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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56.그럼 둘이 언제 잤어요?
작성일 : 17-12-20 20:01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8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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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라가 한국에 왔다고?"

 

 독일에서 결려온 태오의 전화를 받은 철수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로라가 한국에는 왜 온 거야?"

 

  - 그거야 뻔하잖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형이랑 결혼하겠다고 난리 치던 애였는데 한국에 오는 이유야 당연하지 않겠어?

 

 철수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로라가 아직도 철이 덜 들었나 보군,"

 

  - 이번에는 진짜 마음먹고 한국까지 찾아간 모양이던데.

 

  "지가 마음먹는다고 뭐 어떻게 하겠어."

 

 매번 자신을 볼 때마다 결혼하겠다고 말하는 로라를 떠올리며 철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전화에서 들려오는 태오의 목소리는 사뭇 심각했다.

 

  - 이번에는 진심인 것 같아. 로라 할아버지인 회장님께서 나한테 진지하게 물어보시더라고. 로라랑 형이랑 진짜 결혼하는 거냐고.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난 로라랑 결혼할 생각도 없고 가까워질 생각도 없어.“

 

 로라 때문에 괜히 우리 회사에 불통 튀는 거 아니야?"

 

 철수는 살포시 인상을 찌푸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로라는 독일에서 손꼽히는 재벌 가문 크반트 가문의 친손녀였다.

 

 독일에서 철수가 여자 친구가 있을 때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로라를 냉정하게 내치지 못했던 이유는 혹여나 독일에 있는 자신의 회사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였다.

 

  - 아니, 회장님은 로라 성격 아시니까 그냥 해프닝으로 생각하시는 듯했어. 근데 형 그게 말이야…….

 

  "왜 또 무슨 일인데?"

 

 태오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 철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 나도 사실 로라가 한국에 갔다는 거 몇 시간 전에 알았어. 갑자기 전화해서는 나한테 불같이 화를 내더라고.

 

  "로라가 너한테 화를 내? 걔가 왜?"

 

  - 형이 제이 씨랑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로라가 안 모양이야.

 

  "뭐?"

 

 황당한 표정의 철수는 휙 몸을 돌려 사람들이 없는 창가로 걸어갔다.

 

 그가 제이와 함께 산다는 사실을 듣고 로라가 화를 냈다는 것에 철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내가 제이랑 살든 말든 로라가 무슨 상관인데."

 

  - 나도 모르겠어.

 

 태오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 형이 로라 만나서 적당히 기분 좀 풀어줘.

 

  "내가 왜 로라의 기분을 풀어줘야 하는 건데."

 

  - 그래도 형 좋다고 형 보러 한국까지 온 애를 그냥 내쫓을 순 없잖아. 제이 씨와의 관계를 잘 설명하면 로라도 다시 독일로 돌아갈 거야.

 

 그의 마음을 달래려는 태오의 목소리에 철수는 구겨진 표정을 느슨하게 풀려고 노력했다.

 

  - 만약 형이 로라를 냉정하게 내쫓으면 로라가 괜히 제이한테 이상한 해코지 할지도 몰라.

 

  "……."

 

  - 예전에 로라가 형이랑 놀던 여자들 다 뒤에서 혼내 준거 잊었어? 괜히 아무 죄도 없는 제이 씨만 다칠 수도 있다니깐.

 

 철수는 한숨을 내쉬며 넥타이를 한 손으로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 형이 제이 씨한테 피해가지 않게 잘 해결하려고 해 봐.“

 철수는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집안으로 들어온 로라는 이곳이 마치 그녀의 집인 것처럼 성큼성큼 거실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철수는 언제 와요?"

 

 로라의 입에서 능숙하게 한국말이 나오는 것을 듣고 제이는 눈꺼풀을 빠르게 깜박였다.

 

 영어만 하는 줄 아는 금발 머리 외국 소녀인 줄 알았는데 로라의 한국어 실력은 꽤 유창했다.

