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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그림자를 끌어안는 방법
작가 : 채영요
작품등록일 : 2018.9.13

이 세상의 끝에 외로이 자리한 나라, 영령(影靈)국. 그림자에서 태어난 태초신 무영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인간, 미루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무영이 수천 년간 찾아 헤맸던 사람이 바로 저 조그만 여인일지도 모른다. 감정이라곤 모르는 무영과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미루의 만남. 몽환적인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2장. 오늘 다시 오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작성일 : 18-09-13 00:20     조회 : 233     추천 : 0     분량 : 7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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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고된 얼굴로 몰래 눈물짓던 할머니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미루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랜 기억에서부터 그랬다.

 미루는 원래부터 엄마나 아빠는 없었다.

 항상 할머니뿐이었다.

 미루와 할머니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지만, 서로를 사랑했다.

 할머니는 처음 농사일을 시작했을 때 많이 고통스러워했다.

 할머니의 몸은 밭일이라곤 해본 적 없는 여린 몸이었다.

 “할머니, 미루가 일할게요.”

 미루는 여섯 살 남짓 되었을 때 처음으로 할머니 대신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안 된다. 미루는 어디에도 가면 안 돼.”

 “왜요?”

 “미루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단다.”

 “그럼 미루는 왜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해요?”

 할머니는 쓸쓸한 눈빛으로 미루의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으응, 할미는 미루가 어디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이 되어서 그렇지.”

 “미루, 튼튼한데.”

 미루의 두 볼이 불만으로 퉁퉁 부어 있었다.

 “그래도, 미루는 아직 약해. 할미 말 잘 들어야 착한 아이지?”

 “네.”

 미루는 마지못해 대답하긴 했으나, 그 나이 특유의 호기심을 모두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다.

 할머니가 점심을 먹고 오후 일을 나간 후, 미루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해가 마당에 쨍쨍했다.

 미루는 조심스레 마루에 걸터앉아, 신을 신었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신을 신고 마당에 내려선 미루는 잠시 눈을 감고 기다렸다.

 “아무 일도 없네!”

 미루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할머니는, 무슨 일이 있다고 그래. 다칠 일이 뭐가 있어.”

 미루는 마당 안을 폴짝폴짝 뛰며 돌았다.

 뜨거운 햇살이 어깨를 간질이고, 바람에 날려 다리에 휘감기는 치맛자락의 느낌이 좋았다.

 그러나 곧 미루는 지루해졌다.

 “뭐 재밌는 일 없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미루는 조심스럽게 대문 앞에 섰다.

 이 밖으로 나가도 될까.

 미루는 한 번 발만 내놓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대문을 살짝 밀고, 왼발을 내밀었다.

 작은 심장이 콩콩 뛰었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미루는 금세 마음을 놓고 대문 밖으로 완전히 몸을 내놓았다.

 “와!”

 미루가 여기저기로 팔랑팔랑 뛰었다.

 방 안에만 있던 미루에게는 대문 밖의 세상이 별천지였다.

 저 멀리 거대한 산이 보였고, 길가의 나무 밑동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늘어져 있었다.

 흙먼지가 날리는 좁은 길도 한번 달려보고 싶었다.

 그때 미루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사람이 있었다.

 “아얏.”

 미루는 뒤로 나동그라지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곧이어 미루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눈앞에 날카롭게 빛을 내는 창이 겨누어져 있었다.

 미루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뾰족한 창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미루야! 안 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중이었는지, 할머니가 들고 있던 바구니를 팽개치고 비명을 질렀다.

 “미루야! 왜 이러십니까, 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지 않습니까!”

 할머니는 한달음에 달려와 창을 밀쳐내고 미루를 감싸 안았다.

 할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미루의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이건 약속이 다르지 않소.”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루에게 창을 겨누었던 자의 목소리였다.

 “약속이 다르다니요, 무슨 약속을 어겼단 말입니까?”

 “궁에서 저 요물을 데리고 떠날 때,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살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누가 이 아이를 봤습니까? 예?”

 “내가 붙잡지 않았더라면 누군가 보았겠지.”

 “여기는 그저 집 앞입니다. 저희 집은 마을에서도 떨어져 있고,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길 뒤란 말입니다. 잠시 어린애가 대문 밖을 나섰기로서니, 어찌 죽일 작정을 하고 창을 들이미십니까?”

 “나는 왕명을 받들 뿐이오. 당신의 집 근처를 맴돌 수밖에 없고, 당신이 폐하와 맺은 언약을 어긴다면 계집은 그 순간 죽소.”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만 가시지요. 오늘은 아무도 약속을 어긴 적 없습니다! 제가 더 조심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가시지요.”

