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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벽속의 남자
작가 : 탁지원
작품등록일 : 2017.12.18

기술의 진보가 심화되면 그것은 마법과 같게 됩니다.
지금 인류는 인류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기술 혁명의 초입에 와 있습니다.
이제 AI는 여태까지 인류가 축적한 지식보다 몇십만년을 앞서 갈 것이고
생명공학과 나노공학은 인간의 생태적 특성을 근본적으로 바뀌어 놓을 것입니다.
이는 곧 기술을 선점한 인간들중에서 신이 출현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류의 출현 앞에 현생 호모 사피엔스들은 어떠한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요.

이제 주인공은 신이 될지 인간으로 남을지에 관하여 자신이 운명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28. 손에 피를 묻히다
작성일 : 17-12-18 19:51     조회 : 278     추천 : 1     분량 : 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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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나는 여수 여객선 터미널에 일층 남자 화장실 세번째 칸 변기 위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거기서 수상한 사람들이 나를 찾아 쳐들어 올 것이라는 화물차 사내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고자 그들을 기다렸다.

 

 정말로 화물차 사내의 말처럼 수십 초내로 수상한 자들이 뛰어 들어와 나를 붙잡는다면 나는 앞으로는 그 화물차 사내의 말을 무조건 신뢰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그의 말을 정신병 환자의 자작극 정도로 여기고 경찰에 가서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고 신원보호를 요청한 다음 서울에 있는 나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수십 초가 흘러갔다. 내 생애에 그렇게 긴 30초는 다시는 없을 것이다.

 

 삐걱 거리며 화장실 입구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숨을 죽이고 문틈으로 살며시 밖을 내다봤다.

 

 그건 그냥 평범한 대머리 아저씨가 오줌을 누러 온 것으로 보였다. 그 아저씨는 소변을 보는 동안 잠시 두리번 거리더니 두세번 탈탈 털고는 손도 안씻고 그대로 화장실을 나갔다.

 

 나는 에휴~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앞으로 어디서부터 사람들을 믿고 어디까지 의심해야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일분이 지나도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자 나는 그만 화장실칸에서 나오기 위해 변기 위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다시 화장실 입구문이 열리면서 동시에 서너명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보통 서너명이 한꺼번에 볼일을 보러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나는 재빨리 화장실칸 문틈에 눈을 갖다 대고 조심스레 밖을 살펴 보았다.

 

 더운 여름에도 검은 잠바를 입은 처음 보는 남자 한명이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다른 두 명은 틀림없이 밝은 회색 여름 유니폼을 입은 경찰 두 명 이었다.

 

 검은 잠바가 유니폼을 입은 경찰 두 명에게 지시했다.

 

 “내가 말한대로 밖에 있는 병력들한테는 주위를 탐문검색 하도록 전달 했겠지?

 이제부터 너는 입구를 막고 너는 왼쪽부터 하나씩 화장실 칸을 열어봐!”

 “네!”

 경찰관 두 명은 검은 잠바가 시키는 대로 남자 화장실 입구를 막는 것과 동시에 맨 왼쪽부터 화장실칸 문을 열어 제끼기 시작했다. 검은 잠바는 굵은 삼단봉을 꺼내 들더니 그것을 손에 움켜쥐고 열리는 문안을 향해 겨냥하고 있었다.

 

 “우당탕”

 

 첫번째 문이 열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두번째 칸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총 화장실 다섯 칸중에 내가 있는 세번째 칸을 열 차례였다.

 

 그런데 갑자기 맨 우측 칸에서 부시럭 하면서 인기척 소리가 났다. 검은 사내와 경찰들은 쏜살같이 맨 우측 다섯번째 칸의 화장실문을 때려 부시고 안에 있는 사람을 끌어냈다. 그리고는 화장실 바닥에 눕히고 삼단봉 세례와 발길질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이고오….살려주시지 말입니다…아이고….”

 

 다섯번째 칸에 있던 사람은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이었다.

 그는 용변을 마치고 일어서려다가 바지도 못 올린채 끌려나와 화장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한참동안 삼단봉과 발길질로 매타작을 당했다.

 한참을 두들겨 패던 검은 잠바가 갑자기 나머지 둘을 말리면서 외쳤다.

 

 “헉헉…아니다…이 놈이 아니야. 그 놈하고 몽타쥬가 완전 틀린 놈이야.

 꺼져 이 세키야!”

 

 두들겨 맞은 군인은 간신히 정신을 차려 피투성이가 된 채 기다시피해서 간신히 화장실을 빠져 나갔다.

 

 이제 그들은 남은 화장실 세번째,네번째 칸 앞을 지키고 서있었다. 검은 잠바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경찰관들에게 세번째 칸의 문을 열라고 지시했다.

 

 “우당탕탕”

 

 마침내 세번째 칸의 문이 열렸다. 그 안을 들이닥친 그들은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네번째 칸도 마찬가지였다. 난 이미 화장실 뒤의 벽으로 숨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데도 없습니다. 주임님”

 경찰관 두 명이 검은 잠바의 남자에게 보고 했다.

 

 “이런 젠장할. 틀림없이 이 곳으로 출동하라고 지시 받았는데…”

 그러더니 검은 잠바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통화를 했다.

 

 -뚜르륵. 철컥

 반대편에서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에서는 긴박하게 상황을 묻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보고하라. 사냥은 성공했는가?

