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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붉은 장미의 제국
작가 : 임다온
작품등록일 : 2016.8.21

나를 불러온 건 당신들인데.
나를 버리는 것 또한 당신들인가.......

어느 날, 평범한 현실에서 제국으로 오게 된 하랑.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것도 황당한데, 게다가 자신을 신이라 하며 천 년 동안 피지 않았던 붉은 장미를 피우라고 한다!

오직 신만을 위해 살아왔던 아름다운 황제 샤를과 오직 신만을 지켰던 매혹적인 기사 칼. 그리고 신이 되고자 하는 소녀 하랑.

그들 앞에 펼쳐질 가혹한 운명과 세 남녀의 애틋한 로맨스 판타지.

 
17. 숨바꼭질
작성일 : 16-09-08 22:42     조회 : 494     추천 : 1     분량 : 7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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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궁금하지 않아요.”

 “궁금해해야지. 넌 지금부터 붉은 신이 될 거잖아.”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뭘...... 시작?”

 

 그의 긴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자 흠칫하며 숨이 삼켜졌다.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내려다보는 눈빛은 무서웠다.

 점점 다가오는 얼굴에,

 

 “안돼요!”

 

 하랑은 외침과 함께 몸을 급히 일으키며 이마를 칼에게 돌진시키는 순간 칼이 재빠르게 손바닥으로 그녀의 머리를 막으며 다시 아래로 밀었다.

 

 “으악.”

 “아까도 그러더니 머리는 주로 이런 용도로 사용하나 보군.”

 

 하랑은 링 위에서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는 녹다운 된 선수처럼 무력했다.

 하지만 의기양양하게 있는 칼을 노려보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거 꿈 아니죠?”

 “이제 알았나.”

 “그럼 장난 그만해요.”

 “장난한 적 없는데.”

 “지금 과년한 여자를 데리고 이런 짓이 장난이 아니면 진심이라는 거예요?”

 “진심이면.”

 

 그의 손이 하랑의 손목을 지그시 눌러왔다.

 

 “안되나.”

 

 닿아오는 곳이 불에 덴 듯 뜨거워 머리가 아찔해졌다.

 

 “붉은 신이 되고 싶다며.”

 “......으윽.”

 “되게 해줄게.”

 다가오던 그는 아슬하게 그녀의 입술을 지나 귀에 속삭였다.

 

 “처음 당신을 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강력한 힘처럼 내 모든 것을 무력하게 만들었죠.”

 

 달콤한 숨소리로 내뱉는 존댓말에,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합니까?”

 

 온 세포가 마치 심장이 된 것처럼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가 눈을 맞추며 하랑의 목 뒤로 손을 넣어 자신과 더욱 밀착시켰다.

 하랑의 눈이 그에게 사로잡혀 있는 동안 나머지 손으로 여유롭게 후드의 단추를 풀어 내려갔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예상되었다.

 거침없는 그와는 달리 그녀는 몸은 굳어 있었다.

 이런 말 하긴 부끄럽지만 25년 동안 그러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순진한 하랑에게 친구들은 장난치듯 이렇다 저렇다 말만 늘어놓아 머릿속에 쌓인 지식은 차고 넘쳤다.

 그 다양한 지식 중 ‘청결’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근데 나 안 씻었는데.

 아까 마구간에 있어서 그런지 말똥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

 아악, 안 돼!

 말똥.

 말똥.

 말똥.

 말똥은 달아오르던 무드도 식히는 마법 같은 단어였다.

 그런 하랑의 걱정은 안중에도 없어 보이는 칼은 정말 진심으로 느껴져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칼이 후드를 벗기려고 하자 하랑은 다급하게 그에게 말했다.

 

 “말똥!”

 “뭐?”

 “저, 처음이에요! 지금 말똥 냄새도 나고 이런 기억을 평생 가져가고 싶지 않거든요.”

 “알겠어.”

 손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악! 안돼요. 제가 잘못했어요. 붉은 신이 되겠다는 말 다시는 안 할게요. 죽을죄를 지었어요!”

 

 그리고 속사포처럼 하랑에게서 말이 쏟아져 나왔다.

 칼은 그녀의 후드를 벗기던 손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울먹이는 하랑과 달리 그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듣기 좋게 낮은 웃음소리에 입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토록 원하던 미소를 본 하랑은 몸을 세우며 눈물을 멈추었다.

 

 “안......해요?”

 “했는데.”

 “네?”

 “그 말똥 냄새 나는 후드, 벗겨주려 했던 거라.”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한 그는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하랑은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는 그의 말투에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랑을 몰아붙인 이유는 안 봐도 뻔했다.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

 감히 내가 붉은 신이 되겠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겠다.

 이런 말들을 듣기 위해 그런 것이었다.

