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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7장. 내 손을 잡으란 말이다.
작성일 : 18-09-13 00:24     조회 : 245     추천 : 0     분량 : 7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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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루는 무영의 품 안에서 있는 힘껏 버둥거렸다.

 그래 봤자 미약한 움직임이었으나, 무영이 순순히 미루를 놓아주었다.

 “무, 무영 님. 그렇게 저를 놀리시면 못 씁니다! 아주, 아주 나쁘세요. 정말…….”

 무영은 홍당무처럼 벌건 얼굴을 하고 소리를 치는 미루를 빙글거리며 보았다.

 “놀리는 거 아닌데? 아가씨, 정말 예뻐.”

 “저, 저도 눈이 있습니다. 이렇게 얼굴이 부었는데, 그만 놀리세요! 정말, 그렇게 안 봤는데 무영 님, 아주 나쁘신 분이야…….”

 미루는 기겁을 하고 팔짝 뛰더니 입을 앙다물고 황급히 무영의 옆을 스쳐 복도를 뛰어갔다.

 저만치 멀어지는 미루의 빨간 귀에서 김이라도 솟아오를 것 같았다.

 미루의 머리꽁지가 복도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거두지 않던 무영, 아니 미루가 무영이라고 착각한 자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무영이 낮에 지내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제 일을 하느라 분주히 돌아다니던 궁 안의 사람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모두들 그를 알아보는 듯 했다.

 그가 지나가는 복도는 삽시간에 소음이 멎고, 그의 발걸음 소리만이 조용히 울렸다.

 무영의 눈과 똑 닮은 회녹색의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커다란 방문 앞에 멈춰 섰다.

 그가 문에 손을 대기도 전에 문이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문 앞에 은빛의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무영이 차가운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런 무영을 향해, 무영과 똑같은 것이나 다름없는 얼굴을 가진 자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무영, 오랜만이네. 그간 잘 지냈어?”

 그림자에서 태어난 두 번째 태초신.

 무영의 쌍둥이 동생.

 무환이었다.

 

 ***

 

 무환이 살갑게 웃음을 보냈지만 무영은 그가 내민 손을 완전히 무시했다.

 대신 몸을 살짝 틀어 무환이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했다.

 무환이 내밀었던 손을 거두며 투정했다.

 “너무하네, 형제여. 간만에 만난 동생이 악수를 청하는데, 이리도 무안을 주다니. 난 정말 가엾은 신이야. 너무나도 가엾어.”

 “헛소리하지 말고 들어와. 네 불쌍한 척하는 연기라면 이제 이골이 난다.”

 무영이 냉정하게 대꾸했지만 무환의 얼굴은 여전히 밝았다.

 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서자 무영이 방문을 닫았다.

 무환이 어슬렁거리며 방 안을 거닐었다.

 무영은 무환이 유독, 미루가 음식을 차리곤 하는 탁자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알아채고 그 앞을 막아섰다.

 “기별도 없이 웬일이냐?”

 “그 작은 아가씨, 누구야?”

 무환이 대뜸 물었다.

 무영이 눈썹을 치켜떴다.

 “그건 왜?”

 “인간이던데.”

 “그래서?”

 “그림자가 있던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그러자 무환이 슬쩍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무영과 똑같다 할 정도로 분명 닮은 얼굴이나, 풍기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무영이 설산의 검은 범이라면, 무환은 뜨거운 평야의 사자였다.

 무환은 잠시 무영을 바라보다,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무영, 그리 노려보면 무서워. 누가 보면 그 아가씨가 네 부인이라도 되는 줄 알겠구나.”

 “말장난은 그만해라.”

 “말장난이라니? 그저 사랑스러운 형제의 견해 정도로 생각해 줄 수는 없겠나?”

 무영은 머리가 지끈거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환은 항상 저런 식이다.

 끝도 없이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혼을 쏙 빼놓는 데는 아주 도가 텄다.

 무영은 눈을 질끈 감고 툭 내뱉었다.

 “웬일이냐고 물었을 텐데. 그것부터 말해라.”

 “일은 무슨 일? 이 궁에 내가 못 올 일이라도 있어? 애초에 네 궁도 아니고. 나도 원래 여기 살았다고. 얼마간 떠나있었을 뿐이지.”

 “얼마간? 네놈에겐 백몇 년쯤은 얼마간이냐?”

 “우리에게 그런 수로 세는 시간은 별 의미가 없다는 걸 나보다 더 잘 알텐데, 새삼스레 왜 그러나. 혹여,”

 무환의 시선이 돌변하더니 무영에게 날카롭게 가 꽂혔다.

