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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혼돈 : 내일과 어제를 잇는 다리
작가 : 러군
작품등록일 : 2017.11.6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2052년의 내일에 대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2026년의 어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둘 사이에 이어진 다리의 사연이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를 주는데...

모든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경고.

 
악연적
작성일 : 18-01-17 09:33     조회 : 285     추천 : 0     분량 : 11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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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WC 초대 국장 유민태.

 

 민희의 입에서 유민태란 이름이 나왔을 때, 그녀의 입에서 또 다른 이름인 PSWC가 나왔을 때, 찬이 조합할 수 있는 마지막 단어는 할아버지였다. PSWC에 또 다른 유민태란 이름이 없는 이상. 할아버지 유민태가 가지고 있던 지위와 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또 다른 유민태라는 사람이 없는 이상. 그 이름은 분명 찬이 알고 있는 단 한 사람. 자신의 할아버지 유민태의 이름이었다.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6살 무렵에 그는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 장례식에서 처음으로 할아버지 유민태를 보았다. 무슨 이유였는지 지금은 알 수 없으나 그는 그 이전에는 할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자주 보았기 때문에 얼굴을 알았으나 할아버지를 본 적은 없었다. 부모님이 의도적으로 피했던지 아니면 할아버지가 피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때 할아버지는 그냥 남들이 알려주어 알게 된 그냥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본격적으로 그의 삶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7살 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 동안 엄마와 같이 살았는데 한참 더위가 시작될 무렵에 변화가 생겼다. 양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과 할아버지가 나타나서는 그를 강제로 엄마 품에서 빼앗았다. 그렇게 끌려간 곳이 할아버지 집이었다. 그날 할아버지는 폭군이었고, 괴물이었고, 거만한 거인이었다.

 

 그가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를 잡고 있는 아저씨들은 억세고 강했다. 엄마를 부르며 울어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누구도 그의 울음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엄마에게서 끌려 나와 할머니에게로 갔다.

 

 '맞다. 그해가 이천삼십사 년.

  방금 전에 본 크로우가 만들어진 그 해다.

  그해 나에게는 또 다른 불행이 하나 더 있었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할아버지는 또 다른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기로는 11월 1일 DA 대교 붕괴 사고가 있던 날 그는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두 달째로 접어드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에 있다가 방송에서 어느 아파트 폭발 사고 뉴스는 보았다. 뉴스에 나오는 장소는 너무나 낯익은 장소였다. 그의 가족이 흩어지기 전에 살았던 그곳이었다. 엄마의 집이 있는 곳.

 

 하늘은 구름이 자욱하게 끼여 낮게 드리운 날이다. 간간이 눈발도 날리고 있었다. 그 거리를 찬이 두꺼운 겉옷도 없이 얇은 옷만 입은 채 달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눈발이 굵어진 것과 함께 공기에 가득한 매캐한 탄 내음과 먼지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가 완전히 붕괴한 모습이었다.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에 그는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오들오들 떨며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었다.

 

 추운 날씨에 눈발까지 굵어진 날에 겉옷도 없이 서있는 그를 경찰이 발견하고는 경찰차에 태웠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차 문이 열렸을 때는 눈이 그치고 하늘이 개고 있었다. 그의 앞에 할아버지가 저녁노을의 붉은 기운을 역광으로 받으며 있었는데, 그 모습은 태산 같았다. 왜냐하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향해 머리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경찰차에 태운 경찰도 할아버지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넘을 수 없는 권위주의와 권력과 파워를 가진 큰 산처럼 보였다.

 

 할아버지 얼굴을 자주 못 보게 된 것은 13살 무렵이다. 그때 할머니에게 갑자기 심한 치매 증상이 나타났다. 의술이 발달되어 좋은 치매약이 있었지만 할머니에게는 약이 듣지를 않았다. 당시 할머니는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 있거나, 그와 같이 있거나, 다른 사람과 있거나, 상관없이 매번 고함을 치셨다. 할아버지가 자식 내외를 죽였다고 하셨고. 지금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하셨다. 항상 같은 말을 반복하시면서 치매가 시작되었다. 결국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제부터 그는 휴머노이드와 살았다. 할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가 사는 집에 오셨다 얼굴만 보고 가셨다.

