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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언더독
작가 : 김예담
작품등록일 : 2016.9.7

밤낮을 안 가리고 축구공을 차던 아이였다. 꿈을 품고 15살에 영국으로 떠나지만 4년 뒤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꿈을 접어야만 했다. 좌절에 젖은 그는 거친 세상에 내던져졌다. 그에게 남겨진 건 고졸이라는 학력 뿐. 그러나 전혀 새로운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2분
작성일 : 16-09-07 13:10     조회 : 324     추천 : 2     분량 : 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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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커룸은 고요하면서도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감독님은 전술과 움직임, 상대대응에 대해 설명을 하셨으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심한 부담감은 중압감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시우, 떨리는가?”

 

  감독님이 웃으며 말했다.

 

  “약간 흥분되네요.”

  “자네 이름 뜻이 무어라 했지?”

  “‘가뭄에 단비’입니다.”

  “좋군. 그럼, 오늘 단비가 되어 땅을 적시도록.”

 

  수많은 경기를 치러왔다. 우리는 피가 나도록 달렸고 부딪히고 이겨왔다. 그래서 우린 이 마지막 경기에 설 수 있는 거다. 사활을 걸어야 한다. 모든 걸 다 쏟아부어야 한다. 제자리에 머물기 원치 않는다면 그래야만 한다.

 

  “잘 들어라. 작년만 해도 우린 리그1(잉글랜드 3부 리그)에 있었고 시즌 초반만 해도 우리를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감독님은 큰 목소리로 모든 선수의 사기를 자극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나? 어디에 있나!”

  “승격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모든 선수가 일제히 소리쳤다.

 

  “이번 시즌을 6위로 끝마쳤을 때도!(잉글랜드 챔피언십은 1, 2위는 자동 승격, 3위부터 6위는 승격 플레이오프를 거쳐 1부 리그로 승격된다) 많은 이들이 우리의 승격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에 있나!”

 

  감독은 한 번 더 선수들을 고양시켰다.

 

  “우린 프리미어리그(잉글랜드 1부 리그)로 간다!”

 

  주장 캠벨이 우렁차게 외쳤다.

 

  “더 체리스!(잉글랜드 축구팀 AFC 본머스의 애칭) 더 체리스! 더 체리스!”

 

  선수들은 웅장한 목소리를 내며 온몸으로부터 아드레날린을 폭발시켰다.

 

  “마지막이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우린 비상하지만 진다면 제자리를 머물 거다. 우리 눈앞엔 승격이 있다. 이건 내가, 너희들이, 이 구단을 지지하는 모든 팬이 바라던 소망이다. 124년의 기구한 역사를 가졌지만 단 한 번도 1부 리그를 밟아본 적 없다. 그러나, 우린 역사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너희들은 역사에 남을 인물이 될 순간에 있다.”

 

  역사에 남을 인물이라……. 온몸에 전율이 흘렀고, 심장은 기폭제처럼 뛰었다.

 

  “물론 우리의 상황은 좋지 않다. 다들 알다시피 바디(팀의 주포)와 오스틴(팀의 핵심 수비수)이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우린 변치 않는 한 팀이란 걸 상대에게 똑똑히 보여줘라! 짓밟고, 진정한 팀이란 무엇인지 가르쳐라! 오늘 그들이 무릎을 꿇게끔 만들어라! 언더독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가 알려줘라!”

  “더 체리스! 더 체리스! 더 체리스!”

 

  선수들은 라커룸이 찌그러질 듯한 기합을 냈다. 우리는 용기와 자신감과 흥분에 고취되어 있었다. 내게도 더 이상 두려움과 떨림이 남아있지 않았다. 상대 팀을 마구 짓밟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을 뿐이었다.

 

  주장 캠벨은 마지막 기합을 외쳤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오늘을 즐기자!”

 

  경기는 시작되었고 예상대로 치열했다. 이번 시즌을 4위로 마무리한 상대 팀과의 전적은 두 번 다 패였다. 그러나 우린 기죽지 않았다. 6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우린 3위로 진출한 미들즈브러와 준결승을 치렀었다. 1차전 결과는 3 대 0. 대패였다.

 

  하지만 2차전에서 4골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일구며 축구계와 모든 팬을 놀라게 했다. 그렇다. 공은 둥글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게 축구다. 이곳에 불변의 진리란 없다. (잉글랜드 챔피언십 승격 플레이오프는 3위와 6위 그리고 4위와 5위의 준결승전에서 이긴 팀들이 만나 마지막 결승을 치른다)

 

  한골을 뒤진 채 전반전을 마쳤다. 특히 체력적으로 지친 나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오랫동안 쉬지 않고 많은 경기를 치러온 탓이었다. (체력적 기반이 불완전한 십 대 선수들은 쉽게 지친다) 가쁜 숨을 고르며 전반전을 되새겼다. 순간, 순간의 실수를 떠올리면서 이렇게 플레이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다음엔 더 빠르게 판단해야지라며 자책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나를 마치 개처럼 따라다니는 상대 팀의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지치지도 않고 바짝 견제하는 그 때문에 나는 영향력을 잃었다. 그를 따돌릴 해안이 필요했다.

