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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신월이 뜨던 밤
작가 : 달리아
작품등록일 : 2017.11.13

신월이 뜨던 밤, 죽은 중전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시각, 서울에서 의문의 사고를 당한 소월. 눈을 떠보니 내가 중전? 소월의 좌충우돌 중전 적응기.

 
가위바위보
작성일 : 17-12-18 23:53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10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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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창밖은 이미 까맣게 물든지 오래였다. 오래도 잤네. 나는 졸린 눈을 비비적대며 기지개를 켰다. 왕이 돌아가고 나서, 저녁도 거르고 지금까지 내내 잠만 잤다. 확실히 높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 피곤하다. 그가 아무리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불편하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잔 게 나름 도움이 된 건지, 어느 정도 열이 내렸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방 청소를 하는 중이었다. 꽤나 바빠 보이기에, 나 혼자 가만히 누워있는 것이 양심에 찔려 같이 하자고 했건만. 그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된다는 타박만 잔뜩 듣고 왔다. 뭔 맨날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되는 일'이 그렇게 많은 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만스레 툴툴대봐도, 그 누구도 들어줄 생각을 않는다. 나쁜 기지배들.

 

 "아무나 거울 좀 가져다줄래?"

 "예, 마마."

 

 오늘도 역시나 습관적으로 거울을 찾았다. 평소에 비해 늦은 감이 있는 것은, 내가 중전의 몸에 서서히 적응을 하고 있다는 방증일까. 옷을 개고 있던 단향이가 서둘러 작은 손거울을 가져다주었다. 문득 일국의 왕후가 쓰는 것이라기엔 다소 낡은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세간살이가 참 단출하다. 아무래도 중전은 검소한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대충 있을 건 다 있는 것 같은데, 대체적으로 규모가 작고 초라했다. 당장 장롱만 해도, 안에 들어있는 것이라고는 옷 몇 벌이 전부다.

 

 '그나저나 얘는 세상 혼자 사나.'

 

 왜 이렇게 예쁘지? 거울을 들여다보던 나는 혀를 찼다. 야위다 못해 깡마른 얼굴도 이렇게 예쁘다니, 살이 조금씩 붙고 나서는 얼마나 더 예뻐질지 감도 안 잡힌다. 그것뿐만 아니라 피부도 좋았다. 세수도 안 하고 잤는데, 얼굴에 기름기 하나 없이 뽀송뽀송하다.

 

 사실 원래의 내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라 더 신기하다. 나는 꾸미는 데는 관심이 전혀 없었으니까. 머리도 거추장스러워서 짧게 쳤고, 인상도 강한 편이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남자로 오해하기 딱 좋았다.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지만.

 

 갑작스레 이강이 떠올랐다. 이렇게 예쁜 부인이 있는데도 바람을 피울 생각을 하다니. 어떤 부분에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역시 남자의 이상형은 새로운 여자라는 사람들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물론 인빈도 입만 다물고 있으면 제법 예쁜 편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중전의 얼굴에 비하면 손색이 있어 보였다. 아닌가? 실은 잘 모르겠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어느새 나한테도 중전의 얼굴이 익숙해진 걸지도 모르지.

 

 "아, 좋다."

 

 누가 이불 속은 언제나 옳다고 했던가. 나는 벌써 삼십분째 하릴없이 뒹굴뒹굴하는 중이었다. 문득 기미상궁을 골탕 먹였던 일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배실배실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호기심 많은 단향이가 질문을 던져 왔다.

 

 "마마,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시옵니까?"

 "응? 그럼, 좋은 일 있지. 그것도 아주 좋은 일."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사옵니까? 너무 궁금하옵니다."

 "아, 너는 그때 자리에 없었으니 모르겠구나. 그니까 그게 말이지…."

 

 나는 단향이에게 대강 설명을 해주었다. 아침을 먹는 내내 계속되었던 나의 빛나는 활약을. 고 나쁜 것들. 내 성격이 만만치 않으니 망정이지, 그전에는 얼마나 더 못되게 굴었을지 감도 안 잡힌다. 모조리 다 되돌려줄 테다. 지금은 내가 힘이 없으니 소소하게 괴롭히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버거워질 것이야. 후후.

