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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홍염 : 회생한 희생자
작가 : 김거북
작품등록일 : 2017.12.18

매번 희생된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회생한 홍염의 이야기.

 
4. 이상한 밤.
작성일 : 17-12-18 22:36     조회 : 220     추천 : 0     분량 : 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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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만월이 뜬 밤이었다. 사위가 어둑해질 때만 해도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떠올라있었다. 달이 유난히 크고 밝아 수면에 비친 달그림자도 희게 빛났다. 쏟아지는 달빛에 만물이 흠뻑 젖었다. 온 세상이 달빛에 잠긴 때문일까. 사람들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훤한 게 대낮같다. 야. 이런 날 그냥 잘 수야 있나."

 

 술병이 기울면 잔 가득 달이 뜨고, 창을 열면 눈동자 위로 달이 가득 담겼다. 사람들은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밝은 달을 즐겼다.

 

 한편, 버들골 용소에도 만월을 즐기러 온 사람이 있었다. 보통은 위험하다고 얼씬도 않는 곳이지만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폭포수가 거침없이 떨어지는 위로 달빛이 덧입혀지니 장관이었다.

 

 술병 하나 달랑 들고 누각을 올라 삿갓을 벗은 처사가 신마저 벗어던지고 난간에 몸을 기댔다.

 

 얼마쯤 지났을까. 달이 하늘 높이 뜨자 댓잎을 스치던 바람이 자욱한 구름을 몰고 왔다. 달빛 아래 진 구름 그림자로 사방이 어둑해졌다.

 

 용소 옆 누각에서 술에 취해 늘어지게 자던 처사 하나가 눈을 뜬 것은 달빛이 완전히 가려질 무렵이었다.

 

 사람들이 늦은 밤 달놀이를 마치고 모두 잠든 시간, 처사는 이른 잠에 푹 빠져있었다.

 

 호랑이가 물어가도 모르게 깊이 잠들어 있는데 뺨으로 차디찬 무언가가 뚝뚝 떨어졌다. 냄새는 또 어찌나 향긋한지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했다.

 

 은근히 풍기는 냄새에 아득히 잠들었던 정신이 서서히 깨어났다. 잠결에 입맛을 다시자 뺨을 흐르던 것이 입가로 흘러들었다.

 

 "감주로다...!"

 

 눈이 번쩍 뜨이자 비친 것은 펄럭이는 머리카락이었다. 아주 굵고, 힘차게 펄럭이는... 한 가닥?

 

 터럭의 끝을 따라 움직인 시선이 점점 위로 향했다. 고개가 뒤로 꺾이고, 아주 커다랗고 푸른 구슬에 겁에 질린 주정뱅이 하나가 선명하게 비쳤다.

 

 "아으..., 아... ... 아!"

 

 말이 되지 못한 비명들이 입안에 흩어졌다 뭉치길 반복했다. 손을 달달 떨며 엉덩이로 뒷걸음질 치던 처사가 네 발로 기어 계단을 내려갔다. 손을 잘못 디뎌 아래까지 굴러떨어지자 정신이 들었는지 벌떡 일어났다.

 

 무릎께가 피로 벌겋게 물든 바지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가랑이를 축축이 적신 처사가 맨발로 버들골을 향해 내달렸다.

 

 "......용이다!!!!!"

 

 길게 이어진 외마디 소리 하나가 용소 위를 떠돌았다.

 

 -

 

 길게 자란 나뭇가지도, 무성한 덤불도 처사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버들골 초입까지 냅다 달린 후에야 꽁지에 불붙은 닭처럼 달리던 발이 멎었다.

 

 풍요와 복을 비는솟대에 매달린 오색 천이 펄럭였다. 바람이 거셌다.

 

 두리번거리던 처사가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평상으로 향했다.

 

 "이만하면 괜찮겠지. 쫓아왔으면 진즉 잡혔을 테고."

 

 자꾸만 하늘을 뒤돌아보면서 주저앉은 처사가 뒤늦게 밀려오는 통증에 몸을 살폈다. 깨진 무릎도 힘껏 쥐어짜낸 근육도 모두 아팠지만 가장 싸르르 아픈 곳은 가슴팍이었다. 아까부터 요 안에 든 것이 튀어나올 듯 거셌다. 가슴을 쿵쿵 두드리는데 뒤에서 싸한 냄새가 났다.

