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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혼돈과 함께하는 나날
작가 : ghostS
작품등록일 : 2017.11.15

[현대판타지]

혼탁한 시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어설픈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품 소개 :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끊임없이 기괴하면서 위험천만한 사건사고들이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한 혼탁한 시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어설픈 그들이 움직인다.
아직 제대로 배운 것도 없는 초짜 ‘퇴마사’ 지망생 '선우명'.
그에게 빌붙어 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아애'.

그 둘이 많은 이들과 만나 우역곡절 끝에 힘을 합쳐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괴상한 일들을 해결하고,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존재들과 맞서 싸워 퇴치하는 이야기.

 
#14. 우연이 겹치면 우연이 아니다.
작성일 : 17-12-18 23:42     조회 : 229     추천 : 0     분량 : 7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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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 혼(魂)과 백(魄)의 안내자

 

 #14. 우연이 겹치면 우연이 아니다.

 

  “선우명씨! 내가 장우진이라는 남자의 얼굴을 본 것 같아요!”

 

  항상 냉정하고 담담했던 홍란의 목소리가 유독 들떠있었다. 확신에 차 있는 여자의 목소리에, 선우명도 덩달아 목소리가 높아졌다.

 

  “레드님, 정말입니까? 어디서 본 건데요? 갑자기 기억이 떠오르신 거에요?”

 

  “오늘 새벽에요. 아무래도 그 장우진이라는 남자도 클럽에 있었던 것 같아요.”

 

  “네에? 아니, ‘아무래도’ 라니?”

 

  “제가 클럽에 들어설 때, 저한테 말을 건 남자가 있었거든요. 그땐 그게 그 사람인 줄 당연히 몰랐고요.”

 

  “예에? 아니, 그때 저랑 4층에서 이야기 할 때만 해도, 장우진이라는 이름 같은 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

 

  선우명의 책망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에서 홍란의 목소리가 불쑥 치고 들어왔다.

 

  “아니, 그땐 그 사람한테 직접 자기소개를 들은 것도 아니었고, 정말 일, 이분 정도 되는 찰나에 스치고 지나간 정도였다고요. 나한텐 진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선우명씨가 ‘장우진’ 이름 석 자를 들이민다고 내가 기억하겠어요? 오늘 갑자기 그게 생각난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인데?”

 

  “도통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자세히 좀 말해주세요.”

 

  “일단은 지금 병원에 실려 간 사람들 중에 있는지 찾아보라고 우리 쪽 직원을 보내 놓았으니까. 확인되는 데로 저한테 연락이 올 테니까, 기다려보죠. 아, 선우명씨, 지금 사고 보상 문제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자꾸 들어오네요. 나중에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해요. 괜찮죠?”

 

  홍란은 선우명에게 그날 저녁에 바로 만나기로 하고, 그들이 만날 장소와 시간을 일러준 후,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확실히 뒤처리를 해야 할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클럽 [RED]의 소유자 명의는 홍란의 아버지로 되어있지만, 실제 숨겨진 실소유자는 홍란이라는 걸 홍단에게 이미 듣긴 했었다. 그 사실은 클럽 총책임자를 포함한 경영진 중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비밀이라는 것도 말이다.

 

  선우명은 오늘 새벽의 그 난리법석, 난장판 속에 장우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김삼재 노인이 꼭 오늘 새벽, 그러니까 어젯밤에 그곳 클럽 [RED]에 가라고 신신당부한 건, 결국 다 이유가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애와 홍단이 옥상에서 서로 싸워서 정전만 일으키지 않았었다면, 그래서 클럽 안으로 잡귀들이 몰려 들어와 그 법석을 떨지만 않았었다면, 어쩌면 장우진을 거기서 만났었을 수도 있었다.

 

  “아오, 이게 다 아애 너 때문이야. 거기서 왜 괜히 홍단님이랑 싸우러 나가서는. 에효.”

