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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8장. 옷을 직접 갈아입히라니.
작성일 : 18-09-18 18:07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7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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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루는 무영의 곁에서 걸으며, 잡힌 제 오른손을 자꾸만 힐끔거렸다.

 보기만 해도 왠지 부끄럽고, 손에 촉촉하니 땀이 오르는 것 같다.

 그런데 무영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묵묵히 앞만 보고 걷고 있다.

 미루는 그런 무영을 보자 어쩐지 심통이 나면서도, 입가에 배실배실 웃음이 비집고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장터 입구에 도착했다.

 미루가 눈을 빛내며 감탄했다.

 “와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높게 소리쳐 외치는 목소리가 가득하고, 온갖 천막이며 좌판이 어지럽다.

 미루의 상상 속 장보다 훨씬 크고 훨씬 시끌벅적하다.

 “무영 님, 무영 님!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미루는 무영에게 손을 잡혔기에 망정이지, 목소리만 들으면 벌써 발을 동동 구르고도 남았다.

 어린애처럼 장터를 보고 신이 나서 목소리가 높아지는 모습이 무영의 눈 안에 가득 들어찼다.

 미루는 무영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도 그만 잊었는지, 이제는 제가 먼저 나서서 무영을 이끌었다.

 미루가 장신구를 늘어놓은 좌판 앞에 멈춰 섰다.

 “무영 님, 이것 좀 보세요. 어쩜 이리 빛깔이 고운 구슬이 있을까요?”

 인간들이 사는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보석으로 꿰어 만든 팔찌였다.

 미루가 팔찌를 집어 들고 햇빛에 비춰 이리저리 돌리자, 보석이 오색으로 빛났다.

 그런데, 순간 무영에게는 미루의 얼굴이 그보다 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웬 미친 생각이야.’

 무영은 보석을 보며 환히 웃는 미루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그런 와중에도 무영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장터에 들어선 이후, 집요하게 미루와 자신의 동선을 쫓는 시선이 있었다.

 게다가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 상당히 불쾌하고 악독했다.

 무영이 어느새 냉랭하게 굳어진 얼굴로 삿갓 밑에 가려진 눈을 들었다.

 

 ***

 

 본디 장터란, 무영이 가장 싫어하는 장소였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 온갖 감정을 교류하기 때문에 무영에게 독약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명백히 느껴지는 적대적인 감정이라니.

 미루만 곁에 없었다면, 무영은 대번에 그 자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몸을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영의 손을 여전히 꼭 붙든 채, 온데 혼이 팔려 있는 미루를 두고 한눈 팔 새가 없었다.

 미루는 “와! 무영 님!” 이라는 말을 몇 초에 한 번 꼴로 했다.

 잔뜩 쌓아 놓은 옷감을 보고도, 잘 말려 설탕을 뿌린 과일을 보고도, 실로 꼬아 만든 목걸이를 보고도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면서도 무영이 사주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도 불만 한 번 내비치지 않았다.

 새 물건 하나 손에 쥐지 않고도 변함없이 즐거워 보이는 미루에게 무영이 물었다.

 “별로 갖고 싶은 게 없는 건가?”

 “네? 아, 괜찮습니다. 신기하고 사 보고 싶은 것은 많지만.”

 “왜?”

 “그야 저는 돈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열심히 일해서 무영 님께 진 빚도 빨리 갚아야 하고.”

 미루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빚이라. 그래서 갖고 싶은 게 있어도 내게 티내지 않는 건가.’

 무영이 미루를 흘긋 보며 툭 말을 내뱉었다.

 “이미 진 빚도 많은 거, 하나쯤 더 져도 티도 안 난다.”

 “하하, 그건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갖고 싶다 하여 굳이 살 이유는 없습니다.”

 미루가 웃으면서도 단호히 말하는 통에 도리어 무영이 말을 잃었다.

 팔랑팔랑 날 듯 여기저기를 누비던 미루는 문득 한 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오똑 솟은 코가 연신 냄새를 킁킁거렸다.

 “와! 무영 님! 여기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여러 종류의 꼬치와 튀김류를 파는 가게였다.

 “먹어 볼 테냐?”

 무영이 묻자마자 미루의 목울대가 꼴깍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무영은 그걸 모른 체 하며 가게를 떠나려는 시늉까지 하며 다시 물었다.

 “이것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니 먹지 않겠다고 말할 것이냐?”

 “아뇨! 지금 제가 배가 고프니, 이건 꼭 필요한 게 맞는 것 같은걸요!”

 미루가 단박에 외치며 무영을 붙잡았다.

 무영은 결국 웃음을 약간 흘리며 삿갓을 조금 더 눌러쓰고 미루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내 손들의 시선이 순간 두 사람에게 쏠렸다.

