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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미스테리클럽
작가 : 겨울뱀
작품등록일 : 2017.7.6

너를 만나고 싶어.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20)
작성일 : 18-01-07 19:21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8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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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랑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만 말을 잃었다.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할 장소라고 생각했다. 열 여섯, 그 어린 날의 12월 이후 단 한 번도 꿈에서도 당도하지 못했던 곳이었다.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공간과 똑똑 어디선가 떨어지던 물소리.

 

 16살의 자신은 그 때 맨발로 이 공간을 걸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해서 압도당했고 맨발에 닿았던 시린 물 웅덩이에 빠져들듯이 고개를 숙였고 그 다음엔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이리로. 이리로 와. 내게 와.

 

 그러나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이곳은 앙귀스(Anguis)의 뱃속, 결계일 뿐이고 말레바가 미드워커의 기억을 읽어내듯 앙귀스도 자신이 삼킨 미드워커의 기억 속 장소를 똑같이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뿐이다.

 

 은랑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다시 뱉어냈다. 단아를 찾아야한다. 다시금 [나비램프]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벼락이라도 맞은것 처럼 숨을 멈췄다.

 

 시선이 마주쳤다.

 

 카드 속 램프를 들고 황금구두를 비춰 바라보던 노인은 어느새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 놀란 표정의 노인은 마치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것만 같았다. 나비가 사라져 카드 속 램프는 빛을 발하지 않았고 황금구두도 어둠속에 모습을 감췄다. 은랑은 홀린 듯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I can see you (당신이 보여요)]

 

 똑. 물방울이 물웅덩이로 떨어졌다.

 

 [Who are you? (당신은 누구요?)]

 

 소리가 들렸다. 환청이 아니었다. 은랑은 주변을 둘러보았다가 심각하게 카드로 시선을 돌렸다. 설마 이 카드 안에 정말로 노인이 붙잡혀 있는 건 아닐까하는 무서운 상상이 들었던 것이다. 은랑은 작게 [뱉어내]라고 중얼거렸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Do you possibly know where the queen is? (혹시 여왕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여왕? 단아? 은랑은 그대로 멈춰서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난 지금 그 애에게 가는 길이에요."

 

 그 후로 답은 없었다.

 

 * * *

 

 "끔찍하네요…."

 

 한참 비명을 지르던 빈의 말에 단아가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그녀도 괴물의 알 따위 오늘 처음 봤지만 그 점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일단 빈은 아직은 미드워커의 세계와 현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적다. 굳이 역사상으로 괴물의 알을 목격한 건 네가 두 번째다, 라고 말해 또다시 비명을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알이 있는 내부의 공간으로 들어서자 천공마법으로 뻥 뚫렸던 곳이 발작을 일으키듯이 움직여 수복과정이 진행되어 밀려드는 부식성 액체의 침입을 막아냈다. 이제는 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하도록 완전히 콱 막혀드는 생체조직에 괴물의 뱃속에 그대로 삼켜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어둠에 빈이 제 옷을 붙잡자 단아는 한숨을 내쉬며 등화의 인을 그려 주변을 밝혔다.

 

 화악, 불길이 타올라 눈 앞에 타오르는 것을 손짓으로 전방에 배치했다. 불길의 움직임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일렬로 배치된 알 속의 생명체들이 동시에 두 사람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소름이 끼쳐와 빈은 숨도 멈추었다.

 

 "뭘봐, 시발것들이."

 

 물론 나쁠 대로 나빠진 단아의 기분은 더 바닥을 치고야 말았다. 폭파든 천공이든 상위마법으로 쭉 쓸어버려야겠다. 그런데 조금 전의 기억을 거슬러가 보면 분명 알 하나 파괴하는데 폭파마법을 그대로 사용했다.

 

 워낙 급하게 사용한 터라 위력조절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다른 곳엔 전혀 영향도 주지 않고 알만 파괴되어 버렸으니 알이 얼마나 견고한가는 뻔한 문제였으며 저 앞으로 펼쳐진 알 하나 하나를 상위마법을 사용해 터트리는게 얼마나 마력과 시간을 소요할 지도 뻔했다.

 

 "그런데 광휘의 인을 사용해서도 주변을 밝힐 수 있지 않아요?"

 

 순수한 마법 학문적 궁금증을 담은 질문에 단아가 바이스를 까닥이며 답했다.

 

 "뭐라도 나오면 바로 불로 지져줄 겸, 일석이조지 뭐."

 "아하…!"

 "가르쳐줄까?"

 "넴!"

