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유니콘의 뿔
작가 : 앙졸라이트
작품등록일 : 2018.1.20

남방 최고의 국가 카프래이스....그들의 성곽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도로 강대한 공격에 맞서 무너지는 순간, 한 자루의 창날이 그들을 구원하고자 나섰다. 유니콘의 뿔을 찾아야만, 이들의 도시는 구원될 수 있을 것이다.

 
001-전차
작성일 : 18-01-20 23:23     조회 : 196     추천 : 0     분량 : 935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프리오스 장군님, 정말로 전차대 도입에 승인하실 겁니까?"

 

  베어르가 양피지를 쓱 훑어보고는 내게 물었다. 난 대답하기를 살짝 주저했다. 프릭스턴이 주장하는 전차대 도입은 국왕의 야망을 위해서는 분명 필요한 일이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동맹국들과의 분쟁 요소가 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레셈블이 망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너무 성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군."

 

  본인 소개부터 간략히 하겠다. 내 이름은 프리오스 엘렉타. 본디 레셈블이라는 작은 도시의 장수였지만 레셈블이 카프래이스라는 다른 도시에 귀속된 후로는 그 도시에서 기병대장을 맡게 되었다. 카프래이스는 남방의 모든 도시의 맹주로서 그 위엄을 떨치고 있는 강력한 도시였고, 왕은 동맹 관계에 있는 다른 도시들을 모두 점령하여 하나의 거대한 제국을 만들어 자신이 그 군주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한 정복 군주가 되기 위해, 그는 제일 먼저 레셈블을 멸망시켰고, 이제는 북방의 군대에서 영감을 받은 전차대를 도입하여 자신의 야망에 더욱 다가가려 하고 있었다.

 

 "프릭스턴이 제안한 일입니다. 이 제안을 거절하면 살짝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지도 모릅니다."

 

  베어르는 기병대의 상급 장교로서 나를 직접 보좌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레셈블 전쟁 이후 다시 평화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기병대장으로서 할 일은 도적 진압과 같은 소소한 일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서류 업무였고, 군주에게 참모가 필요한 것처럼 나에게도 참모가 필요했다. 베어르는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한 녀석이었다.

 

 "프릭스턴이 아직까지도 나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고? 아, 뭐 앙심을 품을 만 하긴 하군. 그건 사실이야. 그런데, 이 전차대 도입에 무조건적으로 찬성할 수는 없어. 그렇게 소심한 자가 도대체 왜 이런 발상을 떠올린 건지 모르겠군."

 

 "제 생각에는, 폐하 본인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베어르의 말에 타당성이 있었다. 언제나 야망에 가득 차 있던 것은 왕, 본인이었다. 어찌 되었든 전차대를 도입하고는 싶고, 그런데 본인이 스스로 전차대 도입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부하의 제안을 받았고, 부하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이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만일 그렇다면, 이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 커리어에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승인한다고 쓰게. 대신, 전차대 양성은 보병이 아닌 기병대에게 맡겨줬으면 한다고 전해주게. 일단 모든 전차에는 말이 필요한 게 사실이니까 말이야."

 

 "네."

 

  기왕 할 거면, 내가 맡는 쪽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굳이 이런 일을 할 거라면, 일단 추진 자체는 비밀리에 진행하는 편이 나았다. 그러한 일을 프릭스턴 같은 자에게 맡기기에는 꺼림직스러운 면이 있었다.

 

 ---------------------------------------------------------------------------------------

 

  베어르가 왕에게 서신을 전달하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왕이 나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카프래이스는 국가가 지향하는 특유의 야망 때문에라도 군인이 우대받는 국가였다. 상급 장교 이상의 군인들은 성 내에 자신의 공간을 배당받았고, 내 집무실이 왕의 그것과 그리 멀지 않았던 탓에, 그곳까지 올라가는 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계단을 통해 거대한 왕의 방 앞에 도착한 뒤, 검을 내려놓고 거대한 문을 두드렸다. 곧 안에서 들어오라는 허가가 들려왔다.

 

 "여기에 앉게."

 

  문 안에 들어서자 왕이 내게 말했다. 왕의 모습은 한 명의 군주라기보다는 한 명의 전사에 가까웠다. 머리카락은 백발이 다 되었지만 거대한 안락의자에 앉아있으면서도 왕관이라기보다는 투구에 가까운 금속관을 쓰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얼굴은 풍성한 흰색 수염이 뒤덮고 있었으며, 수염이 뒤덮지 않은 곳은 언제나 화가 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주름이 그 자리를 채웠다. 눈빛은 주변에서 오는 모든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맹렬히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처음 보고서 그의 눈동자 색이 녹색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폐하께서 저를 찾으신 이유는...."