 

  "아마 일이 끝나면 오겠죠?"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인 로라는 제이에게 다가와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고 픽, 웃었다.

 

  "이럴 줄 알았어."

 

  "……네?"

 

 로라는 작게 고개를 내젓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철수랑 같이 산다는 여자가 있다길래 긴장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네. 괜히 긴장했잖아."

 

 갑자기 찾아와서 이게 무슨 소리야.

 

 로라의 말에 기분이 상한 제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쪽이 철수 여자 친구예요?"

 

  "네, 제가 철수 오빠 여자 친구예요."

 

  "그럼 한 번만 말할 테니까 똑똑히 잘 들어요. 난 철수랑 결혼할 거예요."

 

  "네? 뭐라고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는 로라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제이가 가만히 있다가 하하, 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진짜 재밌다. 로라 씨 대단하네요. 외국인인데 한국말로 개그도 할 줄도 알고."

 

  "내 말이 웃겨요?"

 

  "네, 웃겨요. 다짜고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되게 웃기죠."

 

 약해 보였던 제이가 로라의 선전포고에도 기가 죽지 않고 맞받아치자 로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무안해진 로라는 목소리를 더 크게 높이면서 뻔뻔하게 말했다.

 

  "철수랑 나랑 무슨 사이인 줄 알아요? 이미 철수도 나랑 결혼할 생각 하고 있다고요."

 

  "그건…… 로라 씨의 착각이 아닐까요?"

 

 제이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 했다.

 

 할 말을 있는 로라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제이는 밍크코트를 걸치고 있는 로라를 무심한 표정으로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제이는 로라의 도발에도 조금도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자신보다 키는 훨씬 컸지만, 정신연령은 초등학생 같은 로라를 보며 제이는 오히려 미소를 머금었다.

 

  "실내에서 밍크코트 입고 있으면 덥지 않아요? 일단 코트부터 벗어요."

 

 제이가 그녀의 뒤로 가서 밍크코트를 벗겨주자 로라는 더웠는지 얼떨떨해하면서도 코트를 벗었다.

 

 밍크코트를 받아 든 제이는 옷걸이에 코트를 걸고 거실로 돌아와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

 

  "그러니까 철수 오빠가 독일에 있을 때 친한 사이였다는 거죠?"

 

  "네. 맞아요."

 

  "실례지만 이름이……."

 

  "로라 크반트."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새침하게 대답하는 로라를 보고 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처음 그녀와 마주했을 때 철수의 책에 꽂혀있던 폴라로이드를 떠올리며 로라가 철수의 전 여자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아직도 그녀가 준 상처에 벗어나지 못하고 밤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철수를 생각하면서 제이는 그대로 사고가 정지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여자는 철수의 전 여자 친구가 아닌 것 같았다.

 

  ‘휴우, 다행이야. 오빠의 전 여자 친구의 이름은 로라가 아니라 하나였지.’

 

 제이는 진심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

 

 

  "로라 씨, 정말 열정적이네요. 철수 오빠가 보고 싶어서 독일에서 한국까지 왔다니."

 

  "뭐라고요?"

 

 대뜸 찾아와서 철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로라에게 진심으로 감탁하는 자신을 보고 로라는 놀란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마냥 편해 보이는 제이의 표정에 심기가 불편해진 듯 표정을 잔뜩 찌푸린 로라는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말했다.

 

  "칭찬해줘서 고마워요.“

 

  “천만에요.”

 

 눈이 마주친 로라와 제이.

 

 로라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고 제이는 정중하게 고갯짓으로 인사에 답했다.

 

 그 모습은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서로를 향해 공격하려는 승냥이와도 같았다.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입을 뗀 것은 로라였다.

 

  "철수랑 같이 살고 있다고 들었어요."

 

  "네, 여자 친구니까요."

 

 제이가 ‘여자 친구’라는 단어를 힘주어서 말하자 로라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제이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로라를 보고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진심으로 그녀가 귀여워 보였다.

