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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혼돈 : 내일과 어제를 잇는 다리
작가 : 러군
작품등록일 : 2017.11.6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2052년의 내일에 대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2026년의 어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둘 사이에 이어진 다리의 사연이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를 주는데...

모든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경고.

 
길들여진
작성일 : 18-02-06 10:07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12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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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둘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 속에서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 실수한 것은 찬이다. 그가 마켓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곳의 분위기를 깨달았어야 했다.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가 나타나면서 주춤했던 쇼핑이 이제는 늘어났다는 것은 크로우가 새로운 변신을 할 때가 되었다는 표시였다.

 

 이전에도 크로우는 회사의 특정 계층만 골라 자살을 유도하다가 사람들 관심과 두려움이 주춤해지자 변화하여 불특정 다수를 선택하여 자살을 유도하도록 변화하였다. 그렇다면 다시 변화를 할 시점이었음에도 그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새로운 휴고가 나타남을.

 

 민희는 자기가 뭘 잡으러 왔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을 죽이는 휴고를 찾고 있었다. 그것도 고작 반경 10미터 안에만 작동하는 기계를 이용해서 죽음의 사신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대나 되는 크로우를 찾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방심을 하고 그 순간 풋맨을 확인하기 위해 자기의 기계 버튼을 꺼버렸다. 더 이상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 다른 말로 크로우이며, 풋맨이라 칭하는 사신 휴고를 막을 방법이 없는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뒤에서 새롭게 변신한 풋맨이 다가오고 있었다.

 

 풋맨이 된 휴고를 다 확인한 민희가 옆에 있는 로이를 보며 말했다.

 "큐브, 다 됐으니까 원래 있던 곳에 갔다 놔. 조금 있다가 원상 회복시킬 테니까."

 

 "예."

 로이가 대답을 하고는 풋맨이 된 휴고를 들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민희 뒤에서 어떤 휴고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휴고는 다른 휴고들과 달리 그냥 지나치려는 모습이 아니라 그녀를 향해 곧장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그 휴고에게서는 뭔가 위험스러운 목적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녀를 해치려는 모습이었다. 그걸 모르는 그녀는 연신 페이퍼 탭을 보고 있었다.

 

 알파 옆에 서있던 찬은 레온과 이야기를 하고 고개를 돌려 민희를 봤는데, 그 순간 그의 눈에 그녀 뒤에 다가오는 휴고가 보였다. 직감이랄까 아니면 본능이랄까 그게 발동하였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휴고가 보통의 휴고가 아님을 느꼈다. 그래서 서둘러 몸을 돌렸다. 그의 생각에는 풋맨이 된 휴고가 민희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자신이 민희에게 가는 속도보다 뒤에서 다가가는 풋맨의 거리가 더 가까웠다. 로이를 찾으니 로이는 다른 휴고를 안고서 더 먼 곳에 있었다. 순간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길, 저게 관리자가 말했던 그거 일 수 있어. 그거라면 분명히 민희를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 하지. 이러다 늦겠는데. 어떻게 한다.'

 

 생각과 동시에 그는 뛰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뛰면서 고함을 쳤다.

 

 "저기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된 휴고가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다.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냉장고 옆에 서있는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휴고들 저 휴고 막아라."

 

 찬의 고함소리가 마켓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얼마나 간절하고 다급했는지를 소리의 크기로 알 수 있다. 사실 찬은 알고 있었다. 어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민희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는 단번에 그녀 뒤에 접근하는 휴고가 위험한 휴고임을 알았던 것이다.

 

 민희에게 어떤 짓을 할지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자기가 그녀 옆을 비울 때 그녀를 보호하라는 의미로 로이를 남겨 놓았는데 때마침 로이는 딴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를 지켜줄 사람이나 휴고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찬 스스로 민희는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도 하고 약속을 했었는데, 약속한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기려 하고 있었다.

 

 '안 돼. 안 된다고. 안 돼'

 

 달려가기 시작하면서 겁이 났고 온몸이 떨렸다. 자기 사람을 잃게 될까 봐 겁부터 났다.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데 자기가 그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다. 그 다급한 시점에 그가 순간 떠올린 것은 A.I 아시모프 법칙이다.

