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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혼돈 : 내일과 어제를 잇는 다리
작가 : 러군
작품등록일 : 2017.11.6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2052년의 내일에 대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2026년의 어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둘 사이에 이어진 다리의 사연이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를 주는데...

모든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경고.

 
제3장, 필연적
작성일 : 17-12-30 09:12     조회 : 253     추천 : 0     분량 : 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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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 필연적 재회, 악연적 재회.

 

 

 과거는 기억의 평형 저울이다.

 지금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어느 곳엔 가는 올려놓아야 하는 과거가 생긴다.

 한 쪽은 잊기 위해 존재하는 망각이라는 판.

 한 쪽은 기억하기 위해 존재하는 추억이라는 판.

 과거는 두 판 중 어느 한 판에 기억을 올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며 살고, 잊으며 살아간다.

 

 기억의 평형 저울은 항상 균형을 유지한다.

 추억이 너무 많아 평형이 기울어지면 과거에 매달리게 되어 지금을 살 수 없다.

 망각이 너무 강해 평형이 기울어지면 지금을 살 수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평형이 유지될 때 우리는 행복하다.

 

 혼돈 시기.

 그 시기를 거친 사람들은 기억의 평형 저울이 조작되었다.

 혼돈 시기라는 힘에 의해 저울이 기울어 망각이 더 무거워졌다.

 모두가 과거를 잊으려 하고,

 과거를 잊으며 살아가고,

 과거를 잊기 위해 살고 있다.

 

 망각은 자꾸만 무게를 더해 무거워져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추억은 들어내고 줄어들고 버리고 줄어들어 공기만큼 가벼워졌다.

 과거의 추억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되질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과거를 지우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누구나가 기울어진 기억의 평형 저울을 가지고 있다.

 

 과거는 더 이상 추억이 되질 못했다.

 

 * * *

 

 "왜 이러십니까?"

 

 "뭐?"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아십니까?"

 

 "알아. 알고 있어."

 

 "그런데 그곳에 가시려고 합니까?"

 

 "가면 안 되는 거야? 난 지금 거기 가는 게 더 중요한데."

 

 "이 행동은 지금까지의 찬님과는 너무 다른 행동입니다.

 ...

  아시죠. 갑작스러운 변화가 현대인들에게 있어 얼마나 위험한 현상인지."

 

 "알아. 하지만 넌 내 마음 모르면 가만있어. 그런 변화가 아니라 안정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야."

 

 "어제 하루만 하여도 얼마의 크로우가 나타났는지 아십니까. 오십 대가 나타났습니다."

 

 "몇 명이 희생됐어?"

 

 "스물 명입니다."

 

 "그나마 줄었네. 처음에는 사망률이 칠십이 넘더니 이젠 사십으로 줄어들었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찬님의 태도가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잔소리 그만해. 알고 있으니까. 여하튼 나 지금 갔다 온다. 관리 대상자들 잘 지켜."

 

 Y23 구역으로 향하는 자동차 한 대가 있다. 이 차는 분명 민희가 타고 있는 차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출근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다. 오전 10시다. 차 안에는 찬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뒷좌석에 레온과 로이가 보인다.

 

 그는 9시에 회사에 출근하여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전날 찾다가 중단하고 퇴근한 그림자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까지 그림자를 못 찾았다고 했다. A 조인 그가 퇴근하고는 B 조 담당자는 직접 찾지를 않고 HAL 9에 일임을 했는데 Y22 소속의 P-휴고를 이용해 아무리 찾아도 그곳에는 그림자가 없었다고 했다. 영상도 찬이 본 영상이 그림자의 마지막 영상이었다. 더 이상의 영상도 없었다. 여자도 아이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하여도 그는 오늘도 다시 Y22 구역에 나가볼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저께 일로 인해 그는 아직도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지 못했다. 잠을 잘 때도 혼돈시기의 악몽이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그의 도피처는 크로우와 관련이 없는 일에 어떻게든 매달리는 것이었다. 오민희를 떠올린 것은 크로우를 막겠다는 일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니까.

