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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경성크툴루
작가 : 최믹하
작품등록일 : 2017.11.17

경성에서 일어나는 수상한 일들, 괴력난신 소녀와 유학파 탐정사무소 소장님이 진실을 파헤쳐갑니다.

 
스토커의 죽음 (1)
작성일 : 17-12-18 22:11     조회 : 534     추천 : 0     분량 : 7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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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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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오후, 초능력자 준 상은 적당한 핑계를 지어내어 회사를 땡땡이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어느 날 갑자기 추진할 수 있는 일탈에는 한계가 있었고, 평범하게 경성의 화려한 밤을 즐기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으며… 초능력은 이런 문제에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결국 만만한 것이 우리 탐정사무소였다.

 

 그래서 나 혼자 사무소에 남아있던 어느 오후, 준 상은 엄청 열심히 탐정사무소까지 달려와서, 오자마자 소파로 돌진해서 앉더니 겉옷과 안경을 벗고 그대로 쓰러지듯 누우며 나한테 커피를 청했다. 그리고 커피에 어울리는 과자도 청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인 거주 지역 모 가게의 모나카였다. 그런 거 없다고 말하자 나가서 사오라고 요구했다.

 

 나는 나가서 과자를 사오는 대신 침착하게 대답했다.

 

 “집에 좀 가시유.”

 “아 싫어, 헬렌이랑 놀 거란 말야,”

 

 나랑 눈싸움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익히 아는 준 상이었기 때문에, 준 상은 나를 쏘아보는 대신 눈을 질끈 감고 어린애마냥 소파 위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 존재의 하찮기가 무슨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 같았다.

 

 “다복짱, 헬렌 어딨어, 응?

 

 아무리 다 큰 어른이 어린애처럼 굴고 있다고 해도, 눈을 감고 있는 상대를 노려보는 건 꽤 의미 없는 행동이다. 특히 두 눈을 꾹 감고 있다가 한쪽 눈만 살짝 떠서 내 눈치를 살피고 얼른 다시 눈을 감아버리고 있으면... 이걸 쥐어박을 수도 없고…

 물론 지나치게 유치한 행동이어서 오히려 나는 침착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소장님은 오늘 하루 종일 본가에 가있는다고, 저녁에나 오신다고 했어유. 준 상도 집에 가슈.”

 “아아, 심심한데.”

 

 준 상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소파 위를 제자리에서 꿈지럭꿈지럭 몇 바퀴 굴렀다. 모르는 사람 엉덩이가 어떻게 닿았을지 모르는데, 그렇게 구르고 싶나.

 

 “평소에 유치하게 굴고 싶어서 일은 어떻게 한대유.”

 “일터에서는 잘 참고 이런 데서 하잖아.”

 “아이고, 참으로 하찮다…”

 

 그 때쯤 올려놓은 주전자에서 물이 끓기 시작했다. 대단하게 정성 들일 생각도 없었기에, 나는 미리 가져다 놓은 커피잔에 커피와 설탕을 넣고 수저로 휘휘 저어서 내왔다. 준 상은 여전히 소파 위에서 꿈지럭거리고 있었다.

 

 “커피 드시고, 집에나 가시유. 야?”

 “헬렌 안 오면,여기서 다복짱이랑 놀래.”

 “아, 쫌!”

 

 세상 제일 방해되는 사람이다.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매몰차게 휙 돌아섰다.

 

 “아, 바빠유. 지는 할일 많으니께, 집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이나 하시유.”

 “할 일 하나도 없잖아. 일주일 째 전화도 하나 안 걸려왔는 걸.”

 “보셨슈?”

 “아니, 헬렌이 말해줬지롱.”

 

 준 상은 얄밉게 웃어보였다.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때려줄 만한 곳이 마땅히 보이지 않았다. 준 상에게 튼실하고 듬직한 부분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이다.

 물론 준 상의 특별한 점은 우락부락한 근육은 아니다. 나랑 캐릭터가 겹치잖아.

