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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짐승의 맛
작가 : 지그재그
작품등록일 : 2016.9.13

가난한 남작가의 자제인 페르마돈의 한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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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13 14:24     조회 : 528     추천 : 0     분량 : 4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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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아 남작가는 매우 가난하다. 약 300여년이 넘어가는 역사를 자랑하는 가문이지만, 30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의 후손에게 남겨진 것은 낡아빠진 작은 저택, 변변치 않은 검술서 한 권 그리고 반반한 얼굴이 전부다.

  남겨진 재산 한장 없는 이 가문은 아마 지금 남작이 대공가의 기사단에서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유지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블루아 남작이 남부의 재력가라는 바이에른 백작가의 여식과 혼일을 하게 된것은 이례적인 일인것을 넘어서서 천운에 가까운 일이었다.

  바이에른 백작가는 영지에 아주 큰 철광을 보유하여 제국 내에서 손에 꼽히는 철광석 생산량을 자랑한다. 그만큼 기사단도 강력했고 아주 부유한 영지였다. 다만, 이 백작가의 흠이라 할 것이 있다면 현 가주. 바이에른 한센 백작이다. 그의 여성편력은 그가 가주위를 승계하기 전부터 아주 유명했는데 그가 가주가 되었을 무렵에는 첩이 무려 여덟이나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식도 많았고 제레니아도 많고 많은 여식중에 고작 세번째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영지가 워낙 부유한 만큼 그녀는 부족한 것이 없이 자랐다. 한센 백작은 자녀의 양육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들이 특별히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게 아닌 이상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제레니아는 이런 가문에 염증을 느껴 출세를 위해 황립 아카데미에 입학, 그리고 우수한 학력으로 졸업하였으나 그녀의 독립을 향한 꿈은 딱 거기까지였다. 시집갈 정도로 차오른 나이라는 것이 백작의 눈에 들어온 것인지 한센 백작은 그녀의 의사도 묻지 않고 북부 끝자락에 방대한 영지를 자랑하는 바텐베르크 변경백과의 혼사를 추진한다. 그리고 당시 바텐베르크 후작의 나이는 일흔이다. 잠자리에서 제대로 일어나는것도 힘들 것 같은 나이였다. 제레니아는 이에 한센백작을 찾아가 혼인할 의사가 없음을 표했지만 한센 백작에게 제레니아의 의사같은 건 애초에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자식이라는 것은 그의 소유물이자 소모품에 불과한 것, 그의 뜻 안에서 움직이는 것. 그에게 자식은 한낱 애완동물보다도 처지가 형편 없었다.

  제레니아의 꿈은 황립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제국 행정관이 되는 것이었다. 남부에서 벗어나 수도의 요직에 앉는다면 그의 부친도 그녀에게 함부로 압력을 가하지 못하리라. 그녀는 부친의 눈을 피해 조용히 열차에 몸을 실었고 작은 여관에 머무르며 행정직 시험을 신청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과 다르게 한센백작의 힘은 아주 넓고 높게 퍼져있었다. 부친에게 돈을 먹은 중간 시험관리직이 그녀의 이름을 누락했고 그녀는 시험을 치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리고 낙심한 그녀가 영지로 돌아올 것이라고 한센백작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또 다르게 그녀는 가문에서 그녀를 강제로 데리러 온 기사들에게 쫓기던 중 블루아남작을 만나게 되었고, 그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혼인을 치룬다.

  당시 블루아 남작은 갓 스무살은 넘겼으나 클라우스 대공의 기사였고 그런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백작으로서도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결국 한센 백작은 그녀를 호적에서 파내면서 사건이 종결되었고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늘도 작은 저택은 분주하다.

  작은 저택이 무슨 아침부터 분주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 싶지만 아직 어린 에밀리아를 제외하고는 다들 할 일이 많다. 제레니아는 황립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것 답게 아주 머리가 명석했는데 덕분에 항상 아카데미 입시철이 되면 바빴다. 그녀는 수도 안에서는 아주 유능한 입시강사로 손꼽히고 있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스프를 마시는 그녀의 눈 밑이 검었다.

 

  -어머니,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올해는 입시 인원이 몰린다더니 정말이야. 펠, 그래도 어쩌겠니. 내년엔 너도 입시를 치뤄야 될텐데 바짝 움직여서 돈을 모아둬야지.

  -아버지가 일하시는 대공가에서도 장학회가 있다니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카데미정도 안나오면 어때요.

 

  페르마돈에게 아카데미는 그다지 중요한 곳이 아니었다. 제레니아는 머리가 좋은 페르마돈을 꼭 황립 아카데미에 보내고 싶어했는데 그의 생각에 그것은 낭비나 다름 없었다. 황립아카데미의 졸업장이 요직으로 가는 보증수표나 다름 없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나 하는 소리다. 애초에 고위 공직자로 가는 길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 그의 말에 제레니아는 안색을 바짝 굳히고 피곤에 가라 앉았던 목소리를 높였다.

 

  -펠, 절대 그런 소리 하지 마렴.

  -하지만 우리 같은 처지에..

  -그러니 하는 말이다. 우리 같은 처지에 학벌마저도 형편 없으면 어떻게 될 것 같니. 네 아버지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둘도 없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사실 남편감으로 따지면 반쪽 밖에 안되. 넌 절대 아버지처럼 그 자리에 만족해서는 안되.

 

  제레니아가 늘 하는 말이 그것이었다.

  아버지처럼 그 자리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페르마돈의 귀에는 진물이 날 정도로 달라붙은 그 말이었지만, 어머니가 그 말을 할 때마다 페르마돈은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백작가의 여식으로 태어난 그녀에게 블루아 남작가는 언제나 모지란 곳이었고 블루아 남작은 야망과 욕심이라고는 한 푼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마 블루아 남작이 대공가에서 15년이나 버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평기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그런 그의 성격탓임이 분명했다.