 

 등화마법은 원소 중 화염마법의 기초였다. 아직까지 원소마법은 가르칠 생각이 없었는데 일단 이런 상황이 발생하다보니 여러가지를 가르쳐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생긴건 이렇게 생겼고. 원소 중에서 불은 조금 성질이 난폭해. 약간 얼음이 무뚝뚝하다면 이건 진짜 지랄맞은 비글같달까. 자칫하다가 네 마력을 전부 빨아먹고 주위를 다 태우려들 수도 있지. 그래서 불 상위마법은 다들 안 건드리는 게 정석이야, 뭐 예전에 전쟁의 시대가 아니고서야."

 "메테오 같은거요?"

 "어…. 이론상 불가능한 마법은 아닌데…. 여튼 그렇지 뭐. 등화마법 하나로도 사실 시간이 걸린다 뿐이지 산 하나를 다 태울 수 있잖아. 담배 꽁초로도 다 타는 마당에."

 "이렇게 그리면 되나요?"

 "응. 끝을 길게 그리면서, 그래. 네가 육포를 들고 개새끼를 하나 조련하는 기분으로 굴어야지. 잘못하다간 육포도 뺏기고 손도 물어뜯기니까 조심조심하는 그런 긴장감을 유지하는게 화염마법의 포인트랄까."

 

 첫 번째는 인이 완성되지 못하고 흩어졌지만 두 번째에는 조그만 불이 허공에 타올라 빈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래, 웃음이 나오니?"

 "앗. 그러고보니 우리 어쩌죠. 콜록 콜록."

 

 금방 쭈글해졌다가 불시에 기침을 터트리는 빈에 단아가 결국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감기니? 갑자기 숨이 차서요. 그거 달렸다고 숨이 차면 어째, 젊은 게. 단아의 말에 빈이 억울한 눈으로 꿍얼거렸다. 아니 누나랑 저랑 몇 살 차이난다고 그렇게 훈계에요?

 

 시선을 느끼면서도 간단히 무시한 단아는 나름의 생각에 잠겼다. 괴물의 알이라. 그냥 지나가도 될 것 같긴한테 그래도 다 처리하는게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알이 부착된 상단부 벽의 조직에서 진회색 액체가 주기적으로 흘러나와 알을 적셨다. 저게 문제다. 화살도 간단히 막아버리는 저 액체.

 

 제가 있는 곳은 수 많은 괴물의 알이 존재하는 어두운 복도같은 공간이고 벽은 징그러운 살점들인데다 엄마 손 꼭 붙들고 처음 장을 보러온 코흘리개 미드워커 후배님도 함께다.

 

 은랑이라도 있었다면…. 단아는 숄더백에서 [꽃무덤] 카드를 한 번 꺼내 바라보았다가 다시 넣었다. 분명 올 것이다. 아. 은랑이? 문득 그녀를 떠올리니 무지막지한 정화마법의 상성이 떠올랐다.

 

 분명 제 인생이 게임과도 같았다면 제 친구의 타이틀은 [콧김으로 렘을 터트리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통할지도 모르겠다. 단아는 반쯤 적어나가던 폭파의 인을 흩트리고는 정화의 인을 깔끔하게 그려 알 위로 내려그었다.

 

 그러자 알의 두꺼운 막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조금씩 허물어져내리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진회색 액체가 더 뿜어져 나왔지만 정화의 인이 새겨져버린 곳을 덮지 못하고 옆으로 흘러만 내렸다.

 

 "빈아, 여기 칼날로 찍어봐."

 

 단아의 말에 빈이 잽싸게 칼날의 인을 그려 정화마법으로 약해진 부분에 칼날을 꽂아넣었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알 속의 새끼는 칼날에 그대로 두개골부터 빠직 깨져 그대로 숨을 멈췄다.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 일이었다니. 방금 전 등화마법을 배워 좋아하던 빈은 이제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그건 뭐에여'를 연발하고 있었다.

 

 "정화마법인데 배우는데 오래걸려. 까다로워. 나중에 은랑이한테 배워. 이건 확실히 그 애가 잘해."

 

 다음부터는 뻔한 진행이었다. 단아는 직선으로 난 길을 걸어가면서 알 속 괴물이 자라는 일련의 과정을 사진으로 남긴 후 정화마법을 사용했고 빈이 칼날로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콜록 콜록…. 그래도 여긴 괴물의 성체가 없어서 다행이네요, 게다가 안개도 없어서 시야확보도 불편하지도 않고."

