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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4장. 신계(1)
작성일 : 18-09-13 00:21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7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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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영은 곧장 왕궁으로 향했다.

 미루가 태어나자마자 죽이려고 한 것도 모자라 평생을 감시하고, 끝내는 다시 궁으로 잡아간 왕이라는 놈을 찾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무영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미루를 데리고 떠나는 것이 먼저였다.

 지하에서 느껴지는 좌절감과 공포가 어마어마했다.

 “멈춰라!”

 무영이 지하 감옥 입구로 다가가자 지키고 있던 병사가 소리쳤다.

 ‘건방지군.’

 무영의 고운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무영이 고개를 까딱하자 멱살이 들린 듯 병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컥, 컥!”

 “뭐야! 멈춰!”

 깜짝 놀라 달려들던 나머지 병사들도 순식간에 똑같이 위로 들렸다.

 무영이 다시 고개를 까딱하자 병사들이 한꺼번에 바닥으로 팽개쳐졌다.

 무영은 병사들이 어지럽게 쓰러진 계단을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위에 지키고 선 수보다 훨씬 많은 병사가 감옥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 너머로 미루의 기운이 분명히 느껴졌다.

 다들, 창을 겨누거나 명령하지 않았더라면 목숨은 부지했을 터인데.

 무영의 손짓 한 번에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고 나가떨어졌다.

 인간의 목숨이라는 것이 이렇게 덧없다.

 미루의 목숨 또한 덧없기 그지없다.

 ‘그 재수 없는 할멈의 말대로, 내게 필요한 자만 아니라면 이런 수고로운 짓은 하지 않았을 거다.’

 무영은 수천 년 전의 저주를 떠올렸다.

 하급 신인 주제에 목숨까지 버려가며 무영을 저주했던 자.

 ‘보통 인간과 같지 않은 자로 인해 네가 변화하기 전까지, 이 저주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무엇이 변해? 그것도 한낱 인간으로 인해서?

 무영은 코웃음을 쳤다.

 ‘가소롭기 짝이 없군.’

 무영은 어느새 미루가 갇힌 감옥 앞에 섰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미루의 동그란 얼굴에서는 특별한 것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미루에게 그림자가 있는 이상, ‘보통 인간과 같지 않은 자’ 인 것은 틀림없었다.

 수천 년 간 온 영령국을 다 뒤져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인간이다.

 일단 곁에 두어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그 결과가 어찌 되든.’

  무영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자.”

 

 ***

 

 미루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손을 내밀었다.

 무영은 내민 손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고 있었다.

 미루가 그 위에 제 손을 올려놓자 긴 손가락이 감기며 미루의 손을 붙잡았다.

 “나와.”

 짧은 말과 함께 무영이 미루를 끌어당겼다.

 “무, 무영 님.”

 미루는 곧장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무영을 따르며 다급하게 외쳤다.

 무영은 대답하지 않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큰 보폭으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미루의 앞에 위로 향하는 계단이 무지막지하게 이어져 있었다.

 미루는 무영의 걸음에 맞춰 반쯤은 뛰면서, 숨을 들이마셨다.

 “힉.”

 계단에도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늘어져 있었다.

 “무, 무영 님.”

 “…….”

 “무영 님!”

 “시끄럽다, 소리치지 마.”

 미루가 조금 목소리를 높이고 나서야 딱딱한 대답이 돌아왔다.

 미루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조심스레 물었다.

 “모조리 무영 님이,…… 죽이신 거예요?”

 “……죽이지 않았다.”

 왠지 사실대로 말하기가 불편하다.

 “그, 그럼.”

 “정신을 잃은 것뿐이야.”

 무영이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계단의 끝이 보였다.

 어느새 어둠이 지천에 깔리고 달이 은은하게 빛을 뿌리고 있었다.

 무영이 여태껏 붙잡고 있던 미루의 손을 놓았다.

 그제야 미루가 얼굴을 붉히는데, 무영은 아무렇지 않게 미루에게 바짝 다가섰다.

 “왜, 왜.”

 “꽉 붙잡아라.”

 그러더니 무영은 미루의 허리를 단단히 붙들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무영 님!”

 미루는 지난번과 똑같이 저도 모르게 무영의 허리를 끌어안더니, 눈을 꼭 감고 비명을 질렀다.

 달라진 게 있다면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나와 함께 가자.”

 무영의 나직한 목소리에 미루가 눈을 반짝 떴다.

