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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홍염 : 회생한 희생자
작가 : 김거북
작품등록일 : 2017.12.18

매번 희생된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회생한 홍염의 이야기.

 
1. 희생되다.
작성일 : 17-12-18 22:25     조회 : 222     추천 : 0     분량 : 5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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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세상에 익숙해지자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란 생각이 확실해졌다.

 좀 더 살기 편한 인간세상일 뿐이다.

 

 사람은 어느 때나 죽기 쉬웠고, 재물과 권력으로 급이 나뉘어졌다.

 

 그래도 이번 삶은 무난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휴전국가라고는 해도 전쟁이 멈춘 지 한참 됐고, 집엔 적당한 돈이 있다.

 외동이라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줬으며 학생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아는 것과 겹치는 게 없어 공부를 많이 해야 했지만 그것도 즐거웠다.

 공주랍시고 방 안에서 수를 놓고 남이 정해준 서책을 읽는 건 체질에 맞지 않았다.

 왜 이렇게까지 배워야하나 싶긴 했지만 학생이란 신분말곤 날 속박하는 게 없어서 좋았다.

 내 의견은 종종 묵살됐지만, 어쨌거나 공부를 잘 할수록 남들이 더 잘 귀기울이긴 했다.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이상한 점이라면 전생과 달리 현생은 훨씬 발전했지만 여자에 대한 대우는 그닥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버튼 하나 누르면 불이 켜지는데 왜 여자답다는 기준은 그대로람?

 

 열다섯을 넘기고 나서는 이 삶이 전처럼 한순간에 꺼지진 않겠다 싶었다.

 안심이 되면서 십오 년만에야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실감했다.

 

 여느 학생들처럼 열심히 살고 입시를 치렀더니 어느새 스무살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스무살이 됐다.

 

 스무살의 나는 들떠있었다.

 누군가가 콕 찌르기만 해도 흔들릴 만큼 아주 붕 떠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다가온 남자를 피하지 않은 건.

 

 “소우주.”

 

 우주만큼 날 사랑한다는 뜻으로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충만한 애정과 별개로 난 내 이름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그랬었는데. 내 이름이 이렇게 달콤하게 들렸던 적이 있나?

 

 “네, 종만 선배.”

 

 고종만. 나보다 네 살 많은 복학생이었다.

 선량한 눈매와 상냥한 목소리, 조심스러운 태도.

 솔직히 말하자면 일전의 늙은 돼지와는 정반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의식중에 조금이라도 비슷한 면이 있으면 피하다보니 쟤가 걸렸구나 싶다.

 마르고 권위적인 데도 없고 친절한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싫지 않았다.

 

 이 동네에는 묘한 말이 있었다.

 네 살 차는 궁합도 안 본다.

 주위에선 내가 그에게 약간의 관심을 보인 것만으로도 저 말을 하며 분위기를 몰아갔다.

 나는 급류에 휩쓸렸고 관심을 보인지 단 이틀 만에 사귀게 됐다.

 

 그는 내가 소중하다고 했다. 사랑스럽다고도 했다.

 명문대에 입학했다고 받은 외제차에서 첫 키스를 했다.

 키스가 스스럼없어질 무렵, 그가 그 차는 너한테 과분하지 않냐고 했다.

 

 “잘 사는 건 알겠지만 너 운전도 자주 안 하잖아.”

 

 그는 자주 차를 빌렸다. 몇 군데 긁어먹고도 말없이 키를 돌려줬다.

 타박하지 않는 게 사랑인 줄 알았다.

 용돈 받아쓰는 걸 뻔히 아는데 수리비를 달라고 하면 야박하다 할 것 같았다.

 멍청한 생각이었다.

 

 어느 날은 그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잠금화면에 알림이 쉴 새 없이 떴다.

 의심하지 않는 게 사랑이라기에 보지 않던 폰이었다.

 이상하게 자꾸 보고 싶었다.

 

 잠금은 쉽게 풀었다. 늘 위로 손가락을 쓸어 올리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단톡에선 금수저년으로 지칭된 나와 그런 년 잘 문 그가 주제였다.

 

 예쁘고 학벌도 좋고 어린 년이 돈도 많다, 고종만 복 터졌네.

 그 년이랑 언제 자냐? 저번에 차 긁어 먹은 건 아직도 말 없고?

 

 저런 말들이 여과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싸웠다. 그리고 다시 사귀었다.

 이 새끼도 별 거 없네 하고 차버렸어야 하는데, 붕 뜬 발이 아직 지면에 닿질 않아서 미안하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

  하는 말에 홀랑 넘어가고 말았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진작 눈치 챘을 것들이 흐려진 판단력 아래 묻혔다.

 싸움에 지칠 무렵 강제로 눈 뜨게 할 일이 없었더라면 헤어지고 나서도 그 행패들을 미화했을 것이다.

 

 고종만에게는 여자가 둘 있었다.

 나는 그의 지갑이었을 테고, 다른 여잔 그의 뭐였을까?