 

 그때 큐브가 또 다른 사실을 알려주었다. Y23 구역에서 신고가 들어왔는데 그림자의 주거지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생활 터전이 고스란히 나와 조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찬은 잊힌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휴고들 속에서 빙그레 웃고 있던 여자의 얼굴이다. 서남기 사건 때 그곳에 있던 민희의 얼굴, 그리고 B 시에서 민지영을 구했던 세 명 속에 있던 민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이 떠오르자 더 이상 큐브의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큐브가 뭐라고 더 설명하려고 할 때 찬은 벌써 몸이 문 밖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그를 잡은 것이 바로 큐브의 방금 전 대화였다. 큐브는 현장형인 찬이 크로우 사태에 있어서는 이틀째 회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말이 오고 갔는데 큐브는 하나는 알았는데 다른 하나를 몰랐다. 그가 알고 있는 하나는 찬이 그저께 무슨 일로 크로우를 찾는 일이 두려워졌다는 사실이다. 그가 찬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그게 오민희라는 여자 때문인 것을 알았겠지만 아직까지는 거기까지 알지 못했다. 그는 찬의 감시하는 HAL 9이 아니니까. 그저 과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정도만 눈치채고 있었다.

 

 모르는 하나는 Y23 구역의 여자, 오민희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녀가 그 오민희인 줄은 꿈에서조차 모르고 있지만 20대의 건장한 남자다. 이전에 만남이 있던 마음을 움직인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세상 일은 세상 일이고 개인적 일은 개인적 일이었다. 당장 자기 손으로 크로우를 잡을 수 있다면 세상 일이 먼저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적 일을 하려고 했다.

 

 문이 열리자 안을 향해 다급하다는 듯이 소리치고는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로이와 레온 준비시켜."

 

 그렇게 해서 나선 걸음이 지금 차를 타고 가는 길이다. 차 안에서 찬은 연신 최근에 본 오민희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하도 입구 앞에 10여 대의 휴고들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그중에는 어제처럼 두 대의 휴고가 함께 배터리 상자를 들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또 다른 모습은 은색의 P-휴고들 속에 검은색의 로이와 레온이 있다.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찬과 민희가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찬이 옆에 있는 민희를 보며

 "같이 안 가셔도 되는데."

 

 찬은 옷 위에 방호복을 걸쳐 입는 동안에도 민희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이 말을 한 것이다.

 

 민희가 미소를 지으며

 "그래도 가본 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민희도 내색은 하질 않았지만 그가 자기 구역에 나타났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오죽하면 트레일러 안에서 그가 자동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는 처음에는 놀라 당황했다. 나중에는 찬이라는 사실에 좋아 팔짝팔짝 뛰며 흥분을 했었다. 그러다가도 밖으로 나올 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숭을 떨며 나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이 데면데면 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심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 숨길 수는 없어서 겉으로 드러낸 것이 탐사에 따라나서겠다는 말이었다.

 

 찬이 만족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야 그렇겠죠. 혼자 가는 것보다 미리 답사한 분이 있으면 편하겠죠."

 

 찬도 그 말이 의외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 마음이 이끌리는 사람이 굳이 같이 따라가겠다고 나서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내색할 수 없어 그저 속으로 연신 웃고만 있었다. 

 

 민희가 옷을 입다가

 "그런데 국민 안전 감시 센터가 이런 일도 해요?"

 

 민희는 서남기 사건 때 찬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찬이 얼떨결에

 "예? 아! 예. 엔디알이나 알티에프가 등록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위험인물로 간주하는 시스템이라. 조사가 필요합니다."

 

 민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찬이 준비를 마치고

 "자, 준비 끝났으면 가시죠.."

 

 옷을 다 입고 돌아서 그녀를 봤는데 아직 옷을 다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저만 다 됐군요. 잠깐만요. 제가 지퍼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방호구 모자도."

