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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5장. 신계(2)
작성일 : 18-09-13 00:22     조회 : 247     추천 : 0     분량 : 8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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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루가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것은 의자에 앉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무영이었다.

 “무, 무영…….”

 미루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다 비틀거리자 무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천히 움직여라. 정신을 잃은 너를 또 옮기기는 싫으니.”

 “정신을 잃어요?”

 그러고 보니, 목욕을 마치고 나서의 기억이 없다.

 미루는 푹신한 깃털 이불을 걷어냈다.

 이제 보니 그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미루보다 훨씬 덩치가 큰 무영은 의자에 앉아 있는데, 자기는 이렇게 큰 침대에 있자니 민망해졌다.

 미루는 조심조심 침대에서 내려와 방바닥에 내려섰다.

 “…….”

 “…….”

 “무영 님, 저 이제 뭘 할까요?”

 “그걸 왜 내게 묻지?”

 “제가 모르겠으니까……. 아, 여기 청소라도 할까요? 저, 집안일 하나는 잘 합니다.”

 미루가 생각났다는 듯 활기차게 말했으나, 청소하기에는 방이 너무 말끔했다.

 미루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무영 님, 미루 님. 차를 가져왔습니다.”

 “들어와.”

 무영의 대답이 떨어지자 방문이 열리고 유기가 주전자와 찻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미루 님, 여기 앉으세요.”

 유기가 쟁반을 탁자 위에 올려놓더니 미루의 등을 떠밀어 무영의 맞은편에 앉혔다.

 미루는 왠지 무영과 마주 보는 게 어색해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유기가 찻잔을 탁자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조심스레 차를 따랐다.

 달큰한 향이 방 안에 퍼졌다.

 “유기, 나가 있어라.”

 “예.”

 무영의 명령에 인사를 한 유기가 미루를 향해 씽긋 웃어 보이고 방 밖으로 나갔다.

 미루는 무영이 흰 손을 들어 찻잔을 들고 입가로 가져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품위 있고 매혹적이다.

 차라곤 마셔본 적 없는 미루는 어설프게 무영을 흉내 내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무영이 우습다는 듯 웃음을 피식 내비쳤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미루가 찻잔을 내려놓자 달그락, 소리가 났다.

 “저, 무영 님.”

 “…….”

 “무영 님!”

 “말해라.”

 “대답을 하지 않으시면 제가 말을 할 수가 없어요. 할머니가 언제나 상대방이 부름에 답한 후에 말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휴우…….”

 무영은 두 눈을 감고 인상을 찌푸렸다.

 미루는 따박따박 말을 잘도 늘어놓는다.

 한소리 하려 했는데, 눈을 다시 떠보니 미루는 또 순식간에 어두운 얼굴이 되어 있다.

 “저, 무영 님.”

 “말해라.”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계속 말해.”

 “저, 우리 할머니를 찾아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감옥에 끌려간 후로 할머니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무영 님이 집에도 할머니가 안 계신다 하셨고…….”

 “네 할머니는…….”

 무영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미루가 울음을 참으려는 듯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무영을 똑바로 보았다.

 “할머니는 이미 제 곁을 떠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손 놓고 가만있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뭐든 하겠습니다. 제발 할머니를 찾아주세요.”

 무영이 손가락으로 뾰족한 턱을 어루만지며 미루를 구석구석 훑어보았다.

 이 조그만 여자아이는 왜 언제나 이렇게 절박할까?

 가진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뭐든 하겠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한다.

 “또 뭐든 하겠다고?”

 “네, 뭐든.”

 게다가 다짐을 하다못해 비장하기까지 하다.

 탁자 위에 올린 두 주먹과 인상을 쓰고 꾹 다문 입술이 사뭇 진지하다.

 무영이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뭐든 하겠다는 말이냐.”

 탁자를 빙 돌아 미루의 옆에 선다.

 “네가 분명 뭐든 하겠다고 말한 게 벌써 두 번째지? 그럼, 내 요구를 두 가지 들어주겠다는 것이냐?”

 “네. 꼭 두 가지가 아니더라도, 바라시는 게 있다면 제가 무슨 일을 해서라도 드리겠습니다. 제 부탁만 들어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어요.”