 하랑은 이불을 머리까지 홱 덮으며 자신을 질책했다.

 이 멍청이, 멍청이!

 혼자서 망상의 나래를 펼쳤던 자신이 부끄럽고 아무렇지도 않은 칼이 원망스러웠다.

 그만 없었다면 이불 킥을 몇 번이고 날렸을 것이다.

 

 “뭘 상상한 건지 모르겠지만.”

 “.......”

 “다른 원하는 것이 있다면.”

 “.......”

 “자는 건가.”

 

 곤란한 걸 자꾸 묻는 그의 말에 하랑은 자는 척하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때 뱃속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천둥같이 울렸다.

 제발 이 위장아.

 때와 장소를 가리고 좀 울려!

 뒤척이던 이불을 보던 칼은 하랑에게 말했다.

 

 “근데 아까 뭐가 처음이라고.......”

 “마, 말이 헛나왔어요!”

 

 그의 말을 더더욱 듣지 못하겠는 지 하랑은 이불을 박차며 일어났다.

 후드가 벗겨진 그녀에게서 황홀할 정도로 아찔한 장미향이 뿜어져 나왔다.

 혈색이 도는 복숭아 같은 두 뺨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검은 후드에 내내 감추어져 있던 인간 하랑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눈매가 접히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미소에 하랑은 어이가 없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거야, 뭐야.

 

 

 ***

 

 

 ‘내가 꼭 찾으러 갈게.’

 ‘기다려.’

 ‘.....일라이.’

 

 눈을 뜬 일라이의 이마가 식은땀에 엉망이 된 머리칼이 붙어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키자 하인이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매어주었던 상처의 욱신거리는 고통이 다시 느껴졌다.

 벌어진 틈에서 피가 새어 나왔는지 누워있던 자리의 시트가 군데군데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등의 상처 때문인지, 꿈 때문인지 일라이는 더는 눕지 못해 무릎을 세워 몸을 끌어안고 둥글게 말았다.

 잠은 더는 오지 않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옆에 있는 램프만이 밝혀주고 있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그 빛이 누군가와 닮아 있었다.

 

 “하랑언니.......”

 

 처음 만난 자신을 위해서 그녀는 춥고 어두운 곳에 혼자 남겠다 하였다.

 북 대륙에서 뱀파이어로부터 그러한 호의를 받아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녀의 체온은 뱀파이어답지 않게 따뜻했다.

 마치 인간처럼.

 뱀파이어라 추위는 못 느끼겠지만, 그곳은 상당히 춥고 많이 어두울 텐데, 그리고 외로울 텐데.

 외롭다는 그 감정은 지금 자신의 것이었다.

 그것이 하랑에게까지 미치자 함께 있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라이는 작은 손으로 램프의 손잡이를 그러 쥐며 방을 나섰다.

 지하에서 1층까지 단숨에 올라온 일라이는 빛에 의지하며 어둠에 휩싸인 복도를 걸었다.

 들어올 때와 달리 불이 꺼진 이 저택은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당장에라도 뒷덜미를 잡힐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가 황급히 램프를 뒤로 돌리자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옮기자 다시 서늘한 감각이 치고 올라왔다.

 무서운 마음에 몸이 먼저 앞으로 내달렸다.

 어두운 시야에 앞뒤 안 가리고 달리다 단단한 것에 부딪히고 나서야 자신이 벽으로 돌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라? 어디선가 냄새가 난다 했더니.”

 

 벽이 아니었다.

 이 목소리는.

 온 근육이 차갑게 얼어붙어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지하실에서 쥐새끼가 나왔잖아.”

 

 쥐고 있던 램프가 떨어져 굴러 목소리의 주인의 신발코에서 멈췄다.

 빛에 얼굴이 드러났다.

 그 미친 귀족이었다.

 레올 디 포르메.

 

 “어딜 그렇게 달려가는 중이었어?”

 

 그가 램프를 툭 치자 기둥으로 날아 박히며 깨졌다.

 암흑이 찾아왔다.

 

 “너무 느려서 내가 기다리고 있었잖아.”

 

 앞이 아닌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마구간에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저택 안에 있을까.”

 “........”

 “설마 그 시종이 무슨 수작을 부린 건가? 별 그지 같은 게 자꾸 신경을 건드리네.”

 “.......”

 “지금 죽여 버릴까.”

 “안 돼!”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그 말을 들은 레올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재밌겠는데.

 

 “그 녀석도 나랑 같은 뱀파이어인데 너한테 꽤 특별한가 봐?”

 “사, 살려주세요.......”

 “그럼 게임 하나 할까.”

 “......흐끅. 시, 싫어요.”

 “이봐. 꽤 재밌을 거라고. 게다가 승자의 소원 들어주는 거로. 어때?”