 

 찬이 자기 준비가 끝났으니 가자고 하려다 말고 민희의 준비가 덜 된 것을 보고는 다가가 도와주었다. 그 순간 민희는 바로 앞에 다가오는 찬으로 인하여 심장이 콩닥거렸다. 주책없는 심장이 심쿵하여 난동을 부렸다. 얼굴에 홍조가 생기지나 않을까 겁나 연신 고개를 들지 못 하고 안절부절 했다. 거기다 자신의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가 바로 뒤에 와있는 사내에게 들킬까 봐 겁까지 났다. 하지만 싫지는 않아 밀쳐내지도 않았다. 그냥 그가 하는 대로 지켜보기만 했다.

 

 사실 어제 같은 경우는 휴고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입고 나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휴고를 부르지 않은 이유는 바로 앞에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나오기를 그녀는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행복한 얼굴을 하고 슬쩍슬쩍 몰래 도와주고 있는 찬을 봤다.

 

 방호복과 방호구 모자를 다 착용한 두 사람은 휴고들 무리 사이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무리 중간에 들어오자 맨 앞에 있던 휴고가 지하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행들이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도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열 대의 휴고 무리가 불빛을 비추고 있어도 라이트 불빛이 비치는 곳만 조금 보일 뿐 전체는 여전히 어두운 밤처럼 암흑의 세상이나 다름이 없었다. 더듬거리며 천천히 걷고 있던 민희가 순간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찬이 민희를 잡아 주었다.

 

 찬이 다급히 도와주며

 "괜찮으세요."

 

 민희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예, 고맙습니다. 너무 어두워 가기가 힘드네요."

 

 찬이 사방을 둘러보며

 "이런 곳에 어제는 혼자 어떻게 오셨습니까? 무섭지 않던가요?"

 

 민희가 그제는 자세를 바로 하고

 "처음에는 무서운 줄도 몰랐어요. 아까 보여주었던 인형을 보겠다는 일념에 빠져 무작정 나선 걸음이라 그야말로 막무가내였죠. 히히."

 부끄럽다는 듯이 웃었다.

 

 찬도 덩달아 웃으며

 "흐흐, 그게 그렇게 좋았습니까?"

 

 "그냥 어릴 적에...

  그냥 가지고 놀던 것이라...

  그냥, 그랬어요. 그냥."

 

 민희가 뭔가를 이야기하려다 말고 말을 이어가지 못 했다. 아마도 과거와 관련된 추억을 들추어내야 하기에 말을 못 하는 모양이다.

 

 그때 찬이 민희의 방호복을 다급히 붙잡았다.

 "어어, 조심하세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입니다."

 

 찬이 잡아준 덕에 말을 하느라 모르고 걸어가던 민희가 깜짝 놀라 멈춰 섰다. 앞서가는 휴고들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도 그녀는 보지를 못 했던 것이다. 아마도 어둠으로 인해 거리감과 공간 감각을 잠시 상실한 모양이다.

 

 민희가 놀라 찬에게 안기며

 "엄마. 고마워요. 큰일 날 뻔했어요. "

 

 찬이 민희를 안은 채

 "조심조심 천천히 내려갑시다."

 

 방호복을 입은 채 둘은 포옹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걸 알아챈 민희가 화들짝 놀라 서둘러 찬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둘은 조심조심 발을 앞으로 디뎌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로 보이는 안쪽은 여전히 어둠으로 뒤덮여 있다.

 

 

 일행들이 여전히 어둠 속을 걷고 있다. 한참 말없이 걷고만 있다가 민희가 옆의 찬을 봤다.

 "조금만 더 가면 그곳이 나올 거예요. 여기부터는 기억이 나요."

 

 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 그리 안 급하니 천천히 조심해서 가세요."

 

 그때였다. 두 사람의 방호구 모자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트레일러의 데이비드 소리가 들렸다.

 

 "민희님, 방금 새로운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순간 찬은 번쩍 민희라는 이름이 뇌리에서 반복적으로 맴돌았다.

 '민희, 민희. 오민희. 오민희.'

 그리고 뒤이어 지난번 서남기 사고 때 서로 처음 만나 인사를 할 때 주고받았던 말이 떠올랐다.

 

 "아! 예. 전 오민희라고 이곳 재개발 담당 직원입니다."

