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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네트레시아 : 이계의 방문자
작가 : 지나다가
작품등록일 : 2017.10.30
네트레시아 : 이계의 방문자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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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을 앞둔 네트레시아를 방문하게된 현실의 주인공. 그의 귀환은 이 이상한 세계의 앞날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 과연 주인공은 이 이상한 세상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를 해결하고 다시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47. 분노
작성일 : 18-02-02 12:52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8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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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준석이 나이렌 고개위로 오르니 고개를 지키고 있던 야만인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준석을 둘러쌌다. 그들은 준석을 보며 뭐라고 하였으나 준석은 전혀 그들을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준석이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눈치 채자 그들 중 몇 명이 다짜고짜 준석을 끌고 고개 옆에 있는 자그마한 공터로 데려갔다. 공터는 높은 절벽 바로 밑에 있어서 달아날 때가 없었는데 그 곳에는 준석 말고도 고개를 넘으려다 잡힌 것으로 보이는 십여 명이 묶여 있었다. 야만인은 준석도 손을 등 뒤로 돌려 줄을 돌려 묶은 다음 저 곳에 앉아 있으라고 등을 떠밀었다.

 

 준석은 어차피 고개위에서 메이의 일행을 기다릴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 저항하지 않고 먼저 잡혀온 사람들 틈에 섞여 앉았다. 그 사람들은 모두 가족 단위로 잡혀온 것인지 네 명의 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다행히 야만인들은 아이들까지는 묶어놓지는 않았기에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뒤섞여 놀고 있었다. 어차피 달아날 때가 없어 굳이 묶어둘 필요도 없었을 것인데 어른들을 묶어 놓은 것은 혹시라도 반항할 수 있기 때문인 듯 했다.

 

 준석은 바닥에 앉아서 한참동안을 아이들이 뛰어 노는 것을 보았다. 부모들이 얼굴에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아이들은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까르르 웃기도 하였다. 지키고 있는 야만인도 아이들이 귀여운지 곁눈으로 계속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준석이 물어보니 그들은 플로나에서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로 야만인들을 침략을 피해서 남쪽 숲에 숨어 있다가 네트레시아로 달아나기 위해서 고개를 넘다가 붙잡혔다고 했다. 그들도 플로나성이나 프린 공작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알지 못했다.

 

 고개위에서 사흘가량이 지나는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넘다가 잡혀왔다. 모두 네트레시아의 에리스 평원으로 넘어 가려다가 잡힌 사람들이었고 준석처럼 반대로 플로나로 들어가려다 잡힌 경우는 없었다. 이상한 것은 매일 새벽이 되면 야만인들이 두세 가족씩 줄로 묶어서 이들을 플로나 쪽으로 끌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별 저항 없이 이들을 따라 갔는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준석만은 끌고 가지 않고 계속 고개위에 남겨 두었다. 준석 또한 이들을 끌고 가는 것을 별 의미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처음에 왔을 때 보았던 귀여운 아이들도 바로 다음날 새벽 부모와 함께 산 밑으로 끌려갔다. 나흘째 되던 날 고개를 넘던 어떤 한 남자가 야만인들의 손에 잡혀왔다. 그는 나름 야만인들에게 저항을 했던 것인지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그는 연두색의 정복(正服)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는 한 눈에 봐도 무언가 달라보였다.

 

 그 자는 잡혀온 이후로 계속 누워만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을 걸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준석이 보기에도 치명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으려니 했다. 해질 무렵이 다가오자 야만인들이 또다시 한명을 붙잡아왔는데, 준석이 봐도 아직 열 살이 갓 넘은 것 같은 어린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잡혀오자 마자 그 연두색 옷을 입은 남자에게로 달려갔는데 그 남자가 그 아이를 보자 벌떡 일어나서 그 아이의 머리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대었다. 아마도 그 남자의 아들인 것 같았다.

 

 잠시 후 어둠이 내려앉자 그 연두색 옷의 남자가 슬금슬금 준석의 옆으로 다가와서 경비병이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말했다.