 

 "셰름을 칠거네. 2달 안에."

 

 "예?"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자동적으로 반문했다. 왕은 예상했던 반응이라는 표정이었다.

 

 "자네가 전차대 양성을 자네에게 맡겨달라고 한 이유를 알지. 자네는 신중한 사람이야. 난 그 점이 맘에 드네. 하지만 더 마음에 드는 것은, 자네는 전장에서는 그 누구보다 과감하다는 사실이지."

 

 "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대략 예상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뭐라고 토를 다는 대신, 고개를 숙이고 왕의 말을 들었다.

 

 "내가 전차대를 꾸리려는 목적은 따로 있어. 사실, 지금 양성을 시작해봐야 수년이 걸리지 않는 이상 북방의 전차들처럼 실질적으로 전장을 휘어잡을 정도로 강력한 녀석들을 키우는 건 불가능하지. 이 일은 애초에 셰름을 도발하기 위해 벌이는 짓이야. 자네의 조국을 멸망시킨 이후, 남부 연맹에서 실제로 카프래이스를 좋아하는 나라는 없어. 두려워하거나, 고깝게 보거나. 둘 중 하나지. 그리고 고깝게 보는 이들의 중심에는 셰름이 있네. 셰름만 쳐서 멸망시킬 수 있다면, 남부에서 카프래이스에 저항할 국가는 사실상 사라질 것이고, 대부분은 스스로 귀속되는 것을 택할 것이지. 그 때는 성을 부술 필요도 없다네. 이제 한 도시에만 안주하는 도시국가가 아닌 하나의 거대한 제국이 될 테니까."

 

  그 순간, 왕은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는 듯 말을 멈추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야망을 대략적으로 꿰뚫어보았다. 그는, 이 대륙에서 적어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위험한 자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럼 전차대는 프릭스턴이-"

 

 "아니, 자네가 맡게. 대신, 최대한 요란하게 하게."

 

 그 말에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뒤에서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급보입니다! 프릭스턴 보병대장이 옛 레셈블 지역에서 급보가 있답니다."

 

 "들어오게."

 

 허가가 떨어지자, 온몸에 잔상처가 난 병사가 문을 열고 뛰어들어왔다.

 

 "보고하게."

 

 기병갑옷을 보고 내 수하임을 알아챈 내가 말했다. 병사는 고개를 까딱하여 인사하고 말했다.

 

 "소...들소입니다. 난생 본 적도 없는 거대 들소가 시내에 뛰어들어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데... 경비대가 막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벌써 셋이 중상을 입었고, 그 중 하나는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릭스턴이 그 소식을 여기까지 들고 온 이유가 뭐지? 그의 권한 내에서라면 병력은 원하는 만큼 동원할 수 있을 텐데."

 

 "말씀드린 바와 같이, 경비대가 도저히 녀석에게 접근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대장님은 그게 인간과 소 사이의 덩치 차이 때문에 군이 위압되는 영향이 크다 판단하시고..."

 

 "기병이 나서길 바라는 거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오스, 자네 고향이니 자네가 한번 지켜보게. 들소 따위가 뭐 그리 큰 문제겠냐마는, 그렇게 가벼운 문제도 아니니 프릭스턴이 자네까지 찾는 거겠지."

 

 ----------------------------------------------------------------------------------

 

  그날, 모든 게 바뀌었다. 아니 솔직히 그날 모든 게 바뀐 건 아니지만, 실제로 모든 일이 바뀐 발단은 그 날에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때 조금만 더 조짐을 빨리 읽었더라면.... 아니, 빨리 읽었더라도 바뀌는 건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카프래이스는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

  들소 사냥이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 생각도 왕의 그것과 같았다. 뛰어난 기병 두 세명 정도는 데려가는 쪽이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 중 베어르는 필수였다. 그 녀석이 상황을 직접 봐주어야 보고할 때 한결 수월했다. 망설이지 않고, 나는 말에 올라타 베어르를 포함해 장교 세 명을 데리고 곧장 레셈블로 달려갔다. 하지만 분위기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진영을 치고 자기 자리를 지키란 말이다!"