 

 그때의 모습과 말이 떠오르자 찬은 자기도 모르게 속삭였다.

 "오민희. 오민희. 오민희야."

 

 찬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민희는 큐브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내용은 다른 휴고들이 보조 발전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연료가 떨어져 사용할 수 없으나 연료를 보충하면 당장이라도 그 일대에 불을 밝힐 수 있다고 했다. 그 사실에 민희는 기뻐했다. 더 이상 어두운 곳을 헤매며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기뻤다.

 

 민희가 데이비드에게

 "그럼 당장 연료 공급해서 발전기 돌려봐."

 

 그때 찬이 중얼거리며 자기 이름 석 자를 다 말하는 것을 듣고는 그를 보았다.

 "예? 왜요오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오 씨 인걸 아세요?"

 

 찬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에 덩달아 민희도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찬이 민희를 보며

 "오민희 맞아. 오민희. 예전 B 구청 스포츠 센터 나오던 오민희 맞아요."

 그는 민희의 얼굴을 방호구 너머로 보기 위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보면서 말하고 있다.

 

 민희가 그 말에 놀라

 "그걸 어떻게..."

 

 그녀는 놀랐다. 예전 그녀가 다녔던 스포츠 센터를 지목하는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겁이 났다. 과거를 지우기 위해 살아가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과거를 들추는 것이 두려웠다. 다가올 것 같은 찬의 행동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방어를 하려고 했다.

 

 찬이 도망치려는 민희의 손을 잡고

 "동생과 같이 다녔던 오민희 맞지."

 

 민희가 동생 이야기까지 나오자 당황하여 뒷걸음질을 치다 말고 멈춰 서서 찬을 똑바로 봤다.

 "누구예요. 누구기에 그걸 아세요."

 

 찬이 잡은 손을 흔들며

 "나야. 나. 유찬. 유찬 몰라."

 

 민희가 그 말에 놀라 그의 이름을 반복해 불렀다.

 "유찬. 유찬. 유찬이라고. 유찬이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애가 항상 자기 옆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은연중에 눈길이 갔다. 얼마 뒤부터는 서로 인사를 하고 친구가 되었고 혁이와 놀아 주기도 했다.

 

 어린 찬이 어린 민희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유찬이라고 해."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어린 찬의 모습이 떠오르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방호구 너머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울먹이며 말했다.

 "유찬 맞아요. 정말 그때 우리 옆에 있던 그 유찬 맞아?"

 

 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 그 유찬 맞아. 지난번 사고 때 내가 유찬이라고 인사를 했잖아."

 

 민희가 눈물을 흘리며 글썽이는 말투로 대답했다.

 "몰랐어. 정말 몰랐어. 그때는 그냥 유찬이었는데. 그냥 찬이라는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그 유찬이 이 유찬이야. 정말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자세히 보려고 그제는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눈물로 인하여 방호구 창에 벌써 성애가 끼여 잘 보이질 않았다. 가득이나 어두운 실내에 방호구 모자까지 착용하고 있어 앞이 잘 안 보이는데 따뜻한 봄이라고는 하여도 지하라 기온이 낮아 성애까지 끼여 분간이 되질 않았다.

 

 민희가 답답한지 화를 내며 말했다.

 "아이, 왜 안 보여. 왜 너 얼굴이 안 보여. 너 유찬 맞는 거지. 유찬 맞지."

 

 찬이 갑자기 자기 방호구 모자를 벗었다. 그와 동시에 지하 공간 안에 전등불이 들어왔다. 둘이 서있는 내부가 일순간 환하게 밝아졌다. 환하게 밝아진 세상에 찬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민희도 방호구를 다급히 벗었다. 서로의 얼굴을 이제는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유찬이. 정말 그때 유찬이. 내 앞에 당당히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살아 있었네.'

 

 '오민희가 울면서 나를 보고 있다. 살아 있었어.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었어.'

 

 둘은 기쁨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17년 만의 만남이다.