 무영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지만, 두 사람이 입은 옷이 상당히 고급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루가 꽤나 눈에 띄었다.

 그 흔한 장신구 하나 걸치지 않았는데도 해사한 얼굴이 참 예뻤다.

 그러다 손들은 어디선가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무영이 삿갓 밑으로 “눈 마주치는 자는 죽는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겨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 하나, 미루만이 눈치를 채지 못하고 신이 나서 벽에 걸린 차림표를 훑어보고 있었다.

 “와, 정말 다 맛있겠다. 무영 님, 어떤 걸 드실 거예요? 저는 은행 꼬치나 양파, 아니면 버섯 튀김을 먹고 싶습니다.”

 “또 죄 채소냐?”

 미루는 참 야채를 좋아한다.

 무영이 방으로 식사를 들이라 할 때 차려오는 반찬들만 보아도 항상 그렇다.

 무영은 그게 뭐 어떻냐는 표정의 미루를 무시하고 주인을 불렀다.

 “여기, 양념을 한 새 안심 꼬치, 돼지 등심과 파 꼬치,…….”

 “그리고 버섯 튀김!”

 무영이 주문을 하는데 미루가 지지 않고 끼어들었다.

 “……그렇게 주시게.”

 무영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데도 미루는 못 본 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딴청을 피웠다.

 “아참, 무영 님.”

 미루가 갑자기 생각난 듯 손뼉을 마주쳤다.

 “왜, 전에 있지 않습니까. 무영 님이 저희 집에 찾아오셨을 때, 제가 음식을 권해도 전혀 드시지를 않으셨잖아요?”

 “그래.”

 “그때 사실 전, 얼마나 귀한 입이기에 먹을 걸 가리나 속으로 흉을 보았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흉을 본 대상을 앞에 두고 네 흉을 보았노라, 말한다.

 무영은 미루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삿갓 밑으로 오밀조밀한 입술을 흘끔 바라보았다.

 “그런데 제가 몇 번 무영 님께 상을 차려 드리고 나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아무리 음식을 남기는 걸 싫어하신다 하여도, 맛없다 하시면서도 잘 먹어 주셔서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영 님이 자기 입이 귀해서 음식을 가리는 사람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해요.”

 미루가 입꼬리를 둥글게 말아 올리며 선연히 웃었다.

 “무영 님은 좋은 분이십니다.”

 그렇게 말하는 미루를 보는 무영에게, 단어 하나하나가 화살처럼 가슴에 와 꽂혔다.

 음식이 나오자 기쁜 표정으로 접시를 맞는 미루는 역시 순진한 어린아이 같다.

 그러나 그 속은 진중하고 깊다.

 무영은 새삼 미루의 환한 얼굴을 구석구석 뜯어보았다.

 미루가 튀김을 덥석 베어 물다가 훅 끼치는 열기에 놀라 입가에 열심히 손부채질을 했다.

 무영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음식을 먹는 미루를 턱을 괴고 구경하느라, 정작 본인은 입도 대지 않았다.

 어느 샌가 장터에 나온 이후 계속해서 거슬리던 불순한 감정마저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

 

 장터에서 돌아온 미루는 곧장 욕실로 향했다.

 괜히 유기를 마주쳤다간, 또 옷을 벗겨주겠다느니 직접 씻겨 주겠다느니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무영은 곧장 씻으러 가겠다는 미루의 말을 듣자마자, 왠지 혀를 쯧쯧 차더니 할 일이 있다며 곧장 가버렸다.

 ‘무영 님도 피로하셔서 목욕을 하고 싶으신 모양이야.’

 무영이 피로해 서둘러 가버렸다고 생각한 미루는, 욕실 문을 잘 잠그고 따뜻한 물을 받았다.

 금세 욕실 안에 후끈후끈한 기운이 찼다.

 욕실 안에 구비된 여러 향의 입욕제 중 하나를 골라 목욕물에 살살 풀었다.

 기분 좋은 향이 김을 타고 올라왔다.

 그러나 처음 이 궁에 온 날, 유기가 준비해 주었던 목욕물의 향만 못하다.

 “나중에 유기에게 어떤 향을 섞었냐고 물어봐야지.”

 미루는 옷을 벗어서 잘 개어놓고 목욕탕 안에 발부터 차례로 집어넣었다.

 목 바로 아래까지 몸을 담그자 절로 눈이 감겼다.

 잠시 눈을 감고 따끈한 기운을 즐기던 미루는 눈을 뜨고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투명한 물 아래로 손바닥이 일렁였다.

 ‘손…….’

 자기 손을 잡고 걸으라시던 무영 님.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셨을까?

 무영을 떠올리자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머리가 아찔한 것 같기도 하다.

 ‘무영 님의 손, 내 손을 전부 덮을 정도로 큼직했지. 그리고 매끈해서 감촉도 좋았었지…….’

