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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완벽한악역
작가 : 퐁당퐁당
작품등록일 : 2017.12.18

 
11화 – 일상과 변화의사이(5)
작성일 : 17-12-18 17:02     조회 : 264     추천 : 0     분량 : 5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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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똑똑. 안에 신대표님 계시죠?”

 

  여느 부서와 마찬 가지로. 아니, 그 어떤 부서의. 그 누구보다도. 폭풍우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신대표의 비서실에 뜬금없이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크가 아닌 입으로 똑똑-. 이라고 소리를 내며 문을 밀고 들어오는 얼굴은 보나마나 윤정현변호사 일 것이다. 빙고-.

  너구리가 울고 갈 정도로 퀭 해진 눈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비서실 직원들이 일시에 정현을 돌아 보았고. 음울한 분위기에 한 번, 좀비 같은 다크써클에 두 번 놀라 어깨를 움찔한 정현이 금새 표정을 다 잡고 생글생글 웃으며 들어온다.

 

 “헤에-. 이십일세긴데, 이십일세기-. 손가락 한 번 까딱하면 못하는 게 없는 세상인데에-. 이놈의 구닥다리 같은 법조계는 쓸데없이 종이 쪼가리가 많이 필요하죠?”

 

  넌 아침에 그 사단이 났는데도 그런 말이 나오니- … 정현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에 한층 더 가라앉은 얼굴을 하는 그들 이었다.

 

 “안에 계십니다. 보고 드릴까요?”

 

 “아뇨. 그냥 들어갈게요.”

 

  속도 모르고 생글생글 웃고있는 정현의 모습에 비서1의 이마에 십자가가 세겨졌다. 아무리 보아도 오늘 오전 발령 된 데프콘의 원흉이 눈앞의 이 남자 아니면 옆 사무실에 앉아있는 저 남자 같은데.. 대체 왜? 이 남자는 이렇게 해맑고, 저 남자는 저렇게 태연한데. 도대체가! 왜 고생은 저희들이 하고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냥 들어가겠다니. 직무유기의 죄를 물며 날아올 신대표의 독설이 벌써부터 귓전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아직 워치콘 상태입니다.. 저 또 혼나요..”

 

 “흐음.. 제가 대신 혼나러 들어가는 거니까 괜찮아요. 자아-. 이 것들 좀 드시고. 당 충전 하고 계세요. 잠깐이면 되니까, 저 있는 동안은 방해 말아 주시고요. 이건 뇌물-.”

 

  뇌물이란 말에 그제야 정현의 손에 잔뜩 들린 쇼핑백 들이 보였다. 초콜릿부터 시작해 타르트며, 마카롱이며, 온갖 달달구리한 디저트들이 잔뜩 들린 쇼핑백들을 책상위에 내려 놓으며 정현이 코를 찡긋 했다. 아- 안되는데에-. 마침 한창 당이 떨어짐을 느끼고 있던 비서실에 불시에 날아 든 달콤한 유혹은 모두를 아찔하게 만들었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대표실의 문을 열어 제낀 정현의 스피드는 그들을 더욱 아찔하게 만들었다.

 

 “안되는ㄷ !! ….”

 

 비교적 일찍 정신을 차린 남자직원이 급하게 말려보았지만.. 이미 닫히기 시작한 문 뒤로 보이는 정현의 동들동글한 뒷머리를 아련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아.. 망했다 ..

  탕! 하고 닫히는 집무실의 문소리와 함께, 신대표의 야단이 서라운드로 메아리치는 듯한 환청을 느낀 비서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마음을 모았다.

 

 ‘기왕 들어가신 김에.. 제발 워치콘 좀 풀어주세요..’

 

  어디있지?..

 재빠르게 문을 열고 들어온 정현의 눈에 책상에 위치해 있어야 할 가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집무실 내부를 돌아보며 가연의 책상 쪽으로 다가간 정현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피식 웃는다. 오늘아침까지 가연의 발에 신겨져 있던 까만색 하이힐이 책상 아래에 아무렇 게나 던져져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메달고 뒤를 돌아본 정현의 눈에, 소파 앞에 놓인 대리석 탁자위에 반듯이 누워있는 가연이 보였다.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와 날씨가 제법 차가워 졌음에도 불구하고 출근하며 입고 나온 코트는 물론, 코트 속에 입었던 재킷까지 벗어 던진 가연의 몸에는 얇은 블라우스 한 장만이 걸쳐져 있었다. 양손을 가지런히 배 위에 포개 올린 채 정수리가 바닥으로 향하게끔 머리를 떨어뜨린 가연의 얼굴이 붉게 물 들어 있는 것을 보니 꽤나 오랫동안 그 자세로 있었던 모양이다.

 

 ‘제대로 열 받았네.’

 

 “치마입고 그렇게 아무데나 벌렁 누으시면 안됩니다 대표님.”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연에게 다가간 정현이 주머니에 들어있던 손을 빼내며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가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받쳐 올린다.

