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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어느 날 천사가 떨어졌다
작가 : 솜솜
작품등록일 : 2017.12.7

[빙의물]
의료봉사 중 갑자기 사고를 당해, 이상한 세상에서 눈을 뜬 세진.
다짜고짜 자신을 덮치려는 남자에게서 무작정 도망쳐 나와 숲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러는 도중 수상한 사람들에게 쫓기던 남자를 구해주게 되는데.......
점차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결심
작성일 : 17-12-18 08:32     조회 : 323     추천 : 0     분량 : 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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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일라님!! 라일라님!”

  어제 늦게 자서 그런지 평소보다 좀 더 늦잠을 자고 있는데, 소냐가 다급하게 날 불렀다.

  평소라면 내가 운동을 하는 시간이라 소냐가 올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에요?”

  눈을 비비며 일어나 물었다. 늦잠을 잔다 해도 내가 원래 일어나는 시간보다 조금 더 잔 것뿐, 이른 시간이었다.

  “얼른 세수하세요! 각하께서 찾으세요!”

  “지금요?”

  “네! 문밖에 기다리고 계세요!”

  “렌케가요?!”

  “네!”

  렌케가 문밖에 있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었다.

  소냐가 들어와도 좋다고 하기가 무섭게 렌케가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왔다. 표정이 싸늘한 게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아 보였다.

  “무, 무슨 일이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싶어 머리를 굴렸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잔뜩 긴장하여 굳어 있는데 렌케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던지듯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

  삐뚤빼뚤하게 글씨가 써져 있는 양피지였다.

  그게 뭔지 알아챈 순간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식는 기분이었다.

  ‘이런 멍청이 같으니라고!!’

  내가 어제 렌케의 방에 갔던 이유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어제 몰래 놓아두기 위해 가져갔던 편지를 렌케가 다친걸 보고 그대로 바닥에 던져두고 왔던 모양이었다.

  내가 설마 렌케가 이틀이나 빨리 방에 와 있을 줄 알았겠느냐고?

  렌케의 표정을 보아하니 읽어본 게 틀림없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내 생각대로 되는 일이라곤 도무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저기... 그게.......”

  “내가 없는 사이 떠날 생각이었군.”

  렌케가 싸늘한 목소리로 내 말을 잘랐다.

  “그, 그게.”

  “앉아.”

  “.......”

  무서워서 후다닥 렌케가 시키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어디로 가려고 했지?”

  “....... 아무데나.”

  “왜?

  “.......”

  왜냐니. 물론 이유는 당연히 있지만 이걸 꼭 말해야 하는.

  “말해.”

  내가 생각을 채 정리하게도 전에 렌케가 얘기했다. 왠지 내 모든 걸 다 꿰뚫어보는 것만 같은 렌케의 저 눈을 보고 있으면 다른 변명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게... 너한테 너무 신세만 지는 것 같아서 이제 슬슬 취직하도 하고, 자립해볼까 싶어서.......”

  솔직하게 말하니 렌케가 팔짱을 끼고 몸을 등받이에 기대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던 렌케가 말을 꺼냈다.

  “취직과 자립 말이지.”

  “으응.”

  “널 고용하지.”

  “어?”

  “아론의 조수로 일해.”

  아론이라면 분명 렌케의 집에 상주하는 의원이다.

  “내 집에서 일하는 자들은 상주해야 하니, 이 방에서 그대로 지내도록.”

  내가 얼떨떨해 있는 사이 렌케가 계속 얘기했다.

  “급여는 어느 정도 원하지?”

  “잠깐, 잠깐만 렌케!”

  내 제지에 렌케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진심이야?”

  “영감이 조수가 필요하다고 몇 번 얘기했다. 그리고 너 그런 일 했었다고 했지 않나?”

  렌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 그러긴 했지.”

  “그러면 그냥 내 집에서 일해.”

  “....... 하지만.”