 눈을 게슴츠레 뜨고 기억을 되짚던 미루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 미쳤나 봐!

 풍덩 소리와 함께 목욕물이 거칠게 흘러넘쳤다.

 미루가 머리끝까지 물속으로 깊게 잠긴 것이었다.

 미루는 목욕물이 뜨거운 건지, 제 얼굴이 뜨거운 건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숨이 막혀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푸앗.”

 단숨에 숨을 내쉬자 가슴팍이 급히 오르내렸다.

 미루는 목욕통에서 일어서며 머리카락을 꼭 쥐어짰다.

 ‘무영 님이 잘해 주시니, 내가 더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한다. 시중을 들어서 빚을 갚겠다 다짐했으니 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미루는 결심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방에 돌아온 미루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뭐, 뭐라구요?”

 방에 미리 와 기다리고 있던 유기는, 미루의 반응을 즐기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의복입니다, 의복!”

 “그러니까, 그 의복이라는 게…….”

 유기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무영 님의 전갈이 그것인 걸요. 미루 님의 오늘 저녁 시중은 식사 시중이 아니고요. 무영 님의 연회 참석 준비를 도우시면 됩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영 님의 방으로 가서 의복을 챙기는 거예요.”

 “그 말인즉슨.”

 제발 아니라고 해줘! 라고 말하듯, 미루의 눈빛이 애절했건만 유기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무영 님의 의복을 직접 갈아입히시는 거죠!”

 아아. 이럴 수가.

 미루는 망연자실해 비틀거렸다.

 “내, 내가 직접. 의복을 갈아입힌다고요.”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물론 무영의 시중을 든다는 게 특정 일에만 국한되어 있는 게 아니다.

 무영이 필요하다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게다가 방금 전에 열심히 일을 하겠다 다짐까지 했다.

 그런데 옷을 직접 갈아입히라니.

 ‘그럼 벗은 몸을 보아야 한다는 거잖아.’

 일은 일이어도 이건 좀 너무하다.

 미루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울상이 된 얼굴을 감쌌다.

 유기는 아주 들떠 보였다.

 “후후후. 그럼, 미루 님. 시간이 되면 제가 데리러 오겠습니다. 그 때까지 안녕히 쉬세요!”

 유기가 얄미울 정도로 잽싸게 방을 빠져나갔다.

 미루는 방문이 탁 닫히는 소리와 함께 침대로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어떡해. 어쩌면 좋아.”

 한참을 침대에 뒹굴며 탄식한 미루는 차츰, 체념에 빠졌다.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가고 있었다.

 옷 그까짓 거, 갈아입히는 게 뭐 부끄러울 일이냐!

 

 ***

 

 미루는 시시각각 불안해지는 가슴을 누르며 유기를 기다렸다.

 해가 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기가 방문 앞에서 미루를 불렀다.

 “미루 님, 가실 시간입니다.”

 “네에.”

 미루는 무거운 발을 끌며 방을 나섰다.

 “미루 님, 무영 님 시중을 든다면서 그간 너무 식사 준비만 하셨죠? 연회 참석을 돕는 일은 식사 준비보다는 덜 고될 거예요.”

 미루의 타들어가는 속도 모르고 유기는 한껏 들떠 보였다.

 “차라리 식사 준비가 나을지도…….”

 “에이, 그건 아니지.”

 갑자기 가까이서 들리는 목소리에 유기와 미루가 동시에 놀랐다.

 “아이고, 뭡니까!”

 유기가 먼저 투덜댔다.

 미루도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뒤를 돌았다.

 무영과 똑같이 오묘한 빛의 눈동자와 융단처럼 검고 매끄러운 긴 머리카락.

 잘생긴 얼굴 한가득 웃음을 담고 있는 건 무환이었다

 미루에게 눈웃음을 지어보이는 무환을 유기가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저기, 무…….”

 “어허, 조용히 하거라. 가끔은 말을 아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니라.”

 무환이 뒷짐을 지며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직까지도 미루의 앞에서 무영의 행세를 할 참이었다.

 미루는 입술을 불퉁하게 내민 유기를 한 번 보고 무환을 한 번 보았다.

 그리고는 멀리 있는 것을 보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뭐?”

 예상치 못한 미루의 질문에 도리어 무영이 놀랐다.

 미루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턱에 손을 얹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영 님께 형제가 있으셨던가요? 아주 많이 닮으셨습니다. 특히 그 눈이 아주 판박이입니다.”

 유기가 이때다 싶어 끼어들어 소개를 했다.

 “미루 님, 이 분은 무영 님의 쌍둥이 형제이신 무환 님이십니다.”

 무환은 점점 더 재미있었다.

 아침에는 무환을 보고 무영으로 착각하더니, 지금은 대번에 무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지 않는가.

