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루크는 가지고 왔던 식기나 피크닉 가방을 잘 정돈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버지가 만든 동양의 검을 들고 집의 뒤뜰에 서 있었다. 넓지는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되는 것이 싫은 나머지 이렇게 혼자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연습을 하는 것이였다. 물론 아버지도 어디론가 나가셨던 것인지 한 동안은 안 들어올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그러면, 어떤 검술을 써야 좋은 걸까."
문득 자신이 스승에게 우연찮게 배운 질풍이라는 보법. 이 보법은 정말로 빠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의외로 헛점이 많았다. 우선은 발이였다. 두 다리에 기를 집중하여 흘러 보내는 양이 너무나 많았다. 그로 인하여 극심한 소모와 피로가 몰려들기도 했다. 빠르기는 했으나 쉽사리 그에 걸맞는 검을 쓸 수가 없었던 것도 지금의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문제는 무엇일까. 백날 고민을 해봤자 답이 나올리는 없고, 우선은 움직이는 것이 나을까.
루크는 잠시 동양의 검을 들고서는 질풍 보법을 발한다. 이리저리 흙이 흩날릴 정도로 빠르다만 공격의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이게 문제였던 것이다. 다리만 빠르면 무엇하나. 다른 쪽은 그에 반응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하면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맞는 기술을 일궈낼 수 있을까?
"흐음...."
고민을 해도, 몸을 움직여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나 내일 그녀에게 가서 물어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루크는 검을 들어 집으로 돌아가서는 식사를 하고 잠을 청한다. 잠을 청하면서도 오로지 기술의 생각을 하면서 잔다.
다음날의 아침이였다. 루크는 의외로 아침 일찍 눈이 떠져서는 서둘러 세면을 하고 아침을 재빨리 준비하고서는 학원으로 뛰어가려고 했다만, 익숙한 마차가 눈에 띄었다.
"어이, 평민. 어제 찾아가봤는데 집에 없더라?"
"아. 잠깐 어딜 다녀오느라.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왜?"
"나중에 집으로 놀러와라 평민. 그 꼬마 괴수 녀석도 잘 지내고 있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야."
"그 말을 하려고 일부로 집을 찾아온 거야?"
"머, 멍청아! 네녀석의 집에서 학원은 머니까! 내가 친히 데려가는 거라고! 마침 오늘은 일찍 눈이 떠져서 그런 거고!"
"아, 알았어."
"그러니까 얼른 타. 이르긴 해도 여기서 이동한다면야 빨리 도착을 할 수가 있으니까."
루크는 라이의 마차에 타면서 그간 있었던 시덥잖은 일들은 이야기한다. 자신이 왜인지는 모르나 인정을 받은 일. 루크는 자신을 대신하여 어쩔 수 없이 나간 대회의 일을 설명하면서 꽤나 즐거운 대화의 시간을 흘러보내고 있었다. 한창 열을 띄우며 대화를 하다보니 마차는 어느새 멈춰 있었고 두 명의 소년은 마차에 내려서는 학원의 정문을 통과한다.
"어째, 자의식 과잉일지 모르지만 나를 보는 눈들이 많네...."
"당연하겠지. 퍼스트 레이디인 그녀를, 검의 명가라고 부르는 발로드 가의 여식에게 팽팽하게 싸운 너야. 그러니 이목을 끄는 것이지."
"그렇게 유명한 가문의 딸이였어?"
"정계나 그런 쪽으로는 별 볼일이 없어도, 전쟁이 나면 선두로 적을 쓸어버리는, 말 그대로의 퍼스트야, 첫 번째. 그들의 실력을 앞장 세워서 싸우면 전력 손실과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고, 무엇보다 강하니까."
"그, 그렇구나."
루크는 몇 일 전에 있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어찌 그때 우연찮게 질풍을 써서 겨우 도망치는 생쥐꼴이였지만, 만약에 그마저도 배우지 않았다면, 미숙했더라면 그 고통을 연속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한이 들었다. 그러니 물어봐야 한다.
"저기, 라이. 레이나 양은 우리와 같은 층의 교실을 쓰지?"
"그렇지. 중앙 계단에서 왼쪽의 교실은 하나같이 여자들의 교실이니까. 그런데 그건 왜?"
"그냥, 뭐 좀 물어볼 것이 있어서, 레이나 양에게."
"그만둬. 수업의 양도 달라서 우리와는 전혀 만날 수도 없고, 그나마 만날 수 있는 건 점심시간 정도야. 또, 그녀석 사교계에서도 말을 안하는 걸로 유명하다고. 가끔 말을 한다 싶으면 본인은 아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확한 말을 해서 성질을 긁어 놓는다고. 나도 몇 번 말을 걸어봤지만 묵묵부답, 인형마냥 말이 없어. 포기하라고."
