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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혼돈 : 내일과 어제를 잇는 다리
작가 : 러군
작품등록일 : 2017.11.6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2052년의 내일에 대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2026년의 어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둘 사이에 이어진 다리의 사연이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를 주는데...

모든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경고.

 
악연적
작성일 : 18-01-19 10:24     조회 : 280     추천 : 0     분량 : 1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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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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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파에 찬이 멍한 모습으로 집 내부를 보며 앉아 있다. 휴고가 음료수를 가지고 와 탁자에 내려놓고는 다른 곳에 가질 않고 그의 뒤에 서있었다. 할아버지 집에 온 지 수십 분이 지났는데 이제야 음료수를 준다. 할아버지 집에 오면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자기 집과는 시스템이 조금 다른 느낌을 받는다. 자기 집의 시스템은 NDR-11에 의해 유지되는 구조라 온 집에 A.I의 눈인 카메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무슨 행동을 하던 그를 보는 NDR-11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집에는 어디에서도 카메라가 보이질 않는다. 대신에 세 대의 휴고가 항상 방문자가 있으면 그를 따라다닌다. 자세히 보면 휴고 자체의 카메라를 이용해 A.I의 눈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가 앉아 있는 바로 뒤에 휴고가 서있어서 부담 아닌 부담이 되었다. 반응도 자기 집 NDR-11보다 느렸다. 자기 집 같으면 '뭐가 필요하십니까?' 아니면 '음료수 드릴까요.'하고 말을 걸며 심심하지 않게 말상대가 되었을 텐데. 여기 휴고는 찬이 "음료수 안 줘?"라고 해서야 음료수를 가지고 왔다.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났다. 혼돈 시기가 끝나고 일 년 정도 지난 뒤부터 거의 매달 한 번씩은 할아버지 집에 와서 안부 인사를 했는데. 그때도 가장 힘들었던 것이 휴고의 반응이었다. 그래서 찬이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시스템이 너무 예전 건데요. 불편하지 않으세요?"

 

 "괜찮아."

 

 "요즘 새로 나온 엔디알 나인이나 앞으로 나올 텐은 이렇지 않은데."

 

 "난 이게 좋아. 수행비서처럼 날 따라다니며 수행하잖아."

 

 "하지만 반응도 늦고 대답도 잘못하는데. 이번 기회에 교체하셔요. 무료인데 왜 예전 방식을 쓰세요."

 

 "됐다. 그런 소리는 그만해라. 난 이게 좋아."

 

 그때 할아버지는 독불장군처럼 예전 방식 같은 세 대의 휴고를 통해 도움을 받는 방식을 고수하였다. 그게 지금까지도 지속되어 현재는 NDR 시스템이 버전 11까지 왔는데 여기는 여전히 휴고를 통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뒤에 서있는 휴고가 어색했던 찬이 집안을 한 번 둘러보고 말했다.

 "저번에 왔을 때와는 조금 달라졌네. 뭐가 달라졌지?"

 

 뒤에 있던 휴고가

 "2월에 오셨을 때는 저희들이 문 앞에 서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 맞다."

 

 할아버지는 휴고들을 거실 입구에 세워두고 주인이나 손님의 입출입 때 항상 거수경례를 하게 하셨다. 찬의 입장에서는 생소한 모습이었지만 그분이 젊은 시절 해오던 습관 같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걸 몇 년 동안 계속 지속하고 계셨는데 오늘 오니까 그게 없었다.

 

 "왜 중단한 거야?

  꽤 오래 하신 것 같은데."

 

 "최근에 갑자기 시끄럽다고 중단시키셨습니다."

 

 "이상하네. 할아버지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닌데."

 

 그때 방문이 열리고 할아버지 나오셨다. 그런데 나오시는 모습이 놀라웠다. 휴고 한 대가 할아버지를 안고 나왔다. 지난 2월에 만났을 때까지만 하여도 자기 발로 직접 걸어오실 만큼 건강하셨는데. 몇 달 사이에 그야말로 환자처럼 거동이 불편한 모습이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찬이 벌떡 일어나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왜 이렇게 되셨어요."