 

 - 여기 있다가 새벽이 되면 모두 끌려가서 죽임을 당할 거요. 살고 싶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이오.

 

 죽는다는 말에 어리둥절해진 준석이 다시 물었다.

 

 - 죽는다니 무슨 소리요?

 

 그 남자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 새벽이면 플로나 성 앞으로 끌고 가서 모조리 목을 벨 거요.

 

 준석은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새벽에 줄에 묶어 가족들을 끌고 간 것은 모두 죽이려고 데리고 갔다는 것이었단 말인가.

 

 - 새벽에 아이들도 끌고 갔는데 그럼 저놈들이 아이들까지 다 죽인다는 거요?

 

 그 남자는 준석을 쏘아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 저들은 애어른 가리지 않소. 지금 플로나 남문 앞에는 목이 잘린 시체들로 언덕이 만들어질 지경이오.

 

 순간 준석이 첫날에 와서 만났던 아이들의 모습이 준석의 머릿속을 때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잡혀왔다가 사라진 아이들의 모습이 또다시 준석을 덮쳐왔다.

 

 …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어찌 그 아이들이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인가. 잡아온 아이들이나 가족들을 그냥 돌려보내기 위해 줄에 묶어 산 밑으로 끌고 가지는 않았을 것임은 조금만 생각하면 짐작할 수 있을 일이었다. 야만인에게 점령당한 도시에는 당연히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벌어진다는 것을 어찌 나는 짐작조차 못했던 것인가. 준석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아주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는 여전히 이 세계를 그냥 환상의 나라로 치부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진짜 사람들이고 생명들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아직 마음으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게임에 등장하는 엔피씨처럼 그냥 화면에 비쳤다가 사라지는 그런 존재들로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준석은 갑자기 화가 났다. 자신에게 나는 화인지 어린아이까지 살육했다는 야만인들에게 나는 화인지는 준석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뜨거운 분노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라옴을 느꼈다. 그 분노에 준석은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어 일어났다.

 

 - 이보시오. 이보시오.

 

 그 연두색 옷의 남자는 소리죽여 준석을 다시 불렀지만 준석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준석이 일어나자 포로들을 지키고 있던 야만인이 준석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준석의 손을 묶은 줄에 파르스름한 불꽃이 튀자 줄은 맥없이 풀어져 흘러내렸다. 묶어 놓은 줄이 풀렸다는 것을 눈치 채자 그 야만인 경비가 쇠로 만든 봉을 들고 준석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하지만 준석의 눈에는 그 야만인 경비가 들어오지 않았다. 준석이 거의 경비 앞으로 다가오자 경비는 봉을 높이 치켜들었고, 그제야 준석이 눈앞에 있는 경비를 노려보았다. 그 야만인의 발밑에서 불길이 치솟는 가 싶더니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여 타들어갔다. 야만인의 비명소리가 적막한 밤하늘을 갈랐다.

 

 처참한 비명소리에 고개위에 있던 다른 야만인들이 무기를 손에 들고 쫓아왔다. 준석은 불길을 키웠다. 거대한 불길이 땅바닥에서 지옥 불처럼 솟아올라 수십여 명의 야만인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시뻘건 화염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불길이 어찌나 뜨거운지 뒤에 달려 들어왔다가 화염에 갇힌 야만인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불타올랐다. 삽시간에 고개는 불길로 뒤덮이고 고개위에 있던 야만인들은 모조리 재가 되어 밤하늘로 흩뿌려졌다.

 

 간신히 자신의 손목을 묶은 줄을 풀어낸 연두색 남자가 달려 나왔다. 준석이 일으킨 불은 고개위에 새카맣게 탄 자국만을 남기고 이젠 서서히 사그라지는 중이었다. 남자는 놀란 듯이 준석을 바라보았다.

 

 - 나는 플로나 성문 앞으로 가보겠소.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풀어주고 산을 내려가시오.