 꿇려진 다리 반대편 무릎의 각도를 가연의 머리통 위치와 맞춘 정현이 그녀의 머리를 제 무릎위에 걸쳐 놓고는 소파위에 던져져 있던 서류봉투를 집어 들었다. 정현이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가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손에 든 서류로 팔랑팔랑 부채질을 시작하자, 그녀의 얼굴위에 흩어져 있던 머리카락들이 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흔들린다.

 

 “게다가, 이렇게 다 벗어 던지시고.”

 

 피가 몰려 붉게 물들었던 가연의 얼굴이 정현의 무릎위에서 안정을 찾은 듯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지만, 가연은 눈을 뜰 생각이 없는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고요했다. 그런 가연의 얼굴을 한참 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며 부채질을 계속하던 정현이 불현듯 얼굴에 짓궂은 미소를 걸더니 부채질 하던 손을 멈춘다.

 

 “으헉! 야! 이게 끝까지!!”

 

 가연의 머리를 받치고있던 정현이 불시에 무릎을 쏙! 빼 버리고는, 떨어지는 가연의 뒤통수를 중간에서 받아 들어 위로 쭈욱- 밀어 올렸다. 방심하고있던 찰나에 기습공격을 당한 가연이 입에서 억!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나 정현을 향해 훽 돌아앉았고, 크흐흐흑 소리를 내가며 싱글싱글 웃고있는 정현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오래 참는다 했다, 윤정현.

 

 “끝까지? 끝 난거야 이제 그럼?”

 

 “오냐. 끝이다! 오늘 아주 너랑 나랑 연을 끊자!”

 

 흥분한 가연이 소파위에서 놀고있던 쿠션을 마구잡이로 정현에게 집어 던졌지만 앉은 자세 그대로 상체만 요리 조리 돌려가며 날아 든 쿠션들을 막아내는 정현이었다. 투닥투닥 두 사람이 다투고 있는 사이, 비서실과 연결 되어있는 가연의 사무실 전화가 반짝이며 울어 댔지만 열이 받을 대로 받은 가연과 날아오는 쿠션을 피하느라 정신 없던 정현은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싸움에 열을 올렸다.

 

 “이제 그만 봐주세요. 제가 잘못 했습니다아-. ”

 

 “뭘 했다고 봐줘. 니가 뭘 했다고!”

 

 “나 진짜 반성 많이 했어어어-.“

 

 “반성하는 놈 태도가! 응?! 너는 태도부터가 글러 먹었어!!”

 

 “내 태도가 왜? 나 지금 무릎 꿇고 있는 거 안보여?”

 

 “말이나 못하면!”

 

 어느새 소파 위에 있던 모든 쿠션이 정현의 옆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던질 쿠션이 더 이상 없어지자, 가연이 씩씩거리며 정현을 쏘아봤다. 가연의 공격이 멈추자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정현이 문뜩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눈을 반짝이며 싱글싱글 웃는다.

 

 “야, 가연아. 근데 너 방금 그 말.”

 

 “뭐? 태도가 글렀다는거?”

 

 “어어- 그거. 킄킄. 고2때 담임이 맨날 나한테 하던 말인데. 그때 그 쌤 나이가 아마 서르은-.!”

 

 “정신 못차렸어 아직! 더 맞아야 돼! 더!”

 

 “악!! 야 아파! 너 손 완전 매운 거 알고는 있냐? 아악!”

 

  단전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가연이 정현의 팔뚝을 비롯한 오만군데를 찰싹찰싹 때리기 시작했다.

 

 -똑똑.

 

 “아프라고 때리지! 너가 맞아봐야 나보다 더 아파?! 더 맞아! 더!”

 

 “아악! 아이고! 나 죽네! 그래 때려라 때려! 소오인-! 이 한 몸바쳐 애기씨의 한을 풀어 드릴수만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맞아 드리겠구먼유!”

 

 “아악! 약 올라!”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으면서도 깐족거림을 멈추지 않는 정현의 모습에 결국 이성을 잃은 가연이 기어코 정현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휘어잡은 순간.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두 사람의 시야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람이 들어찼다.

 

 “앆!! 머리는 안도ㅔ! 뽑짐ㅏ!! ....”

 

 “ … ”

 

 

 결제서류 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진 파일을 왼쪽 손에 꼬옥 쥐고있는 차연우 였다.

 

 “ …. 아직도 .. 치고 받고 싸우시나 봅니다.”

 

 “ …. "

 

 “ …. "

 

 꿇어 앉은 한쪽 무릎을 펴지도 못한 상태로 가연에게 먼지나게 맞고 있던 정현과, 한 팔은 정현에게 붙들려 있고 나머지 한 팔은 제 친구의 머리채를 붙든 채 테이블에서 반쯤 일어나 선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엉거주춤 한 자세를 하고있던 가연은 떫떠름한 표정을 짖고 있는 연우와 눈이 마주지자,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돌처럼 얼어 붙었다.

 

 “어 … 굿모니ㅇ..!! 으허억!! ... 억!!”