 

 찬의 말에 할아버지가 바로 반응을 보이시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뜨더니 멍한 시선으로 보다가 말씀하셨는데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

 "또 혼자 왔냐. 또 혼자야."

 

 그리고는 잠시 중단하시더니 휴고가 할아버지를 소파에 앉히려 하자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뭐 그렇게 잘못을 했다고 손자를 안 보여 주는 거냐.

  내... 그년과 결혼하면 안 된다고 했지. 이게 다 며느리 때문이야. 그 잘난 며느리 때문."

 

 처음 하셨던 말에 이미 당황을 한 찬이 그제는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할아버지를 안은 휴고 뒤에 있던 다른 휴고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연락할 때마다 괜찮다고 했잖아. 건강하시다며. 이게 건강한 거야."

 

 휴고가 그제는 소파 뒤에 자리를 잡으며

 "나이가 있으셨어 차츰 건강이 나빠지시는 겁니다."

 

 할아버지 연세는 87살이셨다. 많다면 많은 나이였지만 현재의 시스템 도움이나 의술과 의약으로 보면 아직은 건강하셔야 할 나이였다.

 

 찬이 할아버지 모습을 다시 보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작년까지도, 아니다. 2월까지 혼자서 걷던 분이야. 그런 분이 왜 갑자기 이렇게 되신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찬의 화난 큰 목소리에 소파에 앉던 할아버지가 다시 이상한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 찬은 할아버지가 자신을 아버지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할아버지 치매 약 드셔?"

 

 그제는 처음부터 찬을 따라다녔던 그의 뒤에 있던 휴고가

 "예, 드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못 알아보셔. 지금 말씀은 나와 아버지를 구분 못하시는 거잖아."

 

 찬의 말에 할아버지를 안고 와서 소파에 앉히고 난 휴고가

 "막 잠에서 깨셨어 그렇습니다. 점심 후에 약을 드셨으니 조금 있으면 정신을 차리실 겁니다."

 

 그제야 찬은 자기가 미리 이곳에 오겠다 연락을 하였는데도 할아버지가 자신의 방에서 나오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걸 깨달았다. 자기가 이 집에 도착하고도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것에 불신이 가기 시작했다. 매번 연락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 얼굴 모습만 보여주고는 건강하시다고 했던 이야기도 의심이 되었다. 지금 막 약을 드시고 있다는 말도 믿을 수가 없었다. 방에서 나오시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지 하는 마음은 지금 막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시각 민희 집에서는 그녀가 지금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있다. 그녀는 친구들과의 통화가 끝나고 나서야 옷을 갈아입는 등의 일을 했다. 앞쪽 모니터에는 자신이 찬과 함께 카피해온 휴고의 하드 프로그램이 올려져 있었다. 인공 지능인 A.I 시스템이 아니라 기계식 장치를 운영하는 시스템의 하드라 단순 알고리즘 위주의 프로그램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민희는 모니터를 보기 전에 좀 전에 친구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되짚어 보았다. 찬이란 이름을 제외한 상태에서 모든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본 휴고가 자살을 유도하는 나쁜 휴고가 된 이유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실 전부를 친구들에게 설명했다. 어디 하나 잘못 말한 곳이 없나 생각하는 중이다.

 

 그때 이브가 모니터 스피커를 통해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말실수 한 것이 없나 해서 생각 중이야."

 

 "친구분들과의 대화에서는 없었습니다.

  단지 주인님의 요구... 부탁이 혼돈 시기를 필연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조사라 친구분들이 힘들어하시지 않을까 그게 조금 우려가 됩니다."

 

 민희도 그 말에 인정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주 연락해서 안부를 물어야지."

 

 "그게 쉽겠습니까?"

 

 "왜? 매일 연락하던 사이인데."

 

 "그때는 찬님을 만나기 전이시죠. 찬님을 만나고는 연락을 안 하셨습니다."

 

 민희가 마치 그걸 이제 알았다는 표정을 하고

 "아! 정말. 몰랐어.

