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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막내 후궁의 자립기
작가 : 오렌지사파이어
작품등록일 : 2018.5.2

[성장물]/[육아물]/[로코물]/[동안 여주]/[순진 여주]

여자의 결혼 적령기는 과연 언제일까.


평민들은 대충 20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에 결혼하지만 귀족은 어린 나이에 미리 약혼을 해두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왕족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레나테 공주의 나이가 이제 열넷이니 파네스 제국 황제 폐하의 후궁으로 가도록 하라는 국왕 전하의 명이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나이에 벌써 결혼하는 건 이른 거 아닐까. 올해 갓 14살이 된 레나테는 시종의 전언을 듣고 멍하니 생각했다.


원래 연재했던 막내 후궁의 자립기 리메이크작입니다. 표지는 레이에린 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1장
작성일 : 18-05-02 19:29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5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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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사 길드의 텔레포트 포털이 있다는 방에는 이상한 그림이 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저게 포털이라고 레베카가 알려주기 전까지 레나테는 도통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을 해석해 보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전부 모여 마력을 부어 작동시킨 포털이 빛나고 몇 초 후 레나테와 레베카는 아까와는 다른 방에 서 있었다. 그들을 맞이한 마법사들과 대기중이던 기사들은 레나테를 보고 동공지진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임무에 따라 여기가 제국의 마법사 길드라고 알려주었다.

 

 마법사 길드를 조금 구경하고 싶었지만 바로 또 마차를 타야 했다. 이번 마차는 다행히 훨씬 컸고 흔들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호위까지 붙어 있어서 그들과 함께 밖에서 말을 타고 달렸다. 훨씬 편해진 레나테는 에드나에서는 하지 못했던 바깥 구경을 하기 위해 창문 밖을 보았다. 마차가 달리는 길 옆으로 있는 인도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레베카가 말해줬던 지붕하고 바퀴가 달린 가게 ‘노점’도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계속 구경하던 레나테는 에드나 왕궁에서 마법사 길드까지 가던 시간만큼 기다린 끝에 제국의 황궁에 도착했다.

 

 “유모 저게 황궁이야? 엄청 커!”

 

 겨우 도착한 제국의 황궁은 말도 안 되게 컸다. 에드나 왕국의 궁도 레나테가 지내던 별궁 100개가 들어가야 꽉 찰 것 같았는데, 황궁은 그 왕궁 100개가 들어가도 모자랄 것 같았다. 왕궁의 구조도 모르긴 하지만 황궁에는 정말 없는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가셔야 합니다.”

 “걸어서?!”

 

 기사의 말에 레나테는 구두를 내려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별궁에서 왕궁 입구까지 걷는 내내 굽이 너무 높아서 비틀거리며 걷느라 걷는 속도가 굉장히 느려졌다. 게다가 드레스도 원래 입던 원피스보다 더 길다 보니 잘못하면 밟을까봐 치맛자락을 들고 걸었건만, 옆에서 걷는 시녀들이 비웃는 소리에 더 위축되어 걷기가 싫었다.

 

 “뭔가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걸을게.”

 

 하지만 걷지 않을 수도 없었다. 레나테는 마차의 문을 잡고 일어나 기사의 에스코트를 받아서 마차에서 내렸다. 내릴 때는 그래도 기사가 받아주었기에 갈 만했지만 후궁까지 얼마나 될지 모르는 길을 걸을 걸 생각하자 막막했다.

 

 “후궁까지는 얼마나 걸어야 돼?”

 “한 30분... 1시간 정도 걸리겠군요.”

 

 레나테를 본 기사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을 바꿨다. 성인 걸음으로는 30분이면 레나테의 걸음으로는 1시간 정도라는 걸까, 1시간이나 이대로 걸을 걸 생각하자 막막해진 레나테는 옆에 와서 손을 잡아주는 레베카의 손을 꽉 잡고서 발을 내딛었다.

 

 ‘아파...’

 

 발과 종아리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레나테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무릎도 잘 펴지지 않아서 저절로 허리도 굽혀지다 보니 점점 아프기 시작했다. 아침에 치장을 위해 온 시녀들이 입술에도 빨간 립스틱을 바르면서 번지니 깨물지 말라고 핀잔을 주긴 했지만 너무 걷기 힘들어서 안 깨물 수가 없었다. 차라리 맨발로 걷고 싶은데, 예법을 잘 모르는 레나테도 그건 품위없는 짓이라는 건 안다.

 

 “괜찮으십니까? 몸이 편찮으신 듯합니다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레나테의 다리가 계속 휘청이는 걸 보고 그녀의 상태가 안 좋은 걸 알아차린 기사들이 말을 걸었다. 괜찮다고 고개를 저은 레나테는 다시 걸으려고 했지만 발을 내딛은 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아야!”

