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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화장해 주는 남자, 머리 감겨 주는 여자
작가 : 세빌리아
작품등록일 : 2017.10.25

미술 입시를 준비하던 고 2여학생과 멀쩡히 잘 다니던 의대를 휴학한 채 미용이 좋아 미용사의 길을 선택한 남자가 있다.

나이, 출신 지역부터 학력 수준까지 너무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어떤 케미를 가져올까?

 
47. 라면 먹고 갈래요?
작성일 : 18-02-20 22:27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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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빨리 다른 사람한테 고백해도 되냐구요?"

  "아니, 그건...아, 그러니까 그건 내가 시아한테 준 게 맞긴한데..."

  "쳇, 것 봐! 준 거 맞네.. 사귀는 거 맞네! 그런데 뭘 이제와서 중언부언 더 설명을 해요? 에이, 필요 없어요. 가세요, 가!"

 

 그렇게 투정을 부리며 그녀가 술병을 들이키려는데, 그가 그녀의 술병을 잡았다.

 

  "아니,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지. 중간에 막는게 어딨어요? 그래요, 그거 내가 시아 준 거 맞아요. 뭐 딱히 버리기엔 마음이 좀 쓰여서 그냥 다음 날 실습 때 처음 보는 누군가 아무한테나 주려고 들고 갔다가, 마침 시아가 제일 먼저 보여서 걔한테 넘긴 거라고요."

  "그걸 시아도 알아요? 아니, 딴 여자 줬던 걸 굳이 또 다른 여자한테 넘겨요? 그건 진짜 비매너 아닙니까? 그것도 모르고 걔는 남친 생겼다며 좋다고 자랑하던데..."

  "네에? 시아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그래요, 걔가 아주 의기양양해서는 남친 생겼냐는 물음에 오냐하며 대답했다고요."

  "헐...난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그냥 오다 주웠다고..."

  "쳇, 그게 요즘 신종 고백 방식인 거 몰라요? 츤데레처럼 관심 없는 척하다 은근히 챙겨주는 거?"

  "오마갓...그럼 정말 시아가 날..."

  "아, 정말 이 남자 안 되겠네."

 

 넋이 나간 파랑이 술병을 놓자 그녀가 꼴깍하고 마셨다. 그리고 한심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순진한 애 데리고 장난치면 안 된다구요."

  "시아가 순진하진 않죠. 아, 그런데 이 말 하려고 날 부른 거에요? 난 결백해요. 그건 걔 혼자 착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아까 나한테 했던 말은 뭐에요? 분명 ‘날 줄게요.’라고 했잖아요. 그거 무슨 뜻이에요?"

  "내가 언제 그랬어요? 노트북 준다고 했지."

 

 로사는 능구렁이처럼 말을 돌렸다. 이젠 술을 마실수록 취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말똥말똥해졌다.

 

  "노트북? 왜, 왜요? 갑자기."

  "아니, 뭐...생각해보니까 그거 내가 가질 게 아니잖아요. 파랑씨가 탄 거니까. 돌려줄게요. 이제 생각해보니 염치가 좀 없었던 거 같아서."

  "그냥 쓰세요. 염치...없어도 되요. 이미 염치 없으시잖아요."

  "네?"

  "아니, 솔직히 지금 시아 얘기 꺼낸 것도 좀 웃기잖아요. 로사샘이 내 여친도 아닌데 괜한 애 얘기 꺼내서 마치 바람핀 남자친구 대하듯 몰아붙이고..."

  "네에?"

 

 사실 속으로는 로사의 질투가 굉장히 기분이 좋은 파랑이었다. 계속 더 심하게 투기를 부렸으면 하는 마음에 시비의 불씨를 당겨보았다. 이렇게 티격태격 싸우는 것조차 그는 재밌었다.

 

  "나참, 어이 없어."

 

 사실 로사는 할 말이 없긴 했다. 이건 그에게 역습의 기회였다.

 

  "그러는 샘은 이런 럭셔리한 곳에서 혼자 술을 마셨어요? 맞은 편 보니까 잔이 하나 더 있네요?"

 

 미처 다 치우지 못한 하완의 잔재가 남아있던 것이다. 여자의 육감만큼이나 남자의 육감도 무시 못하는 것.

 

  "아, 그건...제자에요."