 

  “크킄큭. 배가 고팠다고~. 그럼, 그냥 그 자리에서 사람이든 닭이든 홍단이든 뜯어먹었어야 했나? 크크큭.”

 

  “하아, 미쳤냐?”

 

  “흐음. 누군가에 의해서 결계가 미리 부서져 있었고, 또 그 때문에 옥상엔 노래기인지 지네인지, 여튼 징그러운 괴물들이 이미 침입해 있었어. 그러니 솔직히 정전은 나랑 아애의 싸움 때문이 아니라 그 녀석들 때문에 난 것일 수도 있다고.”

  “그렇지, 그렇지. 깔갈깔. 홍단이 말 한 번 잘했다. 그 자식들이 이미 거길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안쪽으로도 들어왔을 걸. 그걸 인간들이 봤으면, 그건 그것대로 난리였을 걸? 크크큭.”

 

  “하기야, 그건 그것대로 끔찍하네.”

 

  “크크큭, 내가 그것들 다 먹어치워서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거라고~. 깔갈깔갈갈깔깔.”

 

  “하아, 시끄럽다고.”

 

  “흠, 아애 너 좀, 그 웃는 소리 좀 고상하게 고쳐 볼 생각 없어? 생긴 건 멀쩡한데 도대체 왜……?”

 

  “왜에~? 난 좋은 걸. 크크큭크큭. 깔갈깔깔깔깔깔깔.”

 

  아애의 거슬리는 웃음소리에, 선우명도 홍단도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

 

  홍란이 장우진을 기억해 낸 것은 정말이지 기적 같은 우연 덕분이었다.

  클럽 총책임자인 김 팀장님에게 사고 조사반에겐 나선계단 쪽 CCTV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 직후였었다. 홍란의 핸드폰에 깔린 온갖 종류의 SNS 새 글 알림이 미친년 발광하듯 들썩들썩 울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상에는 이미 클럽 [RED]에서 발생한 사고 뉴스와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후기 같은 것으로 온통 도배가 되어 있었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핫한 실시간 이슈는 몇 명 사람이 핸드폰으로 찍어 올린 사고 현장 영상이었다.

  홍란은 다시 인상을 쓰며 인터넷에 올라온 핸드폰 직찍 영상들을 하나하나 확인해나갈 수 밖에 없었다. 천만 다행히도 홍란이 걱정할 만한 심각한 내용들은 없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 속에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생생하게 녹음 되어 있을 뿐이었다. 중간 중간 귀신이다, 큰 뱀이 있다, 뭔가가 자기를 칭칭 감는다, 난리법석 떠는 소리들도 들어 있었지만, 조사단에서도 그리 심각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어둠 속에 갇힌 사람들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공포심을 느낄 수 있으며, 또 그 공포심은 사실과는 다른 무자비한 환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이미 TV 뉴스에 출연한 저명한 병원 의사의 입으로 충분히 설명되고 증명되었으니 말이다.

 

  마음 놓고 영상을 끄려는 그 찰나에, 또 살짝 거슬리는 부분이 하나 홍란의 눈에 띄었다. 아니, 사실 이번엔 영상이 아니라 영상 속의 목소리였다. 거칠고 상스럽고 거부감 들게 하는 마초 남자의 목소리. 마초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종류의 욕설을 해대며, 공포심을 이겨내려고 지랄발광을 하고 있었다.

  분명 홍란은 저 남자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장면 하나가 한순간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야, 장우진 이 병신 새끼, 킥킼킥. 너 완전 미친 거 아니냐? 넌 저 여자가 누군 줄이나 알고 수작질이냐? 이 미친 새끼가. 크큭크큭.

 

  “그래, 맞다. 저 욕쟁이 새끼가 분명히 ‘장우진’이라고 불렀어. 그 남자에게. 그 덩치 크고 촌스럽게 생긴 남자한테.”

 

  그 마초 남자의 목소리 하나가, 홍란이 홍단과 함께 클럽으로 들어오던 그때 그 순간의 기억을 순식간에 불러 일으켰다.

