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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3장. 미루, 사라지다
작성일 : 18-09-13 00:20     조회 : 265     추천 : 0     분량 : 7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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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저녁, 할머니는 미루가 내민 사탕을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이걸 어디서 구했다고?”

 “그, 그냥. 누가 주셨습니다.”

 “누가 주었다고? 미루, 너. 누굴 만난 게냐?”

 할머니가 역정을 내며 사탕을 낚아챘다.

 그런데 사탕을 유심히 관찰하던 할머니의 낯빛이 달라졌다.

 “하, 할머니. 왜 그러세요?”

 미루가 눈치를 보며 물었지만, 할머니는 묵묵부답이었다.

 대신 사탕을 한입에 털어 넣더니 나지막하게 꾸중을 덧붙였다.

 “미루 네가 평소 얼마나 조심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 누굴 만났다 하더라도 그림자를 보였을 리는 없다 믿겠다. 더 묻지 않을 테니, 일 보거라.”

 “네, 할머니.”

 미루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이상하다, 여겼다.

 더 캐물으실 게 뻔해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할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할머니가 더 묻지 않으시겠단다.

 하지만 왜 그러시냐 물으면 오히려 더 죄진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 미루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미루, 저녁에도 일 할 테냐?”

 “네, 할머니.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요.”

 미루가 촛불 아래 앉아서 옷감을 살짝 들어 보였다.

 흔들리는 불빛 아래 미루의 얼굴에 고운 미소가 번졌다.

 젖도 못 뗀 갓난아이가 어느새 저만치 자랐는지.

 할머니는 뿌듯하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다.

 미루가 바느질을 시작하고 할머니는 일찍 이불을 펴고 누웠다.

 미루는 열심히 일하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할머니를 계속 살폈다.

 ‘정말, 기침을 안 하시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더 심해지는 기침이 오늘은 전혀 없다.

 미루는 당장 춤이라도 출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무영 님, 어쩌면 도술을 부리는 의원이신가.’

 미루가 붙들고 있는 천에 동백꽃을 수놓으며 생각했다.

 꽃, 꽃. 온갖 꽃.

 할머니는 봄이면 봄꽃, 여름이면 여름꽃, 가을이면 가을꽃, 겨울이면 겨울꽃.

 방 안에서 지내는 미루가 외로울까 오만가지 꽃을 매 계절 꺾어 오셨다.

 거꾸로 매달아 곱게 말린 꽃이 벌써 수십 송이는 된다.

 그중 미루는 동백을 가장 좋아했다.

 추운 겨울, 흰 눈을 뚫고 피어나는 붉디붉은 꽃.

 할머니는 가장 추운 날에도 아름답게 피는 동백 같은 사람이 되라 하셨다.

 미루는 옷감을 내려놓고 할머니에게 다가가 여윈 어깨에 이불을 다시 정리해 덮어주었다.

 그때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무영 님 오셨어요.”

 미루가 문을 열고 나가 인사를 했다.

 무영은 정말 또 미루를 찾아왔다.

 오늘은 날이 흐리다.

 먹구름이 끼었는지, 별 몇 개도 잘 보이지 않았다.

 무영이 인사도 하지 않고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미루는 자연스럽게 무영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무영 님, 뭐라도 드릴까요?”

 “안 먹는다고 어제도 말했을 텐데.”

 “할머니가 손님에게는 마땅히 대접해야 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됐다.”

 “네에. 참, 무영 님이 주신 약 드시고 할머니 기침이 멎었어요. 어쩜 그렇게 귀신같으세요?”

 “…….”

 무영은 앞만을 꼿꼿이 바라보고 있었다.

 미루는 밝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떠들었다.

 “할머니가 빨리 깨끗이 나으셨으면 좋겠어요.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겠죠? 이제 기침을 안 하시니 제 마음이 한결 낫습니다.”

 무영은 미루에게 뭔가 말하려다 관두었다.

 기침을 멎게 했을 뿐이지, 병이 나은 건 아니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벌써 가십니까?”

 어제보다 이른 시각에 미루가 물었다.

 무영은 미루를 한 번 흘끔 보더니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미루가 입술을 불퉁히 내밀고 투덜거렸다.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 말씀 좀 해주시면 좀 좋아?”

 

 ***

 

 시간이 흘러, 새벽별이 질 즈음.

 무영이 미루의 집 앞마당에 다시 나타났다.

 그러자 방문이 조용히 열리며 사람이 마루로 나왔다.

 “오셨습니까.”

