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판타지/SF
벽속의 남자
작가 : 탁지원
작품등록일 : 2017.12.18

기술의 진보가 심화되면 그것은 마법과 같게 됩니다.
지금 인류는 인류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기술 혁명의 초입에 와 있습니다.
이제 AI는 여태까지 인류가 축적한 지식보다 몇십만년을 앞서 갈 것이고
생명공학과 나노공학은 인간의 생태적 특성을 근본적으로 바뀌어 놓을 것입니다.
이는 곧 기술을 선점한 인간들중에서 신이 출현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류의 출현 앞에 현생 호모 사피엔스들은 어떠한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요.

이제 주인공은 신이 될지 인간으로 남을지에 관하여 자신이 운명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27. 신분 위장
작성일 : 17-12-18 19:46     조회 : 277     추천 : 1     분량 : 804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아저씨 뭐예요? 왜 날 따라 오는 겁니까?”

 내가 뒤돌아서서 당찬 목소리로 따지듯 덤벼들자 추레한 거지 사내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저런 초라한 사내에게 내가 겁을 먹고 도망가려 했다니. 직접 부딪쳐보면 아닌 일을 괜히 고민했었다. 문득 사람은 한번 도망가기 시작하면 계속 비굴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내가 보니까 아까부터 날 졸졸 따라 오던데 당신 대체 뭐하는 사람입니까? “

 

 나는 용기를 내서 어른처럼 굵은 목소리로 아주 거칠게 그를 다그쳤다. 그랬더니 거지 사내가 갑자기 울상이 되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난 아무 것도 몰라…그냥 돈받고 시킨대로 전해줄라고 했을 뿐인데…”

 그러더니 재빨리 누런 서류봉투 하나를 내 품에 툭 던지고 도망치듯이 금새 어두운 골목길로 사라져 버렸다.

 

 “아…아저씨. 잠깐만요!

 이건 뭐예요? 누가 전해주라고 한거예요? 나를 어떻게 찾았어요?”

 

 난 거지 사내한테 물어보려고 필사적으로 그를 쫒아 뛰어 갔다. 하지만 그 사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금방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도리어 쫒아가던 내가 숨이 차서 헉헉거리며 그 자리에서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하악 하악….”

 

 여수에 온 뒤로 심장의 박동이 점점 더 빠르고 격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판막이상으로 심장의 피가 역류해 갑자기 길에서 쓰러져 죽을 수도 있었다. 나는 빠른 시일내에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고 약을 처방 받아야만 하는 몸이었다.

 

 하지만 수상한 화물차 기사의 말대로라면 나는 내 신분이 드러나는 병원이나 경찰에 가서는 안됐다. 나는 그 사내에게 연락이 오기전까지는 누구에게도 신분을 드러내지 말고 숨어 지내야만 했다. 그것이 내가 지금 유일하게 지켜야 하는 원칙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되는 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에릭과 검은 잠바 일당을 피하려다가 도리어 내가 먼저 굶어 죽거나 심장마비로 죽을 지경이었다.

 

 길가의 벤치에 앉아서 거지 사내가 주고 간 누런 봉투를 흔들어 보았다. 묵직한 것들이 안에서 서로 부딪히고 덜렁거렸다.

 

 ‘설마 독약이라도 넣은 건 아니겠지…’

 

 어차피 밑져야 본전, 나는 거지 사내가 준 누런 봉투를 조심스레 뜯어 보았다.

 

 봉투를 털어 보니 안에서는 아주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구형 폴더폰 전화기와 플라스틱 주민등록증 한개, 대한민국 여권 한개, 뭔가를 잔뜩 휘갈겨 쓴 A4 종이 한장 그리고 백만원 정도 되어 보이는 지폐 뭉치 하나가 나왔다. 그것들은 내 눈에는 돈외에는 다 허접한 쓰레기 따위로 보였다.

 

 일단 벡만원의 돈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작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백만원이면 최소한 몇 주 정도는 여인숙에서 지낼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다음은?’

 

 단지 떠돌이 도망자로서의 시간을 연장한 것 뿐이지 지금의 신세는 변할 게 없을 것만 같았다.

 

 다시 하나씩 자세히 살펴 보았다.

 우선 신분증부터.

 이름: 김준호? .이건 누구지?

 그리고 더 자세히 살펴 보자 엥? 깜작 놀랐다.

 김준호라는 낮선 이름 위에 내 사진이 떡하니 붙어 있었다.

