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미스테리클럽
작가 : 겨울뱀
작품등록일 : 2017.7.6

너를 만나고 싶어.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9)
작성일 : 18-01-07 18:58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1014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맨홀 뚜껑 구멍으로 새어나온 탁한 액체에선 강한 산 냄새가 났다. 단아는 부식성이 강한지 녹아내린 워커 끝을 한 번 바라봐주곤 그대로 몸을 돌려 뛰었다.

 

 '빌어먹을, 이번엔 아주 녹여서 죽여버리겠다는 거야?'

 

 짜증스럽게 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 감정을 억누른건 황당함이었다. 모퉁이를 기점으로 전혀 다른 공간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발짝 뒤로는 전태 6지구 외곽의 밤. 그 끔찍한 기억의 공간이, 그리고 이 앞으론 햇볕이 비추는 학교 뒷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시간과 공간이 전혀 다른 공간이 맞물려있는 기이한 장면이었다. 따로 떼어낸 조각들을 깔끔하게 연결시킨 퀼트(quilt)같기도 했다. 두 공간의 경계선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재빠르게 노란 액체가 바닥으로 퍼져 제게로 밀려와 타들어가는 바닥의 신음소리가 났다.

 

 단아는 그 소리에 떠밀리듯 경계를 넘었다. 뒤를 돌아 천천히 물러서자 에스컬레이터의 끝자락처럼 밀려오던 부식성 액체가 경계를 기점으로 사라지는 게 보였다. 꾸역꾸역 계속해서 밀려오지만 경계를 넘지는 못하고 사라진다. 저 곳에서 끝나버린 세계처럼.

 

 완벽히 분리된 공간이다. 그러나 자신은 손쉽게 그 사이를 넘었다. 기이한 공간이다. 단아는 점점 자신이 들어온 이 공간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일단 지금 도착한 곳은 학교 주변, 전태 6지구 중심가에 속한다. 핸드폰 시간으로는 10시 40분 경. 시간은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익숙한 길이지만 역시 주변에 있어야할 흔한 비둘기 한 마리도 없었다. 학교 앞 문구점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슬러쉬 기계가 빙빙 돌아가고 있었지만 흘끔 본 내부에 주인은 없었다. 군것질류를 파는 가판대에도 사람만 비워진 채로 닭꼬지가 번들거리는 양념이 발린 채로 올려져 있었다. 지독하게도 현실과 닮아있다. 주변을 채운 뿌연 안개만 아니었다면 더 그랬을 것이다.

 

 단아는 닭꼬지를 하나 집어들었다. 어디까지가 실제일까. 이 모든것은 그저 허구에 불과한가? 괴물들만이 격리된 복제된 세계에서 보는 현실이란 이런 느낌이 아닐까. 문득 든 생각에 소름이 끼쳐왔다. 그와 별개로 계속 닭꼬지를 보고있자니 어쩐지 식욕이 돌았다. 그러고보니 술만 많이 마셨지 안주는 별로 먹은 기억이 없는 것도 같다.

 

 웃기지도 않는 상황에서 닭꼬지가 먹고 싶어진 제 머리속이란 황당함을 넘어서 미친게 분명했다. 킁킁. 제법 괜찮은 양념냄새가 났다. [키이이이익!] 저 멀리서 괴물의 소리가 들렸지만 얼굴 표정은 전혀 변하지도 않았다. 단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먹어도 되려나?"

 

 한 번 배고프다 생각하니 정말로 심각하게 배가 고파졌다. 지지. 그거 먹지마. 아마 은랑이 옆에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지도 모르겠다. 순간 얼마전에 읽었던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생존을 위한 구차하지만 제법 유용한 하찮은 마법 시리즈]

 

 정 욱과 광대 문제로 사람을 찾는 용도의 마법을 찾다가 발견한 책이었다. 읽다보니 나름 시간 떼우기도 좋아서 읽었는데 우연히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미드워커의 경험과 노하우가 들어간 일종의 수필이었다.

