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일반/역사
할아버지
작가 : 로로
작품등록일 : 2017.12.18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월남전, 산업화
격동의 시절을 살아온 평범한 우리 할아버지의 이야기.

 
할아버지 1
작성일 : 17-12-18 08:45     조회 : 358     추천 : 0     분량 : 249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닮았다는 말이 유독 싫었다.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내가 그걸 느낀다는 것이 더 싫었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서 그 특징들이 더 또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매는 작지만 날렵해지고 턱선도 또렷해졌다.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으면 화난 사람처럼 보였고 때로는 잦은 오해를 샀다. 정말 싫어하는 것 중의 결정적인 하나는 머리숱이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탈모는 대를 건너온다고 했으니 분명 할아버지 때문이다. 나는 내게 있어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걸 할아버지 탓으로 돌렸다.

  할아버지가 유명인이었다면 인터넷 검색엔진이 추천하는 연관검색어로 고집불통, 막무가내, 꼰대, 꼬장꼬장, 유아독존 같은 단어들만 따라 나올 거다. 단어가 이리도 부정적인 건 그렇게만 살아온 할아버지 탓일 수도 있고 할아버지를 그렇게만 생각하는 내 탓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건 할아버지와 나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항상 고생을 자랑하는 할아버지가 달갑지 않았다.

 

 

  기억 속의 2008년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내 주변을 떠도는 바람 한 점까지도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해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막 군 전역을 하고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고선 학교로 복학하자마자 여지없이 자신감이 무너졌다.

  수능을 치고 대학의 문턱을 넘었다. 국방의 의무까지 끝냈다. 이제는 좀 놀아보자는 마음 말고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해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다들 다음 파도가 닥칠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준비하고 있었다.

  멀뚱히 구경하던 내게도 당연히 취업에 대한 압박이 밀려왔다. 대학을 왔으니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해서 그런지 아는 얼굴이 몇 되지 않았다. 시기가 맞아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미래에 대한 준비에 바빴다. 남들이 다 뛰고 있으니 나도 뛰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졌다. 여자 동기들은 벌써 졸업반인 친구도 많았다. 4학년들 대부분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자기소개서 작성과 면접연습을 하고 있었다. 토익이며 기타 자격증은 이제 필수로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사람들은 마치 규율과 순리가 원래 정해져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움직였다.

  좋은 대학을 가서 스펙을 쌓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하고 돈을 모아 차를 사고 집을 넓히고 아이를 낳고 교육에 신경 쓰며 대다수 사람들이 그리 사는 것처럼 원하는 목표는 하나밖에 없어 보였다.

 

  “여자로 태어나면 별로 걱정 없지. 여차하다 안 되면 시집이라도 가면 되잖아.”

  “못생긴 여자는 해당 사항 없거든. 여자는 특히 외모에서도 경쟁력을 갖춰야 하잖아. 그리고 너는 여자로 태어났으면 분명 못생겼을 거야.”

  “그걸 니가 어떻게 아냐?”

  “지금 니가 못생겼으니까.”

 

  탈출구가 필요했다. 답답해져만 가는 상황이 몸서리쳐지게 싫었고 그렇게 해서 결국 찾게 된 곳이 광장이었다. 아니 그곳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마음껏 소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처럼 소리치고 싶은 사람들이 점점 더 몰려들었다. 모두 함께 촛불을 들었다. 광장에서는 단 한 가지의 걱정만 해서 좋았다. 그게 가장 좋았다.

  언론은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대학생에 대해서 비중 있게 다뤘다. 과거 시위와 집회의 중심이 모두 대학생이었지만 극심한 취업난으로 인해 도서관에만 박혀 있다고 했다.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나 자신이 더 자랑스러웠다. 대학생의 신분으로 이곳에서 당당히 소리치고 있는 내가 감옥 같은 도서관에 자신을 가둬 두는 그들보다 더 위대하게 여겨졌다.

  어느 날엔가 광장에 컨테이너가 들어서고 경찰들은 행진에 물대포를 준비했다. 촛불이 꺼졌다. 내 목소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화가 났다. 나와 같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화가 났다. 도서관에 처박혀 취업준비에만 골몰하는 친구들에게도 화가 났다. 권력을 쥐고서 놓지 않는 탐욕스런 기득권에 화가 났다.

  그 날 나는 물대포를 맞아 흠뻑 젖은 채로 전경버스를 밀어 넘어뜨렸고 쫓아오는 전경들을 피해 전력질주를 하다가 넘어져서 바지가 찢어졌다. 쓰리고 아팠고 겁이 났다. 경찰에는 잡히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들어왔다.

  같은 날 저녁 할아버지는 친구들과 고기를 구워 먹었다. 내가 들어왔을 때는 술자리가 끝이 난 뒤였고 할아버지의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가고 없었다. 할아버지는 상을 치우지도 않고 방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온종일 뛰어다니느라 굶주렸던 나는 허겁지겁 밥을 떠서 남은 고기와 반찬을 집어 먹었다.

  그 식사가 내가 할아버지의 집에서 먹은 마지막 밥이었다. 다음 날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몽롱한 머리를 깨우려 커피믹스 봉지를 뜯고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육이오도 참전했고 그때 미군이랑 밥도 같이 먹은 사람이오. 아무 문제 없어. 십 년 후에 죽었나 살았나 확인하러 꼭 오쇼.”

 

  화면에는 정육점 앞에 줄을 서서 미국산 소고기를 사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믹스커피가 바닥으로 쏟아지는 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머리가 아찔했다.

 

  “아악!”

 

 
작가의 말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 할아버지 1 2017 / 12 / 18 359 0 2497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