 

  "그러니까 철수랑 제이가 연인 사이라 이거죠?“

 

  “네. 그리고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고요.”

 

  “같이 산 지 오래됐어요?”

 

  "네, 조금 오래되었어요."

 

 제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로라의 질문에 전부 대답했다.

 

 미간에 더욱 깊은 주름을 잡은 채로 자신을 삐딱하게 주시하고 있던 로라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럼 둘이 언제 잤어요?"

 

  "……네?!"

 

 예상치 못한 로라의 질문에 제이는 할 말을 잃고 입을 살짝 벌렸다.

 

 

 

 ***

 

 

 

 철수는 조금 지친 표정으로 자동차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겼다.

 

 로라가 자신의 집에 쳐들어 왔다는 것을 알고 빨리 집으로 오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일이 많아서 퇴근이 늦어졌다.

 

 철수는 마음 약한 제이가 로라에게 이상한 말을 듣고 기분 상해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서둘러 집으로 들어섰다.

 

 삐, 철커덕.

 

  "제이, 나 왔어……."

 

  "오빠!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나 진짜로 오빠 보고 싶어서 죽을 뻔했잖아요."

 

  "으……응?"

 

 철수는 평소와 다른 제이의 코맹맹이 목소리에 어리둥절하며 눈을 끔벅였다.

 

  "응, 미안, 제이. 오늘 내가 일찍 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늦게 끝났어."

 

  "그럼 미리 연락이라도 해주지. 집에서 오빠가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얼마나 외로웠는데.“

 

 제이가 왜 이러는 거지?

 

 평소와 다른 제이의 행동을 다른 쪽으로 해석한 철수의 표정이 기대감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그때 욕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로라가 눈앞에 나타났다.

 

  "철수, 오랜만에야. 그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 철수는 나 보고 싶지 않았어?"

 

 이미 자신의 집을 제집처럼 사용하고 있는 로라를 보고 그는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쟤가 우리 집에서 왜 목욕을 해?

 

  "그래, 로라도 있었구나."

 

 무덤덤하게 대답한 철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제이를 바라봤다.

 

  "제이, 혼자서 집에 있느라 아주 외로웠지. 미안해. 앞으로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할게."

 

  "알았어요. 오빠. 오늘 한 번만 봐줄게요."

 

 입술을 앞으로 내밀면서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제이를 보고 철수의 입가에서 만연한 웃음을 샘솟았다.

 

 청순하고 얌전한 모습의 제이도 좋았지만 애교 있고 깜찍한 모습의 제이를 보니 신선하고 색다른 기분이었다.

 

  "오빠도 일하느라 많이 힘들었겠어요."

 

  "아니, 일이 뭐가 힘들어. 일은 하나도 안 힘들었지. 근데 다른 건 힘들었어."

 

  "다른 거 뭐요?"

 

  "제이 보고 싶은 거 꾹 참느라 힘들었지."

 

  "어머, 정말요? 나도 그랬는데. 우리 텔레파시 동했나 봐요."

 

 놀란 듯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는 제이는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그럼 저녁은 먹었어요?"

 

  "응, 회사에서 대충 도시락 시켜서 먹었지."

 

 철수는 자신의 넥타이를 손수 풀어 주는 제이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도시락이라니, 그런 거 가지고 돼요? 우리 오빠 좋은 거 챙겨 먹어야 하는데."

 

 철수가 웃옷을 벗으려다가 걱정스럽게 자신을 보는 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제이가 만든 요리에 비하면 별로였지만 나름 괜찮았어."

 

  "그래도 잠깐만. 내가 오빠를 위해서 만든 게 있어요."

 

 제이는 쏜살같이 부엌으로 달려가 접시에 무언가를 담았다.

 

 조금 더 제이를 쓰다듬고 싶었던 철수는 공중에 떠 있는 자신의 손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제이가 사라진 틈을 놓치지 않고 로라가 다가와 철수에게 말을 걸었다.

 

  "철수, 나 철수가 보고 싶어서 10시간 동안 비행기 타고 한국으로 왔어."