 “시, 싫어요!”

 “뭐?”

 “싫어요.”

 미루는 순간 코에 부딪힐 듯 가까운 무영의 가슴팍을 발견하고는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허공에 떠 있다는 건 그새 까먹은 모양이었다.

 한참 밑으로 멀어진 지면을 발견한 미루는 머리가 어질해 다시 눈을 꼭 감고 울상을 지었다.

 무영은 더 힘을 주어 자신을 끌어안는 미루의 작은 팔을 느꼈다.

 “할머니는, 어쩐단 말이에요.”

 “…….”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실지도 몰라요.”

 무영은 미루의 새까만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네 할머니는 게 없다. 내가 아까 보고 왔느니라.”

 “…….”

 실은 미루도 예상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슬픈 눈으로, 당신은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었다.

 그간 본 적 없었던 진지한 모습이었지만, 미루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무영이 보고 왔다니. 이제는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거기다가, 할머니가 집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고 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미루를 잡아갔던 사람들이 다시 오지 않으리란 보장 또한 없다.

 이윽고 미루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영 님.”

 “그래.”

 “절 데려가 주시겠어요?”

 미루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뚝뚝 묻어났다.

 무영은 그 목소리에서 묘한 기분을 느꼈으나, 이게 어떤 감정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래.”

 무영이 방향을 틀었다.

 

 ***

 

 “눈 떠도 좋다.”

 하늘을 나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던 미루는 무영의 나직한 목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와아…….”

 미루가 작게 탄성을 질렀다.

 미루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대한 성이 눈앞에 있었다.

 푸른 기와와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연노랑색의 불빛이 인상적이었다.

 “따라와.”

 무영이 먼저 걸음을 옮기며 명령했다.

 미루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영의 뒤를 따랐다.

 성으로 향하기까지는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분명 영령국과 비슷한데 미묘하게 다른 것들이 있었다.

 우선 정원 빼곡히 자라난 나무들.

 ‘이걸 나무라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기이한 모양새였다.

 위로 곧게 자란 것은 단 한 그루도 없었으며,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대체로 키가 작은 것들은 불투명했고, 키가 큰 것들은 나무 너머가 훤히 보일 정도로 반투명했다.

 미루는 그중 과실이 열린 나무 몇 그루를 발견했다.

 사과나 배처럼 둥글지 않고, 들쭉날쭉한 모양새였다.

 ‘만지면 아플까?’

 미루는 호기심을 못 이겨 과실의 뾰족한 부분에 검지를 살짝 갖다 댔다.

 툭!‘엄마야.’

 손을 대자마자 과실이 가지에서 뚝 떨어졌다.

 비틀거리며 그것을 받아낸 미루는 멀어져가는 무영과 손 안의 과실을 번갈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도로 붙여보려 애썼지만 이미 떨어진 과실이 붙을 리가 있나.

 결국 미루는 과실을 나무 밑에 몰래 내려놓고 무영의 뒤를 재빨리 쫓아갔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하늘이었다.

 말 그대로 ‘손에 닿을 듯이’ 노랗고 흰 별들이 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거대한 반딧불 같았다.

 미루는 별이 너무나 만져보고 싶었으나, 괜히 또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억지로 꾹 참았다.

 그러다 문득, 미루는 제 앞의 무영을 응시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일정한 걸음걸이로 앞을 향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은빛 머리칼.

 그의 부드럽게 늘어뜨린 머리칼과 이 기묘한 정원은 사무치게 잘 어울렸다.

 그의 뒷모습이 외롭고 고통스러워 보일 정도로…….

 

 ***

 

 한참을 걷고서야 성의 입구에 다다랐다.

 무영이 성 안으로 들어서자 복도에 서 있던 모든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무영 님.”

 “무영 님.”

 졸지에 함께 인사를 받는 꼴이 되어 버린 미루가 민망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들은 미루에게는 관심조차 없었다.

 무영이 지나쳐가면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갈 뿐이었다.

 미루는 그들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떤 자들은 미루와 무영처럼 그림자가 있는 한편, 대부분은 할머니처럼 그림자가 없었다.

 할머니가 이 세상은 넓고 미루가 알지 못하는 여러 일도 존재한다더니, 이런 걸 두고 한 말이었나 보다.

 ‘할머니…….’

 미루는 다시 할머니를 떠올리자 우울해졌다.