 

 준석의 말에는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담겨있었다. 연두색 옷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다른 사람들이 묶여져 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준석은 플로나 방향으로 고개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개위에서 큰 불길이 치솟자 이상하게 여긴 야만인들이 고개 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준석은 이미 그들을 살려둘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준석은 서서히 산길을 내려가며 그들을 불길로 휘감았다. 땅 밑에서 솟아져 나온 화염은 바다가 되어 그들에게 파도쳐갔다. 그 불에 닿은 자들은 모조리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었다. 그 화염의 파도는 산을 내려갈수록 넓어져 마치 정말 화염의 파도가 치는 것처럼 보였다. 산을 내려와 벌판으로 들어오자 처음에는 몰려오던 야만인들이 거꾸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마치 지옥에서 도망치듯 그들은 자기들끼리 뭐라고 고함지르며 준석이 오고 있는 반대방향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워낙 벌판에 있던 야만인들의 수가 많아 신속하게 그 벌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열에 일곱 여덟은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준석이 플로나의 남쪽 성문 앞에 도착하자 어느덧 동녘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 남자가 말했던 대로 성문 앞에는 목이 잘린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시체더미 안에서 준석은 첫날 보았던 아이중의 하나가 입고 있던 옷을 입은 한 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일어나 준석이 비틀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준석은 차마 그 시신의 곁으로 가지는 못하고 바닥에 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플로나의 성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 나왔다. 준석의 뒤로는 언제 따라왔는지 메이가 주저앉아 울고 있는 준석을 보고 있었다. 프린도 죄 없는 사람들의 주검들 사이에서 숙연해져 준석을 반갑게 맞이할 수 없었다. 준석은 가만히 일어나 그 주검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바닥 깊은 곳에서 올라 온 것 같은 불길이 주검들을 휩싸고 그것들은 검은 연기를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열기에 기사들과 메이는 몇 걸음을 더 뒤로 물러나야 했다. 뒤따라오던 프레드릭 일행 또한 높이 치솟은 불길과 그 불길이 쏟아내는 연기를 지켜보았다. 준석은 그 불길이 비추는 세상이 마치 달빛에 물든 세상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것을 바라보았다.준석이 나이렌 고개위로 오르니 고개를 지키고 있던 야만인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준석을 둘러쌌다. 그들은 준석을 보며 뭐라고 하였으나 준석은 전혀 그들을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준석이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눈치 채자 그들 중 몇 명이 다짜고짜 준석을 끌고 고개 옆에 있는 자그마한 공터로 데려갔다. 공터는 높은 절벽 바로 밑에 있어서 달아날 때가 없었는데 그 곳에는 준석 말고도 고개를 넘으려다 잡힌 것으로 보이는 십여 명이 묶여 있었다. 야만인은 준석도 손을 등 뒤로 돌려 줄을 돌려 묶은 다음 저 곳에 앉아 있으라고 등을 떠밀었다.

 

 준석은 어차피 고개위에서 메이의 일행을 기다릴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 저항하지 않고 먼저 잡혀온 사람들 틈에 섞여 앉았다. 그 사람들은 모두 가족 단위로 잡혀온 것인지 네 명의 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다행히 야만인들은 아이들까지는 묶어놓지는 않았기에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뒤섞여 놀고 있었다. 어차피 달아날 때가 없어 굳이 묶어둘 필요도 없었을 것인데 어른들을 묶어 놓은 것은 혹시라도 반항할 수 있기 때문인 듯 했다.

 

 준석은 바닥에 앉아서 한참동안을 아이들이 뛰어 노는 것을 보았다. 부모들이 얼굴에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아이들은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까르르 웃기도 하였다. 지키고 있는 야만인도 아이들이 귀여운지 곁눈으로 계속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준석이 물어보니 그들은 플로나에서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로 야만인들을 침략을 피해서 남쪽 숲에 숨어 있다가 네트레시아로 달아나기 위해서 고개를 넘다가 붙잡혔다고 했다. 그들도 플로나성이나 프린 공작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알지 못했다.

