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어스경. 이걸 가지고 서둘러 약을 짓게 해줘.”
“네.”
“아, 그리고 거기에 독도 포함이 되어있으니까 양에 차이가 없도록 신중하라고 해줘.”
세이나에게 건네받은 그 것은 해독약의 조제방법이었다.
그리고 달려서 홀을 빠져나가는 그의 모습을 확인한 후 세이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후~ 선대 중에 약학에 능한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사..살릴 수 있는 건가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간절하게 묻는 황후에게 안심하라며 작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네. 해독약이예요.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데, 강제적으로 마력을 사용해서 몸 전체에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상태라, 아마 후유증은 남겠지만, 생활에 지장은 없어요.”
울먹이며 안도하는 황후에게서 바이안에게 시선을 옮겼다.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얹고 신음을 흘리는 바이안의 손을 자신의 뺨에 살짝 가져다 대고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해서 속삭였다.
“이제 괜찮아 오빠.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다 좋아질 거야. 그리고 그때처럼 자고 일어났을 때 옆엔 내가 있어. 오빠. 내 목소리에 집중해.”
바이안은 경련하는 입술로 작게 미소를 짓고 힘겹게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세이나는 천천히 성대에 마력을 집중 시켰다.
“자장자장 우리아가 잘도 잔다. 별님도 달님도 반짝, 귀뚤귀뚤 찌르르 노래를 부르네~ 우리는 밤에 노래하는 악단. 아가를 위한 악단이라네~ 잘도 잔다 우리아가”
어느 누구 한명도 떠들지 않고 세이나의 자장가만이 홀 안을 따뜻한 온기로 가득 메웠다.
세이나의 자장가를 실은 마력은 바이안의 주변을 감쌌고, 그녀의 자장가 소리를 들으며 스르륵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괴로운지 작게 신음을 흘리고 있지만 한결 편해진 표정이었다.
바이안이 완전히 잠이 들자 부르던 자장가를 멈추고 아직도 자신의 앞에 부복해 있는 기사들과 귀족들을 보았다.
그리고 제조법을 궁의 어의에게 넘겨주고 바로 돌아오는 론을 기다렸던 세이나는 그에게 시선을 한번 주고 중앙으로 고개를 돌려 크게 소리쳤다.
“나, 대현자의 권한으로 명한다. 엘라이어 바이안과 카시어스 로트론의 작위와 권리의 복귀, 그리고 둘을 기사가 아닌 나의 가디언으로서 올릴 것이며, 나의 개인적인 특별의례로서 바이안의 황족으로서의 권리 또한 돌린다.”
““명을 받듭니다.””
세이나의 말에 그 누구도 반목하지 않고 더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그들의 대답을 들은 후 세이나는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서있는 황제에게 목례를 했다.
“폐하. 이런 상태에서 예를 지키지 못한 채로 인사를 드리는 점,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한마디 상의도 없이 특례로 그를 황족으로 복권을 시킨 점 또한 이해해 주십시오.”
“아닐세. 그대의 마땅한 권리이니 신경 쓰지 마시게.”
부드럽고 인자하게 웃는 황제, 그리고 안심해하며 그의 팔에 안겨있는 황후의 모습에 날카롭게 서있던 마음이 절로 풀린다.
“깨 볶고 계신 건 여전하시네.”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리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한창일 때 그 분위기를 순식간에 흩트리는 사람이 있었다.
“말도 안 돼. 이럴 순 없어. 내가, 내가 대현자야. 네가 감히..”
현자의 돌의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급작스럽게 변한 분위기에 따라가지 못하던 플로아는 길길이 날뛰며 세이나를 쏘아보았다.
“뭣들 하는 거야? 저년.. 저년, 저 가짜년을 어서 잡아.”
갑자기 쏘아지는 큰 소리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다가 보기흉한 모습을 보이는 플로아를 가리켰다.
“돌아가는 상황도 파악이 안 되는 머리야? 저거?”
“그런가 봅니다.”
능글거리며 그녀를 비꼬는 론에게 세이나는 인상을 팍 썼다.
“나 아직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서 두통이 상당하거든? 하~ 거기다가 저것까지 떠들어 대니까 머리가 더 아프네, 저거 주둥이 콱 막아버려.”
론은 히죽거리며 적극적으로 나서서 플로아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다른 나머지 기사들도 그녀를 구속해서 무릎을 꿇렸다.
공백의 기사들은 원수를 보듯이 플로아를 쏘아보며, 자신들이 어리석고 못난이를 주인으로 모시고 명령을 들었다는 수치감이 강하게 들자 더더욱 그녀가 용서가 안 됐다.
플로아는 자신이 묶이고 무릎이 꿇려지자 더욱 성질을 부렸으나, 이미 입도 몸도 자유롭지 못해 버둥거리는 그런 모습이 보는 이들의 눈에는 한없이 한심해 보였다.
“아. 그리고..”
“하일이라 불러주십시오. 주군”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몰라 말꼬리를 흘리며 하일을 쳐다보니 하일은 목례를 하며 알아서 대답했다.
“응. 하일경. 저 돌은년 품 좀 뒤져 봐줘.”
세이나의 명령에 하일은 바로 플로아의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지만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있는 대로 뒤지고 있을 때 세이나가 덧붙였다.
“아마 작은 병 같은 게 있을 거야.”
그제야 플로아의 목에 걸려있는 병 같은 목걸이를 발견했고, 그대로 잡아 뜯어내 세이나에게 건네주었다.
하일에게 건네받은 병을 이리저리 돌려 보면서 입만 열었다.
“다들 상당히 당황스럽고 나한테 매우 죄송해 하고 있을 거야. 이유야 어떻든 나한테 검을 겨눈 거니까.”