 

 본격적으로 할아버지를 못 본 것은 15살 때다. 병원에 계셨던 할머니는 끝내 그 해에 돌아가셨다. 그날이 할아버지를 석 달 만에 처음 보는 날이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할아버지는 나랏일로 인해 아프신 할머니도, 엄마의 품에서 빼앗다시피 끌고 온 손자도, 만날 시간이 없으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로는 정말로 남남처럼 전혀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3년이 지나 그의 나이가 18살이 되던 해에 정부 A.I로부터 연락이 왔다. 할아버지가 그간 하시던 정부 일을 그만두시고 특별 보호 구역에 사시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에 그는 할아버지가 은퇴를 하셨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C4의 도움을 받아 할아버지가 새롭게 이주하신 곳에 갔었는데 그곳은 할아버지만큼 생소하고 이상했다.

 

 마을 전체가 온통 철망으로 울타리를 세워 보호하고 있었고, 출입할 때도 신분 확인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나랏일을 하던 중요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 그런가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아닌 것 같다. 혼돈 시기에 나라를 다스리고 유지하던 사람들이 은퇴하여 살던 곳인데, 아마도 그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해코지라도 할까 봐 보호했던 것 같다. 그곳에서 그는 지금까지 거인으로 보았고 거대한 태산으로 보았던 할아버지가 그제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제는 나이가 든 왜소한 체격의 할아버지와 1년 만에 대면하였다.

 

 2년 뒤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 그의 나이가 20살 때인 2048년에 그 길고 길었던 혼돈 시가가 끝났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때부터 외출이 자유로워졌고 그는 그제야 2년 만에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마을은 여전했고 할아버지도 여전했다. 단지 조금 다르다면 처음 그 마을이 생길 때 그곳 모습은 조금은 활기가 있었는데 그제 찾아간 그 마을은 나이 든 분들만 사는 조용한 동네가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최근까지 그는 매달 또는 길어야 두 달에 한 번은 꼭 할아버지 집을 찾아가 같이 식사를 하고 오곤 하였다.

  

 찬이 막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올해 2월을 떠올리려 하고 있었다. 그날을 떠올리며 그는 할아버지와 말싸움을 했던 사실이 먼저 기억나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민희의 말소리가 들렸다.

 

 "무슨 생각해?

  왜 대답이 없어."

 

 그 소리에 놀란 찬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민희를 봤다.

 "응. 뭐? 왜?"

 

 "치, 엉뚱한 소리는.

  거기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가 오십 대 정도 있었잖아."

 

 "그랬지."

 

 "그럼 그것들 때문에 희생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찬은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대뜸 말했다.

 "열 배!"

 

 찬의 대답과는 달리 민희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맙소사. 오백. 그 사이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에스 시만 이야기한 수야."

 

 "전국으로 하면 엄청나겠네."

 

 "그렇지. 오죽하면 의원들까지 나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겠냐."

 

 "참, 난 그 의원들 마음에 안 들어."

 

 "왜?"

 

 "그 발표라는 것이 좀 이상해.

  마치 그런 사건이 있다는 걸 알리면서 우리와 에이아이 사이를 이간질시키려는 의도 같아."

 

 "이간질."

 

 "응. 그 발표 듣고 나면 우리 주위에 있는 에이아이나 휴고가 의심스러워져."

 

 "비슷한 생각이네. 나도 그랬는데."

 

 "특히 나오는 의원들마다 꼭 하는 말 중에 에이아이 정부가 아닌 인간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말하잖아. 그게 내 귀에는 마치 자기들에게 나라를 달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어."

 

 "잘 봤네. 그들 말이 그 내용이잖아. 자기들이 인간 정부를 만들겠다는 내용.

  하지만 걱정 마. 일부 의원들이야. 백 명 중에 겨우 이십여 명인데."

 

 "그래도 매일 같이 뉴스에 나와 성명을 발표하고 있으니 세뇌당하는 기분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든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의 문제를 풀어야지. 네 임무가 중요해졌다."

 

 "걱정 마. 내가 기필코 찾아낼 테니."

 

 자신 있게 대답하는 민희의 모습에 찬은 빙그레 웃었다.

 

 둘이 탄 차가 그제는 민희 집 앞에 도착하였다.

 

 현관 문이 열리고 민희가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찬이 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내밀며

 "이브, 이것 좀 받아 줘."

