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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혼돈과 함께하는 나날
작가 : ghostS
작품등록일 : 2017.11.15

[현대판타지]

혼탁한 시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어설픈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품 소개 :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끊임없이 기괴하면서 위험천만한 사건사고들이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한 혼탁한 시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어설픈 그들이 움직인다.
아직 제대로 배운 것도 없는 초짜 ‘퇴마사’ 지망생 '선우명'.
그에게 빌붙어 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아애'.

그 둘이 많은 이들과 만나 우역곡절 끝에 힘을 합쳐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괴상한 일들을 해결하고,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존재들과 맞서 싸워 퇴치하는 이야기.

 
#20. 산 자의 정의, 죽은 자의 정의
작성일 : 17-12-18 23:53     조회 : 215     추천 : 0     분량 : 8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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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4. 가제: 억울한 죽은 자와 억울한 산 자

 

 #20. 산 자의 정의, 죽은 자의 정의

 

  “여보세요. 여기 레테 타워 51층인데. 여기 복도에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어요.”

 

  선우명이 119에 전화를 걸어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에도, 윤찬희는 계속해서 유창희의 일행인 듯한 나머지 남자들을 잭나이프로 찌르고 있었다.

  양발을 다쳐서인지, 아니면 윤찬희의 광기에 눌려서인지 남자들은 제대로 도망도 치지 못했다. 그들은 윤찬희의 칼날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미 혀가 잘려버렸는지라 그들의 비명소리는 제대로 울려 퍼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선우명의 귀에는 그 잔인한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거친 신음소리가 충분히 끔찍하게 들렸다.

 

  “니들도 다 죽어야지. 죽어야지. 그래야 공평하지. 큭ㅋ큭크킄.”

 

  끊임없이 중얼중얼 거리며 칼을 휘두르고 있는 윤찬희는 이미 그것이 제 욕망인지 귀신의 욕망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집요하게 칼부림을 즐기고 있었다.

 

  “신목神木!”

 

  귀신에 씐 윤찬희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서 선우명은 전화를 끊자마자 성스런 신목의 뿌리를 다시 불러냈다. 다행히도 이번에도 나무의 뿌리는 제대로 뻗어 나왔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재빠르게 윤찬희의 몸을 휘어 감았다.

 

  “하아, 음음, 저기, 김민정 씨, 이제 그 기분 잘 알았으니까, 이젠……, 적당히 끝내야 해요. 내가 경찰에다 저 사람들 범죄들 잘 신고할 테니까요. 네? 이제 그, 윤찬희 몸에서 나와요, 네?”

 

  귀신과 대화를 시도한 건 선우명도 처음이었다. 선우명이 떠듬거리며 여자를 달래보았지만, 여자 김민정은 남자 윤찬희의 몸에서 나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신목의 뿌리에 몸이 묶여버린 윤찬희는 이를 갈며 선우명을 노려보았다. 그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면 아직 제 분을 다 채우지 못한 게 분명하다. 이렇게 놈들을 다 죽이지도 못한 채 끝내는 걸 납득하지 못하는 듯 했다.

 

  “복.수.해.야.해.복.수.해.야.해.죽.일.거.야.죽.일.거.야.죽.여.야.해.복.수.해.야.해.복.수.해.야.해.죽.일.거.야.죽.일.거.야.죽.여.야.해.복.수.해.야.해.복.수.해.야.해.죽.일.거.야.죽.일.거.야.죽.여.야.해.복.수.해.야.해.복.수.해.야.해.죽.일.거.야.죽.일.거.야.죽.여.야.해.”

 

  남자의 입을 빌린, 여자의 원한에 가득 찬 목소리가 한 음절 한 음절 분명하게 들려왔다. ‘전설의 고향’표 한 섞인 울음소리가 아니라 귀를 괴롭히는 날카로운 울림이었다.

  선우명은 다시 한 번, 자신이 귀신의 목소리 같은 걸 들을 수 없었던 예전이 백배 천배 더 나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선우명도 김민정이나 다른 여자 귀신들의 억울함과 분함을 알 수 있었다. 당사자가 아니니 100% 다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 억울함과 분함을 98%는 알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눈앞에서 산 자가 죽은 자에게 이용당하고, 또 죽임까지 당하는 걸 그저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하아, 그래도 명색이 내가 도사의 제자인데, 그런 식으로 귀신이 사람을 해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순 없다고요, 진짜! 신목神木!”