 “그 작은 인간 아가씨와 함께 지내더니, 인간처럼 시간을 재기 시작한 거야?”

 “헛소리.”

 “글쎄,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겠지. 안 그러냐? 언제나 나보다 현명하신 무영 님.”

 됐다. 그냥 내가 말을 안 하고 말지.

 무영은 더 말하기 싫다는 의미로 무환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무환은 씽긋 웃더니 문득 얼굴에서 장난기를 지웠다.

 무환이 무영의 맞은편에 다가와 앉더니, 사뭇 진지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진짜 어쩐 일이야? 인간을 다 데려오고. 거기다 그림자가 있는 걸 보아하니, 보통 인간은 아닌 것 같던데. 너도 이유가 있어서 데려왔을 거 아니냐.”

 “그래. 이유야 있으려면 있는 법이지.”

 무영은 어떤 말로 핑계를 댈까 고민했다.

 무환은 아직 모른다.

 수천 년 전, 목숨을 내건 자가 마지막 순간에 무영에게 퍼부은 저주가 있다는 걸.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명을 찾아 헤매었다고.

 무영의 일이기 때문에 굳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무영과 동등한 위치를 가지는 무환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묘하게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했다.

 “……그저, 그림자를 보고 데려왔을 뿐이다. 인간 주제에 그림자가 있는 게 하도 이상해서.”

 “그래? 저 인간이 죽을 날은?”

 “그건 아직 멀었어.”

 “그렇단 말이지?”

 무환은 무언가 말하려다 그저 입 안으로 씹어 삼켰다.

 그 작은 인간을 보았을 때, 무영은 알아보지 못하는, 무환이기 때문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 있었다.

 그러나 왠지 무영에게 그것까지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 아가씨가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뭐.’

 무환은 괜히 딴소리를 했다.

 “그런데, 그 아가씨. 퍽 귀엽던걸. 눈은 잔뜩 부어가지고 말이야. 그런데도 예쁘장하더라고. 그리고 나를 너로 착각하더라. 나더러, ‘무영 님. 검은 머리가 더 멋지세요. 그리고 지금 얼굴이 더 잘생기셨어요!’ 하던데.”

 무환이 허풍을 조금 섞어 떠든다는 것을 모르는 무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건방진 것이…….”

 “그리고 말이야. 내가 조금 골려준다고 어깨를 살짝 끌어안았거든. 그랬더니 얼굴이 아주 발갛게 달아올라서는…….”

 무환이 갑자기 느껴지는 찬 기운에 말을 흐렸다.

 “뭘 어쩌고 어째?”

 무영의 회녹색 눈동자가 매섭게 번득였다.

 손을 가까이 댄다면 베일 듯 날카로운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왜, 왜 그래. 형제.”

 “다시는 손대지 마라.”

 “알겠어, 알겠어! 진정 좀 해. 그저 장난이었다니까.”

 “내가 데려온 인간이다. 괜한 호기심으로 건드리거나 농 걸지 마.”

 “알겠다니까.”

 무환이 다시 한 번 확답을 하고 나서야 무영의 기세가 차츰 가라앉았다.

 무환은 흥미로웠다.

 ‘무영이 인간 하나에 저렇게까지 반응한단 말이지. 별일도 아닌데.’

 갑자기 마구 장난질에 구미가 당겼다.

 그때, 조심스러운 손길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영 님. 계세요?”

 미루의 목소리였다.

 무환이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 그럼 나는 이만 가 보도록 하지.”

 “얼른 가버려.”

 무환이 미루를 좀 더 속여먹을 작정으로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는 걸 모르는 무영은 귀찮다는 듯 손짓을 했다.

 무환이 생긋 웃고 자리를 떴다.

 무영은 무환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 미루에게 답했다.

 “들어오너라.”

 “네에.”

 미루가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도 한상 차린 쟁반을 받쳐 든 채였다.

 “아침 식사를 가져왔어요.”

 그렇게 말하는 미루의 눈은 여전히 퉁퉁 부어 있었다.

 ‘그 아가씨. 퍽 귀엽던걸. 눈은 잔뜩 부어가지고 말이야. 그런데도 예쁘장하더라고.’

 갑자기 무환이 신 난 목소리로 지껄였던 말이 생각난다.

 무영이 인상을 팍 쓰자 미루가 속으로 겁을 집어먹었다.

 ‘어쩜 좋아. 음식이 마음에 안 드시나 봐. 어쩌지. 역시 무영 님은 내가 시중드는 게 시원찮다고 생각 하시나봐.’

