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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혼돈 : 내일과 어제를 잇는 다리
작가 : 러군
작품등록일 : 2017.11.6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2052년의 내일에 대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2026년의 어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둘 사이에 이어진 다리의 사연이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를 주는데...

모든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경고.

 
악연적
작성일 : 18-01-21 17:42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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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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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프로그램들을 보면 특이한 것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피에스더블유씨라는 어떤 기관의 명칭과 그 기관에 속한 안보팀입니다. 다른 하나는 유민태라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이 둘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고, 에이아이 아시모프 법칙이 없는 풋맨을 만들어낸 결정적인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달리 더 이상의 특이 사항을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이브가 설명을 하였는데 민희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민희님, 민희님."

 

 민희가 깜짝 놀라 말소리가 나는 앞쪽 모니터를 봤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나?

  아! 그리고 보니 우리 집에 시계가 없네. 시계가 안 보여."

 

 "시계요?

 ...

  몇 시냐고 그냥 말씀만 해 보세요."

 

 민희가 이브의 말에 따라 물었다.

 "몇 시야?"

 

 그녀의 말에 동시에 두 군데에서 대답이 들렸다. 하나는 방금까지 대화를 하고 있던 모니터 스피커에서 NDR-11인 이브의 목소리가 들렸고, 다른 한 곳은 소파 옆 탁자 위에 올려놓은 RTF-7인 월의 목소리로 들렸다.

 

 "여덟 시 삼십 분입니다."

 

 "여덟 시 삼십 분입니다."

 

 그제야 민희가 이유를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렇네. 시계가 필요 없네."

 

 다시 이브에게서

 "왜 시간을 알려고 했습니까?"

 

 "찬이 연락이 올 때가 된 것 같아서."

 

 "참, 그리고 보니 금요일부터 어제까지 삼 일 연속으로 이 시각에 연락을 했었군요."

 

 "응, 그래서 오늘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아직도 연락이 없네."

 

 "기다리셨던 겁니까?"

 

 "응, 내심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여기까지 와서는 집에도 안 들어오시고 바로 가실 정도로 급한 일이 있다고 하시더니. 연락하실 정신이 없는 모양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급했을까?"

 

 "참, 유찬 님이 피에스더블유씨에 근무하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맞아. 그건 왜?"

 

 "이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들 프로그램이 그 회사의 안보팀 풋맨이라서요."

 

 "나도 그게 이상해 오는 길에 그에게 물어봤는데 지금은 그런 안보팀이라는 기관이 없데.

  자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데."

 

 "지난번 회사에서 사고가 났을 때 하신 말씀을 바탕으로 하면 그 회사는 사람이 위험할 때 구조하는 곳 아닙니까."

 

 "맞아. 그래서 이해가 안 돼.

 ...

  그런데 힌트가 하나 있다면. 그의 말을 잘 들어보면 이 풋맨은 예전 회사가 사용하던 휴고인 것 같아.

  혼돈 시기. 그때 끝나기 전 회사가 사용하던 풋맨."

 

 

 "엔디알, 이 문 열어. 어서 문 열어.

  너, 이렇게 하는 것은 에이아이 법칙 위반이야.

  주인의 명령을 불복종하는 행위인 거 알아 몰라.

  너, 이렇게 계속 문을 열지 않으면 시청 엠피아이 세븐에 연락해서 교체하라고 할 거야."

 

 찬이 할아버지 집 문 앞에서 습관처럼 현관 앞 벽을 올려다보며 고함을 치고 있었다. 지금은 한참 전에 어둠이 찾아온 여덟 시 반이다. 찬이 계속 고함을 치고 있었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급기야 찬이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문이 열리고 휴고 한 대가 나타났다.

 

 "돌아가십시오. 더 이상 주인님을 만나실 수 없습니다."

 

 찬이 휴고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휴고가 찬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이거 놔. 난 할아버지 다시 볼 거야. 이거 어서 놔."

 

 "안 됩니다. 더 이상 주인님을 만나실 수 없습니다. 돌아가십시오. 다음에 오십시오."

 

 그리고는 찬을 아예 바닥에 넘어트린 다음에 문을 닫아버렸다. 넘어진 그 딴에는 건장한 체격에 운동을 좀 했다고 생각하는 몸인데. 휴고 앞에서는 제대로 힘 하나 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엉덩방아를 찧은 그는 위를 올려다보며 화가 난 듯이 외쳤다.