 뭐든 둘 다 사랑은 아니었을 것이다.

 진심이라면 그토록 기만했을 리가 없으니까.

 

 “나도 사랑해~. 응, 잘 자. 쪽.”

 

 같이 온 여행이었다.

 발코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처음 들었던 것과 같이 달콤했다.

 너무 달아서 구역질이 났다.

 화보다 관계를 놔버리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커서 따지기도 귀찮았다.

 잠든 걸 확인하고 짐 싸서 집으로 왔다.

 

 다음날 아침, 그에게 전화로 헤어지자고 말했다.

 만나서 얘기하자기에 더는 할 말이 없다고 했더니 차를 돌려주겠다며 만나자고 했다.

 그래, 내 차였지. 하도 자주 빌려줘서 다들 네 차인 줄 아는 내 차.

 

 자주 가던 까페로 가자 여긴 얘기하기 그렇다며 다른 데로 이동하자고 했다.

 차 받으러 온 거랬더니 주차장에서 빼오겠다며 멋대로 나갔다.

 기다려도 한참을 오질 않아 도로변을 기웃대는데 차가 와서 섰다.

 강제로 조수석에 태워졌고 으슥한 강변으로 끌려갔다.

 

 “이런 데서 뭐하려고?”

 “딴 놈 생겼어?”

 “네가 싫어졌다는데 다른 놈이 뭐가 중요해? 키 내놔. 갈 거야.”

 “가? 어딜 가? 그 새끼한테? 가고 싶음 주워오던지.”

 

 손을 치켜들어 강 쪽으로 던지기에 욕하며 달려갔다.

 수풀을 한참을 뒤져 열쇠에 달아놨던 키링만 찾았다.

 

 “키 어딨어? 야 이 미친...!”

 

 왜 이상한 걸 몰랐을까?

 찾는 내내 헤드라이트가 환하게 켜있었는데.

 평지 위로 올라온 나는 바로 설 새도 없이 허공을 날았다.

 몸을 들이받은 내 차 유리 너머로 웃고 있는 놈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한겨울의 강이 나를 감쌌다.

 아래로, 아래로.

 무기력해진 몸은 발버둥 한 번 못치고 그대로 가라앉았다.

 

 스무살이 끝이구나.

 고작 저런 놈 때문에. 저런 놈 손에 끝이 났구나.

 

 사랑 한 번 잘못한 대가가 너무 크지 않나?

 사랑 같은 거 다신 안 해.

 

 그렣게 두 번째 생 역시 눈도 감지 못하고 끝났다.

 

 -

 

 전생에도 팔려가기 전까진 모두가 내게 잘해줬다.

 내가 필요한 것을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대령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곳에 와서도 말하기만 하면 거의 다 가질 수 있었다.

 내가 딱히 뭘 하지 않아도 다들 친절했다.

 

 그런데 왜 저 놈의 달콤한 말 한 마디에 난 흔들리고 휩쓸리고 눈을 감았던 걸까.

 왜 고종만이 특별했던 걸까.

 

 지금이야 다 안다.

 그 놈은 그냥 못돼쳐먹은 놈이고 난 배알 없는 년이었단 걸.

 조금만 눈을 떴다면 그 때도 다 알 수 있었을 텐데.

 

 내가 한 게 사랑인가?

 나를 잃고 화도 못 내는 게?

 나는 뭣 때문에 죽어야했지?

 

 전처럼 나는 또 고종만 주위를 맴돌았다.

 다른 여자와 시시덕대는 걸 봤다.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것도 봤다.

 다른 여자에게 프러포즈 하는 것도 봤다.

 전부 다 다른 여자였다.

 

 흔히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라고들 한다.

 소우주가 죽고 하나의 우주가, 끝없는 다양성이 소멸했지만 세상은 잘 돌아갔다.

 두 번이나 내가 사라져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느끼자 꼭 먼지가 된 기분이었다.

 

 죽은 지 이주일이 지나서야 실종신고가 됐다.

 자취하던 집에 일 봐주러 오시는 도우미 분이 이주일 째 말도 없이 집이 썰렁하니 부모님께 연락해 신고가 되었다고 했다.

 경찰에선 실종 당일의 행적을 조사하다가 고종만에게 연락했다.

 마지막 통화도 고종만, 마지막으로 만난 것도 고종만이었으니 당연했다.

 

 모른다, 잘 헤어지고 집 가는 것도 봤다.

 경찰은 수상히 여겼지만 별다른 증거가 없으니 수사에 진전은 없었다.

 고종만은 들키지 않을 거란 확신이 서자 숨겨뒀던 내 차를 깨끗이 닦아 다시 타고 다녔다.

 

 이번에는 저 놈이 망하는 꼴을 못 보겠구나 싶었다.

 전생이 재수가 좋았던 것이다. 심장마비라니.

 

 그렇게 주장한 지 이 개월 뒤, 강 위로 떠오른 시체가 발견됐다.

 유난히 상태가 좋은 시체는 곧 신원이 밝혀졌다, 소우주, 21세.

