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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홍콩러브트립
작가 : 제이J
작품등록일 : 2017.12.1

은퇴후 낯선 도시를 찾아온 톱스타 이한경
그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이드 송호연
홍콩에서 시작되었던 그들만의 러브 트립

 
7. 야경을 보는 두가지 방법 - 더 피크 #2
작성일 : 17-12-18 14:26     조회 : 374     추천 : 0     분량 : 7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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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좁은 흙길의 양쪽에는 낡은 난간이 놓여있었다. 이끼가 가득 덮인 절벽들 사이로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하늘을 덮을 만큼 우거져 있었다. 군데군데 가로등이 놓인 좁은 길엔 조깅을 하는 주민들만 오갈 뿐 한산했다.

 

 “14번째 총독의 이름을 딴 루가드 로드에요. 100년 전 쯤, 홍콩섬에서 가장 높은 오스틴 산 등성을 360도 깍아 만든 산책로죠.”

 

 한경은 길가에 서있는 오래된 번지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호연의 눈이 그의 시선을 따라왔다.

 

 “부자들이 살았던 곳이기도 해요.”

 

 영국령시절 지배계급은 홍콩의 높은 지대에 터를 잡았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미드레벨도, 이 곳 더 피크도 그렇다고 했다. 그들은 높은 곳에서 자신들이 지배하는 땅을 내려다보며 흐뭇해했을지도 몰랐다.

 

 “강남에서 제일 비싼 집이 평당 얼마쯤이죠?”

 

 부동산 시세에 대한 관심은 전무 했지만 주워 들은 것들은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는 집값과 그 시세차익으로 수익을 올렸다는 성공담은 술자리의 단골 대화주제였다. 부동산 투자는 연예인들의 중요한 재테크 중 하나였다. 재개발을 앞둔 강남의 아파트가 평당 몇 천을 호가한다고 했던가. 무의식적으로 보통 평수 아파트 가격을 헤아려보곤 헉 소리를 집어 삼켰던가. 그게 진짜냐 되물었다가 당신이 살고 있는 그 펜트 하우스는 더 비싸다는 면박을 듣기도 했었다.

 

 “한 4,5천 만원 쯤 하던가.”

 

 그 까짓 거 별거 아니라는 듯 호연은 코웃음을 쳤다.

 

 “근처에 홍콩에서 제일 비싼 빌라촌이 있는데 거기는 평당 7억이에요.”

 “평당 7억?”

 “여긴 다닥다닥 붙어있는 닭장 같은 10평 짜리 아파트들도 기본이 10억이거든요.”

 

 대한민국 관광객들은 세계 어느 곳을 가던지 그 곳의 집값을 궁금해 한다고 호연은 말했다. 헬조선의 팍팍한 현실을 그런 식으로 위로받고 싶어 하는 것도 여행객들의 심리인 모양이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도 여기 더 피크에 올라오는 피크 트램도 그때 이런 곳에 사는 부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 전에 더 피크에는 홍콩인들이 인력거를 운영했대요.”

 

 하늘을 가리고 있는 나무들이 바람에 조금씩 흔들거렸다. 좁은 길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졌다. 코너를 돌자 시야가 뻥 뚫린 곳이 나타났다. 검은 하늘이 머리위로 펼쳐졌다. 정면이 탁 트여 있었다. 반짝이는 홍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저거에요. 천만불짜리 야경.”

 “진짜였네.”

 

 한경은 홀린 듯 중얼거렸다. 환한 조명이 켜진 고층빌딩들은 누군가 줄지어 세워놓은 블록처럼 보였다. 반짝이는 전구가 둘러진 것 같았다. 호연은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들고 있던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켠 그녀가 한경에게 와인 병을 내밀었다.

 

 “한 모금 해요. 여기서 마시는 와인 맛은 2천만불짜리거든.”

 

 한경은 와인 병을 받아들며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밤하늘이 얼굴로 쏟아졌다. 시원한 바람이 어깨를 때렸다. 한두번 와본 솜씨가 아닌 듯 호연은 어느새 무릎담요를 어깨에 둘러매고 있었다.

 

 “여기도 투어 중 한 코스야?”

 “더 피크까지 올라와서 여기를 온다고요?”