  "제자?"

  "내가 스무 살 때부터 경력이 얼만데 제자가 한 둘이겠어요? 그중 하나에요."

  "아, 네..."

 

 그렇게 대화의 맥이 끊기자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색함이 공기를 덮었다.

 

  "파랑씨도 한 잔 할래요?"

  "저 바이크 타고 왔..."

 

 자동으로 나온 말인데 괜히 말했나 싶었다. 그런데 순간 그녀가 진실을 말해버렸다.

 

  "파랑씨도 대리 불러요."

  "파랑씨도? 누가 대리를 불러 갔나보죠?"

 

 그녀는 당황했지만 매끄럽게 받아쳤다.

 

  "아, 네. 술 마셨으면 대리로 가는 거죠."

  "그렇죠, 뭐."

 

 그도 대수롭지 않은 척 응수했다. 하완이라고 생각하지는 못 했다.

 

  "샘은 어떻게 갈 거에요? 이제 집에 가야잖아요? 데려다줄게요."

  "그래요, 뭐 어차피 노트북도 집에 있으니까. 집도 이 근방이고."

 

 마치 전용 대리기사라도 부른 양 자연스럽게 그에게 신세를 지는 로사였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걷는 걸 파랑이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그래서 뒷자리에 타겠어요? 차라리 택시를 부르는 게 낫겠어요."

  "무슨 소리에요? 요기 지척인데 무슨 택시를 불러요. 돈 나가게. 걱정 마요. 저번처럼 젖먹던 힘까지 다해 꽉 잡을 테니까."

 

 그렇게 그녀는 파랑의 바이크를 타고 집으로 갔다. 내리고 나니 그를 온전히 대리기사로 이용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밤중에 오라가라한 게 좀 그랬나 싶었다. 거센 바람에 술이 많이 깨긴 깼나보다. 그녀의 염치가 다시 고개를 들었으니.

 

  "저기...밥은 먹었어요?"

  "전화하자마자 연습하다 말고 왔는데 먹긴요. 편의점에서 때울 겁니다."

 

 아까 하완에게는 스테이크에 와인까지 사줬는데 파랑에게는 남은 안주 쪼가리 하나 먹어보라고 권하지 않았다. 음식 얘기에 그의 배가 꼬르륵 하고 비명을 질렀다. 마치 그의 위장이 의지에 따라 움직여주는 것처럼.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요. 잠깐 들어가서 라면 먹고 갈래요?"

 

 순간 그의 눈이 확 커졌다.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 행운이 다가온 것이다.

 

  "라, 라면이요?"

  "배고픈 것 같아서."

 

 도대체 이 여자는 속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아까 처음 봤을 때는 술이 떡이 되어서 발음도 불분명하더니만 지금은 또 말짱하니 또랑또랑했다.

 

  "에, 그럼 감사히..."

 

 이러다가도 편의점에 가서 라면 사와라하고는 또 먼저 잠들거나 도망쳐 버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들어와요."

 

 그렇게 그녀를 따라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원룸인 그녀의 집은 꽤나 아기자기했다. 핑크색 키노피를 설치한 공주침대는 정말이지 여자애들 장난감 광고에나 나올 법한 비주얼이었다.

 

  "집이 예쁘네요."

  "다 이러고 살잖아요."

  ‘누가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녀가 냄비에 물을 붓고는 보글보글 라면을 끓였다. 그러는 사이 그는 집구경하다가 티비 앞에 놓인 작은 상 앞에 앉았다. 소꿉놀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두꺼운 잡지 위로 라면 냄비가 올라오고, 김치가 놓이고, 수저가 등장했다. 그는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흡입했다. 그런 그를 그녀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되게 맛있게 먹네...해장술 땡기게."

 

 마지막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그가 홀랑 다 먹어버리자 그녀는 젓가락만 빨고 내려놨다.

 

  "이렇게 깨끗이 먹을 줄은 몰랐네요. 아니, 어떻게 한 젓가락도 안 남기고..."

  "아, 기다렸어요? 몰랐죠."

  "아니에요. 난 먹었는데요 뭐. 그냥 너무 맛있게 먹는 소리에 혹시나 해서."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다시 찾아온 정적. 그는 이제 결심을 해야했다.

 

 나갈 것인가, 들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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