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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백년야행
작가 : 소금소금
작품등록일 : 2017.12.16

인수는 작가지망생이다. 매번, 자신의 소설이 공모전에서 입상하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했고, 그 이유를 신선하지 못한 이야기 탓으로 돌렸다. 어느날, 인수는 포장마차 주인과 술을 진탕 마신 후, 집으로 돌아가던길에 술기운을 빌려 귀신이 나온다는 산에 들어가게 된다. 인수는 산 한가운데에서 머리에 사슴과도 같은 뿔이 달린 여자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을 '노루'라고 소개했으며, 세상에는 인간들이 보지 못하는 '아소'라는 존재들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인수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알고 이제 곧 시작될 '백년야행'에 인수를 초대한다. 작가로서 소재에 굶주려있던 인수는 백년야행에 참여하기로 결심했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존재들의 이야기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인수가 완성한 여러 이야기 중, 조각나비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각나비편(12)
작성일 : 17-12-18 10:34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8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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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막으로 돌아가는 길,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하네는 말하고 싶은것이 많은 모양이었지만, 테네바의 표정이 좋지 않자 조용히 테네바의 눈치만 보았다. 테네바는 고민하고 있었다. 11살부터 이리저리 구르며 발달한 감각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동이 끝난 후, 좋은 꼴을 보기 힘들 것 같았다. 8년 전, 분명 자신도 현장에 있었다. 문제는, 당시의 자신은 너무나 어렸고 부모를 잃어 충격을 받은데다가 하네까지 챙겨야했다. 분명 족장에게 형제가 있었던 것 같지만,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테네바의 입장에선 뜬금없이 다른 부족과의 전투가 시작됐고, 비명소리와 불타는 소리, 말들의 발굽소리,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던 어머니의 눈빛만 기억날 뿐이었다. 어머니의 눈빛엔 원망이 가득했고, 그 시선은 자신을 향해 있었다.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좀 더, 좀 더 생각을 해내야 했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던 거지? 테네바가 머리를 긁적였다. 눈을 감고 천천히 시간을 뒤로 돌렸다.

  눈앞에서 어머니가 쓰러지기 전,

  불타는 천막안에서 하네와 껴안고 벌벌 떨기 전,

  하얀 천막이 시커면 연기를 태우며 불타기 전,

  수백의 말발굽에 대지가 진동하기 전,

  천막에서 화를 내며 뛰쳐나가는 남성과, 그 뒤를 따라나온 족장의 당황한 표정을 보기 전,

  마을 밖에……줄 지어진 말과 말에탄 전사들……그들은 우리 부족의 사람이 아니었다……!

 

  테네바가 눈을 크게떴다. 그들은 갑자기 공격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 분명…… 침입자들은 붉은 눈 부족의

  마을에 들른적이 있었다. 테네바가 침입자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해내려해도, 침입자의 몸뚱이의 절반이 마치 그림자처럼 꺼멓게 일렁이고, 오직 나머지 반쪽만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아마도, 어린시절의 자신은 누군가의 등뒤에 숨어 얼굴 한쪽만 내놓은 채 그들을 보았을 것이다. 자신을 꽉 잡아주었던 손. 아버지, 아버지인가? 기억속에서 고개를 들어본다. 어째선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옷에 새겨진 자수 하나하나가 선명히 떠오르는데, 얼굴만이 시커멓게 칠해져 보이지가 않았다. 그는, 테네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표정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얼굴로, "괜찮아." 라고 말하고 있는것 같았다.

  테네바의 시야가 흐려졌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테네바의 뺨을 따라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과거로 가면 떠오를 것 같았다. 테네바는 자신이 울고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오……오빠, 괜찮아? 왜 울어?"

  테네바의 눈치를 보던 하네가 당황한듯 펄쩍 뛰며 말했다. 테네바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않고 멈춰서서 눈물을 흘렸고, 하네는 어쩔줄 몰라 테네바의 주위만 빙빙 돌 뿐이었다.

  "오, 오빠……왜 울어, 왜, 이익……, 흑, 왜 우냐고……흐흑."