 

 

 Y23 구역 트레일러 앞에서 찬과 민희가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쉬고 있는 두 사람의 그림자를 보면 정오임을 알 수 있다. 긴 그림자가 만들어질 때 지하에 들어갔다가 짧은 그림자가 만들어질 때 지상으로 올라왔다.

 

 쉬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는 피곤함도 보이고 힘들었음도 알 수 있다. 특히 아직까지도 흐르고 있는 얼굴의 땀은 그들이 얼마나 힘든 일을 했음을 보여준다.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라 두꺼운 겉옷인 방호복과 방호구를 입고 움직이니까 땀이 날 수밖에 없었다.

 

 둘은 슬쩍슬쩍 서로를 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상대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 해맑게 웃기만 했다. 하지만 둘 다 서로 먼저 말을 걸지는 못했다.

 

 17년 만이다.

 9살 이후로는 전혀 보지 못했던 친구다.

 

 지하에 있을 때 서로를 알아보고 너무 기쁜 나머지 민희는 마냥 울기만 했고 찬은 기뻐서 웃기만 했다. 그때도 서로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고작한다는 말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이 전부였다. 주변 사람의 죽음을 보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예전 사람을 만나는 것은 눈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는데, 너무 놀라 눈물 밖에 나질 않았는데, 행복해 마냥 웃음만 나왔는데. 뭔가 말을 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혼돈 시기라는 장벽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민희가 알고 싶었던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라는 말을 하려고 해도 혼돈 시기가 들어가야 했다. 찬이 알고 싶었던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하려고 해도 혼돈 시기가 들어가야 했다.

 

 기억의 평형 저울이 기울어져 제자리로 돌아오질 않았다. 둘에게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더 이상의 말을 이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뒤로는 사무적으로 처음에 하려던 일을 했다. 민희는 전날 자기가 본 것들을 설명하였고, 찬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림자의 주거지에 대한 조사를 했다.

 

 하고 싶었던 많은 말을 가슴에 담아 두고 그들은 밖으로 나왔다. 지금까지도 그 상태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때 때마침 P-휴고가 시원한 음료수를 가지고 그들 앞에 왔다. 그걸 두고 서로 먼저 받으라는 말을 하다가 말문이 열렸다. 음료수를 받아 마시면서 그제야 입을 열었다.

 

 찬이 음료수를 마시며

 "며칠 전부터 널 찾고 싶었는데."

 

 민희가 찬을 똑바로 보며

 "왜?"

 

 찬이 민희의 눈빛에 미소를 지으며

 "알고 싶은 것이 있었어."

 

 민희가 호기심을 느끼며

 "뭐?"

 

 찬이 바로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게 말이야... 그게..."

 

 찬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하다 말고 그녀의 모습과 그들이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그가 질문하려고 했던 말은 아직도 A.I나 로봇을 연구하냐 였는데 현실에서의 그녀 모습은 그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다.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실례를 범할 것 같았다.

 

 민희도 찬이 물어보려는 말이 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뭔데?"

 

 찬이 손사래를 치며

 "아냐, 아냐. 다음에. 다음에 시간 되면. 그때 물어볼게."

 

 민희가 쿨하게

 "뭐 그렇게 해.

  참, 아까 다 말 못한 것이 있는데. 우리 데이비드... 아니다. 피에스 파이브 말로는 거기에 대략 열 명 정도가 살았던 흔적이 있었데."

 

 찬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열 명이나? 그게 가능할까? 식량을 구하기도 어려울 텐데."

 

 "나도 그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에이아이의 분석이 그렇게 나왔어.

 ...

  그런데 어떻게 해서 알티에프가 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지?"

 

 "그건 나도 잘은 몰라. 무슨 이유에서 그들에게 그게 없는지 알 수는 없어.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경우거든."

 

 "그렇구나. 그럼 넌 이런 경우 몇 번이나 봤어?"

 

 "나도 직접 경험은 이게 처음이야. 이야기를 듣거나 사례를 본 것은 한 6개월 전쯤에 본 기억은 있어. 그때 어떤 남자가 잡혔었어."

 

 "그렇구나. 그럼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네."