 할머니가 단호히 말하자 남자는 영 내키지 않는 듯 혀를 차면서도 자리를 떴다.

 할머니는 미루를 답삭 안아 들고 곧장 집 안으로 향했다.

 미루는 여전히 얼어붙은 채로 숨만 간신히 내쉬고 있었다.

 할머니가 미루의 작은 몸뚱어리를 품어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미루야, 이 할미가 미안하구나. 할미가 미안해……. 미루는 잘못이 없다. 미루를 제대로 지켜보지 못한 할미의 잘못이다…….”

 미루는 자신을 안고 울다 지쳐 잠든 할머니의 품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미루와 할머니는 산 어귀로, 사람들은 얼씬도 하지 않을 정도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다.

 할머니는 훨씬 멀어진 일터까지 많이 걸어서 왕래해야 했다.

 미루는 이후 할머니가 일부러 당부하지 않아도 아주 어두운 밤이 아니면 방문 밖을 나서는 일이 없었다.

 언제 무서운 일을 당했냐는 듯 항상 밝았지만, 할머니는 그 미소 뒤의 아픔을 읽어낼 수 있었다.

 열 살 남짓 되었을 때, 미루는 이 모든 일이 자신에게 그림자가 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미루는 열아홉 살이 되도록 집 안에서만 생활했다.

 고된 노동으로 점점 늙어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아팠지만, 미루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할머니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어, 미루는 집안일을 스스로 찾아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나중에 같이 하자고 뜯어말려도 할머니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놓았다.

 덕분인지, 미루는 손이 야물기가 아주 그만이었다.

 올해부터는 할머니가 얻어온 바느질 일감을 집에서 할 수도 있었다.

 낮에는 방 안에서 옷감을 자르고, 꿰매고, 수를 놓았고 저녁때가 되면 빨래와 청소를 하고 밥을 지었다.

 어제, 밝은 달 아래서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남자를 만났던 밤이 지나고 나서도 이 일과는 여전히 같았다.

 ‘분명 꿈을 꾼 걸 거야.’

 미루는 하루 종일 멍했다.

 어떻게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잠이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미루가 사람을 못 만나고 자랐다 하더라도, 하늘을 나는 건 새나 가능하다는 것쯤은 알았다.

 웬 남자에게 안겨서 하늘을 날다니, 꿈이 아니고서야 말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할머니가 일을 나간 후 집안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바느질을 하다가도 몇 번이나 바늘에 손을 찔려 그만두고 구석에 밀어놓았다.

 “미루야.”

 마루에 앉아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던 미루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반짝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가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대문을 넘어오고 있었다.

 “할머니, 오셨어요.”

 미루가 마당으로 뛰어 나가 할머니의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소작 일을 해 미루와 먹고살고 있었다.

 바구니 안에 담긴 옥수수와 감자를 보고서야 미루는 밥을 짓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할머니, 밥 짓는 걸 깜빡했어요. 죄송해요. 지금 얼른 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셔요.”

 할머니는 서둘러 부엌으로 향하는 미루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 후 미루가 김이 피어오르는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미루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쌀을 불리고 새로 지으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감자를 쪄서 남은 밥으로 감자밥을 했어요. 죄송해요…….”

 “괜찮다, 미루야.”

 할머니는 풀이 죽어 있는 미루의 등을 토닥이며 다정하게 위로했다.

 “그보다, 미루 무슨 일 있느냐? 전에 없이 할 일을 잊고. 어디 아픈 게야?”

 “실은…….”

 미루는 어젯밤 꾸었던 이상한 꿈에 대해 할머니에게 이야기했다.

 할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우리 미루가 꿈자리가 사나워서 하루 내도록 정신이 팔려 있었구나.”

 “그치만, 너무 생생해서…….”

 “하하하, 귀여운 우리 미루…… 콜록, 콜록!”

 할머니가 웃음을 웃다 말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미루가 얼른 할머니에게 물이 담긴 대접을 내밀었다.

 그새 미루의 눈에 눈물이 그렁했다.

 “할머니…….”

 “괜찮다. 얼른 저녁 먹자꾸나.”

 할머니는 얼굴이 빨갛게 될 정도로 기침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웃었으나, 미루는 무서웠다.

 저번 겨울을 나면서 할머니의 기침이 시작되더니, 요즘 들어서는 부쩍 잦아지고 심해졌다.