  어쩐지? 지현이가 의심을 하더라니."

 

 "그럼 제가 주기적으로 시간을 알려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줘. 그래야 할 것 같아."

 

 "예."

 

 민희가 그제는 몸을 바로 하여 전면의 모니터를 보며

 "자, 그럼 이 애들이 왜 나쁜 물이 들었는지 한번 알아볼까?

  이브, 프로그램 알고리즘은 정상적이지."

 

 "예, 전체적인 알고리즘은 최신 버전입니다. 단지 에이아이 아시모프 법칙이 들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솔저 풋맨 알고리즘이 들어있습니다."

 

 "최근 버전인데 마지막은 최신형이 아니다. 그렇다면 가까운 시기에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명령을 침입시킨 거야. 맞지."

 

 "예.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엎어 씌운 최신 버전 중에서 에이아이 아시모프 법칙만 삭제하고 감춰져 있던 과거의 프로그램은 복귀시킨 형태입니다."

 

 "명령어나 명령 방식을 찾을 수 있을까?"

 

 "찾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한 시스템 가동 형태로 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더 특이한 것은 외부의 명령에 솔저 풋맨 프로그램이 마치 자신은 에이아이 아시모프 법칙인 것처럼 위장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 카멜레온 소스 같습니다."

 

 "아마도 시청의 엠피아이 세븐이 발견하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거야.

  그럼 내가 찾아 보지. 어디 보자. 뭐가 문제지."

 

 민희가 열심히 모니터를 보며 손을 휘저어 화면을 이동시키며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있다. 그녀가 손을 움직이는 것을 NDR-11이 동작 센서로 감지하여 모니터의 영상을 그에 따라 이동시켰다.

 

 

 7살 가을, 그러니까 11월 1일 날 마지막으로 엄마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그날 할아버지 몰래 집을 나와 엄마와 같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때마침 뉴스에서 DA 대교 붕괴 소식이 전해졌다. 수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는 뉴스가 특보로 정신없이 보도되고 있었다. 그 소식에 겁을 먹은 사람들은 식사를 하다 말고 가게를 뛰쳐나갔다.

 

 엄마는 겁을 먹은 그를 자기 품으로 안아 주면서 당부를 하셨다.

 "찬아, 잘 들어.

  할아버지 옆에 있으면 절대 사고를 안 당해. 그러니까 항상 할아버지 옆에 있어야 한다. 알았지."

 

 "싫어. 난 엄마하고 살고 싶어."

 

 "안 돼. 엄마하고 같이 있으면 저렇게 될 수 있어.

  넌 할아버지와 꼭 같이 있어야 해. 할머니 말씀 잘 듣고 거기 있어야 하는 거야. 알았지."

 

 엄마 말씀을 떠올리며 찬이 앞에 있는 할아버지를 봤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정신이 드실 때까지 다시 한참을 가만히 있어야 했던 찬은 방금 전에 그분이 했던 말씀 중에 며느리 이야기가 생각나 자신이 마지막으로 엄마를 봤을 때를 떠올렸다.

 

 거실 창문으로 초여름의 늦은 저녁노을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민희와 헤어진 것이 오후 4시 경이었다. 거의 퇴근 시간까지 둘은 크로우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집에 도착한 것이 오후 5시 초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후 6시 반 경이다. 한 시간 반 동안 할아버지와는 한 마디도 대화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기침을 몇 번 하시더니 눈을 뜨시고는 대뜸 말씀하셨다.

 "찬이 왔냐!"

 

 자기를 알아보는 말씀에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예, 저 왔습니다."

 

 "오랜만이구나."

 

 "예, 오랜만이시죠. 건강은 좀 어떠세요. 점점 안 좋아지시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은 점점 힘들어 지네."

 

 "약을 꼭꼭 드시죠."

 

 "응, 먹기는 먹는데 저번보다 적게 먹어."

 

 "적게 먹어요?"