 

 "하지만 대장님, 의미가 없습니다! 창날도, 화살도 박혀 들어가지가 않아요!"

 

 프릭스턴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나는 대충 프릭스턴이 날 골탕 먹이려고 경비대 2~30명으로 막아보다가 힘들다며 날 부른 건 줄로만 알았다. 사실이 아니었다. 거대한 들소 한 마리를 상대로, 프릭스턴은 2~300명의 정예병을 이끌고 필사 항전을 하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한 곳으로 몰아넣기라도 해봐!"

 

 어찌나 열성적이었는지, 그는 내가 옆에 온 줄도 모르고 부하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곧장 말에서 내려 투구를 벗고 그의 어께를 두드렸다.

 

 "소는 어디에 있지?"

 

 "아, 프리오스, 자네로군."

 

  우린 전장에서 맞붙은 적도 있었고,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지만, 그 순간 그는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반갑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전체적으로 호리호리한 체형이었고, 어떤 여자라도 이틀만 시간을 주면 호의를 살 수 있을 만한 매너와 용모를 하고 있었다. 다만 군인으로서의 그의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왕비를 홀려서 직위를 얻었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난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처럼 소심한 사람은 그런 대담한 짓을 벌일 생각은 하지 못한다.

 

 "병력은, 병력은 얼마나 데려왔나?"

 

 "유감스럽지만 나 포함해서 네 명이야. 이렇게까지 심각한 줄은 몰랐거든."

 

  프릭스턴의 얼굴에 진심으로 실망한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일단 당장 이 일을 떠넘길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하는 것 같았다.

 

 "소는 저기 박스더미 너머에 있네. 일단 포도주 상자를 총동원해서 바리케이드를 쳐놓은 상태지만, 지금은 녀석이 우리가 어느 쪽에 있는지를 혼동해서 여기저기를 박살내며 다니는 것 뿐, 곧 여기로 쳐들어 올 거야. 저기, 들썩거리는 곳 보이지?"

 

 "고맙군. 소는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어."

 

 내가 투구를 뒤집어쓰며 말에 올라타자, 프릭스턴이 잠시 주저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네가 저 소에게 당해도 큰 유감이 없지만, 카프래이스 전체의 공익을 위해서 경고하지. 목숨 조심하게."

 

 "공익을 염려하는 자네 마음에 감탄했네."

 

  그 말을 마치고 나는 장교들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내고, 포도주 상자로 친 바리케이드로 돌격을 준비했다. 뒤에서는 대부분 부상을 입은 상태인 보병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우리를 안쓰럽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장군, 조심하세요. 보병대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가죽을 쇠로 만들었거나 마법적인 존재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실 짐작하는 게 하나 있긴 한데..."

 

 베어르가 나지막이 내게 경고했다.

 

 "아틀라 산의 검은 들소 말인가?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꽤나 박학다식하시군요."

 

  나는 더 기다리지 않고 창날을 앞으로 치켜세운 채 바리케이드를 뚫고 돌진했다. 한창 정육점을 박살내는 데에 푹 빠져있던 들소는 말 위에서 자신을 향해 창날을 치켜세우고 있는 나를 보자 머리를 돌리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예상한 바와 같이, 아틀라 산의 검은 들소였다.

 

  혹시 모르는 이들을 위해 설명해두는 편이 좋겠다. 아틀라 산의 검은 들소. 말 그대로 북방의 제국의 근원지, 아틀라 산에 산다고 전해지는 검은 들소 떼를 이르는 말이다. 남방에서는 마법사들의 집단적인 퇴치 덕분에 근 90년 간 발견된 바가 없었고, 사실상 이 근처에서 그 소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문서상으로만 그 소에 대해 읽어본 나도 그 녀석들이 굉장히 위험하리란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소는 발 끝에서 머리까지의 높이만 해도 말에 탄 사람의 눈높이와 대등했고, 몸 길이는 왠만한 전차보다도 거대했다. 어께 너비만 해도 키 큰 사람의 키보다도 넓었기 때문에 사람은 설사 말에 타도 그 덩치 앞에서는 위압될 수밖에 없었다. 검은 가죽은 겉으로는 매끄러워 보여도 실제로는 그 무엇보다 거칠고 질겼으며, 태생적으로 마법이 깃들어 있어 왠만한 공격은 틩겨낼 수 있었다. 이들은 천성적으로 길들여지지 않았고, 천성적으로 포악했으며, 천성적으로 강력했다. 뿔 끝은 가장 솜씨있는 대장장이 만든 검보다도 날카로웠고, 가장 잘 풀무질 된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말하자면, 태생적인 전차였다.