 

 "마, 마마…?"

 

 나의 비열한 웃음소리에 숫제 울먹이는 단향이. 음… 그렇게 내 웃음소리가 이상했나? 어느새 다가온 해정이가 그런 단향이의 팔을 제 쪽으로 잡아당기며 고개를 저었다. 마치 저럴 때에는 말을 걸지 말라는 것처럼. 허허, 요 맹랑한 것 보게나. 입을 삐죽이던 나는 특별히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지금은 기분도 좋았을 뿐더러, 굳이 아이들이 하는 행동에 하나하나 태클을 걸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니까. 난 참 너그러운 것 같다. 나는 그 옆에서 분주히 방을 정리하는 연심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연심아."

 "부르셨사옵니까."

 "응.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아침에 왔던 그 기미상궁 이름이 뭐야?"

 "황 상궁이라 하옵니다. 헌데 그건 어찌하여 물으시는 것이옵니까?"

 "그냥.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실은 일부러 물어본 것이었다. 아침에도 말했듯 나는 뒤끝이 아주 긴 편이다. 길고 길다 못해서 아주 하늘을 뚫을 정도다. 황 상궁 이랬지? 한 번 눈밖에 났으니, 이름을 기억해 놨다가 틈날 때마다 뚜드려 패 줄 심산이었다. 생각만 해도 신난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이불 위를 떼굴떼굴 굴러다녔다. 그런 내 모습에 잠시 멍하니 있던 아이들은, 다시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심이가 다가와 주섬주섬 내 이불을 갈아 주었다. 해정이는 바닥을 닦은 천을 빨러 나갔고, 단향이는 내가 벗어놓은 옷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그리고 나는 그냥 바닥에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심심해. 뭐라도 하고 싶다. 바닥도 따뜻하고, 배도 안 고프고, 잠도 잘 잤고, 다 좋은데… 결정적으로 심심하다.

 

 "연심아. 나 심심해."

 "마마. 잠이 오지 않으시옵니까?"

 "응. 이제 안 졸려. 근데 심심해. 해정이 들어오면 게임… 아니 놀이할래?"

 "어떤 놀이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어, 그러니까 이 놀이는 그 어떤 경우에도 아주 공정하게 놀 수 있는,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놀이야."

 

 아이들은 하늘이 내린 놀이라는 말에 혹한 모양이었다. 별 기대 없이 한 말인데, 생각보다 아이들의 호응이 괜찮았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벌떡 일어나 사기꾼처럼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외쳤다.

 

 "바로 '가위바위보'란 놀이란다. 이 세상에 이것보다 공평한 게임은 없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대단한 놀이란 말이옵니까?"

 "어서 가르쳐주시옵소서, 마마. 궁금하옵니다."

 

 흥미가 동한 듯, 연심이와 단향이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해정이도 어느새 들어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근처에 앉았다. 나는 둥그렇게 둘러앉은 아이들을 쳐다보며 손가락을 두 개 펴 보였다.

 

 "잘 봐. 이게 가위야. 이 놀이는 손과 입으로만 하는 거야. 이게 바위, 그리고 이게 보야. 입으로는 '가위바위보'를 외치면서, 동시에 손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서 내는 놀이야. 이해했어?"

 "…가위…바위, 보. 아, 이제 알겠사옵니다!"

 

 셋은 한동안 저희들끼리 손가락을 꼬물대며 움직여보더니, 이내 이해했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간단한 걸 깨달았답시고, 자랑하듯이 뻐기는 모습이 귀여웠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었다.

 

 "이걸로 무엇을 하는 것이옵니까?"

 "이 작은 동작으로 손쉽게 승부를 가릴 수 있지. 자, 일단 내가 연심이랑 어떻게 하는지 시범을 보여 줄게."

 

 어떻게 하면 누가 이기고, 어떻게 하면 누가 지는 것인지 자세히 알려주고 나서야 연심이와 연습게임에 들어갔다. 처음엔 헷갈려 하던 아이들도, 게임 자체가 어렵지 않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의 방식을 완전히 깨우쳤다. 고아원에 살았을 때, 어린 동생들과 놀아주던 것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금세 꺄륵 웃으며 가위바위보 삼매경에 빠졌다. 아직 본게임은 시작도 안 했거늘, 이렇게 즐거워하다니. 나는 혀를 쯧쯧 차며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제동을 걸었다.