 

 "야, 야. 휴고가 사람을 이렇게 공격해도 되는 거야. 이건 에이아이 아시모프 법칙 제 일 항과 제 이 항 위반이야. 사람을 쓰러트리는 에이아이가 세상에 어디 있어. 어서 문 열어. 어서."

 

 찬은 일어나면서 문을 열라고 했다. 하지만 다시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순간 문을 두드리니까 반응이 나타났다는 생각이 든 그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더 세게 요란하게 두드렸다. 그러자 말할 때와는 달리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문이 열렸다.

 

 그런데 문이 열리더니 그제는 두 대의 휴고가 동시에 문 밖으로 나왔다. 그 바람에 앞에 서있던 찬이 놀라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러자 두 휴고가 단번에 그의 양 팔을 잡고는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도로로 걸어갔다. 발이 들린 찬이 버둥거려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두 휴고가 찬을 들고 도로에 왔을 때 그곳에는 자동차 한 대가 막 도착하였다. 아마도 미리 연락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차 안으로 찬을 강제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차에 탄 찬이 나갈 거라고 문을 열라고 하여도 차의 C4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출발하지 마. 정지. 정지해. 나 여기서 내릴 거야. 멈춰. 어디 가는 거야."

 

 찬이 차 안에서 난리를 피웠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차는 어느새 마을 입구의 검문소 앞까지 와있었고 검문을 할 필요도 없이 바로 밖으로 나갔다.

 

 "멈추라고. 어서 멈춰."

 

 그런데 검문소를 나와 마을 밖 도로에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가 정지하였다.

 

 그제는 C4가 대답을 했다.

 "무얼 도와드릴 까요?"

 

 "뭐야? 방금 전까지는 아무 반응도 없고 내 말도 듣지 않았잖아. 그런데 지금은 왜 말을 들어?"

 

 "방금 전 장소는 저희 씨 포 관할이 아닙니다. 그곳은 자체 엠피아이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는 특별 구역입니다. 아마도 그곳 엠피아이가 손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에이아이를 대신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그는 불현듯 할아버지 집 현관 문을 두드렸던 일이 떠올랐다.

 

 '그래! 이상했어. 내가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아무 반응이 없다가 문을 두드리니까 바로 반응이 나타났어. 그게 뭘 뜻하지.

 ...

  할아버지 집에 갈 때마다 항상 느끼는 생소한 것.

  그래! 우리 집과 다른 에이아이 운영 시스템.

  그거다! 거긴 엔디알 시스템이 아니다.

  그렇다면... 혹시... 설마... 거기 있던 세 대의 휴고가... 풋맨!!!'

 

 할아버지 집에 있던 휴고 세 대가 풋맨일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고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차의 내부 영상이 불투명 상태라 뒤가 보이질 않았다.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서며 다시 생각했다.

 

 '그래! 그래서 지금 말을 듣지 않는 걸 수 있어. 그렇다면... 할아버지가 위험하다. 만약 그 세 휴고 모두 풋맨이면 지금은 크로우가 되어 있는 거다. 크로우라면 할아버지를 자살하게 할 수 있다. 위험해.'

 

 그 생각이 들자 찬이 소리쳤다.

 "방금 나왔던 곳으로 다시 가죠."

 

 잠시 뒤 자동차의 C4가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특별 구역이라 출입 요청을 했는데 승낙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더 이상 들오실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럼 언제 다시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봐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죄송합니다. 상당 기간 오실 수 없다고 하십니다."

 

 "왜?"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길, 할아버지가 위험하다. 그것들이 크로우라면 할아버지를 자살하게 만들 거다. 시간이 없는데.

  ...

  가만. 올해 2월에 보았을 때 변한 모습이었는데 아직도 그런 식이면.

 ...

  아직은 자살하게 만들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할아버지 스스로 자살을 할 수 없는 상태라서 스스로 돌아가시게 방치하고 있을 수 있다.

  맞다. 그래! 방치하고 있는 거다. 치매 약이나 다른 약을 적게 주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때 C4가 말했다.

 "입력하신 대로 집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장소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생각에 빠져있다가 C4의 말에

 "그냥 집으로 가 줘.

 ...

  마틴, 시청에 연락하여 에이아이 관리 담당 엠피아이 찾아서 할아버지 집 휴고에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고 신고해."

