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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더 비너스 쇼
작가 : sat0523
작품등록일 : 2017.12.17

105년 만에 금성일식이 시작되던 그 순간 자신의 몸으로부터 탈락된 승아의 영혼은 한 여우의 몸에 갇혀 잊고 지냈던 과거와 기억들을 강제로 직면하고 만다. 원치 않는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인 몸부림을 쳐보지만 그녀가 정녕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은 따로 있었으니... 더 비너스 쇼.

 
불리한 기억들 04
작성일 : 17-12-18 12:46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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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30분 전부터 내가 기분이 썩 좋지가 않거든? 그래서 말인데 언제까지 이 지루한 싸움을 릴레이로 연명할건데? 너네는 휴대폰도 없어? 시간 줄 테니까 너희 보스한테 제발 전화 좀 걸어. 제스트는 이제 우리 거니까 포기하라고. 얼마나 더 네들 하반신을 아작 내줘야 포기할래?”

 

 유리조각들이 잔뜩 널브러진 테이블 가장자리를 털어내고 그 위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제훈이 인상을 팍 구기며 말했다. 계속해서 바지주머니로 향하려는 손을 제지할 때마다 애꿎은 유리조각을 바닥에 엎어져 있는 한 남자의 얼굴로 튕겨냈지만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어대며 그저 맞고만 있을 뿐이었다.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은 건가. 입까지 아작 내줘? 사람이 물으면 대꾸 좀 해주지 그래?”

 

 제훈의 말에 곁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있던 희현이 다가가 몸을 낮춰 앉으며 그의 턱을 움켜쥐었다.

 

 “이 자식 이미 턱도 아작 났는데?”

 

 희현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통증이 더욱 심해졌던지 신음을 흘리며 그가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말을 안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아냐. 턱이 나갔으면 나갔다고 언질이라도 해줘야 할 거 아냐.”

 “음... 이 자식들 온지 2시간 조금 안 되는 것 같은데 더 이상 지원없는거 보면 이제 끝난 거 아닌가?”

 “포기한 거면 우리도 슬슬 종료하고. 대충 널브러진 애들 정리하고 문 닫자.”

 

 바지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선 제훈이 또다시 습관적으로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털어냈다. 끝없는 놈들의 방어전으로 시간을 예상보다 지체한 나머지 챙겨온 사탕이 모두 동이 나버렸다. 당이 떨어져 퍽 기분이 상해버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억누를수록 더욱 굳세게 피어오르는 불안의 근원을 알 길이 없어 더욱 짜증만 늘어갔다.

 

 “야 누구 사탕 있는 놈 없냐?”

 “우리가 애냐, 보모냐? 사탕까지 챙겨 다녀야겠냐?”

 “돌겠어. 사탕까지 없으니.”

 “설탕중독인거냐, 사탕중독인거냐? 아, 넌 또 바닐라사탕 아니면 입에도 안대잖아? 그럼 바닐라 중독인건가? 아니지? 사탕 말고 아이스크림이나 단 맛 나는 딴 건 또 입에도 안대요. 뭐야 그럼? 바닐라사탕 중독인거냐?”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고 뒷정리나 말끔히 끝내. 안 그래도 짭새들 엉겨 붙기 시작하더만. 거사 치르기도 전에 징역살고 싶어?”

 

 피에 얼룩진 셔츠 소맷자락을 접어 올리던 제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돌아섰다. 셀 수 없을 만큼 의식없이 널브러져 있는 양두일파 조직원들을 지나쳐 출구를 향하던 제훈이 문득 떠오른 2층 계단 위를 바라봤다. 이른 저녁, 처음 제스트에 입성하던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찝찝하게 의식되던 2층 룸 방향을 흘긋거리다 결국 무시할 수 없었던지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 좀 도우라고!”

 “이래봬도 내가 보스인데, 그런 허드렛일까지 해야겠냐?”

 “염병, 보스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다~ 들린다. 하극상은 죄악이라고 말했을 텐데~”

 

 등 뒤로 여전히 꿍시렁 거리는 희현을 무시한 채 2층으로 들어선 제훈이 쭉 펼쳐진 복도 입구에서부터 가장 안 쪽까지 훑던 시선을 어느 한 방 앞에서 멈췄다. 한 바탕 두 세력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모든 손님이 도망쳐버려 열려있는 다른 룸들과 달리 아직도 굳게 닫혀있는 룸을 향해 걸어가던 제훈이 팔짱을 낀 채 휘파람을 한 차례 불었다.

 

 “......려...주세요...”