 

 그 말을 하고는 찬이 무슨 일이냐는 듯이 주변에 있는 세 대의 휴고를 봤다. 하지만 휴고들은 아무 말도 하질 않고 그냥 서있기만 했다.

 

 "그래, 무슨 일로 온 것이냐? 이 아침에."

 

 아침이라는 말씀에 당황했지만 침착하려고 하며 그제는 일어나 할아버지 옆으로 다가 앉았다.

 "할아버지, 예전에 PSWC 국장이셨죠."

 

 "PSWC."

 

 "예."

 

 "내가 만들었어. 내가 국장이었지. 거긴 내 거야. 내 것."

 

 "예, 할아버지 꺼 맞습니다. 그런데 거기 있던 보안팀이라고 아세요. 보안팀."

 

 "보안팀. 풋맨들."

 

 풋맨이라는 말에 찬이 기뻐하며 대답했다.

 "예, 풋맨. 풋맨들 기억하세요."

 

 "암, 기억하지. 다 내 직속 부하들인데. 내 명령에만 움직였던 것들이야."

 

 "그 풋맨들 어떻게 움직이는 겁니까?"

 

 할아버지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씀하셨다.

 "지금은 없어. 다 폐기해서 더는 없어."

 

 "아니요. 다시 나타났습니다."

 

 "다시 나타나?"

 

 "예, 지금 사람들에게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가 되어 나타나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데 그 휴고가 풋맨이었습니다."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

 

 할아버지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아프다고 하시더니 뉴스를 보지 않나 했다.

 "뉴스 못 보셨어요. 뉴스에 나오는 사람 죽이는 휴고 이야기가 바로 풋맨입니다."

 

 찬의 긴 이야기를 듣던 할아버지가 대뜸 고개를 들어 주위에 있는 휴고를 봤다. 그의 눈길은 화가 나 있는 모습이었고 째려보는 모습이었다.

 

 "그게 사실이냐?"

 

 갑자기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달라지셨다. 방금 전까지의 노쇠하고 병든 분 같은 흐릿한 목소리에서 그제는 명확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예, 지금 시중에서는 난립니다."

 

 "언제부터 였던 것이냐?"

 

 "뭐가요?"

 

 "그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가 나타난 것이."

 

 "아! 올해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이 달 들어서입니다."

 

 "올해 초라고..."

 

 뭔가를 생각하시듯이 말을 이어가지 못하셨다. 그렇게 잠시 침묵하시더니 갑자기 찬을 똑바로 째려보셨다. 그리고는 대뜸 물었다.

 

 "넌 어떻게 알고 날 찾아온 것이냐?

  네가 어떻게 알고."

 

 "저 사실은 할아버지가 만드신 PSWC에 다니고 있습니다."

 

 "PSWC에 다녀. 그게 아직도 있는 것이냐?"

 

 사실 그간 찬은 할아버지에게 자기 회사 이야기나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고 있었다. 은퇴로 그만둔 회사인데다 찬이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할아버지 집에 오기만 하면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 입에 달고 사셨던 말이 PSWC였다. 그래서 뒤늦게 회사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분에게는 고통일 것 같고 아픔일 것 같아 입을 닫았던 것이다. 그로 인해 그간은 할아버지가 PSWC의 존재 여부를 몰랐다.

 

 놀란 얼굴을 한 할아버지가 그제는 기력을 찾았는지 대뜸 물으셨다.

 "그게 아직도 가동되고 있는 것이냐?"

 

 "예, 이천사십팔 년에 가동 중단되었다가 삼 년 전인 이천오십이 년에 다시 가동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버럭 화를 내듯이 언성을 높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PSWC가 다시 가동된다고. 없어지지 않았느냐? 5년 전에 없어졌을 텐데."

 

 "아니요. 아닙니다. 없어지지 않고 중단되었다가 재가동되고 있습니다."

 

 "왜? 왜 아직도 있어. 혼돈 시기가 끝나면 없애겠다고 했던 거잖아. 그게 왜 아직도 존재해?"

 

 "국민들 자살률이 높아서요. 국민들 보호를 위해 다시 재가동한 겁니다."