 

 호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걸 한경은 그제야 깨달았다. 90도에 가까운 경사를 오르는 피크 트램은 더 피크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타기위해 관광객들이 얼마나 길게 줄을 서는지, 이 곳에 오는 길 창밖으로 목격한 바 있었다. 관광객들은 유명한 셀럽들의 모형이 전시되어있는 마담투소에 들려 수많은 인증샷을 남기고, 피크 타워의 스카이 전망대에 올라 전망을 보기에도 바쁠 거였다. 3.5km의 순환 산책로를 걸을 여유가 그들에게는 없을 게 분명했다.

 

 “주로 혼자 와요. 날씨가 맑고, 스케쥴이 없는 저녁마다.”

 

 호연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8시 정각이었다.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레이저 불빛이 일제히 검은 하늘을 갈랐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있던 서양인 커플이 감탄 섞인 외마디를 내질렀다.

 

 “저 멋진 걸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아요. 홍콩은 스모그가 심하고, 이 피크에는 안개가 자주 끼거든요. 훌륭한 가이드 덕분에 이한경씨 눈이 호강하고 있는 거예요.”

 

 한경의 눈은 센트럴의 고층빌딩들을 향해 붙박아졌다. 한가롭게 저런 풍경을 내려다본 적이 있었던가. 도시의 야경 따위에 가슴이 설레었던 적이 있었던가.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여자가 마법을 부리는 건 아닐까. 이 도시의 곳곳마다 깜짝 놀랄 무언가를 준비해두고 그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한경은 가만히 호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호연은 풍경을 보고 있지 않았다. 한경을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난처한 얼굴로 엉뚱한 곳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

 

 유창한 영어로 온갖 미사어구를 가져다 붙이며 감탄을 연발하던 금발머리의 커플이 갑자기 키스를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이 길을 걸어온 것처럼, 이러기 위해 이 시간을 기다린 것처럼 몹시도 격정적인 입맞춤이었다. 바로 앞에 사람이 있다는 건 전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아 진짜 저 사람들은 왜 여기서.”

 

 호연은 들고 있던 와인을 연거푸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한경은 팔짱을 끼고 앉은 채 커플을 바라보았다.

 

 “왜, 보기 좋은데.”

 

 흔들림 없는 시선이 여전히 키스 삼매경중인 커플을 향해 있었다. 당황한 기색도 민망해 하는 기색도 없었다.

 

 “키스 신을 숱하게 찍은 배우라 그런가 역시 남다른 면이 있으시네.”

 

 호연은 눈을 가늘게 홉뜬 채 한경을 바라보았다. 그가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한 편이 생각났다. 달콤한 키스와 다정한 눈빛으로 중무장한 로맨티스트로 등장했던 그는 그 무렵 대한민국 모든 여성의 가슴에 불을 질러댔었다.

 

 [저 둘, 사귄다는 데 한 표.]

 

 정신 줄을 놓고 드라마를 보던 위니의 등 뒤에서 심드렁한 얼굴로 그때 호연은 말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사람을 어떻게 저런 눈으로 보니? 저 키스 봐라. 저게 어떻게 연기야?]

 

 “이한경씨. 그때 조안나랑 사귀었죠?”

 

 한경이 의아한 눈으로 호연을 바라보았다. 무슨 뜬금없는 질문이냐는 얼굴이었다. 가이드의 취조가 시작되었다.

 

 “그때 그 드라마 여주인공. 이한경씨랑 키스 한 백번 정도 했던.”

 “아. 조안나. 내가 걔랑 왜 사귀어?”

 “사귀지도 않는데 무슨 키스를 그렇게 리얼하게 했어요?”

 “연기잖아.”

 “키스 신 찍는 거랑, 진짜 키스랑 달라요?”

 

 또 한모금의 와인을 들이켜는 호연을 보며 한경은 옅은 미소를 띄었다.

 

 “진짜 키스가 기억이 안 나서 비교분석이 안 되네.”

 

 호연이 의아한 눈으로 한경을 바라보았다. 한경을 둘러싼 소문들은 많았다. 크고 작은 스캔들들이 언론에 쉬지 않고 오르내렸다. 그러고 보니 그 중 어느것도 사실로 드러난 것들은 없었다.

 

 “연애 한지 오래됐어. 나 좋다는 사람이 있으면 의심부터 하게 되거든. 꽃뱀일까 아닐까, 함정일까 아닐까.”