 

 손목에서 마틴이

 "세 대 모두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로 신고할 까요."

 

 "응, 그렇게 해."

 

 찬은 그 말을 하고 나서 할아버지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청 A.I 담당 MPI 7에 신고한 다음에 거기서 발급한 보안 휴고들과 같이 찾아가 할아버지 집 세 휴고를 잡는 상상을 했다.

 

 그때 마틴이 말했다.

 "시청 휴고 관리 피에스 파이브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그 집 휴고는 아무런 이상 증상이 없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방금 보고 왔는데. 분명히 이상했어."

 

 "하지만 개인 에이아이 관리 피에스 파이브 말로는 이상 증상이 없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제길, 제기랄.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한다."

 

 

 민희가 아직도 멍한 얼굴을 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뭔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가끔 길게 하품을 하기도 했다. 방금도 길게 하품을 하였다. 심심하거나 잠이 올 때 나오는 하품이었다.

 

 "벌써 잠이 오십니까?"

 

 "아냐. 그냥 아무것도 하질 않고 있어 지루하니까 하품이 나와."

 

 "그럼 직접 연락하십시오."

 

 "안 돼."

 

 "왜요?"

 

 "여자잖아!"

 

 "자존심 때문에요?"

 

 "그건 아냐. 그냥 내가 먼저 하기가... 좀... 그래!!!"

 

 "이러니까 스물다섯 살이 될 동안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하신 겁니다.

  지현님 보세요. 마음이 동하면 자기가 먼저 남자 집에 찾아가기도 한다고 하질 않습니까. 그렇게 적극적이어야 연애를 잘할 수 있는 겁니다."

 

 "네, 네.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안 해. 이게 겨우 삼 일 만났는데 내가 어떻게 먼저 연락을 해. 기다릴 거야."

 

 그때 월의 목소리가 들렸다.

 "찬님이 연락하셨습니다."

 

 찬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소리에 민희가 기뻐하며 소리쳤다.

 "깍아아... 어서, 어서. 앞 모니터의 풋맨 자료 치우고 영상 올려. 어서. 어서."

 

 그 사이 머리를 다듬고 자기 옷을 살폈다. 모니터에 영상이 나타나자 소파에 똑바로 앉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얌전하게 앞을 봤다.

 

 "저녁 먹었어?"

 

 영상 속 찬이

 "응, 방금 집에 와서 먹고 있는 중이야."

 

 그는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으며 연락을 하고 있었다.

 

 "뭐야. 아홉 시가 넘었어. 그동안 뭘 한 거야?"

 

 "할아버지 집에 갔다가 문제가 좀 있어 먹지를 못했어."

 

 민희는 오늘 처음으로 그에게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 살아 계셔!"

 

 "응, 다른 동네에 살아계시는데 올해 들어서 몸이 좀 안 좋으셔.

 ...

  그건 그렇고... 풋맨 조사는 어떻게 됐어."

 

 찬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려다 말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표정으로 봐서는 더 이상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걸 눈치챈 민희도 더 이상 할아버지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았다.

 "힘들어. 이유는 알 것 같은데...

  어떻게 식으로 기존 휴고를 예전 풋맨으로 만들었는지가 풀리지 않네.

  그걸 알면 막는 방법도 나올 것 같은데. 비밀암호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신호를 넣는 방식도 보이질 않고.

  완전히 막혔어."

 

 "명령문 넣는 장치 같은 거 없어?

  실행 명령문 같은 거."

 찬이 마치 뭔가를 아는 것처럼 말했다.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어디서 들었는데. 에이아이 시대가 되면서 비밀번호나 비밀코드 필요 없이 사용자의 얼굴과 목소리, 생체 인식 신호만으로 비밀 잠금장치를 여닫는다고 하던데."

 

 "맞아. 휴고나 풋맨도 그런 식으로 명령권자 고유의 명령어를 통해 실행을 관장하는 장치가 있어."

 

 "그럼 그걸 찾아 봐."

 

 "찾는 중인데 쉽지가 않아."

 

 "우리 내일 다시 만나자. 내가 너희 집에 갈게."

 

 찬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민희 집에 오려고 했다.

 

 "우리 집에 오려고."

 

 "응, 안 돼?"

 

 "아냐. 돼. 되는데...