 

 제1장, 사람을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구하라는 내용.

 

 순간 그게 떠올라 소리쳤다. 그의 고함소리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모든 휴고들이 일제히 민희가 있는 쪽을 보았다.

 

 

 S 시에 있는 의회 의원 사무실 중 한 곳.

 

 의원 사무실 안에 윤이엽과 허영헌이 은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하면 천장에 있는 카메라에 테이프가 붙어 있고 마이크에는 소음 덮게가 씌워져 있다.

 

 윤이엽이 작은 소리로

 "어때 풋맨의 활동은?"

 

 허영헌이 따라서 작은 소리로

 "요즘은 정부 기관의 조사가 심해서 활동을 줄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 안 돼."

 순간 화가 나 큰 소리로 말하고는 다시 작은 소리로 조심하듯이

 "막 혼돈 시기와 같은 혼란이 시작되려고 하는데.

  이렇게 뒤로 도망만 치다 보면 국민들이 겁을 먹지를 않아."

 

 "하지만 단속도 있고, 유 국장이 두려워하는 범브이라는 것도 있어. 아직은..."

 

 윤이엽이 허영헌의 뒤통수를 잡아 자기 앞에 당겨 놓고는 작은 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겁먹지 마!

  왜 겁을 먹어. 알았어!

  겁먹어서는 권력을 못 잡아!

  이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어!

  알겠어!

  ...

  언제까지 찔끔찔끔 죽일 거야. 그래서는 사람들이 안 움직여.

  우리 크게 놀자고. 크게.

 ...

  유 국장 봐. 4500만 명을 죽이잖아. 그게 권력이고 힘인 거야. 알겠어."

 

 허영헌이 뒤통수가 잡힌 채 끄덕였다.

 "예, 예, 예.

  그래서 이번에 보낸 풋맨은 우리 일을 방해하는 자들을 찾아 죽이게 명령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윤이엽이 기뻐하며

 "그래! 잘 했어.

  그렇게 해서 휴고가 사람을 직접 죽이는 모습을 보여줘야 에이아이를 겁내지.

  풋맨을 찾는 놈을 다 죽이라고 설정을 하지 않고."

 

 "예, 그런 식으로 명령을 해놓았습니다.

  지금쯤이면 S 시 어디선가는 우리 일을 방해하거나 조사하는 사람이 있으면 풋맨이 공격하여 죽였을 겁니다."

 

 윤이엽이 흡족하다는 듯이 허영헌의 뒤통수를 잡았던 손을 풀어주며

 "그래야지. 그렇지."

 

 윤이엽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허영헌이

 "그런데 유 국장은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왜? 또 누구 왔어?"

 

 허영헌이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 며칠 전 이후로 최근에는 연락 온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그와 같이 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언제까지 다 늙은 영감과 같이 가실 생각이십니까?"

 

 윤이엽이 침착하게

 "아직은 아냐. 지금처럼 약이나 먹이며 생명을 유지시킬 필요가 있어."

 

 허영헌이 조금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왜 유 국장 이야기만 나오면 겁을 먹으시는 겁니까. 그는 이제 가죽도 없는 호랑이입니다. 이빨은 예전에 그곳에 유배 가면서 다 빠진 거 아닙니까."

 

 윤이엽이 그제야 뒤로 물러나 소파에 등을 기대며

 "아냐. 지금은 그렇게 보여도 우리 중에 실질적으로 정부를 다스려 본 인물은 그가 유일해.

  우리가 앞으로 에이아이를 몰아내고 우리 정부를 만들려면 그의 경험과 지식이 꼭 필요할 때가 올 거야.

  그때까지만 살려 놓자는 거잖아."

 

 "그렇기는 한데, 그 영감이 그렇게 호락호락 우리에게 권력을 넘겨 줄지가 의문입니다. 지금까지도 핵심은 말하지 않고 혁명이 된다고만 하니 이용만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기다려 봐. 이번 일처럼 차츰 그 영감도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할 거야.