 

 저자는 1인칭을 사용해 이름은 알 수 없었으나, 무인도에 표류한 후 순간이동으로 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람도 없는 섬에서 혼자 생활하며 생존하며 갖가지 마법의 새로운 활용을 창조해냈다. 그러니까 어느 미드워커가 그렇듯이 제 정신은 아니었단 소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건 특정 식품을 먹어도 되는 것인지 판단하는 마법이었다. 저자는 무인도에서 혼자 생활하며 아무거나 주워먹다가 죽을 뻔한 고비를 여러번 넘겼는데 그러던 와중 이 마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단다. 그냥 집에나 갈 것이지.

 

 어쨌거나 단아는 침대에 누워 책장을 넘기며 '개또라이네!'라며 깔깔 웃었다. 자신이 그걸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일종의 분석마법이었다. 식품에 든 성분이 인체에 유해한 지 판단하는 마법인데 사실 어떻게 이 마법을 만들었는지 알 수 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마법이 아닐 수 없었다.

 

 희미한 기억에 의존해 '먹을까 말까?'라는 다소 방정맞은 이름이 붙은 인을 그리곤 닭꼬지를 가까이 대자 금색 인이 파스스 흩어지더니 어디선가 축포가 탁! 터지면서 효과음이 뒤따랐다.

 

 [드시옵소서!]

 

 와. 정말로 이걸 만든 놈은 또라이가 틀림 없었다. 요란한 축포와 뒤따르는 목소리까지 아주 환상이었다. 아마 저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 미드워커겠고. 어느 시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경이로운 병신력엔 절을 해줘야 할 것 같다. 어쩐지 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에. 내 후광마법이 이렇게 초라하게 느껴지다니"

 

 단아는 발전을 다짐하며 닭꼬지를 한입 크게 베어물었다. 존맛. 중얼거리면서 휘적휘적 걸어 문구점 앞에서 오렌지맛 슬러시도 한 컵 뽑아 쭉쭉 들이켰다. 방금 괴물과 전투를 끝낸 모습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한 얼굴이었다.

 

 우물우물 먹으면서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일단 여기는 어딘지 모르겠지만 괴물이 만든 결계.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특정한 장소를 그대로 옮겨온 모양새로 하나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소가 섞여있다. 아마 두 개가 아니라 다른 장소가 더 나타날 수도 있고.

 

 바닥에서 솟아나는 액체에 닿으면 상당히 위험할 건 뻔하고 서로 다른 공간을 넘으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곳이 결계라면 결계의 주인인 결계주를 찾아내는 수 밖에 없다. 결계주가 내부에 있다면 그걸 썰어버리고, 외부에 있다면 억지로 결계를 내리쳐서 부순다. 뭘 선택하던 위험성과 난이도는 극상. 거기다가 추가로 '특명! 사라진 후배를 찾아라!' 퀘스트 또한 진행중이었다.

 

 "하아. 빌어먹을 미드워커…."

 

 입에 붙은 정체성에 대한 환멸은 오늘도 빠질 수가 없었다. 단아는 슬러시를 쭉 마시곤 아무데나 종이컵을 던져버렸다. 어차피 이곳 또한 모방된 곳. 현실이 아니다. 마지막 남은 닭꼬지 부분을 냠, 하고 베어무는데 익숙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ㅡ으아악!

 

 찾았다. 선배가 휴식하겠다고 짧은 야식을 즐기려니 후배가 살려달라는 신호를 알아서 보내준다. 끝이 갈라지는 귀에 익은 소리, 빈이었다.

 

 문방구를 끼고 돌아 달려서 학교 앞에서 가장 큰 pc방이 있는 골목 사이로 들어서자 가로등 상단부에 매달린 빈과 그 아래를 점령한 괴물들이 보였다. 그녀와 상대했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순간 눈이 마주치자 단아가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눈이 커질만큼 커진 빈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로등을 껴안은 팔에 더 힘을 주었다.