 

 사실 준 상은 초능력이라고 이름 붙은 건 이거저거 다 할 수 있는 초능력자로, 가장 잘 하는 건 뭔가 ‘보는’ 것이다. 제일 잘 쓰는 능력마저도 제어가 좀 잘 안 되어서 그렇지,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면 죄다 ‘볼 수 있다’.

 항상 도움이 된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간혹, 간혹 저 능력이 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물론 도움이 되어서 소장님이 준 상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엘리트로 북적거리는 총독부 도서과의 단 하나의 존재, 어디서나 살짝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존재감, 멋진 옷 입기 좋아하고, 인기도 좋지만, 결국 어디서나 말없이 사라지곤 하는 미스터리한 남자, 초능력자 준 상.

 

 어쨌든 지금은 세상 제일 귀찮은 사람이었다.

 나는 파리라도 쫓듯이 손을 저었다.

 

 “아니, 됐구유, 집에 좀 가슈. 뭔가 하고 싶으신 일이 있을 거 아니유.”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은… 여기 누워있는 거야!”

 

 해맑다. 언제나처럼의 준 상이다.

 

 “아니, 총독부에서도 앉아만 있을 거구 여기서도 누워만 있을 거면, 도대체 왜 온 거유?”

 “자세가 바뀌었잖아?”

 “그거보다 더 대단하게 바뀔 생각은 없으시유?”

 “그래도 우리 부서 사람들은, 하루종일 책을 읽다가 집에서는 쉬는 겸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야. 나는 자세라도 바꾸는 사람이라고. 엄청 대단하지.”

 

 준 상은 총독부 도서과에 근무한다. 단정하고 엄숙한 엘리트들 틈에서 어떻게 이 가볍고 옷 잘 입고 쇼핑을 좋아하는 미남이 잘도 살아남아 있는지 모를 일이다. 도수 없는 금테 안경으로 적당한 보호색을 펼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새하얀 와이셔츠에 맨 세련된 무늬의 연보라 보타이와 회색 체크 정장이 확실히 독보적으로 세련된 느낌이다. 어떻게 잘도 그런 집단에서 이런 예쁜 옷으로 살아남고 있는 것일까.

 

 “그런 대단하신 양반들 틈에서 준 상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유?”

 

 준 상은 한숨을 쉬며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두 눈을 가렸다. 업무 이야기를 하기 싫은 것이 분명하다.

 

 “글자를 아주 많이 읽고… 거기다 빨간 색연필로 마구 칼질을 한 다음… 읽은 책의 반 정도는 기억하는 척을 해.”

 “기억을 못하면요?”

 “얼른 그 내용을 ’봐.’”

 

 물론 준 상은 어떤 시험에서든 답안지를 ‘볼 수 있는’ 사람이긴 하다. 아마 부서에서도 뽑아놓고 엄청 후회했을 것이다. 아닌가. 시험이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도 ‘볼 수 있으니’ 준 상에게 암기력이란 크게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준 상이 보는 능력만 확연하게 통제가 가능해진 것은, 반복 수행 때문이려나.

 

 “어쨌든 집에 좀 가시유.”

 “아 싫어, 여기 있을 거야. 지금 직장이랑 하숙집 식모 둘 다에게 의심스러운 눈길을 받고 있단 말야. 능력 제어하려고 노력 안 해도 되는 여기 있을래.”

 “뭐, 거, 수상한 능력 쓰는 걸 들켰슈?”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준 상은 있는 대로 인상을 썼다.

 

 “아니… 그게. 지난 번에, 그러니까 지난 주에, 야근을 좀 했거든.

 봄에는 아무래도 새로 시작하는 극단부터 신문사, 출판사까지 많아서 말이야… 이것저것 밤 늦게까지 읽을 것이 좀 있었는데, 피곤해서 내가 좀 실수를 했어. 덕분에 과장님께 엄청 깨졌지.”