 

 기척이랍시고 내고 있던 휘파람을 멈추자 이번엔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쥐어짜는 듯 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문 앞에 멈춰선 제훈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문 고리를 비틀었지만 누군가를 감금시킨 문이 쉽사리 열릴 리가 없었다. 뒷주머니에 차고 있던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자 두 번째 신호음이 시작하기도 전에 희현의 잔뜩 날이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뭔데 고작 윗 층에서 전화질이야!]

 “됐고 2층 룸 열쇠 좀 찾아와봐. 여기 뭐가 있다.”

 [뭔데? 내가 지금 룸 열쇠를 무슨 수로 찾아 내냐고! 아 진짜 더러워서 때려치우던가 해야지... 야, 죽은 척 하지 말고 눈 좀 떠봐. 룸 열쇠 어디다 뒀어? 어? 아 이 새끼 진짜 눈 하얗게 뒤집어 까고 있으면 내가 속을 것 같아? 내가 만만해?]

 

 통화중인 것도 잊을 만큼 희현이 잔뜩 씅이 나버렸는지 전화기 너머에서 연신 들려오는 둔탁한 마찰음에 처음부터 기대한 자신이 잘못이라며 통화를 종료한 제훈이 열쇠구멍에 찔러 넣어볼만 한 것이라도 있을까 싶어 두리번거려보지만 마땅한 게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제발 저 좀 꺼내주세요... 제발요.”

 

 흐느끼는 여자의 목소리에 퍽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제훈이 열려있는 옆 룸에서 마이크를 하나 꺼내와 섰다. 문 옆에 나있는 불투명한 창문에 들고 있던 마이크로 살살 두드려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창문 깨서 들어갈 거니까 좀 멀리 떨어져봐.”

 

 창문에 귀를 대어보니 작게 감사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귀는 알아들어 다행이라 여기며 얼굴을 뗀 제훈이 힘 있게 창문을 마이크로 찍었다. 금조차 가지 않는 강화유리였지만 멈추지 않고 제훈이 계속 창문을 찍어댔다. 제법 큰 굉음이 퍼지고 룸 안에서는 틀어 막힌 비명이 짧게 계속 터져 나오고 있었다.

 

 “마지막.”

 

 거미줄같이 금이 가버린 유리창에 한 번 더 가격을 가하자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창틀과 어긋나버린 유리창의 틈새가 벌어졌다. 마이크를 집어던진 제훈이 창문의 모서리를 발로 쳐내자 벌어진 틈새로 저만치 물러나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오... 겁나 힘들어 뒤지겠네. 너 사탕 가진 것 있냐?”

 

 -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잠에서 깨어나 상체를 일으키자마자 기척에 함께 잠에서 깨버린 우남을 보며 승아가 물었다. 밤새 자신의 침대에 엎드려 불편한 잠을 잤을 생각을 하니 걱정스런 마음이 삐뚤게 터져 나와 꽤 히스테릭한 목소리였다.

 

 “열이라도 날까봐 걱정이 되서...”

 “그러다 아빠가 병나겠어.”

 “왜 아빠를 걱정하고 그래. 아빠는 이렇게 건강한데.”

 “아빠도 이제 낼모레 환갑이야. 미경아줌마가 건강은 자만하는 거 아니랬어.”

 “아빠는 자만해도 돼. 언제 감기라도 걸린 적 있었냐?”

 

 말로는 이길 재간이 없는지라 혀를 내두르며 승아가 이불을 들추어냈다.

 

 “일어나려고?”

 “출근해야지. 어우 벌써 일곱 시네.”

 “무슨 출근이야. 몸도 안 좋은데 휴가계 내고 며칠 좀 쉬다가...”

 “아빠 딸래미가 다니는 회사가 사원 건강까지 신경써주는 그런 처우 좋은 회사가 아니여. 오늘도 쉰다고 그러면 바로 구인 사이트에 내 자리 공고 띄울걸?”

 “그럼 때려치워버려! 아빠가 내 딸 굶길까봐?!”

 “갸륵한 그 어버이 마음 잘 알았으니 딸래미는 그만 출근 준비 좀 하겠습니다.”

 

 두 손 공수하여 우남을 향해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여 보인 승아가 빙긋 웃으며 일어섰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욕실로 향하는 승아를 더 이상 막지 못해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던 우남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홀드버튼을 눌렀다.

 

 통화목록에서 미윤의 기록을 찾은 우남이 선뜻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창가로 다가가 건너편 미윤의 집을 바라봤다.

 

 ‘이 일과 연관 있는 주동세력을 알아냈어요.’

