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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혼돈 : 내일과 어제를 잇는 다리
작가 : 러군
작품등록일 : 2017.11.6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2052년의 내일에 대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2026년의 어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둘 사이에 이어진 다리의 사연이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를 주는데...

모든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경고.

 
필연적
작성일 : 18-01-05 09:48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1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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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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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시각 민희가 토끼처럼 깡충거리며 자신의 아파트 계단을 경쾌하게 오르고 있다. 그녀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 이유는 방금 전에야 찬과 헤어졌다. 점심때부터 둘은 H 강변에서 데이트를 해서 저녁때까지 있었다. 나비 공원을 지나서는 강변 공원에서 사람들과 휴고의 노래 공연이나 문화 공연들을 구경하며 다녔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찬과 데이트를 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오죽하면 데이트 내내 꿈이 아닌가 하여 연신 찬의 얼굴을 보았을까. 해질 무렵에는 강변을 따라 손을 잡고 산책을 했다. 그때는 여느 연인들처럼 사랑을 키워가는 다정한 모습이었다. 저녁노을을 보며 다정히 걷고 있을 때는 그보다 더 행복한 시간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녁도 그곳에서 먹었다. 점심때는 스테이크 집이었는데 저녁에는 한정식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식사는 점심때보다 더 길게 천천히 먹었다. 그래서 이 늦은 시각에 집에 돌아오는 것이다. 민희가 3층 자기 집 앞에 오자 이브가 자동적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현관 문이 열리자 여전히 기분이 좋은 민희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에서 중년 부인의 음성이 들렸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습니까?"

 

 민희가 자랑을 하듯이 말했다.

 "나 찬이 만나서 데이트했어."

 

 "그건 월을 통해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은 일입니까?"

 

 "그럼 오랜만에 만난 친구고... 데이트인데. 기분이 좋지."

 

 "많이 돌아다니신 것 같은데 목욕물 받아 놓을까요?"

 

 민희가 그제는 들고 있던 가방을 소파에 장난치듯이 훌쩍 던지고

 "좋지. 물 받아죠."

 

 그리고는 소파에 털썩 몸을 던지듯이 앉아 벌렁 누워서는 발을 들어 휘저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휴고가 민희가 던져 놓은 가방과 막 벗기 시작한 스타킹을 치우고 있었다.

 

 

 그 시각 찬은 차에 타고 있었다. 그는 막 민희 집까지 그녀를 바래다주고 이제는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차에 앉아 있는 그는 연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방금 전 민희를 배웅할 때의 장면이다.

 

 차를 세워두고 같이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민희를 배웅했는데 집으로 가던 민희가 갑자기 뒤돌아 와서는 그의 입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였다. 입맞춤만 하고 돌아서가려는 그녀를 그가 손을 잡아 돌려세우고는 찐한 키스를 했다. 그 순간의 자기 행동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행복함을 떠올리고 있었다. 키스를 끝낸 후 헤어지기 싫어 머뭇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민희를 떠올리며 두근거리는 자기 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행복해하고 있을 때 자동차의 C4가 물었다.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십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나요?"

 

 "응, 있어. 오늘 아주 오래전에 헤어졌던 친구를 만났거든. 그리고 그 친구와 사귀기로 했어."

 

 "와, 축하합니다. 행복한 날이시군요."

 

 "고마워."

 

 "저녁 시각에 발표한 대국민 성명으로 인해 사람들이 뒤숭숭한데 좋은 소식을 듣는 분이 있어 다행입니다. 좀 전에 태워드린 분은 연신 한숨을 쉬며 걱정을 하시던데."

 

 그 말에 영문을 몰랐던 찬이

 "그게 무슨 말이야? 대국민 성명이 있었다니."

 

 "여섯 시 경에 국회에서 의원들이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시민을 자살하게 만드는 휴고가 인명 피해를 높이고 있다고."

 

 "그건 다 아는 이야기잖아. 이번 주 일요일부터 정부가 발표하며 조심하라고 했던 내용인데."

 

 "그런데 이번 의원들 발표는 더 심각했습니다. 사망자 인원과 나타난 빈도까지 도표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랬어!"