 “그리하면, 내가 네게 무슨 짓을 하더라도 가만있겠느냐?”

 “네?”

 무영이 허리를 숙이자 미루의 눈이 커졌다.

 무영의 은빛 머리칼이 휘장처럼 흘러내려 미루의 어깨를 덮었다.

 무영의 손가락이 턱에 와 닿자 미루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미루의 턱을 붙잡은 무영의 손이 스르르 움직여 미루의 머리칼을 헤집고 뒷머리를 지탱했다.

 미루의 작고 둥근 입술을 향해, 무영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

 

 미루는 점차 가까워지는 무영의 얼굴에 그만 눈을 꾹 감아버렸다.

 미루는 무영이 입을 맞추려 한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루로써는 무영이 제게 입을 맞출 수도 있다는 전제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휘늘어진 흰 속눈썹 아래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회녹색 눈동자와 마주하자, 얼굴이 홧홧해 견딜 수 없었을 뿐이었다.

 무영은 미루가 눈을 감자 다가가던 것을 멈추었다.

 뭘 알고 이러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지금 미루는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애초에 조금 놀려주려고 했을 뿐이었다.

 허약하고 가난한 인간 주제에 신(神)인 제게 제법 힘을 주어 약조하는 모양새가 귀여워서…….

 음? 귀엽다고?

 순간 무영은 약간 놀라 미루의 뒷머리를 붙잡았던 오른손을 탁 털어 떼어냈다.

 “아얏.”

 그 등쌀에 미루의 머리가 뒤로 휘청했다.

 무영은 불퉁한 얼굴로 뒷목을 문지르는 미루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씻기고 고운 옷을 입혀 놓으니 사뭇 달라 보이긴 했지만, 한낱 인간을 귀엽다고 생각하다니.

 역시 많이 피로한 모양이다.

 “나는 이만 나가 보겠다.”

 “무, 무영 님!”

 무영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미루가 다급히 불렀다.

 무영은 말없이 미루를 내려다보다, 답을 하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던 미루의 고집이 떠올라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왜.”

 “그래서, 할머니는…….”

 “알겠다, 알겠다. 네 할머니를 찾으면 기별하마.”

 “가, 감사합니다!”

 짜증스러운 대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루는 목소리를 키워 허리를 연신 꾸벅였다.

 “이제 나가도 되겠느냐?”

 “아, 저, 그럼 그에 대한 보답은……. 제가 무영 님을 위해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흐음. 무영이 팔짱을 꼈다.

 미루의 동그란 눈과 일자로 다문 입매가 야무졌다.

 또, 또. 미루가 귀여워 보인다.

 피곤하긴 어지간히 피곤한가 보다.

 빨리 처소에 들어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영은 골치를 문지르며 미루에게 물었다.

 “네가 대체 무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집안일은 잘한다 하였으니, 내 시중이라도 들 테냐?”

 “아, 그럴까요?”

 무영은 아무 말이나 던졌는데, 미루가 신이 나서 두 손을 마주친다.

 무영이 눈을 치켜뜨는데, 미루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요, 청소도 잘하고 빨래도 잘하고 밥도 잘합니다. 또, 과일도 잘 깎고 과자도 잘 만들고요. 할머니가 당신보다 제 솜씨가 낫다고도 하셨어요. 또, 옷도 잘 짓고 안마도 잘합니다. 이 정도면 무영 님 시중도 잘 들 수 있겠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미루가 칭찬을 기대하는 강아지처럼 무영을 올려다보았다.

 무영의 표정이 제법 짜증스러운데도 마냥 해맑다.

 결국, 무영이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네 맘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무영 님, 제가 열심히 일해 보겠습니다!”

 미루의 다부진 인사를 매정하게 뒤로하고 무영이 방문을 소리 나게 닫고 나갔다.

 “무영 님. 어디 불편하세요?”

 미루의 방 앞에 대기하고 있던 유기가 무영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아니.”

 “굉장히 얼굴이 매섭습니다. 원래도 편안한 얼굴은 아니시지만.”

 “뭐라고?”

 “아닙니다. 미루 님은 안녕하십니까?”