 

 "자자, 그만. 뭐든지 내기가 걸리지 않으면 재미가 없는 법이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놀이를 시작할 거야. 지는 사람은 딱밤에 맞는 거다. 자고로 딱밤이란 봐주지 않고 때려야 제맛인 거 알지?"

 

 나는 말을 멈추고 바닥에 손가락을 튕겨 보였다. 딱!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아이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와 대조되게 나는 굉장히 아쉬운 마음이었다. 내 몸이 아니라 그런 건지, 확실히 딱밤의 위력이 종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하여튼… 지면 오늘은 그냥 내 머리통이 내 것이 아니구나, 생각하면 되는 거야. 알겠지? 후후,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기습적으로 주먹을 낸 내 얼굴에 희열이 떠올랐다. 해정이와 연심이의 표정에는 안도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단향이의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단향이 혼자 가위를 낸 것이었다. 이건 반칙이라고 중얼거리는 단향이의 얼굴은 온통 울상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근엄한 목소리로 단향이를 부르며 손짓했다.

 

 "이리 오시지요. 내 그대의 이마에 도장을 찍어드리리다."

 

 우물쭈물하며 다가온 단향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얗게 질린 볼이 푸르르 떨렸다. 그 모습에 동정심이 일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아주 잠깐뿐이었다. 봐주지 말자고 한 장본인이 마음이 약해져서야 되겠는가. 나는 마음을 다잡고 손가락에 잔뜩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악!

 

 "꺄악!"

 "푸하하하!"

 "히이익…!"

 

 단향이는 빨갛게 부풀어 오른 이마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해정이와 연심이는 떡 벌어진 입을 틀어막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들은 경악에 찬 가운데, 나 홀로 신이 나서 웃고 있었다.

 

 "다시 간다, 가위바위보!"

 

 그 뒤로도 아이들의 이마엔 벌겋게 부은 자국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가끔 아이들이 이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끝끝내 내가 중전이라는 이유로 때리지 않았다. 괜히 나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민망한 얼굴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하다가는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기로 했다. 참고로 딱밤 한대 당 소원 한 개가 아니라 그냥 일 인당 소원 한 개다. 그렇게 많이 들어주느니 차라리 어떻게든 맞고 말지.

 

 "근데 나한테 원하는 건 있고?"

 

 내 말에 아이들은 각자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연심이가 가장 먼저 말을 꺼냈다.

 

 "예전이었다면, 소녀는 망설임 없이 마마의 건강을 빌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지금의 마마께서는 굳이 그런 소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건강해 보이시옵니다. 비록 고뿔에 걸리셨지만, 단 하루 만에 거의 나으시지 않으셨사옵니까. 소녀는 그것으로 만족하옵니다. 그러니 당장은 말씀드릴 소원이 없사옵니다. 혹여 다음번에 소원이 떠오른다면, 그때 말씀드려도 되겠사옵니까?"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아주 잠깐 건강해지지 말 걸 그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연심이의 밝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차마 더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다. 곧이어 해정이와 단향이도 입을 열었다.

 

 "소녀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사옵니다. 그러니 민 상궁 마마님처럼, 나중에 생각이 나면 말씀드리겠사옵니다."

 "소녀도 같은 마음이옵니다."

 

 갈수록 태산이군.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 들어주마하고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돌연 단향이가 해사한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마마, 이런 놀이는 어떻게 아시는 것이옵니까?"

 "어? 어 그러니까… 음."

 

 덩달아 해정이와 연심이의 얼굴에도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과 시선을 주고받다가, 이내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우와. 정말 대단하시옵니다, 마마."

 "참으로 재미있었사옵니다. 이마가 아프긴 하옵니다만…."

 

 진심으로 나를 치켜세워주는 아이들. 더욱 부끄러워진 나는 속으로 누군지 모를 가위바위보의 창시자에게 사과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이해해주실 거죠?

 

 "마마!"

 "으, 응?"