 

 찬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단순하게 주의하라는 경고 방송과 그 주의의 이유에 대한 자세한 사례를 동원한 위험 알림 방송은 받아들이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어느 정도 알기에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그때 민희가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참, 민희. 민희가 그 오민희지. 민희가 정말 그 전문가가 맞을까?"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지현은 집에서 TV를 통해 의회에서 한 대국민 성명을 보고는 기분이 안 좋아 기분 전환으로 H-휴고와 같이 동네 안 마켓에 장을 보러 갔다 오는 길이다. 보통의 날에 비해 마켓은 한산했다. 평소 같았으면 사람들이 휴고와 같이 마켓에 와서 장을 보느라 어수선할 곳이 오늘따라 조용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는 좀 전에 발표한 대국민 성명 때문인가 했다.

 

 막 자기 집 아파트 정원에 도착할 무렵 그녀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였다. 마켓에서 본 중년의 아저씨가 그곳에 같이 따라왔던 휴고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휴고가 갑자기 자기 몸에 물 같은 것을 부었다. 병인지 깡통인지 속에 들어있는 것은 물이었는데 그걸 마치 샤워를 할 때의 모습처럼 머리 위에서부터 몸통 전체를 향해 부었다.

 

 다음 순간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라이터를 켜더니 휴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게 물이 아니었음을 아는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라이터를 가까이하는 순간 휴고의 몸에 불이 삽시간에 타올랐다. 기름이나 신나였다.

 

 그 모습을 보고는 지현이 깜짝 놀라 달려갔다.

 "휴고, 불 좀 꺼 봐. 난 저 아저씨 피하게 할 테니."

 

 지현은 중년 남성에게 다가가서 그를 불이 난 휴고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가 서있는 곳까지 화염이 밀려들어 상당히 뜨거웠다.

 "아저씨 뭐 하세요. 위험해요. 뒤로 물러나세요."

 

 그 사이 지현의 H-휴고는 인근에 있는 잔디밭의 소화전 통에서 소방 호수를 끌고 왔고, 아파트 근처에 있던 2대의 휴고는 각자 작은 소화기를 들고 왔다. 세 휴고가 불타고 있는 휴고의 불을 끄기 시작하자 지현에 의해 뒤로 물러났던 주인이 그때부터 이상한 행동을 했다. 지현을 밀치고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그만해. 끄지 마. 태워 죽여야 해. 그놈은 사람을 죽이는 휴고야. 타죽게 그냥 둬."

 

 지현이 다급히 불 가까이로 가려는 중년 남성을 잡으며 말렸다.

 "아저씨 왜 이러세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중년 남성이 급기야는 지현네 휴고의 목을 잡고는 방해를 하며

 "저놈이 나에게 속삭였어. 나를 죽이기 위해 속삭였어."

 

 지현이 남성을 말리며

 "무슨 말을 했는데요?"

 

 중년 남성이 끝까지 지현네 휴고를 놓지 않고

 "몰라, 그냥 속삭였어. 날 죽이려고 했던 거야."

 

 그 순간 지현은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붉은 기운에 붉게 보이는 그의 얼굴은 분명히 뭔가에 적개심을 품은 광기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휴고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단 이유로 자신의 휴고를 불태우려 했다.

 

 그의 앞에는 그동안 수족이 되어 하인처럼 그를 돌보아 왔던 휴고가 붉은 불기둥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휴고의 주인이 그 모습을 광기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 태워 죽여야 한다며 소리치고 있다. 그 광경에 지현은 무섭기도 하고 소름이 돋기도 했다.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 사태가 점점 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8살 땐데. 늘 우리 옆에 붙어 있는 아이였어.

  1년 반을 일주일에 삼 일정도는 매일 보다시피 했던 얼굴이지.

  그래서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었어."

 

 민희는 목욕을 하면서도 이브와 찬과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좀처럼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는 그녀였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어두운 표정이나 말투가 아니라 행복하고 기분이 좋은 표정과 말투로 과거를 더듬었다.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입에서 절대로 나오질 않았던 이야기였다. 가끔 찬이 떠오르는 날이면 그냥 찬이라는 이름과 그가 보고 싶다는 말만 했었지 과거의 일을 들추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이브는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혹시나 혼돈 시기의 이야기에 상처 입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지금 너무 행복해하고 기분이 좋아 보여 그냥 말하게 두고 있다.

 

 8살 때 집단적 인성을 키워야 한다며 정부에서 집에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을 일주일에 며칠을 스포츠 센터와 문화 센터에 나오게 했다. 의무적 조항이었다. 그래서 8살이 된 민희도 스포츠 센터에 나갔다. 그때 3살이 어렸던 혁이는 누나 가는 곳이라면 무조건 따라다니던 시절이라 민희는 혁을 데리고 나왔었다.

