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과 1월은 두 해가 서로 붙어 있는 연결의 기간이다. 우리들의 선조는 순환되는 사계절을 1년이라 부르고 열두 달로 나누어, 순환되는 시간들을 다른 시간으로 숫자를 매겼다. 이 숫자가 변화하는 시기가 겨울인 까닭은 낮의 길이가 가장 짧아지는 지점에서 길어지는 지점으로 나누는 것이 농업과 축산업을 기반을 둔 활동을 하기에 용이한 법이라서다.
낮이 가장 짧은 추운 계절은 외부에서는 생명이 땅으로 들어가 죽어가는 계절이지만 내부에서는 다음해를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일정한 시기에 봄이 시작된다는 것을 본능이 아닌 이성으로 아는 인간은 그 봄의 직전인 겨울을 준비의 계절로 삼기 시작했다. 이것이 겨울이 신년이 된 이유라고 책들은 이야기한다.
에스틴 제국은 농업에서 기반을 둔 나라답게 농업과 관련된 축제가 많은 편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봄이 깊이 무르익은 5월에 열리는 꽃의 축제와 가을이 가장 깊은 10월에 열리는 추수감사제다. 봄의 축제는 그해 과실수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기원제이며 가을은 당연히 한해 농사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한 축제인 셈이다.
에스틴이 왕국에서 제국으로 발전하면서 농업활동에서 기인한 풍요 기원 축제는 원래의 의미를 잃고,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로 변모되었다. 나라의 기간산업이 농업에서 경공업, 중공업으로 발전된 탓이다.
겨울에는 그저 쉬기만 했던 농민들이 부업을 하고 사시사철 일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제국은 더욱 더 부강해져갔다. 그 덕에 수많은 사람들의 즐길 거리와 복지를 위해 농업과 상관이 없는 일반 축제도 많이 만들어졌다.
신년의 축제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겨울철에는 당연히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계절에는 자신의 일터에서 거의 이동하지 않는 농민들이 도시로 관광을 나오기 때문이다.
한 해 중에 가장 낮의 길이가 짧은 동지부터 다음해 1월 1일까지 수도 린턴에서는 신년을 축하하는 등 축제를 열곤 했었다. 공업의 발달로 화재 걱정이 적은 가스등이 개발되면서 생긴 비교적 역사가 짧은 축제로, 길어진 밤을 몰아내고 낮이 길어지기를 기원하는 것에서 시작된 축제였다.
이때가 되면 황궁과 각종 관공서에는 매일 해가 질 때부터 자정까지 건물의 모습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등불이 달리곤 했었다. 황궁과 관공서가 이렇게 건물에 불을 밝히자 많은 귀족들의 저택이나 중산계급의 가정에서도 자발적으로 건물에 불을 밝히며 축제에 참가하곤 했다.
대도시 린턴의 밤하늘을 장식하는 수백 수천의 등이 빛나는 모습이 마치 밤하늘에 수놓은 별과 같아서, 신년 별 축제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도 린턴에 있는 이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다른 곳에서 구경을 오는 이들도 정말 많았다. 가까이에서는 린턴 근방의 사람들로부터 멀리로는 외국의 관광객이 있을 정도였다.
등은 건물에만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수도 린턴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로엠강의 곳곳에도 등불이 장식되곤 했다. 로엠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곳곳에도 화려한 등불이 장식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관광객을 실은 유람선이 밤의 로엠강을 가로지르며 연말의 정취를 한껏 고취시켰다.
*
나는 싸늘한 밤공기도 잊은 채 유람선 위에서 로엠강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등불의 향연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까만 밤하늘이 그대로 비쳐지는 까만 강에는 밤의 별과 사람의 별이 환상처럼 펼쳐져 있다. 내 곁에는 두툼한 옷으로 무장한 오펠리아가 나와 마찬가지로 감상에 젖어 구경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유람선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외부에 고정된 탓에, 배 안은 예배를 드리는 신전의 안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간혹 자신의 동행에게 중얼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긴 하나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멋지다. 수도의 등 축제에 대해서는 신문으로 기사를 보기만 했지, 이렇게 아름다울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어.”
오펠리아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바깥으로 향했다. 그녀의 하얀 손이 저 멀리 보이는 등불 쪽으로 뻗어간다. 내가 보기에도 제법 아름다운 보랏빛 등불이어서다. 하지만 등불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먼 거리에 있었다.
아무리 수많은 등으로 로엠강을 밝혔다고 해도 온 세계를 덮고 있는 밤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밤이 사람의 거리감을 속이고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있는 것처럼 속이고 있다. 그렇기에 손을 아무리 쭉 뻗어봤자 그녀의 손안으로 등불의 불빛이 들어올 리가 없다.
“사실 나도 너랑 다를 바가 없어. 신문 기사도 읽었고 여기 와봤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야.”