 

 엄청 깨졌다는 걸 보면 좀 실수한 정도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평소의 준 상의 생글생글한 태도를 생각하자면, 적당한 실수 정도는 미소와 긍정적인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나봐. 과장님이 결재 서류를 나한테 내던지는 순간… 그대로 스팟! 하고. 사라졌어.”

 “스팟!?”

 “스팟!”

 

 준 상은 두 손을 옆으로 펼쳐보였다. 적당한 의성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공공장소에서 사라졌구먼유.”

 “음. 그것보다도 심각했지.

  그렇게 도착한 내 하숙집에서는 새로 온 식모가 내 방을 청소하다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구겨진 1원짜리를 몰래 주머니에 넣으려던 중이었거든. 얼른 주머니에 넣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나랑 눈이 딱 마주쳤지.

 일단 근엄하게 나가라고는 했는데,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순간이동 장면이 포착되었으니… 모르겠다.”

 “그래서 집에 못 들어가는 거유?”

 “으응, 그 날부터 나를 유심히 몰래 관찰하고 있어. 죽을 것 같아.”

 

 준 상은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한편 도서과에서는… 한창 혼내던 중에 내가 사라졌잖아. 다행히 과장님이 따로 나만 불러내서 혼내고 있던 중이라 그 모습을 본 건 과장님 뿐이긴 한데…

 그렇다고 집에 온 김에 쉴 수는 없잖아. 야근 중이었는데. 아, 전차도 안 다니는 시간에 차도 없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려니 정말 얼마나 힘들었는지…”

 “과장님은 이상하게 생각 안하셨어유?”

 “다들 그만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엘리트들이라 그런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거라고까지는 생각 안하고 있어. 과장님이 과로했고 내가 땡땡이를 쳤다고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난 신경 쓰여, 신경 쓰인다고.”

 

 초능력자의 고충이란 이런 것인가. 나는 부드럽게 준 상을 다독였다.

 

 “아이고, 고생 많으시유. 이제 그냥 고생 마시고 일본으로 돌아가시는 건 어떠시유?”

 “사무소에서 쫓아내지 못하니까 조선에서 쫓아내는 거냐구…”

 “이게 다 큰 그림 아니겠시유.”

 

 준 상은 눈을 번쩍 뜨고는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 마시지!”

 “야, 야.”

 “내지에서는 더 장난 아니었다고! 스토커도 있었고!!!”

 “초능력을 스토커한테 들켰시유?”

 “음, 그게, 아니, 헬렌한테.”

 

 꽤 의미심장한 말이다. 순간 내 머릿속에서 저 말이 벼락처럼 짜맞춰지며, 뭔가 명백한 하나의 가능성이 되었다.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소장님이 준 상의 초능력을 알아채구서는 준 상의 스토커가 된 거유?”

 

 이 놀라운 추리 앞에서 준 상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헬렌을 도대체 뭐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야?”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그게, 바로 말하기는 약간 애매하면서도… 내가 망설이는 동안 탐정사무소 안에 묵직한 정적이 깔렸다. 으, 으음. 왠지 말하기 어려워지는데. 나는 정적 속에서 결국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라니, 구체적이지 않으면서도 엄청 뭔가 심하잖아…”

 

 저런 사람 맞지 뭐.

 

 “아니, 진짜로, 혹시 준 상이 초능력자라는 걸 알고, 친구가 되어주지 않으면 비밀을 다 까발려버리겠다고 협박해서 그 때부터 수상한 일에 준 상을 끼어들게 하구 막…!”

 “진정해, 진정해, 다복짱, 자신의 고용주를 너무 악당으로 만들지 마!”

 “아니었슈!?”

 “아냐, 아냐, 침착해.”

 

 거기까지 말한 준 상은 살짝 말꼬리를 흐렸다.

 

 “살짝, 어, 비슷했던 감은 있지만.”

 “비슷하기는 했슈!?”

 “명시적인 협박은 아니고… 약간 암묵적인 느낌으로…”

 “질이 더 나쁜디!?”