 

 고개위에서 사흘가량이 지나는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넘다가 잡혀왔다. 모두 네트레시아의 에리스 평원으로 넘어 가려다가 잡힌 사람들이었고 준석처럼 반대로 플로나로 들어가려다 잡힌 경우는 없었다. 이상한 것은 매일 새벽이 되면 야만인들이 두세 가족씩 줄로 묶어서 이들을 플로나 쪽으로 끌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별 저항 없이 이들을 따라 갔는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준석만은 끌고 가지 않고 계속 고개위에 남겨 두었다. 준석 또한 이들을 끌고 가는 것을 별 의미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처음에 왔을 때 보았던 귀여운 아이들도 바로 다음날 새벽 부모와 함께 산 밑으로 끌려갔다. 나흘째 되던 날 고개를 넘던 어떤 한 남자가 야만인들의 손에 잡혀왔다. 그는 나름 야만인들에게 저항을 했던 것인지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그는 연두색의 정복(正服)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는 한 눈에 봐도 무언가 달라보였다.

 

 그 자는 잡혀온 이후로 계속 누워만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을 걸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준석이 보기에도 치명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으려니 했다. 해질 무렵이 다가오자 야만인들이 또다시 한명을 붙잡아왔는데, 준석이 봐도 아직 열 살이 갓 넘은 것 같은 어린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잡혀오자 마자 그 연두색 옷을 입은 남자에게로 달려갔는데 그 남자가 그 아이를 보자 벌떡 일어나서 그 아이의 머리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대었다. 아마도 그 남자의 아들인 것 같았다.

 

 잠시 후 어둠이 내려앉자 그 연두색 옷의 남자가 슬금슬금 준석의 옆으로 다가와서 경비병이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말했다.

 

 - 여기 있다가 새벽이 되면 모두 끌려가서 죽임을 당할 거요. 살고 싶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이오.

 

 죽는다는 말에 어리둥절해진 준석이 다시 물었다.

 

 - 죽는다니 무슨 소리요?

 

 그 남자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 새벽이면 플로나 성 앞으로 끌고 가서 모조리 목을 벨 거요.

 

 준석은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새벽에 줄에 묶어 가족들을 끌고 간 것은 모두 죽이려고 데리고 갔다는 것이었단 말인가.

 

 - 새벽에 아이들도 끌고 갔는데 그럼 저놈들이 아이들까지 다 죽인다는 거요?

 

 그 남자는 준석을 쏘아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 저들은 애어른 가리지 않소. 지금 플로나 남문 앞에는 목이 잘린 시체들로 언덕이 만들어질 지경이오.

 

 순간 준석이 첫날에 와서 만났던 아이들의 모습이 준석의 머릿속을 때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잡혀왔다가 사라진 아이들의 모습이 또다시 준석을 덮쳐왔다.

 

 …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어찌 그 아이들이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인가. 잡아온 아이들이나 가족들을 그냥 돌려보내기 위해 줄에 묶어 산 밑으로 끌고 가지는 않았을 것임은 조금만 생각하면 짐작할 수 있을 일이었다. 야만인에게 점령당한 도시에는 당연히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벌어진다는 것을 어찌 나는 짐작조차 못했던 것인가. 준석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아주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는 여전히 이 세계를 그냥 환상의 나라로 치부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진짜 사람들이고 생명들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아직 마음으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게임에 등장하는 엔피씨처럼 그냥 화면에 비쳤다가 사라지는 그런 존재들로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준석은 갑자기 화가 났다. 자신에게 나는 화인지 어린아이까지 살육했다는 야만인들에게 나는 화인지는 준석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뜨거운 분노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라옴을 느꼈다. 그 분노에 준석은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어 일어났다.

 

 - 이보시오. 이보시오.