 아마 미루는 유기가 무환을 소개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무영 행세를 하는 것을 대번에 알아챘을 것이다.

 이제 더 속여먹기는 글렀고, 어찌 해야 더 괜찮은 반응이 따라올까.

 무환은 거만한 태도로 눈앞에 흘러내린 검은 머리를 휙 넘겼다.

 “아가씨, 오늘 아침에도 나에게 안겨 놓고 왜 시치미를 떼시지?”

 “제가요? 아, 그러고 보니…….”

 미루가 곧장 공손히 허리를 숙이자 무환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이른 아침에는, 몸 상태가 좋지 못하여 무영 님으로 착각하였습니다. 때문에 인사도 제대로 못 올리고, 몸이 닿고도 사죄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다.

 분명 아침에 마주친 무영의 머리는 검었는데, 방에 들어가니 도로 은발이 되어 있었다.

 이상하다고 느끼던 차에 저를 끌어안던 게 떠오르는 바람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묻지 못했는데.

 그게 이 사람이었구나.

 무환은 미루가 말을 마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 몸 상태라 함은, 아주 제대로 부어 있던 눈을 말하는 거겠지? 하긴, 나라도 그렇게 눈이 붓는다면 눈앞의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거야.”

 무환이 키득거리며 웃자 미루의 두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 모습에 무환이 신이 나 한술 더 떴다.

 “무영으로 착각해서 몸이 닿고도 사죄하지 않았다는 건, 무영이라면 몸의 접촉쯤이야 예사롭다는 뜻인가? 응, 아가씨. 그런 거야?”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힘을 주어 대답하는 미루의 얼굴이 좀 더 달아올랐다.

 이제 보니, 이목구비만 닮았지 무영과는 아주 생판 다른 사람이었다.

 “무환 님, 이제 그만 하세요.”

 미루가 곤란해 한다는 것을 눈치 챈 유기가 허리에 손을 딱 얹고 말했다.

 그래도 무환은 여전히 빙글거리는 미소를 띤 채였다.

 “내가 무얼 어쨌다고 그래? 그저 아침에 본 아가씨를 다시 만난 게 반가워서, 인사나 해보려 한 것뿐이다.”

 “그렇담, 인사 나누셨으니 이제 그만 보내 주시지요. 무영 님께 가는 중이었는데 너무 늦겠습니다.”

 그제야 무환이 한 걸음을 옆으로 물러나 주었다.

 그러면서도 아쉬워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미루가 살짝 목례를 하고 지나가자, 무환이 스치듯 미루의 머리카락 끝을 어루만졌다.

 “잘 가, 귀여운 아가씨. 또 만나자고.”

 미루가 잡힌 머리칼을 매만지며 돌아보기도 전에 무환이 사라졌다.

 

 ***

 

 “들어와라.”

 방문을 두드리기가 무섭게 무영의 답이 들려왔다.

 미루가 절박한 얼굴로 돌아보자 유기가 엄지를 척 내밀어 보였다.

 “미루 님, 잘 하실 거예요! 힘내세요!”

 하는 수 없이 미루는 심호흡을 하고 무영의 방으로 들어섰다.

 무영은 탁자 앞에 앉아 우아한 자세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무영 님, 저녁 연회 준비를 위해 왔습니다.”

 “안다.”

 “무엇부터 할까요? 혹, 입고 가실 옷, 옷은 정하셨습니까? 아니면 제가 골라 드려야 하나요?”

 무영이 말없이 제 앞을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미루 몫의 찻잔이 놓여 있었다.

 한껏 긴장하고 있다, 맥이 빠진 미루는 무영의 맞은편에 앉았다.

 예쁜 자기 찻잔에 찰랑이는 차를 보며 미루가 입을 열었다.

 “저, 무환 님을 만났어요.”

 “…….”

 무영이 속눈썹 아래로 미루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실은 아침에도 만났는데, 제가 하도 눈이 부어 시야가 불편하다 보니 그만 무영 님인 줄 착각했지 뭡니까. 그렇게나 두 분이 다르신데, 어쩜 그랬나 몰라요.”

 “그래? 다르다고?”

 “많이 다릅니다. 비단 머리칼 색이 달라서가 아니라. 물론 얼굴이야 거의 똑같이 생기셨지만, 두 분이 다른 사람이라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 걸요. 그냥 느낌이 그렇습니다.”

 무영의 입가가 만족스레 말려 올라갔다.

 미루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만이었다.

 무영이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꼿꼿이 선 채 천천히 상의를 묶은 띠를 풀었다.

 홑겹으로 된 실내복이 느슨히 풀어지며 탄탄한 가슴팍이 드러났다.

 조금 흐트러진 듯 흘러내린 머리칼 사이로, 무영이 미루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연회에 갈 채비를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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