 

 민희네 휴고가 민희를 피해 현관 문 앞으로 와서 찬이 들고 있는 가방을 받아 주었다.

 

 민희가 그 모습을 보고

 "왜? 들어와서 음료수라도 먹고 가."

 

 찬이 고개를 저으며

 "아냐. 급한 일이 있었는데 그걸 깜빡했어. 급해서 지금 바로 가야 할 것 같아."

 

 민희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무슨 일인데 문 앞에서 바로 가려고 해?"

 

 "미안. 다음에, 다음에 오면 그때 집에서 저녁이라도 먹자."

 

 민희가 이상하다는 듯이 찬을 보았다.

 

 찬이 그녀의 눈치에 더듬거리며

 "정말이야. 약속. 약속할게."

 

 민희가 새침하여

 "그럼 헤어지기 전에 약속 확인 시켜줘."

 

 그 말에 찬이 민희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키스를 하고 나서 찬이

 "미안. 다음에는 꼭 놀다 갈게. 들어가 쉬어"

 

 민희가 방긋이 웃으며

 "쉬기는. 지금부터 조사해야지. 한시가 급한데."

 

 "아! 참. 그랬지.

  아... 내가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어쩌지."

 찬이 미안하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민희가 그런 찬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자기는 이런 거 알지도 못하면서. 나 혼자 할 수 있어. 수발은 휴고가 잘 들어주잖아. 괜찮으니까 어서 해야 할 일하러 가. 이러다 늦겠다."

 

 찬이 다시 민희에게 키스를 했다.

 "미안. 이일 끝나면 근사하게 대접할게. 수고해. 어서 들어가. 문 닫으면 간다."

 

 민희가 고개를 저으며

 "아냐. 너 먼저 가는 거 보고 문 닫을 거야."

 

 "아냐 문 닫고 들어가.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

 

 "흥, 자기만 생각하고. 안 해. 어서 가. 가는 거 볼 거야."

 

 그때 이브의 중년 여성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서 그러다 두 분다 하루 종일 서있게 됩니다."

 

 중년 여성 목소리에 찬이 조금은 당황한 모양이다. 놀란 얼굴로 머리 위 스피커를 봤다.

 

 민희가 미소를 지으며

 "꼭 엄마 같지. 정말 이러다 여기서 시간 다 보내겠다. 어서 가."

 

 찬이 웃으며

 "괜히 나쁜 짓을 한 것 같은 느낌이야. 하하하.

  그래, 맞다. 그럼 내가 먼저 간다. 잘 있어. 연락할게."

 

 찬이 뒤돌아 계단을 내려갔다. 민희는 뒤돌아서는 찬을 보고는 살금살금 뒤따라 나가서 현관 앞 창문을 통해 아파트 밖을 봤다. 찬이 아파트를 나와 도로까지 가는 모습을 민희는 현관 앞에서 끝까지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날, 할아버지는 몸이 더 안 좋아지신 것 같았다. 몸이 안 좋으니까 신경이 곤두서서 무슨 말에도 화를 내시곤 했다. 사실 찬은 할아버지 집에 가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정이 없었어 그렇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를 만나면 꼭 듣기 싫은 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싫었다.

 

 할아버지는 그가 집에 오면 어김없이 정치 이야기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그 내용은 항상 좌와 우, 또는 보수와 진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가 듣고만 있다가 요즘 세상에는 좌도 우도 없고, 보수도 진보도 없다고 하면 할아버지는 대뜸 화부터 내셨다. 자신들이 이렇게 좋은 나라를 만들었는데 다른 놈들에게 나라를 한 입에 넘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왜 좌측 놈들이 없고. 진보 놈들이 없어.

  로봇에 복종하는 놈들이 다 그런 놈들이잖아.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 같으니라고."

 

 몇 년 동안은 그런 말씀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넘겼다. 세상이 변화된 지금에 와서 좌니 우니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고. A.I가 정부를 운영하고 있는 현실에서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백 명의 의원들도 파를 나누거나 세력을 만들어 힘을 키우려 하기 보다 A.I를 통해 접수되는 시민들의 민원이나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어 정책이나 사상의 구분이 모호했다. 시민과 의원 사이에 피드백이 쉽고 좋은 세상에서 오로지 할아버지만 굳이 구분을 두려고 하셨다.