 

 바이스를 까닥거리다 단아는 작게 심호흡을 했다. 진정하자. 아직 빈이는 안전하다. 급한 마음에 절단마법을 날릴 뻔 했다. 너무 강력한 마법이라 그렇게 흥분한 상태로 사용하면 잘못하다간 제 후배도 휩쓸릴 수 있으니까.

 

 화살의 인을 그려 날리자 한 마리의 등에 명중했다. 비명을 지르며 놈이 아래로 쓰러지자 남은 두 마리가 몸을 돌려 저를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침착하게 바이스로 화살을 그려 날려서 한 마리를 처치하고, 다른 하나는 다 먹고 남은 꼬치로 칼날을 그려 휘둘러 처리했다.

 

 눈 앞에서 검은 피가 촤악 퍼졌다. 단아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면서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

 

 가로등에서 쭉 미끄러져 내려온 빈이 그녀에게 환한 얼굴로 뛰어왔다. 오늘의 문제적 남자의 등장이다. 이 트러블 메이커 새끼야. 단아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발을 들어 빈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서 이 난리야?"

 "으으…!"

 

 단아에게 맞은 발 한짝을 붙잡고 콩콩 뛰던 빈이 '현…. 현주가!'라고 다급하게 외쳐댔다.

 

 "갠 또 누군데."

 "어, 음…. 좋아하는 여자애요."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후배의 핑크빛 사랑이야기에 단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시발, 그래서 그 애가 왜."

 "아아니, 지하철 입구가 이상해서 안들어가려고 했는데! 현주가 갑자기 따라오라고 계속 그러길래…."

 "미친놈. 내가 이상한 거 보면 그냥 그대로 순간이동해서 집에서 쳐 자기나 하랬지,"

 "그래도…."

 

 찡찡대던 빈은 어느덧 울먹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흡…!"

 

 울음을 한번 참고

 

 "킁…."

 

 코를 들이 마시고

 

 "…흐엉!"

 "이게 또 울라고."

 

 단아가 당장 손을 들어 빈의 얼굴을 뒤로 밀었다. 아아, 누나 왜 이제 왔어여어! 엉엉대는 소리에 단아가 손가락 두개를 귀를 넣고 막으면서 그처럼 아아아아아아아 소리를 냈다.

 

 "이게 집에나 빨리들어가지 이 망할 청소년님아."

 "저도 집에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단 말이에요, 갑자기 현주도 만나서…."

 

 빈이 코를 킁, 하고 들이마시며 답했다. 단아는 떫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숄더백에서 휴대용 티슈를 꺼내 건넸다.

 

 "누난 여기까지 오면서 괴물안만났어요? 난 너무 놀래서 들고있던 짐도 다 던져서 어디있는지 모르겠는데."

 "오다 한마리 썰었어."

 "용케도 짐은 다들고 있네요?"

 "이게 다 니가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거란다. 이 아마추어야."

 

 네네, 누난 킹왕짱 미드워커라서 좋겠네요. 투덜거리는 소리에 빈의 머리를 툭, 친 단아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익숙한 공간이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풍경이 되어버렸다.

 

 "여긴 도대체 어딜까요?"

 "괴물이 만든 결계가 제일 그럴듯해, 아마 그럴거고. 결계의 주인이 공간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는 거야. 우린 그 속에 갇힌거고. 그러니까 결계주의 허가 없이는 빠져나갈 수도 없는거랄까"

 "그래서 순간이동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구나."

 

 그래서 결계 속이란걸 알고 시도해보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해결해야할 문제이기도 하고. 빈도 어디 다친 것 같지도 않으니 다행이었다.

 

 "어떻게 알고 오신거에요?"

 "너네집 똥개가 데리러와서."

 

 세상에, 감동. 빈이 또다시 울먹이는 얼굴이 되자 반사적으로 손으로 얼굴을 덮어 밀어냈다.

 

 "악! 왜요!"

 "겁나 부담스러워서."