 

  "왜?"

 

  "왜, 왜라니 그거야 당연하잖아."

 

 철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로라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봐. 무슨 꿍꿍이로 한국까지 찾아온 거야."

 

  "그거야 물론 철수가 보고 싶어서 한국에 온 거지."

 

 철수는 자기보다 5살이나 어리면서 존댓말을 하지 않는 로라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외국인이라서 존댓말에 익숙지 않다고 하기엔 로라는 한국어를 배운지 어언 10년이 넘었다.

 

  "그래, 그럼 나 봤으면 됐지? 그럼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

 

 얼음보다 차가운 철수의 말에 로라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철수,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너무 한 건 내가 아니라 너지."

 

  "내가 뭐 어쨌다고?"

 

  "정말 몰라서 물어?"

 

 살짝 언성을 높인 철수가 제이가 있는 부엌 쪽을 확인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로라를 바라봤다.

 

  "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온 거야."

 

  "그거야 철수 집이 내 집이니까 그렇지."

 

  "내 집이 왜 네 집이야. 여기는 나랑 제이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없이 아랫입술을 깨무는 로라를 보고 철수는 답답한 듯 표정을 구겼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하겠어? 이제 제이와 난 사귀는 사이고 제이와 내가 같이 사는 곳에 네가 들어온 건 무척 무례한 행동이라고."

 

  "저 눈 찢어진 계집애가 그렇게 좋아?"

 

 철수는 강렬한 눈빛으로 제이를 비하하는 말을 한 로라를 노려봤다.

 

 그와 눈이 마주친 로라는 몸을 움찔 떨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너 지금은 방학 기간이 아닌데 어떻게 한국으로 온 거야?"

 

  "그거야…… 근데 철수가 그런 걸 왜 물어보는 거야?"

 

  "내가 네 선생님이었잖아."

 

 철수는 크반트 가의 한국어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예전엔 선생님이었지 지금은 아니잖아."

 

  "한 번 선생님은 영원한 선생님인 거 몰라?"

 

 철수의 단호한 말에 로라가 다시 한번 입술을 삐죽였다.

 

  "철수, 그게 사실은…… 내가 낙제를 해서 이번 학기에 학교를 못 다니게 됐거든."

 

 로라가 우물거리면서 대답하자 철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대학에서 낙제를 받다니 너 학교생활을 어떻게 한 거야?"

 

  "그게 저번 시험이 너무 어려웠단 말이야."

 

  "낙제를 받았으면 독일에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한국에 오면 어떡해?"

 

  "……."

 

  "당장 독일로 돌아가.“

 

 로라에게 무섭게 화를 낸 철수는 부엌에 있는 제이에게 다가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이."

 

  "네, 오빠, 잠깐만요. 금방 다 돼가요.'

 

 발을 동동 구르며 뒤를 돌아본 제이는 조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괜찮으니까 천천히 해요."

 

 양복 재킷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철수의 시선은 제이에게 꽂혀있었다.

 

 곧 철수의 앞으로 쪼르르 다가온 제이는 접시에 놓은 토스트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아, 아 하세요. 도시락으로는 부족하니까 이거라도 먹어 아주."

 

 철수는 입을 벌려 제이가 먹여주는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바삭한 토스트에 들어있는 부드러운 감자 샐러드에는 제이의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토스를 베어 물어 금방 하나를 뚝딱 해치운 철수를 보고 제이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며 로라의 표정은 더욱더 일그러졌다.

 

  "앞으로 야근하면 나한테 말해요. 제가 도시락 싸서 오빠 회사로 찾아갈게요."

 

  "됐어. 그러면 너 많이 번거로울 텐데."

 

  "괜찮아요. 오빠 주려고 만드는데 그게 뭐가 힘들어요."

 

 철수는 자신의 입가를 세심하게 닦아주는 제이의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철수의 입가에서는 걔속해서 웃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

 

 

 철수는 로라에게 예약한 호텔의 카드키를 내밀었다.