  이윽고 하네가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테네바의 발치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하네가 주먹으로 테네바의 무릎을 때렸다. 그제서야 과거에서 벗어난 테네바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곳엔, 눈가가 새빨갛게 변한 동생이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테네바는 황급히 무릎을 굽히고 하네를 마주보았다.

  "하, 하네! 왜 울고있어?"

  "몰라, 이 바보야! 오빠가 갑자기 멈춰서 우니까 아픈건줄 알았잖아!"

  하네가 끅끅거리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울어? 내가?"

  테네바가 손을 눈가로 가져다 대었다. 물기가 느껴져 손을 떼어보니, 손가락 끝에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테네바가 아무말 못하고 멍하니 손끝만 바라보자, 하네는 테네바가 정말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어떡해, 오빠가 진짜 아픈가봐 흑흑흑……."

  "아……아니, 나 아픈게 아니고……."

  아예 대성통곡을 시작한 하네를 달래며 테네바가 고개를 저었다. 단지, 너무 오랜만에 흘려보는 눈물이라 당황한 것이다. 4년 전, 하네가 처음 객혈을 했을 때 놀라서 크게 울고 난 이후 마음을 다 잡았다. 더는 울지않고 울 시간에 하네의 병이 낫도록 움직이기로. 양을 무시하가다가 배에 박치기를 맞고 그날 먹은걸 죄다 토했을 때도, 말에게 차여 팔이 부러졌을 때도, 또래 친구들이 부모가 없다고 손가락질 했을 때도 울지 않았다. 우는것은 낭비였으니까. 그런데 예전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를 때마다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슬프도록 행복했었던 그 때의 기억, 아직 떠올릴 것이 남아있는 것 같았지만. 당장 눈앞의 하네를 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테네바는 하네를 안아들었다.

  "미안해 하네, 정말, 정말 미안해. 오빠가 잠깐 머리가 이상해졌나봐."

  "그걸 이제야 안거야? 이 멍청아, 진짜 아픈거 아니지? 다음에도 이러는거 아니지?"

  "그래, 그래 아픈거 아니야.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그냥 잠깐, 생각이 많아져서 그랬나봐."

  "정말? 그럼, 이제 그러지마. 약속해."

  "그래, 약속."

  "어기면?"

  "너가 해달라는거 다 해주지 뭐."

  "정말이지? 다음에 또 그러면, 머리카락 내가 다 뽑아버릴거야."

  "어……으응, 그래. 알았어. 그나저나, 이렇게 예쁜 동생이 하루에 두 번이나 울도록 만들다니, 나도 아직 많이 부족한 오빠네."

  "그걸 이제 알았어? 히히히……."

  하네가 배시시 웃었다. 테네바가 하네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하네가 테네바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손을 뻗자 테네바가 살짝 고개를 당겨 하네의 손을 피했다.

  "……뭐야? 안닦아도 돼?"

  "하도 오랜만에 울어보는거라, 신기해서 아직은 닦고싶지 않네."

  "뭐야 그게, 이상해."

  하네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또 이상해진건가?"

  "약속한지 얼마나 됐다고! 머리카락 전부 뽑아버린다."

  하네가 양손을 꼼지락 거리자 테네바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자, 자, 자, 잠깐. 나 멀쩡해! 진짜로!"

  "정말?"

  "그래, 오빠도 사람인데 울수도 있지. 안그래?"

  "……그건 그러네. 어쨌든 이제 다 괜찮아진거지?"

  "그래,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 빨리 밥먹고 준비해야지."

  "응!"

 테네바는 천막에 도착해 간단한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천막 바깥에 묶어서 모아둔 잡풀과 장작, 말린 말 똥을 적당히 집어와 천막의 가운데에 놓인 화로에 넣었다. 말린풀의 끝부분에 부싯돌을 몇 번 부딪히니 불씨가 일었다. 풀에 붙은 불길이 장작근처로 다가가자 테네바가 숨을 몇 번 불어넣자 장작에도 불이 옮겨 붙어, 이내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장작 옆에 말린 똥 역시 불타기 시작하며 매캐한 연기를 냈고, 연기는 천장의 구멍으로 빠져나갔다.