 

  우당탕 쿵탕탕-!!

 

  누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듯이 멈춰있던 두 사람 중 먼저 정신을 차린 쪽은 정현이었고, 당황스러움에 아무말 대찬치를 벌이려는 찰나. 정신이 돌아온 가연이 급하게 움직이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리석 테이블위에 올려져 있던 가연의 무릎이 미끄러지며 그녀의 몸이 앞으로 쏠렸고, 앞에 있던 정현의 몸을 밀어내며 그의 몸 위에 엎어졌다. 가연이 제 게 날아들며 두 사람의 몸이 뒤로 넘어가는 순간에 정현이 가연을 감싸 안으며 그녀에게 가해질 충격을 완충 시켰지만, 반동에 의해 가연의 얼굴이 정현의 어깻죽지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파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차연우 앞에서 이런 몰골을 보이고 말았는데.. 가연은 제 아래 깔려 있는 정현을 지지대 삼아, 있는 힘껏 그의 갈비뼈를 찍어 누르며 벌떡 일어났다.

  세 사람이 엇! 할 틈도 없이 일어난 사고에 연우가 눈만 꿈뻑이며 어안이 벙벙해 있는 사이, 그에게서 등을 돌린 가연이 후다닥 매무새를 가다듬고 오른손을 들어 이마를 감싸쥐고 있었다.

 

 아… 쪽팔려…

 가연이 이마를 감싸쥐며 자책하고 있는 이 와중에도 정현은 죽는 소리를 하며 바닥을 뒹구르고 있었고. 어억.. 가..갈비뼈.. 부러진 것 같아 가여나아 .. 하며 엄살을 부리고 있는 정현을 발로 툭툭 차가며 얼른 일어나라는 압박을 가하는 가연의 험악한 눈빛에, 오만상을 찡그리고 제 갈비뼈를 부여잡으며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는 정현이었다.

 

 그 아수라장에서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연우가 이 난해한 상황에 적절한 말을 고르지 못해 망설이다가, 결국 가장 보편적인 말을 꺼냈다.

 

 “ … 괜찮으십니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연우의 목소리에 눈에 띄게 어깨를 움찔한 가연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끼릭끼릭 돌아서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다.

 

 “하하.. 네에.. 괜찮아효오- ..”

 

 “ … 괜찮지 않아 보입니다만 .. “

 

 “ … 녜..?..”

 

 “ … 대표님 코피 납니다.”

 

  간신히 정신은 돌려 놨지만 사고는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했는지, 가연이 몽롱한 얼굴로 연우를 바라보며 반문 했고. 그런 그녀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 쉰 연우가 제 앞에 있는 티슈를 뽑아 들고 가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연우가 한발짝 움직였을 때.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의 속도로 정현이 연우의 앞을 스쳐 지나가, 가연의 뒷목을 잡고 제 옷 소매로 그녀의 코를 틀어 쥐었다.

 

 “야! 너 코피! 미련 곰퉁아! 아프지도 않았냐??”

 

 “아얏..!..”

 

 “아파? 아파? 많이 아파? 으유-! 이 멍충아! 병원 갈까?”

 

  하필이면 오늘. 눈 부신 자태를 자랑하며, 멋들어지게 차려 입고 출근했던 정현의 새하얀 수트 소매가 가연의 코에서 철철 쏟아지는 피로 붉게 물들었다. 어찌나 세게 부딪혔는지, 쉴 틈 없이 흘러 나오는 피로 인해 정현의 수트 끝자락에서 시작된 붉은 번짐이 어느새 그의 손목 언저리까지 타고 내렸다.

  우악스레 제 코를 틀어 쥔 정현의 손길이 다소 거칠었는지. 미간이 살짝 찡그려진 가연이 한 손으로는 그의 팔꿈치를 감아 쥐고, 남은 손으로는 제 코 위에 있는 정현의 손을 붙잡았다. 감싸 쥔 정현의 팔을 톡톡 건드려 탭을 친 가연이, 코가 막혀 살짝 뭉그러진 발음으로 정현을 올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 넉아 누르능게 더 앞하..”

 

 “어? 아 미안!.. 아.. 미치겠네! 세게 누르면 아프다고 하고, 떼면 피가 안 멈추고.. 그러게 너는왜! … 으휴!”

 

 으아- 어떡해. 진짜 괜찮아? 누가 보면 제가 아프기라도 한 듯 잔뜩 울상을 지은 정현이 피가 멈추지 않는 가연의 코를 붙들고 안절부절 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을 눈 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연우의 눈동자가 짙게 가라앉았다.

 

 꾸욱-.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연우의 주먹 안에서 급하게 뽑아 들었던 티슈 몇 장이, 갈 곳을 잃은 채 형편없이 구겨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던 연우가 혹시라도 제 표정이 일그러질까 싶어 고개를 왼쪽으로 틀었고. 그의 눈에 걸린 휴지통 안으로 구겨진 티슈를 던져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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