 

 그제야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내 그럴 줄 알았다. 권력 중에서 가장 큰 유혹이 국민을 감시하고 엿듣는 유혹인데.

  그걸 포기하겠다고. 어림없는 소리지.

  저희들이 신이나 도덕군자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지.

  국민 전체의 마음과 삶을 다 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고 유혹인데. 그걸 저희들 손으로 포기를 해.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이야기지.

  내 그럴 줄 알았어. 아무렴."

 

 그제는 기력을 찾은 분처럼 긴 이야기를 더듬더듬 말씀하셨다.

 

 할아버지의 뜬금없는 대답에 찬이 다급하다는 듯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풋맨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걸 막을 방법이 없을까요?"

 

 찬의의 말에 할아버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놈들이 벌써 일을 저질렀구나.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더니 나에게는 PSWC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고 허튼짓이나 하고 있었구나. 내가 그렇게 일렀건만. 쯔쯔. 범브를 먼저 제거한 다음에 일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하지 않고 풋맨부터 움직이게 하다니.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고. 그러니 이게 들통이 나지.'

 

 할아버지가 찬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재차 물었다.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를 분석해보니 풋맨이었고, 그 풋맨은 할아버지의 명령이 있어야 작동이 되도록 된 로봇이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할아버지가 관여하신 일입니까?"

 

 그제야 찬의 이야기를 똑바로 들은 할아버지가

 "아냐. 내가 한 일이 아니다."

 

 "그럼 누가 이런 일을 한 겁니까?"

 

 "모른다. 내가 알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하여 지금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예전에 남겨 놓은 풋맨으로 인해 인명 피해가 생겼습니다.

  이걸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습니까?

  할아버지가 만드셨으니 막는 법도 아실 거 아닙니까.'

 

 유민태가 성난 목소리로

 "왜 막아. 지금은 인구가 너무 많아. 좀 줄여야 해."

 

 그 말에 찬은 자기도 모르게 '또 그러신다'라고 말할 뻔했다. 예전에 그는 할아버지와 현실 상황을 이야기하다가 인구 문제로 언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찬은 지금 인구가 500만 명이라 적다고 했고, 할아버지는 너무 많다며 나라에 충성하고 복종할 수 있는 200만 명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 수 싸움으로 언쟁을 했던 기억이 나서 '또'라는 말을 할 뻔한 것이다. 그게 불현듯 떠올라 자제를 하며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또...

 ...

  할아버지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이 보안팀 풋맨을 가동하려면 할아버지 명령이 있어야 하죠. 맞죠."

 

 할아버지가 찬의 말에 뭔가가 의심스러운지

 "그걸 어떻게 알았어. 누구가 가르쳐 주더냐. 혹시 추상민이 그놈이냐?"

 

 찬이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추상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냥 우리 직원들이 알아낸 사실입니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추상민을 몰라! 그렇다면... 흐흐흐.

  아니구나! 너희 회사 놈들이 알아냈으면 날 이렇게 그냥 두지 않았겠지. 당장 네놈이 아니라 다른 놈들이 여길 달려왔겠지.

  어떻게 알아낸 것이냐?

  이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냐?"

 

 찬은 놀랐다. 자기와 민희 둘이만 이 조사를 했다는 사실을 할아버지는 어느 정도 아는 눈치였다.

 "그냥 아는 사람이 알려주었습니다. 추상민이라는 사람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릅니다.

  할아버지, 알려주세요. 제가 이 사실을 회사에 통보하기 전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할아버지가 아무 말도 하질 않고 눈을 감아 버렸다. 뭔가 생각할 것이 많은 모양이다.

 

 찬이 답답해서 독촉을 했다.

 "할아버지가 직접 하신 일은 아니시죠?

 ...

  저번에 말씀하시기를 이 나이가 되면 더 이상 욕심이 없어라고 하셨어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대답을 하셨다.

 "내가 한 일 아니라니까."

 

 "그럼 이 일을 하려면 할아버지가 아시는 그 무엇을 이용해야 하는 건 맞죠."