 이 사진은 내가 고등학교 원서 낼 때 제일 나이 들어 보이게 찍어 달라고 한 사진인데 이게 어떻게 김준호 라는 사람 신분증에 붙어 있는 거지?

 

 이번엔 여권을 열어 보았다.

 KIM JUN HO, 역시 김준호라고 표기된 이름 위에 똑같은 내 사진이 붙어 있었다.

 난 어안이 벙벙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장난치고 있는 듯 해서 일어나서 사방을 둘러 보았다.

 

 하지만 여기는 여수 교동에 있는 여객터미널 입구 벤치 앞이다. 나조차 처음 와서 어딘지 잘 모르는 이곳을 누가 알고 쫓아와 나를 감시하고 있단 말인가?

 사방을 둘러봐도 생소한 건물에 처음 보는 사람들 뿐, 저안에 나를 감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설사 있다고 한들 내가 어떻게 알아 보겠는가?

 게다가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 신분증 위에 붙어 있는 나의 사진은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뭔가 잔뜩 손글씨로 써져 있는 A4지를 펴보았다. 뭔가 뜻 모를 내용이 잔뜩 쓰여 있었다. 대충 보니 전부 김준호란 사람에 관한 내용이었다.

 어디서 출생했고 언제 입대했고 부모는 누구며 에 관한 내용이었다.

 

 잠시 읽어 본 바로는 김준호란 사람은 전라도 강진 출생이고 학교는 전부 검정고시 출신에다가 군필이며 부모는 모두 돌아가시고 안계셨다. 대체 이런 자의 프로필을 왜 나에게 전해줬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손에 쥔 구형 폴더폰.

 이 휴대폰은 아주 오래전 기억에도 가물거리는 TV광고에서 한번 본 적이 있는 모댈 이었다.

 어떤 여자가 나와서 걸면 걸린다고 광고하던 현대 걸리버 전화기 였다. 대충 봐도 한 십년정도 되보이는 정말 구닥다리 폴더폰이었다.

 

 난 폴더를 열고 전원을 켰다. 전원과 통화신호는 놀랍게도 정상적으로 들어와 작동하는 것으로 보였다.

 

 근데 도대체 이제부터 이것들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도대체 용도를 알 수 없는 신분증과 여권, 구형 폴더폰 그리고 뭔가 잔뜩 적어 놓은 종이 한장…그 중에서 백만원 지폐 뭉치를 빼놓고는 다 나한테는 쓰레기 잡동사니 같은 것 뿐이었다.

 

 폴더폰은 그냥 버릴지 말지 잠시 고민을 했다. 가뜩이나 전화가 없어서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이거라도 있으면 좀 낫지 않겠나 싶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 화물차 기사의 충고를 생각한다면 그냥 갖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했던 충고, <절대로 주위에 연락하지 말라!>, 라는 그의 말이 갑자기 생각나서 나는 비록 후진 구형 전화기이지만 그냥 갖고 있기가 찜찜했다.

 

 더구나 분당 야탑역 찜질방에서도 단지 외할아버지와 기남에게 찜질방 유선전화로 짧게 전화했을 뿐인데 어떻게 알고 검은 잠바들이 쏟살 같이 쫒아온 것이 떠올랐다.

 나는 더 이상 주위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돈만 들고 나머지는 다시 봉투에 넣어서 옆에 쓰레기통에 집어 던져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찜질방으로 향했다.

 

 도대체 누가 나를 돕고 싶은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도울려면 제발 제대로 도와 주었으면 했다. 돈도 백만원씩 찔금 주고서 저런 잡동사니 따위나 잔뜩 안겨 주다니 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걸음을 가다 걸음을 멈춘 나는 뒤통수가 찌릿해지면서 번쩍하고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이 정도로 우연한 경우는 없다. 혹시 저 안에 내가 눈치 못챈 무엇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서둘러 다시 그 자리에 가보니 다행히 아직도 누런 봉투는 누가 집어 가지 않고 쓰레기통안에 그대로 있었다. 난 봉투안에 든 폴더폰을 다시 꺼내 통화 버튼을 길게 눌렀다.

 

 -뚜르르르…뚜르르르

 분명히 신호가 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참을 신호가 가도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십초가 흐른 뒤 내가 끊을려고 할 찰나에 반대편에서 나직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난 호기심과 두려움에 조심스럽게 상대방에게 말을 걸었다.

 

 -저 여기 전화가 있어서 전화 드렸는데요 혹시 전화기 잃어 버리시지 않았나요?