 미루만 감옥에서 빠져나오느라고 할머니가 어떻게 되셨는지 알아내지도 못했다.

 무영은 미루의 기분이 갑자기 축 처진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미루의 얼굴 또한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분만큼이나 어두웠다.

 그 침울한 감정이 너무나 무거워서, 고스란히 그것을 느끼는 무영은 다소 피로감을 느꼈다.

 무영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긴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도착한 방 앞에 섰다.

 “여기가 네가 지낼 방이다.”

 “여기가……?”

 미루의 눈이 댕그랗게 뜨였다.

 무영은 방 안을 보자마자 삽시간에 뒤집히는 미루의 감정선이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몇 초 전까지는 한없이 우울해 하더니, 지금은 한껏 놀라고 신기해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루가 난생처음 보는 크기의 호화로운 방이었다.

 미루와 할머니가 살던 집의 열 배, 아니 스무 배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무, 무영 님. 저 혼자 여기서 지냅니까?”

 “그럼 달리 누구와 함께 지내야 하느냐?”

 “아니, 그게 아니라…….”

 침대만 해도 네다섯이 누워도 넉넉히 잘 정도로 거대했다.

 애초에 바닥에 이불을 깔고 할머니와 함께 자던 미루에게 저런 호사스러운 침대라니.

 무영이 미루를 앞세워 방에 들여보내고 뒤에서 문을 닫았다.

 무영은 편히 앉으라는 말도 없다.

 미루는 앉고 싶었으나, 어디 앉아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여기도 의자, 저기도 의자. 게다가 바닥마저도 발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푹신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미루는 안절부절못하다 침대 옆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무영이 버릇처럼 눈썹을 추어올렸다.

 “도대체 왜 거기에 앉는 거지?”

 “전 여기가 편합니다.”

 무영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방에 널린 게 편한 자리에, 하다못해 침대도 있는데 굳이 가장 불편한 바닥을 골라 앉다니.

 다만 본인이 편하다니 무영이 더 할 말은 없었다.

 “네게 시종을 붙여 주겠다.”

 “아, 아닙니다! 제게 시종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이강.”

 미루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방문도 열리지 않았는데 웬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아니, 남자라고 하기엔 어렸으나 미루에게는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유기를 불러와.”

 “예.”

 짧은 명령과 그에 따른 짧은 대답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어린 남자는 삽시간에 사라졌다.

 미루가 놀란 가슴을 다스리기도 전에, 누군가 방문을 콩콩 두드렸다.

 “들어와.”

 무영이 답하자 방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갈색 머리를 말끔하게 넘겨 묶은 귀여운 인상의 여자아이였다.

 문을 닫고 들어온 여자아이가 인사를 했다.

 “무영 님, 부르셨습니까.”

 “유기. 앞으로 네가 모실 사람이다.”

 무영은 앞뒤 설명도 없이 무작정 미루를 가리켰다.

 그런데도 유기는 미소를 잃지 않고 미루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앞으로 아가씨를 모실 유기라고 합니다.”

 “네, 네. 안녕하세요?”

 미루는 멍한 미소를 지으며 마주 허리를 숙였다.

 호칭은 아가씨에다, 나를 모신다니.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미 두 번이나 무영과 하늘을 난 마당에, 더 못 일어날 일이 뭐가 있겠냐 싶기도 했다.

 무영이 미루의 맨발을 보고 살짝 얼굴을 찌푸리더니 명령했다.

 “유기, 목욕을 돕고 새 옷을 주어라.”

 “예, 무영 님. 아가씨, 저와 함께 가시겠어요?”

 “네에.”

 미루는 여전히 멍한 상태로 유기의 뒤를 따랐다.

 긴 복도를 지나며 유기가 친절히 물었다.

 “아가씨의 존함은 어떻게 되시나요?”

 “조, 존함……. 미루예요.”

 “미루 님, 좋아하는 향이라도 있으신가요?”

 “아, 아니, 별로…….”

 “그럼, 제가 알아서 미루 님이 마음에 들어 하실 만한 향으로 목욕물을 준비할게요.”

 “네, 고마워요.”

 “옷은 어떻게 준비할까요? 좋아하는 색 있으세요?”

 “아, 아니요.”

 “그럼 그것도 제가 알아서 준비할게요. 미루 님은 고우셔서, 뭘 입어도 예쁘실 거예요.”

 “고마워요…….”