 

  감독님은 전술적 변화를 꾀했다. 중앙에 있던 나를 왼쪽 윙으로 배치하고 전방엔 투톱을 세웠다.

 

  “기회가 날 때마다 저돌적인 돌파로 수비를 흔들어라. 상대 수비수들은 그리 노련하지 않다. 최대한 파울을 얻어내고, 수비의 견제가 심해지기 시작하면 빈 곳을 누비는 투톱에게로 공을 건네라.”

 

  난 에디의 지시를 주의 깊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반전이 시작됐고 측면으로 이동한 덕분에 극심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후반 중반부에 우린 동점을 만들었다. 내가 측면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주장 캠벨이 타점 높은 헤딩으로 상대 골문을 흔들었다. 환상적인 세트피스 득점이었다. 모든 선수가 흥분에 고취되어 열의를 토해냈다.

 

  “집중하자! 한 골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난 믿는다. 여기가 우리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한 골. 때때로. 아니, 자주. 축구에서는 한 골로 승부가 가려진다. 잔혹하다. 한 골, 도대체 한 골엔 무슨 의미가 담겨있기에 이 많은 선수가 모든 걸 쏟아붓는 걸까. 이제야 좀 알겠다. 그것은 내가 흘린 땀이고, 부러진 다리였으며 멍든 횟수고 좌절한 시간이고, 한이 맺혀 흘린 눈물이리라. 한 골. 이것 때문에 그 모든 걸 견뎌왔다. 그렇기에 여기에 설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모든 게 처음으로 돌아갔다. 원점을 만든 이후 우리는 넘치는 자신감으로 경기에 임했다. 덕분에 흐름을 쥐며 경기를 할 수 있었다. 적지 않은 기회가 오고 지나갔다. 한탄했다. 한 골이 이렇게 안 들어가다니! 땅을 내려쳤다. 어느새 경기는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지친 선수들의 움직임은 둔해졌다. 그러나 쉬지 않고 달리고 공을 뺐었다. 절대 질 수 없으니까. 지면 모든 게 끝나니까. 그럼 정말로 슬플 테니까.

 

  그래서 개가 된 듯 마냥, 말이 된 듯 마냥 미치도록 뛰었다.

 

  그리고 난 쓰러졌고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심장 수술을 받고 반년 동안 피나는 재활치료를 감행했다. 듣고 싶었다. 다시 그라운드에서 뛸 수 있다고. 희망을 품고 그라운드를 다시 누비는 꿈을 꾸며 인고의 세월을 버텼다.

 

  “유감이지만 좋은 소식을 건넬 수 없게 됐습니다.”

 

  의사의 말이었다.

 

  그렇게 내 축구인생은 허무하게 끝났다. 겨우 열아홉 살 때 맞은 비극이었다.

 

  예전에 깨달았어야 했다. 언더독은 바닥을 벗어나려 하면 안 된다는 걸.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때 지켜야한단 걸. 그걸 모르고 더 나대다가는 나처럼 된다는 걸. 너무나도 늦게 이 사실을 깨달았다.

 

  “김시우! 누가 너 찾는다.”

 

  점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며 내게 외쳤다.

  “누가요?”

  “몰라 인마!”

 

  늘 싸가지 있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저놈을 저럴까. 언젠간 죽이고 싶다.

 

  “10번 테이블로 가봐.”

 

  거두절미하고 10번 테이블로 향했다. 누가 날 찾는 거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날 찾을 사람이 누가 있지…….

 

  “손님, 절…….”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못 볼 걸 본 표정이구나.”

  “감독님…….”

  “긴말 필요 없고 좀 맞자. 이 자식아.”

 

  박찬수 감독님은 일어나셔서 날 안아주었다. 아주 따뜻하게.

 

  “안다. 다 알아.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죄송합니다. 먼저 찾아뵙지 못해서…….”

  “앉아. 긴히 사정 말해서 일 안 해도 되니까.”

 

  저 싸가지가 그걸 허락했다고? 헛웃음만 나오는군.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지?”

  “얼마 안 됐습니다. 아직 한 달 월급도 못 받았는걸요.”

  “그럼 감독님이 한 잔 사야겠구나. 네가 날 몇 살 때 만났지?”

  “아홉 살입니다.”