 한 십년 되어 보이는 건데 걸면 걸리는 옛날에 현대 걸리버 폰이라고…”

 

 상대방은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불쑥 내게 되물었다.

 

 “거기 주변에 아무도 없나?”

 “네?”

 “주위에 사람들이 없냔 말이다.”

 “아…예. 여기 사거리 벤치 앞이라서 오가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지금 바로 전화 끊고 일단 주위에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거라. 거기 가서 다시 전화 하도록.”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틀림없이 이전에 나를 구해줬던 화물차 기사 사내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내가 어찌 그 사내의 목소리를 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전화기를 들고 바로 앞에 있는 여객터미널 일층 남자 화장실 세번째 칸에 뛰어 들어가서 서둘러 문을 잠궜다. 그리고는 변기에 앉아 긴장하며 다시 전화를 시도했다.

 

 “저 여보세요”

 “주변에 아무도 없나?”

 “네. 완전히 저 혼자예요”

 난 속삭이듯 조심스레 대답했다.

 

 “잘 들어라. 시간이 없어서 단 한번만 말한다. 그냥 너는 앞으로 내가 시키는대로만 해야 한다.”

 “네? 아니 제가 왜 그래야 되죠?”

 

 전화기 반대편의 남자는 다짜고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채 그대로 따라 하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이유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의 목숨을 살려줬고 니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너의 주변 사람 모두가 다치게 되니까!”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격앙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만요. 그럼 혹시 저를 구해주신 그 화물차 기사 분인가요?

 저의 어머니는요? 그 때 저의 어머니를 보호해주신다고 했잖아요?”

 “이봐. 시간이 없다구 했잖어. 이제 저들이 너의 목소리를 알아 듣고 몇 분 뒤면 들이닥칠거야.“

 

 하지만 나는 그의 재촉과 상관없이 어머니가 무사하신지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저를 어떻게 찾았죠? 저의 어머니는 어딨어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대답해주지 않으면 나도 당신 말을 따르지 않을 겁니다!”

 “흠…누굴 닮아 아주 고집불통이군.

 왜 내가 시킨대로 일요일 밤 전화 하지 않았나?”

 

 나는 그가 제대로 따지자 아불싸! 싶었다. 내가 잃어버린 전화번호 쪽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나?

 그리고 오늘이 금요일, 그가 전화하라고 한 일요일에서 벌써 닷새나 지난 후였다.

 

 “아…그건 전화번호 적은 쪽지를 실수로 잃어 버려서…”

 “잘하는군. 자신과 주변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도.

 너가 약속한 날짜에 전화를 안했기 때문에 내가 널 찾기 위해 얼마만큼 큰 희생을 감수 해야 있는지 알고 있나?”

 “저…아저씨, 전화번호 잃어버린 건 미안한데요 어쨌든 다시 날 찾았잖아요.

 우선 그것부터 얘기 해봐요. 어떻게 날 찾았죠? 내가 여기 여수에 온 거는 아무도 모를텐데.”

 

 나는 그가 숨어 있는 나를 귀신같이 찾아 낸게 너무나 놀라웠다.

 

 “너 지난 목요일에 여수 여객터미널 앞 공중전화에서 구리경찰서 민원실에 전화 했었지?”

 

 “헉! 대체 그걸 어떻게?”

 

 화물차 기사의 정확한 지적에 나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신원도 밝히지 않고 모자를 눌러 쓴 채 불과 몇 십초 공중전화로 전화한 걸 대체 그가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다신 경찰이나 기자한테 전화하는 등의 쓸데없는 짓 하지마라. 니가 애쓴다고 달라질 상황이 아니니깐.

 그리고 너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중요한 나의 연락책 하나의 목숨을 희생해야만 했다. 바로 너의 그 부주의하고도 멍청한 짓거리 때문에!”

 

 나는 계속 되는 그의 다그침에 할 말을 잊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목숨이 희생된다는 것 또 무슨 말인가? 난 당최 이 사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너의 어머니는 잘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니가 멍청하게 굴면 너뿐만 아니라 너의 어머니도 같이 위험하다는 걸 명심하도록 해”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다는 말에 난 울부짖듯이 그에게 사정했다.

 

 “제발 살아계신지 목소리만이라도 듣게 해주세요. 제발요”

 

 “이봐! 안현. 정신 똑바로 차려! 그들이 나타나기 까지 이제 삼분도 채 안남았어.

 정말 마지막이다. 내 말 똑바로 들어.