 

 *

 

  7월 26일 밤 12시경, 정전 발생 약 2 시간 전.

 

  “어이, 홍란. 여기 결계가 찢겨져 있다.”

 

  클럽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평소처럼 심드렁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홍단이 홍란에게 말했다.

 

  “뭐, 뭐라고요? 아니, 잠깐만요. 일단은 내가 누나로 되어있으니까, 그렇게 막 이름만 부르는 건 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는데.”

 

  “하아, 그게 중요한 거냐? 좋아, 누나. 여기 풍이가 쳐놓았던 결계가 부서졌어. 뭔가 위험한 게 이 안에 이미 들어가 있다는 거지. 어떡할래?”

 

  “위험한 거라고요? 아니, 위험한 상태야?”

 

  “뭐,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고. 일단 저 안에 요괴가 하나 있는 건 확실해. 기운을 아주 팍팍 풍기고 있거든.”

 

  “우리 홍탁이를 노리고 온 거야?”

 

  “나야 모르지.”

 

  “아니, 그런 걸 알아내라고 있는 거 아니었어?”

 

  “아닌데? 난 너나, 저 닭 새끼가 죽어나갈 상황에만, 니들이 죽지 않도록 처리 해주는 역할이야. 니가 거슬려 한다고 무조건 다 청소해주는 청소부 아니다.”

 

  “아니, 그게 무슨 …… !”

 

  “아, 저기 레드 오어키드님?”

 

  “뭐에욧?”

 

 홍란이 날카롭게 외치며 돌아보자, 눈에 익은 클럽 매니저가 움찔하며 서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저기. 한 시간 정도 전부터, 레드 오어키드님을 기다리는 분들이 와 계십니다.”

 

  매니저의 떨리는 목소리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홍란은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홍단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홍단은 얄미울 정도로 심드렁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아, 손님이라니요? 제가 아는 분들인가요? 이름이 뭐라던 가요?”

 

  “남자 한 분, 여자 한 분이신데요. 남자 분은 선우명, 여자 분은 좀 특이한 이름을 가지셨던데, 아애라던가.”

 

  “이상하네. 모르는 이름이고, 오늘 약속 된 게 없는데 말이지. 아니, 매니저님, 나 그렇게 아무나 막 만나주는 사람 아닌 거 잘 알잖아요?”

 

  평소보다 한층 더한 홍란의 짜증에 매니저는 바짝 긴장을 하며 덧붙였다.

 

  “아, 레드 오어키드님의 본명을 알고 왔더라고요. 게다가, 그 이름을 알려주신 누군가의 추천으로 만나러 온 거라고 해서요. 아마도 중요한 손님일 거라고 생각해서……, 죄송합니다, 레드 오어키드님.”

 

  홍란의 매서운 눈초리를 보자마자, 매니저는 쩔쩔 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매니저를 보자 홍란도 더 이상 그에게 계속 책망을 할 수도 없었다. 홍란은 홍단에게, 어떻게 할까,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널 찾아왔다는 자들이랑, 여길 부순 놈이랑 동일인이면 차라리 상대하기 더 낫지, 뭐. 일단 너랑 이야기를 해 볼 의향은 있다는 거니까.”

 

  “같이 만나 줄 거지?”

 

  홍단이 고개만 끄덕이며 긍정을 나타내주자, 홍란은 매니저에게 지금 당장 그 사람들을 4층 레드 룸으로 데리고 오라고 지시했다. 매니저가 급한 발걸음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홍단이 덧붙였다.

 

  “방에 찾아온 녀석이 이 요괴 냄새를 풍기는 녀석이면 내가 바로 상대할 거야. 만약 아니라면, 내가 다시 나와서 찾으러 돌아다녀야 할 거고. 그땐 너 혼자 방 안 녀석 상대 좀 하고 있어.”

 

  “나 혼자 있을 때 공격당하면, 어쩌라고?”

 

  “구해줄 테니, 걱정 마.”