 

 어쨌든 소장님의 친한 친구 두 명 정도가 모이면 이 정도 험담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친한 친구들답게, 우리는 ‘평소에 행실을 잘 할 것이지’ 정도라고 생각하면 모를까, 죄책감이라고는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로, 다복짱의 생각과는 달리 정말로 우연히, 지나가던 렌짱, 아니, 헬렌이랑 시즈카짱한테 초능력을 쓰는 모습을 들키긴 했거든.”

 “표적수사는 아니였지유?”

 “아니라니까.”

 

 준 상은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내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어. 정면으로 봐버린 건 다행히 비밀을 공유하던 친구들 뿐이었지만. 말주변 좋은 렌 짱이… 아니, 헬렌, 학창시절 이야기라 학창시절에 부르던 이름으로 자꾸 나오네.”

 “렌?”

 “연꽃이라는 뜻이야. 헬렌을 일본에서는 렌이라고 불렀어.”

 “허어, 이름을 잘도 바꾸시는구먼.”

 “그러게. 무슨 사기꾼처럼.”

 “뭐, 소장님이 사기꾼처럼 말하긴 하지유.”

 

 우리 사이에 유쾌한 시선이 오고 갔다. 준 상은 말을 이었다.

 

 “…어쨌든 내 주변에서는 아주 이상한 일들이 자주 일어났고, 그걸 목격하고서도 헬렌은 겁먹거나 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내 편이 되어주었지.

 게다가 헬렌은 말도 엄청 잘 하잖아. 내가 교실의 책걸상을 초능력으로 다 날려버렸을 때 뭐라고 변명했다더라, 쌓아놓고 청소하다가 창문 밖으로 떨어트렸다고 했던가… 말도 안되지만, 헬렌은 정말 그럴듯하게 말하니까.”

 “말인지 막걸린지 모를 말을 그럴싸하게 하지유.”

 

 나는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님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아마 그 말재간일 것이다. 준 상은 평소보다는 조금 더 깊은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그 온갖 이상한 일들에 헬렌이 어떻게든 변명을 끌어다 줘서 정말 다행이었지.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 않았으면 진짜 큰일이 났을 거야.”

 “하이고…”

 

 준 상의 학창시절은 평범한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기이한 능력들이라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나는 힘을 조절 못할 일은 어릴 적 빼고는 별로 없었으니까. 순간이동을 한다든지, 손 안 대고 물건을 이동시킨다든지. 그런 일이 무작위로 주변에서 일어난다면, 그리고 그걸 숨겨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정말 아찔했을 것이다.

 

  어쩌면 준 상이 이렇게나 매끈하고 싹싹한 미남으로 자라버린 건,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할 수상한 비밀을 어떻게든 감춰보려던 노력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 결국 잘생기고 옷 잘 입으면서도, 어딘가 허공에 떠있는 듯 기묘한 분위기를 가진 미남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그만두고, 아까부터 궁금했던 걸 질문했다.

 

 “그러면 렌짱이 누군지는 알겠구, 근데 시즈카짱은 누구유?”

 “응? 아, 미안, 재희.”

 

 준 상의 말투는, 너무 당연하게 내가 그 사람을 알 거라는 투였다. 내가 모른다는 가능성은 꿈에도 생각 못한 것 같다. 약간씩 어긋나는 대화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재희는 또 누구유?”

 “어? 진짜 몰라?”

 “야.”

 “헬렌 남편, 걔 이름이 재희야.”

 

 준 상은 당장이라도 나를 놀리며 ‘재희 이름은 몰랐구나?’ 라고 말할 것 같은 명랑한 표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개인사에 대해 그렇게 오픈된 사이가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지는 소장님이 결혼한 적 있다는 건 들었는디...”

 “…어?”

 

 준 상의 불안한 표정.

 

 “…남편 이름이야 지가 어떻게 알겄슈?”

 

 나의 침착한 대답에 준 상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마구마구.