  “전담시녀가 부담스럽나? 하지만 넌 어차피 청소도 다 알아서 하고, 대부분 알아서 해결해서 시녀가 필요 없을 정도라고 하던데.”

  “.......”

  “영감에게 신경 쓰는 정도로만 신경 쓰게 하도록 하지.”

  렌케가 망설이는 나를 향해 계속해서 귀가 솔깃할 만한 얘기들을 했다.

  “어차피 영감의 조수를 한 명 구하려고 했던 참이다.”

  “그, 그래?”

  “그래. 그러니 내 집에서 일해.”

  렌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이 집에서 아론 씨가 대접받는 정도로만 대접받으며 일하면 굳이 나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 받은 만큼 제대로 일을 하면 되는 거고, 그러면 정당한 일을 하며 대가를 받는 셈이니 더 이상 신세를 지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면 된다.

  아주 솔깃했다.

  “대답.”

  “으응.”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렌케에게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대답하자마자 렌케가 벌떡 일어나 내 손목을 잡고 자신의 집무실로 끌고 갔다.

  렌케가 곧바로 종이를 꺼내 계약서를 작성하고 인장을 찍었다.

  “사인해.”

  렌케가 종이를 내 쪽으로 밀었다.

  “어.......”

  “방금 전에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랬지.”

  “그럼 사인해.”

  밀어붙이는 렌케에게 주눅이 들어 어느새 난 펜을 들어 내 이름을 쓰고 있었다.

  내가 사인을 하고 나자 렌케가 똑같은 내용을 그대로 다른 종이에 옮겨 적고 또 사인을 하도록 요구했다.

  내가 멍하니 그가 시원시원한 필체로 글자를 써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렌케는 같은 내용의 계약서를 총 세부 만들었다.

  렌케의 인장과 내 사인이 제대로 들어간 세 개의 계약서 중 한 개를 렌케가 내게 건넸다.

  “가서 읽어봐.”

  “으응.”

  손에 계약서를 받아들고 터덜터덜 렌케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세상에 사인까지 다 받고 나서야 계약서를 읽어보라고 주는 경우도 있나?

  어이가 없고 허탈했고, 여전히 얼떨떨했다.

  이상하게 렌케가 뭔가를 작정하고 내게 밀어붙이기만 하면 거기에 한없이 말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왜 도통 거절을 못하겠지?’

  물론 내가 귀가 좀 얇고, 둔한 면이 없진 않지만.......

  렌케는 꼭 어떻게 하면 나를 휘두를 수 있는지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여튼 이 집을 떠나는 건 물 건너갔구나.”

  어이가 없어서 한숨 쉬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방으로 돌아와 계약서를 찬찬히 읽었다.

  “어.......”

  잘은 모르겠지만 계약서의 내용이 이상했다.

  특히 이 부분. ‘갑은 을에게 매달 말일, 을이 원하는 만큼의 급여를 지급한다.’

  “원하는 만큼??”

  대체 렌케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써 놓은 거지??

  이런 두루뭉술한 말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알고 있은 건가?? 게다가 돈과 관련된 부분인데. 내가 그에게 얼마를 요구할 줄 알고??

  계약서를 읽기전보다 더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어딜 봐도 갑이 아니라 을인 나에게 무조건적으로 유리한 계약이었다.

  아무래도 일하는 건 일 하는 거지만, 계약서는 다시 작성하자고 해야 할 듯싶었다. 생각하자마자 계약서를 들고 벌떡 일어나 렌케의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각하께선 외출하셨습니다.”

  때마침 렌케의 방을 청소하고 있던 시녀가 말을 전해주었다.

  “아 그래요?”

  떨떠름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계약서를 들고 도로 방으로 왔다. 당장 계약서를 수정하자고 얘기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지만, 당사자인 렌케가 없다는데 내가 혼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봤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진짜 여기에서 일해도 괜찮은 걸까?’

  아까는 알았다고 해놓고, 지금 와서 다시 걱정이 되었다.

  ‘아, 정말 난 왜 이렇게 귀가 얇은 거야??’

