿨다.

 “내 왼쪽에.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유기는 곧장 의자를 들고 무영의 왼쪽으로 다가왔다.

 “진월 님, 실례하겠습니다.”

 진월이 아랫입술을 꾹 다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드르륵. 진월이 앉았던 의자가 가차 없이 옆으로 밀리고 그 자리에 미루의 의자가 놓였다.

 진월은 신경질이 있는 대로 났다.

 그간 그 누구도 진월 대신 무영의 옆자리에 앉은 적은 없었다.

 아니, 진월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 일은 결단코 없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 조그만 인간 계집이, 단숨에 진월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무영이 직접 명령한 거라 자신이 여기서 손을 쓸 수도 없다.

 “너. 여기 앉아라. 이제 일은 그만 해도 된다.”

 무영이 새 의자를 가리키며 미루를 불렀다.

 진월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데, 무영은 흘끗 쳐다 보지조차 않았다.

 진월이 수치로 몸을 떨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밀려난 자리에 주저앉았다.

 미루는 저만치서 쭈뼛거렸다.

 “얼른!”

 무영이 다시 명령하고 나서야 미루가 천천히 다가와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무영 님, 왜 일을 그만 해도 된다고 하십니까? 오늘은 연회에서 시중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잖습니까.”

 미루가 조심스레 묻자 무영이 턱을 약간 들고 미루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네가 내 시중은 안 들었지 않느냐?”

 “네?”

 “연회가 시작되고부터 계속 무환의 시중만 들었지 않느냐.”

 “아, 그것이…….”

 “그럴 바에는 그냥 앉아서 아무 일도 하지 마라.”

 “그럼 지금부터는…….”

 “시끄러.”

 무영이 딱 잘라 말하자 미루가 시무룩하게 입을 다물었다.

 무영이 미루의 뒤쪽에 선 유기에게 눈짓하자 유기가 얼른 달려가 음식을 가져왔다.

 ‘내가 일을 영 못하나.’

 풀이 죽어 있던 미루의 표정이 제 앞에 놓인 접시를 보자 삽시간에 바뀌었다.

 “와! 무영 님! 제가 먹어도 됩니까?”

 “그러니까 네 앞에 갖다놨겠지.”

 “와.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언제 상심했냐는 듯, 한껏 신이 난 목소리로 젓가락을 드는 모습에 무환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아하하. 어지간히도 배가 고팠나 보구나.”

 “아입이다(아닙니다)!”

 미루가 입 안 가득 뭔가를 베어 물고 울상이 되어 외치자 무영이 무환을 노려보았다.

 무환이 두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그 매서운 시선을 외면했다.

 미루는 부끄러움을 애써 참으며 음식을 꿀떡 넘겼다.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미루가 먹어본 것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대단한 음식이었다.

 마음이 급한지 자꾸만 젓가락질이 미끄러지는 미루를, 무영이 턱을 괴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던 진월의 고운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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