 ‘아무래도 그간 매일같이 밭일을 너무 오래 하셨기 때문인가 봐.’

 이러다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그러다 미루는 애써 머리에서 나쁜 생각을 털어내 버렸다.

 ‘할머니가 나쁜 생각을 하면, 좋을 일도 나쁘게 바뀐댔어.’

 저녁상을 물리고 난 후, 미루는 일찍 이불을 펴고 할머니와 나란히 누웠다.

 미루가 품을 파고들자 할머니는 미루를 보듬어 안았다.

 “미루야, 할미 걱정은 말거라. 알겠지? 할미는 우리 미루만 아무 일 없다면 아무렇지도 않단다.”

 “네, 할머니.”

 순순히 대답했지만, 사실 미루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일감을 더 얻어달라고 해서, 돈을 많이 마련하자. 그 돈으로 의원에게 보이는 거야. 바느질을 더 많이 하면 그 정도 돈은 벌 수 있겠지…….’

 복잡한 머릿속도 잠시, 할머니의 따스한 체온에 미루가 가물가물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

 

 “일어나라.”

 미루가 눈을 번쩍 떴다.

 “오늘 다시 오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 어!”

 미루가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는 은빛의 머리칼을 가진 남자.

 꿈에서 미루를 안고 하늘로 날아올랐던 그 남자였다.

 “또 꿈?”

 미루는 눈을 꼭 감고 팔뚝을 세게 꼬집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팠지만, 살그머니 뜬 눈앞에는 남자가 그대로 있었다.

 꿈이…… 아니었단 말이야?

 입을 헤 벌리고 남자를 바라보던 미루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문밖으로 떠밀었다.

 “얼른, 얼른 나가세요!”

 다행히 할머니는 깊이 잠들어있었지만, 깨서 이 광경을 보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밀어도 남자는 어찌나 몸이 무거운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미루는 먼저 방문 밖으로 나갔다.

 “어서 나오셔요, 어서!”

 미루가 다급히 외치자 그제야 남자가 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미루는 소리가 나지 않게 방문을 닫고, 남자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저를 잡아가려 오신 겁니까? 역시 제 그림자를 보신 거로군요? 다들 사, 사사롭다고 하여 해를 당할까 봐 우리 할머니가 숨어 지내야 한다고 하셨지만, 사실 저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당신도 그림자가 있으니 아실 게 아닙니까? 그저 발밑에 붙어있을 뿐이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습니다. 저, 할머니를 두고 갈 수 없습니다. 잡아가지 마시어요.”

 “…….”

 미루는 묵묵부답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무영이다.”

 “…….”

 “그리고, 너를 잡아가려 했다면 진작 잡아갔을 것이다.”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미루가 무영이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두 손을 모아 쥐고 팔짝팔짝 뛰었다.

 무영은 황당했다.

 방금까지는 애걸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이 활짝 피었다.

 무영은 그 뽀얀 얼굴을 주시하다 본론을 꺼냈다.

 “대신.”

 “…….”

 “내가 네 그림자를 본 것에 대해 숨겨주는 대신, 뭐든 하겠다고 했지?”

 “그, 그럼요.”

 “뭘 하겠냐?”

 “무얼 하겠냐니, 그렇게 갑자기 물으시면…….”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 아닙니다. 그럼, 원하시는 게 생각이 나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네가 한 제안인데, 내가 말을 먼저 해야 한다는 거냐?”

 “…….”

 “네가 제대로 된 생각을 해 낼 때까지, 날마다 오겠다.”

 “……네.”

 미루는 마지못해 대답하며 무영에게는 들리지 않게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할머니가 보시면 어찌한단 말이야. 게다가 당신도 그림자가 있으시면서. 나도 약점으로 잡으려면 잡을 수 있다, 뭐.”

 “어디 한 번 세상에 알려 보아라.”

 “헉, 네, 네?”

 미루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정말 작게 말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무영이 우아한 회녹색 눈동자를 차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네가 나에 대해 떠들고 다닌다 한들, 나를 해할 수 있는 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니라.”

 “떠, 떠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그러더니 무영은 아주 자연스럽게 마루에 걸터앉았다.

 미루는 엉거주춤 서 있다, 신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이어지는 무거운 정적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영은 앉은 자세 그대로 미루가 부엌으로 쏙 들어서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부엌에서 나온 미루의 손에는 저녁으로 먹고 남은 찐 감자가 들려 있었다.

 “드, 드실래요?”