 

  "자, 이거 내가 예약해 둔 곳이야. 오늘 밤은 거기에서 묶고 내일 바로 독일로 돌아가."

 

 자신의 예상대로 철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로라를 밖으로 내쫓았다.

 

 그와 그녀의 집에서 오래 머무르려고 작정을 했었던 듯 로라는 커다란 캐리어를 5개나 싸 들고 왔다.

 

  "철수,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울먹거리면서 그를 바라보는 로라를 보고도 철수는 눈 하나 깜작하지 않았다.

 

 로라를 대하는 철수를 지켜보면 자신이 괜히 섭섭해질 정도로 그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얼른 독일로 돌아가."

 

  "……히잉."

 

 로라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호텔 키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5개가 넘는 로라의 캐리어는 철수가 호텔에서 요청한 운전기사가 대신 날라주었다.

 

 삐, 철커덕.

 

 로라가 밖으로 나가고 시끄러웠던 주위가 겨우 평온해지자 제이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제야 나갔군. 로라 녀석도 얼른 철이 들어야 할 텐데."

 

 철수도 로라를 그렇게 내쫓은 게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 표정이 살짝 어두워져 있었다.

 

  "그래도 여기 계속 있게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맞아. 그거 맞는 말이야."

 

 철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철수 오빠."

 

  "왜?"

 

  "궁금한 게 있는데…… 오빠가 로라의 한국어 과외 선생님이었어요?"

 

  "응, 그래. 로라의 한국어를 내가 가르쳤지."

 

  "그래요? 근데 로라는 거대 기업의 상속녀라는 데 한국어는 왜 배운 거예요?"

 

  "사실 로라의 어머니는 한국분이시거든. 로라의 할아버지인 회장님께서 사람은 자기 뿌리를 알아야 한다며 로라에게 한국어 과외를 시키셨어."

 

 제이는 차근차근 자신에게 설명하는 철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로라의 어머니가 한국인 일 줄은 몰랐네."

 

  "응, 어머니가 한국분이셔서 로라가 한국말을 배운 거지."

 

 가만히 손톱을 뜯고 있던 제이가 다시 한번 슬쩍 물었다.

 

  "근데 오빠랑 로라, 정말로 사제지간이었어요?"

 

 철수가 고개를 돌려 제이를 바라보자 그녀는 얼른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철수는 딱딱한 표정으로 제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녀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왜 그렇게 봐요?"

 

  "예뻐서."

 

  "예쁘긴 뭐가 예뻐요. 나보다 로라가 훨씬 예쁘지.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난 진짜 잡지에 나오는 모델인 줄 알았어."

 

  "아닌데, 진짜 예쁜데. 내 눈에서 하트 뿅뿅 나오는 거 안 보여."

 

 철수의 말대로 그는 그녀에게 홀딱 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치, 유치해."

 

 철수의 닭살 돋는 말에 유치하다고 툴툴댔지만 기분은 좋았던 제이는 살며시 그의 품에 안겼다.

 

  "제이야."

 

  "왜요?"

 

  "설마 질투하는 거야?"

 

 제이는 다시 한번 치, 하고 그를 흘겨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라면 질투 않겠어요?"

 

 그녀의 질투 섞인 목소리에 환하게 웃음 지은 철수가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철수는 품 안에 안긴 제이의 몸을 꼭 끌어안더니 그녀의 얼굴 이곳저곳에 쪽쪽 뽀뽀를 연달아서 해댔다.

 

  "아이참, 왜 그래요."

 

  "예뻐서."

 

  "뭐가 예쁜데요?"

 

  "질투하는 윤 제이. 너무 예뻐서 그래."

 

 철수의 말에 제이는 뿌루퉁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그녀도 그의 입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예쁜 여자한테 뽀뽀 받으니까 기분 좋죠?”

 

  “응, 날아갈 것 같아.”

 

 숨이 막힐 정도로 자신을 끌어안은 철수를 보고 결국 제이도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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