  테네바는 화로위에 큼직한 쇠 솥을 얹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양고기와 약간의 물, 향이 강한 선인장 꽃을 한번에 집어넣었다. 한 번씩, 고기가 타지않게 나무막대로 뒤적거리길 잠시, 간단한 요리가 완성되었다. 각자의 그릇에 먹을 만큼 나누어 담은 두 사람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약간이나마 넣은 물 덕에 고기는 촉촉했고, 고기 본연의 비린향은

  선인장 꽃의 향기가 잡아주었다. 테네바는 나름대로 괜찮은 식사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하네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지 연신 뚱한 표정으로 우물거렸다. 하지만 하네도 일단 먹어야 이동 때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맛없다는 것을 온 얼굴에 나타내면서도 군말없이 식사를했다. 그렇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테네바는 마을 밖, 이제는 몇 포기 남지않은 풀들을 뜯고있는 말들을 향해 다가갔다. 때마침 그곳에서 가축을 돌보던 페탄에게 아침도 안먹냐며 인사를 건냈다. 페탄은 여기서 먹었다면서 너털웃음을 짓고는 몇 마리를 쓸건지 물어봤다. 테네바는 집안의 짐과, 자신이 옮길 수 있을만한 양을 생각한뒤 두마리라고 대답했다. 페탄은 알겠다며 말 두마리를 끌고와 고삐를 테네바의 손에 쥐어줬다. 말에는 이미 안장과, 물건들을 묶어 걸 수 있는 고리들이 달려있었다.

  이제 천막을 해체해야 했다.해체에 앞서, 여행 중 하네가 흙먼지를 마시지 않도록 깨끗이 털어놓은 천으로 하네의 머리를 둘둘 감았다. 눈만 간신히 내놓은 꼴이 중환자와 같았고, 하네역시 어지간히 답답한 모양이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벗어던지지는 않았다. 보통 이동할 때 말에 탈 수 있는건 말에 타야 수행가능한 자리를 맡았거나, 그만한 위치, 아니면 아주 어린 아이들만이 말에 탈 수 있었다. 하지만 하네는 예외였기에 자신을 등 뒤에 태워줄 이를 찾으러 마을 한복판으로 향했다. 테네바는 그런 하네의 뒷모습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한 번 쳐다본 뒤에 본격적으로 해체를 시작했다. 기둥과 천막을 이은 끈들을 풀고, 한쪽으로 당기니 앙상한 기둥 6개가 드러났다. 천막을 이리저리 욺직여 가며 접으니, 사람 크기정도로 줄어들었다. 그것을 말의 옆구리에 매달고 반대쪽 옆구리에는 주머니 몇개를 달았다. 다른 한마리의 양 옆구리 역시, 잡동사니들로 가득채워졌다.

  그리고 땅에 꽂힌 나무기둥을 뽑아 올려 양 옆구리에 각각 3개씩 끼운 채 마을 밖에 놓인 수레에 담았다. 몇대의 수레에는 온 마을의 나무기둥들이 모일테지만, 기둥마다 각자의 표식을 해두었기에, 나중에 곤란할 문제는 없었다. 테네바의 기둥은 가운데에 붉은 띠가 3개씩 그려져있었다. 테네바는 나중에 꺼내기 쉽도록 기둥을 한쪽에 모아서 담아놓은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집터로 돌아가 남아있는 작은 보따리 몇개를 등에 메고, 자신의 무기인 창을 집어들었다. 자신의 키보다 조금 작은 창, 휘두른지도 벌써 3년 가까이 되었건만 아직도 사용하는데 부족함은 없었다

 . 테네바는 깜빡한 것이 없는지 주변를 한번 둘러보았다. 둘러봐도 남은 것은 화로뿐이었다. 팔뚝만한 화로를 기울여 잿가루를 털어내고 손잡이를 잡아 들어올렸다. 썩 가벼운 무게는 아니었지만 어차피 이것도 수레에 실을 것이기에 테네바는 뒤뚱거리면서 마을밖으로 걸어갔다. 마을 밖에 여러 대 놓인 수레중 한 대에 실어놓고는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마을사람들을 기다렸다. 이제 곧, 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이동중에 벌어질 일들에 대한 생각을 하던 중, 준비가 끝났는지 마을에서 하나 둘 사람들이 걸어나왔다. 누구는 옆구리에 기둥을 가득 끼고, 누구는 양 손가득 주머니를 쥐고, 누구는 품에 자신의 어린 아이를 안고.