"묵묵부답은 아니던데...."
"뭐라고 했냐?"
"아니, 별거 아니야. 그러면 점심에는 만날 수가 있다는 거야?"
"만날 수야 있다만 무엇을 물어볼려고 그리 필사적이냐?"
"아, 그건...."
"됐어. 말하기 어려운 거라면. 얼른 교실이나 가자고."
라이는 더이상 물어보지 않고는 성큼성큼 걸어 교실로 들어간다. 예전 같으면 때를 써서라도 묻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였다. 무언가 변화라도 일어난 것일까 이 짧은 시간 내에. 고민을 해도 답은 없었으니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곳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은발의 소년이 있었다.
"어?"
"오랜만이군, 루크. 잘 지냈나?"
"에단!"
루크는 자신이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손을 내민 첫 번째 친구인 에단 폰 웰콘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루크에게 인사를 건넨다. 루크도 그가 반가운 나머지 그에게 기세좋게 달려들었다.
"그, 그 동안에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아. 집안에 일이 있어서 잠시 며칠 동안, 아니 몇 주 동안은 못 나온다고 학원에 말해두긴 했다만."
"그, 그게 아니라! 어디 아픈 곳은 없지? 다친 곳도 없고?"
"그래. 그보다도 얼굴이 많이 좋아졌군, 루크."
오랜만에 만나는 그의 모습은 변한 것이 없었다. 다만 변화가 있었다면 머리가 조금 길어졌다는 것이다.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때마침 선생님이 들어와서는 모두 자리에 앉고야 말았다. 선생님도 에단이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건지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하며 수업을 시작하였다. 수업이 지루하다고는 매일 느껴졌지만 오늘은 달랐다. 마치 기다리면 사탕을 더 준다는 어른의 말을 들어버린 아이와도 같달까.
이윽고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나는 자리에 일어나서는 에단에게로 다가갔다.
"다시 말하지만 오랜만이다, 루크."
그의 말을 다시금 들으니 정말로 오랜만이라는 말이 이리도 어울리는 것인지 몰랐다.
"집안의 사정으로 인하여 학원을 못 나온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자주 나올 거야. 그러니 걱정은 하지마라."
"아, 알았어."
에단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따뜻했지만 실체를 알고보면 무언가 더이상은 물어보지 말라는 뜻도 가진 말과 같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라이가 다가왔다.
"오랜만이구만, 웰콘."
"그렇군. 오래간만이군, 뷔렌드의 꼬맹이."
"크으으음...!"
라이는 꼬맹이라는 말에 반응했지만 화를 가라 앉히는 듯이 숨을 코로 거칠게 내뱉는다. 그리고선 에단은 다시 말을 잇는다.
"무엇을 하는지는 몰라도, 루크를 괴롭히지 않는게 좋을 터인데?"
"시, 시끄러.... 그리고 이미 화해도 했고 말이야."
"흐음. 너만의 착각이 아닌가, 뷔렌드? 그간 루크가 당한 것이 있는데, 쉽사리 용서를 구할 수가 있는 건가, 너는?"
"저, 저기...."
"무, 물론 그렇지만서도 그래도! 너가 없는 동안에 나는 녀석과 친해졌다. 내가 해왔던 괴롭힘이 용서받을 수는 없어도, 계속해서 속죄할 것이다."
"그렇군. 그러면 그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보도록."
'네 녀석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아."
"그렇다면 그걸 증명하도록 해라. 내가 보는 눈 앞에서."
상황이 묘하게 흘러들어간다. 두 가문의 자녀들의 팽팽한 눈싸움. 그리고 그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가만히 있는 갈색 머리의 소년은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가만히 서서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증명이라, 어떤 증명을 원하는 거냐, 웰콘!"
"간단해. 네놈은 전에 내게 싸움을 건 적이 있었지? 후에 속전이다."
"좋아.... 그 결투 받아들이마."
"기세는 좋군. 허나 실력은 형편없던 것 같던데."
"시끄러워. 점심 시간에 뒤뜰에 있는 곳으로 와라. 제대로 눌러줄테니까."
"그거 기대해도 좋은건가?"
"그래. 기대해도 좋고 말고."
어느덧 기싸움에서 결투로 번져버린 둘. 왠지 나 때문에 이렇게 된 일인 것 같다.
"루크. 그러면 점심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이! 기다리라고! 내가 저 녀석보다 내가 더 너에게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주지!"
라이는 할 말을 다했다는 듯이 말하고서는 돌아간다. 그리고 에단도 자신의 긴 머리를 묶으며 희미하게 웃는다. 그리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점심 시간에 하려 했던, 그녀를 만나러 가서 물어보려 했던 행동을 캔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