 

 ‘소원’이라고 속삭이는 것이 악마의 유혹처럼 다가왔다.

 

 “어떤 소원이든 전부 다 말이야.”

 “어떤 소원이든......?”

 “그래. 그럼 지금부터 숨바꼭질을 시작할 거야. 내가 술래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는 손이 소름 끼칠 만큼 차가웠다.

 일라이는 마른 침을 삼키며 각오를 다졌다.

 꼭 이기겠다.

 

 “네가 숨는 거야.”

 

 그녀의 등을 떠미는 손에 상처가 쓰려왔다.

 

 “자, 도망가 봐.”

 

 신호와 함께 전력을 다해 뛰었다.

 

 일라이는 뛰고 또 뛰었다.

 최대한 그에게 멀어지기 위해서 긴 복도를 지나 저택의 별관으로 보이는 곳까지 들어갔다.

 떨리는 동공 안에는 어디를 둘러봐도 어둠뿐이고 숨을 곳은 보이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였다.

 때마침 몇 개의 방이 보였고 문고리를 힘껏 돌렸다.

 

 틱틱-

 

 하지만 잠겼는지 아귀가 맞지 않는 쇳소리만 나고 있었다.

 

 “어~딨~니~”

 “하아, 하아. 제발.......”

 

 언제 왔는지 멀리서 레올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짐과 동시에 뇌가 돌아가는 속도도 빨라졌다.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서 되돌아간다면 너무 늦다.

 다급한 상황에 일라이는 옆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제발 잠기지 않았길.

 그리고 잡아 쥔 손을 힘껏 내림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살았다!”

 

 그녀는 기쁜 탄성을 내지르며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휑한 방안에는 자신의 몸을 은신할만한 상자도 옷장도 없었다.

 그저 창문에 달린 커튼만 있을 뿐.

 

 “맞아. 커튼!”

 

 일라이는 기다란 커튼 속으로 몸을 숨겼다.

 어둡고 두꺼운 그것은 그녀의 몸을 숨기기엔 맞춤이었다.

 가쁜 숨이 막 안정되어 가고 있는 찰나,

 

 “......여기 있나? 어라, 잠겼네.”

 

 레올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그는 아까 일라이가 했던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었다.

 아! 이 방, 문을 잠그는 걸 깜빡했어.

 일라이는 어리석은 실수를 한 자신을 질책하며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거친 발소리와 함께,

 

 퍽퍽.

 

 옆방의 문이 쪼개지며 부서지는 소리도 들려 왔다.

 

 “뭐야, 여기엔 없네?”

 

 덤덤하게 얘기하는 그 목소리가 더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문을 잠그는 것이 딱히 그에게서 도망치는 답이 아닐지도 몰랐다.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갔다.

 

 끼익-

 

 섬뜩한 소리가 고막에 닿아왔다.

 일라이가 있는 방의 문을 여는 소리였다.

 그녀는 숨을 삼키고 입을 막았다.

 작은 소리라도 새어나갈세라 필사적이었다.

 들키면 안 돼.

 들키면 안 돼.

 

 “여기도 없는 건가.......”

 

 그의 목소리가 바로 지척에서 들려왔다.

 커튼을 사이에 두고 레올이 자신의 앞에 있었다.

 제발.

 제발.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빌었다.

 다행히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라이는 감추었던 숨을 내뱉었다.

 

 “하아.”

 

 내가 이겼어.

 그를 이겼어.

 승리감에 몸을 밖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여기 있었네?”

 

 방안에 여전히 있는 레올과 마주친 순간 온몸에 피가 빠지는 기분이 들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어..... 어떻게.........”

 

 그는 일라이가 있는 것을 알고 일부러 소리 내어 문을 닫은 뒤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겼어.”

 

 악마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일라이가 할 말을 대신하는 그였다.

 

 

 ***

 

 

 “그런데 나 여기 어떻게 온 거예요?”

 “내가 데리고 왔지.”

 “마구간에 있었던 건 어떻게 알고요?”

 

 하랑이 있는 곳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침실에 있던 칼은 문득 인간인 그녀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내했던 하인에게 그녀의 방 위치를 물었을 때 우물쭈물 대답하는 모습에 칼의 눈빛이 변하자,

 

 ‘마......! 마구간입니다요.’

 

 곧 사실대로 알려주었다.

 하인은 제게 천벌이라도 내릴까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지만 칼은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차피 그 귀족이란 놈이 시킨 일이 분명할 테니 말이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데리고 오는 것.

 그리고 마구간에 갔을 때 버려진 짐짝처럼 구석에 웅크리고 자는 하랑을 발견하자 좀 전의 그 하인을 족치고 왔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그 인간 노예는 온데간데없었다.