 

  양 옆구리 가득 짐을 메단 말들을 앞에 세우고, 중간중간 말들이 달아나지 않게 관리할 이들이 한손에 채찍을 든 채로 말에 타고 있었다. 물론 그중엔 페탄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일을 맡아서인지 어딘가 기분이 좋아보였다. 눈빛에는 이번 여행동안 꼭 애인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실제로, 그는 고개를 슬쩍슬쩍 돌리며 주변을 탐색하고 있었다. 모두들 페탄의 모습에 속으로 한마디씩 하고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이미 페탄의 평가는 바닥을 치고있기에 더는 칠 바닥도 없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페탄은 눈을 번뜩일 뿐이었다. 그렇게 페탄이 허공에 삽질을 하는사이 모두 준비가 끝났는지, 무리의 앞머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동이 불편한 것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의 부족민은 걸어서 이동하였다. 테네바는 자신의 짐을 옆구리에 매단 말과 나란히 걸었다. 이따금 바람에 흙먼지가 날릴때면 그 때마다 하네에게 시선을 두었다. 하네는 무리의 중심, 족장의 뒷자리에 앉아있었다.하네는 족장의 옷을 고삐마냥 흔들고있었다 .머리를 꽁꽁 싸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방방거리는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 신이 난 모양이다. 과거 하네가 처음으로 피를 뱉은 날 이후, 테네바는 되도록 하네의 외출을 막았다. 그 탓에 하네는 부족에도 몇 있는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부족의 어른들만이 하네의 안부를 묻기위해 가끔 들렸을 뿐이었다. 저 나이의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 놀아야한다. 생각없이 서 있다가 무작정 뛰기도, 그러다가 넘어져 울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그렇게 커야된다. 테네바 역시 그럴듯한 어린 시절을 보내진 못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미친듯이 살아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테네바 본인이 선택한 것이었다. 하네는 선택의 기회조차 없었다. 하네는 호기심이 강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집 안에서만 살아가니 오죽 답답했겠는가. 집안에서 뭐라도 하려하면 테네바가 가로막았다. 사냥부터 가사까지, 모든걸 테네바가 맡았다. 하네는 병이라는 족쇄탓에 집안에서 멍하게 앉아 시간을 보냈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우울증이 걸리거나 집 밖으로 뛰쳐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네는 견뎠다. 심각성을 잘

  모를 뿐이지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을 위해 테네바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답답해도 참았고, 테네바를 볼 때면 미소를지었다. 그리고 그런 미소를 볼때마다 테네바는 밝게 자라준 하네가 고마웠다.

  바람이 잦아들자 테네바는 시선을 앞으로 두었다. 앞서 나가는 이들 중, 어째선지 페탄이 자꾸 눈에 띄였다. 왠지 그를 보고있으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이동은 지루한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페탄같이 존재 자체가

  재미있는 사람에게 시선이 가는건 당여한 일일 것이다. 테네바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진 채 페탄을 보았다. 페탄은 말위에 탄 채로 걷고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페탄의 표정에 누구와 대화하나 싶어 테네바가 목을 쭉 빼들었다.

  “역시.”

  페탄은 부족의 여인 한 명을 붙잡고 침을 튀기고 있었다. 다소 과장된 손짓으로 검을 빼 휘두르는 것을 보니 자기 무용담에 관한 이이야기일 것이다. 테네바 역시 들어본 적이 있었다. 8년 전, 부족민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위해 페탄 홀로 7명의 적을 베어넘기고 그들의 말을 빼앗아 합류를 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테네바 역시 그 당시에 있었지만 부모를 잃은 충격탓에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린나이에 그런 영웅담은 흥미로운 것이었고, 궁금함에 못이긴 테네바가 부족의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그들은 피식 웃기만 할 뿐이었다. 테네바는 시원스레 대답해주지 않는것이 답답했으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반응의 의미를 자연스레 이해했다. 페탄은 분명 훌륭한 몰이꾼이 었지만, 뛰어난 전투원은 아니었다. 아마도 적당히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그 사실을 페탄의 옆에선 여인도 알고 있는지 페탄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똥씹은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페탄은 무아지경으로 자신의 무용담에 대해 떠들다가 여인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인상을 와락 구긴 여인이 고개를 돌리려하자 페탄은 급히 말에서 내려와 여인을 붙잡았다.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페탄에게 향했다. 페탄은 입을 벌린 채 고개가 돌아가 있었고 옆에 있던 여성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걷고 있었다.