 ...

  흐흐흐.

  생명이 영원한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영감이 버텨봐야 얼마나 버티겠어.

 ...

  이번 일도 봐, 작년 연말에 그만 두겠다고 겁을 주니까 명령문을 가르쳐 주잖아.

  멀지 않았어.

  곧 이 세상은 우리 세상이 될 거야.

 ...

  사람들의 불안이 커질수록 가까워 오는 거야.

  사람들의 불안을 무기 삼아 우리가 권력을 잡는 거야."

 

 "그렇다면 앞으로는 이번처럼 자살을 유도하는 풋맨을 보낼 것이 아니라 아예 전부 다 우리 일을 방해하는 정부 기관 놈들을 잡아 죽이도록 명령된 풋맨을 보내야겠군요."

 

 "그것도 좋지! 그러다 어느 정도 방해꾼이 없으면 아예 시민들을 죽이는 풋맨을 보내 공포 상태를 만드는 거야.

  그럼 우리 일이 더 쉬워지지. 무능한 에이아이에 대하여 시민들이 반기를 들 테니.

  그때 우리가 나서 에이아이를 몰아내는 거야."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추진하도록 김 의원님 쪽에도 연락하겠습니다."

 

 허영헌이 이야기가 끝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윤이엽이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참, 잠깐만. 그 친구와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

 

 허영헌이 그의 말을 이해 못 해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거 있잖아. 저번 선거에 우리를 도와주었던 피에스더블유씨 직원 말이야."

 

 허영헌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아, 김태준 그 친구요. 요즘도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그 친구와 잘 지내. 아주 쓸모가 많은 친구야."

 

 허영헌이 영문을 몰라

 "왜요?"

 

 "자네는 모르지만 유 국장이 우리에게 정치 교육을 할 때 유달리 애착을 보이며 했던 말이 있는데. 그게 그 회사 이야기였어.

  아마도 그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감추고 있는 패는 분명히 그 회사와 관련된 일일 거야.

  그러니 자네가 그 친구와 잘 지내며 내부 사정을 좀 알아봐."

 

 허영헌이 고개를 숙이며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걱정 마시고 저에게 맡겨만 주십시오. 의원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 대답에 윤이엽이 흐뭇한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영헌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이들이 바로 찬의 할아버지 유민태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던 장본인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찬은 이들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그건 세상도 같았다. 이들이 방금 말한 것처럼 풋맨을 이용해 국민들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이들은 새로운 죽음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죽음만으로는 그들의 욕심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더 큰 욕심을 내고 있었다.

 

 

 찬과 민희가 풋맨을 찾기 위해 마켓에서 최초로 풋맨 찾는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던 그 시각. PSWC 3구역 김동주의 사무실에서는 그가 모니터를 보며 자기 감시 대상자 중 특별 관리 대상자 열 명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 영상들 모두 PSWC 소속의 P-휴고들이 집 앞에서 지키고 있었다.

 

 영상을 보고 있던 동주의 시선에 6번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 P-휴고 뒤로 어떤 정체 모를 휴고가 다가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다급히 외쳤다.

 

 "육 번 영상. 육 번 영상 확대해 봐."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다가오던 휴고가 순식간에 회사 P-휴고를 덮쳤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P-휴고의 머리통을 뽑아 버렸다. 뒤이어서는 P-휴고의 왼쪽 가슴을 주먹으로 강하게 쳤다. 회사 휴고의 왼쪽 가슴에서 연기가 났다.

 

 사무실의 HAL 9이 비상 경고를 울렸다.

 "크로우 출현. 크로우 출현."

 

 비상을 알리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회사 P-휴고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할 나인, 당장 저 집 엔디알에게 모든 문을 봉쇄하고 휴고를 이용해 외부의 크로우가 집 안으로 침입을 할 수 없도록 막으라고 해. 그리고 인근의 모든 집들에게 연락하여 집집마다에 있는 휴고를 다 동원하여 저 크로우를 잡아."