 미루의 이름을 듣자 무영의 인상이 더 험악하게 구겨졌다.

 무영이 얼굴 앞으로 흘러내린 은발을 거칠게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냐고? 안녕하다 못해 도리어 내가 혼절하게 생겼다. 도무지 겁이라곤 없고, 인간 주제에 내게 제 할 말은 따박따박 다 해 댄다. 가진 것도, 힘도 없는 것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호언장담을 일삼고. 딱 귀찮아서 멀리하고 싶은 부류다.”

 “으음.”

 유기가 소매 끝으로 입가를 가리고 나지막이 웃었다.

 “무영 님, 전에 없이 말이 많아지셨네요. 미루 님과 꽤 즐거운 대화를 하셨나 봅니다.”

 “이제 너까지 헛소리냐?”

 “헛소리라뇨. 후후후.”

 무영은 의미심장하게 가늘어지는 유기의 눈매에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한 번만 더 웃으면 쫓아내 버리겠다.”

 “아니, 무영 님. 제가 언제 웃었다고 그러세요. 무섭습니다.”

 “무섭다는 게 말대꾸는 어찌 그리 잘하지?”

 “송구합니다.”

 무영은 순간 유기의 말장난에 휘말렸다는 것을 깨닫고, 감정을 추슬렀다.

 평소와 거의 같은 무표정한 얼굴을 되찾은 무영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미루의 방문 앞을 떠났다.

 “내일부터 저 아이에게 이 성의 일을 가르쳐라. 내 시중을 들기로 하였다.”

 “알겠습니다, 무영 님.”

 유기가 허리를 깊이 숙이고 무영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기다렸다.

 무영이 완전히 떠나고 나자, 유기가 고개를 들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무영 님, 솔직하지 못하시군요.”

 

 ***

 

 미루는 이른 아침부터 유기를 졸졸 쫓아 너른 궁을 누비고 있었다.

 무영의 시중을 들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가장 먼저 주방의 위치를 파악하고, 무영이 낮에 머무르는 방과 침소를 안내받고 나니 딱히 배울 것이 없었다.

 유기가 미루를 데리고 돌아다니는 동안, 궁 안의 사람들의 이목이 온통 미루에게로 쏠렸다.

 “저 아이야?”

 “그저 평범한 인간 여자아이 같은데.”

 멀찌감치 서서 미루를 구경하는 무리에서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

 “무영 님이 직접 데려왔다기에 어떤 인간인가 했더니.”

 “그림자가 붙은 인간이라는 것 말고는, 굳이 볼 것도 없구나.”

 “요술을 부리는 게 아니냐?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인간이 그림자를 가져?”

 “쉿, 다들 말을 아껴라.”

 높은 목소리가 주의를 주자 수군거림이 순식간에 멈추었다.

 무리의 한가운데에, 미루의 새카만 뒤통수를 매섭게 주시하는 이가 있었다.

 

 ***

 

 “어휴. 무영 님도, 어쩜 그렇게 변덕이세요? 저더러 미루 님을 모시라 하시더니, 이제는 일을 가르치라뇨. 모시는 분께 제가 하는 일과 같은 일을 어찌하게 한단 말이에요.”

 무영이 오늘은 방에서 점심식사를 하겠다고 하여, 식사를 방으로 들여야 했다.

 유기는 제가 최소한의 일만 가르쳤으면서도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미루는 유기와 함께 무영의 식사를 쟁반에 옮겨 담으면서 답했다.

 “제가 무영 님께 시중을 들겠다 말했어요.”

 “미루 님이요? 그럴 리가요. 우리 순한 미루 님이 무영 님의 명을 거역하지 못하신 게죠. 무영 님이 보통 무서우신 게 아니잖아요.”

 “정말 아닌데……. 그리고 무영 님, 무섭지 않아요. 조금 차갑긴 하시지만, 성품이 악독하신 분은 아닌 것 같던걸요.”

 “흐음.”

 미루는 유기가 말을 멈추고 눈웃음을 짓자 어리둥절해 고개를 갸웃했다.

 “미루 님은, 착하기도 정말 너무 착하셔요. 제게 언제까지 존대하실는지. 이 유기는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가려요.”

 유기가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얼굴을 가리며 우는 시늉을 했다.