  렌케가 하는 말에 홀랑 넘어가 버린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좀 더 생각해보고 한다고 했어야 했는데, 멍청하게 계약서에 사인까지 해버리다니.

  엘리아 공주가 준 돈도 그대로 있는데.

  엘리아 공주랑 시녀가 돌아가면서 나타나서 이 집을 떠나라고 하기도 했고.......

  이제야 내가 이 집에 남아 있을 경우 찝찝할 이유들이 하나하나 생각났다. 엘리아와 렌케는 사적인 자리에서 말을 틀 정도로 친한 사이이고, 엘리아가 개인적으로 이 집으로 놀러오기까지 하는데. 내가 렌케의 밑에서 일을 하는 이상 언제고 또 볼 사이였다.

  그리고 엘리아는 날 싫어하는 눈치이니, 서로 불편할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고민해봤자 뭐한단 말인가?

  이미 사인까지 다 해버렸는데. 그것도 한 장도 아니고, 세 장이나.

  ‘미쳤다. 미쳤어.’

  생각할수록 내 얇은 귀와 충동적인 행동력에 어이가 없었다.

  “그럼 앞으로도 여기 계시는 건가요?”

  내가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을 지켜보던 소냐가 물어왔다.

  “네... 아무래도.......”

  “잘됐네요!”

  “네?”

  “라일라님이 뭘 고민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 라일라님께서 여기 계속 계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 말고도 다들 라일라님이 계시기를 원하세요!”

  “네?? 설마요.”

  소냐나 다른 사람들이 날 머무르기를 원한다니. 다들 렌케의 집에 무작정 신세지고 있는 나를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생소한 이야기였다.

  “설마라니요. 당연한 얘기죠!!”

  소냐가 황당하다는 듯 허리에 손을 얹고 다시 말했다.

  “얼마 전에 손목 아프시다는 주방장님한테 마사지 해주시고 손목에 좋은 운동법도 알려주셨잖아요? 그거 정말 효과 있었대요.”

  “그 정도야 뭐 대단한 거라고요.”

  “무슨 소리세요. 라일라님께서 주방장님 말고도 저한테도 그렇고, 정원사 재커리 씨, 하녀 에이미, 리사, 헤일리, 등등등. 얼마나 많이 잘해주셨는데요. 이 집에서 라일라님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요?”

  “그, 그거야 제가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소냐가 과장되게 얘기하니 민망했다.

  “라일라님이 손님으로 계시든, 이곳에서 계시든 저흰 너무 좋으니까 계속 머물러 주세요. 엘리아 공주님이 뭐라고 하시든 신경 쓰지 마시고요! 각하께서 허락하시는데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에요?”

  “네?? 어떻게 아셨어요?”

  엘리아 공주가 내게 뭐라고 한지 어떻게 알았지? 분명 엘리아의 시녀가 왔을 때도 소냐는 나가 있었는데?

  “그거야 척하면 척이죠. 밖에서 몰래 다 들었어요. 시녀 왔을 때.”

  “어.......”

  ‘그래도 되는 건가? 나야 별로 상관은 없지만.......’

  “라일라님이 걱정돼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죠. 아무튼 다른 건 신경 쓰지 마시고 각하께서 하시자는 대로 하세요. 다 라일라님께 좋은 일일 테니까요.”

  “어.......”

  내가 뭔가를 생각할 틈도 없이 소냐가 마구 밀어붙여서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얼른 아론님께 가셔서 일 시작하세요! 아, 모셔다 드리는 게 났겠네요. 어디인지 모르실 테니까. 자, 가요! 일어나세요! 얼른요!”

  “아, 네, 네.”

  소냐의 재촉에 얼떨결에 소냐를 따라 나왔다.

  소냐가 어떤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당차게 문을 두드렸다.

  “아론님. 소냐입니다.”

  “들어와.”

  방 안에서 들어오라 허락하는 나이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소냐와 함께 들어간 방 안은 약품 냄새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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