 

 그 연두색 옷의 남자는 소리죽여 준석을 다시 불렀지만 준석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준석이 일어나자 포로들을 지키고 있던 야만인이 준석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준석의 손을 묶은 줄에 파르스름한 불꽃이 튀자 줄은 맥없이 풀어져 흘러내렸다. 묶어 놓은 줄이 풀렸다는 것을 눈치 채자 그 야만인 경비가 쇠로 만든 봉을 들고 준석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하지만 준석의 눈에는 그 야만인 경비가 들어오지 않았다. 준석이 거의 경비 앞으로 다가오자 경비는 봉을 높이 치켜들었고, 그제야 준석이 눈앞에 있는 경비를 노려보았다. 그 야만인의 발밑에서 불길이 치솟는 가 싶더니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여 타들어갔다. 야만인의 비명소리가 적막한 밤하늘을 갈랐다.

 

 처참한 비명소리에 고개위에 있던 다른 야만인들이 무기를 손에 들고 쫓아왔다. 준석은 불길을 키웠다. 거대한 불길이 땅바닥에서 지옥 불처럼 솟아올라 수십여 명의 야만인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시뻘건 화염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불길이 어찌나 뜨거운지 뒤에 달려 들어왔다가 화염에 갇힌 야만인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불타올랐다. 삽시간에 고개는 불길로 뒤덮이고 고개위에 있던 야만인들은 모조리 재가 되어 밤하늘로 흩뿌려졌다.

 

 간신히 자신의 손목을 묶은 줄을 풀어낸 연두색 남자가 달려 나왔다. 준석이 일으킨 불은 고개위에 새카맣게 탄 자국만을 남기고 이젠 서서히 사그라지는 중이었다. 남자는 놀란 듯이 준석을 바라보았다.

 

 - 나는 플로나 성문 앞으로 가보겠소.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풀어주고 산을 내려가시오.

 

 준석의 말에는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담겨있었다. 연두색 옷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다른 사람들이 묶여져 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준석은 플로나 방향으로 고개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개위에서 큰 불길이 치솟자 이상하게 여긴 야만인들이 고개 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준석은 이미 그들을 살려둘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준석은 서서히 산길을 내려가며 그들을 불길로 휘감았다. 땅 밑에서 솟아져 나온 화염은 바다가 되어 그들에게 파도쳐갔다. 그 불에 닿은 자들은 모조리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었다. 그 화염의 파도는 산을 내려갈수록 넓어져 마치 정말 화염의 파도가 치는 것처럼 보였다. 산을 내려와 벌판으로 들어오자 처음에는 몰려오던 야만인들이 거꾸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마치 지옥에서 도망치듯 그들은 자기들끼리 뭐라고 고함지르며 준석이 오고 있는 반대방향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워낙 벌판에 있던 야만인들의 수가 많아 신속하게 그 벌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열에 일곱 여덟은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준석이 플로나의 남쪽 성문 앞에 도착하자 어느덧 동녘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 남자가 말했던 대로 성문 앞에는 목이 잘린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시체더미 안에서 준석은 첫날 보았던 아이중의 하나가 입고 있던 옷을 입은 한 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일어나 준석이 비틀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준석은 차마 그 시신의 곁으로 가지는 못하고 바닥에 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플로나의 성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 나왔다. 준석의 뒤로는 언제 따라왔는지 메이가 주저앉아 울고 있는 준석을 보고 있었다. 프린도 죄 없는 사람들의 주검들 사이에서 숙연해져 준석을 반갑게 맞이할 수 없었다. 준석은 가만히 일어나 그 주검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바닥 깊은 곳에서 올라 온 것 같은 불길이 주검들을 휩싸고 그것들은 검은 연기를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열기에 기사들과 메이는 몇 걸음을 더 뒤로 물러나야 했다. 뒤따라오던 프레드릭 일행 또한 높이 치솟은 불길과 그 불길이 쏟아내는 연기를 지켜보았다. 준석은 그 불길이 비추는 세상이 마치 달빛에 물든 세상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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