 

 첫날 혼돈 시기의 두려움도 있고 집에서만 공부하고 놀던 아이들이라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겁이 나고 두려웠다. 그래서 스포츠 센터에 나가서도 옆에 있는 동생 혁과만 붙어 있었다. 50명이 한 모임인데 처음에는 굉장히 많아 보이고 어수선해 보였다. 그때 유독 자기들 바로 옆에 서서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한 아이가 있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에 티끌 하나 없어 보이는 해맑은 얼굴. 모든 것이 풍족한 생활을 한 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서 옆에 있었다. 첫날은 그렇게 얼굴만 알았다.

 

 "나는 유찬이라고 해. 우리 같이 놀자."

 

 "난 오혁이야. 형, 안녕."

 

 "혁아, 가만있어."

 

 "동생이야?'

 

 "응, 동생이야. 난 오민희야. 그래, 같이 놀자."

 

 세 번째 만나는 날 둘은 통성명을 했고 친구가 되었다. 그 뒤로는 스포츠 센터에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둘은 붙어 다녔고 같이 놀았다. 그래서 세 명은 단짝처럼 지냈다.

 

 민희가 목욕 가운을 입고 거실로 나오며 말했다.

 "그때는 정말 귀여웠는데. 나도 찬이도 혁이도..."

 

 혁이 이야기를 하려다 말을 중단하였다. 거기까지였던 모양이다. 그걸 알고 이브가 다급히 말했다.

 

 "저녁 여섯 시 경에 의회에서 대국민 발표가 있었습니다. 월의 일정을 보니 못 보신 것 같은데 지금 보여드릴까요?"

 

 "대국민 발표? 응, 보여줘. 무슨 일인데."

 

 민희가 소파에 앉자 앞쪽 모니터에 영상이 나타났다.

 

 

 "응,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첫사랑을 만나서 좋았어."

 

 "첫사랑이야."

 

 "응, 그때 우리 민희 정말 착하고 예뻤는데. 당연히 지금도 예쁘고 아름답지만 그때는 더 예뻤어."

 

 찬은 지금 집에 돌아와 거실 옆에 있는 풀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목욕을 하면서 그는 앤드류와 민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둘이 스포츠 센터에 나가는 날이면 항상 붙어 있었는데 어느 날은 50명 중에서 열 명 가까운 인원이 나오질 않았다. 남아 있는 모두가 무슨 일인가 하여 궁금해했다. 특히 오질 않았던 아이들과 가장 친했던 몇 명은 그 아이들이 그리워 울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게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겁이 났던 찬이

 "넌 절대 다른 곳에 가지 마."

 

 민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 안 가."

 

 혁이

 "형, 나도. 나도 안 가."

 

 2,3 일 뒤에 부족한 인원만큼의 모르는 아이들이 충원되었다. 그때까지도 사라진 아이들은 다시 온 아이들처럼 다른 곳으로 갔을 거라 생각들을 했다. 문제는 그 뒤로도 아이들의 사라짐은 계속 나타났다. 어느 날은 한 명, 어느 날은 세 명, 그러다 뉴스에서 대형 사고 소식이 있는 날이면 다음 만날 때 집단으로 아이들이 사라지곤 했다. 그렇게 사라진 아이들이 열 명 이상이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수만큼의 아이들이 충원되었다.

 

 여름으로 접어들기 시작할 때 갑자기 충원이 일어나지 않기 시작했다. 약 한 달 이상을 충원되지 않고 사라진 아이들 그대로 유지되던 모임은 결국 총 인원이 20명 남짓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찬과 민희가 속한 모임은 단체로 어디론가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새로운 스포츠 센터였다. 선생님의 인도에 따라 안에 들어가니 다른 아이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사라지는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충원된 것이 아니라 죽었다는 걸 알았어. 그걸 알고 새 스포츠 센터에 도착한 우리들은 하염없이 울었지. 친구가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았으니까."

 

 찬의 이야기를 듣고 난 앤드류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만하는 게 좋겠어. 과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

 

 "아냐. 괜찮아. 하고 싶어. 민희와의 추억이니까."

 

 "그럼 알아서 조절을 해."

 

 스포츠 센터에 오는 누군가가 사라진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내일 자기 앞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스스로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찬과 민희는 그렇지 않았다. 둘은 여전히 붙어 다녔고 단짝 친구였다. 혁이까지 함께.