 

 지난 몇년간 수많은 섹스 스캔들이 쉬지 않고 터졌다. 스캔들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들리는 것만 믿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때때로 뒤늦게 드러나는 진실도 있었으나, 이미 누군가의 악의가 한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후였다.

 

 “상대가 연예인이라면 다른 생각을 해야 하지. 이 스캔들은 누구의 무기로 쓰일까.”

 “이한경씨가 먼저 좋아하게 된 여자는요?”

 “…….”

 “같이 연기하다 보면 송송커플처럼 정말 사랑에 빠지는 일 많잖아요. 이한경씨는 그런 적 없어요?”

 “그러면 안 되지. 나는 그 사람을 지키지 못할 테니까.”

 

 누군가의 호감을 순수하게 받아줄 수 없는 세상, 누군가에 대한 관심을 의도적으로 끊어야 하는 세상. 그렇게 한없이 외로워야 안전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살아온 한 남자를 호연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리 닮은 구석이 있네요.”

 “뭐가?”

 “가이드도 여행자와 사랑에 빠지면 안 되거든요. 여행자는 떠날 사람들이니까.”

 “여행자가 아니면 괜찮고?”

 “아니요. 여긴 홍콩이잖아요.”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한경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결심이었다.

 

 “이 도시에서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거든요.”

 

 화려한 세계에서 가장 외롭게 살았던 당신처럼, 나도 이 화려한 도시에서 늘 혼자여야 했다고,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호연은 말하는 중이었다.

 

 “우리 엄마는 장국영을 좋아했어요. 이한경씨처럼 톱스타였던 장국영.”

 

 90년대는 홍콩영화의 전성기였다. 요즘의 소녀들이 방탄소년단에 빠져있고, 워너원에 미쳐있는 것처럼 그 시절의 소녀들도 그러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흠모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한 문화인지도 몰랐다.

 

 “장국영의 은퇴 콘서트를 보러 엄마는 홍콩에 왔어요.”

 

 장국영을 CF모델로 삼은 초콜렛 회사가 마지막 콘서트에 팬들을 보내주겠다는 이벤트가 열렸다. 그것은 해외 자유여행이 본격적으로 허용되기 전이었던 시절, 스무 살이던 엄마가 홍콩에 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모든 게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엄마는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말하곤 했다.

 

 “그리고 홍콩에서 한 남자를 만났죠. 아주 짧은 로맨스.”

 

 한경은 말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위니가 아닌 누군가에게 엄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간만에 늘어놓는 그때의 일들은 오래된 드라마의 줄거리를 떠올리는 것처럼 담담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매년 엄마는 내 생일인 만우절마다 나를 데리고 홍콩에 왔어요.”

 “아버지를 만나러?”

 “아버지를 찾으러.”

 

 호연에게 엄마는 가시 같은 존재였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사랑했으나 가장 아픈 사람이었다. 사랑과 이해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녀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남자가 얼마나 깊은 눈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할 때 마다 명치가 답답했다. 그 짧은 사랑의 대가로 엄마는 부모에게서 없는 자식 취급을 당했고, 아버지 없는 딸을 키우는 고충을 견뎌내야 했다. 평생을 로맨티스트로 살아온 엄마의 딸은 필사적으로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했다. 쉽게 사랑에 빠지지 않으리라 어린 그녀는 수없이 다짐했었다.

 

 “아버지는 찾았어?”

 “아니요.”

 

 엄마는 그를 찾지 못하고 죽었다. 만모사원에 걸었던 수많은 소원종이들은 어느 것도 신에게 가 닿지 못했다. 그렇게 무모하고 짧았던 사랑은 끝이 났다. 그녀의 이야기도 끝났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탓이었다.

 

 “뭐야, 비 오는 거야?”

 

 한경은 황당한 듯 하늘을 향해 고개를 처들었다. 하얀 얼굴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갑자기 시작된 소나기에 키스를 멈춘 두 남녀는 팔짱을 낀 채 왔던 길 쪽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호연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해요? 비 맞고 앉아있을 거예요?”

 

 멍하게 앉아있는 한경을 일으켜 세우며 호연은 말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져갔다. 그녀는 난처한 눈으로 커플들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왔던 길을 되짚어 간다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쫄딱 젖을 거였다. 간만에 신은 하이힐 때문에 뛸 수도 없었다.

 

 “저쪽, 저기로 가요.”