 시신의 상처와 당일 차를 몰아 강변으로 향했던 점, 강변 이후에 소우주의 행적이 어디서도 확인되지 않는 점을 근거로 수사가 재개됐다.

 일사천리로 고종만은 수갑을 찼다.

 그때까지 난 계속 이 곳을 맴돌았다.

 그러다 그가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것을 끝으로 또 한 번 빛으로 빨려 들어갔다.

 

 -

 

 그리고 세 번째이자 지금.

 나는 창천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전의 생들과는 또 다른 곳이다.

 내가 기억하는 첫 생과 비슷한 풍경에 풍요로움을 덧씌우고 두 번째 생의 편리함을 끼얹으면 비슷한 느낌이랄까?

 

 나무와 벽돌을 섞어지은 건물에 기와를 얹은 집이 거리마다 즐비했다.

 이층집도 흔하고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근 집을 찾기도 어려웠다.

 대지가 기름져 무엇을 심어도 잘 자라니 배곯는 이도 내일을 걱정하는 이도 드물었다.

 아침 저녁으로 밥 짓는 연기가 무수히 피어오르는 이 곳은 부유하기만 한 게 아니라 강했다.

 

 이곳 사람들은 태어날 때 하나 이상의 술을 타고났다.

 능력치는 상이했지만 맨손으로 적어도 성냥불 크기의 불씨나 주먹만 한 물방울을 만들어냈다.

 술에는 갖가지 갈래가 있어서 물이나 불, 바람 등 자연을 다루는 술부터 시공간, 생명 등의 이름만 들어선 쉽게 가늠이 되질 않는 술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태풍을 일으키고 공간을 이동하는 것 같이 스케일이 큰 술법을 쓰는 술사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개개인이 굉장한 능력치를 갖고 있었다.

 보통은 물질을 다루는 편이며 일부가 특수하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뤘다.

 

 나 역시 이곳에서 태어나 운 좋게 몇 가지 술을 쓸 수 있었다.

 게다가 몇 가지 중의 몇 가지는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 다룰 수 있었다.

 또한 그 중 하나는 이 곳에서 가장 잘 다루는 것 같다. 아마도?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지만.

 

 아무튼 이런 특수한 능력 때문에 이곳의 밤은 전생의 도시에 버금가게 환했다.

 불을 밝히는 전기나 등잔 대신 손만 있으면 돼서 대로에는 가로등이 있고 어지간한 집에선 술식지등을 여러 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손을 지등위에 올려놓고 약간의 기운만 불어넣어주면 빛의 술사가 새겨놓은 술식이 반응해 불이 켜졌다.

 술사가 지정한 대로 특정 부분을 누르거나 ‘깜깜’ 등의 명령어를 말하면 꺼지는 식이었다.

 지등의 불빛은 형광등 빛과는 달랐다.

 환하지만 따뜻한 흰 빛은 달빛을 닮아서 계속 보고 있으면 몽롱하기도 하고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도성 내에서 가장 높은 집에서 태어난 덕에 최고의 야경을 누릴 수 있는 것도 행운이었다.

 밤마다 누각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불빛들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이상해지곤 했다.

 

 보통은 밤이면 달빛이나 등잔에 의지해 어둠을 옆으로 살짝 밀쳐내던 첫 번째 전생이 떠올랐다.

 소천은 호수에서 건져졌을지, 팔려가기 직전까지 나를 살뜰히 보살피던 유모는 울음을 그쳤을지, 왕보단 거상의 철없는 아들로 태어나는 게 나았을 나의 아비는 목숨은 보전했을지, 또 백성들은....

 

 떠올리면 심란한 것들이 아득히 멀어지면 기다렸다는 듯 스위치 하나로 방 안을 환히 밝히던 전생이 떠올랐다.

 나를 파괴한 것이 사랑이었는지, 망할 놈은 감옥에서 잘 썩고 있는지, 왜 내 죽음은 늘 헛된 지....

 내가 팔려가도 나라는 망했을 것이고, 내가 안전하게 이별했대도 망할 놈은 상대가 누가 됐든 기어코 제 뇌관을 터트렸을 것이다.

 

 왜 하필 나일까?에서 시작된 것들은 왜 나는 모두 기억할까?로 늘 이어졌다.

 남들이 인생 1회차인지 10회차인지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은 전생을 기억 못 한다.

 억울하게 죽어서, 한이 남아서. 이런 이유로 몇 번이고 기억을 가진 채 다시 태어난다는 건 형평성에 어긋났다.

 

 세상에 억울하게 죽은 이가 나 뿐인가? 아니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똥을 잘못 밟은 것도 나뿐인가? 아니다.

 

 대체 무엇이 나를 세 번째 삶으로 이끌었을까.

 이번 생은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아무 사고 없이 자연사한다면 이 고리는 끊어질까?

 

 대답해줄 이 없는 질문들이 흩어지면 지상에 뜬 달빛 조각들이 다시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술사들의 나라 창천, 나는 창천의 황태자.

 그리고 다섯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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