 

  -알겠어요, 어머니.

 

  페르마돈은 오늘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저기...여보? 그런 얘기는 최소한 내가 안듣는데서 하면...

 

  아버지...계셨구나...

 

  -그러고 싶으면 최소한 평기사 자리는 벗어나고 얘기하세요.

 

  시무룩해져서 조심스레 의견을 피력하는 블루아 남작이었으나 가차없는 제레니아였다. 남작은 시무룩해진 얼굴을 스프쪽으로 처박았다.

  아침 식사가 대충 끝나자마자 블루아 남작은 대공가로 출근했고, 제레니아도 과외자리 때문에 저택을 비웠다.

 

  - 오늘은 따로 외출 할 일이 있더라도 에밀리아와 함께 해주렴. 집에 우리가 없는 일이 잣다보니 에밀리아에게는 늘 미안하구나. 이 돈으로 맛있는 거라도 사먹으렴. 다녀오마.

 

  제레니아는 두 남매의 이마에 입을 맞춰준 뒤 마차를 타고 가버렸다.

  페르마돈은 아무 말도 않고 자신의 옆에만 서 있는 에밀리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자기 몸마냥 커다란 곰인형을 껴안은 여동생은 몹시 귀여운 얼굴을 가졌지만 말수가 너무 극단적으로 적었다.

  페르마돈은 껴안고 싶을 정도로 작은 동생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얘기했다.

 

  -엘, 혹시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니?

 

  도리도리

 

  -그럼 조금 이따 나랑 같이 외출하지 않을래?

 

  끄덕끄덕

 

  -그럼 애니에게 말해서 외출 준비를 해야겠구나. 애니!

  -네, 부르셨어요? 도련님

  -외출 할 거니까. 애니 옷을 좀 갈아입혀 주겠어?

  -네, 그런데 아가씨는 오늘 저녁에 주치의 선생님이 오실 예정이라 오래 나가 있으시면 안되는데요?

  -아, 그랬지 참. 해지기 전에는 돌아올게.

 

  페르마돈은 애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에밀리아를 애니와 함께 올려 보냈다.

  그의 하루는 보통 아침 오전 훈련으로 시작된다. 변변찮은 검술이라고는 하지만 블루아 남작은 일주일에 두어번 이상은 그에게 검술 지도를 한다. 이 다 망해가는 남작가가 먹고 사는 것은 그래도 이 변변찮은 검술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였다.

 

  툭툭

 

  잠깐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옷을 그새 갈아 입은 에밀리아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어? 벌써 갈아입었구나 그럼 가볼...인형도 가져갈꺼니?

 

  끄덕끄덕

 

  -보나파르트

  -음? 아. 그녀석 이름이 보나파르트구나. 그래, 보타파르트도 데려갈까?

 

  곰인형에 붙인 이름치고는 좀 리얼한 이름이라 기묘한 기분이었지만 엘은 원래 좀 별난 구석이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페르마돈은 그 나이치고도 작은 여동생을 안아 올려 마차에 앉혔다.

 

  -그럼 가 볼까?

 

  끄덕끄덕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게 귀여워 다시 이마에 입을 맞췄다.

 

 

 

  페르마돈은 어렸을 적부터 머리가 아주 좋았다. 특히 암기력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좋아서 책 한 권 정도 외우는 데는 몇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좋은 머리가 드러나기에는 두 부모가 너무도 바빴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었다.

  남작가의 저택은 귀족들이 살고 있는 귀족지구와는 동 떨어진 평민들의 거리인 상업지구에 위치해 있었는데, 상업지구다보니 조용한 귀족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페르마돈은 이 거리를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친구도 없는 그의 일과라고는 검술연습과 도서관을 출퇴근하며 방대한 글을 읽어재끼는 것 정도가 전부였는데. 늘 도서관과 저택을 오가며 군겆질을 하는 취미가 생겨버렸다.

  최근엔 도서관 맞은 편 골목 안쪽에 있는 작은 빵집을 찾아냈는데 그곳에서 구워내는 머핀이 홍차와 아주 그만이었다.

  그는 도서관에서 빌려갈 책들을 보면서 '오늘은 어떤 빵을 사가야 좋으려나'하는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었는데 그런 그의 발에 걸리는 무언가와 함께 앞으로 둔탁한 소리를 내며 고꾸라졌다.

 

  -으악!

 

  사서가 무슨 일인가 살짝 보러 왔지만 그냥 넘어졌을 뿐 별 일은 없다는 걸 알았는지 그냥 가버렸다.

  펠은 엄지발가락을 부여잡고는 자기 발을 걸어버린 게 무엇인지 확인했다.

  서가 한쪽을 지저분하게 삐쳐나와 있는 두꺼운 책.

  본디 제국에서 발행되는 서적들은 대부분 법률로 일정규격이 정해져 있다. 종이는 귀하기도 하거니와 필요 이상으로 들쑥날쑥하게 꼽혀 있는 책들이 보기 싫었던 것인지 몇대 황제인가가 규격을 맞춰버렸다는 모양이었다.

  불그죽죽한 색의 하드커버에 규격은 일반 서적의 두배는 되는데다가 두께도 무식하다.

  펠은 이 빌어먹을 두꺼운 책의 정체는 둘째치고 규격 외의 서적을 아무렇게나 배치해도 되는지 사서에게 항의하기 위해 책을 뽑아들었다.

  책의 불그죽죽한 표지에는 검은색의 기묘한 동물과 함께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짐승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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