 "또 다른 놀이도 있사옵니까?"

 "다른 거?"

 "예. 가위바위보처럼 재미있고, 머리가 덜 아픈 놀이는 없사옵니까? 정말 머리가 소녀의 머리가 아닌 것 같사옵니다."

 

 다른 놀이라… 놀이는 많다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곧장 쉽게 할 만한 놀이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

 

 "많지?"

 "오오. 무엇이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옵니까?"

 

 눈을 빛내며 조금 더 바짝 당겨와 앉는 아이들. 나는 애써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감추며 말을 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제로와 공공칠빵을 가르쳐주었다. 머리가 아프다는 단향이의 의견도 적극 반영해, 벌칙도 인디언밥으로 바꿔주었다. 그저 새로운 놀이에 들뜬 아이들은 내 번뜩이는 눈빛을 보지 못했다. 그걸 봤다면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버텼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이후로, 나는 단 한 판도 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해정이와 단향이는 서로의 등을 더 세게 때렸다는 이유로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연심이의 호통에 바로 화해를 하긴 했지만.

 

 

 

 ***

 

 

 

 그로부터 보름이 지났다. 고작 이 주 만에 참으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자잘한 운동을 시작한 나는 더 이상 밖에 오래 나가 있어도 아프거나 하지 않았다. 살도 부쩍 올랐다. 왕이 돌아간 이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수라간에서 알아서 척척 음식을 보내오니 살이 안 찔래야 안 찔 수가 없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고기는 매 끼니 빼놓지 않고 상에 올라왔다. 다만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어째서인지 수라상에는 생선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동네는 고기보다 생선이 더 귀한가… 나 생선도 겁나 좋아하는데.

 

 "그래도 뭐 요즘 같은 날만 계속된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오늘도 나는 중궁전 안을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스무 바퀴를 돌고, 숨이 조금씩 찰 때가 되자 중앙에 멈춰 스쿼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처음엔 몸이 받쳐주지 않아 벽에 대고 했었는데, 지금은 평지에서도 할 수 있을만큼 근력이 생겼다.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나름 꾸준히 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다시피 스쿼트를 하는 자세란 그다지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다만 푸시업을 하기엔 근력이 너무 떨어져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었는데, 곧장 아이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야만 했다. 단향이와 해정이는 그런 내 모습에 기함하며 해괴망측하다, 제발 체통을 지켜달라는 등 온갖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그러나 그 반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실제로 그 '이상한 행동'을 한 이후에 내 몸이 급속도로 좋아졌기 때문이다. 가끔씩 찾아오는 어의와 의녀들도 놀랄 정도로.

 

 그러나 연심이는 역시 상궁이라 그런 걸까, 뭐가 달라도 달랐다. 지금도 그랬다. 빠르게 포기한 둘과는 달리, 연심이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푹 쉬며 나에게 다가왔다.

 

 "마마. 제발 그런 행동은 삼가주시옵소서. 어찌 그러시옵니까."

 "아 거참, 너는 애가 순하게 생겨서는 왜 그렇게 잔소리가 많니."

 

 괴상한 논리로 반박하는 내게 연심이는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오나 마마. 보는 눈이 많지 않사옵니까."

 "뭐 어때. 부러우면 지들도 하면 되지. 그러지 말고 너도 해봐. 이게 하체에 얼마나 좋은지 알아?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

 "하체는 남자만 중요한 게 아니래. 여자도 되게 중요하댔어."

 

 언젠가 야시꾸리한 책에서 읽은 내용을 그대로 읊어준 것인데, 듣는 연심이의 표정이 영 신통치 않다. 쳇. 두고 보라지. 나중에 후회해도 난 몰라.

 

 "휴우. 헌데 마마. 소녀가 사흘 전에 말씀드린 건 잊지 않으셨지요?"

 "뭘?"

 "…잊으셨사옵니까."

 

 순수하다 못해 순백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나에게 연심이는 마치 해탈한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말끝에 그럴 줄 알았습니다,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입이 댓 발 튀어나온 나는 계속해서 구시렁거렸다. 맨날 잔소리만 하고. 좀 까먹을 수도 있지. 그거 하나 알려주는 게 뭐가 대수라고.