 

 “지금, 설마, 내가 헬렌 동의 없이 과거사를 폭로한 건 아니지?”

 “야, 뭐, 대단하게 까발린 건 아닌디, 뭐… 비슷하지유?”

 “비밀이다.”

 

 준 상은 거의 내 마지막 말을 끊어먹다시피 하며 약속을 강요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말했다.

 

 “뭐, 결혼한 적 있었고 일본 유학을 갔다는 것도 알구, 거기서 준 상 같은 친구들을 모아 수상한 오컬트 집단을 만들었다는 것도 알았으니…

 지가 오늘 새롭게 안 사실은 결혼한 채로 남편이랑 일본 유학을 갔었다는 거네유. 딱히 숨길 만한 이야기는 아니니께 걱정 마슈.”

 “그, 그치? 혼인한 채로 같이 유학가고 하잖아.”

 

 준 상은 애처롭게 내 눈치를 봤다. 나는 흘끔 준 상을 바라봤다가, 태연하게 다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준 상은 빠르게 내 옆에 따라붙어서 간절하게 말했다.

 

 “그런데 비밀로 하겠다는 약속은?”

 “됐슈, 그게 뭐 대단한 거라구.”

 “그거 약속하겠단 뜻 아니지?! 안돼, 해, 하란 말야!”

 

 준 상은 당장이라도 바닥에 드러누울 것 같은 태도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또, 또 어린애같이 군다. 거기 휘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매정하게 대답했다.

 

 “싫은디유.”

 “다복짱, 정 없게?!”

 “언젠 지랑 정이 있었슈?”

 

 준 상은 나를 노려봤지만, 뭐,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아니었다. 결국 준 상은 뭔가 고민하는 듯 눈동자를 허공에서 마구 굴리다가, 이윽고 결심한 듯 말했다.

 

 “비밀을 약속하면, 헬렌이랑 친해지게 된 이야기를 해줄게. 그냥 초능력을 들킨 게 아니라, 그 뒤에 어떤 사건이 있었거든.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에서, 같이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친구가 된 사건이었지.”

 “흐음. 뭐 대단하게 궁금한 것도 아닌디유.”

 “음, 그 사건에 제목을 붙이자면… 스토커의 죽음이라고 할까.”

 

 이럴 수가, 꽤나 그럴 듯한 제목을 붙여버렸잖아... 그런 제목을 붙이면 별 관심도 없는 이야기가 갑자기 재밌어보인다고… 내가 살짝 구미가 동한 표정을 지었던 모양이다. 준 상은 바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옆에 달라붙어 속삭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아까 말한 것도 다복짱 말대로 헬렌한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칠 정도로 대단한 일 아니잖아? 그냥 안 할 일을 안 하겠다고 약속하면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거지. 와~ 이득밖에 없는 거래네~”

 

 아이고, 속이 훤하게 보인다.

 원래는 끝까지 약속을 하지 않고서 준 상을 살살 놀려줄 생각이었는데… 일단 그럴 듯한 제목이 나와버렸다. 궁금해.

  게다가 준 상은 여기서 말을 듣지 않으면 마룻바닥에 드러누워 버릴지도 모른다. 다 큰 성인 남자가 바닥에 드러누우면, 아이고, 그 꼴을 속 터져서 어떻게 봐. 쥐어박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으음, 준 상에게 시달리는 것보다는 그냥 적당히 약속해주고, 이야기를 듣는 쪽이 훨씬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아니… 사실은… 꽤 그럴 듯한 제목이야. 궁금하다고. 어쩔 수 없어.

 

 나는 최대한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유. 약속해유.”

 

 그렇게 준 상의 이야기가 시작했다.

 

 
작가의 말
 

 오늘 회사에서 "내일부터는 일이 좀 한가하겠네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해, 공모전은 오늘 끝이라고...

 

 공모전은 끝났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찬찬히 더 올려보겠습니다.

 뭐, 사실 이제 한가하겠다는 이야기도 믿지는 못하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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