 

 그런데 그날은 유달리 그런 말씀의 강도가 심했다. 마치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처럼 집요하게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하나의 사실에 꼬투리를 잡고 계속 늘어져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셨다. 그거 마치 기억을 잃기 싫은 사람이 가만있으면 기억이 지워질 것 같아 쉼 없이 되뇌고 되뇌는 그런 모습이었다. 결국 듣고만 있던 그가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대응하면서 말싸움이 났다.

 

 찬은 자기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 사실. 그러니까 좌나 우가 없다는 사실과 할아버지가 두려워하는 그 사상의 집단이 이미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듯 큰 소리로 알려주었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이야기할 동안에는 알아듣는 것 같다가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런 이야기를 했느냐는 식으로 그가 하는 식의 말을 하면 나라를 그놈들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라 했다. 그런 사상의 사람들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을 그새 잊은 듯했다.

 

 더 답답할 때는 나라를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 말씀하실 때다. 자꾸 진보하는 놈들이 나쁜 놈들이고 그런 놈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하셨다. 그 말씀도 계속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짜증이 난다. 그래서 그는 A.I 정부라 그런 구분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말에는 아예 듣지도 않으려 하셨다. 그가 말을 하는 도중에 끼어들어 하시는 말씀이 인간 정부가 아니라 A.I 정부를 옹호하는 놈들이 다 진보가 아니고 뭐가 진보냐라고 하시며 일방적인 자기주장을 늘어놓으셨다.

 

 마지막에는 할아버지가 찬을 보고

 "넌 빨갱이 같은 놈이야.

  너희 같은 진보라고 떠드는 놈들이 다 빨갱이야.

  에이 빨갱이 같은 놈."

 

 결국 그 말을 듣고는 찬이 할아버지 집을 나왔다. 존재하지도 않는, 이제는 영원히 사라진 사상의 한 분류인 빨갱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모두를 그런 인간이라 명명하시며 매도하셨다. 2050년인 지금에 와서 과거의 사상을 굳이 나쁜 것을 비교하는 대상으로 살려내려 하시고 있었다. 그 단어의 뜻이 뭔지도 모르는 그였지만 계속되는 반복적 매도에 화가 난 그가 폭발을 하여 뛰쳐나왔다. 돌아온 뒤로 거의 석 달 동안을 할아버지 집에 가지를 않았다.

 

 "그때 몸이 어디 안 좋으셨나.

  평소보다 말씀이 더 심하고 집착이 더 심했던 것 같은데.

  특히 자꾸 과거를 들추어 현재에 대입하는 치매 증상 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약을 먹어 치매는 괜찮다고 했잖아.

  그리고 보니 몸도 안 좋아 그날 점심도 드시지 못했지."

 

 그 생각을 하며 괜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뒤에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마틴을 통해 안부 연락을 하면 할아버지 집 NDR- 11이 항상 건강하시고 괜찮다고 하여 안심을 했었다.

 

 '에이. 그래, 아무 일 없겠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크로우에 들어있는 할아버지 이름이 중요하잖아.

  할아버지 이름이나 회사 이름이 맞는다면. 명령문이라고 했으니까.

  크로우를 푸는 열쇠를 할아버지가 갖고 있는 걸 거야.'

 

 그때 자동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좌회전하였다. 지금까지 그가 탄 차는 좌측으로 긴 철망 울타리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좌회전하고 바로 차가 멈추어 섰다. 앞에 길을 막는 검문소가 있었다.

 

 검문소 A.I가 스피커를 통해 말했다.

 "확인을 위해 알티에프 세븐을 보여주십시오."

 

 그가 창 너머로 왼팔을 들어 밀었다.

 

 검문소 A.I가

 "유찬 님, 할아버지 유민태 님을 만나러 오신다고 좀 전에 예약하였군요."

 

 찬이 차에서 고개를 내밀며

 "응"

 

 "확인이 끝났습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이제부터 제가 C4를 대신해 자동차를 통제하여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찬이 다시 고개를 집어넣으며

 "알았어."