 

 확실히 안개가 없으니 불분명했던 시야가 깨끗해져 침착해지는 것 같았다. 안개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왜 바깥에만 안개가 있는거지? 단아는 바이스를 까닥거리다 제가 흔드는 바이스가 어딘가에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벽에 붙은 파이프 배관이었다. 생체 조직벽에 달라붙은 파이프배관은 지름이 크고 작은 것 부터 다양하게 어지러울 정도로 많이 붙어 벽을 따라 이어져 있었고 고개를 드니 천장에도 일부가 지나가고 있었다.

 

 저 안에 뭐가 흐르고 있지? 딱딱. 단아는 바이스로 파이프를 다시 두드렸다. 그러곤 살짝 귀를 가까이 가져다댔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가까이한 귀에서 살짝 냉기가 느껴지긴 했다.

 

 터트려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생각을 바꿨다. 안에 그 부식성 액체가 들어있다면 그대로 염산테러 당하는 거나 같은 꼴이 될 것이다. 다시 길을 걸어가는데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났다. 단아와 빈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니?"

 

 얼굴이 새하얗게 되어서 기침을 하던 빈이 단아의 물음에 답했다.

 

 "제가 선택권한이 있었나요?"

 "아니. 그래도 한번쯤 백성들의 소리도 들어주고 그래야 훌륭한 지배자아니겠니."

 "헐. 그러고 놀면 재밌어요?"

 "응. 매일 새로워, 짜릿해."

 

 빈은 제 선배를 떫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왼쪽이요, 라고 힘없이 뱉어냈고 단아는 좋아, 그렇다면 오른쪽이군! 이라며 빈을 이끌었다.

 

 "…이대로 계속가면 출구가 나올까요?"

 "일단 여긴 괴물이 자라나는 공간이야.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안전할 수 밖에 없고 어쩌면 가장 중심부에 가깝겠지."

 "그럼 출구랑 멀어지는 거 아니에요?"

 "얘. 우린 아마 그런 평범한 방법으로 나가긴 힘들거야. 차라리 결계주를 쳐죽이거나 결계를 깨트려야 할 거야. 대게 결계주는 가장 안전한데 숨고 결계의 가장 약한 부분도 중심부야. 그러니 중심으로 가는 수 밖에 없어."

 "…내 인생은 완전히 망했어요. 결혼도 못하고 죽는 건 아니겠죠?"

 

 위험진창 인생 망함. 조용히 성호를 긋고는 침울히 중얼거리는 빈에 단아가 지랄 말라며 등을 팡팡 두들겼다. 것보다 너 종교 있었니? 이제 부터 믿어볼 생각이에요. 그냥 차라리 그 시간에 마법이나 더 연습하는게 이롭단다. 단아가 그렇게 말하더니 낄낄 웃었고 빈은 애매한 얼굴이다가 다시 폭풍기침을 토해냈다.

 

 "왜 그래?"

 "누나. 저 좀 어지러운 것 같아요"

 

 빈이 벽에 붙은 파이프배관을 붙잡고 기대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갑자기 숨이 막힌듯 가슴을 움켜잡더니 컥컥 거리면서 기침을 토해냈다. 야? 덩달아 심각해진 얼굴이 된 단아가 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열은 없는데 얼굴은 파리해져서는 숨을 헐떡인다. 그 괴물들이 독성 능력이라도 있었나? 그런것 치곤 자신은 멀쩡하니 아닌것 같았다.

 

 단아는 정화의 인을 빈의 손바닥에 그려주면서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날 봐. 나 보라구."

 

 빈은 거의 반쯤 맛이간 눈으로 몽롱하게 단아를 올려다보았다. 이 공간에 들어설 때부터 머리가 아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처음엔 참을만 했다가 곧 기침이 되었고 이제는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몽롱해져갔다.

 

 단아가 당황하며 제 손바닥에 무언가를 그려가는 건 같은데 손바닥에서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벽에 기대어 있던 빈이 주욱 미끌어져 내려 바닥에 주저앉았고 알 표면을 따라 흘러내린 진회색 액체가 질척거리는 바닥에 엉덩이가 닿았다.

 

 "빈아!"

 

 다시금 단아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웅웅 울렸다. 바닥에 주저앉으니 갑자기 더 정신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힘없는 몸을 지탱하고자 바닥에 손을 짚었을 땐 끈적한 감각이 손가락을 휘감았다. 그곳에서 시작해 감각은 전부 뭉툭하게 마모되어갔다.

 

 자꾸 소리치며 제 시선을 따라오는 단아의 곁으로 검은 남자의 잔상이 보였다. 뭐더라? 저게? 시꺼먼 발끝, 잘 보이지 않는 얼굴과 서늘한 공기. 그리고 비스듬하게 움직이던 입술.