 

 "예"

 

 대답과 함께 모니터의 영상이 6번 영상을 제외하고는 다 사라졌다. 새롭게 나타난 영상은 크로우가 덮친 집 내부의 영상과 그 인근의 동네 영상이 나왔다. 집안 영상에서는 휴고가 거실 문 앞에 서서 집을 지키는 모습이다. 동네 영상에서는 집집마다에 있는 휴고들이 집을 나와 문제의 그 집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같은 시각 S 시 5구역 어느 집 앞.

 

 가정용 H-휴고들과 크로우가 싸우고 있었다. 크로우가 나타나 PSWC 소속의 P-휴고를 파괴하려는 순간 집 안에 있던 NDR-11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는 집안 휴고를 보내 P-휴고를 도와주게 했다. 그때부터 그 집을 관리하는 PSWC 소속의 직원이 인근에 있는 집들의 휴고를 모두 동원하여 크로우와 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회사 P-휴고와 그 집 H-휴고 두 대만으로는 크로우와 싸우기에는 감당이 되질 않았다. 아마도 상대는 예전에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풋맨 로봇이라 일반적인 용도의 휴고와는 싸움에 있어 차원이 달랐던 모양이다. 두 대의 휴고가 순식간에 풋맨에 의해 제압이 되면서 작동 불능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동네 휴고들이 여러 대 나타나 일시에 달려들면서 그제야 싸움은 어느 정도 비등한 양상을 나타냈다.

 

 얼마 뒤, 휴고들이 싸우고 있는 곳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에 인근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집 밖으로 나왔다. 크로우가 나타난 집 앞에는 두 대의 휴고가 고장 나 있고, 네 대의 휴고가 뒤엉킨 채 폭발을 하여 불타고 있었다.

 

 

 G 시.

 

 이곳에 있는 한 PSWC 직원은 찬과 같은 방식의 근무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 밖에서 사람을 대면하고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하는 타입의 방식을 사용하는 직원이었다. 그는 그 시각에 크로우의 말을 듣고 자살을 기도하려는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자살을 기도하려는 사람은 칼을 들고 자기 목을 겨누고 있었다. 그 사람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막 설득을 하려고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등 뒤에 크로우가 나타났다.

 

 뒤에서 나타난 크로우는 순식간에 직원의 뒤에서 그의 목을 팔로 조르듯이 감싸더니 이내 목을 꺾어 버렸다. 직원은 피할 시간도 없었고 대응할 순간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이 갔던 PSWC 소속의 P-휴고가 크로우 였던 것이다.

 

 자기 주인인 직원을 죽이고 난 크로우가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자살 기도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제는 자살을 하려던 사람이 놀라 그만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는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크로우의 모습에 극심한 공포감을 느꼈다.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크로우가

 "그렇게 힘들면 내가 도와주지."

 

 그렇게 말하고는 단숨에 두 손으로 자살하려던 사람의 목을 잡고는 마치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듯 목을 조르면서 꺾어 버렸다.

 

 

 PSWC 3구역 관리자 사무실.

 

 사무실 안에서는 A조 관리자와 B조 관리자가 함께 모니터를 보는 중이다. 모니터에서는 찬과 민희가 있는 마켓의 다양한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찬이 지금 소리를 치며 민희에게 달려가는 장면이 나오는 영상이 가장 큰 영상으로 보이고 있다. 그때 모니터에 붉은 등이 나타나더니 비상 신호를 울리기 시작했다.

 

 "비상, 비상.

  크로우가 회사 P-휴고를 공격하거나 직원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비상, 비상.

  모든 직원과 모든 할 나인은 각자에 속한 P-휴고의 안전에 만전을 기해 주십시오.

 ...

  다시 알립니다. 크로우가 지금 대원들과 회사 P-휴고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에 두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특히 B조 관리자 추상민은 일어나서는 바로 앞쪽 모니터의 민희가 있는 영상을 보았다. 그의 눈은 걱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 영상을 보고 있었다.