 

 대답 대신에 고개만 끄덕이셨다.

 

 그 모습을 보고 찬이

 '맞구나. 그렇다면 할아버지가 누군가에게 풋맨을 되살리는 열쇠를 준거다.'

 

 "누구에게 그 열쇠를 주신 겁니까?"

 

 그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대체 할아버지가 풋맨의 열쇠를 준 사람은 누구고. 그들은 왜 그걸 가지고 이번 일을 만든 겁니까?"

 

 그때 휴고 두 대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대뜸 소파 뒤에서 사람들 옆으로 다가왔다.

 

 찬의 뒤에 있던 휴고가 찬의 옆에 나타나서는

 "도련님, 너무 강요하지 마십시오. 주인님이 위험하십니다."

 

 다른 한 대는 할아버지 옆에 나타나서는

 "진정하시고 음료수라도 다시 갖다 드릴까요."

 

 찬이 뒤에서 다가온 휴고에게

 "됐어. 괜찮아. 저리 가 있어."

 

 이때까지만 하여도 찬은 이들 휴고가 일반적인 자기 집에 있는 휴고와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자기 명령이면 모든 것이 통제될 수 있다 생각했다.

 

 다시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지금 밖에서는 이번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 사태로 난리가 났습니다. 사람들은 휴고와 에이아리를 불신하고 믿지를 않아 혼란도 이런 혼란이 없을 정도로 난리입니다. 막아야 합니다."

 

 찬의 입에서 혼란이 났다는 말에 그제야 할아버지가 다시 눈을 뜨고는

 "정말로 혼란이 벌어진 것이냐?"

 

 "예, 휴고와 에이아이를 불신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사회 시스템 자체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혼란을 부추기는 사람도 있고요."

 

 할아버지가 찬을 똑바로 보며

 "의원들이겠지."

 

 "예, 맞습니다. 어떻게 아세요.

  몇몇 의원들이 시민들을 선동을 하고 있습니다.

  에이아이를 믿을 수 없다고."

 

 할아버지가 다시 생각할 것이 있는지 눈을 지긋이 감으며

 "심각할 정도냐?'

 

 "예, 이대로 막지를 못하면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될 겁니다."

 

 찬의 말에 할아버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놈들은 내 말을 듣지 않겠지. 지금도 내 명력에 불복종하고 저희들 마음대로 이 일을 시행한 것이 아닌가. 이대로 그냥 둔다면 지금까지의 일이 그놈들 공으로 돌아가겠군.'

 

 할아버지는 여전히 눈을 감고 묵묵부답이었다. 찬이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했다.

 "자기 목적을 위해 불특정 다수를 희생시켜 얻어지는 이득이 대체 뭡니까.

  언제까지 우리 국민들에게 혼돈 시기와 같은 혼란을 야기하실 겁니까.

  아버지와 같은 죽음을, 엄마와 같은 죽음을, 할머니와 같은 죽음을, 언제까지 방치하실 겁니까.

  할아버지만이 막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는 겁니까?"

 

 그제야 할아버지가 눈을 뜨더니 찬을 똑바로 봤다.

 "왜 막으려고 하는 것이냐?"

 

 "방금 말했듯이 사람을 구하고 싶습니다.

  희생되는 사람을 구하고 싶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으며

 "그걸로는 그들을 이길 수가 없다.

  그들은 권력이라는 큰 이유를 목표로 하는 존재들이다.

  그런 그들에게는 인간애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들을 이기려면 인간애 가지고는 턱도 없다.

  아서라."

 

 찬이 할아버지의 말씀에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는

 "저 혼자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저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모든 국민과 시민들이 이번 일을 막고 싶어 하고 끝내고 싶어 합니다. 그거라면 일부 사람들의 강한 욕심과 탐욕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할아버지가 혀를 차며

 "쯔쯔쯔, 어찌 제 아비와 같은 생각을 가지는지.

  아서라.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다 너만 희생당해.

  모난 놈이 정을 맞게 되어 있는 거야."