 

 눈꺼풀을 깜박거리는 순간 그려지는 괴물의 잔상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런, 시발. 단아가 그린 화살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 괴물의 이마에 콱, 하고 박혀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럴 땐 완전하지도 못하고 전능하지도 않지만 나름의 예지력이 있음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헉! 또!"

 

 빈이 기겁하는 동안 쓰러지는 괴물을 밟고 여러 마리가 소음을 내며 긴 다리로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단아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화살마법으로 하나 하나 달려드는 것들을 정확히 머리를 조준해 쓰러트렸다. 수가 많다. 바이스를 들지 않은 오른손을 펼쳐 다섯 손가락으로 화살을 그려 날리자 날카로운 섬광과도 같은 다섯개의 화살이 단번에 쏘아져 나갔다.

 

 "누나 간지 쩔어여…!"

 "닥치고 뭐좀해!"

 "저 누나가 인증한 화살고자 아닌가요."

 "이게 진짜!"

 

 괴물 한 마리가 입을 벌렸다. 점점이 검은 빛이 모여들자 빈이 곧바로 방패의 인을 그려 광선이 쏘아질때를 맞춰 방패로 막아냈다. 방어가 아니라 한 단계 낮은 방패로도 충분히 막을수 있는 공격이었던 모양이다. 후배님이 드디어 쓸만해진 것 같네. 그 말에 빈이 흐히히 개구지게 웃었다.

 

 "웃음이 나오냐,"

 "그러게요, 내가 진짜 미쳤나."

 

 빈의 방패는 견고했다. 구동 시간이며 내구성이 보통을 훨씬 넘을 우수한 방패였다. 이만큼이나 훌륭하게 발전하다니, 감격이다. 이제 하산하도록 해라! 라고 외치자 빈이 '스승님, 저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습니다!' 라고 답했다.

 

 웃기지도 않은 콩트가 진행되는 와중에 괴물이 전방과 후방에서 모두 나타나 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짜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혼자라면 어느정도 괜찮을 지도 모르겠는데. 아니, 한방향에서만 공격해와도 괜찮은데 말이다. 모든 길을 막아버린 괴물들에 빈이 질린 듯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았다.

 

 김 빈은 단아가 감당해야 할, 마땅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빈아."

 "…네?"

 

 가만히 저를 부르는 소리에 빈이 한박자 늦게 답했다.

 

 "일단 저쪽은 네가 막아봐."

 

 단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방에서 밀려오는 괴물을 빈이 양손으로 방패마법을 전개해 막아냈다. 그런 빈을 등지고 선 단아는 전방에서 돌진하는 괴물을 막기 위해 바이스를 들지 않은 손으로 방패마법을 구사했다.

 

 "누나! 이것 좀 어떻게!"

 "괜찮아. 넌 할 수 있으니까. 방패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진다고 생각해봐. 범위를 조금씩 늘려가는 거야."

 

 빈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말도 안돼는 소리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좀 더 마력의 범위를 넓혀 방패를 키운다는 상상을 하자 조금씩 방패의 장막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안정적으로 크기를 넓혀가는 방패에 저 스스로 해내고도 빈이 입을 쩍 벌렸다.

 

 "세상에."

 

 그건 단아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정말로 해낼 줄이야. 단아는 그녀 자신과 빈이 만들어 낸 두 개의 방패 사이, 괴물이 차단된 공간 속에서 끔찍하게 몰려든 적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몰려드는 괴물. 19살. 희미해지지 않는 기억. 달려들던 늑대무리가 생각났다.

 

 "누나…."

 

 제발요, 어떻게 좀 해봐요. 부들거리는 양 팔을 펼친 채로 빈이 하얗게 질려서는 말했다. 단아는 입술을 깨물고는 바이스를 움직였다.