 안절부절못하던 미루는 문득 무영의 은발을 발견하고, 방금 전 복도에서 본 무영을 떠올렸다.

 ‘어라, 머리칼 색이…….’

 그러다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던 감촉이 떠올라 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는 통에 무영의 머리칼에 대한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미루는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서둘러 물었다.

 “저어, 무영 님. 혹 식사가 성에 차지 않으시면 치우고 새로 해 오겠습니다.”

 그러자 무영이 잠에서 깨듯 퍼뜩 고개를 들었다.

 “뭐? 아, 아냐. 됐다. 이리 내.”

 미루는 할 수 없이 쟁반을 들고 다가가 탁자 위에 상을 차렸다.

 무영은 짜증스러운 손길로 수저를 집어 들었다.

 자꾸 왜 무환의 능글거리는 웃음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맛없다. 다 맛없단 말이다.”

 미루는 무영이 타박을 하자 눈치를 보며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맛이 없으시면, 이만 물리고…….”

 “시끄러워.”

 얼마 후, 역시나 싹싹 비워진 그릇을 잔뜩 담은 쟁반을 들고, 미루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방을 향해 뒤뚱뒤뚱 걸어갔다.

 

 ***

 

 아침 식사를 물린 후, 무영은 유기를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기가 왠지 흐트러진 모습으로 들이닥쳤다.

 “부, 부르셨습니까, 무영 님.”

 “왜 그리 허둥대느냐?”

 “어휴, 그게.”

 유기는 이제야 한숨 돌리는 듯,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아침에 미루 님 얼굴이 말이 아니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어제저녁에 할머님의 장례도 모셨고, 영 몸 상태도 안 좋아 보이시기에 오늘 하루는 쉬자고 하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얼음 주머니를 가지러 나간 사이에 미루 님이 없어지셨지 뭡니까? 그래서 미루 님을 찾아다니느라.”

 “그 아이라면 방금 전에 내 아침식사를 들고 왔다.”

 “이런, 미루 님! 기어코! 제가 한발 늦었네요. 오늘은 기필코 쉬시게 만들려 했는데.”

 유기는 분하다는 듯 왼손바닥에 주먹을 말아 쥐고 내리쳤다.

 무영이 기다렸다는 듯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게 다 네가 그 아이에게 눈을 붙이고 있지 않아서 생긴 일 아니냐. 그러라고 너를 붙여 놨더니. 심지어 오늘 내게 오기 전에 복도에서 무환을 마주친 모양이다.”

 “무환 님을요?”

 유기가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무환 님이 돌아오셨습니까?”

 “그래. 갑자기 와선 귀찮게 여기저기 건드리고 다닌다.”

 “미루 님과 마주쳤다고요. 건드리고 다니신다고요. 그래서 무영 님의 심기가 불편하시군요. 후후…….”

 유기가 의미심장하게 웃다 못마땅한 무영의 눈빛을 애써 외면했다.

 “그, 그래서. 제게 주의를 주려 부르신 겁니까?”

 “그래. 좀 더 가까이 붙어 지켜보아야겠다. 아무래도 무환이 심상치 않아.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게 즉각 보고해라.”

 “네. 그런데, 무영 님.”

 유기가 살풋 웃음을 웃었다.

 “미루 님은, 생각보다 강하십니다. 무영 님의 생각처럼 마냥 나약하지 않아요.”

 진월에게 멋지게 한 방 먹였던 일을 떠올리는 거였다.

 무영은 그런 유기를 지켜보다,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오늘, 그 아이를 데리고 외출이라도 하거라. 필요한 삯은 내가 보내줄 터이니.”

 “외출이요?”

 “영령국에서는 평생을 방 안에만 숨어 지냈던 아이다. 밤에도 집 울타리 밖으로는 나가본 적이 손에 꼽는 것 같더구나.”

 “아아. 네, 알겠습니다.”

 “나갔다 돌아오면, 지쳐서 방에 쓰러져 자겠지. 그럼 골치 아프게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도 않을 테니 딱 잘 되었다.”

 무영이 손에 턱을 괴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이러나저러나, 무영은 미루를 꽤나 신경 쓰고 있는 게 맞다.

 스스로만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지.

 “예, 무영 님. 무사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유기가 말갛게 웃으며 답했다.

 

 ***

 

 “정말요? 장에 구경을 간단 말예요?”

 “네. 얼른 옷부터 갈아입으세요.”

 유기가 흥분으로 상기된 미루의 뺨을 가볍게 문지르며 웃었다.

 미루는 가슴이 콩콩 뛰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장이라니, 살면서 한 번도 장에 나가본 적이 없다.

