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
 1  2  3  4  >>
 
자유연재 > 기타
별똥별
작가 : 보장대밥수
작품등록일 : 2017.11.5

별똥별은 별 그 자신의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별똥별-29
작성일 : 18-01-11 22:41     조회 : 379     추천 : 1     분량 : 340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69.

 흑단들소 벌판으로 차례차례 몰려들어온 다섯 씨족의 군대는 대부분 장대에 매달아놓은 제비꽃 씨의 목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차며 되돌아갔다. 물론 쇠발굽 씨족처럼 복수를 해보겠답시고 급조된 성벽을 공격해온 자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침략하는 자들의 무기도 비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포도버섯 씨가 창을 던져대며 을러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꾼들은 소득없는 싸움을 그만두기로 했다.

 포도버섯 씨는 숨돌릴 틈이 생긴 다음에야 봄비의 행방을 저울질한다. 저들은 혹시나 봄비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경우를 더 걱정한다. 염통먹는 자가 각 씨족장들을 휘두를 권위를 잃었다고는 하나 그들을 물리적으로 통제할 만한 병력은 아직 충분하다. 만에 하나 어떤 야심가가 그 병력을 고스란히 손에 넣는다면 흑단들소 벌판은 무사할 수 있는가?

 

 70.

 포도버섯 씨가 원로들을 불러모아 자리에 앉힌다. 그녀가 머리벗겨진 노인에게 묻는다.

 "시체들은 어떻게 수습했습니까?"

 "모두 모아 길목에 늘어놓았네."

 "묻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까?"

 "쳐들어오는 자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굳이 반박하지 않는다. 대신 눈길을 돌려 머리를 올려묶은 노파에게 다른 질문을 한다.

 "사로잡은 자들에게서는 어떤 얘기를 들었습니까?"

 "별 거 없었어. 벌써 세 놈은 자기가 다음 염통먹는 자라고 자처하고 나섰다는군."

 "그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걸까요?"

 "나에게 물어봐야 소용없는 일이지."

 배불뚝이 할아범이 구석자리에 앉아 술을 항아리째 축내다가 입을 연다.

 "제사장님. 내가 보기에 그 이름은 아주 큰 의미가 있소이다."

 포도버섯 씨가 눈길을 준다.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봄비에게는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소. 그 이름을 쓸 자격도 없고."

 "하긴. 그는 더 이상 씨족들의 일에 관여할 깜냥이 없습니다. 그래서 종적을 감추었다는 겁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확실한 건 다른 씨족장들에게도 그 이름이 아무 의미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라는 거요."

 "그럼 그 이름이 대체 누구에게 의미가 있다는 겁니까?"

 그는 항아리를 마저 비우고 나서야 대답한다.

 "바로 당신."

 

 71.

 온통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능소니가 자기 아이들을 이끈다. 가장 어두운 곳에 이르러 그는 아이들에게 한동안 꺼지지 않을 횃불을 나누어주며 어두워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길을 찾아 나아갈 것을 당부한다. 곰은 시야에서 불빛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쳐다보다 등을 돌려 노을녘을 향해 돌아간다. 너럭바우가 능소니의 뒤를 따른다.

 

 72.

 "그 이름은 나에게도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이다. 원하기는커녕 혐오하는 이름이다. 포도버섯 씨는 배불뚝이 할아범의 의도를 재어보려 한다. 남의 등 뒤에서 야심을 살살 건드리려는 수작이라면 바로 베어버릴 수 있도록.

 "아니오. 의미가 있지. 제사장은 그 이름을 가질 생각이 없지 않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염통먹는 자는 그저 동족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씹어먹을 각오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이름 아니겠소? 이미 들판 너머의 야심가들은 그럴 준비가 되어있다오. 그렇기에 아무 의미가 없지. 그 이름은 스스로를 다른 무언가로 만들어주지 않는다오."

 "하지만 저는..."

 "하지만 제사장에게는 무릎꿇리고 깎아내리고 하찮게 여겨야 할 이름이 아니겠소?"

 "나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어머니 나무로 나아가라고 얘기하는 겁니까?"

 "가장 편한 방법을 얘기했을 뿐, 선택하는 것은 그대의 몫이오."

 "할아범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줄 알았다면 칼을 씻지 않았을 겁니다."

 포도버섯 씨가 손에 핏줄을 바득바득 세워가며 칼을 집어든다.

 "제사장은 아직도 편한 길과 옳은 길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시오?"

 "할아범이 말씀하신 방법이 옳지 않다고 말할 뿐입니다."

 "여기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 봄비 대신 다음 염통먹는 자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옳은 방법인가?"

 "그들의 허물이지, 우리의 허물은 아니니까요."

 그는 아예 기둥에 살짝 기댄 채로 눈을 감고 이야기한다.

 "아니지. 아니지. 이미 제사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걸. 그러니 제비꽃 씨도 잡아죽인 거 아니오?"

 포도버섯 씨는 차라리 혼자서 고민하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 생각한다.

 "많이 취하신 것 같습니다. 할아범."

 "취하려면 한참 멀었다네. 다음 염통먹는 자가 군대를 이끌고 찾아와서 가축을 잡아야 하니 길을 열라고 요구하면? 그 때도 싸울 건가? 아니면 적당히 형편 봐가면서 길을 열어줄 건가?"

 "할아범."