 

 검은 잠바 사내는 허탈한 듯이 아무 소득도 없음을 보고 했다.

 -아닙니다. 지시 받은 대로 여수 여객선 터미널에 10분내로 출동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틀림 없는가? 다른 곳 화장실도 찾아 봤는가?

 -전부 확인했습니다. 여기는 일층 말고 이층에는 남자 화장실이 없습니다.

 -타겟은 은폐 엄폐가 능한 자라고 보고 돼있다. 다시 한번 주의를 살펴보도록

 -혹시 화장실 밖으로 이미 나갔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알겠다. 확인한 다음 이상 없으면 상황종료 시키고 철수하도록.

 -알겠습니다.

 

 세명의 남자는 나를 못찾고 그냥 뒤돌아서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내가 숨어 있는 화장실벽안은 너무나 축축하고 더러운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끝까지 숨을 참아보려 했으나 역겨운 냄새에 그만 헛구역질이 올라 오고 말았다.

 

 “우웨에엑!”

 

 그 순간 뒤돌아 나가려던 검은 잠바가 그자리에서 걸음을 딱 멈추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내가 숨어 있는 벽쪽으로 다가서서는 자신의 귀를 대고 가만히 소리를 들어 보았다.

 

 난 다시 숨을 참아 보았지만 그만 검은 잠바의 날카로운 안테나에 걸려 든 후였다.

 그는 뭔가를 눈치 챈듯 씩 웃으면서 경찰관들에게 지시했다.

 

 “너희들 가서 곡괭이나 오함마 좀 가져와봐라. 아니면 공구리 깨는 드릴도 좋고”

 

 그는 나를 발견한 것이 틀림 없었다.

 

 지시를 받은 경찰관 두 명은 쏜살같이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들이 공구를 갖고 옴과 동시에 내가 숨어 있는 벽은 산산히 부서지고 나는 밖으로 끌려 나올 것이다. 그리고 아까 그 군인처럼 처절하게 구타를 당하고는 어딘가로 끌려 가겠지.

 아마도 그 종착지는 에릭이 있는 곳이 아닐까 싶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이 축축하고 냄새 나는 화장실 벽안에 갇혀 숨이 막혀 죽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검은 잠바는 두 명의 경찰관을 심부름 보내놓고 화장실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꼼짝없이 덫에 걸린 아니 벽안에 갇힌 쥐꼴 이었다. 나는 위아래로 몸을 이동시키려 하였으나 사방이 배관으로 막혀 있어 쉽지 않았다.

 

 그가 다시 천천히 벽에 다가와 귀를 갖다 대었다. 아마도 자신이 아까 들었던 이상한 소리를 다시 한번 확실히 확인하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나는 결심을 내려야만 했다. 그가 손에 오함마를 쥐고 내가 숨어 있는 벽을 깨부셔서 내가 개처럼 끌려 나오게 되는 것을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여기서 뛰쳐 나가 그와 맞서야 할지를 말이다.

 

 나는 나의 홈그라운드로 그를 끌어들이기로 했다.

 

 나는 벽밖으로 손을 쑥 내밀어 벽에 귀를 대고 있던 그의 멱살을 움켜 잡았다. 놀라는 그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친 채 나는 그의 멱살을 잡고 그의 얼굴을 내가 숨어 있는 벽안으로 있는 힘껏 끌어 당겼다.

 그의 휘둥그레진 눈과 벌어진 입은 그대로 벽속으로 끌려 들어와서 순식간에 그안에 갇혀 버렸다. 그렇게 그의 머리는 벽 속으로 처박히게 되었다. 하지만 머리를 제외한 나머지 몸통 부분은 아직 그대로 벽 밖에 남아 바둥 거리고 있었다.

 내가 벽안에서 밖으로 빠져 나왔을 때 그는 머리만 벽속으로 집어 넣은채 신체의 나머지 부분들은 미친듯이 발버둥을 치며 발작을 하듯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발작도 내가 빠져 나온 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곧 멈췄다.

 

 밖으로 나온 나에게 그는 마치 다트판에 머리 부분만 꽂혀 있는 다트핀 같았다. 그는

 머리를 벽속에 집어 넣은 채 바깥에 나와 있는 몸과 손발은 축 쳐져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벽속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두 손으로 벽을 밀고 긁어서 손가락이 부러지고 손톱이 다 빠져 버린 상태였다.

 

 나는 그렇게 검은 잠바의 머리만 벽속으로 집어 넣은 채 화장실 밖으로 빠져 나왔다.

 

 화장실 밖으로 나오자 마자 아까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온 대머리 사내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나를 알아보고는 크게 소리 쳤다.

 

 “이봐! 거기서!”

 

 도대체 어디서 어떤 자들이 나를 쫓아 뛰어 올지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면서 미친 듯이 여객터미널 밖으로 뛰어 나갔다. 심장이 터지기 직전까지 거기서 멀어지려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면서 나는 확실한 것을 한가지 깨달았다. 화물차 사내가 한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바로 그날, 내 인생에서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사건이 생기고야만 것이었다 .

 

 내 짐작이 맞다면 내가 멱살을 잡고 벽속으로 끌고 들어와 머리부분을 벽속에 가둬 버린 남자, 그 남자는 틀림없이 벽속에서 숨이 막혀 죽었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그 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인의 목숨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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