 

  신목의 뿌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미 반 기절 상태로 허우적대는 세 남자들의 기를 뺏어먹고 있던 다른 여자 귀신들의 형체도 휘어 감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선우명의 의도를 눈치 챈 듯, 분노에 찬 귀성을 내지르며 귀신들이 선우명을 향해 빛의 속도로 날아들었다.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으악!”

 

  귀신들이 순식간에 다가오는 모습이 공포영화 속 장면과 똑같다. 어쩌면 모든 영화 속 귀신들의 움직임은 실제로 작가나 감독들의 경험을 토대로 구현한 게 아닐까 하고, 선우명은 그 와중에서도 상상을 해버렸다.

  어쨌든 그 급작스런 공격에 너무 놀란 선우명은 순간적으로 귀를 막으며 몸을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평소에 알고 있던, 귀신이 몸에 닿았을 때의 끔찍함과 소름끼침이 몸에 바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선우명이 은근슬쩍 눈을 떠 보니, 자신에게 달려들던 수십 명의 여자 귀신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있었다.

 

  “어라? 사라졌다? 이상하네?”

 

  이제껏 선우명을 괴롭히던 악귀들은 대부분 집착의 화신들이었다. 이렇게 눈앞에서 제 스스로 사라지는 걸 여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선우명은 눈앞에 있는 신목의 뿌리에 묶여진 윤찬희와 그 옆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피투성이 윤창희와 세 남자들, 그리고 5101호 문 앞에서 여전히 기절해 있는 납치됐던 여자를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았다.

  멀쩡한 상태는 자기 자신 밖에 없었지만, 선우명은 텅 빈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경계심을 늦추지 못했다.

 

  “짝짝짝.”

 

  “헉, 씨발, 뭐야?”

 

  갑작스런 박수 소리에, 선우명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돌아섰다. 기다란 그림자 하나가 자신이 아까 들어왔던 비상계단 쪽 출입문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었다.

 

  “짝짝짝. 역시 그 나무를 소환하는 언령 능력, 대단한데요.”

 

  방금 전 까지 박수를 치던 두 손을 천천히 마주 끼어 양쪽 겨드랑이 아래에 넣으면서, 기다란 그림자가 말을 걸었다. 얼핏 날카로우면서도 서글서글한, 듣기 좋은 남자 목소리였다.

  하지만 선우명은 갑자기 나타난 이 남자를 경계하는 것을 늦추지 않았다.

 

  ‘나무 소환 능력? 어디서부터 보고 있었던 거지? 게다가, 저 남자 기척을, 왜 난 못 느낀 거야?’

 

  귀신이나 요괴 뿐 아니라 사람의 기운에도 제법 예민한 선우명이었다. 아무리 정신 사나운 상황이었어도, 자신의 등 뒤에서 이 남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한다는 건 이상했다.

  게다가 이 처참한 꼴을 보고선 놀라지도 않는 게 가장 수상하다. 선우명은 일단은 그 수상한 남자에게 자신의 언령조형술에 대해선 숨기기로 했다.

 

  “무슨……, 무슨 말이신지?”

 

  “그런데 지속 시간이 그리 길진 않은가 봐요.”

 

  “네에?”

 

  선우명은 자신의 등 뒤에서 신목의 뿌리가 어느새 사라졌고 윤찬희의 몸이 자유가 된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어리벙벙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때 그 수상한 남자가 성큼성큼 선우명에게 불쑥 다가왔고 무방비로 서 있던 선우명의 몸이 잠시 잠깐 움찔했다.

  조용히 몸을 일으킨 윤찬희가 선우명의 뒤통수에다 잭나이프를 꽂을 찰나다. 선우명도 살기를 느끼고선 몸을 돌리려는 순간, 남자가 선우명의 어깨를 휘어잡고선 자신의 등 뒤로 휙 집어던져 버렸다. 그리고 남자는 바로 잭나이프를 쥔 윤찬희의 팔을 꺾어 버렸다.

 

  “끄아악아악.”

 

  이번엔 여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남자 윤찬희의 비명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이런 경우가 제일 엿 같죠. 귀신에게 완전하게 빙의된 인간을 상대하는 거 말이에요. 산 자로 대할 수도, 죽은 자로 대할 수도 없고 말이지.”