 

 "아틀라 산의 검은 들소를 떠올렸다면, 여기까지 오기 전에 좀 말해줬으면 좋았을 거 아닌가."

 

 "여기온 뒤에서야 떠올린 게 치명적인 오점입니다, 장군님."

 

  그 소에 있어서 가장 두려운 점은 단연 그 무시무시한 뿔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두려운 점은, 그 눈빛이었다. 어떤 생명체도 잠시 동안은 뒤로 물러서게 하는 눈빛. 오직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마법적 기운을 가진 존재만이 그 눈빛을 보고도 태연할 수 있었다.

 

 "말에서 내리게."

 

  내가 장교들에게 명했다. 내 명령의 의미를 알았던 탓에, 장교들은 군말 없이 말에서 내렸다. 등 위에 탄 사람들 때문에라도 제 자리를 불안하게 지키던 말들은 장교들이 내리자 곧장 울음소리를 내며 도주했다.

 

 "장군님은요?"

 

 하지만 내가 말 위를 지키고 있자 한 장교가 내게 공포심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저 소를 보고 공포심을 느낀다고 군인으로서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아니지. 물론 군인의 말로서의 명예도 말이야."

 

 내 자신도 공포심에 기절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내 말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와 함께해왔어. 이 녀석은 옆구리에 창날이 박혀 들어오는 순간에도 날 믿고 살아남았던 녀석이야. 적어도 저런 약한 마법이 주는 불확실한 공포감보다는, 내 손길을 더 믿겠지."

 

 이건 말을 두고 한 소리였지만, 동시에 이건 나를 두고 한 소리이기도 했다. 내가 이 공포감을 견디면서 이렇게 의연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내 애마의 감촉에 내 다리에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르르!"

 

  나를 인식하는 것이 완전히 끝났다는 듯 거대한 들소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돌진했다. 자신의 눈빛이 전투에서 가지는 이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나는 창을 크게 호를 하나 그리며 녀석의 코를 베었다.

 

 "크르!"

 

  녀석이 지르는 비명소리를 무시하려 애쓰며, 나는 곧장 소의 옆구리 쪽으로 이동했다. 내 말은 내 지시를 착착 따라주었고, 덕분에 분노한 소의 무차별적인 돌진을 피할 수 있었다.

 

 '찌르는 건 소용이 없겠군.'

 

  소의 맨들맨들한 옆구리를 보며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소 밑에 떨어진 수많은 부러진 화살들과 못 쓰게 된 칼날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 코를 벤 건 운이 좋았다. 만일 그 때 내 창날이 녀석의 두개골이나 뿔을 스쳤다면 창날이 날아갔을 것이고, 지금 이렇게 회고록을 쓰고 있지도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엉덩이를 찔러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소의 뒤꽁무니를 쫒으려 했다. 하지만 소는 내 생각보다 훨씬, 내 말보다도 훨씬 빨랐고, 내가 녀석의 꽁무니를 잡기도 전에 녀석은 내가 있는 방향을 포착해냈다. 나는 이번에는 황급히 녀석의 코를 창으로 찔렀다.

 

 '푸욱'

 

  창날이 녀석의 콧구멍을 뚫고 들어가는 그리 경쾌하지 못한 소리가 들렸다. 이제 녀석의 괴성 소리는 아예 무시하기로 한 나는 그 소리를 귀에 담지도 않았다. 곧, 코에서 검은 코피가 흘러내렸다. 코에서 눈을 때고 고개를 드는 순간, 난 녀석의 눈을 다시 바라본 것을 후회했다.

 

 "크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거대한 공포심이 날 감싸며 그 동안 들리지 않았던 녀석의 괴성소리마저 들리기 시작했다. 창을 놓칠까 두려워 꽉 잡고 있었지만, 내가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히히히히힝!"

 

  그 순간, 내 애마가 울부짖는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녀석은 눈을 낮게 깔고 들소의 눈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내게 겁먹지 말라는 듯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솔직히 그 녀석의 행동에 용기를 받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꾸역꾸역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자극은 되어주었다.

 

 "이얏차!"

 

 일단 녀석의 코에서 창을 뽑아냈다. 창날은 검은 피로 물들어 원래 색을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고마워 은빛섬광."