 

 "마마. 계속 말씀드리지 않았사옵니까. 마마께서 살아나신 것을 경하하기 위해, 금일 도성 앞에 백성들이 모일 것이라고 말이옵니다. 그들은 중전 마마께서 직접 나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사옵니다."

 "아… 그게 오늘이었어?"

 "예, 마마."

 

 나는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무릎을 폈다. 확실히 주변에서 이것저것 다 챙겨주니까 점점 멍청해지는 기분이다. 아무려면 나는 가만히 있는데도 알아서 척척 다 해주는데 안 그럴 리가 있나. 처음에는 목욕도 자기들이 시켜준다길래 기겁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스트레칭을 하며 중얼거렸다.

 

 "근데 왜 굳이 날 만나겠다는 거지. 살아난 게 그렇게 신기한가."

 

 하긴 신기하기도 하겠지. 세상에 죽었던 사람이 살아난다니. 그렇게 황당한 일이 어디 있겠어. 팔을 위로 겹쳐 꾹꾹 펴고 있자니, 연심이가 입가를 씰룩거리며 대꾸했다.

 

 "그 이유도 사흘 내내 말씀드렸사옵니다만…. 돌아가시기 전, 마마께서는 백성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셨사옵니다. 굶주린 이들에게는 구휼미를 베푸시고, 병들고 아픈 이들에게는 탕약을 보내셨사옵니다. 그 은혜를 잊지 못해 그러는 것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사옵니까."

 "아 맞다. 그랬지."

 

 나는 마치 정말 내가 한 일이라도 되는 양, 기특하다며 내 어깨를 과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연심이는 눈을 꿈뻑이며 그것도 사흘 전에 했던 행동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물론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말을 덧붙였다.

 

 "그래, 그래. 아무렴 나처럼 착한 사람이 그랬겠지."

 

 들을 때마다 신기해. 제 몸 하나 간수 못하는 주제에 남은 엄청 챙겼다니까. 하여간 착해 빠져가지고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넘겼으나, 속으로는 그런 중전이 너무나도 미련하고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괜히 입맛이 씁쓸했다. 본인보다도 백성들을 더욱 소중히 여겼다는 중전. 나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작게 중얼댔다.

 

 "하늘은 꼭 착한 사람들을 먼저 데려간다니깐."

 "예?"

 "아니야. 그것보다 아직 거기 있었니?"

 "마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사옵니다. 지금부터 단장을 하셔야 늦지 않게 가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아. 그래?"

 

 나는 잠자코 연심이의 말에 수긍했다. 백성들이라… 그들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으니 엄청 놀라겠지? 몇 명이나 오려나, 그래도 명색이 중전인데 한 100명은 오지 않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산에서 봤던 수많은 군중들의 정체를. 나는 막연히 그들이 궁궐의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들보다 한 발 앞서 방으로 들어가던 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뒤를 휙 돌아봤다. 내 단장을 돕기 위해 뒤따라 오던 아이들이 황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있지."

 "예. 마마."

 "왜 생선은 안 나와?"

 "예?"

 

 연심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물어온다. 나는 완전히 연심이 쪽으로 몸을 틀며 짐짓 투정을 부렸다.

 

 "생선 말이야. 수라에 왜 생선은 안 올라오냐고. 내가 아무리 고기를 좋아한다지만, 생선도 만만치 않게 좋아하거든? 특히 고등어. 발라 먹기 쉽고 얼마나 좋아."

 

 방긋 웃으며 말하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서서히 굳어지는 연심이의 얼굴. 나는 그 표정에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래? 혹시 생선이 구하기가 많이 어려운가?"

 "아니… 그런 것은 아니옵니다만…."

 

 연심이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슬슬 이곳에 익숙해졌다고, 지나치게 안일해진 모양이다. 그제야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는 급히 해정이와 단향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얘 왜 이래? 혹시 내가 생선을 못 먹었니?"

 

 내 실수인가 싶어 등골이 싸해졌는데, 의외로 아이들은 금세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엥? 그럼 진짜 뭐지? 머리를 긁적이던 나는 이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곧장 따라 들어오는 해정이와 단향이. 그러나 뒤를 보니 연심이는 아직도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연심아. 감기 걸린다. 빨리 들어와."