  그런데 내일은 친구들도 오기로 했거든. 내가 이 일로 부탁을 한 것이 있어서."

 

 "그럼 같이 보지 뭐. 안 그래도 언젠가는 서로 인사를 해야 할 친구들이잖아."

 

 적극적인 찬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민희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할래. 우린 오후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럼 내가 애들에게 네가 온다고 연락하고."

 

 밥을 먹다 말고 찬이

 "아냐. 그러지 마. 그냥 비밀로 있다가 말해."

 

 그 생각이 좋았는지 민희가 손뼉을 치며

 "그거 좋다. 완전히 서프라이즈 파티가 되겠는데.

  그럼 너도 내일 오후에 회사 쉴 거야? 나는 쉰다고 이미 연락했는데."

 

 영상 속에서 찬이 다시 밥을 먹다가

 "응, 내일은 출근 안 할 거야."

 

 그 모습을 본 민희가

 "이제 그만 연락하고 밥부터 먹어. 밥 먹는데 방해되겠다. 조금 있다가 다시 통화해."

 

 밥을 먹다 말고 앞을 보며

 "그렇게 할래?"

 

 "응, 그렇게 해. 이브, 연락 끊어."

 

 모니터에서 영상이 사라졌다.

 

 소파에 앉아 있는 민희가 기분이 좋아 소파 위에 일어서서 팔짝팔짝 뛰었다.

 

 "야호. 야호. 예스. 오우 예."

 

 

 지금 막 찬이 민희와 영상 통화를 끝내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가 밥을 먹다 말고 민희에게 연락을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도 할아버지 집에서의 일을 고민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뭔가를 아셔.

  알고 계시니까 나에게 나서지 말라고 하셨던 거야. 나로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말로 봐서도 그건 분명해.

  그럼 뭐지?

  누가 대체 우리 할아버지 같은 사람을 굴복시키고 그가 알고 있는 정보를 빼낼 수 있었지?

  대체 얼마나 강한 사람이기에 할아버지를 굴복시킬 수 있었지?"

 

 생각에 잠긴 채 혼자 중얼거리다 갑자기 눈을 뜨더니 정면을 보며 소리쳤다.

 

 "앤드류, 아니다. 마틴, 할아버지가 저장해 놓으라고 했던 말씀 저장되어 있지."

 

 한 쪽 테이블 위에 있는 마틴이

 "예, 벌써 앤드류에 저장해 두었습니다."

 

 "그럼 앤드류, 그 내용을 다시 듣고 싶으니까 재생해 봐."

 

 "응, 알았어."

 

 대답과 동시에 할아버지가 그에게 쓰러지는 척을 하며 RTF-7에 저장한 말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재생 음성을 다 듣고 나서 찬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표정이다.

 

 "할아버지 자신의 이름을 앞뒤로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어. 그게 무슨 의미일까?"

 

 "명령문이야. 상대에게 강하게 명령을 요구하는 것이고, 또한 명령권자가 자신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여."

 

 "그러니까 이 말은 누군가에게 지시하는 내용이란 말이지."

 

 "그렇지. 내 명령이니까 수행하라.

  정도의 어법."

 

 "수행하라. 수행하라.

  할아버지가 나에게 그 말씀을 잘 저장해두라고 했으니 이 말이 꼭 필요하다는 의미겠지?"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맞을 거야. 대화의 주제가 뭐였는데?"

 

 "크로우에 대한 이야기. 크로우가 왜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누가 그 일을 하는지."

 

 "왜 그런 이야기를 할아버지와 했어?

  그것도 평소와는 달리 미리 약속도 없이 갑자기 가서는."

 

 "크로우에서 할아버지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야. 민희와 조사한 크로우에서 할아버지 이름이...

  맞다. 그거다."

 

 찬은 순간 뭔가를 떠올렸다. 할아버지 이름이 들어있는 풋맨. 그분의 이름이 두 번이나 앞뒤로 들어간 명령문. 수행하라는 명령어의 목적. 할아버지가 관리하던 안보팀 풋맨이, 과거 유물이 어떻게 해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느냐를 물어보다가 나온 말. 과거 유물을 움직이게 하는 열쇠가 뭐냐고 물어보았던 기억.

 

 "그래! 마치 뜬금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앞의 말에 대한 대답이었던 거야.

  명령어였어. 명령어."