 

 '이러면 조금 심술이 나잖아.'

 

 그러곤 제 머리에 닿던 손과 어지럽게 변하던 시야.

 

 "정신차려!"

 

 …나는 무엇을 잊어버렸지?

 

 단아가 빈의 뺨을 후려쳤다. 은랑과 제윤이 공인한 매서운 단아의 손이 빈의 뺨에 닿자 그는 건져올려진 생선마냥 파드득 크게 떨면서 눈을 깜박였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단아가 빈의 이마에 손톱자국이 살짝 남게 정화의 인을 그렸다. 정신이 갑자기 맑게 개이고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허억…허억…."

 

 숨을 몰아쉬는 빈에 단아가 입술을 깨물면서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여기 나가고 싶어요."

 "여기 들어와서 그랬어?"

 "…네."

 "이 병신새끼가 말이나 빨리하지!"

 

 단아는 아픈 후배의 등을 한 번 더 후려치곤 눈을 치켜떴다. 굽이 높은 워커를 신어 엇비슷한 눈높이에 빈이 금세 쫄아서는 눈치를 살폈다.

 

 "콜록…. 누나는 괜찮아요?"

 "나? 멀쩡한데. 야, 일단 후…. 조금만 참아봐. 바이스에 마법 좀 캐스팅해두고 나가자."

 

 단아는 우선 환각마법의 기본 인을 그리곤 방어의 인을 전개해나갔다. 남은 세 가지는 역시 공격마법이다. 폭파 하나, 절단 두개. 새액새액 거친 숨소리를 뱉는 빈이 신경쓰여 거의 휘갈기듯이 써내린 인이 바이스에 스며들자마자 단아가 다시 빈에게 정신차리라며 어깨를 두들기고 뺨을 건드렸다.

 

 다시 괴물이 득실거리는 밖으로 나가야했다. 정말이지 거지같은 하루다. 아무데나 나갔다가 괴물이 한껏 포진해있는 공간이면 어떡하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숄더백에 손을 넣어 카드를 한껏 흩트려놓고 하나를 뽑았다.

 

 [꽃무덤]

 

 또다시 그 카드다. 단아는 카드를 눈에 담고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던 그림 속 여인은 어느새 똑바로 눈을 뜨고 저를 바라보며 정면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주변에 산재해 있던 나비들도 마치 막힌 유리창에 달라붙듯 카드의 표면에 붙어 모여있었다.

 

 가까이 오고 있구나. [나비램프]의 나비가 이리로 오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리도 나비들이 안달난 것이겠지.

 

 [Let them out, Angela]

 

 단아는 문득 누군가 자신에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빈의 목소리는 아니다. 안젤라(Angela). 분명 저를 끈덕지게 괴롭히는 과거의 여왕 중 하나, 그것을 부르는 소리가 분명했다.

 

 한 번 눈을 깜박이자 기억이 스며들었다. 자신은 그 때도 [꽃무덤] 카드를 들고 있었고 제 시선의 끝, 일직선으로 난 19세기 경 유럽으로 추정되는 골목의 끝에 키가 큰 사내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나비램프] 카드인게 뻔했다.

 

 사내의 앞으로 푸른 나비 한 마리가 포르르 움직여 자신에게 다가와 주위를 빙빙돌았다. 자신은, 안젤라는 가만히 그 자리에 굳어 입술을 깨물었다. 사내는 이제 안젤라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멋드러진 백금발의 사내가 부드럽게 귓가에 속삭였다.

 

 [Let them out, Angela (그들을 풀어줘, 안젤라).]

 

 단아는 기억속의 여왕 안젤라처럼 결국 입술을 열 수 밖에 없었다. [뱉어내.]

 

 주문이 뱉어내지자 카드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푸른 나비떼가 튀어나와 주위를 맴돌았다. 빈이 옆에서 얼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결국 파리해진 얼굴에 힘이 빠진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사진을 찍었다.

 

 "넘…신기해서 안 찍을 수가 없네요."

 "아직 힘이 넘쳐나는 구나."

 

 깜박이는 눈꺼풀 안쪽 기억속에선 주위를 비상하는 나비떼와 [나비램프]의 나비가 섞여들어 같은 무리가 되어 사내와 안젤라의 주위를 에워쌌다. 사내는 한 손으로 그녀의 귀를 다정하게 만지더니 머리칼을 넘겨 따뜻한 목을 움켜쥐었다. 다른 한 손은 계속해서 품에 넣은 채였다.