 

 "요 근방에 호랭이를 봤을 리는 없구 어디서 그리 굴렀는감? 이 지린내는 또 무어야?"

 

 처사의 고개가 부러질 듯 홱 돌아갔다. 나무 그늘이 짙게 내린 평상의 구석에 구부정한 노인이 앉아있었다. 곰방대를 뻐끔뻐끔 빠는 노인이 의아한 얼굴로 처사를 살폈다.

 처사는 저도 모르게 긴장이 푹 놓여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수염을 명치께 까지 늘어뜨린 노인의 모습은 세상초연한데가 있어 처사는 순간 자신이 헛것을 보았나 싶어졌다.

 

 "자네 괜찮은가? 입술이 퍼런 것이... 글고 보니 용소 쪽에서 달려오지 않았어?"

 "......괜찮습니다."

 

 처사가 입을 굳게 다물자 노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술 냄새 풀풀 풍기는 외지인이 바지는 척척하게 적시고 득달같이 달려온 모습이라. 괜찮다 하는 모습이 누가 봐도 안 괜찮으니 슬쩍 떠보는 수밖에.

 

 "이상헌 밤이지. 달이 쏟아지더만 곰방 구름이 가렸어야. 요런 밤이면 분명...."

 

 노인이 달이 떠있을 곳을 가늠하는 듯 하늘을 살피자 처사의 시선도 그곳으로 향했다.

 

 "...기둥이 내려올 것인디."

 "기둥...말이오? 노인장도 참. 내가 코흘리개인줄 아시오? 두레박이 내려온 대도 안 믿을 나이에 기둥이 웬 말이오?"

 "잠자코 있어보아. 당장 어디 갈 형편도 아닌 듯 헌데."

 

 여상하게 곰방대를 톡톡 턴 노인이 다시 주름진 입술로 연기를 품었다. 처사는 하늘과 노인만 번갈아보다 평상 위로 드러눕고 말았다. 온 몸이 비명을 질러대 숨 쉬기도 버거운 참이었다. 눈이 사르르 감겼다.

 

 번쩍!

 

 눈꺼풀 안으로 비치는 빛이 아니었다면 분명 잠들었을 것이다.눈앞에서 폭죽이 터진 것 같았다. 눈이 멀 듯 밝은 빛이 온 몸을, 사방을 휩쓸었다. 빛의 고리는 점점 더 멀리 퍼져나갔다.

 

 힘겹게 뜬 눈에 비친 것은 거대한 빛의 기둥이었다. 땅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빛줄기는 구름을 가르고 그 위까지 뻗어 올라갔다. 흰 구름이 금빛으로 물들며 밝게 비쳤다.

 

 쿠르릉!

 

 하늘이 크게 울리더니 세상을 한낮보다 밝게 물들인 빛은 뿌리부터 순식간에 옅어져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다.

 

 "이...이게 뭡니까?"

 "나이가 들면 밤잠이 사라져서 영 아쉬웠는데 오늘만큼은 이리 좋을 데가 없으이. 아마 자네와 나 단 둘만 봤을 지도 모르겠구먼. 좋은 구경했네 그려."

 

 흘흘, 소리 내어 웃던 노인이 허리께까지 오는 지팡이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만월이라네. 달님이 오신게지."

 "이 밤에 갑자기 무슨 일이랍니까? 알아듣게 설명해주셔야지요."

 "우리헌테 달님이 어디 저 하늘에 있는 것뿐이던가?"

 

 노인이 하늘을 가리키며 웃자 처사의 뇌리에 번개가 내리 꽂혔다.

 말은 이해했으나 범상치 않은 일과 연결 짓기는 힘들어 처사의 머릿속이 잔뜩 헝클어졌다.

 

 "아아... 그럼 저것이...?"

 

 그 사이 저만치 걸어간 노인은 돌연 멈춰 서서는 처사를 뒤돌아봤다.

 

 "그렇지. 알아먹었구먼. 달님은 달빛이 충만한 밤에 빛기둥을 타고 오신다 하더니 참말이었어. 살아생전에 이걸 보다니."

 

 노인의 목소리가 감격으로 떨렸다. 주름진 눈가에도 물기가 비쳤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실 때만 혀도 철석같이 믿었는데. 살면서 잊었지. 고단하니 잊고 보질 못하니 의심하고 그렇게 산 세월이 무색하네. 겨우 몇십 년 살고 지는 우리야 알 턱이 없다고 그렇게 여겼는데...."