 “왜, 왜 우세요…….”

 되려 홀딱 속아 넘어간 미루가 안달복달이다.

 그때, 유기의 어깨를 붙들고 있는 미루를 누군가 강하게 밀쳤다.

 미루가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무영의 식사를 준비하던 쟁반 위로 와장창 엎어졌다.

 연보라 비단 치마에 음식이 쏟아지며 얼룩이 잔뜩 퍼졌다.

 “어머, 어쩜 좋아! 미루 님, 괜찮으세요?”

 “난 괜찮아요.”

 미루가 몸을 일으키는데,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미루를 향해 톡 쏘아붙였다.

 “누군가 했더니, 네가 바로 그 인간이구나? 무영 님이 데려오셨다는.”

 미루가 뒤를 돌아보았다.

 연한 분홍빛이 감도는 머리칼을 곱게 틀어 올린 여인이 뒤에 다른 여인들을 잔뜩 거느리고 서 있었다.

 미루를 유심히 지켜보며 쑥덕대던 그 무리였다.

 그 무리의 가장 앞에 나서 있는 여인은 외모만 보아하면, 이 세상에 둘째 가라면 서운할 단아한 미인이었다.

 그러나 웃음을 가득 담고 있는 두 눈은 표독스럽기 그지없었다.

 “진월 님.”

 유기가 먼저 예를 갖추고 고개를 숙였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미루를 바라보는 이 여인은, 달의 신 진월이었다.

 뒤이어 미루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월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예, 제가 그 인간이 맞습니다.”

 “그래, 예의범절은 제대로 익힌 것 같구나. 그 소문은 들었느니라. 무영 님의 시중을 들게 되었다고?”

 “그렇습니다.”

 진월은 미루의 까만 정수리를 흘긋 보고, 풍성한 속눈썹을 내리깐 채 제 손톱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헌데.”

 “…….”

 “어디 감히, 무영 님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함부로 입을 놀리고 있느냐? 인간의 더러운 정기라도 섞여들면 어쩌려는 것이냐?”

 눈치를 보던 유기가 끼어들었다.

 “진월 님,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종년이 입을 여느냐?”

 진월의 뒤에 선 측근의 지청구에 유기가 입을 꾹 다물었다.

 미루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이었다.

 갑자기 나타나 신경을 긁고 있기는 하지만, 진월의 말이 영 틀린 것도 아니었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 떠드는 것은 분명 잘못된 태도였다. 미루의 불찰이다.

 그때.

 “네게 그림자가 있다 하여, 뭐라도 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하찮은 인간이 어찌 그림자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나마 우리와 비슷한 점이라도 있다는 것에 감사하거라. 알아듣겠느냐?”

 “……않습니다.”

 “뭐라고?”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미루는 고개를 들고 진월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그림자가 있다 하여, 행복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다못해 그저 평범하게 살 수도 없었다.

 미루는 어린 날, 밖에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실감한 죽음과, 그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할머니를 잊지 못한다.

 그런데 진월은 그림자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 한다.

 미루는, 잘못된 것에는 잘못되었다 말해야 한다 배웠다.

 다만, 우아하고 예의 바르게.

 미루가 살풋,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으며 웃었다.

 “진월 님의 지당하신 말씀 잘 되새기고 반성하겠습니다. 제가 제 그림자를 보고, 남들보다 우월하다 여긴다면 안 될 일이지요.”

 “그, 그래.”

 오히려 미루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바짝 벼르고 있던 진월이 당황했다.

 대들기라도 하면 그걸 꼬투리 잡아 벌을 주려 했더니, 미루가 그저 진월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루의 말이 이어지자 진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진월 님. 저는 그렇다 하여 이곳에서 그림자를 지닌 분들을 보고 위안하지도 않았습니다.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불행했다 해서, 이제는 남들과 비슷하기 때문에 감사해야 할 일은 없지 않습니까? 저는 무엇이 있든 없든, 그저 미루입니다. 우리 할머니께서 입이 닳도록 그리 말씀하셨어요. 미루는 그저 미루이니,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만은 잊지 말라 하셨습니다.”