 

 호연은 정수리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으로 가리며 턱으로 커다란 나무를 가리켰다. 가지가 길게 늘어진 고목나무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두툼한 나무 가지와 잎에 가려진 나무 몸체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호연은 서둘러 안쪽으로 몸을 피했다. 한경이 재킷에 떨어진 빗방울을 툭툭 털어내며 그녀의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가지와 잎사귀 사이로 반짝이는 불빛들이 어른거렸다.

 

 “날씨가 그렇게 좋더니 무슨 비가 와?”

 “원래 홍콩 날씨는 종잡을 수 없어요. 금방 그칠 거예요.”

 

 한경을 올려다보던 호연이 멈칫했다. 두 사람의 어깨가 나란히 붙어있는 탓이었다. 옆으로 조금 떨어지고 싶었으나 발을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았다.

 

 “금방 그친다며. 그냥 있어.”

 

 한경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슴이 주책 맞게 뛰기 시작했다. 연거푸 마신 와인 때문이 분명했다. 화끈거리는 제 뺨에 호연은 차가운 손을 가져다 대었다.

 한경은 긴팔을 뻗어 그들의 눈앞을 가리고 있는 긴 나뭇가지를 양옆으로 벌렸다. 허공을 향해 작은 공간이 생겼다. 그 사이로 센트럴의 빌딩들이, 화려한 불빛이 가득한 그 곳이 보였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빗속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우와.”

 

 호연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한경은 옅게 웃으며 나무 몸통에 등을 기댔다.

 

 “야경을 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지. 혼자 보는 야경, 누군가와 함께 보는 야경. 어때, 같이 보니까 훨씬 좋지?”

 “그렇네요.”

 “나도 그래. 송호연씨랑 같이 봐서 좋아.”

 

 농담처럼 툭 던져진 그 말이 호연의 가슴에 파도를 일으켰다. 요 며칠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던 의문들이 떠올랐다. 저 사람을 보면 가슴이 뛰는 이유가 무엇인가. 농담 같은 저 말들이 진심이길 바라는 이유가 무엇인가. 적어도 이 곳 홍콩에선 바보 같은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버텨온 세월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오글거린다며 욕했던 드라마 대사를 그녀는 그를 향해 뱉고 싶었다. 이한경씨, 나 당신 좋아해요?

 

 “에세이 콘셉트. 안 궁금해요?”

 

 호연은 먼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와 함께 다녔던 모든 곳들을,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을 설명하기에 적당할 단어는 단 하나뿐일 거였다.

 

 “아, 뭔데?”

 “홍콩 러브 트립.”

 

 의아한 한경의 시선이 이마께에서 느껴졌지만 호연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무언가가 가슴속을 비집고 올라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떠올리면 분명 후회할지 모를 어떤 것, 일생에 한번쯤 무모해질 수 밖에 없는 어떤 순간. 엄마가 그랬듯이 그녀에게도 그런 것들이 닥쳐온 걸지도 몰랐다.

 

 “야경을 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둘이서 그냥 보는 야경, 아니면.”

 

 홍콩은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도시다. 짙은 안개, 갑작스런 비, 홀연히 나타난 한 남자, 불현 듯 시작되는 로맨스까지도.

 

 “내 에세이 콘셉트에 어울릴 로맨틱한 야경.”

 

 한경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호연은 손을 뻗었다. 부드러운 얼굴선이 손 끝에 느껴졌다. 오뚝한 콧날이 엄지에 닿았다.

 

 “마음에 든다. 그 제목.”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기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홍콩 러브 트립.”

 

 그의 얼굴이 다가왔다. 부드러운 입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에세이라면 키스는 필수겠네.”

 “키스신이에요, 아님 진짜 키스에요?”

 “맞춰봐.”

 

 와인의 쌉싸름한 향이 배어있는 입술이 그녀의 입술위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빗방울이 툭툭 나뭇잎을 건드렸다. 거기 어둠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 걸지도 몰랐다. 나도 모르겠다고, 인생은 그런 것 아니겠냐고, 호연은 제 팔을 그의 목에 휘감았다. 커다란 그의 손이 그녀의 몸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서로에게서 무언가를 열렬히 찾아야 하는 사람들처럼, 아주 오래 기다려온 무언가를 맞닥트린 사람들처럼, 그들의 길고 긴 키스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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