 감이지만 이곳보다 더 열악한 곳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 일라이는 제가 부탁해서 치료를 받고, 다른 방에 머물고 있을 거예요. 그나저나 일라이 혼자 무서울 텐데 잘 있으려나.......”

 

 지금 하랑의 말로 칼의 감은 맞아 떨어졌다.

 참 제멋대로다.

 그 어둠에 혼자 남겨진 것은 아무렇지도 않고 그저 인간 노예의 걱정뿐이라니.

 칼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하랑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의 배에서 다시 한 번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렸다.

 가녀린 팔로 배를 감싸 쥐며 멋쩍게 웃었다.

 

 “아까부터 보였던 건데 저기 테이블 위에 있는 저 빵...... 먹어도 돼요?”

 

 하랑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빵과 수프가 놓여 있었다.

 인간의 음식은 뱀파이어에게 필요치 않기 때문에 하인이 칼을 위해 놓고 간 것은 결코 아니었다.

 황궁은 하랑을 특별하게 대접했기에 규칙적인 식사가 가능했다.

 하지만 북 대륙은 어느 곳을 가도 인간이 먹을만한 음식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나마 인간 노예를 들어오면서 먹을거리가 생겨나긴 했지만 가축이 먹던 것과 다르지 않을 만큼 ‘인간용 사료’라고 불릴 만큼 형편없었다.

 그러니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음식은 칼이 하랑을 위해 구현 시킨 것이었다.

 칼은 직접 트레이를 들고 와 그녀의 앞에 놓았다.

 하랑은 미안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피다가 스프를 입 안 가득히 넣고 녹을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아. 진짜 맛있다!”

 

 맛있다는 그 말에 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누군가를 위해서 써본 적 없는 능력이었다.

 그렇기에 능력을 쓰면서 이렇다 할 감정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인간의 음식을 맛까지 완벽하게 구현해냈다는 사실과 하랑의 만족스러운 표정이, 그녀를 위해 능력을 여러 번 쓰고 싶게 만들었다.

 먹는 것에 심취한 하랑은 자꾸 흘러내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그러잡자 드러난 하얀 목덜미가 칼의 눈에 박혀왔다.

 그것을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니 목 안쪽이 더운 것처럼 갑갑해져 왔다.

 그에 더해 그녀로부터 나오는 장미 향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어 정신이 멍해질 정도였다.

 칼은 묘한 기분에 시선을 거두고 일어섰다.

 그가 문 쪽으로 몸을 움직이자,

 

 “어디 가요?”

 

 하랑이 그의 손을 잡았다.

 

 “밖에.”

 “같이 먹어요.”

 “필요 없어.”

 

 단호한 칼의 말에 하랑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러면....... 나 먹고 있을 동안만이라도 있어 주면 안 돼요? 혼자 먹기 싫어서........”

 

 귀가 축 늘어진 강아지처럼 하랑이 고개를 숙이자 그는 마지 못해 다시 침대 가에 걸터앉았다.

 그의 모습에 그녀는 기쁜 듯이 웃었다.

 하긴 이곳에 온 이후로 누군가와 마주 보며 식사를 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지극한 대접을 해주던 황궁에서조차 줄곧 혼자였을 테니 말이다.

 왜 혼자였던 것인지 모르고 있었겠지.

 혼자가 익숙한 것도, 인간 노예를 유난히 챙기는 것도 그 때문일지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

 이 세상은 그녀가 속할 수 없고 속해서도 안 되는 곳이니까.

 그래서 그녀는 모르는 것을 강요받고 있었다.

 속한 세계가 어떤 곳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두 감추고 있었다.

 숨겨진 비밀을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칼은 적어도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사실만큼은 다른 이로부터가 아닌 직접 알리고 싶었다.

 그래야 자신을 싫어하더라도, 두려워하더라도 도망치지 못 하게 붙잡을 수 있을 테니까.

 

 “이 검은 후드를 두르라고 했던 이유를 들은 적이 있나.”

 “네. 저는 신이니까 얼굴이 보이면 안 된다고 그랬어요. 마리에가.”

 “그것 말고 이유를 더 알고 있나.”

 “아뇨. 그것밖에 못 들었어요. 뭔데요?”

 “또 다른 이유는 너의 정체를 들키지 않게 하는 것과 동시에 속이는 거야.”

 “누구를 속여요?”

 “뱀파이어로부터.”

 “배, 뱀파이어라니....... 이곳에 뱀파이어가 있어요?”

 

 되묻는 목소리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놀란 하랑의 동자가 초점을 잃고 마구 흔들렸다.

 칼은 그러한 그녀의 턱을 살며시 잡으며 자신과 눈을 맞추게 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네 앞에 있잖아.”

 

 하랑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사실을 알면 도망가고 싶을 거야.

 

 “뱀파이어.”

 

 그래도 내가 찾아낼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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