나는 지난 번 삶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대꾸했다. 이전 삶에서 신년 등 축제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사실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얼른 출세하고 싶었다. 마음이 급하고 초조했기에 소중한 시간을 일초도 이런 사소한 일에 허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험공부를 하루 쉬고 신년 축제에 가는 친구들의 초대를 언제나 외면하곤 했었다.
이런 내 삶은 서기관이 되고 난 뒤에도 비슷했다. 신년 축제는 사람들이 일시에 린턴이라는 좋은 곳에 몰리는 시기다. 사람들이 많은 만큼 사건도 많이 일어나는 시기라 서기관이 된 이후에는 축제 기간에 쉬어본 역사가 전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신년에 남들처럼 쉬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시간 없이 바쁘게 사는 삶을 조금은 즐겼던 것 같다.
“테오 네 말을 듣고 린턴에 올라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
오펠리아가 그렇게 말하며 내 팔짱을 꼈다. 겨울용 외투를 넘어서 그녀의 체온이 내 팔로 전이되어 온다.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니 조금 기쁘다.”
“하지만 너와 같이 비서관이 못된 것은 좀 아쉬워.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말이야.”
“그건 내가 잘 설명했잖아. 네가 전하의 비서관이 되면 넌 바로 목표물이 된다고.”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금 올라간 것 같아서, 나는 서둘러 주변을 조금 둘러봤다. 다행히도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목소리가 올라간 것 같지는 않다. 오펠리아가 쀼루퉁한 얼굴을 했다. 영특한 그녀라 머릿속으로는 분명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내 말을 따르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을 말이다.
*
해밀턴으로 내려간 우리는 고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부모님과 합류하여 수도에서 있었던 일을 심도 있게 토론했다. 나와 코닝은 미리 의논을 한 결과 미래를 바꾸지 않는 한에서 정보를 공개하기로 했고, 그 결과 버밍턴 백작가에서 일어난 사건은 더욱 무게감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아드리안 전하의 비서관으로 가는 일에 관해서는 대체적으로 찬성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일단 내가 황궁의 서기관을 도전의 목표로 하고 있었던 데다가, 수도에서 보여줬던 내 모습을 지켜보신 백작님이 극구 찬성 의견을 밝히신 편이었다. 그 덕에 회의적이셨던 내 아버지도 당신의 의견을 접으신 후 찬성 쪽으로 의견을 잡으셨다.
하지만 오펠리아가 비서관으로 가는 사안에는 거기에 모인 모든 이들이 일제히 반대했다. 그 강렬한 반대에 오펠리아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도 잘 할 수 있다고 항변했으나 어른들의 의견은 변하지 않았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아도 아드리안 황태자 전하께서 오펠리아에게 호의 이상의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전부 동의하는 편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이들뿐 아니라 현장에 없었던 부모님도 아드리안 전하의 태도를 자세히 설명하자 심각한 표정이 되셨다.
“오펠리아, 테오와 함께 활약을 하고 싶다는 네 뜻은 잘 알겠지만 나는 딸 같은 네가 괜히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을 보고 싶지가 않아.”
그 자리에서 유일한 여성 어른이셨던 어머니께서 이렇게 운을 떼셨다. 그러자 오펠리아가 어머니께 시선을 주었다.
“구설수라면 어떤 것 말인가요?”
“황태자 전하께서는 아직 젊으시고 미혼이시지. 수많은 귀족의 영애들과 타국의 공주들이 그분의 반려 자리를 탐내고 있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네. 하지만 저는 그 사람들의 경쟁자가 될 생각이 전혀 없는 걸요. 전 테오를 좋아하니까요.”
“사람의 마음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아무리 황태자 전하와 무관한 사이라 해도, 그 사람들의 눈에는 다르게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 그러니 비서관 이야기는 네가 뜻을 접어줬으면 좋겠구나.”
“……네.”
대답은 바로 했으나 그녀의 속에는 무언가 응어리가 남아 있는 상태였다. 아마도 나와 같이 정식으로 비서관이 되어 활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 응어리를 눈치 채시고선 다시 입을 여셨다.
“오펠리아, 입장을 바꾸어서 말이다. 내 아들 테오가 이오나 황녀 저하의 비서관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면 말이다. 나는 기를 쓰고 말렸을 거란다.”
“…….”
“이런 문제인 거야. 그러니 너무 섭섭해 하지 마렴.”
“네.”
그래서 아드리안 전하의 비서관 제의는 일단 나만 수락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아직 열일곱인 내가 그분의 비서관으로 가봤자 비슷한 나이의 대화상대로만 여겨질 게 뻔했으므로, 아마 내가 주목을 받을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여기에 편법이 있었다. 오펠리아가 비서관이 되지 않고서 자연스럽게 수도를 돌아다니며 비서관처럼 활약할 수 있는 편법 말이다. 그것은 바로 오펠리아와 내가 동시에 린턴의 사교계에 데뷔를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