 

 첫번째로 그려낸 인은 '완화'. 두 번째는 '흡수', 세 번째는 '바람'. 세 가지 인을 합성하고 '부착'의 인으로 빈의 어깨에 선을 내리긋자 빛이 스며들어 그 위로 잔상을 남겼다. 옷가지에 가려진 어깨 위로 시작해 타고 올라온 흔적이 빈의 목을 지나 턱 까지 기다란 문양을 남겼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단아는 바이스에 캐스팅해 두었던 환각마법의 기본형태를 끌어내 '지우기'를 전개해 나갔다.

 

 "일시적인 거야. 일단은 너만. 그러니까…. 내가 신호하면 바로 달려서 다시 저기 가로등 위로 올라가. 가서 바로 방패쓰고 있어."

 

 단아는 그렇게 말하곤 여전히 정면으로 뻗어있는 방패를 형성한 제 팔뚝에 바이스로 무언가를 그려나갔다. 도저히 뭔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빈은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하던 단아가 하는 말은 꽤 신뢰성이 있었다. 그녀는 발케도 해치웠으며 자신이 아는 한 가장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하나, 둘. 셋.

 

 단아는 방패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힘을 줘 괴물을 한 번 밀어냈다. 빈은 그 즉시 무작정 괴물들의 틈을 향해 달렸다. 옳은 선택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믿기지도 않는 단아의 지시에 사실 얼굴이 파들파들 떨렸다. 제게로 커다란 팔이 스친다고 생각한 순간 뒤에서 섬광이 괴물들을 꿰뚫었다.

 

 단아는 몸을 곧바로 숙여 양쪽에서 공격하는 괴물들을 서로 충돌하게 만들었다. 그러게 쓸데 없이 긴 다리가 문제라니까. 단아는 길죽한 괴물들의 다리 사이로 휙 슬라이딩 해 대각선 방향으로 빠져나오면서 칼날을 길게 휘둘렀다.

 

 이제 바이스에 남은건 천공과 절단. 끝없는 괴물의 공세에선 단 한번으로 처리해야 한다. 무너지는 괴물의 푹 파진 갈비뼈를 움켜쥐고 몸체를 강제로 움직여 다른 놈이 내려치는 손을 막아냈다.

 

 갈비뼈에 손이 폭 끼여버린 모양새가 되자 놈이 동족의 뼈를 바스라트릴 듯 비틀었고 용케도 숨이 붙어있던 그 동족이 [키에에엑] 비명을 내지르며 손을 휘둘렀다. 단아는 그 새에 놈들의 다리 밑으로 주저 앉아 끔찍한 동족상잔의 장면을 마주하는 것을 피했다.

 

 저들끼리 공격하는 바람에 미드워커만 떡을 주워먹은 꼴이다. 개쌤통. 단아는 자신이 휘두른 칼날로 똑 하니 떨어진 괴물의 다리 하나를 주워 들고는 뒤에서 자신을 공격하려는 괴물의 팔을 막아냈다.

 

 "어쭈."

 

 그대로 발을 높이 들어 괴물의 무릎 부분을 차버리자 휘청거리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다리로 괴물의 턱을 후려치고 무너지는 몸체에 다시 풀스윙을 날렸다. 일시적으로 근력을 강화시키는 인을 팔뚝에 새겨둔 보람이 있었다.

 

 빈은 생각보다 공격을 받지 않자 당황했다. 괴물들이 자신이 있는 방향을 전혀 바라보지 않았던 것이다. 받은 공격이라봤자 놈들이 혼자 성이나서 휘두르는 손이었는데 방패로 막아내면 될 수준이었다. 방패에 제 손이 튕겨져 나가자 괴물들은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가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주다 단아가 날린 화살에 그대로 쓰러졌다.

 

 아무래도 단아가 환각마법의 일종을 쓴 모양이었다. 빈은 조심스럽게 가로등 앞으로 다가가 바닥에 도약의 인을 그린 후 뛰어올랐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다시 단아와 마주했을 때 처럼 가로등 상단에 매달릴 수 있었다.