 

  순식간에 복도 바닥에 뒹굴어져 있는 자신의 상태에 놀란 나머지, 선우명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한 채 그저 남자가 하는 행동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남자는 한 손으로 윤찬희의 칼을 쥔 오른 팔을 꺾고, 나머지 한 손으론 윤찬희의 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목을 틀어쥔 손에서 미세한 연기가 흘러나오더니 살이 타는 냄새까지 풍기는 것 같았다.

  그에 윤찬희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고 두 눈에는 붉은 피눈물이 실제로 차오르는 엽기적인 모습으로 변해갔다.

 

  “미친! 뭐하는 짓입니까? 그러다 사람 죽겠어요.”

 

  선우명이 놀라 급하게 몸을 일으켜선 윤찬희의 목을 잡고 있는 남자의 손을 떼어내려 하면서 소리쳤다. 그리고 그때야 그림자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잘 생긴 남자였다. 쌍꺼풀 없는 큰 두 눈이 옆으로 길게 그림처럼 휘어졌고 높은 콧대와 매끈한 입매가 마치 여자처럼 예쁘게 보이기도 했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렸고, 흰색 와이셔츠 차림이다.

 

  당황하며 덤비는 선우명에게 남자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걱정 마요. 안 죽입니다. 이 열은 산 사람은 태우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이 남자 목에서 살타는 냄새 나잖아요!”

 

  “이대로 빙의된 상태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순 없잖아요?”

 

  “뭐라고요?”

 

  “곧 119 대원들도 올 거고. 상황으로 봐선 경찰들도 와야 할 테고. 안 그래요?”

 

  “아니, 그건 그렇지만.”

 

  “이 상태로 이 남자가 잡혀가 봤자, 여자의 한은 풀리지 않습니다. 결국 이 자들의 범죄가 드러나야지만 원한이 풀리겠지요? 그렇지만, 이대론 이 남자는 그냥 정신병자 또라이가 될 뿐이고, 여기서의 사건은 정신병자 남자의 단순 폭력사건으로만 정리될 테지요.”

 

  “……그렇지만.”

 

  “이 남자가 제 정신을 차려서 나머지 남자들의 범죄를 증언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씨익’. 다시 한 번 남자가 눈썹과 입매가 매력적으로 움직이며 미소를 지어냈다. 그 모습에 선우명은 저도 모르게 넋을 잃어버릴 뻔했지만, 이내 제 정신을 차리는데 성공했다.

 

  “아니, 그런데, 도대체 누구신데요? 어떻게 단번에 이 모든 상황을 다 눈치 챌 수 있었던 겁니까?”

 

  “끄.아.아.악.ㅇ.아.앗.악.”

 

  그때 윤찬희 몸속에 숨은 귀신 김민정이 윤찬희 목을 태우는 열기를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는 마침내 윤찬희의 입안에서 기어이 뭔가가 튀어나왔다.

  남자의 입이 찢어질듯이 벌어지더니 그 입 안에서 피투성이의 여자가 얼굴부터 튕겨져 나왔다. 그 모양새도 무척이나 역겨웠던지라, 선우명은 눈을 질끈 감고 신음을 뱉어내고 말았다.

 

  여자가 마침내 다 기어 나오자, 윤찬희는 갑자기 제 정신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피 범벅이 된 자신의 몸뚱이와 자신의 손에 들린 칼, 또 자기가 한 짓들을 보고는 그대로 토악질을 하며 바닥에 쓰러진 채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런 꼴 많이 본 거 같았는데, 아닌가 봐요?”

 

  식은땀을 흘리며 온몸의 소름을 쓸어내리는 선우명을 보며 남자가 물었다.

 

  “하아, 아니, 귀신들이야 많이 봐왔지만…. 사람에게 빙의되어다 다시 몸에서 나오는 건, 제대로 본 적은 이번이 또 처음이네요.”

 

  “흐음, 그렇군요. 그럼, 귀신 퇴치도 처음?”

 

  “음, 네. 사실, 아직은, 아예 그런 쪽으론 아무 기술도 없습니다. 어, 어라?”

 

  저도 모르게 남자에게 고분고분 대답하는 자신에게 선우명은 스스로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런 선우명을 남자는 왜 그러느냐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남자는 이번엔 윤찬희의 입안에서 나온 김민정의 목을 틀어쥐고는 놓지 않았다. 김민정의 목에서도 연기가 피어났다. 이번에는 살타는 냄새가 나진 않았지만 여자의 몸속 여기저기에서 피가 쏟아지면서 역겨운 피 냄새가 퍼졌다.