 

 "맞다. 혁이. 우리가 혁이 이야기를 안 했다. 혁이는 어디 있을까?"

 

 그 이야기를 하고는 찬이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민희에게서 혁이 이야기를 못 들었다는 사실과 민희 여행에서도 혁이 이야기가 없었다는 사실. 설민의 창동이 이야기를 할 때도 혁이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는 사실이 그의 눈빛이 두려움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는 혁이 혼돈 시기에 죽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마치 남지태를 만나고 난 뒤에 민희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앤드류가 그걸 알았는지 단번에

 "참, 집에 돌아올 때 의회에서 발표한 대국민 성명을 물었었지. 그 영상 지금 보여줄까?"

 

 앤드류의 말에 두려움에 빠져있던 그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응, 그래. 그거 보여줘. 어서."

 

 찬이 몸을 돌려 풀 속에서 누워 있던 방향을 바꾸었다. 거실 중앙의 모니터가 잘 보이는 방향이었다. 모니터에 영상이 나타났다.

 

 

 저녁 무렵 설민은 창동이 아직도 돌아오질 않아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 특히 방금 전 방송에서 의원들이 나와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 사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대국민 성명으로 발표하고 난 뒤라 창동이 안 보이는 것이 누나로서는 안심이 되질 않았다. 그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는 나른한 저녁 시간이었다. 그때 RTF-7을 통해 이웃집에서 연락이 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설민이 대수롭지 않게

 "엔디알을 통해 모니터에 화상 연결을 해."

 

 "이웃집 사람이 연락한 것이 아니라 그 집 엔디알 일레븐이 연락한 겁니다."

 

 자연스럽게 평소의 일인 것처럼 전화를 받으려고 했던 그녀는 NDR의 말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상하기도 했다. 사람이 아니라 A.I가 연락할 일이 뭐 있나 생각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다시 평소처럼

 "그럼 음성 연결해."

 

 이웃집 NDR-11의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바로 옆집 엔디알 일레븐입니다. 이렇게 연락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저희 주인님께서 지금 위독하십니다. 그런데 주인님이 휴고나 에이아이의 도움은 거부하고 계십니다. 시간이 있으시면 저희 주인님을 좀 도와주십시오."

 

 설민이 그 말에 놀라 소파에서 일어서며

 "무슨 일이 있었는데?"

 

 "최근 정부 발표를 뉴스를 통해 보시고는 에이아이나 휴고가 무섭다고 하시면서 저희들의 도움을 다 거부하고 계십니다."

 

 설민이 바로 현관으로 걸어가며

 "알았어. 지금 바로 건너갈 테니까 문 열어줘."

 

 설민은 현관으로 걸어가며 건너편 집 사람을 떠올렸다. 나이는 22살의 여자다. 직업이 어린아이들에게 단체 무용을 가르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동그란 얼굴에 항상 쌩글쌩글 웃는 얼굴이라 참 귀여운 얼굴의 아가씨였다. 그래서 한때는 동생 창동을 소개해 사귀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때가 바로 혜정을 막 만나기 시작할 때였는데 워낙에 그녀가 마음에 안 들어 어떻게든 떼어놓을 요량으로 이웃집 여자를 소개해 주려고 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실패를 했지만 여하튼 이웃집 사람과는 모르는 사이가 아니다. 그래서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말을 했다. 휴고가 그녀 뒤를 따라나섰다.

 

 이웃집 침실에는 여자가 앙상한 몰골을 하고 침대에 누워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냥 딱 봐도 며칠을 굶은 몰골이 분명해 보였다.

 

 설민이 그 모습을 보고는

 "며칠째야?"

 

 천장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렸다.

 "오늘까지 5일째입니다. 전혀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습니다. 물 외에는 아무것도 드시질 않았는데 물도 제가 주는 것은 마시질 않아 먹은 량이 부족해 탈수 증세도 있을 겁니다."

 

 설민은 5일째라는 말에 이번 주 일요일 정부 발표가 있은 이후로는 먹은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몸을 낮추어 이웃집 여자 바로 옆에 얼굴을 붙이고 물었다.

 "여봐요. 정신 차려요. 내 말 들려요."