 

 그 후 바로 가로등을 껴안은 팔에 힘을 주고 손가락을 움직여 방패마법을 펼쳤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가까스로 올라간 그는 괴물 다리를 들고 겁도 없이 휘두르는 제 선배를 보고 얼이 빠졌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누나, 됐어요!"

 

 빈의 말이 들리자 마자 이제는 다 떨어져 나가는 괴물다리를 던져버린 단아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여전히 사방이 괴물이다. 일회용무기와 함께한 동안 용케도 그린 방패로 일단 몰려드는 것들을 한 번 막아주었다.

 

 "오케이 잘도 모이셨네. 아참, 빈아. 가로등만 막아. 내가 아래에서 받아줄 테니까!"

 "네?"

 

 방패마법의 금빛잔상이 사라지는 순간 단아는 한발짝 크게 내딛으면서 바이스를 들어 절단마법을 날렸다. 바이스 끝에서 이어져 나온 적색의 선이 낚시줄처럼 날아가 무시무시한 칼날이 되어 벽을 긁어내며 괴물들을 덮쳤다. 아래에서 위로 올리며 반원을 커다랗게 그린 왼팔이 오른쪽 어깨에 다다랐다.

 

 순식간에 단아 앞에 몰려들었던 괴물들이 연달아 두동강이 나고 검은 액체가 터져 주변으로 튀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마법의 영향권에 들었던 담장이며 거리 반대편 건물까지 깔끔하게 절단마법이 스친 대로 절단되어, 잠시의 정적 후 콰과광! 소리를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범위를 덮친 예리한 칼날이었다.

 

 "이게 절단마법…."

 

 빈의 얼굴이 새하얗게 탈색되어 버린 사이, 역시나 마법의 영향권을 피하지 못한 가로등이 썩둑 잘려 무너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방패 방패! 빈은 순간 단아의 말을 기억해내곤 제 위를 덮쳐오는 가로등을 방패로 막으며 밀어냈다. 뒤는? 꼼짝없이 머리통이 바닥에 박혀 죽을 줄만 알았는데 순간 바람이 저를 포근하게 감싸는 게 느껴졌다. 그 다음으로 몸이 바닥에 닿았을 땐 뭔가 쿠션 같이 편안한 물체에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빈의 어깨에 적혀있던 완화와 약화, 바람의 합성 마법이 연달아 탁탁 터지며 흔적을 지우곤 사라졌다. 방패에 튕겨져 나간 가로등은 그대로 방패의 범위를 타고 옆으로 빗겨서 쓰러졌다.

 

 "어우우우우."

 

 빈은 앓는 소리를 냈고 단아는 한쪽 어깨에 올라갔던 왼쪽 손목을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지렸니?"

 "아니거든요!"

 "우쭈쭈. 알게쭙니다."

 

 단아는 작게 웃으면서 빈에게 다가와 그를 일으켜 주었다.

 

 "진짜 죽이지?"

 

 단아는 페허가 된 주변을 둘러보면서 짧은 감상을 물었다.

 

 "네. 정말 말이 안나올 정도로요."

 

 빈이 그렇게 답하면서 옷을 툭툭 털었다. 완전히 무너지고 망가진 현실과 같은 장소. 위화감과 압도, 그러나 이상하게도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무서움도 억울함도 아니었다. 갑자기 또 울먹거리는 후배에 단아가 난처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누나…."

 "응."

 "누나나 은랑누나는…."

 

 꿀꺽. 무언가 목구멍을 지나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슨 소리지? 단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자 빈이 아까도 이 소리를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누나, 저길봐요."

 

 절단마법으로 무너진 잔해들이 유화물감 마냥 퍼져 흐물거리고 있었다. 그 주변을 기점으로 펄떡 펄떡, 공간을 뒤집어 쓰고 있던 살아있는 조직이 흉물스럽게 모습을 드러냈고 찌이익 끊어지고 다시 붙는 소리가 났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발 아래에서 그 액체가 또 다시 역류해 올라올 것 같았다. 단아는 황급히 빈의 팔을 잡아 채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뛰어!"