 

 "정을 맞더라도 이 피해를 막을 수만 있으면 저는 감당하겠습니다."

 

 "어찌 제 아비나 아들이나 같은지.

  좀 자기 욕심대로 살았으면 이보다는 더 화려하게 살 텐데.

  그걸 못 해. 왜 욕심들이 없어."

 

 찬이 영문을 몰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할아버지가 화가 난 듯이 툭 내뱉었다.

 "있다. 있어.

  너만 변하면 내가 너에게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는데.

  지금 네놈은 그걸 못해. 그런 야망이 없어. 에이, 변변치 못한 자식 같으니라고.

  정말 막고 싶은 것이냐."

 

 찬이 힘차게 대답했다.

 "예, 정말 막고 싶습니다."

 

 그때 다시 두 휴고가 나섰다.

 

 찬의 옆에 있던 휴고가

 "주인님이 너무 피곤해 하십니다. 내일 오십시오. 내일 다시 찾아오십시오."

 

 급기야는 아예 찬을 일으켜 세우려는 듯이 그의 어깨에 손까지 올렸다.

 

 찬이 휴고의 손을 뿌리치며

 "왜 이래. 왜 막는 거야."

 

 할아버지 옆에 있는 휴고는 마치 그를 강제로 일으켜 세우려는 듯이 어느새 손을 소파 안으로 집어넣어 안으려 했다. 그때 할아버지가 심하게 기침을 하며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콜록, 콜록, 콜록'

 

 그 모습에 놀란 찬이 다급히 할아버지에게로 다가 앉아 그를 안으며 부축하였다. 그때 할아버지가 찬에게 안긴 채 귀에다 속삭였다.

 

 "내 말을 알티에프로 저장해. 반드시 정장해.

  손자 알티에프 이 말 저장해.

 ...

  나 유 민태가 명령한다. 모든 풋맨은 내 명령에 따라 지금 실행 명령을 수정하여 수행하라. 새로운 실행 명령이 입력될 것이다. 나 유 민태의 명령이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막 끝났을 때 휴고가 소파에서 그를 번쩍 들어 안았다. 그로 인해 속삭이던 두 사람은 떨어져야 했다. 당황한 찬이 휴고를 올려다봤다. 아무리 봐도 휴고가 자신과 할아버지를 분리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결국 찬도 따라 일어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찬의 옆에 있던 휴고가 찬의 팔을 잡아 그가 할아버지에게 가는 것을 막았다. 그와 동시에 다른 휴고로 소파 앞으로 와서는 아예 할아버지를 안은 휴고와 찬 사이를 막고 섰다. 그건 마치 못 따라가게 하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찬이 자기 앞을 가린 휴고를 손으로 밀치며

 "뭐 하는 거야. 저리 비켜. 저리 비키라고. 할아버지 괜찮은지 봐야지."

 

 할아버지를 안고 있는 휴고가

 "저희들이 잘 돌보겠습니다. 도련님은 집에 가십시오."

 

 찬이 버럭 소리를 쳤다.

 "너희들 뭐야. 왜 막아. 사람의 말을 거역해도 되는 거야. 엔디알, 이 휴고들 모두 정지시켜."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제서야 찬은 할아버지 집의 NDR 시스템이 자기들 집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았다. 자기 명령이 통하지 않는 시스템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을 했다. 할아버지를 안고 있던 휴고가 찬의 명령에도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기를 안은 휴고가 움직이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찬을 보며 말했다.

 "됐다. 넌 가 봐. 더는 할 말 없다.

 ...

  상명하복이다. 상명하복.

 ...

  어서 가. 상명하복이야. 상명하복.

 ...

  상명하복이야.

  다시는 오지 마라.

 ...

  알아 들었느냐. 알았지.

  상명하복이다."

 

 할아버지 말씀이 시작되고 첫 마디가 가라는 단어가 나오자 그를 안은 휴고가 움직이지 않고 멈춰 섰다. 그 덕에 할아버지는 천천히 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찬이 앞이 막혀 안타까워하며 연신 소리쳤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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