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의 끝에서
#5화 _ 식시귀(2)
W_아름다운뿌리
분명 난 알고 있었다,
오빠가 식시귀 란 걸.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다
유향의 치료를 거부할 때부터.
죽었다고 생각한 그 오빠가 갑자기 살아서 내 앞에 나타난 것부터 이상했다.
분명 그 싸늘한 주검도 봤고
영안실에서 나오던 그 차가웠던 그 몸도 보고.
눈을 감고 누운 채로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던 것도
8살 때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오빠가 살아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에도 내가 아는 척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래도
오빠잖아
“위험하다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이야. 너도 날 죽일 작정이냐?”
“……,”
아무말 도 할 수 없었다.
천하의 이소아가.
냉정함으로 이름을 떨치던 이 연이.
온갖 악마의 이름은 별명으로 다 붙은 이 내가.
적인 이 남자 하나를 벨 수 없다니.
“마음이 아프구나 이소아. 이대로 몰랐으면 좀 더 행복하게 오래 지낼 수 있었을 텐 데.”
“…….”
난 입을 열지 못했다.
아니, 입을 열어도 소리가 나오지 않을 걸 알았기에 입을 열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이런 건 다 의미 없잖아.
“난 그저 널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네가 그 누구보다 더 아끼던 내가 이젠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네. 아- 이 설움을 어디서 풀어야 하나? 아- 이 뜨거운 감정은 어디에 풀어야 하나?!! 소아야! 오랜만에 만난 오빠와의 재회 치고는 너무 조용하잖니? 빨갛게 물들여볼까? 아니면 네 목을 나의 마지막 가는 길의 꽃으로 장식해볼까? 응? 어떻게 해줄까? 난 좀 더 너랑 놀고 싶은데?”
“……. 날 죽여 그리고 날 먹어.이제 내가 아닌 오빠가 살아남아줘”
“…….”
“그런 아픔 다시 주고 싶지 않아. 나 혼자 아프기로 했어. 그런 걸 혼자 떠안고, 떠맡지 말아줘.”
“…….”
“내가 살아남은 만큼 이젠 오빠가 살아남아줘”
“…….”
점점 커지는 눈.
잔뜩 놀란 오빠의 얼굴.
난 그런 오빠에게 가까이 가서 오빠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아마 여태 원하던 게 이런 따스함이겠지. 오빠는 이런 따스함을 알기도 전에 먼저 죽었잖아. 그 따스함을 내가 뺐어 느꼈잖아.
“오빤 차갑지 않아. 이렇게 따뜻한 걸.”
절대 차갑지 않았다.
또 전혀 딱딱하지 않았다.
“이렇게 따뜻하고 부드럽게 오빠는 이렇게 살아서 움직이는 걸”
아마 항상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몸이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된 자신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 자신이 저주스러웠을 것이다.
“…….”
항상 피 속 한가운데 서있는 자신이 너무 불안했을 것이라.
“이제야 드디어 혼자가 아니게 됐는데. 벌써 헤어지기는 싫어 오빠. 조금만...아니, 더 오래 있어줘..”
“……왜? 도대체 왜? 넌 옛날부터..”
“이렇게 안고 있는 이 동안. 이 시간 동안은 전혀, 절 대 아프지 않아 오빠. 그렇지 오빠?”
“……”
그렇게 답답하던 마음도 이렇게 둘이 안고만 있으니 그 답답함도 고통도 한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날 안은 채 조용히 울고 있는 오빠도 같은 느낌일 거라.
*
*
아-
이제 쓰러지는 건 그만하고 싶다.
그래도 여주인공인데 심심하면 쓰러지니
“그렇지?“너도 네가 생각할 때 너무 자주 쓰러지는 것 같지? 그 누가 그 험한 임무를 처리하는 판도라의 희망으로 보겠나.”
따뜻한 손길.
따뜻한 그 온기
따뜻한 향기
“내가 없으면 잠도 못 이뤘던 너인데 그런 나를 놔두고 다른 남자와 혼인이라…”
멀리서 말하던 목소리는 어느새 내 귀에 그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고 이윽고 내 귀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전에 말했지? 바람 피면…… 죽인다고.”
내가 여태 들어왔던 협박 중 제일 위험하고 소름끼친 협박
“으아아아아아!!!”
볼썽사나운 비명을 지른 여자는 이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일어났다.
“허억- 하아-”
“오- 일어났군. 내가 한 협박이 꽤나 효과가 있었다는 말. 그렇다는 말은 몸은 날 기억하고 있다는 뜻인데..”
“월야 선배!!놀랐잖아요”
“선배?”
“흐음- 그럼 월야 선배보다는 루에라고 불러드리면 좋아하려나?”
“루에님?”
“지금 루에라 한 건가?”
“전 당신이 누군지 다 기억하고 있다고요. 제 기억은 매우 멀쩡합니다.”
“그렇다면 너.”
“너가 아니라 제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제가 누누이…!!”
난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나의 입은 더이상 열리지 않았고 그런 나의 입을 막고 있는 건 월야.
월야선배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일어난 이 당황스런 상황을 파악하고 난 급하게 선배의 어깨를 때리고 밀쳤지만 밀쳐지지도 않고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자신의 입술을 때지 않는 월야 선배
오히려 나의 행동에 자극을 받았던 것인지 선배는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었고
“으-!!”
그 움켜쥐는 고통에 열린 내 입 사이로 월야 선배의 혀가 흘러 들어왔다.
내가 떨어지려 발버둥을 치자 그의 손과 팔은 날 더 옥죄어 왔고 난 그의 두 팔에 갇혀 그의 혀를 그대로 받고 있었다.
“하아- 하아-”
내가 그와 떨어진 것도 어느새 20분이란 긴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하아- 하아-”
내 첫사랑
내 아련하고 사랑스러웠던 내 첫사랑.
뚝
뚜둑
작은 유리방울이 깨져 바닥으로 흐트러진 건 절대 내 눈에서 나온 내 눈물이 아니었다.
그 유리 구슬의 주인은 바로‥
월야.
나의 팔에 떨어진 그의 비는 내가 만지기에는 너무 뜨거웠다.
그가 떨어트린 눈물은 나의 팔을 서서히 뜨겁게 만들었고 곧 나의 팔은 불에 데인 듯 뜨거운 고통이 온 몸을 타고 흘렀다.
“대체 왜?”
그렇게 자신감이 높던 그 월야 선배가.
칼로 찔러도 피만 나올 뿐 눈물 한 방울 떨굴 것 같지 않던 그가.
대체 왜?
뭐 때문에?
내 앞에서 울고 있는 건가?
뜨겁다.
너무 뜨거워
그의 눈물도 그의 눈빛도
그의 마음도
백야가 갑자기 나타나 그와 내 사이를 갈라도 화내며 날 저승으로 다시 데려갈 때에도 난 아무런 저항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물론 그도 마찬가지겠지.
그리하여 그날의 월야 선배와 나와의 재회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