  “허허. 시간이 많이도 흘렀구나. 너랑 이렇게 술잔 기울일 지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말이다.”

  “네.” 감독님이 따라주시는 술을 받으며 이어 말했다. “여태껏 연락 못 드려 죄송합니다.”

  “아니다. 많이 힘든 거 안다. 그래 안 힘들면 이상 한 거지. 감독님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니?”

  “당연하죠.”

  “한번 말해봐라.”

  “무서웠습니다. 음…….”

  “그게 끝은 아니겠지?”

 

  감독님은 무언가를 더 바라는 눈빛이었다.

 

  “배가 지금처럼 튀어나오지 않으셨어요.”

  “하하하. 맞네! 맞아! 그때만 해도 군살 하나 없었지. 근데 지금 봐라. 영락없는 아저씨가 돼 버렸어.”

 

  감독님은 호쾌하게 웃으며 두꺼운 뱃살을 한 움큼 잡았다. 정말로 주름살 하나 없던 얼굴도, 탄탄한 허벅지도, 날렵해 보이던 체구도 감독님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허나 날카로운 눈빛만은 여전했다.

 

  “영원한 건 없다는 거겠지. 나도 너도 언젠간 늙어 죽지 않겠니? 축구……. 아무리 오래해도 15년 더 하겠냐. 언젠간 그만 둬야하는 날이 오기 마련이지. 인생도 똑같아. 언젠간 놔야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야. 영원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 네 때가 중요한 거야. 네 청춘도 저만치 달아날 테니. 아깝지 않겠니? 멍하게 이 청춘을 떠나보낸다면.”

 

  난 그저 소리 없이 소주를 들이켰다.

 

  “소리는 들었다. 많이 방황하며 지내고 있다는 거.”

  “죄송합니다. 이런 모습 보여드리기 원치 않았는데…….”

  “아니, 뭐가 죄송하다는 거야. 죄송하지 않아도 돼. 이렇게 널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니까.”

  “감사합니다. 저도 얼른 정신 차리고 새 미래를 생각해야죠.”

  “축구에 관한 직종으로 나아갈 생각은 전혀 없고?”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등록금은커녕 동생들 학비 마련하는 것도 빠듯합니다.”

  “유정이가 이제 몇 살이지?”

  “열여덟 살이요. 아주 중요한 때고 필요한 게 많을 텐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네요…….

 

  감독님이 따라 준 술을, 고개를 돌리고는 쭉 들이켰다. 씁쓸하면서도 쓰라렸다.

 

  “쉽지가 않구나. 참……. 인생 좆같은 거다. 분하지? 그래. 안 분할 수가 없겠지.”

  “어릴 땐 냄새도 역하고 몸에도 안 좋은 담배를 외삼촌이 왜 피실까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뿜어져 나가는 담배 연기와 함께 조금이나마 제 한시름, 억누를 수 없는 분함, 기운이 쫙 빠지는 좌절감들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걸 보면 이젠 끊을 수도 없어요.”

  “그래도 담배는 피면 안 되는 거야……. 근데 여긴 담배 없인 버티기 힘든 곳이지. 이거 참, 담배 값이 올라서 삶만 더 팍팍해졌어.”

 

  감독님과 함께 금세 두 병을 비웠고 한 병을 더 주문했다. 술로 위로받고 담배로 숨통을 틔웠다. 삶을 지탱해내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것들마저 없었더라면 내 삶과 일상은 붕괴되지 않았을까.

 

  “웃긴 건 이젠 더 팍팍해질 삶도 없습니다. 감독님.”

 

  씁쓸한 웃음을 지어내 보였다.

 

  “그래도 담배는 끊어야 한다.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으니.”

  “폐는 괜찮습니다. 심장이 문제인 걸요.”

  “그래. 괜찮은 곳이 있으면 된 거다. 그나저나 얼마 받고 일하는 거냐?”

  “최저시급 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발.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나라이구만.” 감독님은 빈 술잔에 술을 넘치도록 따랐다. “이 좆같은 나라를 위해 건배 한잔 하자!”

 

  또 한 잔, 속 푸는 술을 들이켰다.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얼마나 마셔야 난 괜찮아질까. 언제쯤 다시 술 없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느새 빈 술병은 다섯 병이 되었다. 혀가 약간 꼬이기 시작했고 그건 감독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신만은 멀쩡했다.

 

  “오늘 내가 너를 보고자 한 이유가 있다. 시우야.”

  “말씀하십시오.”

  “영어는 잘하잖아. 그렇지?”

  “그럼요. 영국에서 허투루 지낸 게 아니니까요.”

  “그럼. 영어 선생 한번 해봐라.”

  “영어 선생이요?”

  “그래. 학생들 가르치는 영어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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