  “하하하! 페탄, 이제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꼴 좋다. 나한테도 저렇게 집적거리더라고. 어휴, 소름끼쳐!”

  “크크크큭, 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한 번이구만. 이번 이동 때 페탄이 몇번이나 뺨을 맞을지 내기하겠나?”

  “좋지! 난 8번. 아니, 10번!”

  “그럼 난 12번!”

  “하하하! 페탄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로 난 15번으로 하지!"

  "와하하하하하!“

 

  모두들 움직이는 가운데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페탄을 보고 사람들은 한마디씩 하였다. 남녀를 불문하고 페탄을 비웃고 있었지만, 테네바는 다른 의미로 미소지었다. 다른 부족의 영역을 향해가는 이동이었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 모두들 불안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페탄은 작업을 걸었고, 유쾌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잠시나마 부족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테네바는 한결 느슨해진 분위기를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저래 페탄은 부족에 필요한 인물이었다. 잠시 후, 페탄은 테네바가 근처까지 걸어왔음에도 돌 같이 굳어있었다. 테네바는 그 모습에 헛웃음을 터트리면서 페탄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하하,아저씨. 정신 차려요.”

  “어……. 어, 그래…….”

  항상 있는 일일텐데 넋이 나갔는지 페탄이 정신을 못차리고 있자 테네바는 페탄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저씨, 다른 분들도 많은데 한 번 실수한걸로 기죽을 아저씨 아니잖아요? 아저씨 정도면 분명 성공할수 있어요, 아까 그 여인은 보는 눈이 없었던 거라구요.”

  “…… 그래! 내게 모자란 부분이 있을리가 없지. 그 여자, 처음부터 맘에 안들었어! 좋아, 다시 간다!”

  페탄은 죽다 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의지를 불태우고 뒤쪽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두어 번 손을 휘젓더니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것에 의아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곤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 말! 말 어디로 갔어!”

  “……세상에.”

  페탄은 자신이 멈춰서 있었다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충격을 받았던 거였을까. 테네바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곤 무리의 앞 쪽, 홀로 걸어가는 페탄의 말을 가리켰다.

  “아저씨 말은 저기, 혼자 걸어가고 있는데요?”

  “뭣?”

  페탄은 고개를 돌려 무리의 앞 쪽, 자신의 말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바득바득 갈더니 앞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야! 이 의리도 없는 놈아! 주인이 멈춰섰으면 곁을 지켜줘야지! 하여간 이 말대가리들, 애정을 줘서 키우면 뭐해? 소용이 없다니까! 어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페탄의 뒷모습을 보며 테네바는 어깨를 으쓱이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잡티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태양은 모든걸 말려죽이려는 듯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하늘 아래, 물을 발견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옅게 일었다. 행여나 나비들이 날아간 곳에는 아기 손바닥 만한 웅덩이 하나가 있던게 아닐까, 도착했을 때는 모두 말라있지는 않을까. 테네바는 눈살을 찌푸리고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메마른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탓에 시야가 일렁거렸다. 이제부턴 지루함과, 열기와의 싸움이었다. 체력이 약한 하네가 생각난 테네바는 슬쩍 하네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하네는 족장의 등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칭칭 두른 옷가지가 조금씩 오르내리는 것을 보니 피곤해서 잠을 자고있는 모양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탓일까, 테네바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기지개를 켰다.이 이동은 해가 질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조금은 몸을 풀어두는 편이 좋았다. 어깨와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몸을 푸는 테네바의 뒤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네바!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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