 

 [I have searched for half a year for you (반년동안이나 너를 찾아다녔지). Didn't you miss me? Her Majesty the Queen(내가 그립진 않았어? 여왕폐하).]

 

 그렇게 말하곤 꺼낸 손에는 달빛에 반짝이는 칼이 들려있었다. 안젤라는 손에 힘을 주고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Fuck you, gatekeeper (엿 먹어, 문지기).]

 

 시발, 기억 한번 끝내주네. 단아는 기억의 마지막에 제 배를 찌르는 칼날을 기억하곤 팔을 벅벅 긁었다. 역시나 멋대로 떠오르는 기억 따위, 정말로 원하지 않았다. 싫다. 역대 여왕들은 대부분 단편적으로나마 성격이 거지같은 걸 알 수 있었는데 다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게 확실했다.

 

 명확한 현실에서 카드를 빠져나온 나비떼는 무리지어 이동해가며 징그러운 생조직이 펄떡거리는 공간을 날아 어디론가 향했다. 아무래도 마중을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등화의 인이 밝히는 구역을 넘어 먼저 날아가는 나비떼는 자신의 빛나는 푸른 빛깔로 어둠을 장식해 밝혔고 어째서인지 알 속 생명체가 나비의 행진에 두려운듯 몸을 더 웅크렸고 일부는 이어진 탯줄에 제 목을 졸라 자살하려는 행위까지 저질렀다.

 

 "뭔지 모르겠지만 존나 끝내준다는 건 알겠어요."

 

 빈은 그렇게 말하면서 제 콧등에 앉은 나비 한 마리를 바라보았다. 요 나비 한마리가 계속 붙어 떨어지지 않는데 그 순간부터 머리가 아프던 것과 기침이 뚝 멎었다.

 

 "시발, 그런 옵션 정도는 있어야 보람이 있지, 개같은 걸 봤는데."

 "넹? 뭘 봐요?"

 "그런게 있어. 병신년과 병신새끼가 손 잡고 노는 거."

 

 나비들은 얼마 날지 않아 벽 한곳에 다다닥 붙어 앉아 날개를 까닥였다.

 

 "이거 일종의 길안내 같은거에요? 나비말이에요."

 "길 안내는 이것들이 아니라 다른 녀석이고. 이건 그냥 마중나가는거야."

 

 자아, 저리 비켜. 바이스를 치켜들어 보이자 나비떼들이 알아듣기라도 한 듯 그 자리에서 비켜났고 단아의 천공마법이 다시 벽을 뚫어 외부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뻥 뚫린 구멍으로 보이는 건 새하얀 바닥과 물웅덩이였다. 설마? 단아는 실제로 제 머리속에 남아있는 장소의 재현에 눈을 크게 뜰 수 밖에 없었다. 곧이어 소름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여긴 또 어디람?"

 

 빈이 한 발짝 구멍으로 발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듀비에의 지하."

 

 단아가 침묵끝에 답했다. 누나?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단아에 빈 또한 구멍 앞에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용이 잠든 곳이지."

 "허얼."

 

 빈이 저를 돌아보던 얼굴 그대로 입을 쩍 벌렸다. 그 사이로 하얀 공간, 외부에서 푸른 나비 하나가 들어와 내부에 있던 나비들과 한데 어우러졌다. 기쁨에 춤을 추듯 어지러이 흩날리는 모습이 가히 아름다워 빈은 또 그대로 멍하게 나비떼를 바라보았다.

 

 은랑이 왔다. 단아는 환하게 미소지었다가 순간 입매를 딱딱하게 굳혔다. 어디에서도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은랑아?"

 

 답은 없었다. 단아는 먼저 나서려는 빈의 어깨를 잡고는 자신이 먼저 밖으로 나섰고 그 순간 옆에서 다가온 커다란 손이 그녀를 단숨에 잡아챘다.

 

 [키이이이]

 "누나!!"

 

 나비가 몰고 온 건 제 친구가 아니라 괴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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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 2017 / 10 / 2 286 0 8580   
22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22) 2017 / 7 / 31 274 0 5007   
21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21) 2017 / 7 / 31 263 0 6386   
20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20) 2017 / 7 / 30 280 0 10558   
19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9) 2017 / 7 / 26 273 0 4398   
18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8) 2017 / 7 / 26 268 0 5047   
17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7) 2017 / 7 / 26 264 0 4580   
16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6) 2017 / 7 / 26 263 0 4177   
15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5) 2017 / 7 / 26 283 0 4382   
14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4) 2017 / 7 / 26 272 0 4301   
13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3) 2017 / 7 / 26 248 0 4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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