 무영에게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인사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미루의 할머니였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무영의 차가운 목소리에 할머니의 고개가 더 깊숙이 숙여졌다.

 “미루가 태어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요. 미루가 언젠가 신을 만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그래서 제 목숨을 걸고 미루를 살린 겝니다.”

 “너는 뭐냐?”

 “저는 한낱 궁의 유모이지요. 다만 신기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을 뿐입니다.”

 무영의 눈동자가 방 안에 잠들어있는 미루에게 향했다, 다시 할머니에게로 돌아왔다.

 “그럼 저 아이가 영령국의 공주란 말이냐?”

 “예. 막내 공주로 태어났으나, 발밑의 그늘 때문에 당장에 죽을 목숨이었지요. 폐하께서 부정한 기운이 왕실에 났다는 소문을 두려워하신 나머지, 곧장 죽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

 “막내 공주의 유모가 될 예정이었던 제가 신기가 없었다면 미루는 그대로 죽었겠지요. 하지만 제가 당장에 왕 앞에 엎드려, 이 아이를 죽이면 더 큰 재앙이 찾아올 것이라고 빌었습니다. 결국, 폐하께서 궁에서 아기를 데리고 나가,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숨어 사는 것을 조건으로 살려주셨습니다. 대신에 언제나 저희 집 근처에는 감시가 붙어 있게 되었지요.”

 할머니가 말을 이었다.

 “미루가 저 몰래 산에 올라갔던 날, 그날이 신을 만나게 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달이 그렇게 밝은데도 자는 체 내버려두었던 거지요.”

 “…….”

 “다만 이렇게 매일 밤 찾아오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무영 님이 마음먹고 기척을 숨기셨으니, 한낱 인간인 제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헌데,”

 할머니가 고개를 들고 싱긋 웃었다.

 “어제 미루에게 주신 약을 보고 알아챘지요. 미미하지만 인간의 것이 아닌 기운이 느껴지더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무영이 묻자 할머니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무영 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저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미루 저것은 무영 님이 제 목숨을 살려 주신 줄 알 테지만, 저는 제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

 “그때는 미루를 데려가 주시겠습니까? 제가 죽으면, 아마 미루는 곧장 궁으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얻는 게 뭐지?”

 그제야 할머니가 굳어있던 얼굴을 풀고 빙긋 웃었다.

 “미루가 무영 님께 필요하다는 건 무영 님도 이미 잘 아실 겝니다.”

 무영이 할머니를 노려보았다.

 능글맞은 할망구, 아무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영이 옷자락을 휘두르자 온데간데없이 할머니만이 홀로 남았다.

 할머니는 그제야 긴장이 풀려,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루의 곁을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올려다보는 할머니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

 

 미루는 요즘 기분이 좋지 않다.

 할머니가 전에 없이 너무 쌀쌀맞았기 때문이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미루가 “할머니.” 하며 안기는데도 매몰차게 뿌리쳤다.

 “언제까지 아기처럼 굴 테냐? 어른스럽게 굴어라.”

 할머니의 지청구에 눈물마저 핑 돌았다.

 평소였다면,

 “우리 예쁜 미루. 할머니가 그렇게 좋으냐?”

 하면서 보듬어 주셨을 텐데.

 할머니는 요 며칠, 방구석에 시무룩해 앉아 있는 미루가 안쓰러웠다.

 그러면서도 바느질이며 집안일이며 착실히 하는 게 더 보기 가여웠다.

 하지만 곧 할머니 없이 살아야 할 터인데, 하루빨리 정을 떼야 했다.

 할머니는 마당으로 나가 해의 움직임을 읽었다.

 아마, 나는 오늘 죽게 될 것이다.

 할머니의 가슴이 아프게 두근거렸다.

 미루가 무영에게 받아온 약을 먹고 기침이 멎었다뿐이지, 속은 이미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늙은이가 이만큼 버틴 것도 용하지.”

 할머니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미루야.”

 “…….”

 부드럽게 불렀으나 미루는 대답이 없다.

 단단히 토라졌는지 고개를 저쪽으로 돌리고 돌아보지도 않는다.

 “우리 미루, 화났느냐?”

 “……화나지 않았어요.”

 여전히 등을 돌리고 버티면서도 대답은 하는 미루.

 이래서, 이렇게 마음이 여리고 착한 미루여서 할머니는 미루를 사랑했다.

 친손주가 아닌데도 진짜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랑을 느끼며 미루를 키워왔다.

 ‘미루도, 나를 그렇게 느꼈을까.’

 할머니의 목이 차츰 메어왔다.