 

 "응, 몰라. 그냥 알티에프가 없다는 정도. 그게 전부야."

 

 그렇게 말하고는 찬이 빙그레 웃었다. 그의 웃는 모습을 보고 민희도 덩달아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다시 웃기만 했다.

 

 민희가 자신도 웃으면서

 "왜 웃어?"

 

 찬이 연신 웃으며

 "그냥, 그냥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아서. 이런 이야기라도 서로 할 수 있어 그냥 좋아서."

 

 "피. 싱겁기는."

 그 말을 하고는 민희가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찬을 봤다.

 "그런데 넌 여자 친구 있어?"

 

 찬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없어."

 

 그 말에 민희가 다시 밝게 웃었다.

 

 이번에는 찬이

 "그럼 넌?"

 

 민희가 고개를 저으며

 "나도 없어."

 

 "그렇구나. 참, 친구들은..."

 

 찬은 자기도 모르게 지난번 B 시의 일로 보았던 친구들과 모여있던 모습이 기억나 그 친구들에 대하여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PSWC 규정상 그렇게 하면 안 된다. PSWC가 국민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이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요원들은 일체 자신이 본 영상에 대하여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그게 떠올라 다급히 입을 닫았다.

 

 민희가 대뜸

 "친구? 친구는 있지. 참, 그리고 보니 너도 알겠다. 설민이 지현이라고. 그때 거기 같이 있던 친구들인데."

 

 민희는 찬의 속내는 모른 채 그냥 친구라는 말에 두 명이 떠올라 말했다. 특히나 그들 두 명도 B 구청 스포츠 센터에 같이 있었던 친구들이라 찬이 기억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찬은 잘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다. 이마를 만지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잘... 생각이 안 난다. 보면 알지 몰라도 이름 들어서는 모르겠다."

 

 민희가 이해한다는 듯

 "그렇지. 얼마 만인데. 얼굴을 어떻게 기억해. 맞아. 다음에 보면 알아보겠지."

 

 민희가 다급히 얼버무려 덮으려 했다. 자꾸 따지고 들다 보면 분명 혼돈 시기의 일들을 들춰야 하기 때문이다. 찬도 그렇게 마무리되는 것이 좋았다. 겨우 1, 2년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보았던 친구들이다. 그것도 민희만큼 친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다. 민희야 그때는 둘이 매일 붙어 있다시피 같이 있었던 친구지만 다른 두 명은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거기다 그에게도 혼돈 시기는 불편한 존재였다.

 

 그때 로이와 레온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큐브가 로이를 통해 말했다.

 "근무 시간이 끝나가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같이 회사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만 먼저 복귀할 까요."

 

 "너희들 먼저 가. 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있다가 퇴근할게."

 

 찬의 대답에 옆에 있는 민희가 미소를 지었다.

 

 "예,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큐브 너도 수고했어. 내일 봐."

 

 민희도 인사를 했다.

 "수고했어요."

 

 자기와 관련된 A.I가 아님에도 마치 사람에게 인사를 하듯이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찬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봤다. 조금은 생소하다는 느낌이다. 찬도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은 A.I와의 대화에서 개인용 A.I가 아니면 사람처럼 대우하지를 않았다.

 

 민희가 자기를 계속 보고 있는 찬에게

 "왜?"

 

 찬이 미소를 지으며

 "아니, 휴고에게 인사를 해서."

 

 "난 일 끝나면 에이아이에게도 인사를 하고 같이 일한 휴고가 있으면 그 휴고에게도 인사를 하는데."

 

 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그렇구나. 참, 퇴근하면 뭐 해?"

 

 민희가 그 말에 해맑게 웃었다. 아마도 언제 그 말을 하려나 기다렸던 모양이다.

 "약속은 없어.

 ...

  너 약속 없으면 우리 같이 점심 먹을까?"

 

 찬이 좋다는 듯이 흔쾌히 대답했다.

 "좋지. 점심같이 먹자.

 ...

  어디 보자 어딜 가면 좋을까?

  그래, 좋은 곳이 있다. 거기 가자."

 

 둘은 서로를 보며 다시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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