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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드래곤의 성자님
작가 : 펌킨파이
작품등록일 : 2017.7.23

"우린 심장을 공유한 사이잖아요."

"뭐래, 네 멋대로 가져가 놓고선."

레어 안에서 생활하던 히키코모리 드래곤 렌. 어느 날, 웬 인간 새끼에게 드래곤 하트를 빼앗기다? 심장을 두고 벌어지는 달콤살벌한 로맨스 판타지.

 
21화
작성일 : 17-12-18 23:23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3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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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로 어머니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우리의 대화는 단절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손님 중 한 명에게서 병이 옮았다. 성력이 떨어져 갈 수록 그녀는 점점 왜소해졌다.

 

 그건 어머니가 정신을 차린, 몇 안 되는 날 중에 하나였다. 그녀 인생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아들. 이리 와 보렴.'

 

 '..무슨 일이시죠?'

 

 '이런, 엄마가 부르는데 대꾸라니. 어릴 적과 달리 순순하지 못하구나. 내가 제정신인 척하다가 또 화병을 집어던지며 미친년처럼 굴까 걱정하는 거니?'

 

 '..아닙니다.'

 

 그는 분명 '잘 아시는 군요',라면서 비꼬고 싶은 기분도 분명 마음 언저리에 존재했지만 참았다. 저 피골이 상접한 여인을 상대로 말다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으음, 뭐 분명 평소라면야 그랬겠다만, 오늘은 아냐. 내가 지금은 이리 침상에 누워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못하고 시체와 다름 없는 상황인데, 무얼 하겠니?'

 

 그녀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살가죽은 뼈에 붙다 못해 힘겹게 그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듯 했고, 홀쭉하게 들어간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아주 창백했다. 그러한 몰골에도 여인이 얼마나 아름다운 미모였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건 그 이목구비의 배열만 봐도 알 수 있었고, 친아들인 그가 가장 경멸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침대 가까이 다가갔고, 여인은 나지막히 말했다.

 

 '성녀로 태어나서 좋은 건 죽음을 확실하게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거야. 오늘로 내 능력은 바닥을 보이겠지. 지금은 마지막 힘을 짜서 버티는 거에 불과해. 내가 죽으면, 네 어깨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려나?'

 

 '곤란하게 하시는 군요, 끝까지.'

 

 '네가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영광이구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남자를 곤란하게 하다니. 곤란한 아가, 손 좀 이리 내보련?'

 

 저 팔을 뻗는 동작으로 혹시나 팔이 뚝하고 부러지지는 않나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다행스레 그녀는 힘이 조금 들어보였지만 큰 부상없이 동작을 무사히 완료했고, 미심쩍게 내민 남자의 손에는 웬 목걸이가 쥐어져 있었다. 정확히는 모래시계와 유사하게 생긴 유리병에 줄이 달려 있는 형태였다.

 

 '이게 뭐죠? 안에 든 빨간 용액은-'

 

 '말해두지만, 난 이게 뭔지 몰라. 들은 건 이게 무척 희귀한 것이고, 우리 선조가 갖고 있었으며, 삶이 너무 괴로워 죽기보다 힘들어지면 이 걸 삼키라는 언질 뿐.'

 

 '독약이기라도 한가 보죠?'

 

 '그럴지도 모르지.'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걸까. 더 이상 의미 없는 삶을 지속할 바에야 차라리 죽어버리라는 뜻인 걸까? 그녀보다 비관적인 삶을 산 사람도 드물 텐데, 본인이 먹지 않은 이유는 뭘까.

 

 '난 내 인생이 연옥인 줄 알았다. 이 모든 고통을 인내하고 견디면, 신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해주리라 믿었어. 너를 낳기 전까지는.'

 

 '......'

 

 '내 인생은 지옥이더구나.'

 

 '저를, 원망하는 겁니까?'

 

 '..자식을 낳은 뒤 그는 날 찾아와주지 않았지.'

 

 그녀는 오랫동안 눈을 감은 채 말을 잇지 않았다. 아주 깊은 회환과 반성이라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어디 있을지 모르는 '그'의 환상을 머릿속으로 곱씹고 있는지.

 

 '난 널 원망했어. 너뿐만 아니라 그도, 세상도, 신도 원망했지. 그러니 널 내팽겨쳤고 돌보지 않았어. 오히려 네가 날 돌보게 만들었지. 내가 원망스럽지 않니?'

 

 '..글쎄요.'

 

 그녀는 깡마른 몸을 앞 뒤로 흔들며 갈라진 목소리로 깍깍대며 웃었다. 쿨럭, 마른 기침을 몇 번 내뱉은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아들, 대체 누굴 닮아 이리 착하니. 이런 것도 어미라고 동정하는구나, 가엾게도.'