 “미루야, 오늘 할머니 일 나가지 않으면 어떻겠느냐?”

 미루에게 들리지 않게 목을 가다듬고, 소매로 눈물을 찍어낸 후 물었다.

 “정말요? 그럼, 오늘은 저랑 함께 보내시는 거예요?”

 미루는 언제 기분이 상해있었냐는 듯 대번에 돌아앉으며 눈을 빛냈다.

 “할머니…….”

 “오냐.”

 미루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투정 섞인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안겼다.

 “뭐 하고 싶으냐?”

 “정말 할머니랑 하루 종일 있는 겁니까?”

 “그렇대도.”

 “와! 그럼, 할머니랑 같이 소풍 가고 싶어요.”

 “소풍? 그건…….”

 아직 해가 중천인 데다가, 오늘은 날도 맑아서 소풍은 곤란했다.

 그러나 미루는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이 이렇게 좋으니 소풍이 제격 아니겠어요? 할머니, 잠깐만 계셔요.”

 “미루야. 잠깐…….”

 할머니가 말릴 새도 없이 미루가 부산스레 방문을 열고 나갔다.

 어쩌려나, 하는 심정으로 따라가 보니 부엌에서 짚으로 짠 돗자리를 꺼내고 소쿠리에 먹을 것을 들고 나온다.

 “할머니! 멀리 가지 않아도 돼요. 여기 마당에 돗자리 깔고, 할머니랑 얘기 나누면서 맛있는 거 먹으면 그게 소풍이지요. 얼른 앉으셔요.”

 미루는 돗자리를 좁은 마당에 잘 펴서 깔더니 할머니 예 앉으시라고 손바닥으로 톡톡 두들겼다.

 하는 짓이 이리 예쁘니, 할머니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할머니가 자리를 잡고 앉자 미루는 신이 나서 음식을 꺼내놓았다.

 떡이며, 과일이며, 꽃전이며. 모두 새로 한 음식도 아니고, 기름지고 고급스러운 음식은 없었지만 미루도, 할머니도 마냥 좋았다.

 “할머니랑 같이 소풍하니까 좋다. 할머니도 좋죠?”

 “암, 좋고말고.”

 “종종 이렇게 놀아요. 알겠지요, 할머니?”

 연신 웃고 있던 할머니의 입매가 약간 흐려졌다.

 거짓말이라도 알겠다고, 다음에 또 소풍하자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루는 그런 할머니를 아는지 모르는지, 얼굴에 햇살을 가득 받으며 안개꽃처럼 보얗게 웃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산 너머로 떨어지고 있었다.

 “미루야. 이제 들어가자, 추워질라.”

 “네, 할머니.”

 할머니는 자리에서 끙, 소리를 내며 일어서다 문득 몸을 멈추었다.

 담장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런.’

 이건 예상치 못했다.

 숨이 끊어지고 나면, 그걸 지켜보던 자가 연통을 보내고 그제야 궁에서 사람이 올 줄 알았는데.

 ‘하긴, 다른 무당에게 점을 치라 하여도 내 죽을 날쯤이야 대충 예상할 수 있었겠지. 예까지 생각하지 못한 내 불찰이다.’

 할머니는 최대한 표정을 감추고 미루를 먼저 방에 들여보낸 후, 뒤따라 들어갔다.

 방문을 닫자마자 할머니가 미루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하, 할머니. 왜 그러세요?”

 미루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미루, 내 말 잘 듣거라. 시간이 없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할머니.”

 “지금, 밖에 널 데려가려고 사람들이 와 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누가 저를 데려간단 말이에요?”

 “모두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미루야, 할미는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게다. 앞으로는 할미 없이 살아야 해.”

 “할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분명, 분명 제가 얻어온 약을…….”

 “미루야, 제발. 제발 할미 말 듣거라.”

 그때는 미루도 문밖에서 낯선 남자들이 두런두런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할머니의 말이 더 빨라졌다.

 “미루야, 약속하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할미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약속해. 지금 당장 너는 이 집을 버리고 나가야 한다. 너를 잡으려고 왕궁에서 사람들이 왔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안 돼. 서둘러서 뒷산 꼭대기로 올라가야 한다. 알겠느냐? 이 할미를 신경 써서는 안 된다. 무영 님이 오실 게다. 할미가, 전부 상세히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할머니, 안 돼요! 어떻게 나 혼자…….”

 “얼른 가!”

 할머니의 불호령과 함께 방문이 덜컥 열렸다.

 “하, 할머니.”