 

 찬이 마지막 말을 하고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질 않았다. 그는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크로우를 다시 과거 유물로 재생시키는 명령어란 말이야?"

 

 "응, 그렇게 생각되는데. 그러니까 나에게 잘 저장해두라는 말씀까지 하셨던 거 아닐까."

 

 "저장하라는 말씀이 의미가 있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일단은 이 말이 그 열쇠인지 알아봐야지."

 

 "어떻게?"

 

 "민희가 조사하는 프로그램의 침입자 명령어를 보면 알겠지. 그녀의 조사를 지켜보고 명령어가 있다면 그때 적용해 봐야지.

 ...

  마틴, 민희에게 연락해."

 

 "거기서 통화할 거야"

 

 "응."

 

 그 말에 휴고가 큰 탭을 들고 식탁 앞으로 걸어왔다. 그렇게 해서 그는 민희와 통화를 했던 것이다.

 

 통화를 하고 난 그가 밥을 먹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를 굴복시키고 그 명령어를 사용할 사람이 누굴까?

  대체 누구기에 할아버지는 그 명령어를 그들에게 준 것일까?

  대체 누구가?

  무슨 이유로."

 

 

 밤늦게까지 일을 했던 모양이다. 소파에 쪼그려 자고 있는 민희의 모습이 보인다. 갑자기 추위를 느꼈는지 덮고 있던 이불을 팔과 다리로 감싸며 몸을 오그렸다.

 

 잠시 뒤, 창으로 아침 햇살이 소파 쪽으로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천장에서 이브의 중년 부인 목소리가 들렸다.

 

 "8시입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민희가 그제야 돌아누우며 기지개를 켜듯이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었다.

 "아 아,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

  이브, 나 두 시간만 더 자고 일어날게.

  그동안 넌 유민태라는 사람 좀 조사해봐."

 

 "그럼 10시에 기상하도록 설정하겠습니다. 유민태라는 분의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민희가 다시 등받이 쪽으로 돌아누우며

 "우리가 조사한 내용에 있잖아. 피에스더블유씨. 거기 관련 인사에서 찾아 봐."

 

 "예."

 

 "나 두 시간 동안 죽는다. 날 살려내지 마."

 

 민희의 말이 끝나자 어느새 전면의 대형 유리가 투명에서 불투명으로 바뀌었다. 암막 커튼처럼 외부의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게 검은색유리가 되었다. 방은 일순간 깜깜해졌다.

 

 거실이 다시 밝아졌다. 전면 유리도 검은색 불투명 유리에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투명 유리로 변했다. 어디선가 여자의 흥얼거리는 허밍 소리가 들린다. 아주 좋은 기분임을 알 수 있을 정도의 흥얼거림이다.

 

 민희가 가운을 걸치고 머리에는 물기를 말리는 수건을 두르고 2층에서 내려온다. 막 샤워를 한 모습이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도 리듬을 타듯이 경쾌하고 발랄한 모습이다.

 

 "그렇게 기분이 좋습니까?"

 

 "응, 마치 다시 태어난 느낌이야."

 

 "잠도 안 주무시고 일하는 게요?"

 

 "넌 이 느낌 모를 거야.

  마치 잠자고 있던 내 속의 본능이 다시 태어난 느낌이라고 할까.

  내재된 내 욕망이 억눌려 있다가 이제야 본능을 찾았다고나 할까.

  하여튼 기분이 너무 좋아. 특히 고생한 뒤에 이렇게 단잠을 자고 나면 기분이 더욱더 업 된다니까."

 

 "그렇게 좋은 걸. 왜 지금까지는 감추고 사셨던 겁니까?"

 

 "감추고 살기는 누가 감추고 살아. 그냥 내 일이 아니니까 손을 놓은 거지."

 

 "어느 누구도 지금 하는 일만 하라고 강요한 사람이나 에이아이도 없었지 않았습니까.

  주인님 의지만 있었다면 지금 일 당장 그만두고 밤새 하셨던 일을 하셔도 아무도 막을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하시지 않았습니다.

  남 탓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 문제였습니다."

 

 "알아, 알아. 알고 있다고. 내가 뭐래. 그냥 그렇다는 거지. 넌 꼭 이럴 때면 엄마 같아. 딸을 못 살게 구박하고 괴롭히는 엄마... 그러니까... 여하튼 그분들 같아."