 미루가 머쓱히 접시를 내밀었지만 무영은 냉랭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따위 것은 먹어본 적도 없다.”

 “그따위 것이라뇨! 조금 식었지만 먹을 만합니다.”

 미루가 입술을 삐죽이고는 무영과 조금 떨어진 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영은 곁눈질로 미루가 감자 껍질을 꼼꼼히 벗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미루가 매끈하게 껍질을 벗긴 감자를 한입 가득 베어 물고 우물우물 씹었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양 볼이 알감자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안 드세요?”

 “그래.”

 “그럼, 다른 거라도 드릴까요? 과일도 있는데. 할머니가 어제 조금 얻어오셨거든요.”

 “……됐다.”

 “원래 그렇게 잘 안 드십니까? 할머니가 잘 챙겨 먹지 않으면 키가 안 자란댔는데, 무영 님은 어찌 그리 크세요?”

 “…….”

 “원래 그렇게 말도 없으십니까?”

 “…….”

 “아, 제 이름은 미루라고 합니다.”

 “넌, 경계심이라곤 없느냐?”

 미루는 정말 태평하기가 짝이 없다.

 무영의 차가운 목소리에도 미루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갸웃했다.

 “잡아가지 않겠다고 하셨으니, 마음 놓아도 되는 거 아닌가요? 저는 할머니 곁만 떠나지 않으면 아무래도 좋습니다.”

 무영은 그만 입을 다물고 미루가 감자를 마저 먹도록 내버려두었다.

 그저 먹는 것에만 열중하는데 이상하게 눈길을 끄는 아이였다.

 미루가 감자 한 알을 막 모조리 먹어치웠을 때, 무영이 문득 입을 열었다.

 “방 안에 있는 늙은 인간에 대한 근심이 많구나.”

 “네, 네? 어찌 아셨어요?”

 “말하면 네가 아느냐?”

 “그건 그렇지만.”

 다시 정적이 흘렀다.

 “저, 무영 님.”

 “…….”

 “무영 님!”

 “왜?”

 “무영 님은, 저와 같은 사, 사람이 아니시죠?”

 “…….”

 “그러니 하늘을 막 나시고. 축지법도 써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고.”

 “네 맘대로 생각해라.”

 “저, 그, 그럼. 혹시…….”

 미루가 말끝을 흐리며 머뭇거렸다.

 두 손끝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만 만지작거린다.

 “말해라.”

 “혹시, 저희 할머니 병도 낫게 해 주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앞만 바라보고 있던 무영이 미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캄캄한 어둠 안에서 무영의 오묘한 눈동자 한 쌍만이 불을 뿜는 듯했다.

 미루는 조마조마한 가슴을 안고 무영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무영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이냐? 내게 빚을 또 지겠다는 말이냐?”

 “지겠습니다.”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미루를 보며 무영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무영이 검지와 엄지를 약간 뗀 상태에서 손을 들어 올렸다.

 그 틈에 흰 기체가 동그랗게 뭉쳐 사탕 같은 모양으로 굳어졌다.

 동그랗게 눈을 뜬 미루에게 무영이 그것을 내밀었다.

 “기침을 다스릴 게다.”

 “무, 무영 님. 정말 사람이 아니시군요. 신선님이십니까?”

 “안 받을 거냐?”

 “앗. 받겠습니다.”

 미루가 공손히 두 손을 내밀자 무영이 그 위에 사탕을 떨어트렸다.

 “어라.”

 마음이 급했는지, 미루가 손을 먼저 거머쥐는 바람에 사탕이 손을 맞고 통 튀어 나갔다.

 “아, 안 돼!”

 할머니께 드릴 귀한 것이었다.

 미루는 다급한 마음에 몸을 벌떡 일으켜 사탕이 튀어 나간 곳으로 몸을 뻗었다.

 다행히 재빨리 움직인 덕인지, 미루의 손안에 사탕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뭐 하는 거지?”

 “네?”

 그제야 미루는 제가 앉은 곳을 돌아보았다.

 무영의 무릎 위에 제가 떡하니 올라앉은 채 몸을 쭉 뻗고 있었다.

 “헉! 죄, 죄송합니다!”

 미루는 귀까지 온통 빨개지며 허둥지둥 원래 앉았던 자리로 내려왔다.

 튀어 나갔던 사탕처럼 가슴이 통, 통, 통 뛰었다.

 그러나 무영이 아무런 표정변화가 없자 미루도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무영은 미루가 앉은 자세 그대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뻐하는 것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죽음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거늘.’

 미루는 무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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