 "아예 땅을 내놓으라고 하면? 자네에게 찾아와 소 염통을 주면서 한 입 먹어보라고 하면? 미신을 믿는 것들은 거슬리니까 전부 죽이려 들면? 그 때는 가만히 앉아서 모가지 내어줄 셈인가? 그들의 죄일 뿐이고, 나는 무고하게 죽으니까?"

 

 73.

 나바재 씨가 개울물을 찾더니 손을 흔들어 봄비를 불러온다.

 "봄비 씨. 어머니 나무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흘 정도만 더 걸으면 될 것 같군요."

 "너무 자리를 오래 비운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기껏해야 쉰 날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빨리 돌아가야지요. 너럭바우 생각은 그만 하십시오."

 "괜한 걱정을 다 하십니다. 어차피 노을녘 사람들과 함께 능소니가 데려갔을텐데 제가 그 아이 생각을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어요?"

 두 사람은 다시 말없이 개울물로 목을 축인다. 봄비가 얼굴을 씻고 일어서자 연기가 보인다. 근처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듯 하다.

 "나바재 씨. 불 떼는 연기치고는 유독 꺼멓고 짙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쇠발굽 마을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74.

 그 날 포도버섯 씨는 배불뚝이 할아범을 죽이지 않았다. 그가 한 말이 전부 옳아서는 아니다. 그러나 틀린 말만 골라서 한 것도 아니다. 그 점이 그녀를 망설이게 했다. 분명 흑단들소 벌판은 노을녘의 짐승들을 사로잡으러 가기에 가장 좋은 길목이고, 다른 씨족들은 제비꽃 씨가 그랬듯이 다시 이 곳을 손에 넣으려고 할 것이다.

 그녀는 사실 할아범의 말에 동의하는 마음이었다. 이미 이 땅에서 무고하게 죽는 길은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무고한 채로 죽을 생각이었으면 별똥별의 순간에 겨울밤의 땅에 남았어야 했다. 그것이 그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포도버섯 씨가 뒤늦은 속죄를 하겠답시고 자살한 사람들을 따라 죽지 않은 것도 어떻게 보면 그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봄비처럼 이미 늦었다고 체념하기에는 혹시 살아남았을지도 모를 어르신들에게서 용서받고 싶은 마음도 남아있었으니까. 그러나 불쑥 나타난 능소니가 그마저도 산산이 부수어놓고 말았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봄비는 염통먹는 자라는 이름을 싫어하면서도 끝에는 그 이름을 자처했다. 그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동족들을 먹잇감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탓이다. 능소니는 다시 나타나지 말아야 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 곰이 가축들을 풀어주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앞으로도 염통먹는 자의 통제에 순순히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봄비는 자취를 감추었고, 어떤 것도 돌이킬 수 없다.

 
작가의 말
 

 요즘 연재주기가 불규칙적입니다. 미안합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과하객 18-01-12 03:44
 
갈수록 철학서적을 닮아가네요.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읽을 때 그러하더니.... 거기 심리역사학이 등장하지요. 셀던 위기라는 말도.... 봄비 위기쯤이 되려나요. 다음 회 뜨면 계속 보겠습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별똥별-알림판 2017 / 11 / 6 613 3 -
29 별똥별-29 (1) 2018 / 1 / 11 380 1 3406   
28 별똥별-28 (1) 2018 / 1 / 6 322 1 3644   
27 별똥별-27 (1) 2018 / 1 / 3 353 1 4728   
26 별똥별-26 (1) 2018 / 1 / 2 325 1 4099   
25 별똥별-25 2017 / 12 / 18 292 1 3886   
24 별똥별-24 (2) 2017 / 12 / 17 310 1 3831   
23 별똥별-23 2017 / 12 / 14 314 1 3454   
22 별똥별-22 (1) 2017 / 12 / 13 331 1 3974   
21 별똥별-21 2017 / 12 / 9 298 1 3590   
20 별똥별-20 (1) 2017 / 12 / 7 340 1 4364   
19 별똥별-19 2017 / 12 / 6 302 1 4612   
18 별똥별-18 (1) 2017 / 12 / 4 319 1 3972   
17 별똥별-17 (1) 2017 / 12 / 2 336 1 4274   
16 별똥별-16 (1) 2017 / 11 / 25 349 1 2095   
15 별똥별-15 2017 / 11 / 23 302 1 3659   
14 별똥별-14 (1) 2017 / 11 / 21 322 1 3660   
13 별똥별-13 2017 / 11 / 20 304 1 3899   
12 별똥별-12 (2) 2017 / 11 / 19 342 2 3461   
11 별똥별-11 (1) 2017 / 11 / 16 294 1 4133   
10 별똥별-10 (2) 2017 / 11 / 15 333 2 3592   
9 별똥별-9 2017 / 11 / 14 284 2 3894   
8 별똥별-8 2017 / 11 / 12 297 2 4626   
7 별똥별-7 (2) 2017 / 11 / 11 338 2 4356   
6 별똥별-6 2017 / 11 / 10 287 2 4985   
5 별똥별-5 2017 / 11 / 9 274 1 5033   
4 별똥별-4 2017 / 11 / 8 299 2 3952   
3 별똥별-3 (2) 2017 / 11 / 8 365 2 4851   
2 별똥별-2 2017 / 11 / 7 316 3 4051   
1 별똥별-1 (4) 2017 / 11 / 6 619 2 4086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