  원래부터 피바다였던 복도 바닥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을 귀신의 핏물로 새롭게 덧칠해지고 있었다. 남자의 내린 오른 팔에 동동 매달린 여자의 몸은 마치 동물의 사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비록 선우명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귀신이긴 하지만, 그 모양새는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저기, 그런데, 도대체 누구십니까? 역시, 도사님이신가요?”

 

  그러고 보니, 언젠가 우운 사부님이 젊고 유능한 도사 한 명이 있는데 그 남자가 영화배우처럼 잘 생기기까지 하다는 이야기를 얼핏 한 적이 있었다.

 

  “도사라는 호칭은 좀 그렇고, 음, 그냥 지나가던 잡귀 청소부 정도로만 알고 계시면 되겠네요.”

 

  “잡귀 청소부? 그럼, 퇴마 일을 하시나요? 여기에 귀신들이 있다는 걸 알고 오신건가요?”

 

  “그렇게 전문적으로 하는 건 아니고. 이것들이 워낙 시끄럽게 굴어댔잖아요? 뭔 일인가 확인하려고 온 건데,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네요.”

 

  “그런데, 저기요, 그, 귀신 분, 그러니까 김민정씨한테, 왜 그렇게 까지 하는 겁니까?”

 

  귀신의 처참한 모습에 그만 참지 못하고 선우명이 물었다. 선우명의 물음에 예의 환한 그 미소를 지으며, 남자는 말했다.

 

  “일단은 이 귀신이 빨아들인 생기를 빼고 있는 거지요. 그래야 귀鬼를 불태우기 쉽거든요. 보기에 좀 그런가요? 꼭 사람 죽여서 피 빼는 것 같긴 하죠? 하하하. 뭐 결국은 비슷한 이유긴 합니다. 하여튼, 이렇게 제대로 잘 보는 사람도 정말 오랜만이네요.”

 

  “크.으.으.윽.으.윽.”

 

  김민정이 다시 비명을 지르는가 싶더니 남자에게 틀어쥐어진 목에서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저기 그 여자 분, 분한 마음에 그런 건데.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설마, 산 사람의 생기를 뺏고, 결국 죽이기까지 한 귀신을 놓아주고 싶다는 겁니까?”

 

  “아,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래도 이 여자는 억울하게 죽은 거고…….”

 

  “죽은 자가 산 자의 일에 끼어들지 않게 해야 하는 거, 아시죠? 당신도 도사의 일원이라면요.”

 

  “아아. 네에.”

 

  “모든 억울하게 죽은 자가, 산 자를 다 벌할 게 놔둘 순 없어요. 귀신들이 지 맘대로 원한 풀이를 하도록 산 자들의 세상에 방치했다간, 결국 다 악귀들이 될 거고, 그렇게 되면 산 자들이 억울해지는 일이 더 많이 생기니까요.”

 

  “네에.”

 

  하기사 여태껏 그런 악귀들에게 가장 많이 시달렸던 게 바로 선우명 자신이었다. 따지고 보면 살아있는 사람 중 제일 억울한 게 바로 자기 자신인 것 같기도 하다.

 

  “헉. 귀신을 정화(淨化)하는 게 원래 그런 식인가요?”

 

  “정화(淨化)?”

 

  선우명과 정체불명의 남자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김민정의 형체는 남자의 불길에 서서히 까맣게 타들어갔다.

 

  “나는 귀를 정화하기보다는 그대로 소멸 시키는 것을 더 선호하죠. 사실 이미 악귀가 되어버린 이상 그게 훨씬 더 쉽기도 하고.”

 

  선우명은 그동안 그저 귀신을 쫓는 법에 대해서만 물어보았지, 자신은 단 한 번도 귀신을 정화 시키거나 소멸 시키는 것에 대해선 궁금해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마침내 김민정은 결국 그 자리에서 그대로 검은 재로 흩어졌다.

 

  “이런 식이라니. 조금 불쌍하네요.”

 

  “‘불쌍하다’라. 그럼, 선우명씨는 어떻게 하고 싶었는데요? 이 여자의 한을 대신 풀어주곤 여자가 감사한 마음에 스스로 정화되는 모습이라도 상상한 건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더라도.”