 

 이웃집 여자가 그제야 눈을 지긋이 떴다. 그리고 해맑게 웃었다. 말은 못 했지만 설민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설민이 그 모습을 보고 이웃집 여자에게

 "뭐 좀 먹어요. 내가 줄 테니까 먹어요. 내가 먼저 먹어서 괜찮은 걸 보여줄 테니까 먹어요. 알았죠."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자기 뒤에 있는 자기 집 휴고를 보았다.

 "이브, 식당에 가서 미음이나 수프 같은 유동식을 가지고 와."

 

 설민의 말에 이브가

 "영양제 같은 링거 보충제가 필요하지는 않을까요?"

 

 설민이 고개를 저으며

 "주사까지는 안 해도 괜찮을 것 같아."

 그리고는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금도 휴고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인데 휴고가 놓아주는 주사를 맞으려고 하겠어. 그건 됐어. 유동식 좋은 것으로 가지고 와."

 

 휴고의 이브도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예."

 

 휴고가 대답을 하고 방을 나갔다. 그러자 이집 NDR-11이 방 천장 스피커를 통해 물었다.

 "저희가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설민이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는 이웃집 여자를 보며

 "있어. 조금 있다가 우리 휴고가 음식 가지고 오면 너희 휴고가 내 옆에서 그릇 잡고 있어. 내가 너희 주인에게 떠먹일 동안 너희가 잡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친근감이 쌓이고 교감이 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설민이 다시 침대에 누워있는 이웃집 여자 가까이에 다가가 물었다.

 "휴고들이 무서워요?"

 

 이웃집 여자가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설민이 그 모습을 보고는 침착하게 조용조용 천천히 말했다.

 "잘 생각해보세요. 그동안 당신 주위에 누구가 가장 많이 옆에 있었는지. 자기가 생활하면서 누구와 가장 많이 접촉하고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고 있는지. 생각했어요?"

 

 설민의 말에 이웃집 여자가 애써 부정하듯이 그제는 다시 눈을 감았는데 이마와 눈가의 주름이 잡히는 것으로 봐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모양새 같다. 겉모습에서 강하게 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설민이 같은 말투로 천천히

 "부정하고 싶어도 그게 현실이에요. 그리고 그 현실 덕에 우리 사람들은 아주 편하게 살고 있어요. 그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어요. 지금 보세요.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 힘들어하잖아요. 맞죠."

 

 이웃집 여자는 미동도 하질 않고 그저 찡그린 인상만 그제는 풀었다.

 

 "방송에서 나오는 그런 일들을 전체로 보면 안 돼요. 아주 일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그걸 자신의 일로 믿어버리면 지금같이 되는 거예요.

  믿을 때도 잘 믿어야 해요.

  제 친구가 그쪽으로는 전문가인데. 그 친구 말에 따르면 휴고가 우리에게 옛날이야기를 하거나 과거 추억을 들추어 우리를 힘들게 하면 그때가 아주 위험한 것이지 그 외에는 아무런 위험도 없다고 했어요.

  자, 잘 생각해봐요. 이 집 에이아이나 휴고가 당신에게 과거를 떠올리는 말을 하거나 과거를 들추어 당신을 힘들게 한 적이 있나요.

  있어요 없어요?"

 

 설민의 마지막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에 그제야 이웃집 여자가 천천히 눈을 뜨더니 설민을 보지 않고 천장을 봤다. 마치 그 모습은 말소리가 나는 천장이 NDR-11이 있는 곳이라는 듯이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설민이 밝게 웃으며

 "없으면 됐어요. 그럼 이 집 에이아이나 휴고는 아무 문제없는 거예요. 잘 모르고 의심부터 하다 보면 우리 생활 전체가 의심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럼 우리와 에이아이의 관계가 무너지고 힘들게 되죠. 우리에게 에이아이나 휴고는 참으로 좋은 존재들이에요. 아셨죠."

 

 이웃집 여자가 그제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회 안 브리핑 룸에 의원 여러 명이 도열해 있고 그중 윤이엽 의원이 앞에 나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었다.