 

 "안 되는데. 저 사람을 다치게 하면 절대 안 되는데.

 ...

  막아야 하네. 유찬, 자네가 어떻게든 막아야 하네."

 

 

 설민네 집 거실.

 

 설민이 무슨 일이 있는지 연신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뭔가에 안심이 안 되는 사람처럼 걱정을 하는 모습이었다. 거실 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로 거실은 환하게 밝았다. 그걸로 봐서는 정오 무렵으로 접어드는 시각으로 보인다.

 

 뭔가 고민이 있는 사람처럼 가만있지를 못하고 연신 움직이는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보통 글을 쓰거나 할 때는 고민이 있으면 정중동으로 꼼짝도 하질 않고 가만있는 것이 고민 해결 방법이고. 그 외의 고민이 생기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생각하는 그런 타입이었다. 지금은 글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뭐가 다른 고민이 있다는 말이다.

 

 그때 2층에서 창동이 내려오려다 누나 모습을 보고는 흠칫 놀란 모습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서둘러 몸을 숨기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눈치를 봤다. 설민은 여전히 거실을 정신없이 서성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창동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작은 소리로

 "무슨 고민이 있나? 저 정도면 큰 고민이 있다는 표신데."

 

 창동이 한참을 눈치 보다가 결심을 했는지 다시 2층에서 살금살금 내려왔다. 설민이 거실을 서성이다 뒤돌아섰을 때 2층 계단을 다 내려온 창동과 시선이 마주쳤다. 창동이 계단을 다 내려와 현관으로 향하려던 참이었다.

 

 설민이 창동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또 어디 가?"

 

 창동이 몰래 나가려고 살금살금 걷다가 깜짝 놀라 커다란 눈으로 누나를 봤다.

 "어어, 밖에. 밖에 놀러 가."

 

 "또 혜정이 보러 가는 거야. 내가 걔 너무 자주 보지 말라고 했지."

 

 창동이 혜정의 이야기가 나오자 대뜸 딴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무슨 일 있어?

  아침에 민희 누나와 통화할 때는 즐거워 보이더니 지금은 왜 이래?

  참, 민희 누나 애인 그 사람이던데. 언제 그렇게 됐어?"

 

 설민이 근방 시무룩해서

 "민희 때문이야."

 

 창동이 누나의 대답에 그제야 안도하는 미소를 지으며 얼굴이 밝아졌다.

 "민희 누나가 왜?

  애인하고 무슨 문제 있어?"

 

 "그게 아니라 오늘 애인하고 무슨 일을 한다고 했는데. 걱정이 되어서."

 

 창동이 오해를 하고

 "에이, 누나가 민희 누나 엄마야. 다 큰 여자가 애인 만난다고 걱정을 하게.

  왜? 둘이 그렇고 그런 거 할까 봐 걱정하는 거야.

  다 큰 딸 사고 칠까 봐 걱정하는 거지?"

 

 설민이 단번에 큰 소리로

 "아냐. 이게 못하는 소리가 없어.

  그게 아니라. 그럴 일이 있어. 최근에 둘이 하는 일이 좀 그래서 그래."

 

 "무슨 일을 하는데?"

 

 "자살 유도하는 휴고 찾는 일.

  남자 친구가 찬이라고... 참! 너도 민희 집에서 봤다며.

  너 구해준 사람."

 

 "아! 지금 그 일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걱정이야."

 

 창동이 그제는 나갈 생각은 하질 않고 누나 옆에 서서

 "어떻게 하는 건데?"

 

 그제는 창동이 호기심을 느꼈다. 그는 아예 순간적으로 도망칠 생각을 잊은 사람 같았다.

 

 "아아아, 몰라. 그건 나중에 이야기해. 안되겠다. 어떻게 됐는지 연락해봐야겠다."

 

 설민이 그 말을 하고는 모니터를 보기 위해 돌아섰다. 그 순간 창동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누나가 뒤돌아서는 걸 보고는 기회가 왔다는 듯이 빠른 걸음으로 현관으로 달려갔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발뒤꿈치를 들고서 뛰었다.