 

  “이 여자의 한을 풀어주는 건, 더더욱이나 힘들 텐데. 생각해보세요. 이 남자들 다 죽이지 않고서 그 한이 풀릴까요? 곱게 그저 죽이는 것만으로도 안 될 텐데. 나 같으면, 산 채로 콘크리트에 발라버리던지, 산 채로 근육 하나하나 잘라버리던지, 산 채로 불에 태워버리던지, 온갖 잔혹한 방법으로 고문을 해서 죽이더라도, 이미 내가 죽어버린 한이 풀어질 것 같진 않거든요.”

 

  “하기야, 그렇겠지만요.”

 

  선우명도 수긍할 수밖엔 없었다. 이미 억울하게 죽어버린 한을 무슨 수로 풀 수 있겠는가.

 

  “하지만, 김민정 씨 덕분에 저 여자가 살 수 있었던 거라서. 뭔가 보상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좀 더 편하게 사라지는 방법이 있었다면……. 아니면, 좀 더 있다가 보내는 것도 가능했을 지도…….”

 

  선우명이 5101호실에서 구해 내온 기절한 여자를 흘깃 보며 말했다. 남자도 그 여자를 봤지만, 별 감흥은 없어보였다.

 

  “살아있는 사람들도 어쩌다 남을 돕는 일 한 번 했다고, 언제나 당연하듯이 보상받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그렇긴 하죠.”

 

  “게다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그 여자를 지금 놓아줘봤자 결국은 악귀에요. 그 여자는 이 남자를 이용해 다 복수한 다음, 당신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선 스스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바로 다음으로 제일 먼저 당신의 기를 뺏어먹으려 했을걸요.”

 

  “으으윽.”

 

  그 피투성이 귀신이 자신에게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자 새삼 다시 소름이 끼쳤다.

 

  “귀신을, 그것도 악귀를 동정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죠.”

 

  남자의 충고 같은 말에 선우명은 무안해졌다. 귀신을 두려워하고 역겨워하며 살아온 지 거의 19년이었다. 이제 와서 오늘 처음 본 귀신 하나를 걱정해서 편을 들어주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다.

 

  “……하하, 하하핫.”

 

  때마침, 선우명의 폰에서 요란한 록음악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119였다.

 

  “하아. 이제야 도착했나보네요.”

 

  선우명에게 현재 위치를 한 번 더 확인 하는 전화였다. 그 사이에 남자는 거의 정신줄을 놓고선 울고 있던 윤찬희의 머리를 붙잡고선 귀에다 뭔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정확히 5분 뒤에 119 대원들과 경찰들이 51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도착한 119대원과 경찰들 모두는 최고급 타워빌딩의 최고급 레지던스 복도에서 펼쳐져 있는 처참한 상황에 일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그러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선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대는 젊은 여자를 제일 먼저 수습해서 아래로 내려 보냈다.

  넋을 잃은 채 멍하니 여전히 흉기를 들고 있던 윤찬희도 경찰들 손에 끌려 나갔다.

  윤찬희에게 당한 윤창희의 일행인 세 남자은 다 기적적으로 생명은 붙어있긴 했다. 하지만 윤창희는 이미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산 자의 세상에도 산 자의 정의란 게 있는 법이죠.”

 

  119대원들과 경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남자가 선우명의 귀에다 속삭였다.

 

  “저 사람들은, 생명줄만 겨우 아직 이어져 있다 뿐이지, 이제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겁니다. 귀신을 목격한 정신적 트라우마 같은 것뿐만 아니라 그 신체로는 더 이상 이전처럼 살 수 없을 테니까요. 게다가 결국은 납치, 살인, 이때까지의 그들의 범죄까지 다 드러날 테고요. 뭐 한 놈은 이미 완전히 여자 손에 가버렸지만요.”

 

  도대체 이 남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걸까, 선우명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귀를 불태워 소멸시킬 정도의 실력이니, 어쩌면 사부님과도 친분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아까는 정신없이 그냥 지나쳤던 수상한 점 하나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저기, 그런데 제가 제 이름을 말한 적이 있었던가요? 아까 분명 제 이름을 부르셨던 것 같은데?”

 

  선우명의 맹한 질문에, 남자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다시 환하게 미소 지어주며 말했다.

 

  “선우명 씨 이름을, 전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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