 

  걱정 근심 가득한 홍란과 달리, 홍탁은 엉덩이를 흔들며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어가더니 이내 혼백들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 걱정도, 생각도 없는, 그저 여유롭게만 보이는 홍탁이 부럽기는 또 처음이었다.

 

  “홍탁이나, 너나, 내가 없을 때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더라도, 뭐, 죽진 않을 거야. 죽기 직전에, 내가 무슨 수를 쓰던 일단 구해줄 테니까. 그러니까 걱정 말고 니 성질대로 다 하고 있어.”

 

  그 말에 홍란은 더 긴장이 되고 말았다. 그 말만 던져놓고 홍단은 이미 빠른 속도로 4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한 발 먼저 파티 룸 안을 확인해보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혼자 남게 되자, 홍란은 갑자기 클럽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의심스러웠다. 자신을 노리고, 감히 천계 홍탁을 노릴 수도 있는 요괴가 여기에 있다. 온 몸에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바짝 긴장을 하며 걷던 홍란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선 것은 그때였다.

 

  “저기요.”

 

  “까악. 뭐에요?”

 

  너무 긴장한 나머지, 홍란의 목소리가 찢어질 것처럼 날카로웠다. 홍란이 자기 앞을 가로 막은 남자를 째려보자, 그도 당황한 것 같았다.

 

  “아니,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우시는 거 같아서. 저기, 괜찮으신 거죠?”

 

  클럽 안의 홀과 스테이지는 기본적으로 어두컴컴했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은 정신없이 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미친 듯이 흔들어대고 있었고 사방은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와중에 이 남자는 내가 우는 게 눈에 들어왔다고? 이 남자, 의심스러운데? 일부러 나한테 접근하는 거야, 뭐야?’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어쩌면 지나치게 친절한 남자가 클럽에서 여자 하나에게 과한 친절을 베푼 것일 수도 있겠지만, 홍란은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순한 표정의 남자에게 더 표독하게 말하며 돌아섰다.

  등 뒤로, 그 친절한 남자를 비웃는, 가래침이 들끓는 것 같은 거슬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장우진 이 병신 새끼, 킥킼킥. 너 완전 미친 거 아니냐? 넌 저 여자가 누군 줄이나 알고 수작질이냐? 이 미친 새끼가. 크큭크큭.”

 

 *

 

  “그래, 맞았어, 장우진! 분명히 장우진이라고 했었어. 아우, 젠장. 다시 씨씨티비 찾아봐야 겠네.”

 

  선우명은 분명 자신을 가리켜, 장우진을 ‘목격한 마지막 사람’이라고 표현 했었다.

 

  “아우, 걱정되게, 목격자니, 마지막이니 그런 말 괜히 들어가지고. 이게 뭐야. 이 남자 나한테 그렇게 말 붙이고 나서, 뭔 일 난건 아니겠지?”

 

  물론 선우명이 찾고 있는 장우진이 이 남자가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또 너무 찝찝했다. 홍란은 정전이 나기 전의 CCTV 영상을 다시 돌려보며, 장우진이 자신에게 말을 걸던 장면을 찾기 시작했다.

 

 *

 

  오늘 하루 종일, 홍란은 무진장 바빴다. 사고 수습도 수습이지만, CCTV영상을 보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또 해가 지면 홍탁이를 데리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나가야만 했기에 마음이 너무 급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매일 매일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직 악귀가 되지 않은 순결한 혼백들은 밝고 신나고 화려하고 흥이 넘치는 장소에 이끌린다. 그래서 홍란은 매일 밤 클럽이나 술집 같은 파티 장소를 빼놓지 않고 다녔었다.

  그 때문에 홍란의 주변에서는 그녀를 그저 돈은 많고 철은 없는 ‘파티 광’에다 클럽 죽순이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거기다 개망나니 싸움꾼으로 정평이 난 의붓동생 홍단까지 데리고 다니다 보니, 홍씨 집안은 남매가 쌍으로 망했다는 소문이 이미 나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문과는 다르게, 홍란은 실제로는 엄청난 책임감의 소유자였다. 예전에는 집안에서 대대로 계승되었다가 이번엔 무려 3대 만에 홍란 앞에 나타난 천계 홍탁이만 해도 그랬다. 그게 행운인지 저주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짊어져야만 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있었다.