 

  우선 내 말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 말은 은빛과는 거리가 먼 노란색이었지만, 어릴 때 지은 이름이라서 그래도 붙여두고 있었다. 진짜로, 녀석이 어릴 때는 난 녀석이 커서 노란색이 될 줄은 몰랐다.

 

 "피부를 꿰뚫는 건 힘들겠지..."

 

  사실, 한참 전부터 녀석을 죽일 방법은 하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힘든 일로 보였다. 미친 짓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때 내가 젊었던 것이 다행이다. 만일 지금의 나에게 그때 했던 그 일을 다시 시킨다면 실패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젊은 시절의 패기'라는 것이 있었다.

 

 "눈을 찔러야 해, 최대한 앞으로!"

 

  내 말을 알아들은 은빛섬광이 곧장 소를 향해 돌진했다. 소는 의외의 반응에 살짝 놀란 듯 보였지만, 개의치 않고 내 쪽으로 돌진해왔다. 창날을 조금이라도 잘못 조준해서 두개골이라도 맞았다가는 끝장이었다. 아니,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잘못 조준했다가는 나는 은빛 섬광과 함께 공동묘지에 묻히게 될 판이었다.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녀석을 향해 창을 겨눈 그 순간, 나는 사람과 말이 같이 묻힐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게 집중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녀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순간, 녀석의 눈을 더 정확히 조준할 수 있는 방법은 공포심에 집중하기보다는 공포심을 무시하려 하는 것이다.

 

 '푸우욱!'

 

  아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소리였지만, 이번에는 무척 경쾌하게 들렸다. 창날이 녀석의 한쪽 눈을 꿰뚫고 들어갔다. 어찌나 깊이 꿰뚫었던지 내 창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남지 않았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뿔을 피해 내 애마 위에서 들소 위로 뛰어올랐고, 은빛섬광은 내가 뛰어오르는 순간 후다닥 프릭스턴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크..끄..끄르르..."

 

  별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들소는 그대로 털썩 쓰러졌다. 뇌가 꿰뚫린 듯 이상한 경련을 일으킨 자세를 보니 그 동안 이 덩치만 큰 놈을 왜 두려워했는지조차 의문스러웠다. 물론, 녀석이 부릅뜬 나머지 한쪽 눈을 보는 순간 난 왜 내가 녀석을 두려워했는지 다시 똑똑히 알아차렸다.

 

 "어떻게.. 그런...솜씨는..."

 

 프릭스턴이 아직도 공포에 사로잡힌 듯 말을 더듬거렸다.

 

 "이 녀석의 한 쪽 눈은 내 기념품이네. 괜찮지?"

 

  내가 주머니칼을 꺼내서 들소의 눈알을 뽑아내며 말했다. 이 행동을 두고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굉장히 용감한 행위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사실 이건 내 공포심에서 나온 행동에 가까웠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녀석의 눈알을 뽑아내서라도 더 이상 보지 않을 수 있으면 빈 눈알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피쯤이야 별로 꺼릴 게 없었다. 실제로, 눈알을 뽑아내고 나니 마법의 힘이 풀려버린 듯 눈알을 바라봐도 공포심이 한결 가셨다. 난 프릭스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품 안에서 작은 보따리를 꺼내 눈알을 싼 뒤 다시 품에 넣고 말 위에 올라탔다.

 

 "그럼 보고 드리러 가지. 따라오게, 베어르. 너희 둘은 여기서 프릭스턴을 도와서 사태를 수습하도록 하고."

 

 내 수하의 장교들에게 명령은 내린 뒤, 난 아직도 멍하니 내 뒷모습만 바라보는 프릭스턴을 뒤로 하고 카프래이스 본국으로 향했다.

 
작가의 말
 

 유후 유후후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9 008-메고델 2018 / 1 / 24 222 0 9301   
8 007-여정 2018 / 1 / 23 214 0 9089   
7 006-해법 2018 / 1 / 23 211 0 9211   
6 005-투항 2018 / 1 / 23 206 0 10183   
5 004-멸망 2018 / 1 / 22 225 0 10101   
4 003-침공 2018 / 1 / 22 210 0 9780   
3 002-습격 2018 / 1 / 21 208 0 8160   
2 001-전차 2018 / 1 / 20 197 0 9354   
1 서문-프리오스의 회상 2018 / 1 / 20 348 0 505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