 말끔하게 끝을 맺은 미루는 더러워진 제 치마를 내려다보고 진월에게 양해를 구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식사가 너무 늦어지면 무영 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실 터이니, 어서 옷부터 갈아입고 다시 식사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요.”

 미루는 마지막까지 예의를 차려 진월을 향한 미소와 인사를 잊지 않더니, 유기와 함께 자리를 떠나 버렸다.

 진월의 턱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해 있었다.

 진월은 미루가 자신을 이겼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 신사적으로 상황을 넘겼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 따위가, 감히…….”

 미루의 언사는 논리정연하고 차분해 진월이 물어뜯을 구석조차 없었다.

 무영 님이 직접 영령국에 내려가 데려왔다는 것만으로도 거슬렸는데.

 진월이 가녀린 어깨를 부들부들 떨자 앙다문 잇새에서 빠드득 소리가 새어나왔다.

 

 ***

 

 무영의 방문을 손마디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영 님. 미루입니다.”

 “그래.”

 미루가 큰 쟁반을 손에 받쳐 들고 어깨로 문을 밀어 열었다.

 그 조그만 몸으로 들기에는 버거워 보였으나, 미루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정확하게 무영의 탁자 위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시장하시죠? 죄송합니다. 식사 준비를 하다가 실수를 조금 하는 바람에 조금 늦었습니다.”

 “집안일은 잘한다더니?”

 “그러게 말입니다. 헤헤.”

 무영이 괜스레 핀잔을 주었지만 미루는 그저 헤실헤실 웃어넘겼다.

 무영은 음식을 앞에 두고 의자에 편안하게 앉았다.

 자세히 보니, 음식이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다.

 조금 덜 기름지고, 채소 위주의 반찬이 많다.

 게다가 그릇에 담긴 모양도 오밀조밀 앙증맞다.

 무영은 미루를 흘긋 넘겨다보았다.

 잔뜩 얼어붙은 자세로 두 손을 꼭 마주 잡고 있는 걸 보니, 미루가 한 음식이 맞나 보다.

 무영이 한술 뜨자 미루의 시선이 무영의 손을 그대로 따라 움직인다.

 “어, 어떠세요?”

 무영이 밥을 씹어 넘긴 것을 확인하고서 미루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맛없다. 평소 먹던 것보다 못하군.”

 삽시간에 미루가 침울하게 축 늘어졌다.

 “죄송합니다. 할머니는 항상 미루가 한 밥이 최고라 하셨는데……. 할머니는 언제나 제 밥만 드셔서 그랬나 봅니다. 무영 님, 얼른 다시 해오겠습니다.”

 “됐어.”

 미루가 당장이라도 상을 치울 것처럼 굴자 무영이 딱딱하게 쳐냈다.

 그리고는 미루가 가져온 한 상을 남김없이 싹싹 비웠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미루가 어리둥절해 고개를 갸웃하자 무영이 퉁명스레 말했다.

 “난 본디 음식을 남기는 걸 싫어한다. 맛있어서 먹은 것이 아니니 그만 쳐다봐.”

 “아, 그러셨군요. 그러면 무영 님! 오늘 저녁부터는 식사를 더 맛있게 준비해 오겠습니다!”

 미루가 두 주먹을 힘차게 들어 보이며 외쳤다.

 무영이 턱을 괴고 코웃음을 쳤다.

 “저녁은 됐다. 상 물려라.”

 “네? 저녁은 안 드실 거예요?”

 “내 알아서 하마. 지금부터는 좀 쉬어라.”

 “그렇지만 무영 님 시중을 들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저 쉬겠습니까.”

 미루는 부지런히 쟁반에 빈 그릇을 옮겨 담으며 종알거렸다.

 정말 한 마디도 지질 않는다.

 무영은 등 위에서 달랑거리는 미루의 새카만 머리꽁지를 응시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할머니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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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장. 신계(1) 2018 / 9 / 13 250 0 7177   
4 3장. 미루, 사라지다 2018 / 9 / 13 265 0 7495   
3 2장. 오늘 다시 오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2018 / 9 / 13 233 0 7652   
2 1장. 가자. 2018 / 9 / 13 254 0 7578   
1 프롤로그. 2018 / 9 / 13 437 0 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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