 장은 항상 대낮에 서서 해가 지면 정리를 하니까.

 할머니가 사온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장터가 어떤 광경일지 상상하는 게 다였다.

 미루는 마음이 급해 자꾸만 윗도리에 팔을 잘못 꿰었다.

 “미루 님, 장 안 떠납니다. 천천히 하세요.”

 “네. 그런데 너무 기대가 되어서.”

 미루는 간신히 옷을 모두 챙겨 입었다.

 옥빛 치마에 감색 웃옷을 받쳐 입었다.

 그 위에 반만 묶어서 늘어뜨린 검은 머리칼이 찰랑였다.

 미루가 그간 입어본 적 없는 귀한 옷감으로 지은 고운 옷이었지만, 지금의 미루에게는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나가도 되나요?”

 “아이고, 미루 님. 천천히 하시라니까요.”

 서둘러 방을 나서는 미루의 뒤를 유기가 황급히 따랐다.

 통통 튀는 걸음걸이로 복도를 지나던 미루는 복도 끝에 서 있는 인영을 발견했다.

 “어라? 무영 님!”

 미루 대신 유기가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그 소리에 무영이 고개를 돌려 미루 쪽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의 위에, 보랏빛이 감도는 검고 긴 옷이 맵시 있게 걸쳐져 있었다.

 긴 은발은 느슨하게 하나로 묶어 뒤로 늘어뜨리고, 머리에는 챙이 넓은 삿갓을 썼다.

 얼굴에 삿갓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으나, 무영의 미모는 조금도 가려지지 않았다.

 “무영 님이 어쩐 일이세요? 외출복까지 전부 갖춰 입으시고.”

 무영의 바로 앞까지 다가선 유기가 물었다.

 “시끄럽다. 유기, 넌 궁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내가 데리고 가마.”

 “예? 아까는 분명, 저더러…….”

 예까지 말한 유기가 뭔가 알겠다는 듯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섰다.

 “그럼, 다녀오세요. 미루 님, 무영 님과 함께 가시면 되겠습니다.”

 “네? 유기 님은 함께 가지 않고요?”

 “내가 마침 장에 볼일이 있어 그런다.”

 유기만이 무영의 어투가 변명에 가깝다는 것을 눈치챘다.

 “후후후. 그럼요. 무영 님이 볼일이 있으시니 마침 딱 잘 되었습니다. 자, 얼른 나가세요!”

 유기가 미루를 무영에게로 떠밀었다.

 유기는 얼결에 무영과 함께 궁을 나서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유기가 오른손을 높이 들고 팔랑팔랑 흔들고 있었다.

 

 ***

 

 무영은 유기를 미루와 함께 보내기로 해놓고, 다시 생각하니 안 될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루의 이야기를 하며 느물대던 무환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미루가 유기와 장터에 간다면, 무환이 따라붙어 수작질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쓸데없이 눈치만 빠른 유기 놈이 히죽대는 통에 잔뜩 신경질만 올랐다.

 그런 무영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루는 무영의 발에 눈을 고정한 채 졸래졸래 뒤를 따랐다.

 무영의 보폭은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고 걸음걸이도 일정하다.

 그러다 무영이 문득 멈춰서는 바람에 미루가 잠깐 무영을 스쳐 지나갔다.

 “왜, 왜 멈추십니까?”

 미루가 종종걸음으로 뒷걸음질 쳐 다시 무영의 약간 뒤로 섰다.

 그러자 무영이 미간을 좁히며 미루를 돌아보았다.

 “왜 뒤에서 그렇게 졸졸 따르느냐?”

 “네?”

 “왜 옆에서 걷지 않고 뒤에서 따라오느냔 말이다.”

 “그것이…….”

 미루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눈만 데룩데룩 굴렸다.

 일부러 그리 걸은 것도 아니었고,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무영의 뒤를 졸졸 쫓고 있었다.

 그때 미루의 눈앞에 커다란 손이 내밀어 졌다.

 곱고 길쭉한 무영의 손이었다.

 미루가 그 손을 가만 내려다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기다리다 못해 무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손을 잡으란 말이다.”

 “네? 손, 손을요?”

 “그래. 그냥 두면 계속 개처럼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올 게 뻔하니, 내 손을 잡고 걸어.”

 미루가 잠시 머뭇거리자, 무영이 손을 뻗어 미루의 손을 거머쥐었다.

 동그랗게 말아 쥔 미루의 작은 손이 무영의 손안에 잡혔다.

 “이제 가자.”

 무영이 걸음을 옮기자 미루의 몸이 절로 무영의 옆자리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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