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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홍염 : 회생한 희생자
작가 : 김거북
작품등록일 : 2017.12.18

매번 희생된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회생한 홍염의 이야기.

 
1. 희생되다.
작성일 : 17-12-18 22:20     조회 : 329     추천 : 0     분량 : 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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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핍이 갈망을 만들고, 갈망은 욕망을 만들고, 욕망은 탐욕을 부른다.

 그리고 탐욕은 파멸을 부르기 마련이다.

 

 부족함이 부른 바람은 소용돌이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아무리 가져도 부족해했고,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했다.

 

 더, 더, 더!

 

 나의 왕은 그렇게 나라를 말아먹었다.

 

 허드렛일을 하던 궁인의 태에서 난 반쪽짜리 왕족은 다른 왕손들에 비해 가진 것이 적고 하찮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들에 비해서일 뿐 절대적으로 그랬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체가 금인데 비해 금박을 둘렀고, 붙은 보석의 수나 화려함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뿐.

 천출에 계승권에서 한없이 먼 왕자더라도 그에겐 어머니가 있었다.

 아름다움 하나로 왕을 사로잡아 가끔이나마 총애가 단비처럼 내리니 돈 마르는 일도, 배곯는 일도 없었다.

 

 누가 봐도 부족할 게 없는 환경에서 그는 늘 갈망했다.

 더 많은 재물, 더 많은 관심, 더 큰 힘, 더 많은 자신의 것.

 

 어릴 땐 어머니에게 내려지는 총애를 팔았고, 커서는 왕자라는 제 직위를 팔았다.

 욕심은 채워진 순간 몸집을 불려 한순간도 만족할 수 없게 했고 그는 욕심이 시키는 대로 살았다.

 

 형제를 죽음으로 내몰고 어머니를 희생해 제 목숨을 구하고 간신배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반역자 아니면 찬탈자.

 

 마침내 두 갈래 길 앞에 선 그는 여전히 욕망이 시키는 대로 했다.

 

 행운의 신의 변덕으로 그는 승리했고 왕좌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왕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드물고,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재물도 많지 않은 것은.

 

 욕심이 속삭였다.

 

 쥐어짜. 백성은 왕을 위해 존재하는 거야.

 

 왕은 그렇게 제 욕심을 위해 눈을 감았다.

 고혈로 배불리니 원성은 높아지는데 정작 들어야 할 왕은 간신들과 제 욕심에게만 귀를 내주었다..

 

 폭동이 일어나면 죽이고, 상소가 올라오면 유배를 보낸다.

 삼족을 멸하라는 명이 늘어나니 쥐어짜낼 목숨은 점점 줄어들었다.

 

 죽고, 도망가고, 굶어죽고, 분통이 터져죽고, 자살하고.

 

 가난한 나라의 궁궐이 어찌나 화려한지 철마다 덧그린 단청에 옥을 갈아입힌 기와며 금칠한 기둥까지 화려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나는 그래서 늘 궁이 불편했다.

 눈에 담을 때마다 토할 것 같은 것도 오늘이 끝이겠지.

 

 나의 왕이 말아먹은 나라는 잠깐 동안은 다시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왕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아 제 딸에게 대물림한 아름다움 덕분에.

 

 그는 제 손에 쥔 것은 다시 토해내는 법이 없었다.

 그의 나라는 나를 적국에 팔아넘김으로서 유지되었다.

 더 나빠질 것도 없으니 그럭저럭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다가 파산할 것이다.

 

 적국의 왕도 어지간히 멍청한 게 틀림없다.

 왕이 모든 것을 해먹고 나면 제가 먹을 것이 없을 텐데.

 공물을 늘릴 게 아니라 그냥 나라를 통째로 집어 삼켜야 전쟁으로 쓴 물자 충당 정도는 하지 않을까?

 그저 천하제일미를 바친다니 헤벌레해서는 군대를 물리다니.

 

 말이 좋아 공주를 후궁으로 들이며 군신관계를 맺는다지 납작 엎드려 힘없는 계집애를 바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의 왕보다는 나을 것이다.

 몰고 온 병사들의 혈색이 좋았다.

 백성들도 그나마 덜 힘들어 질 것이다.

 그들의 왕은 최고로 무능하고 멍청하니까!

 

 “아바마마, 강녕하십시오.”

 

 천출인 것이 최고의 치부였던 남자는 고르고 골라 귀족중의 귀족을 아내로 맞이했다.

 아비가 왕이고 어미가 세도가의 여식이면 무얼하나.

 팔려 가면 공물신세인 것을.

 

 나라고 이러고 싶겠냐만 허울 좋은 명분이 목을 졸라 어쩔 수 없었다.