 

 "지금 전국적으로 사람에게 접근하여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가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들은 주위에 있는 휴고들의 접근에 주의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여러분 자신들뿐입니다. 사람인 우리 스스로가 주의하지 않으면 휴고에 의해 큰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의 정부가 에이아이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서밋으로는 이 사태를 막을 수 없습니다. 에이아이가 국민들의 정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는 우리 인간이 정부를 구성하고 유지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해서 지금과 같은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 이끌어가는 정부, 인간의 정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의원들의 연설은 누가 들어도 인간과 A.I를 적대시하도록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 속에 있는 몇 단어를 빼버리고 나면 A.I가 사람을 죽이고 그 하수인이 휴고라는 듯이 들린다. 특히나 사람들에게 선동하여 휴고 가까이에 있지 말라고 하는 말은 인간과 로봇을 분리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윤이엽 의원의 연설이 끝난 후에는 김중수 의원이 나와 그래프와 도표를 이용하여 오늘까지 일어난 자살 유도 휴고 출현 빈도와 그들로 인해 자살을 한 사람들의 수를 S시를 비롯하여 전국의 분포를 설명하였다.

 

 "도표를 보시는 것처럼 사람에게 다가가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가 나타난 것은 올해 초부터였습니다. 올해 초부터 이달 전까지 무려 이백 명 이상이 휴고와 접촉한 후에 자살로 사망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왜 정부 에이아이는 몰랐던 겁니까.

 

  이번 주 일요일 정부가 그 사실을 알고 난 뒤를 보십시오. 자살을 유도하는 휴고의 출현 빈도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건 그야말로 우리 정부 에이아이를 이 자살을 유도하는 에이아이들이 비웃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나타난 빈도와 자살한 시민들의 수를 다시 보십시오. 무려 1월부터 4월까지의 총 수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이건 우리 정부의 무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에이아이 정부로는 이 사태를 막을 수 없습니다.

  이젠 우리 인간의 정부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의 힘을 합쳐 이 기회에 에이아이 정부를 인간 정부로 교체해야 합니다."

 

 

 [각주]

 

 1. 의회제도.

  인구 5만 명당 직선제를 통해 선출되는 의원이 한 명이다. 현 인구 수를 대비하면 전체 의원 수는 100명이다.

  선출 방법은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RTF-7에 선거일이 되면 누구를 선출할 건지 안내 연락이 온다. 그럼 개인은 자기가 선택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거나 번호를 부르면 된다. 시민이 직접 방문해서 투표할 필요는 없다.

  이와 같은 방식은 국민 여론 수렴이나 지역구 민원을 파악하는데도 이용된다. 시민은 각자가 있는 곳에서 RTF-7을 통해 자기 의견을 주장하거나 선택하면 의원들이 A.I를 통해 다수결을 파악하여 정책을 수립하게 된다.

  A.I가 정부의 주축인 시대에 의원들이 하는 일은 입법 활동과 정부 정책 수립 인준 그리고 정책의 바른 집행을 감시 감독하는 일을 한다. 특히 정부 정책 수립의 인준 중에는 예산 수립과 집행 감시가 있다.

  따라서 나라의 유지와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 의회 활동이다.

  선출은 직선제이고 의원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은 없다. 누구나 RTF-7이 있는 사람이면 출마할 수 있다.

  선출된 의원들에게는 봉급이 없다. 무임금 봉사직으로 대신에 의원이 된 사람에게는 지역구 활동을 도와주는 다수의 휴고와 중형 A.I인 PS-5가 지급된다. 개인 사업장처럼 당연히 사무실도 무상 지급된다.

  엥겔지수 제로 시대이고, 기본 소득 제도를 시행 중이라 무임금제에도 의원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의원 선거가 마치 축제 같고 놀이 문화 같았다.

 

 2. 서밋(summit).

  중앙 컨트롤 통제 AI 시스템이다.

  원명은 정부 운영 시스템 대용량 A.I로 생산 명칭은 MPI 7001이다.

  사람이 정부이던 시절로 치면 장관의 임무나 시장의 임무를 수행하는 A.I다. 저장 기능은 없으나 하위 A.I를 컨트롤 통제하여 시스템을 유지하는 장치다.

  이 시스템이 시작된 시점은 2038년부터다. 2년에 한 번씩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 되면서 지금은 버전 7단계다.

 

 3. C4 (씨 포)

  시청 자동차 통제 센터(city car control conter) A.I의 약칭이다.

  모든 차량은 국가가 운영하고 국민은 무상으로 공유하는 쉐어링 시스템이다. 1인구당 한 대 꼴로 자동차가 운행되고 있어 공유의 불편은 없다.

  자동차는 자율 주행장치인 UCV와 함께 A.I가 무선으로 컨트롤하는 C4에 의해 작동한다.

  C4 A.I 한 대가 운행 관리할 수 있는 자동차의 수는 500대다. 사람이 필요에 따라 호출을 하면 무인 자동차가 나타나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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