 

 설민이 모니터를 보며

 "민희에게 연결해 봐."

 

 탁자 위의 RTF-7이 대답했다.

 "예."

 

 모니터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보통이라면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영상이 나타나야 했다. 그 모습에 설민은 더 답답해했다.

 

 잠시 뒤, 모니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거실 탁자에 올려놓은 RTF-7에서 소리가 났다.

 "민희님이 받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통화 연결을 못한다고 알려왔습니다."

 

 그 소리에 설민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지현의 집.

 

 그녀는 거실에서 요가를 하고 있었는데 몸은 요가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통화를 시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비틀고 있다가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연결이 안 되다니. 아침에 차 타고 가는 애와 통화했잖아."

 

 소파 위에 올려놓은 RTF-7이

 "예, 그런데 지금은 연결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누구가 그래? 민희가 그래 아니면 그 애 알티에프가 그래?"

 

 "민희님 알티에프 세븐이 그렇게 알려왔습니다."

 

 "딴 이유는 말하지 않고."

 

 지현이 이 말을 할 때는 요가 동작을 풀고 RTF-7이 있는 쪽을 보며 말했다. 아마도 내심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예,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뭐 하는데 전화를 안 받아.

  혹시...

  혹시 그새?

  아침에 전화할 때 마켓에 간다고 했지!"

 

 "예, 찬님과 마켓에 간다고 했습니다."

 

 "마켓에 간다고 했으니까 그새 쇼핑을 끝내고 딴 곳에 간 것은 아니겠지. 시간이 촉박해 보이는데."

 

 그때 NDR-11이 천장 스피커로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지현이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뭐, 뭐. 왜?"

 

 "왜 두 사람의 연애 생활에 관심을 두시는 겁니까?

  혹시 찬님이 관심 있으신 겁니까?"

 

 지현이 화들짝 놀라

 "무슨 소리야. 큰일 날 소리 하네. 난 그냥 둘이 뭐하나 했어 관심을 둔 것뿐이라고."

 

 "친구 연애에 선을 넘으면 안 됩니다. 지금 두 분이 뭐를 하던 그건 관심을 두시면 안 되는 일인 거 아시죠."

 

 지현이 일어나 샤워를 하러 가려고 하며

 "알아. 알고 있다고. 어디서 훈계야. 나와 민희 사이를 의심하려는 거야. 우린 절대 그런 일 없어."

 

 그때 RTF-7이 말했다.

 "설민님이 연락하셨습니다."

 

 지현이 돌아서며

 "화상 연결해."

 

 앞쪽 모니터에 있던 요가 영상이 사라지고 설민이 거실에 서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지 못하고 서있는 모습이다.

 

 지현이 다시 앉아 요가 자세를 하며

 "왜?"

 

 "민희와 통화가 안 된다. 넌 통화했냐?"

 

 "나도 지금 통화하려고 해봤는데 안되던데.

  왜? 무슨 일 있어."

 

 "요가하고 있구나."

 

 "응. 넌 언제 통화했어?"

 

 "난 아침에 통화를 했는데. 찬이와 같이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를 오늘은 잡을 생각이라고 했거든."

 

 지현이 모르던 내용인지 요가 자세를 하다가 다급히 풀고는 모니터를 똑바로 봤다.

 "어? 내한테는 찬이와 마켓에 간다고 아침에 통화했는데."

 

 설민도 지현이 아는 사실은 몰랐는지

 "마켓에 간다고 한 거 맞지."

 

 "응, 그럼 너에게 휴고 잡는다고 한거 맞아?"

 

 "응, 분명히 그렇게 이야기했어.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나 오늘 실험해 보면 결과가 나올 거라고. 그래서 결과가 뭐냐고 했더니 자살 유도하는 휴고 잡는 거라고 했어."

 

 지현이 벌떡 일어났다.

 "그걸 혼자서 하겠다고 했다고. 우리는 빼놓고. 걔 미친 거 아냐.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걔는 뉴스도 안 보니. 자살 유도하는 휴고는 잡히게 되면 자폭하잖아. 우리가 B 시에서 본 것처럼."