 

 공주를 저들에게 보내 화친을 맺자.

 어느 대신이 한 말 한마디에 나는 당장에라도 내다 바칠 수 있게 꾸며졌다.

 

 싫다고 버티자 호의호식하던 공주가 드디어 쓸모가 생겼는데도 백성이 몰살돼도 상관없다며 가기를 거부했단 소문이 퍼졌다.

 성문 앞에 모인 백성들은 야윈 팔로 농기구를 휘두르며 분노했다.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단 위기감 뒤에 찾아오는 허망함은 분노로 쉽게 변질됐다.

 흐린 눈의 아비는 노기가 성성해선 꽥꽥댔다.

 

 “네가 그동안 입은 비단옷이며 입으로 밀어 넣은 산해진미가 누구의 손에서 나왔느냐! 백성이다! 너만 가면 수많은 백성이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살 수 있는데 안 간단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느냐! 그간 누린 것들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가거라!”

 

 당신이 해선 안 될 말만 골라한 아비는 비단옷을 입혀 날 적국의 장수에게 넘겼다.

 환갑이 넘은 왕을 위한 공물은 그렇게 수레에 태워져 궐 밖을 나섰다.

 

 천박하게 번쩍이는 궁궐이 멀어졌다.

 

 나는 수많은 백성을 위해 희생되었다. 아니 왕의 안위를 위해 강제로 목숨이 바쳐졌다.

 적국의 공물이 되어 끌려갔다. 그들의 긴 귀향길을 조악한 수레를 타고 따랐다.

 작은 돌에도 덜컹이는 수레는 자연의 어느 것도 막아주지 못했다.

 나무판자로 세 면이 막혀있고 나머지 한 면은 나무 창살이 빼곡한 수레 안은 삭은 짚 냄새가 퀴퀴하게 떠돌았다.

 

 병사들은 이따금 창이나 손을 밀어 넣어 희롱했고, 장군은 모른 척 외면했다.

 순결은 건드리지 마라. 흉질만큼 상처를 내선 안 된다. 전하의 침소에 들어갈 것이다.

 장군은 앵무새마냥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물건의 처우 따위 관심 없지만 왕의 눈치가 보이니 적당히 하라는 식의 경고에 병사들만 신났다.

 

 “미인은 살 냄새부터 다르다.”

 “이런 년을 품다니. 왕이 좋긴 좋구나.”

 “지금 확 일치고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얼굴로, 몸으로, 손 달린 시선이 쏟아졌다.

 그들은 말과 눈으로 몇 번이고 나를 짓이기고 범하고 말살했다.

 나는 그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임에도 그럴 수 없었다.

 예상보다 더 환멸나는 나날이었다.

 

 천박한 궁을 떠나왔더니 또 다른 천박한 궁에 도착했다.

 대륙을 통일하겠다며 약한 나라들만 골라 친 전쟁이었다.

 우리나라야 너무 약해 한 번의 싸움도 없었지만 다른 나라들은 저항이 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났다.

 헌데 저 펄럭이는 붉고 푸른 비단 휘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장수와 병사들은 환호와 꽃비를 맞으며 환영에 손 흔들어 답했다.

 모두 축제분위기였다.

 수레 창살 안으로 꽃잎이 날아들었다.

 이상하게도 그제야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게 됐다는 걸 느꼈다.

 돌아갈 곳도 맞이해줄 사람도 없다.

 이 곳에서 승전기념품으로 살다 죽을 것이다.

 얼마나 살아있게 될까. 한 달? 일 년? 아니면 일주일?

 

 수레 뒤로 손발이 엮여 끌려온 포로들이 어디론가 보내졌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며 나 하나만 보낼 것처럼 말하던 왕이 나와 함께 보낸 백성들이다.

 어리고 예쁜 소녀와 힘센 장정들은 이곳의 힘 있는 이들에게 노예로 보내질 것이다.

 

 “많이도 팔아치웠네.”

 

 딸도 팔아치웠는데 뭔들 못 팔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환멸감에 욕지기가 솟구쳤다.

 올라오는 신물을 꾸역꾸역 삼키는데 수레의 문이 열렸다.

 

 “내려라.”

 

 내시 하나가 수레 밑에 엎드려 발을 받쳤다.

 맨 땅에 비단을 깔아 발을 감싸더니 모피로 감싼 가마에 앉혀졌다.

 

 “전하의 물건을 이리 함부로 다루다니.”

 

 내시들의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이가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황제의 것을 천대한 병사들을 벌주라 명하자 장군은 전쟁통에 이 정도면 호사라고 대꾸했다.