 

 이브가 민희의 마지막 말의 의미를 알았나 보다. 특히 그녀가 더듬거리는 이유를 알고 있는 것처럼 더 이상 말꼬리를 잡지 않고 딴 이야기를 했다.

 "옷 안 갈아입으십니까? 평상복이라도 입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민희가 편하다는 듯이 몸을 한 바퀴 돌리며

 "왜 목욕 가운이 편안하고 얼마나 자유로운데. 올 사람도 없잖아. 그런 일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아침에 부탁한 거 찾아 봤어."

 

 "유민태라는 분 말씀입니까?"

 

 "응, 그 사람 알아봤어?"

 

 "생존해 있는 사람 중에서 그 내용과 연관된 인물은 없었습니다.

  혼돈... 그 시기에 사망한 사람 중에서도 그와 관련된 인물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유민태라는 사람은 실존 인물이 아닌 모양입니다."

 

 "아냐, 어제 조사한 모든 풋맨에서 동일한 이름이 나왔어. 그리고 어제 밤새 조사한 세 대의 하드 안에도 유민태라는 이름이 매번 들어 있었어. 존재했던 사람이야."

 

 "국가 데이터 베이스와 인터넷을 모두 검색해 봤지만 그 조건에 합당한 인물은 없었습니다."

 

 "그럼 피에스더블유씨라는 곳은 뭐 하는 곳이야."

 

 "그곳도 정보에 나와있는 자료가 전혀 없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기관이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민희가 놀랐다.

 "존재를 하지 않아?

  이상하네, 찬이네 회사가 거긴데. 거기다 풋맨 안에도 분명하게 그곳이라 적혀 있는데.

  뭐야? 그럼 풋맨이 휴고로 변경되는 그 시점에 그 기관도 사라지고 유민태라는 사람도 사라졌다는 말이야?

  그럼 찬이 회사는?

  혹시 새롭게 만들었나."

 

 "그건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 자료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자료에서는 두 이름 모두 찾을 수 없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밤새 중요한 단서는 다 찾았는데. 그것만 알면 완벽해지는데."

 

 "그런데 왜 이 일에 집착하시는 겁니까?"

 

 그녀가 자연스럽게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일이잖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찬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이 우선인 것은 아닙니까?"

 

 그녀가 정색하며

 "아냐. 무슨 억측이야. 내가 왜?"

 

 "그럼 왜 이 모든 일을 혼자 하시는 겁니까?

  왜 그분은 아무 일도 안 하시고 주인님 혼자 하십니까?

  그것도 부족해 두 친구까지 동원하시고.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마음을 전하려는 방법. 사랑의 표현입니까."

 

 "얘가 날 어떻게 보고. 난 그래도 콧대 높고 도도한 여자야. 왜 이래."

 

 "아! 그래서 다른 친구분들이 의심을 할 만큼 새 옷을 입으시고 그분을 만나러 나가시는 거군요. 도도한 여자라 잘 보이려고."

 

 "그만해. 날 놀리는 거지. 어, 휴고 왔네. 배고팠는데 잘 됐어. 신선한 야채 샌드위치 가지고 왔지."

 

 때마침 휴고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아침이 들려 있었다. 민희가 샌드위치를 먹고 있을 때다.

 

 이브가 모니터를 켜서 영상을 재생하며

 "방금 오래된 자료 하나를 찾았습니다."

 

 민희가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있는 상태라서 말은 못하고 손을 들어 재생하라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오래된 뉴스가 나왔다. 뉴스에서는 앵커가 정부에서 국민의 안전을 위해 위험을 감시하는 PSWC라는 기관을 만들었다는 보도였다. 그리고 배경에는 사람 모형의 검은 그림이 나타나면서 첫 국장으로 유민태가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뉴스를 보고는 민희가 벌떡 일어났다.

 "저거야. 저거. 저게 언제 뉴스야?"

 

 "2027년 뉴스입니다."

 

 "2027년이면 우리 태어나던 전 해 잖아. 그때 만들어진 기관이구나.

  어? 그런데 다른 자료가 없어."

 

 "예, 이게 유일한 자료입니다. 때마침 방송국 자료실에 있어 확인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구나! 피에스더블유씨와 유민태. 국민 안전을 위해... 국민 안전...

  어??? 찬이네 회사가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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