 "네?"

 "맨홀 아래에서 나오는 거, 절대 닿으면 안 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래에서 노란 액체가 역류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울컥 울컥 터져나오는 피 처럼 뿜어지는 탁한 액체는 곧바로 바닥을 뒤덮어 갔다. 다른 공간,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야 한다!

 

 단아는 멀리 뻗어진 익숙한 학교의 뒷거리를 가로질렀다. 어디로 가야 하지? 불안한 제 얼굴에 빈의 얼굴이 덩달에 겁을 먹어 질렸다. 시선을 돌리는 사방에서 노란 액체가 뿜어져 나와 거리를 뒤덮어 갔다. 달려도 달려도, 다른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키이이이]

 

 덩달아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시 괴물의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해야하지?'

 

 단아는 빈의 팔을 꽉 움켜진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 진정하자, 진정. 아직 바이스에 천공마법이 남아있다. 바닥의 액체는 방어마법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 절단이나 폭파나 마법도 더 캐스팅해 두고….

 

 그래, 천공마법이 남아있다.

 

 단아는 고개를 휙 돌려 벽을 바라보았다. 의문의 생물조직을 뒤덮은 현실을 닮은 곳. 한 꺼풀만 벗기면 새끼 괴물이 생장하는 곳이 있다. 상대적으로 그곳은 안전하다. 괴물은 의식적으로 저 벽을 공격하는 것을 피했고 바닥에서 액체가 뿜어져 나오기 전에 훼손된 벽은 수복 속도가 빨라졌다.

 

 어쩌면, 정말로 저 안은 안전할 지도 모른다. 괴물 새끼가 자랄 공간이니 위험요소가 없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누나?"

 

 단아는 빈의 떨리는 목소리에 괜찮다고 팔을 다시 잡아 준 후, 바이스를 들어 천공마법으로 벽을 꿰뚫었다. 쾅! 하고 갑작스럽게 뻥 뚫려버린 벽에 빈이 깜짝 놀라자 단아가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들어가자."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42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20) 2018 / 1 / 7 267 0 8763   
41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9) 2018 / 1 / 7 260 0 10145   
40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8) 2017 / 11 / 22 267 0 5174   
39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7) 2017 / 11 / 22 267 0 4914   
38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6) 2017 / 11 / 20 276 0 6057   
37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5) 2017 / 11 / 20 268 0 5606   
36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4) 2017 / 11 / 14 259 0 5142   
35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3) 2017 / 11 / 14 265 0 5294   
34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2) 2017 / 11 / 14 264 0 10503   
33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1) 2017 / 11 / 14 253 0 6464   
32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0) 2017 / 11 / 14 284 0 4808   
31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9) 2017 / 11 / 13 260 0 7665   
30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8) 2017 / 11 / 13 264 0 6725   
29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7) 2017 / 11 / 13 284 0 7879   
28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6) 2017 / 11 / 13 289 0 4221   
27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5) 2017 / 11 / 9 267 0 5591   
26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4) 2017 / 11 / 9 245 0 4068   
25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3) 2017 / 10 / 18 274 0 7693   
24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2) 2017 / 10 / 17 277 0 5229   
23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 2017 / 10 / 2 286 0 8580   
22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22) 2017 / 7 / 31 274 0 5007   
21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21) 2017 / 7 / 31 263 0 6386   
20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20) 2017 / 7 / 30 280 0 10558   
19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9) 2017 / 7 / 26 273 0 4398   
18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8) 2017 / 7 / 26 267 0 5047   
17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7) 2017 / 7 / 26 264 0 4580   
16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6) 2017 / 7 / 26 263 0 4177   
15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5) 2017 / 7 / 26 283 0 4382   
14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4) 2017 / 7 / 26 271 0 4301   
13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3) 2017 / 7 / 26 248 0 4737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Catch me
겨울뱀
다모클레스의 검
겨울뱀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