 "헌데 어르신. 만월이라기엔 태양이 없지 않습니까? 아직 새로이 동을 틔울 태양도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는데 어찌 만월이라 확신하십니까...? 그저 다른 징조일지도-."

 

 노인이 그럼 그렇지 하듯이 지팡이를 휘둘러 처사의 말을 잘랐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단 하나. 태양은 하나이나 달은 여럿이 뜰 수 있다는 것. 그뿐이잖은가? 달이 먼저인지 태양이 먼저인지 어느 누가 아느냔 말이여. 저 빛도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보셨다는 이야기만 전해 내려왔을 뿐이라네. 나도 오늘 보지 못했다면 전래구화로 알았을 것이여.”

 

 쏟아지는 달빛이 노인의 얼굴에 빛과 그늘을 함께 드리웠다.

 이마의 깊은 고랑이 달빛에 옅어지며 순간 시간이 훌쩍 거꾸로 흐른 듯 보였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힘이 없다.

 제 눈으로 본 게 있으니 꿈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싶어지는 것이다.

 

 “믿고 싶지 않다면 믿지 않으면 되네. 말이야 지어내 퍼뜨리면 그만인 것이지. 그렇잖은가? 전부 지어내고 추측한 거라 여기고 있으면서 뭘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나? 짧은 생이라네. 고민하지 마시게나."

 “뭔가 알고 계시는 군요. 제게도 알려주십시오.”

 “궁벽한 시골 촌부가 뭘 알겠나. 다만 전부 아는 게 아니라면 속단하지 말어. 때로는 보이는 게 다라네. 자네가 본 것이 무엇이건 일어났으니 예까지 달려왔을 테지. 여지껏 자네 혼자 물었으니 내 하나 물어봄세. 용소에서 무엇을 봤는가?”

 “제가 모르는 세상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없을 향기가 가득했고 거대한 전설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어르신, 용은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그저 왕의 동물이라, 하늘의 상징이라 말하는 것이지 그게 어째서 살아 숨 쉬며 저와 눈을 마주치고!”

 

 처사의 호흡이 다시금 가빠졌다.

 노인도 눈이 살짝 커졌으나 이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돌아가기 좋은 날일세.”

 

 아리송한 말에 처사가 노인을 바라보다 그를 따라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어느새 전부 걷히고 밤하늘엔 별이 총총했다.

 

 "그럼 그 달님은 대체 어찌 찾는 답니까? ...어르신?"

 

 달빛이 희게 내린 길 어디에도 노인의 그림자는 없었다.

 처사는 달빛보다 희게 질린 낯으로 사방을 돌아다니며 노인을 찾았으나 수염 한 가닥 발견하지 못했다.

 

 “무슨 일인가. 내가 너무 취해 자꾸 헛것을 보는 겐가? 아무리 취해도 어찌 이런 헛것을 봐.”

 

 제 손으로 양 따귀를 세게 내려치자 온 얼굴로 통증이 번졌다.

 볼이 퉁퉁 부은 채로 한참을 길 위에 서 있다 달이 조금 기울고 나서야 평상으로 돌아갔다.

 

 "황제가 회임중인 것인가? 그럴 리가. 그랬다면 그 팔불출 황제가 온 나라에 알렸을 것이다. 옥사의 그이도 방면되었을 테지. 그렇다면 이번 태양보다 달이 앞서 떴다는 것인데.... 노인장은 달님이 내렸다했지. 빛은 용소에서 솟았고 용소에는 용이 있었다.... 복잡하구나. 혼란해."

 

 처사가 허리춤을 더듬어 매달린 나무 호리병을 뚝 떼어냈다. 비틀어 열자마자 입부터 가져다댄다. 벌컥벌컥 들이키자 숨에서 술냄새가 풀풀 풍겼다.

 

 "알게 무언가. 세상이 망해도 그만, 흥해도 그만이라지. 속세를 떠났으니 난세의 태풍에 휘말리지 않으면 될 일이로다."

 

 처사의 어깨로 등으로 내려앉은 달빛이 반짝이며 아래로 흩뿌려졌다.

 맨발로 비틀대며 걷는 걸음마다 금빛이 반짝였지만 그는 끝내 알아채지 못했다.

 

 이상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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