 ‘아저씨 제가 지킬게요. 제가 승아 지킬 수 있어요.‘

 

 통화버튼을 꾹 누른 우남이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었다.

 

 ‘내 양심의 소임은 목숨 값으로 충분히 마쳤으니... 이젠 자네 차례야.’

 

 우남은 잊히지 않는 그의 말을 대내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통화연결음 사이의 텀이 시간이 멈춰버린 것 마냥 길기 만해 애가 타들어가려던 순간 낮게 깔린 미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저씨도 말리셨다며!”

 

 의도치 않게 언성을 높이고만 미윤이 답답한 마음에 이마를 짚으며 돌아섰다. 우남의 전화를 받고 눈곱만 떼어낸 채 달려 나와 승아의 집 앞에서 대기 중이던 미윤이었다. 하룻밤사이에 더 야윈 듯 보이는 몰골로 창백하게 바라보는 승아가 집에서 안정을 취하며 보호를 받아도 부족할 판에 출근을 하겠다며 억지를 부리니 환장할 노릇일 수밖에.

 

 “그 사람 죽었을 수도 있잖아. 아니 살아있대도 내가 왜 집안에 갇혀있어야 하는 건데? 난 피해자지, 범죄자가 아니야.”

 “단순히 그 자식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잖아. 아직 몸도 성치 않은데다...”

 “내 컨디션은 내가 더 잘 아는 거 아니야? 아빠나 너나... 나 걱정해서 케어해 주려는 건 알겠는데 지나치면 부담스러워질 것 같다.”

 

 벙찐 미윤의 손에 가방에서 꺼낸 캐러멜 두어 개를 쥐어주고 돌아선 승아가 천천히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집으로 치면 자신 못지않게 쇠고집인 미윤이기에 조금 지나치다 싶을 만큼 대한 것이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자신의 일도 모두 팽개친 채로 종일 뒤를 밟고 다닐게 뻔했다.

 

 “체육관에서 복싱도 배웠으니까 또 나타나기만 해봐. 1개월 중에 보름 넘게 줄넘기만 했었지만 그래도 배운 게 있는데 또 당할 것 같아?”

 

 오늘따라 아무도 없는 길목을 혼자 걸어가려니 괜히 겁이 나서는 아무 말이나 던지며 어떻게든 이 길의 고요를 깨고 싶었다. 단체로 휴가라도 냈나, 이정도로 사람이 없는 거리가 아님에도 고요한 적막만 감도는 길을 오 분 째 홀로 걸어가던 때였다. 갑자기 튀어나온 검은 인영에 깜짝 놀란 승아가 뒤로 넘어지며 엉덩이를 찧고 말았다.

 

 ‘뭐야 고딩보고 쫄은거야?’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며 막 달려가기 시작한 여자 고등학생을 힐끔 보곤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어내며 승아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솓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정말 정쫄보 다됐네...‘

 

 혼자 피식 웃으며 다시 걸음을 이으려던 승아가 전봇대 뒤로 몸을 급히 숨기다 얼굴을 빠끔히 내밀며 전방을 주시했다. 방금 전 고등학생이 튀어나왔던 골목에서 후드를 뒤집어 쓴 수상한 남자가 기웃거리며 따라 나왔기 때문이었다.

 

 혹시 그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 불안한 마음에 몸을 숨긴 거였지만 남자는 승아가 아닌 고딩을 뒤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자신이 납치당했던 그 날처럼 저 남자의 타깃이 고등학생 아이일까 싶은 마음에 바닥을 나뒹굴던 짱돌하나를 집어든 승아가 전속력으로 멀어져가는 고등학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고등학생은 정류장을 향해 코너 길을 돌며 사라졌고 기척을 느꼈는지 수상한 남자가 멈춰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승아는 순식간에 튀어나온 괴한과 부딪치며 밀려 쓰러져 버렸고 신음을 흘리며 다시 일어섰을 땐 예상치 못 한 광경에 들고 있던 가방과 짱돌을 놓치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괴한이 달아나버리고 드러난 시야 속에서 그는 허리를 점차 숙이며 배를 움켜 쥐고 있었다. 점점 그 주변이 빨갛게 물들어가고 그에게 다시

 다가가려는 승아를 제지하는 것인지 그가 고개를 내저으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짤랑-

 

 작은 칼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벌써 창백하게 질려버린 얼굴과 멈추지않고 뿜어져 나오는 피... 인상을 쓰며 거칠어진 숨에 들썩이던 그의 몸이 고꾸라지며 바닥으로 엎어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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