 

 거기 주민증과 여권에 있는 <김준호>라는 사람이 이제부터 바로 너다. 앞으로 넌 김준호란 이름으로 살아야만 한다. 지금부터 안현에 관한 모든 것은 다 모조리 다 잊어라. 그래야만 살 수 있어.

 그리고 김준호란 이름은 니 나이 또래에만 전국에 삼천명쯤 되니까 니가 특별히 튀는 행동만 안한다면 아무도 널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공무원이 된다거나 경찰에 잡혀 신원조회를 당한다든가 하는 짓은 절대 금물이다. 아예 정식 직장생활은 포기하고 알바 같은 것을 알아보는 게 차라리 나을 거다.”

 

 난 순간적으로 그 신분증에 기록된 김준호란 자의 생년월일이 기억 났다.

 890815 - 1069730

 나이가 나보다 무려 네살이나 많다구?

 

 “아니…이건 나보다 네살이나 많은데요? 스물 한살이라니?”

 

 “알아. 하지만 군필을 고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

 제발 시간이 없으니 입닥치고 듣기만 해라.

 넌 대학도 안가고 검정고시를 본 후 바로 군입대를 한거야. 제대한 이후에는 고향 전라도 강진으로 가서 그냥 백수생활을 하는 시골 총각일 뿐이고.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셔서 고향에는 별로 아는 사람도 없는 것이 바로 니가 처한 주변 환경이다. 물론 친구나 애인도 전혀 없는 상황이지.

 다시 한번 명심해라. 이제부터 너는 김준호 라는 것을”

 

 “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난 머리속에 대혼란이 폭발하면서 짜증이 터져 나왔다.

 

 “닥쳐! 시간이 없으니까 듣기만 하라고 했잖아!”

 전화기 너머의 사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여권과 신분증은 모두 김준호의 것이다. 자세한 신상은 종이에 적어 두었으니 달달 외워서 잊지 말도록!

 너는 지금부터 바로 강진으로 가서 거기서 죽은 듯이 숨어 있도록 해라.

 거기서 그렇게 있으면 얼마 뒤에 누군가 너를 찾아갈 것이다. 그는 내가 보낸 사람이니까 안심하고 따라가도 된다.

 내가 다시 연락할 때까지 그렇게 그 사람 밑에서 숨어 지내도록 해라.

 그리고 이 전화는 통화가 끝나자 마자 바로 여수 앞바다에 던져 버리도록.”

 

 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잠시만요!

 다짜고짜 강진에 가서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고 숨어 살라니요?

 그리고 날 찾아오는 사람이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고서 안심을 하라는건가요?

 나한테는 다시 언제 어떻게 연락할건데요? 도대체 언제까지 숨어 있으라는 거나구욧!

 제발 좀 알아듣게 설명해주세요!”

 

 “이런 젠장할!

 그냥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이 멍청한 놈아!”

 

 전화기 속의 사내가 끝내 욕을 하며 화를 터뜨렸다.

 그가 그토록 성을 내면서 말을 재촉하자 나는 움츠려들어서 더 이상 궁금한 점을 물어 볼 수 없었다.

 

 “좋아요.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할게요. 그 대신 어머니 목소리라도 한번만 듣게 해주세요.

 그러면 그대로 하겠습니다. 제발요…”

 

 수화기 너머 사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뒤 수화기 너머로 잊지 못할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현아!”

 “어…엄마?”

 “현아. 엄만 잘 지내니까 걱정마. 지금은 무조건 이 아저씨 말 들어야돼. 그리고…”

 

 어머니께서 뭐라 말하려는 중간에 다시 사내가 전화기를 가로챘다.

 

 “됐나?

 돈은 형편이 되는대로 다시 보내도록 하마. 일단은 내 말대로 강진으로 가서 숨어 있도록”

 

 “잠시만요. 다시 어머니 좀 바꿔줘요! 제발 좀!”

 

 “어머니를 만나고 싶나? 그렇다면 우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부터 길러.

 니가 충분히 그 능력이 될 때 다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명심해라! 그 전에 어머니나 주변사람에게 연락하면 그 사람들도 같이 위험해 질 테니까.”

 

 “당신!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고통을 주는 겁니까? 아저씨, 혹시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나요?”

 

 “이봐. 너를 구해준 사람한테 무슨 말버릇인가?

 너는 그들이 누군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야. 그들은 바로…”

 

 무언가를 설명하려던 사내는 말을 끊고 급박하게 나한테 고함을 쳤다.

 

 “이런 젠장! 그들이 벌써 터미널 앞에 다 왔어.