 "…."

 "혹시 고등어가 싫어서 그런 거니? 달라고 안 할게. 빨리 들어와."

 

 단향이가 내 앞에 앉아 분을 준비하는 사이, 해정이가 빠르게 연심이의 팔을 잡아끌고 들어왔다. 나는 그런 연심이를 가만히 쳐다보다가는 눈을 감아달라는 단향이의 말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후로도 계속 연심이는 심각한 얼굴로 말이 없었다. 대체 뭐가 문제야. 생선을 올려 달라는 게 그렇게 싫은가. 하긴 생선이 비린내가 좀 독하긴 하지…. 그래서 됐다고 했잖아. 투덜대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자니, 단향이가 물에 갠 연지를 발라주었다. 어… 그런 뜻은 아니었지만, 나름 촉촉하고 좋네.

 

 "헌데 마마, 나가시게 된다면 어투를 바꾸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해정이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왜냐고 말씀하시면 곤란하옵니다. 백성들이 중전 마마께서 평소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사옵니까."

 "번개 맞은 거, 백성들은 몰라?"

 "예. 궁궐에서 일부러 알리지 않았사옵니다. 아아, 마마께서는 모르시는 것이 당연하옵니다. 실은 마마께서 돌아가신 뒤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났사옵니다."

 "아…."

 "누군가 독극물로 마마를 시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저잣거리에 파다하게 퍼졌다고 하옵니다. 백성들은 그 범인이 인빈 마마라는 소문에 분개한 것이옵니다."

 "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년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근데 전에는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예. 전하께서는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사옵니다만, 마마의 시신이 너무나도 멀쩡한 것이 문제가 됐사옵니다. 절벽에서 떨어진 시신이 멀쩡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으니 말이옵니다."

 "그렇네…."

 

 듣고 보니 어딘가 이상하긴 한데, 내심 왕의 말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한국에서 멀쩡히 잘 살던 여대생이 뜬금없이 조선시대 중전의 몸에 들어온 경우도 있는데, 절벽에서 떨어진 시신이 멀쩡한 게 뭐가 대수라고. 해정이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러니 마마께서는 최대한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하옵니다. 백성들이 다시 분노하게 된다면, 전하께서 곤란해지실 수도 있사옵니다."

 "잘 알아 들었어."

 

 뭔가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조선의 국모가 아닌 조선의 비둘기가 된 느낌이랄까. 휴. 왜 나한테 이런 짐을…. 졸지에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내 얼굴에 미약한 짜증이 깃들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 알았다면, 백성들을 보러 가겠냐는 연심이의 질문에 무조건 아니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반성해라, 과거의 나여. 한참을 투덜대던 나는 이내 중전의 말투를 흉내 내 보았다. 최대한 근엄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나를 보기 위해 온 것이더냐."

 

 그러나 해정이와 단향이는 그것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옵니다. 마마께선 그렇게 딱딱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사옵니다."

 "나를 보러 온 것이냐?"

 

 나는 아이들의 조언을 참고해, 내가 기분이 좋을 때마다 짓는 표정과 어투로 말했다. 이러면 됐나? 좋아. 확실히 내 표정이라 그런지 자연스러워. 이 정도면 됐을 거야.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들었다.

 

 "끼익?"

 "…?"

 

 아니, 얘들아. 그 개구리 터져죽는 소리는 뭐니?

 

 "아, 소, 송구하옵니다…. 마마에게 너무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라서 그만…."

 "이 표정이 어땠는데?"

 "마치 인빈 마마처럼…."

 "거기까지."

 

 아니 근데 이것들이? 내 오리지널 표정을 모욕해? 한껏 기분이 나빠진 나는 아이들을 놀려주기로 결심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바보 같고 멍청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 어떠냐! 네가 아끼는 마마가 망가지는 기분이 어때!

 

 "우… 우와."

 "바로 그것이옵니다! 어쩜! 마마께서 지으시던 표정이랑 똑같사옵니다!"

 "…."

 

 솔직히 말해. 너네 일부러 이러는 거지?

 
작가의 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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