  클럽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경영을 일부 맡았던 것만큼, 끝까지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정상 영업을 할 수 있게 되도록,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는 중인데, 강비서가 홍란에게 또 다른 ‘책임을 질 일’을 가져 온 것이다.

 

  “강 비서님, 뭐라고요?”

 

  “새벽에 레드님이 찾아보라고 하셨던 그 김삼재씨 말입니다.”

 

  “네.”

 

  “이미 돌아가신 분이던데요.”

 

  “예에? 아니, 도대체? 언제요?”

 

  “그러니까, 7월 26일. 바로 어제입니다.”

 

  “아니, 어제 그 분이랑 멀쩡히 전화 통화를 한 사람이 있다고요. 돈 까지 송금해줬다는데? 제대로 그 사람 찾은 거 맞아요?”

 

  홍란은 새초롬한 표정의 강비서가 내미는 종이서류를 받아들며 날카롭게 물었다. 서류 속엔 김삼재의 정보가 세세하게 적혀져 있었다.

  김삼재. 남자. 나이 89. 푸른솔 요양병원에서 6년 째 입원.

  사망일시 2017년 7월 26일 오후 1시 48분경. 노병(老病)으로 사망.

 

  “이거 정말 확실해요?

 

  “네, 그 분이 맞습니다. 그 분 핸드폰 번호로 추적한 겁니다. 그 분이 원래 다른 지병 하나 없이 아주 건강하셨던 분이었답니다. 어제도 아주 멀쩡히 잘 다니시다, 낮잠 주무시면서 편하게 가셨다네요. 아, 그리고 그 분이 어제 오전 중에 도우미 분의 도움을 받아서 선우명씨에게 일금 천만 원을 송금한 것도 맞고요. 그 금액이 그분의 남은 병원 입원비를 제외한, 거의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미치겠네, 진짜. 아니 그렇다면, 나랑, 아니 우리 집안이랑 뭔가 얽힌 게 있는 분인가요?”

 

  “아직까지, 나온 건 없습니다.”

 

  “아니, 이런 촌구석에서 6년 동안 처박혀 있던, 거의 90살 노인이에요. 어떻게 제 이름을 알고 있었던 걸까요?”

 

  “사실. 그것이 좀 수상하다기 보다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긴 있었습니다.”

 

  “뭔데요?”

 

  “그 김삼재 할아버님이 자기 입으로 자기가 젊었을 땐 꽤나 알아주던 점쟁이였다고 말했었답니다. 유명한 연예인뿐만 아니라 정, 재계에서도 모두 자기를 찾아 왔었다고요. 요양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심심풀이로 사주풀이를 해주곤 했는데, 제법 평이 좋았다고요.”

 

  “······ 점쟁이요? 아니, 무슨, 뭐, 하여튼 계속 말해 봐요.”

 

  “돌아가시기 바로 전 날, 그러니까 25일에 그 분이 그런 말을 했었답니다.”

 

  “뭐라고요?”

 

  “죽을 때가 되니, 이제야 내 신기가 폭발하는 구나, 하고요.”

 

  “에에? 무슨 말이에요, 그게?”

 

  “저도, 뭐, 말씀드릴 건 여기까지입니다.”

 

  황당해 하는 홍란을 내버려 두고, 강비서는 속편하다는 표정으로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돌아나갔다.

 

  “도대체 뭐가 이래? 어제 아침에, 모르는 남자에게 내 이름을 대며 나를 찾아가보라고 말했다는 노인네가, 어제 오후에 바로 죽었다고? 이게 말이 돼?”

 

  홍란은 자신이 점점 혼잣말만 느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시 혼잣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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