 “공주님!”

 

 바닥에 넘어진 레나테를 레베카가 급히 살펴보았지만 기사들 앞에서 치마를 들출 수는 없었기에 상처를 볼 방법이 없었다. 무릎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뭔가가 흘러내리는 것 같은 느낌에 레나테의 눈에서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빨리 가야 하는데. 후궁에서 기다릴 텐데. 아까는 그래도 걸었는데 왜 이러는 걸까. 일어나고 싶어도 몸에서 힘이 빠진 듯 일어날 수가 없어서 울음만 참던 레나테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지며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은가? 다친 것 같은데.”

 

 약간 높지만 굵지는 않은 게 어른의 목소리 같지는 않았다. 말을 하면 울 것 같았던 레나테가 바닥만 쳐다보자 목소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걷기는 힘들 것 같군. 도미니크 경, 레이디를 부축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기사 중 1명이 레나테를 안아들었다. 순식간에 높아진 높이에 조금 놀라서 고개를 들자 레나테의 눈높이보다 약간 높은 곳에 목소리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검은 머리칼을 가진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아직 어려 보이는데, 황궁에는 무슨 일이지? 아카데미의 견학 신청인가?”

 

 의구심을 담은 초록색 눈동자는 터키석처럼 파란색에 가까운 레나테의 눈동자 색과는 달리 풀잎처럼 진했다. 가끔 별궁 밖에 나갔을 때 봤던 시종들 중 어린 축에 드는 소년들과 비슷한 나이로 보였지만 입고 있는 옷은 고급 옷감에 대한 감이 없는 레나테가 보기에도 시종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 보였고, 약간 피곤해 보이기는 하지만 날카로운 눈매와 분위기는 조금 무서웠다. 무엇보다 기사들에게 반말을 쓸 정도면 절대 보통 신분은 아닐 것이다.

 

 “···이분은 황제 폐하의 11번째 후궁으로 오신 에드나 왕국의 공주님이십니다.”

 

 호위들 중 대장인 기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소개하자 소년의 눈에 담긴 의구심이 경악으로 바뀌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레나테를 무례할 정도로 쳐다보던 소년은 뻣뻣하게 굳은 표정으로 이번에는 레나테에게 물었다.

 

 “미안하지만 그대가 직접 소개를 해줄 수 있나? 그대의 이름이 뭐라고?”

 

 왜 다시 묻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도와주기도 했고 소개하는 것이 예의이니 레나테는 눈물을 손으로 닦으면서 이름을 말했다.

 

 “레나테 미레이유 에드나입니다. 황제 폐하의 11번째 후궁으로 왔어요.”

 “······.”

 

 소년은 세상이 망한 것 같은 표정으로 레나테를 바라봤다. 대체 왜 그러나 하고 레나테가 의아해하자 소년은 바로 뒤돌아서는 어딘가로 달려갔다. 인사는 안 하는 건가 싶어 레나테가 눈치를 살폈지만 기사들도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라 가만히 있었다. 레베카는 뭔가 하고 어이없어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분위기상 말을 안 하는 게 낫다 생각한 건지 말하는 대신 레나테를 안고 있는 기사에게 부탁했다.

 

 “공주님이 다치셨으니 후궁까지 모셔다 주세요. 중간에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더 좋고요.”

 

 

 

 

 

 기사에게 안겨서 후궁에 도착한 레나테를 맞은 건 풍채가 좋고 인상도 푸근해 보이는 중년 여자였다. 기사의 품에서 울음을 참으며 안겨 오는 레나테를 보고 깜짝 놀란 시녀장은 레나테가 다쳤다는 말을 듣고는 급히 의원을 부르고 레나테를 소파에 앉히도록 했다. 의원이 도착하고 기사가 물러나자 레나테는 드레스를 걷어 무릎을 보였다. 예상한 대로 피가 줄줄 흐르는 무릎을 보자 더 아픈 것 같아 레나테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 조금만 참으십시오. 약을 바를 테니.”

 “으... 유모, 나 아파...”

 

 의원이 가져온 약을 바르는 내내 레나테는 눈물을 글썽이며 레베카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고 나자 레베카가 레나테가 신은 구두를 벗기고 시녀장이 가져온 슬리퍼를 신겨주었다. 눈물 때문에 번진 화장도 시녀들이 가져온 세면도구로 씻어내고 나자 훨씬 덜 갑갑해졌다.

 

 “이제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으응...”