 

 검문소 앞으로 나와있던 통제 막대가 위로 올라갔다. 그제야 차가 지나갈 수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검문소 안쪽 바로 옆에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는 어느 노인이 보였다. 정복 같은 옷을 입고 가슴에는 온갖 휘장을 달고 있는 모습에 모자를 쓰고 있었다. 군복을 입은 노병 같았다. 이 노인이 지나가는 찬의 차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였다. 그 모습에 찬은 불현듯 아까 민희가 말했던 솔저 로봇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큰 모니터에 화면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민희 집 내부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찬이 타고 있는 자동차 안의 모습이다. 그런데 민희 집 모습의 모니터 영상은 그대로 재생되고 있는데 찬이 탄 자동차 안 영상은 검문소 앞까지만 있고 다음 순간 사라지고 더 이상 영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블랙 상태가 되었다.

 

 A조 관리자

 "특별 구역에 들어간 거군요."

 

 B조 관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A조 관리자

 "유찬 님이 그 국장님 손자가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럼 오민희 님과 같이 있게 해도 되겠습니까?

  둘의 사이는 그야말로 로미오와 줄리엣인데.

  특히 방금 전 말씀대로 라면 할아버지가 위험한 인물입니다."

 

 "유찬 님 일상을 관리자로서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인간애가 뛰어나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하게 사상적으로나 생각에 문제가 있나요."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걱정을 하십니까?"

 

 "하지만 그의 할아버지가 유민태 님이라.

  초대 국장님 아니십니까?"

 

 "걱정 마세요. 내가 본 유찬은 할아버지를 닮지 않고 아버지 유원준을 닮았으니까."

 

 "유찬 님 아버지를 아세요?"

 

 "그럼요. 내 영원한 단짝 친구인데. 너무 잘 알죠."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유찬 님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이고, 인간애가 많은, 대의가 아닌 일에 저항할 줄 아는 사람이었죠."

 

 "아! 그렇군요."

 

 "그 친구를 대입하면 저 두 사람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사랑일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민희 집 영상을 봤다.

 

 

 "친구분들이 연락하셨습니다."

 

 그 말에 민희가 서둘러 소파로 가서 앉았다. 사실 그녀도 옷을 갈아입고 어느 정도 귀가 준비가 마무리되면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었다.

 

 민희가 소파에 앉기가 바쁘게 말했다.

 "잘 됐다. 내가 연락하려고 했는데."

 

 모니터의 지현이 민희의 행동을 봤는지 웃으며

 "얘 봐라. 뭐가 그리 바빠서 인사도 하지 않고. 우리 오랜만 아니니. 자살 유도 휴고 경고 방송 보고 처음인 것 같은데...

  그런데... 그런데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옷이 외출복이네."

 

 설민이 괜히 시비를 건다는 듯이

 "너는 괜히 트집이야. 며칠 못 봤다고 서운한 모양이네. 그냥 회사 갔다 오는 길이겠지. 퇴근할 시각인데. 옷 잘 어울리고 예쁘네. 너에게 잘 맞는다."

 

 지현이 손사래를 치며

 "아냐. 회사 갈 때 제가 언제 저런 옷을 입었냐. 청바지 아니면 카키색 바지에 남방이나 티셔츠 정도지.

  저건... 저건 특별한 날... 너 혹시 오늘 데이트했냐?"

 

 설민이 마치 옆에 있는 사람을 보듯이 모니터상의 모습이 고개를 돌리는 모습으로 옆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데이트했냐는 말에 놀라 옆에서 대화하는 것으로 착각을 했나 보다. 민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배시시 웃으며 자신의 옷을 아래 위로 봤다.

 

 지현이 그 모습을 보고

 "맞지. 맞는 것 같은데. 누구야? 언제부터야?"

 

 설민이 다급히 고개를 돌려 앞쪽을 보았다. 여전히 놀란 모습이다. 특유의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있다.

 "그게 정말이야? 정말로 데이트하는 중이야?'

 

 민희는 대답은 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했다.

 

 설민이 재차 확인에 들어갔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연락이 없었고... 며칠 사이에 아무런 연락도 없었던 거구나.

  데이트하느라 바빠서..."

 

 민희가 여전히 해맑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다음에, 다음에 그 이야기하자. 그보다 먼저 미안한 부탁 좀 해야겠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

 

 지현이 팔짱을 끼며

 "데이트 감추려고 하는 이야기면! 안 들어준다."