 

 짓궃게도 그 은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언가 올려놓은 모양이었다. 헤집어놓은 머리를 가다듬으며 그가 물체를 확인했다. 루크룸 금화였다. 이건 시중에서는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체 언제...'

 

 '이건 네 동정에 대한 보답. 앞의 것을 쓸지, 뒤에 것을 쓸지는 네 선택이란다.'

 

 '이런 게 있다면 왜 진작 쓰지 않은 거죠?'

 

 '그 남자를 기다리느라 그랬지.'

 

 그가 정말 질렸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외면하듯 여자는 능청을 떨었다.

 

 '뭐, 이 것들까지 써버리면 난 정말로 네게 줄 게 없으니까. 내 삶은 고귀한 성녀로 시작해 천한 창녀로 끝을 맺겠지만, 너는 어디 한 번 이 지옥을 빠져나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발버둥이라도 쳐 보렴.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나는, 이만, 쉬어야...겠어.'

 

 그녀는 태엽이 다한 인형처럼 겨우 마지막 말을 뱉은 뒤 고개를 떨어뜨렸고 다시 들지 않았다.

 

 **

 

 렌은 걱정 됐다. 대체 성직자는 왜 갑자기 사라진 걸까. 감초의 상태는 괜찮은 걸까? 하인이 방에서 물러나자마자 렌은 후, 숨을 내뱉었다. 긴장이 풀리자 폴리모프가 살짝 풀렸나보다.

 

 앞의 큰 거울에는 인간이라 보기 어려운 존재가 앉아있었다. 칠흑같은 머리카락은 어디가고 반짝거리는 붉은 비늘이 솟아났고, 빛나던 호박색 눈도 고동색 동공이 세로로 찢어져 뱀의 눈과 비슷한 형상이 되었다.

 

 렌은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모습이 드래곤 본체로 있었던 때보다 더 길었다. 어렸을 때부터 드래곤이라는 자각이 적은 편이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리모프가 불안정하다는 건 마력이 어지간히 떨어졌다는 소리였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듣자 안주할 수는 없었다.

 

 “누나, 인간 모습 힘들어요?”

 

 “아니. 드래곤한테 불가능은 없다.”

 

 허세를 과하게 부렸나. 생각도 잠시, 렌에게 감초의 초롱초롱한 푸른 눈이 보였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호흡이 다시 들떴다. 이러다가 다시 드래곤 모습이 되겠어. 후, 하, 후, 하. 그리고 못내 중얼거렸다.

 

 "아휴, 저 미모.."

 

 감초가 와서 먼저 칭얼댔다.

 

 "잠을 못 자서 그래요?"

 

 "아냐...조금 피곤하긴 한데, 고작 그 정도로 마법을 못 쓸 정도로-"

 

 꾸벅, 다시 잠이 몰려왔다. 이 상황에서 감초와 가까이 있는 것은 렌에게 힘들었다.

 

 "이제는 괜찮아요. 같이 자요."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말이었다. 품에 폭 안기는 감초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거절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렌은 금방 잠에 들었다. 감초는 렌의 등을 쓸어넘겼고, 렌을 안아들었고, 침대로 갔다.

 

 감초는 다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조그맣고 유해한 전형적인 미소년이었다. 괜찮겠지, 뭐. 감초는 렌 옆에 그대로 엎어졌다.

 

 ***

 

 "좋은 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

 

 주홍빛에 가까운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매력적인 릴리는 예의바르고 활기찬 사람이었다. 비록 이리저리 오지랖이 넓고 잔소리가 약간 많다는 걸 제외하면 거의 완벽한 하녀였다. 손끝도 야무지고 처신도 완벽하다 믿었다. 공작 앞에서 못 볼 꼴이나 경거망동한 행동을 보이는 법은 전혀 없었다. 그녀 자신도 그것을 뿌듯해했다.

 

 오늘도 그녀는 그래야 했다. 아니, 그랬을 것이다.

 

 그저, 나른한 목소리로 일어나던 공작님의 옆자리에 낯선 남자만 없었다면.

 

 "..릴리?"

 

 살짝 긴 은발, 촉촉하게 젖은 푸른 눈. 살짝 하품을 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미남자는, 공식적으로 미혼이지만 아이가 있는 공작님의 옆에 누워 있었다. 심지어 어찌나 짧은 옷을 입었는지 상체가 반쯤 드러나고 있었다.

 

 "꺄아악! 변태!!!"

 

 그러니 그녀의 비명은 용서받을 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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