 

 설민이 깜짝 놀라며

 "참, 그랬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민희 위험하지 않을까?"

 

 지현이 대답 대신에 고함을 쳤다.

 "알티에프, 알티에프, 민희에게 무조건 연결하라고 해. 안되면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봐. 장소라도 알아내. 알았지."

 

 그 말을 하고는 옷을 갈아입겠다는 마음으로 방으로 달려갔다. 모니터 영상의 설민도 그 모습을 보고는 자기 NDR-11에게 소리쳤다.

 "휴고, 휴고로 내 옷 좀 찾아죠. 외출복으로. 밖에 나가야 할 것 같다."

 

 모니터 영상에서 설민이 사라졌다. 영상은 여전히 설민네 집 거실이 보이고 있었다.

 

 

 마켓 안.

 

 찬은 민희에게 달려가며 관리자 사무실에서 관리자를 만났던 그저께 일이 떠올렸다.

 

 "오민희님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내 옆에 사람은 더 이상 잃지 않을 겁니다.

  내가 지킬 겁니다.

  내가 반드시 지켜낼 겁니다."

 

 찬은 지금 마지막 말이 몇 번이고 반복되며 떠올랐다. 자기 옆에 사람을 더 이상 잃지 않겠다는 말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안타까워했다. 지금 당장 자기 눈앞에서 민희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 그는 도와줄 수가 없다. 자기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직 그 상황을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민희의 모습을 보며 그는 안타까워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때 앞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민희 주변에 있던 휴고들이 찬의 말을 듣고는 파란색과 붉은색이 혼합된 색으로 도색된 휴고의 앞을 막았다. 처음에는 몇 대의 휴고가 크로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크로우가 앞을 막는 휴고를 밀치고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막고 있던 휴고 한 대가 크로우를 안으려 하자 아예 크로우가 휴고를 공격하여 박살을 냈다.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면서 그 일대는 혼란에 따졌다. 다른 휴고가 다시 크로우를 안았다. 뒤이어 또 다른 휴고도 크로우를 뒤에서 안았다. 크로우는 자기를 안은 휴고를 마구 공격하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다른 휴고들도 가세하여 크로우를 안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차츰 그 수가 늘어나자 마침내 뭉쳐있던 모든 휴고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 중앙에는 크로우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넘어진 휴고들 사이에서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리고 크로우가 된 풋맨의 머리가 앞으로 보였다. 그제는 풋맨이 어떻게든 민희에게 가려고 자신을 덮친 휴고를 끌고 앞으로 기어가려 했다. 그 모습은 참으로 섬뜩할 만큼 집요해 보였다. 그제는 주변에 있던 다른 휴고들까지 가세하여 바닥에 쓰러진 풋맨 위를 덮쳤다.

 

 미친 듯이 달려가는 찬의 시선에 보인 그 모습은 놀라웠고 장관이었다. 한 대 한 대가 마치 미식축구에서 공을 향해 덮치는 선수들처럼 풋맨을 향해 일제히 날아올라 그 위를 덮치고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덮친 것인데, 그 모습은 휴고 산이 쌓이는 모습 같았다.

 

 순식간에 사람 키 높이 보다 더 높은 산이 만들어지자 더 이상 풋맨은 움직이지를 못했다. 사방 어디에서도 더 이상 풋맨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휴고들이 완전히 덮어버렸다.

 

 그때 찬이 미끄러지듯이 달려와서는 단번에 민희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

 

 민희는 찬의 고함소리에 뒤를 돌아보았고 자기를 향해 걸어오는 크로우를 보았다. 그걸 보는 순간 그녀는 도망칠 생각은 못하고 그만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가렸다. 그 상황에서 찬이 도착하여 그녀를 감싸 안은 것이다. 그건 두 가지 의미였다. 다가오는 크로우를 자기 몸으로 막겠다는 의미였고, 크로우가 폭발할 때 몸으로 막아주겠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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