 “미루 님, 종인 제게 존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씀 편하게 하셔요.”

 “할머니가, 처음 뵙는 사람에게는 예를 갖추어야 한다고…….”

 “미루 님! 여기, 여기로 들어오세요!”

 반쯤 혼이 빠져 웅얼거리는 미루를 유기가 활기찬 목소리로 외치며 욕실로 밀어 넣었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안 될 텐데요. 제가 물 온도를 잘 맞추어 볼게요. 미루 님, 시장하지는 않으세요? 목욕보다 식사를 먼저 하셔야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미루는 유기가 떠드는 소리를 귀 밖으로 흘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욕실 안에 김이 점점 피어올랐다.

 “미루 님. 옷 벗겨 드릴게요.”

 “네? 아, 아닙니다! 제가, 제가 벗을게요. 유, 유기 님은……. 잠시 뒤를 돌아 계시면…….”

 “제가 어찌 미루 님이 직접 하시게 두겠어요! 어서, 이쪽으로 등 돌리세요.”

 미루는 암만 말싸움을 해도 유기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로 유기에게 등을 돌려댔다.

 유기는 아주 솜씨 좋게 미루의 낡은 옷을 벗겨냈다.

 미루는 유기가 볼 새라 후다닥 나무 욕조 안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무슨 꽃인지, 푸른빛이 도는 보라색의 꽃잎들이 띄워져 있었다.

 유기가 호언장담을 하더니, 목욕물에서 풍기는 향은 정말 미루의 마음에 꼭 들었다.

 미루는 저도 모르게 뜨거운 물과 향기로운 냄새에 몸이 노곤하게 풀렸다.

 게다가 수증기마저 꽉 들어찬 곳에 있자니, 목욕을 마치고 일어설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고 현기증이 돌았다.

 “미루 님, 괜찮으세요?”

 큰 수건을 둘러주는데 미루가 휘청거리자 유기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네, 괜찮아요. 괜찮아요.”

 사실 괜찮지 않았다.

 어지럽고, 눈이 자꾸만 감겼다.

 따져보니 제대로 오랜 시간 잠을 잔 지 꽤 되었다.

 게다가, 방금 전에는 기절해 감옥에 끌려갔다가 간신히 도망쳐 나온 참이었다.

 미루는 마지막 기운을 짜내어 유기가 펼치는 옷에 팔을 꿰어 넣었다.

 제가 스스로 입겠다고 우길 정신도 없었다.

 옷을 갖추어 입고 욕실의 문을 열자마자 찬 기운이 훅 끼쳤다.

 순간, 미루는 눈앞이 아찔하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미루 님!”

 유기가 재빨리 미루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고 부축했다.

 “무슨 일이냐?”

 “무영 님.”

 언제 나타났는지 무영이 힘없이 늘어진 미루와, 그녀를 붙들고 있는 유기를 내려다보았다.

 “미루 님이 많이 지치셨나 봐요. 목욕을 마치고 나서 조금 힘들어하시더니, 쓰러지셨어요.”

 “정신을 잃었나?”

 “예, 기절하신 것 같습니다.”

 무영의 회녹색 눈동자에 물기를 머금고 늘어진 미루의 새카만 머리칼이 비쳤다.

 아무리 여자라지만 정신을 잃었을 때의 무게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유기가 직접 데려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무영은 약간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이강을 부르거나 다른 종에게 시켜도 되지만, 다른 이의 손에 맡기기에는 영 못 미더웠다.

 “내가 데려가겠다.”

 무영은 귀찮게 손이 많이 가는 아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예, 무영 님.”

 무영이 미루를 안아 올리자 유기가 뒤로 물러섰다.

 무영의 오른팔이 미루의 뒷목을 받치고, 다른 팔은 무릎 뒤를 지탱했다.

 미루의 검고 긴 머리칼이 뒤로 늘어지며 뽀얀 얼굴이 드러났다.

 무영의 눈이 미루의 가지런한 눈썹부터 감긴 눈두덩 위의 실핏줄, 귀엽게 솟은 코와 도톰한 입술을 훑었다.

 아직 물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얼굴에서 묘하게 평소답지 않은 분위기가 풍겼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조그만 게 여인다운 구석이 어디 있다고.’

 미루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무영은 짜증스럽게 눈을 꾹 감고 스스로를 꾸짖었다.

 무영이 걸음을 옮기자 그 뒤를 유기가 총총걸음으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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