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차게 눈앞의 인간을 뜯어 넘기고 호랑이가 내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턱짓으로 인간이 나온 장소를 가리켰고 난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의자 위로 올라간 다음 알록달록한 색깔의 기계판을 바라보며 밤에 본 그림 표시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빨이 그려진 곳에 호랑이가 있었고 호랑이 급의 다른 동물들도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이빨 그림과 다른 그림들이 그려진 단추, 혹은 그 색깔의 단추를 누르면 다른 동물들도 풀려날 것이다. 그렇게 몇 초 정도를 둘러보다가 일렬로 쭉 나열된 그림들을 발견했고 하나씩 누르며 앞에 있는 작고 네모난 많은 기계들을 바라보니 동물들이 주르륵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호랑이가 어느새 내 뒤로 다가와 같이 기계들을 보고 있었다.
“머리가 정말 좋군.”
“당신도 연기가 일품이던데요?”
“이 건물 천장에 달린 작은 통로에 너희들 다 같이 들어가 있을 생각을 한 건 기발했어.”
“몸으론 연기를 하고 울음소리로 다른 동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당신의 아이디어 아니었습니까? 그것도 꽤나 창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둘 다 잘했다고 치지.”
그와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인 뒤에 밖으로 나갔다. 동물원이라고 불러지는 이곳은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이곳에 갇힌 동물들을 지켜보고 억누르던 역할을 가진 인간들은 뜯기거나 터진 채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깨진 유리조각이나 넘어진 나무 등이 그 분위기를 한층 더 띄웠다. 그러나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탈출한 동물들은 질서정렬하게 우리가 들어온 곳 앞에 줄지어 서있었다. 호랑이가 내보낸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일의 발단과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고 같이 할 동물들은 입구 앞에 서있으라는 것.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군단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이 무리가 그 결과다. 호랑이와 (얼떨결에 맡아서 내키진 않지만)내가 그들에 앞에 섰고 내 옆에 있는 그가 우렁차게 말했다. 아니, 선포했다. 인간들은 알아듣지 못 할 바로 그런 선포를 말이다.
“자, 가자! 우리들을 이곳에 가두고 조롱하고 키우려들은 그들에게 갚아줄 때다!”
말이 끝나고 우리가 옆으로 비키자 동물들이 제각각 선포에 호응하며 몸집이 크고 가죽이 좀 질긴 동물들이 앞장을 서면서 인간들의 정글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던 그와 난 맨 뒤에서 따라가기로 했다. 멍하니 이 큰일의 시작점을 바라보고 있는데 호랑이가 갑자기 내게 말을 건넸다.
“이름이 무엇이지?”
“제우입니다. 당신은?”
“룩.”
“룩씨군요.”
“그래. 아무튼 제우, 이 일이 끝나면 내가 저 약한 동물들을 잡아먹어도 되겠지?”
“거기엔 저도 포함입니까?”
“아마도 아닐 거다. 머리가 좋으니 말이야.”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힘이 있다는 것으로 자신보다 약한 자를 건드리거나 더 나아가 약탈하고 죽이는 것은 인간이나 하는 짓입니다.”
내 말을 듣더니 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입에 떠올리곤 내게 물었다.
“인간이 먼저인가, 동물이 먼저인가?”
“네?”
“우리가 인간을 따라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야, 제우.”
“그럼요?”
“인간이 우리를 따라하면 안 되는 것이지.”
그 말을 끝으로 그가 먼저 한 발을 내딛어 앞서 나간 무리들을 뒤쫓았고 난 그가 한 말을 되새기며 허둥지둥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