건조한 음성으로 입을 여는 세이나의 말에 기사들은 움찔 몸을 떨었다.
몰랐다고는 하나 자신들의 주인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그녀의 말대로 검을 주인에게 겨눈 것은 심각한 중죄였다.
무거운 처벌이 내려온다 하더라도 그들은 달게 받을 생각이었기에 각오를 다졌지만 세이나는 오히려 다른 말을 늘여놓았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모두가 속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모두는 정당히 자신들의 의무를 행했을 뿐이잖아?”
그리고는 목걸이를 빼앗기자마자 두려워하며 덜덜 떨고 있는 플로아에게 상큼하게 웃어보였다.
“어이. 거기 돌은년. 이게 뭔 줄 알고 받았냐?”
“그게 뭔데요?”
호기심이 가득한 론의 물음에 바로 대답해줬다.
“오래 되서 이미 딱딱하게 굳어 색도 어둡지만, 이거 내피.”
“허~”
“물론 피만 있다고 반응은 안하지. 나도 모르는 특수한 방법으로 억지로 유지 되고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장식이 반응을 보인 거고, 당연스럽게 모두가 속을 수밖에”
별거 아닌 듯 어깨만 으쓱인다.
“우와 바이안이 들었으면 난리 났겠네.”
어이없어 하던 론은 속으로 따로 심각하게 상황을 계산하고 있었다.
“기왕에 대현자 놀이를 할 것이면, 제대로 좀 하든가. 내가 만약 네년이었으면 적당히 하면서 정체를 들킬 이런 의식 같은 것은 계속 피했겠다. 덕분에 완전히 귀찮아졌잖아.”
투덜거리는 세이나에 론은 크게 웃었다.
다들 세이나를 모르니 그저 눈치만 볼 뿐이지만 론은 세이나의 귀찮아하는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 그것이 썩 웃겼다.
저 말은 다른 의미가 아니고 진심으로 그 말 그대로 귀찮다는 것이다.
“으음... 귀찮아도 할 것은 해야겠지? 어떻게 하면 저 돌은년이 처분을 제대로 받았다고 할까나..”
잠든 바이안의 손을 다시 잡고 야위고 피 투성이의 그를 내려다보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자신에게 닥칠 공포에 온 힘을 다해 버둥이며 몸을 거칠게 움직이던 플로아의 재갈이 조금씩 느슨해졌고, 이윽고 입이 자유로워지자마자 플로아는 창백한 얼굴로 세이나를 불렀다.
“제..제발.. 용서해주세요. 저..저는 그저 어 어떤 남자가 제가 대현자가 될 거라고 하여 철썩 같이 믿은 죄밖에 없습니다.”
계속 고자세로만 있었던 플로아는 지금은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추하게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세이나는 어디서 개가 짖나하며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벼댔다.
“아까 내가 말했지? 할 거면 제대로 했어야지라고. 완전 변명뿐이네. 너 책임이라는 단어는 아니? 물론 내 자리를 회피했었던 내가 딱히 할 말은 아니지만, 아 귓밥 크다.”
새끼손톱에 박혀 나온 자신의 귓밥을 입으로 후 하고 불어 보였다.
“능력이나 힘뿐만이 아니야.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서 오는 결과들 역시 자신의 책임이야. 타인의 탓은 없어. 그러게 진즉에 잘하지. 책임지지도 못할 자리를 왜 올라가니?”
아주 신랄하게 플로아를 까던 세이나는 순간 좋은 생각이 나서 어느새 인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옆에 나란히 앉아 관전 중이던 황제와 다시 시선을 맞췄다.
“폐하. 제가 경황이 없어 폐하께 드릴 선물도 없이 왔습니다.”
황제는 갑자기 자신에게 선물 타령하는 세이나의 의도를 명확히 알지 못해 의문스러웠다.
“크게 드릴 것은 없지만 저것은 어떤지요.”
플로아를 가리키는 모습에 이제야 그녀의 의도를 파악했다.
“허허허 저것 말이오?”
황제역시 세이나처럼 플로아를 손가락질하며 호탕히 웃었다.
“네. 처분은 폐하께서 하심이 좋다고 생각이 듭니다.”
“허허허 과연,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가 없군.”
플로아의 처분은 당연히 현궁의 주인이 행해야 함이 옳지만, 오히려 세이나는 황제에게 넘겼다.
“죄목은 제가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일단은 대현자 사칭 죄, 귀족 농락 죄, 부정한 재산탕진 죄, 명예 회손 죄, 권력 남용 죄, 음식 낭비 죄, 주댕이 남발 죄, 추한 죄, 멍청한 죄...”
“허허허허허 유쾌하군 유쾌해.”
쭉 죄명을 읊고 있지만 초반에만 타당한 죄목이었고, 어째 점점 산으로 가는 죄명에 황제는 그만 체통을 잊고 크게 웃었다.
“아 그리고 황족 모독죄랑 황족 살인미수도 추가해야겠습니다.”
이미 세이나의 입으로 바이안이 황족으로 서의 권리를 돌려받았기에 충분한 죄명이었다.
“좋소 좋아. 내 그대의 선물을 기쁘게 받겠소. 여봐라.”
“예 폐하.”
자신의 옆에 부복하는 자신의 기사에게 플로아를 연행하라 명령을 내렸고, 죄명을 하나하나 들으며 절망해 하고 있던 플로아는 그대로 황궁 기사들의 손에 의해 볼품없이 질질 끌려갔다.
그 후에 아수라장이 된 홀의 대대적인 정리가 시작되었고, 귀족들과 기사들도 제자리로 모두 돌아갔다.
세이나 역시 자신의 기사들의 안내에 방으로 들어가 하일의 등에 업혀있는 바이안을 침대에 조심히 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