 

 설민이 모니터로 다가 앉으며

 "무슨 일인데 뜸을 들이고 있어? 뭐야?"

 

 민희가 망설이듯이 모니터의 두 명을 유심히 봤다.

 "사실은... 사실은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

 

 설민이 대뜸

 "혼돈 시기."

 

 지현이 겁이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난 그거 싫어. 무조건 싫어. 안 돼."

 

 민희가 설민의 말에 대답을 했다.

 "응."

 

 설민이

 "뭔데?"

 

 지현이

 "그거 꼭 해야 하는 거야?"

 

 민희가

 "응, 꼭 해야 하는 거야. 아주 중요한 문제야."

 

 지현이

 "그럼... 그럼 해봐. 무슨 일인데?"

 

 민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솔저 로봇에 대한 조사야. 솔저 로봇 알지."

 

 지현이 그제는 팔짱을 풀고 관심이 있는 표정으로

 "풋맨 말하는 거지. 그건 내가 좀 아는데. 아... 아버지... 아버지가 군인이셨잖아. 옛날에... 그때. 풋맨 지휘관이라 내가 아는데."

 

 설민이

 "그럼 지현이가 조사하면 되겠네. 무슨 조산데?"

 

 민희가 그제는 모니터의 지현이 쪽을 보며 말했다.

 "풋맨이 언제 없어졌는지, 없어진 풋맨은 어떻게 되었는지."

 

 지현이 바로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 그건 내가 알지. 34년부터 38년 사이에 풋맨을 없앤 걸로 아는데. 특별한 솔저들은 소수 남기고 대부분의 풋맨은 없앤다도 하셨어."

 

 민희가 확인을 하듯이

 "아버지가!"

 

 "응, 걸어다는 병사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나 없어졌다나 하시면서...

  그때 아버지도 군을 그만두셨는데... 그 뒤에."

 

 지현은 그 당시에 아버지를 잃었다. 풋맨이 사라지던 그 시기 사이에 아버지는 혼돈 시기의 희생양이 되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쉽게 말을 못하는 것이다.

 

 설민이 다급히

 "됐다. 뭘 그리 꼬치꼬치 설명을 하려고 해. 휴머노이드 없어진 이야기만 하면 되지. 그럼 솔저 이야기는 이걸로 다 된 거야?"

 

 민희가 고개를 저으며

 "아니, 그럼 그때 없앤 풋맨 휴머노이드들 어떻게 했는지 알아야 해."

 

 지현이

 "그건 내가 알아봐 줄게. 조사해보면 나올 거야."

 

 설민이 이제는 흥미로운지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그럼 난, 난 뭐 할까?"

 

 민희가 그제는 몸을 조금 틀어 설민을 보며

 "넌 34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알아봐. 우리 기억으로는 그때쯤에 마지막 대통령이 죽은 것으로 기억되는데. 한종채 대통령의 죽음 외에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죠."

 

 설민이

 "개인적인 것은 빼고 공공적인 것 만."

 

 지현이

 "얘가 방금 우리라고 했다. 우리. 우리가 누구야. 그 우리가 대체 누구야?"

 

 민희가 못 들은 것처럼 지현의 말은 무시하고 대답했다.

 "응, 큰 사건이나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 같은 것으로. 특히 솔저 휴머노이드가 관련된 것이면 더 좋고."

 

 설민도 지금 당장은 우리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보다 민희가 부탁한 일이 더 중요했던지 관심이 없었다.

 "알았어. 한 번 알아보지.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냐. 과거 이야기라면 우리보다 더 정색하던 애가 이런 걸 다 조사하고. 무슨 일인데."

 

 지현이

 "맞아. 혼돈 시기의 혼이란 말 한 마디만 나와도 기겁하던 애가 웬일이야? 무슨 일인데?"

 

 민희가 그제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 때문이야."

 

 설민이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다. 지현은 음료수를 먹으려 하다가 다급히 내려놓고는 몸을 일으켜 앞을 자세히 보려는 자세를 하였다. 두 사람에게도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지현은 자기 눈앞에서 자기 휴고를 불태워 죽이는 사람을 보았다. 설민은 자기 휴고를 믿지 못해 며칠을 굶은 이웃을 봤다. 그런 그들이라 그제는 그 일이 남의 일이나 수수방관하며 지나칠 그런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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