 어서 전화기를 버리고 도망가! 어서!”

 

 그리고는 그는 가차 없이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잠시동안 정신이 나가서 변기 위에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도저히 거기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사내의 말이 설마 사실이라 해도 난 믿고 싶지 않았다. 이제부터 다른 사람 신분으로 숨어 살면서 도망다녀야 한다니. 그것도 기약도 없이 빈털터리 신분으로.

 

 그의 말대로라면 난 앞으로 제대로 된 취직도 할 수 없고 집에도 갈 수 없다. 조금 전까지 만해도 당당하게 살고 싶었는데 지금은 다시 숨어다니는 떠돌이 신세, 원래에 학교에서 찐따 취급받던 나의 이전 모습대로 돌아와 버렸다.

 지난 8.7 보충수업 첫날부터 8.18 금요일 지금까지 불과 이주만에 내 인생은 온통 혼돈 그 자체였다.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이리 바뀔 수 있을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해야 이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그 자그마한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난 그저 에릭과 검은 잠바를 입은 남자들에게 쫓겨 다니다 화물차 사내의 도움을 받아 이곳 여수까지 살아 남아 올 수 있던 것 뿐이었다.

 

 이유를 모르는 나는 한동안 얼어 붙은 듯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지금 당장 그 사내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이 딱 하나 있었다.

 

 그가 마지막에 전화를 끊기 전에 말한대로 수분내 누군가 나를 찾으러 이곳을 들이닥치는지 기다려 확인하는 것이었다.

 

 만일 그 사내의 말이 맞다면 나는 그가 말한대로 당장 강진으로 떠나 한동안 신분을 숨기고 그곳에 처박혀 지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는 경찰서에 가서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신변보호를 요청할 것이다.

 

 난 여객터미널 일층 남자화장실 세번째 칸에 그대로 앉아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일들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9 39. 장흥에서 통화하다 2017 / 12 / 18 262 1 10026   
38 38. 노인의 정체 (1) 2017 / 12 / 18 261 1 4998   
37 37. 누명을 쓰다 2017 / 12 / 18 285 1 6111   
36 36. 절대 눈을 마주치지 말아라 2017 / 12 / 18 277 1 3874   
35 35. 에릭의 펜트하우스 2017 / 12 / 18 267 1 4242   
34 34. 문책을 당하는 에릭 2017 / 12 / 18 263 1 4591   
33 33. 가마터에서 딱 일년만 버티기로 2017 / 12 / 18 266 1 4804   
32 32. 점점 다가오는 경찰 2017 / 12 / 18 267 1 4723   
31 31. 도자기 굽는 노인 (2) 2017 / 12 / 18 289 1 7124   
30 30. 도자기 굽는 노인 (1) 2017 / 12 / 18 277 1 4534   
29 29. 강진에서 숨어 지낸 첫 날 2017 / 12 / 18 278 1 5050   
28 28. 손에 피를 묻히다 2017 / 12 / 18 279 1 4104   
27 27. 신분 위장 2017 / 12 / 18 278 1 8042   
26 26. 완전한 각성 (2) 2017 / 12 / 18 267 1 4142   
25 25. 그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다 2017 / 12 / 18 262 1 4513   
24 24. 나를 쫓는 그들 2017 / 12 / 18 255 1 4382   
23 23. 완전한 각성 (1) 2017 / 12 / 18 290 1 4656   
22 22. 내 능력을 보여주마 2017 / 12 / 18 275 1 3734   
21 21. 수상한 사나이 2017 / 12 / 18 267 1 4613   
20 20. 첫번째 위기 2017 / 12 / 18 272 1 3650   
19 19. 한밤중의 방문자 2017 / 12 / 18 275 1 5432   
18 18. 어설픈 각성 2017 / 12 / 18 266 1 3743   
17 17. 내가 저 벽속에 들어 갔었다구? 2017 / 12 / 18 268 1 4183   
16 16. 나는 지금 벽속에 있다 2017 / 12 / 18 269 1 3419   
15 15-2. 보충수업 첫날 (2) 2017 / 12 / 18 281 1 4287   
14 14. 보충 수업 첫날 (1) 2017 / 12 / 18 254 1 3726   
13 13 미치광이 에릭 2017 / 12 / 18 265 1 4249   
12 12. 마지막 리허설 2017 / 12 / 18 263 1 4020   
11 11. 내가 누명을 벗겨줄게 2017 / 12 / 18 261 1 3301   
10 10. 선영이에 대한 소문 2017 / 12 / 18 241 1 4973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