 대전내관 눈치가 보이는지 수레에 밥을 넣어주던 노비의 손목을 자르겠노라 말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내전으로 실려 갔다.

 도열한 궁녀들이 일제히 둘러싸 옷을 벗겨냈다.

 냄새가 고약하다며 코를 막는 궁녀들의 손등을 내관이 내려쳤다.

 그의 손짓 한 번에 몸이 씻기고 분이 발리고 침의가 입혀졌다.

 환갑 늙은이에게 바쳐지는 계집이 입기에는 적절했으나 열다섯이 입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옷이었다.

 꿰맨 곳보다 트인 곳이 많고 너무 얇아 가려지는 곳이 없었다.

 추워서 덜덜 떠는 내게 덮여진 것은 겉옷 대신 향수였다.

 

 잠자리 날개 같은 것을 입고 벌벌 떨고 있으니 문이 열렸다.

 

 “드디어 왔구나! 대륙의 보석! 나의 공주!”

 

 백발 성성한 노인이 웃자 살과 주름에 묻혀 눈이 보이질 않았다.

 눈으로 훑는 것이 피부 위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살이 접혀 목과 턱의 경계가 없는 둥근 살덩이가 내게 향했다.

 저 늙은이의 목을 딸 무엇도 없으니 이 강탈을 막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죽자.

 결심과 동시에 입을 벌리자 쑥 천이 들어와 결박당했다.

 

 그 뒤로는 말해 무엇 하나.

 인격을 유지할 수 없으니 넋이라도 놓아지면 좋으련만.

 내 의지라곤 하나 없이 일어난 일의 끝 역시 그랬다.

 비명이 듣기 좋다며 늙은이가 천을 풀었다.

 몇 번인가 목이 졸리고 무게에 짓눌려있던 터였다.

 메스꺼움을 참지 못해 왕의 면상에 토해버렸고 그 자리에서 찢어발겨졌다.

 

 소천공주는 그렇게 죽었다.

 

 -

 

 나는 조각난 채 이불에 감싸여 호수로 던져졌다.

 수면을 향해 피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렇게 지워졌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경사였던 적이 있었다.

 왕실과 백성의 자랑이었던 적도 있었다.

 모두가 사랑할 거라고 칭송받던 적도 있었다.

 

 그러던 모두가 나의 희생을 원했다.

 내가 나를 버리면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듯, 헛된 희망에 빠져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기꺼이 한 것은 아니나 이리 되었고 하루살이로 죽었다.

 그게 끝이었다.

 

 왕은 나와 함께 끌려온 포로들을 일렬로 세워두고 예쁘고 어린 티가 줄줄 흐르는 아이들을 골랐다.

 억울해서일까. 나는 이 궁 안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맴돌았다.

 왕의 침전에서 몇이고 이불에 싸여 나오는 것을 봤다.

 귀에다 저주를 퍼부은 지 몇 달쯤 지났을까.

 왕이 죽었다. 갑작스런 심장마비라고 했다.

 그의 얼굴 위로 흰 천이 덮이는 걸 보며 환한 빛으로 빨려 들어갔다.

 

 강한 압력이 몸을 우그러뜨리는 느낌이었다.

 괴로움에 허덕이며 죽기 직전 떠올렸던 소원을 빌었다.

 

 ‘내 생명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스러지는 일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책임질 권력도, 높은 지위도 필요 없어.’

 ‘내가 가장 중요한 삶.’

 ‘자유.’

 

 남은 모든 힘을 불태워 빌었다.

 간절히, 아주 간절히.

 

 -

 

 결과부터 말하자면 내 소원은 이뤄졌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이뤄졌다.

 

 이곳은 자유롭고 그래서 때론 방종하기까지 하다.

 나는 어느 중산층 부부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기억의 대부분을 가진 채로.

 정확히는 네 살 쯤부터 서서히 기억이 되살아나 한동안은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지만 어쨌든 거의 대부분을 온전히 갖고 있다.

 배려인지 망각인지 다행히도 구역질나는 기억은 흐릿하게 뭉개져있었다,

 떠올리면 역겹고, 남자에 대한 혐오감도 여전하지만 그게 이전의 삶이라는 인식은 뚜렷했다.

 

 전생의 기억은 현생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십오 년 치의 기억이 있다한들 등불이나 보다가 형광등을 보면 적응이 되겠는가?

 이 세상은 늘 밝고 시끄러웠다.

 건물은 높고 다들 작은 네모갑만 보고 다녔으며 도로 위를 말도 없이 커다란 수레들이 빠르게 달렸다.

 괴이하고 신기한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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