 할머니는 작고 꼬부라진 몸으로 온 힘을 다해 방에 들어오는 병사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미루는 그때까지도 발이 떨어지지 않아 미적거리고 있었다.

 도저히 할머니를 두고 혼자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때 손에 창을 든 남자 하나가 미루에게 커다란 손을 뻗치며 다가왔다.

 “헉!”

 처음으로 바깥에서 햇빛을 쬐었던 날, 당장이라도 눈을 찌를 듯 다가와 있던 창끝이 눈앞을 스쳤다.

 미루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며 아랫입술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무의식중에 발이 절로 뒷걸음질을 치더니, 뒷문을 부술 듯 몸이 부딪히며 빠져나갔다.

 방에서 빠져나온 미루는 곧장 뒷산을 향해 달렸다.

 어느새 거대한 보름달이 떠 있었다.

 

 ***

 

 무영은 뜻 모를 불쾌감에 사로잡혔다.

 미루의 할머니가 죽었을 시간에 맞추어 내려왔더니, 이미 방은 텅 비어 있었다.

 게다가 방바닥에는 커다란 발자국까지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이강.”

 “예.”

 무영의 부름에 곧장 어린 남자가 나타났다.

 무영의 가장 가까운 심복 이강이었다.

 “주변을 수색해라. 여자아이를 발견한다면 곧장 나에게 돌아와.”

 “알겠습니다.”

 이강이 떠나고, 무영은 걸음을 돌렸다.

 아까부터 거슬렸던 것이 있었다.

 “넌 뭐 하는 놈이지?”

 언제 움직였는지 무영은 덤불 속에 숨어있던 남자의 뒤에 서 있었다.

 “허억.”

 남자가 외마디 소리와 함께 엉덩방아를 찧었다.

 남자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죽는다!

 남자는 무영이 인간이 아님을 직감했다.

 긴 은발로 얼굴을 반쯤 가린 무영이 그저 바라볼 뿐인데 죽음이 느껴지는 듯 했다.

 무영의 붉은 입술이 다시 열렸다.

 “넌, 항상 여기에서 저 작은 집을 지켜보고 있었지. 너의 전전긍긍한 기분은 언제나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느니라. 다만 죽을 날이 되지 않았더구나. 때문에 내버려 두고, 내가 머무르는 시간 동안 네 눈을 허상으로 가렸을 뿐이다.”

 “…….”

 온몸을 떨던 남자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기척을 완벽히 숨기도록 단단히 훈련된 터라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들킬 때를 대비해 지니고 다니는 독약.

 그러나 남자는 약을 씹어 삼킬 수 없었다.

 턱이 벌어진 채로 굳어버렸다.

 남자는 침이 흐르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공포에 질린 눈으로 무영을 바라보았다.

 무영이 눈을 내리깔자 머리칼처럼 흰 속눈썹이 우아하게 내려앉았다.

 “가여운 인간아, 네가 죽을 날이 오늘이기는 하다. 방금, 내가 그렇게 정했다. 이제 말해라. 너는 뭐 하는 놈이며, 누가 보냈으며, 그간 저 집을 지켜본 연고는 무엇이며, 저 집에 살던 아이는 어디로 갔느냐?”

 남자의 굳어있던 턱이 그제야 움직였다.

 남자는 약을 풀 위로 뱉어내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실토했다.

 “컥, 컥……. 저, 저는……, 저 집을 지켜보라는 왕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열아홉 해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저 집에 살던 사람들이 잡혀간 후에도, 혹여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지켜보고 있으라 하여 아직 있었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언제나 죽음을 각오하고 살았으나, 너무나 막대한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자 살고 싶은 욕구만이 남았다.

 남자가 풀 위에 얼굴을 파묻고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그러나 무영은 그런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냉기가 뚝뚝 흐르는 목소리로 답했다.

 “저 집에 살던 아이는 어디로 갔느냐고, 내가 묻지 않았더냐?”

 “예, 예! 저 집에 살던 아이는, 도망치는 것을 궁의 군병들이 데려갔습니다.”

 “어디로 도망쳤는지는 네가 알렸겠고?”

 “그, 그랬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남자가 바닥에 이마를 처박은 채로 애원했다.

 무영에게 그의 공포와 삶에 대한 애착이 고스란히 밀려왔다.

 “무영 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강이 돌아왔다.

 무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 없이 남자를 잠시 지켜보다 몸을 돌렸다.

 “영령국의 왕궁으로 가야겠다. 이강, 너는 물러나 있어라.”

 이강이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무영이 떠난 자리에, 이미 숨이 끊어진 남자의 몸만이 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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