 

 아직 무릎이 아프긴 했지만 구두를 벗고 나자 훨씬 걸을 만했다. 여전히 눈물을 찔끔 매단 레나테가 일어나자 시녀장이 다가와 제대로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11후궁님. 후궁의 시녀장을 맡고 있는 이벨린 메리웨더 백작부인입니다. 제 뒤의 시녀들은 후궁님께서 앞으로 머무실 이 프리지아 궁의 시녀들입니다.”

 “스토아 남작가의 엘라라고 합니다. 프리지아 궁의 수석시녀를 맡고 있습니다.”

 “레이먼드 남작가의 나탈리입니다. 프리지아 궁에는 들어온 지 1년이 됩니다.”

 

 시녀장의 뒤에 서 있던 연한 갈색 머리카락을 하나로 틀어올려 묶은 시녀 한 명, 그리고 어두운 고동색 머리카락을 독특하게도 땋아서 돌리듯 올려 묶은 시녀 한 명이 나와서 레나테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까는 아파서 못 봤는데 다행히 시녀가 둘이나 있다는 걸 알고 안도한 레나테는 남아 있는 통증을 잊고 밝게 웃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정무로 인해 오시지 못하여 대면식은 생략되었습니다. 불편하신 게 있으시다면 시녀를 통해 말씀해주십시오.”

 

 시녀장은 그대로 물러갔고, 남은 건 레나테와 레베카, 그리고 엘라와 나탈리뿐이었다. 그때까지 가만히 레나테를 보고 있던 엘라가 망설이다가 물었다.

 

 “저, 제가 잘못 들은 걸 수도 있습니다만, 11후궁님께선 올해로 14살이 맞으신지요?”

 “레나테라고 불러도 돼. 그리고 14살 맞아. 나 생일 지난달이었거든.”

 “세상에, 정말이요?!!”

 

 엘라가 기겁했다가 급히 입을 막았다. 나탈리도 눈을 크게 뜨고 레나테를 바라보았다. 둘 다 사실 법도에는 맞지 않았지만 여기서 그걸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레나테는 원래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레베카는 두 사람의 경악을 이해했기에 타박을 주지 않았다.

 

 레베카의 말에 따르면 귀족은커녕 평민 수준도 간신히 될 수준의 식생활을 하다 보니 레나테는 제 나이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을 만큼 키도 작고 성장도 느렸다. 후궁으로 가게 되자 급히 집중관리에 들어가는 바람에 본래는 푸석푸석했던 긴 금발은 쇄골 언저리까지 잘리고 조금이라도 머릿결이 좋아지도록 이것저것 발라대긴 했지만 귀한 신분의 레이디치고는 많이 모자랐고, 몸은 삐쩍 마른데다 피부도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14살이라면 2차 성징은 진작 시작했을 터인데 레나테는 작다기보다는 아예 2차 성징 자체가 시작되기 전의 몸이었다.

 

 “공주님... 레나 님께서 이리 어리시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게다가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셔서 성장이 유독 느리십니다. 아직 초경도 시작하지 않으셨을 정도니까요.”

 “네?!! 그건 너무 심하잖아요! 어떻게 그런 어린 공주님을 후궁으로 보내실 수가...”

 

 엘라는 진심으로 분노한 듯한 시선으로 레나테를 바라보았고, 나탈리도 어이가 없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황제는 올해로 26세, 그리고 다른 후궁들도 다들 나이는 제각각이지만 가장 어린 후궁도 성년은 지났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14살이라지만 10살이라고 해도 믿을 외모와 성장 상태의 레나테가 있어봤자 눈길을 끌 리가 없다. 아니, 끌기야 끌겠지만 본래 끌어야 할 것과는 다른 의미일 것이다. 애초에 본래의 의미로 끈다면 그건 그렇게 보는 사람이 미친놈이다.

 

 하지만 유모와 시녀들이 레나테의 나이와 처지에 대해 한탄을 하건 말건 레나테는 자신의 방에 있는 물건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국의 별궁에선 예산 문제로 가구는 거의 없거나 있는 것도 질이 떨어지고 침대도 딱딱했는데, 이곳의 침대는 휘장도 있고 푹신푹신해서 정말 예뻤고 가구들도 하나같이 다 좋아 보였다. 별궁과 비슷한 생활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었던 레나테는 예상보다 훨씬 좋은 후궁의 상황에 너무나 기뻐했다.

 

 “유모, 이것 봐. 침대가 엄청 푹신푹신해! 게다가 레이스도 있어!”

 

 침대가 푹신하다면서 올라가서 방방 뛰어노는 레나테는 그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저런 어린 소녀가 앞으로 이 후궁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레나테를 계속 키워온 레베카도 오늘 처음 그녀를 본 시녀들도 걱정밖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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